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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7월 14일 주일
[(녹) 연중 제15주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오늘은 연중 제15주일입니다. 성자께서는 사랑의 신비와 인간의 존엄을 밝혀 주십니다. 우리가 오로지 그리스도께만 매여, 성령으로 가득 차, 믿음과 실천으로 형제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는 굳은 믿음을 청합시다.
말씀의 초대
아모스 예언자는, 주님께서는 양 떼를 몰고 가는 그를 붙잡으시어,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고 하셨다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신다(복음).
제1독서
<가서 내 백성에게 예언하여라.>
▥ 아모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7,12-15
그 무렵 베텔의 사제 12 아마츠야가 아모스에게 말하였다.
“선견자야, 어서 유다 땅으로 달아나, 거기에서나 예언하며 밥을 벌어먹어라.
13 다시는 베텔에서 예언을 하지 마라.
이곳은 임금님의 성소이며 왕국의 성전이다.”
14 그러자 아모스가 아마츠야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15 그런데 주님께서 양 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1,3-14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6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8 하느님께서는 이 은총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베푸셨습니다.
당신의 지혜와 통찰력을 다하시어,
9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선의에 따라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 주셨습니다.
10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12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13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위한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게 되었을 때,
약속된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14 우리가 하느님의 소유로서 속량될 때까지,
이 성령께서 우리가 받을 상속의 보증이 되어 주시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예수님께서 그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7-13
그때에 예수님께서 7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8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9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10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11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2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13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제1독서에서 아모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양 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 돌무화과나무를 가꾼 경험과 기술은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하느님께서 아모스를 예언자로 부르셨다는 사실은, 앞으로 그를 통하여 이루어질 하느님의 일에 관한 모든 능력이 ‘하느님에게서’ 온다는 것을 뜻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무소유’를 요구하신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그러면 부르심을 받은 이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요한 13,16-17)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언제나 주인이나 스승이 되지 않으려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이 마음을 잃어버리게 될 때, 하느님의 일을 하면서도 단죄, 험담, 시기, 질투, 미움, 분노, 용서하지 않는 마음과 같은 잘못된 열매들을 맺게 됩니다.
만일 하느님의 일 때문에 이웃들을 사랑하지 못하고 자꾸 갈등을 겪는다면, ‘누구의 힘’으로 그 일을 하고 있는지 성체 앞에서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방법으로 일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당신 자녀로 부르신 이유를 다음과 같이 알려 줍니다.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말씀이 부르심을 받은 이들 안에서 열매 맺기를 바라십니다.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아멘.(김재덕 베드로 신부)
사장님은 대체 무슨 일을 하신데요?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여름 캠프 온 아이들을 위한 식자재를 구입하기 위해 대형 식자재 마트에 갔습니다. 이것저것 잔뜩 산더미처럼 카트에 싣고 계산대 앞에 서니 근무하시는 자매님께서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묻습니다.
“사장님은 대체 무슨 일을 하신데요?”
그 상황에서 ‘사실 저는 천주교 신부인데요!’ 하기도 거시기 했습니다. 그래서, “작은 식당 하나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작은 식당이 아닌 것 같은데...아무튼 더위에 고생이 많으시네요.” 하십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저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저야 재미있고 기쁜 마음으로 하는 일이지만, 가족들의 생계가 자신의 어깨에 달려있는 자영업자들, 얼마나 마음 고생이 많으실까, 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이냐?”는 마트 직원의 질문 앞에 다시 한번 제 신원, 제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각별히 총애하셔서 이름을 불러주시고, 선택하시고, 복음 선포의 사명을 주셨는데, 그러한 소명에 기쁘게 응답하고 있는지, 마지막까지 충실하고자 애를 쓰는지 크게 반성이 됩니다.
예언자로 산다는 것, 때로 근사하고 멋있어 보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폭군이나 압제자의 잔악한 횡포나 그릇된 지도층 인사들의 타락 앞에서도 그저 숨죽이고 지낼 뿐입니다.
그러나 예언자들 한번 보십시오. 주님으로부터 예언의 사명을 부여받습니다. 두렵고 떨리지만, 주님께서 가라고 하시니 고관대작들 앞으로 나아갑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생각하며, 그의 파렴치한 치부를 아무런 가감없이 고발합니다. 서슬퍼런 예언의 말씀 앞에 왕들조차 고개를 조아립니다.
그러나 그런 순간은 평생 한두번입니다. 나머지 대부분의 생애는 핍박과 돌팔매질과 추방과 놀림의 연속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자신에게 예언자의 소명을 주신 주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도망다니기까지 합니다.
오늘 첫 번째 독서에서 아모스 예언자는 거룩한 주님의 지성소 베텔 땅을 더럽히지 말고 유다 땅으로 가서 예언하며 밥 먹고 살아라, 는 베텔의 사제 아마츠야의 질책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양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아모스 7,14-15)
보십시오. 아모스 예언자는 철두철미한 신원의식, 겸손한 신원의식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는 대단한 예언자로서의 직분을 수행하면서도 자신의 근본, 본래 처지를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원래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본래 양치는 목자요, 돌무화과 나무를 가꾸는 농부였음을 잊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결핍 투성이요 천덕꾸러기였던 원래 나의 허물을 벗고 사목자가 되고 책임자가 되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변합니다. 자신의 근본을 잊고 어깨에 힘이 들어갑니다. 어딜 가면 주인공이 되어야 하고, 누군가 나를 보필해야 합니다. 슬슬 주님께서 혐오하시는 거짓 목자, 삯꾼으로 전락하는 중입니다.
요즘 저는 일부러 이런저런 힘든 일들을 골라 하고 있습니다. 저도 까마득한 시절에는 새벽부터 밤늦도록 산업 현장에서 땀 흘리며 일하던 근로자였습니다. 예언자요 사목자로서 초심을 잃지 않는 비결은 나의 근본, 내 결핍 투성이의 보잘것없던 모습을 잊지 않고 늘 기억하는 것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예전에는 천동설을 이야기했습니다.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움직인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침에는 해가 뜨고, 저녁에는 해가 지는 것을 매일 보았기 때문입니다. 지구가 움직인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면서 ‘지동설’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별의 ‘연주 시차’와 금성의 모양 변화가 그것이었습니다. 별의 연주 시차란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 운동하기 때문에 별을 바라보았을 때, 별의 위치가 상대적으로 바뀌어 보이는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지구가 천동설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가만히 있다면 연주 시차가 나타날 리가 없기 때문에 천동설로는 연주 시차를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금성을 관측하면 달처럼 다양한 모양의 변화가 나타나는데 천동설에 의하면 금성은 초승달 또는 그믐달 모양으로만 보여야 했기 때문에 금성의 위상 변화 역시 천동설로는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지구는 어떻게 움직일까요? 지구는 1시간에 약 1,670km의 속도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회전(자전)하면서, 태양을 둘러싼 대략 9억 6천 만km에 달하는 타원 궤도를 1년 동안 돌고(공전) 있습니다. 지구의 운동으로 생기는 현상 중 대표적인 것은 일주 운동과 계절 변화인데 일주 운동은 지구의 자전에 의해 생기는 현상이며, 계절의 변화는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진 상태로 공전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행성이며, 태양은 우리은하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항성이며, 우리은하는 우주의 변방에서 우주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인식의 변화는 우리의 꿈을 확장시켰습니다. 우리는 달을 탐사하였고, 화성까지 탐사하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이 반드시 진리는 아니라는 것을 천동설과 지동설로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있는 댈러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은 미주 지역에 있는 한인 성당의 중심은 아닙니다. 댈러스 한인 성당은 중남부 지역에 속해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성당은 포트워스 한인 성당입니다. 그리고 대략 4시간 거리에 오스틴, 휴스턴, 샌 안토니오 성당이 있습니다. 그리고 10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에 엘파소, 덴버, 콜로라도 성당이 있습니다. 자동차로 가기에는 먼 거리에 피닉스, 라스베이거스 성당이 있습니다. 이렇게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기에 사제들이 함께 모여서 연대하는 것이 조금 어렵습니다. 중남부 지역 대표 신부님과 휴스턴, 오스틴, 샌 안토니오를 방문했습니다. 저는 꾸르실료 담당 신부를 맡고 있습니다. 레지오, 엠이, 성령기도회도 담당신부님이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거리가 멀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4시간 거리에 있는 성당이라도 함께 하면 좋겠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청년들을 위한 피정도 함께 하면 좋겠고, 성령기도회도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성서말씀은 ‘사명감’을 이야기합니다. 사명감은 목적지와 같습니다. 목적지를 아는 사람은 비록 힘들어도, 고난이 닥쳐도 한걸음, 한걸음 발길을 내딛습니다. 1시간만 더 걸으면 시원한 오아시스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뜨거운 사막의 열기를 참을 수 있습니다. 곧 더위와 갈증을 피할 수 있는 물이 있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아모스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 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양 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 아모스는 그저 가축을 키우는 사람이었지만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제 아모스는 가축을 키우는 목자의 삶을 포기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의 삶을 선택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특별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기쁜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마귀 들린 사람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병자들을 고쳐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길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빵도, 전대의 돈도 포기하라고 하셨습니다. 신발은 신지만 옷도 두벌은 입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여행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성공, 명예, 권력을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세상의 것들을 기꺼이 포기하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선택하였습니다. 박해와 고난이 있었고, 목숨을 바쳤지만 천국에서 빛나는 별이 되었습니다. 내가 선택한 것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지, 나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내가 포기한 것이 나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포기도, 선택도 모두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채비>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마르 6,8-9)
보내지는
나의 길은
보내시는
님의 길이오니
보내지는
나의 채비는
보내시는
님이옵니다
오늘의 성인
성 가밀로 데 렐리스(Camillus de Lellis)
신분 : 신부, 설립자
활동연도 : 1550-1614년
같은이름 : 가밀루스, 까밀로, 까밀루스, 카밀로, 카밀루스
이탈리아 복치아니코에서 출생한 성 카밀루스(또는 가밀로)는 군인으로서 터키인들을 대항한 베네치아(Venezia)를 위하여 전투에 참가하였고, 도박에 빠졌으며, 1574년경에는 무일푼의 신세가 되어 나폴리(Napoli) 거리를 방황하였다. 그는 몸이 건장하고 성미가 급한 사람이라 하는 일마다 뜻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1575년 우연히 설교를 듣고 심경의 변화가 일어나서, 두 번씩이나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려고 노력했으나 일생동안 그를 괴롭힌 다리병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이기는 방법의 하나로 다른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정력을 쏟았으며, 로마(Roma)의 산 자코모 병원에 자원으로 봉사하다가 곧 그 병원의 회계를 맡았다.
이러한 경험은 병원의 놀라운 상황과 제 문제점들에 눈을 뜨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고해신부이던 성 필리푸스 네리우스(Philippus Nerius, 5월 26일)의 권고를 받아들여 1584년에 사제로 서품되었고, 이미 사제와 평수사들로 회를 구성하였던 병자들의 봉사자회(The Camellians)를 세웠다.
그들은 로마의 주요 병원에서 사목하다가 1585년에는 자신들의 병원을 세웠으며, 특히 로마 항의 배들을 통하여 전염되는 흑사병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여 치료하였다. 그는 항상 창문을 열어 놓고, 적당한 음식물을 먹게 하고, 전염병일 경우는 격리하는 방법을 그는 활용하였고, 그의 사제들은 항상 숨을 거두는 환자들 곁에 있었으며, 임종자들의 장례 등에도 큰 관심을 보이게 하여 세인들의 칭송이 높았다.
그러나 그 자신의 건강은 점차 악화되어 도저히 임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자 1607년에 자신의 장상직을 사임하였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늘 환자들을 방문하면서 자신이 죽는 날까지 그렇게 하다가 제노바(Genova)에서 운명하였다.
그는 1742년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이어 1746년 같은 교황으로부터 시성되었다. 또한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하여 천주의 성 요한(Joannes, 3월 8일)과 함께 모든 병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선언되었고, 교황 비오 11세(Pius XI)로부터는 모든 간호사와 간호 단체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성 니고데모 (Nicodemus)
활동년도 : 1748-1809년
신분 : 수사
지역 : 아토스산(Mount Athos)
같은 이름 : 니고데무스, 니꼬데모, 니꼬데무스, 니코데모, 니코데무스
성 니코데무스(또는 니고데모)는 1775년에 아토스 산의 디오니시우에서 수도자가 되었는데, 당대의 최고 저술가로 알려진 분이다. 그는 주로 교회법전, 성인전, 전례, 수덕신비 신학 등에 관한 저서를 남겼다. 그가 그리스어로 쓴 “라우렌티우스 스쿠폴리의 영적 전쟁”은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신 수련”의 모델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가장 유명한 저서는 코린토스(Corinthos)의 성 마카리우스(Macarius)와 공동 편저한 “필로칼리아”인데, 이 책은 1782년에 베네치아(Venezia)에서 출간되었다. 또 그리스 교부들과 수도자들의 저서들을 집대성한 전집도 유명하다.
성녀 토스카나 (Toscana)
활동년도 : +1243년경
신분 : 과부, 수녀
지역 : 베로나(Verona)
같은 이름 : 또스까나
이탈리아의 베로나 근방 제비오(Zevio)에서 태어난 성녀 토스카나는 베로나 출신의 알베르트 카노쿨리(Albert Canoculi)와 결혼하여 남편과 함께 가난한 이들을 돕는데 힘을 쏟았다. 남편과 사별한 후에 성녀 토스카나는 자신이 소유한 모든 재산을 처분한 후 예루살렘의 성 요한 수녀회에 들어가 수녀가 되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기도와 환자를 돌보는 일에 헌신하며 여생을 보냈다.
성 프로코피오 (Procopius)
활동년도 : 980-1053년
신분 : 수도원장
지역 : 사자바(Sazaba)
같은 이름 : 프로꼬삐오, 프로꼬삐우스, 프로코피우스
체코 서부 보헤미아(Bohemia)의 그리스도교 가정에서 태어난 성 프로코피우스(또는 프로코피오)는 프라하(Prague)에서 공부하여 1003년에 동방교회의 사제품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은수생활을 더 원하여 프라하의 사자바 계곡에 있는 성 바실리우스(Basilius) 수도원에서 지냈는데, 그의 덕이 너무나 출중하여 이미 살아있는 성인으로 공경을 받았다. 그는 한 백작의 후원으로 사자바에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와 성 바실리우스의 수도규칙을 따르는 동방전례의 수도원을 설립하여 초대원장으로서 여생을 바쳤다. 그는 1053년 3월 25일 수도원에서 선종하였다. 그는 체코슬로바키아(Czechoslovakia,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 두 개의 나라로 갈라졌음)의 수호성인이며, 1204년에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Innocentius 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의 축일은 이전에는 7월 4일에 기념하였다.
복자 흐로즈나타 (Hroznata)
활동년도 : 1160-1217년
신분 : 순교자
지역 : 보헤미아(Bohemia)
같은 이름 : 흐로즈나따
흐로즈나타는 보헤미아의 오토카르 1세 궁중의 귀족으로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즐기며 살았다. 그러나 그의 아들이 병들어 죽고, 그 얼마 후 그의 어머니마저 사망하자 그는 이 모든 것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여 궁중을 떠나 십자군이 되기로 서약하고 성지로 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주님의 뜻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욕망이라고 단정하여 십자군 되기를 포기하고, 교황 코일레스티누스(Coelestinus III)의 도움을 청하였다. 마침내 그는 서부 바이에른(Bayern)의 테플(Tepl)에 적당한 땅을 구하여 대수도원을 세웠다. 그 후 그는 정체모를 사람들로부터 납치되어 알트-킨스부르크의 어느 지하 감방에 갇혔다가 운명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는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97년에 승인되었다.
복자 보니파시오 (Boniface)
활동년도 : +1270년
신분 : 주교
지역 : 사보이아(Savoia)
같은 이름 : 보니파시우스, 보니파키오, 보니파키우스, 보니파티오, 보니파티우스, 보니페이스
사보이아 공국의 백작 토마스의 아들인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또는 보니파시오)는 젊어서 대 샤르트르회에 들어갔다가 카르투지오 회원이 되었으며, 1234년부터 1241년까지 벨리(Belley) 교구의 관리자로서 봉사하였다. 1241년 그는 잉글랜드(England)의 헨리 3세의 황후가 된 조카의 영향력에 힘입어 캔터베리(Canterbury)의 대주교로 선출되었으나, 1244년까지 자신의 주교좌에 부임하지 않을 정도로 강직하였다. 그는 교구를 개혁하고 과중하게 부과되는 상납금 등을 개혁하려고 시도하여 수많은 반대자들을 만들었다. 그는 국왕이 출타 중일 때에는 헨리 왕의 섭정을 맡았으며, 프랑스에 대한 외교사절직도 수행하곤 하였다. 그는 에드워드 1세와 더불어 십자군을 둘러보러 가는 도중에 사망하였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38년에 승인되었고, 축일도 이전에는 3월 13일에 기념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