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흑석사(黑石寺)
경북 영주시 영풍군 이산면 석포리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
창건 및 연혁
신라 때 의상 스님이 창건하였다. 인근에 검은 바위가 있어 흑석사라 하였다. 조선 전기까지의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었다. 조선 정조 때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 의하면, “폐사된 절이다”라고 전해진다. 이후 마애 삼존 불상만이 350여 년을 지키고 있었다.
절터만 있던 곳에 1945년 무렵 초암사에 머물던 초암 상호 스님이 초암사의 목재를 옮겨 중창하였다. 1950년 6.25를 피하여 정암산 법천사(法泉寺)의 아미타여래좌상을 이 절로 옮겨와 봉안하였다. 최근에는 1991년 무렵 요사, 1998년 무렵 객사를 지었다. 이어서 1999년에 극락전과 약사전을 새로 지었다.
성보문화재
당우로는 극락전, 약사전, 설선당, 종각, 환희전 등이 있다. 유물로는 목조아미타불좌상 및 복장 유물(국보), 흑석사석조여래좌상(보물)이 있다.
*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국보)
목조아미타불좌상은 1458년(세조 4)에 조성된 조선 전기의 대표적 목조 불상이다. 효령대군이 주도하여 세조 등 왕실에서 삼존불을 조성하여 법천사(현재 3개의 절이 있으나 확인되지 않음)에 봉안하였다.
태종(3대)의 후궁 "의빈권씨", 명빈김씨", 둘째 아들 "효령대군", 세종(4대)의 둘째 딸 정의공주의 남편(세종의 부마) 등 왕실 사람과 275명의 시주자 명단이 복장 유물 속에 적혀 있다
의빈권씨는 딸을 한 명 낳았으나 금성대군(세종의 아들)을 어릴 때부터 아들처럼 보살펴 준 인연으로 단종(6대) 복위 실패로 사약을 받고 죽은 금성대군과 단종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의빈권씨의 주도로 삼존불을 조성하게 된다.
그중 두 협시불은 여러 번의 화재와 이동으로 인해 잃어버리고 본존불만이 남아있다.
1992년 도둑은 복장 유물까지 확인하고 훔쳐 달아나다 인근에서 잡혔다. 이듬해에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되었다. 작은 절 흑석사의 중창으로 인해 1년간 인근 파출소 무기고에 보관하였던 적도 있었다. 1999년에 또 도둑들이 훔쳐 가길래 격투 끝에 지켰다. 이후 고난이 끊이지 않게 되자 복장 유물은 국립대구 박물관에 맡기고, 불상은 특수 유리로 제작한 보관함에 있다.
* 흑석사석조여래좌상(보물)
부근에서 출토한 통일신라시대의 석조여래좌상이다. 불상과 함께 대좌와 광배도 발견되었는데 많이 파손된 상태였다.
* 흑석사 마애삼존불
자연암벽에 본존불과 좌우 협시보살을 새긴 마애삼존불이다. 얼굴과 상반신 일부만 볼 수 있을 뿐이다. 광배와 입술 부분에 채색의 흔적이 남아있다. 비바람을 피하고자 위쪽에는 처마처럼 튀어나오게 하고 몸 전체를 약간의 기울임으로 만들어 놓았다. 조성 시기는 신라말 고려초, 또는 고려 중기 이후로 추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