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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양산 백학장원 원문보기 글쓴이: hwd
텃밭의 기적
도시농부의 씨앗을 찾는 여행
데이비드 뷰캐넌
-아이디어의 씨앗
나의 농장 프로젝트는 단지 씨앗이나 유서 깊은 과일 품종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불과 몇 세대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삶에서 핵심을 차지하고 있던 당, 그리고 식물과 다시 연결될 수 있는 창조적인 방법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단지 오래된 품종만이 아니라 맛과 생산량이 뛰어나며 병충해 저항력도 좋다면 새로운 품종도 수집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 목표는 이 시대, 이 지역에 가장 적합한 식물을 수집하는 것이지, 호기심 천국을 위한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런 실험에 대해 쓴 이 책을 읽고 나서 다른 사람들도 규모와 상관없이 건강한 먹을거리 생산이란 특정 지형과 기후에 적합한 식물과 동물 품종을 신중하게 선택해 균형을 맞추는 데 있다고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보기에 로카보어운동, 즉 특정 지역의 음식을 다른 지역의 것과 구별하는 지역주의의 원동력은 다름 아닌 생물다양성에 있다. 기꺼이 적용하고 실험해 볼 뜻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음에 만날 세습품종 복숭아든, 아니면 오래된 훌륭한 품종의 배와 야생종 묘목을 접붙인 새로운 품종이든, 아주 절묘한 새로운 것을 생산해 낼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의 정체성과 신념에 있어서 우리가 어떤 음식을 선택하고 먹는가보다 더 근본적인 요소가 있을까? 이 책은 다양성 속에 살며 우리의 텃밭과 시장에서 희귀 품종들의 자리를 찾아가고, 우리가 잊어버린 먹을거리의 의미와 이야기를 되살리려는 나의 노력에 대한 책이다.
-맛의 방주를 타고 기억에서 사라진 먹을거리 찾아내기
맛의 방주위원회에서 미국 전역의 먹을거리 약 20가지를 맛보고 평가하는 것이었다. 각 품종이나 작물에 첨부된 추천 서류에는 역사와 생산 현황, 맛의 방주 후보 목록에 오른 이유, 멸종 위기의 정도가 적혀 있었다. 오늘 최종적으로 면밀한 검토를 거친 작물은 슬로푸드USA의 맛의 방주 목록에 올라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제 슬로푸드 소속 단체인 이탈리아 생물다양성재단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들어가게 된다. 맛의 방주 위원회가 맡은 임무는 ‘기억 속에서 사라진 맛’, 즉 ‘실질적인 경제적 생존력과 가능성이 멸종 위기의 식용 작물’을 전 세계에서 찾아내 보존하는 것이다. 국제 슬로푸드 웹사이트에서는 그 목록을 ‘산업표준화, 위생법, 대규모 유통과 환경 파괴로 인해 위협받고 있지만 맛이 뛰어난 생산물을 받아들이는 은유적인 방주’라고 적어 놓았다.
농업실험소에서는 어떤 품종을 다루고 있는지 궁금했다. 채소류 재배와 평가를 담당하는 연구 기술자인 빌 개먼이 그의 사무실에서 맞이하자 근처의 밭으로 나갔다.
밭에서는 대충 가로 3미터, 세로 9미터, 높이는 1.5미터 정도 되는 커다란 사각형 철제 틀 40개가 옆에 있는 이랑을 덮고 있었다. 각 틀에는 직원이 수분을 통제하도록 곤충을 막는 나일로 소재 가림막이 맞춰져 있었다. 개인이 돌보는 채종포에도 크기는 좀 더 작지만 비슷한 장치가 사용되는데, 곤충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 목재 틀에 폴리에스터 천을 덮어 압정으로 고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여기서 쓰는 장치는 자외선 차단 직물에 튼튼한 지퍼를 달아서 훨씬 더 크고 내구성이 좋다. 각 틀 안에는 판지로 만든 초소형 벌집이 들어 있고 여왕벌 한 마리와 작은 벌떼가 있어서 틀 안에서 수분을 담당한다.
이렇게 설비를 해두면 과학자들은 어느 충매식물이, 예를 들어 브로콜리라고 하면, 그 틀 안에 있는 같은 품종 브로콜리 화분으로 교배되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박이나 순무, 양파 등 종이 다른 충매식물을 보로콜리와 같이 넣어도 서로 교차 수분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한 틀 안에 넣을 수는 있지만 각각 한 가지 품종만 넣는다. 이런 장치가 없다면 야생의 꽃가루 매개자들은 같은 종 안에서 교차 수분을 일으킬 것이며 결국 품종별로 다른 정체성은 사라질 것이다.
밭에서 그쪽에만 가림막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채소 종류마다 다른 수분 방법이 필요가 때문이다. 충매식물이 아닌 경우에는 화분을 퍼트리는 데 바람에 의존하거나 (옥수수와 시금치가 여기 해당하며 이런 식물은 다른 품종과 1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재배해야 하는데 이곳 연구 기지에서는 재배하지 않는다) 아니면 자가 수분을 하는 식물이 많다(콩, 토마토, 고추 등).
셀러리나 당근, 루타베가 같은 이년생 식물은 씨앗이 맺히려면 2년이 걸리기 때문에 첫 해에는 보호하지 않은 채로 재배하다가 이듬해에 가림막 안으로 옮겨 심는 등 다른 품종으로부터 격리하는 방법을 쓴다. 수집 품목이 많을수록 각 종자의 품종을 순종으로 유지하기 위해 순환하고 격리하는 것이 더 복잡해진다. 모든 것을 그냥 갖다 심고서 그걸 보존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높이가 2.5ㅁ비터 쯤 되는 철사 울타리가 너른 밭을 에워싸고 있었다. 울타리는 사슴을 막기 위한 것인데, 사실 채소밭과 사과, 체리, 포도밭 사이에 놓인 것은 목초지뿐이었다. 그 탁 트인 공간을 가로질러 가면 이 구역에 있는 사과나무는 나머지 나무들보다 키가 커서 6미터가 넘는 것이 많았고, 생김새도 완전히 달랐다. 그곳의 사과나무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재배종 사과의 유전적 고향, 탄생지, 사과 종 다양성의 중심인 카자흐스탄의 야생에서 바로 수집한 것이다. 열매가 대부분 이미 땅에 떨어져 있었지만 몇몇 그루에는 각종 크기와 모양의 야생 사과가 가득 달려 있었다. 그 아래에는 왜화 재배한 나무들이 깔끔하게 정돈된 이랑에 자라고 있었다. 키는 중간쯤에 열매가 가득 달린 나무로 채워진 구룡이 아름다웠다.
각 품종마다 나무 두 그루씩 유지한다. 진정한 사과의 방주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 서로 중심에서 3.6미터나 2.7미터 간격으로 식재하는데, 이는 밀집해서 자라면 시렁을 타는 왜화 품종이든, 널찍하게 자라는 표준 품종이든 간에 현대의 과수원에서 평균으로 쓰는 간격이다.
-밭에서 땀 흘리기
맛의 방부 위원회 앞에 놓인 음식은 유행을 좇는 엘리트의 창조물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텃밭과 과수원, 농장과 부엌에서 온 것이다. 위원회 회원은 생산자로서 희귀한 음식을 재배하고 마련하기 위해, 음식 문화의 풍부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손수 알리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맛의 방주 목록에 오른 과일, 채소, 고기류는 뿌리 깊은 전통, 땅에서 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경험, 음식 문화의 역사를 기린다.
미국인의 시간은 우리의 장보기 습관에서 거의 드러난다. 미국은 소비자 국가이며, 생산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나 농업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대중은 매일의 음식을 선택할 때 싼값에 음식을 구할 수 있고 안전성이 보장되기만 한다면 농장 공동체와 시골의 일꾼들, 환경에 어떤 몫이 돌아갈지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시장의 압력은 중소 규모의 농부들을 땅에서 몰아내며, 다른 농장들은 보조금을 받는 거대 농장과 경쟁을 하는 바람에 들판에서 품종의 다양성을 포기한다.
독립적인 가족 운영 농장들이 생계를 잇기 위해 분투하는 것은 두말 할 것도 없다. 소규모 유기농 농부들처럼 대안의 길을 모색하는 이들은(또한 그들을 지지하는 구매자들은) 엘리트주의자라고 치부되며 의미가 퇴색되러 버린다. 슈퍼마켓에서 보는 규격화는 민주화라고 한다. 누가 이 담론을 통제하고 있는가?
좋은 음식을 ‘엘리트주의’라고 보는 시각에 논박하려면 한걸음 물러나 농장 일에 대한 몇 가지 관점과, 질 좋은 씨앗을 구하거나 생물 유전자의 다양성을 추구하기 어려운 곳에서 텃밭을 가꾸는 경험을 해 볼 필요가 있다. 내 손으로 일을 하며 보내는 시간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일을 하는 성취감, 일을 잘 완수했을 때의 만족감을 주어서 뿌듯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힘겹기도 하다. 아주 낮은 수입을 벌면서도 내가 이 일을 계속하도록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 답은 아마 내 고집, 땅에 가벼운 영향만 미치며 살아간다는 이상, 나빠지는 환경을 지켜보며 행복하지 못한 감정이 뒤섞인 혼합물일 것이다.
지금은 이 일을 즐길 수 있는 균형과 목표를 거의 찾았지만 언제나 이랬던 것은 아니다.
내 친구인 잔느도 그 진료소의 간호사인데, 그녀는 대개 라틴계인 농장 일꾼들이 겪는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한 보따리 갖고 있었다. 그중에는 우리가 둘 다 아는 친구가 술을 마시고 트럭을 몰았다가 완파시킨 경우처럼 자초한 문제도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는 그들의 직업 때문에 일어난 문제일 때가 많았다. 예를 들어 잔느의 친한 친구가 겪고 있는 만성 호흡곤란 같은 것이다. 그는 아직 마흔여덟 살 밖에 안됐지만 평생을 과수원에서 제초제 살포 장비를 다루는 일을 해 왔다. 잔느가 아는 이야기들에는 공통된 줄기가 있었다. 고된 노동, 가난, 존재감 없이 때로는 스쳐갈 뿐인 삶, 나는 집으로 돌아가서 저임금 농장 일 대신 다른 일을 찾고 기력을 회복할 때까지 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어떤 선택지가 있을까?
이런 경험들도 작용해 왔기 때문에 나는 먹을거리가 지금보다 더 싸야 한다거나, 농부나 일꾼들을 위해 가격을 올리려는 노력을 ‘엘리트주의’라고 하는 의견에 동의하기 어렵다. UC데이비스 대학교 농업경제학 교수인 필립 마틴이 2009년에 미국 노동부의 자료를 근거로 지적했듯이, 평균적으로 미국의 가정에서는 과일과 채소를 합한 것보다 술에 더 많은 돈을 소비하며, 여가 생활에는 거의 6배를 소비한다. 미국 가정의 연간 지출 중 1퍼센트 미만이 농산물 구매에 쓰이며, 그 얼마 안 되는 금액에서 10퍼센트 미만이 농업 종사자에게 돌아간다. 미국인이 농부의 시장에서 돈을 조금 더 쓴다면, 거의 신선한 과일과 채소에 쓰는 돈의 7배를 의료 서비스에 들이는 현실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인이 자신의 수입에서 음식에 소비하는 금액의 비율은 전 세계 누구보다도, 역사상 누구보다도 낮다.
그때 나는 탈수증을 치료하기 위해 진료소에 두 시간 다녀온 것 때문에 밭에 물 대는 일을 해서 버는 한 달 월급이 날아갔다. 이건 농업 종사자 대부분의 삶에서 아주 작은 단편일 뿐이다. 가장 가난한 미국인 중에는 소비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값싼 고기와 과일, 채소를 대 주는 농부와 고용 일꾼들도 있다. 그들의 눈을 통해서 보면, 저임금과 굶주림, 가난을 초래하는 것은 슈퍼마켓에서 파는 가공식품의 낮은 가경이다. 조금 더 소비할 능력이 되는 사람들이 제초제를 적게 써도 되는 사과나 생물다양성을 지키는데 도움이 되는 세습품종 토마토를 구매한다면,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임금을 올리고 밭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의 건강을 증진하도록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좋은 음식을 구매할 능력이 안 되는 소비자를 돕는 것이야 물론 좋지만, 정확히 짚고 넘어가자. 값싼 음식은 노동자와 환경을 희생해서 나오는 것일 때가 너무 많으며, 정상가보다 싼 값을 쫓아다니다 보면 모든 사람이 아래로 떨어지는 물살을 타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노동자들이 아무 것도 먹지 못하거나 질 좋은 음식을 구하지 못하게 된다. 음식 가격을 바닥까지 내리려는 끈질긴 움직임은 많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은 훨씬 더 큰 결과를 낳는다. 농부, 고용된 일꾼, 환경을 지원하기 위해 돈을 조그만 더 지불하면 지금보다 나은 노동 환경과 임금, 더 많은 일자리와 더불어 농토와 생물다양성을 보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연장보다도 좋은 씨앗을 찾기가 더 어렵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 20년 전, 여행 가방 하나에 채소류 씨앗을 채워서 멕시코 치아파스에 있는 소도시인 산크리스토발 테라스카사스에 간 적이 있다. 내가 가져간 씨앗은 한 번 밖에 재배하지 못하는 교배종이 아니라, 매년 꾸준하게 산출량이 나오며 씨앗을 받아 다시 심을 수 있는 자연 수분 종자였다(교배종은 서로 형질이 다른 순종 둘을 교배해서 만든 제1대 종자로, 1대에서는 접종강세를 나타내고 일정한 결과를 생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씨앗을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다시 씨앗을 받아서 여러 대에 걸쳐 심었을 때 제1대의 형질이 유지되지 않는다) 네덜란드 출신이지만 멕시코의 그 아름다운 읍내에 뿌리를 박은 그곳 농학자가, 당시 미국 워싱턴 주의 ‘풍요로운 삶을 위한 종자 재단’이 운영하던 세계종자기금을 통해 그 품종들을 요청한 터였다. 그 농학자는 가까운 과테말라에서 그가 개발하고 있는 공동체 음식 프로그램에 쓸 씨앗을 찾는 중이었는데 구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맛없고 상업적으로 재배되는 교배종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미국 회사에 도움을 요청했다.
알고 보니 이런 현상은 아르헨티나에서도 일반적이다. 라프로비덴시아 인근에서 텃밭을 가꾸는 많은 사람들은 존경심을 가지고 독립적인 미국 종자 회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곳에는 미국의 하이 모잉 시즈나 테리토리얼 시즈에 해당하는 회사가 없으며, 그 작은 상점에서 진열해 놓은 질 낮은 대량 생산 품종 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었다. 모두가 내게 씨앗을 가져왔느냐고 물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오’였다. 국경을 넘어 씨앗을 가져오기가 어렵기 때문도 있지만, 해당 지역의 품종을 기르도록 권유하는 편이 일반적으로 더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게 완전히 현실성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예를 들어 셀리나에게는 브라질에서 친구가 보내 준 유기농 채소 씨앗이 있는데, 상업적으로 재배하지 않는 것이었다. 또한 셀리나의 말에 따르면 근처에 사는 나이든 농부가 종자를 수집한다고 한다. 교사들이 다리품을 좀 팔면 쓸 만한 이 지역 종자를 구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이웃 중에 자신의 농작물에 종자를 직접 받아 재배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두어 시간 북쪽으로 차를 타고 가면 있는 일종의 농업단체에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다.
이듬해 봄에 나는 메인 주의 조니스 셀렉티드 시즈에서 나온 씨앗을 보냈고, 셀리나는 텃밭 사진을 첨부한 이메일을 보내며 일이 잘 되어가고 있다고 전해 주었다. 이런 프로젝트에 힘을 쏟는다 해도 그 결과물이 계속 잘 자랄지, 잡초와 쓰레기가 가득한 땅으로 돌아가 버릴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완성된 퍼걸러와 허브, 꽃, 채소가 가득 자라는 텃밭을 보니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텃밭은 쉽게 방치되고 망가질 수 있지만 그걸 되살리려면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든다. 내가 그곳에 가서 3주를 보내는 동안 모종 몇 가지와 순종 씨앗을 재생산할 수 있는 품종의 씨앗, 연장 몇 가지, 밭을 만들 수 있는 땅, 그리고 고된 노동이 있었기 때문에 그 텃밭 프로젝트는 시작할 수 있었다. 내 희망은, 그 작은 시작에서 출발하여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앞으로 오래 지속될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 학교가 진행하고 있는 작업은 근본적으로 좋은 음식, 안정된 지역 공동체, 건강한 아이들을 위한 일이다. 라프로비덴시아는 엘리트 집단을 위한 학교가 아니다. 이 텃밭은 재배자, 요리사,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를 손수 재배한 음식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식탁으로 모이게 한다. 이 텃밭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아이들은 소비자의 눈만이 아니라 생산자의 눈으로도 세상을 보기 시작한다. 하나의 관점으로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배운다. 그 지역의 토종 옥수수를 심은 학교 텃밭처럼 소박한 것이라 해도, 누군가의 눈에는 별로 대단한 가치를 지니지 못한 것이 다른 이의 눈에는 아주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되새기게 해 준다. 이는 우리가 우리 먹을거리의 미래를 재구성하는 동안 기억해 둬야 할 교훈이다.
-수집가의 눈으로 과일 탐험가 되기
씨앗 카탈로그를 훑어보거나 훌륭한 묘포장에 가볼 수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 적이 있었다면, 미국 밖의 아르헨티나 같은 곳에서 쓸 만한 종자를 찾아 헤맨 경험은 그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 주었을 것이다.
미국에는 농업과 관련된 작은 독립 사업체들이 있어서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광범위한 종류의 전 세계 식물을 구할 수 있다. 종자와 모종, 묘목을 수집하고 실험하고 재배하는 그들의 노력은 소규모 농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농부의 시장에 나온 젊은 부부는 로컬푸드 운동에서는 영웅 대접을 받을지 모르겠으나, 그들이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고 생활비를 벌 수 있으려면 근본적으로는 지역의 종자 회사, 묘포장과 협력 관계를 통해야만 한다.
메인 주에 있는 페드코 라는 회사는 묘포장의 작물, 생산자들에게 필요한 뭎품, 구근, 감자 등으로 사업 아이템 범위를 확장해 나갔는데, 성공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그 회사는 근본을 잃지 않고 있다. 지금도 이 회사는 회사의 노동자들이 공동으로 소유한 협동조합이며, 워터빌 소재의 작은 사무실 하나와 인근에 있는 창고 두 곳에서 소액 자본으로 운영한다. 페드코 홈페이지에는 ‘한 명의 개인 소유주나 수혜자가 없기 때문에, 이윤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가 아닙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웹이지는 그들의 협동조합 구조를 강조한다. ‘우리 협동조합의 소비자와 노동자 회원들은 연간 후원금 배당을 통해 협동조합의 이윤을 나눕니다’
존이 메인 주 일대에서 식물을 수집해 온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지역에는 수십, 어쩌면 수백 종의 희귀 과일 품종이 있으며, 예전에 사람이 재배하던 농작물이 발견되기를 여전히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망각된 문화의 조각들에, 어디를 찾아봐야 하는지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흔적들에 둘러싸여 있는 셈이었다.
그는 상상하기 어려운 풍요의 비전을 묘사했다. 사람들은 이제 식물을 수집하던 시대는 지나갔으며 새로운 음식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는 아주 먼 땅에나 있다고 생각하기가 쉽다.
존 벙커는 3년 전 집필을 위한 취재를 하는 중에 한 차례의 수확 철을 꼬박 들여서 그가 이미 30년 넘게 살아온 지역에서 사과를 탐험했고 놀라운 사과 품종을 많이 찾아냈다. 그중에는 접을 붙인 열매들, 즉 야생에서 자란 품종과 달리 사람이 재배한 사과 품종도 있었는데, 아직도 그게 어떤 품종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왜 우리가 이런 오래된 농작물을 버렸다고 생각하셔요?’ 존에게 물었다. 그는 우리가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법을 잊었다는 점이 그 원인 중 하나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규칙에 따라 정착하고 일자리를 찾느라 농업 생산은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이런 구도에서 오래된 품종의 사과는 어디에서 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오늘날에 와서 음식은 거래할 수 있는 재화이므로 시장에 적응해야 하며, 따라서 일관된 결과물이 나와야 하기 때문에 다양성을 추구하면 불리하다. 지금 우리의 식료품점에 나와 있는 생산물의 가짓수가 한정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음식으로 재배하던 품종이 버려지는 경우는 품질이 낮거나 방치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외에는 의도적인 계획에 의해, 멀리 있는 더 큰 시장의 개발 때문에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존 벙커는 그의 책에서 1927년을 ‘각종 음모’의 해라고 썼다. 그 음모 중 하나는 농업 연구원들이 미국 동북부의 사과 산업을 통합하여 단일화 시장 개발에 착수한 일이다. 그 연구원들은 시장 판매를 위해 생산할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허가 품종의 목록을 만들어서 ‘뉴잉글랜드 세븐’이라 이름을 붙였으며 나머지 사과 품종은 재배를 막았다. 지금 존이 정말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어느 품종인지 알아내고 위기에서 구출하는 나무들은 드물게 행복한 예외인데, 그 나무들이 살아남은 것은 열매를 맺는 나무를 베어 버리고 싶지 않았던 오래 전의 고집 센 농부 덕분이거나 아니면 순전히 우연 때문이다.
시장에서 사과 품종 수백 가지를 판매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며, 따라서 미국의 초기 식민지 시절에 이 땅에서 자라던 유서 깊은 품종들은 아무리 가치가 높다 해도 점차 하나씩 버려졌다. 로컬푸드에 대한 관심이 엄청나게 높은 오늘날에도 다양성은 소규모 영농에서 가장 잘 성장한다. 틈새 과일을 시장에 내다 팔기가 어렵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각 품종을 재배할 때 저마다 다른 조건을 해결하기 위해 들여야 하는 시간과 에너지 때문에 생산자 대부분이 폭넓은 실험을 하지 못한다. 결국은 다양성의 추구는 소규모 농부와 자급자족 생산을 하는 사람들이 앞장서는 경우가 많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독립적인 종자 회사와 묘포장이 우리의 길잡이가 되고 거기에 연료를 넣는 것은 존 벙커 같은 수집가들이다.
존 벙커가 망각된 과실수와 나무딸기 관목을 찾아다니는 동안,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사라져 버릴 수 있는 농작물을 돌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리 이름 없는 메인 주의 사과나무라 해도 일단 자리를 잡고 나면 혼자서 살아남아서 관심을 가진 적합한 사람이 새로 나타날 때까지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심지 않고 두면 씨앗이 두어 해를 넘기지 못하는 뿌리채소나 콩, 토마토 등 다른 채소는 사정이 다르다. 감자 같은 덩이줄기 작물은 해마다 심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에 더 심하다(액체 질소로 얼리는 방법인 냉동 보존법처럼 첨단 저장 기술을 쓰면 가능하지만, 개인 재배자 중에 이런 기술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니 유산품종 감자를 1년만 방치하면 그 품종은 사라질 수 있다.
“교배종은 채소의 한 품종이 될 수 없어요. 그렇게 부르는 건 모순이죠”
교배종을 재배했을 때는 씨앗을 받아 다시 심어도 종의 형질이 유지되지 않으며, 또한 특허권이 걸려 있는 경우가 많아서 어차피 농부들은 스스로 씨앗을 받아 사용하지 못한다.
교배종은(안정적인 부모 품종들 사이에 잡종 교배하여 나온 첫 번째 세대의 종자를 말한다) 단지 육종 과정의 첫 번째 단계일 뿐이지 본질적으로 목표는 될 수 없다.
월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1980년대 후반에 ‘씨앗을 받는 사람들’을 통해서였다. 아이오와에 기반을 둔 이 단체는 미국 전역의 뒷마당 원예가들을 연결하여 희귀 과일과 채소 품종 몇 가지를 다른 재배자들과 교환하기 위해 그 단체의 연감에 올린다. 씨앗을 받는 사람들 설립 초기인 1970년 이래로 월은 줄곧 어느 회원보다도 더 크고 다양한 목록을 제공해 왔으니, 그는 영웅 같은 존재다. 그가 수집한 약 3000종에 이르는 채소 품종을 보존하려면 얼마나 복잡할지, 그중 많은 품종의 종자를 매년 다시 심어야만 그 종자를 보존할 수 있으니 월 본샐이 밭에 들이는 수고가 얼마나 클지는 상상하기도 어렵다.
월은 메인 주의 추운 내륙 지방에 잘 적응하는 뿌리채소를 중요하게 여긴다. 뿌리채소는 많은 품종이 2년생이어서 종자를 받으려면 계절을 두 번 거쳐야 하는데, 그래서 집에서 텃밭을 재배하는 사람들은 보존하기가 특히 어렵다. 2년생 작물은 겨울 동안 지하저장고에 보관해야 하며, 심고 나서 두 번째 해에는 교잡수분을 방지하기 위해 곤충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격리하거나 보호망을 씌워야 한다. 그러니 씨앗을 받는 사람들 연감에 뿌리채소를 올리는 재배자가 드문 것이다. 하지만 역행투자가인 월 본샐이 뿌리채소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월은 씨앗을 받는 사람들 모임의 ‘큐레이터’이기도 해서, 그 단체의 영구 수집 품종을 보존하는 책임을 맡은 미국 전역에 몇 안 되는 재배자다.
그는 감자 품종을 수백 가지나 재배하는데, 감자는 매년 심어야 보존할 수 있기 때문에 실수해도 되는 여지가 없다. 감자는 ‘클론’작물인데, 이는 지난해의 덩이줄기에서 싹이 나서 새로운 작물이 자라며 같은 이름이 붙은 품종은 모두 하나의 조상 작물에서 나왔다는 의미다. 꽃이 핀 감자에서 때로 씨앗이 나기도 하지만 그 씨앗을 심어도 순종으로 자라지 않는다(시험 삼아 감자 씨앗을 재배해 봤지만 감자가 생산되지 않았다)
월이 그토록 많은 감자 품종을 재배하려면 많은 공간을 할애해야 할 뿐만 아니라 질병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중하게 계획을 세워서 순환과 위생관리를 해야 한다. 그가 재배한 덩이줄기가 토양이나 다른 작물로부터 바이러스 전염이 되면 그 바이러스는 다음 세대로 전해질 것이다.
농부나 원예가들은 대부분 적합한 저장 시설이 없거나 질병에 대한 뿌리 깊은 두려움 때문에 자신이 수확한 작물을 다시 심지 않고, 인증을 받는 바이러스 없는 재배용 덩이줄기를 종자회사에서 매년 사다 심는다.
19세기 초반에 아일랜드 농민들은 수확량이 높다는 이유 때문에 룸퍼 감자를 도입했고, 잉글랜드 사람들은 감자를 ‘게으른 뿌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잉글랜드 사람들이 보기에 아일랜드 사람들이 다채로운 전통 식단인 귀리, 보리, 호밀, 콩, 각종 채소 대신 감자를 주식으로 선택한 것은 그들의 품성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여긴 것이다. 1840년대가 되자 아일랜드의 농부들은 불모지에까지 아일랜드 전통적인 농산물뿐만 아니라 그들이 2세기 동안 재배해 온 감자 품종을 대부분 포기하고 산출량이 많은 룸퍼 감자를 재배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1840년대 후반 잎마름병이 강타하여 아일랜드의 농작물을 휩쓸어 버렸고, 농부들에게는 다른 작물의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잉글랜드의 구호 활동이 부족했고 차별은 물론 부당하게도 도덕적 평가까지 더해지는 바람에, 당시 아일랜드에서 약 1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이처럼 단일작물 경작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인 룸퍼 감자를, 농업에서 생물다양성을 위해 존재하는 이 밭에서 보고 있으니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층 더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점은, 이런 컬렉션의 목표 중 하나가 질병 저항성이 높은 작물을 보존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룸퍼 감자가 지구상에서 질병에 최악으로 민감한 품종이라는 것은 이미 증명되었다. 높은 산출량을 비롯해 몇 가지 유전적 특징은 가치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감자는 저주받은 농작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아무도 룸퍼를 판매하지 않으며, 유전자은행과 월 본샐 등 몇 안 되는 개인 재배자만이 이 품종을 보존하고 있다.
윌 본샐 같은 개인의 혼자 힘에 맡겨 두는 것은 매우 위험하며 이 농작물들의 미래를 위태롭게 한다. 윌 자신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며 ‘씨앗을 받는 사람들’ 연감에 매년 간청하는 글을 싣는다.
“바구니 하나에 달걀을 너무 많이 담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닙니다.
표본을 제공하는 대가와 간혹 들어오는 보조금으로는 이 다양한 컬렉션 전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에 턱없이 부족합니다. 품종을 요청하실 때는, 최소한 그것을 가져다 길러서 본인이 다시 심을 씨앗을 받고, 친구들과도 나누겠다는 생각을 해 주세요. 가장 좋은 것은 그렇게 해서 여러분이 생산한 씨앗을 이 연감에 올려 다시 나누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동기가 충만한 수집가 몇 명의 손에 농작물 컬렉션을 집중해서 맡겨 두는 것보다는 위험을 분산하는 방법이 낫다는 것이다. 이런 농작물을 다음 세대를 위해 제대로 보존하려면 재배하고 먹고 진가를 알아봄으로써 많은 사람과 공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