김사인 시인의 시 <목포> 외 2편_흑백 필름을 인화하는 장인의 눈빛
글 박철영
흔히 첫 인상이란것은 바라본 대상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인화된 한 장의 사진처럼 강한 이미지로 오랫동안 고착되어진다. 서울 남산은 찾아간 그날 따라 음산하고 칙칙했다. 만나는 사람들도 그 분위기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누군가는 이 건물들이 지하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더 공포스러웠다는 남산은 독재정권을 지키는 보루였단다. 지금은 과거속의 남산이지만 자락에 있는 문학의 집에서 행사 때문에 김사인 시인을 보았다. 인사를 하다보니 전화번호도 따게 되었다. 젊잖은, 겸손한, 샌님같은 학자풍의 시인으로 흑백 사진처럼 기억된다. 그래서 처음 만나 나눈 말 몇 마디로 사람은 사람에게 마음을 움직여간다. 우연찮게 이상인 시인이 까페에 올려놓은 김사인 시인의 시가 역시나하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특히 <달팽이>는 표현으로 다가왔다가 내면으로 깊어지면서 달팽이도 사람의 신체기관의 일부지만 별개이지 않음을 알게 해주었다. 또 다른 시들도 강에서 샛강으로 역류하듯 느낌으로 다가왔다. 소중한 것이지만 버려진 흑백 필름에서 대상을 인화해내듯 찾아다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 진지함은 도시속으로 사라져버린 논길이나 동네 어귀로 들어가는 외 길이거나 샛강을 찾아가고 있다.
귓속이 늘 궁금했다.
그 속에는 달팽이가 하나씩 산다고 들었다.
바깥 기척에 허기진 그가 저 쓸쓸한 길을 냈을 것이다.
길 끝에 입을 대고
근근히 당도하는 소리 몇 낱으로 목을 축였을 것이다.
달팽이가 아니라
도적굴로 붙들려간 옛적 누이거나
평생 앞 못 보던 외조부의 골방이라고도 하지만,
부끄러운 저 구멍 너머에서는
누구건 달팽이가 되었을 것이다.
--<달팽이> 시 부분
이런 정도의 생각을 가졌다면 시인이 아닌 이야기꾼에 부족함이 없다. 자신의 몸이지만 볼 수 없는 귓속이다. 그 속을 상상으로 감각의 내시경을 들이민다. 인간의 귓속에 달팽이가 "하나씩" 산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듣게 된다. 궁금한 그곳을 들여보다 귀의 바깥이 아닌 깊숙한 곳에 존재해야하는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그렇지만 조심스럽다. 세상이 그를 어딘가에 숨어들도록 하였는데 세상을 그리워하다니 말이다. 세상의 소리를 간절히 듣고 싶어하지만 "근근히 당도하는 소리 몇 낱" 이어서 그럴 가망이 더 희박해진다. 더우기 달팽이에 갇혀 지내야하는 "도적굴로 붙들려간 옛적 누이거나/평생 앞 못 보던 외조부의 골방"은 우리 사회가 터부시하여 누구라도 그런 사실을 숨기고자한다. 이미 순결을 훼손한 누이나 앞 못보는 사람은 아무런 힘도 없는 무능력자이거나 존재감마저 없다. 인간들의 치부를 숨기려는 속성을 그대로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누구건 달팽이"가 되었을 거라고 시인은 말해준다. "귀가 죽"어서 "길이 무너지고/모든 소리와 갈증이 다한 뒤"에도 귀로 들었던 말은 쉬이 사라지지않는다고 말한다. 말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속담이 있다. 말도 천년을 갈수 있을까? 시인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귓속을 궁금해 한 사람이 사라져도 달팽이는 또 다른 사람에 의해 가장 깊숙한 곳으로 찾아들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아무에게나 찾아가는게 아니다. 네개의 뿔을 세워 더듬어가는 길도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것과 말을 나눈다는 것은 그렇게 해야된다는 달팽이의 느릿하지만 명료한 표장이다.
굽은 허리가
신문지를 모으고 상자를 접어 묶는다.
몸빼는 졸아든 팔순을 담기에 많이 헐겁다.
승용차가 골목 안으로 들어오자
벽에 바짝 붙어 선다
유일한 혈육인양 작은 밀차를 꼭 잡고.
저 고독한 바짝 붙어서기
더러운 시멘트 벽에 거미처럼
수조 바닥에 늙은 가오리처럼 회색 벽에
낮고 낮은 저 바짝 붙어서기
---중략---
늦은 밤 그 방에 켜질 헌 삼성 테레비를 생각하면
기운 싱크대와 냄비들
그 앞에 선 굽은 허리를 생각하면
목이 멘다
방 한구석에 힘주어 꼭 짜놓았을 걸레를 생각하면.
--<바짝 붙어서다> 시 부분
길거리에서 폐지를 줍는 할머니와 맞닥뜨린다. 하필 할머니이어야 하는가에 의문이다. 남자보다 여자는 성장 곡선과 반비례적으로 확연하게 체력의 소모가 빨리진다. 특히 어떤 연유로든 강팍해진 삶에 노출되어졌을때 감당해야하는 고통지수는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시인의 눈에 노약하기 그지없는 할머니가 폐지를 줍고 있다. 팔십 너머 보이는 몸을 구겨 넣기에도 버겨워 보인다고했다. 자동차가 다가올 때는 최대한 피해를 주지않도록 벽에 바짝 붙어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나이 들어가며 자꾸만 얇아지는 삶을 어렵사리 지탱하며 살아간다. 안타깝게도 할머니는 폐지를 줍는다는 이유로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골목을 마음껏 사용할 수 없는 처지가 된다. 오히려 좁은 골목에서 불편한 존재가 되어 스스로 길가로 밀려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것도 모자라 차가 지나갈 때는 큰 건물에 마른 장식처럼 달라붙어 벽화가 되는 것마저 주저하지않는다. 시인은 주저하지않고 마음속 암실에 불을 켠다. 낮에 찍은 사진속에서 놓친 필름을 찾는 작업에 몰입한다. 그런 작업을 통해 할머니의 보이지않는 모습까지도 유추하여 사실적 접근을 시도한다. 결과는 "승용차"와 좁은 "그 방"이 대비를 이루며 한장의 사진으로 선명하게 인화된다. 고생한 하루의 댓가로 주어진 것은 그야말로 남루한 거처일거라 단정한다. "유일한 혈육인양 작은 밀차"와 되돌갈 수 있는 유일한 "그 방"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다. 그 방에서 "헌 삼성 테레비"를 통해 노곤한 삶을 위로 받고 "구겨졌던 종이같은 할머니는/천천히 다시 펴"지면서 소통하고 단절되는 일상의 반복이 이루어진다. 풍요의 상징인 도시의 고층 높이와 반비례해가는 사회 빈곤층을 보며 자본주의 병폐에 "목이 멘" 시인의 안타까움이다.
배는 뜰 수 없다 하고
여관 따듯한 아랫목에 엎드려
꿈결인 듯 통통배 소리 듣는다.
그 곁으로 끼룩거리며 몰려다닐 갈매기들을 떠올린다.
희고 둥근 배와 두 발들
그 희고 둥글고 붉은 것들을 뒤에 남기고
햇빛 잘게 부서지는 난바다 쪽
내 졸음의 통통배는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멀어져간다.
옛 애인은 그런데 이 겨울을 잘 건너고 있을카.
묵은 서랍이나 뒤적거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헐렁한 도꾸리는 입고
희고 둥근 배로 엎드려 테레비를 보다가
붉은 입술 속을 드러낸 채 흰 목을 젖히고 깔깔 웃고 있을지도,
갈매기의 활강처럼 달고 매끄러운 생각들
아내가 알면 혼쭐이 나겠지,
참으려 애쓰다가 끝내 수저를 내려놓고
방문을 탁 닫고 들어갈 게 뻔하지만
옛날 애인은 잘 있는가
늙어가며 문득 생각키는 것이,
아내여 꼭 나쁘달 일인가.
밖에는 바람 많아 배가 못 뜬다는데
유달산 밑 상보만한 창문은
햇빛으로 고요하고
나는 이렇게 환한 자부럼 사이로 물길을 낸다.
시린 하늘과 겨울 바다 저쪽
우이도 후박나무숲까지는 가야 하리라.
이제는 허리가 굵어져 한결 든든한 잠의 복판을
저 통통배를 타고 꼭 한번은 가닿아야 하리라
코와 귀가 발갛게 얼어서라도
--<목포>-- 시 전문
누구나 한 때의 불같은 사랑을 추억으로 안고 산다.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그 사랑의 추억을 숨겨야하는 이유가 있다면 아련해질 수 밖에 없다. 공교롭게도 찾아간 곳이 추억속에 고스란히 기억된 사랑한 사람과 인연이 있는 곳이라면 더 애뜻할 수 밖에 없다. <목포> 시 전문을 통해 시인은 인간적인 일면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하필 아내와 찾아간 곳이 목포였다. 가는 날 심란스럽게 풍랑으로 배가 뜨지 못해 발이 묶이고 만다. 허름한 여관방에 일정을 반납하고 졸음에 겨운 바닷가 풍경을 바라보다가 "그 희고 둥글고 붉은 것"들을 보면서 무언가를 떠올리게 된다. "내 졸음의 통통배는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멀"리 잊고 있었던 내밀한 추억을 찾아가고 있다. 밀려오는 여행의 피로 때문이었을까? 기억의 미늘에 걸려 올라온 "옛 애인"을 겁도 없이 아내가 버젓이 함께하는 여관까지 끌어 들이고 만다. 거기에다 "붉은 입술"과 "흰 목"을 떠 올리며 "갈매기의 활강처럼 달고 매끄러운 생각"으로 거침없이 애인에게 달려간다. 어쩔 수 없다며 오히려 "옛날 애인은 잘 있는가/늙어가며 문득 생각키는 것이, 아내여 꼭 나쁘달 일인가"고 설득하려한다. 그게 어디 아내에게 씨알이 먹힐 말이겠는가? 급기야 옛 애인에게 "물길을 낸" 다음 "저 통통배를 타고 꼭 한번은 가 닿"겠다는 의지를 다짐한다. "코와 귀가 발갛게 얼어서라도" 찾아가고 싶어하지만 아내에게만큼은 단단한 약속을 잊지는 않는다. "늙어가며 문득 생각"으로만 그러하겠다는 것이다. 이래서 아름다운 사랑의 몹쓸 이야기다. 시 <목포> 에서는 끝맺음이 없는 여유와 낭만의 시다. 생각은 자유지만 호랑이같은 아내는 건드리지 말라는 해학의 시다.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 (2015) 수록
첫댓글 요즘 시 이론공부좀 하는데 도움이 되네요 오늘 읽어야겠어요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해요
시가 워낙 잔잔하게 가슴으로 전해오는 게 있어 좋았어요
목포 시는 그날 시인님의 입장과 딱 맞아 떨어졌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