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9호
“십자가가 무겁게 느껴진다면”
우리는 누구나 자기 삶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가난이 십자가일 것이다. 또 누군가는 가족이 십자가일지 모른다. 때로는 가난 때문에 육체적 고통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가족 때문에 심적 고통을 받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자신을 부끄럽게 하고 수치스럽게 하고 모욕감을 주고 삶에 모욕감을 주고 삶에 무거운 짐을 주는 십자가가 있다.
삶의 십자가를 달가워할 사람은 없다. 스스로 원해서 십자가를 지는 사람도 없다. 대개는 십자가가 아닌 줄 알았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십자가인 경우거나, 처음에는 아니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나니 십자가로 바뀐 경우다. 그러다 보니 괴롭고 억울한 마음이 앞서게 된다. ‘내가 왜 이 십자가를 져야 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은 십자가의 무게를 더욱 무겁게 한다. 또 그 때문에 몸과 마음도 짓눌려서 한순간에 삶을 놓아버리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십자가를 지게 된 순간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면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십자가의 무게나 고통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괴롭고 억울한 마음이 적다 보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십자가는 가벼운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십자가의 고통을 견뎌낼 마음의 힘이 세지는 것이다.
나는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그때까지 나는 지원하는 사람만 해병대에 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부산, 울산, 포항, 제주도 등 해안선에 사는 사람들이 징집되기도 했다. 지금은 없어졌다. 당시만 해도 지원율이 지극히 낮은 한여름이나 한겨울에 특정지역에서 일부가 차출되는 때도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징집기수에서 유독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지원했든 징집을 당했든 해병대 생활은 똑같이 힘들다. 그런데 징집 기수에게는 억울한 마음이 있다. 선임에게 부당하게 매를 맞거나 혹독한 훈련을 받게 되면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닌데 왜 이렇게 고생해야 하나’라는 억울함과 반발심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간혹 사고로 이어지거나 극단적이면 탈영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반면 지원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 어차피 맞을 거 안 죽을 만큼만 때려라. 이왕 고생하는 건데 좀 더 고생하지, 뭐.’
고통을 당연하게 생각하다 보니 징집된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고통을 견뎌내는 힘을 얻게 되고 건강하게 군대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남자라면 누구나 군대에 가야 하는 것처럼 삶에도 반드시 져야 할 십자가가 있다. 그때 삶의 십자가를 지원한 사람은 당연하다고 여기며 고통을 무사히 견딘다. 그러나 십자가를 징집당한 사람은 억울한 마음 때문에 작은 고통에도 쉽게 무너진다. 삶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세와 태도에 따라 삶의 결과가 천지 차이로 달라지는 것이다.
어느 날 십자가 형벌을 받은 사람이 자신이 매달릴 십자가를 어깨에 짊어지고 길을 걷고 있었다. 갑자기 강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바로 그때 십자가를 지고 있던 사람이 자신의 십자가로 다리를 만들었다. 덕분에 사람들은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 무거운 짐에 불과했던 십자가가 한순간에 강을 건너는 다리로 바뀐 것이다.
삶의 십자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가난이라는 십자가가 나를 괴롭히고 가족이라는 십자가가 나를 힘들게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삶의 구덩이가 나타났을 때 그 십자가가 내 삶을 구원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자기 삶의 십자가를 억울해하면 ‘괴로운 사나이’가 된다. 그러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짊어지면 ‘행복한 사나이’가 될 수 있다. 행복은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기꺼이 십자가를 짊어지는 사람의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너에게 묻는다.」-
산들바람을 느끼며 여유롭게 산책하는 것은 행복하다. 그러나 더 큰 행복은 연탄재처럼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을 태우고 예수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는 것일지 모른다.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고통을 감당함으로써 삶의 행복을 느끼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차원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만약 요즘 내 어깨에 짊어진 삶의 십자가가 무겁게 느껴진다면 그 무게만큼 나와 소중한 사람들의 삶이 행복해지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 순간 우리는 일차적인 행복을 넘어서 고차원적인 행복의 맛을 느끼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당신을 봅니다.」김창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