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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몽골연구원
 
 
 
카페 게시글
현대 몽골을 논하자 스크랩 2011년 칭기스칸 대학교에 온 한국 동아대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의
simple life 추천 0 조회 156 16.02.16 17:2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몽골, 왜 몽골인가?

- 추운 날씨에 몽골을 찾아 주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 90년 수교 이전과 이후에도 차가운 대륙성 저기압이 몽골 고원에서. 라는 뉴스 멘트가 가장 많이 들은 몽골관련 이야기 였습니다. 최근에는 황사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있음

- , 누군가는 대륙과 반도로 떨어져 지낸 시간 보다, 과거 대륙의 초원과 흥안령 산맥에서 함께 있던 시간이 더 많았던 나라, 민족 이라고 했습니다.

- 이런 몽골에 대해서 제가 그 동안 보고 느끼고, 찾고, 읽어 보았던 내용들을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 사막을 걷는 법 등으로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강연이나 별보기, 초원, 로맨틱한 유목 등 안내 여행 서적 있는데 저는 그런 감성적 재주가 없어서 딱딱한 내용을 말씀드려야 겠네요

 

1. 몽골 사람들의 이름 부르기

 - 청나라 시대부터 구 소련의 지배를 받던 시기 공식적으로 집안의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음(하지만 정부 문서 보관소에는 족보가 남아 있고 1918년 인구조사를 했기 때문에 관련 기록은 남아 있었음)

 - 공식적으로 집안의 성을 사용하지 못한 것은 공산-사회주의 시대의 첫 위성국가를 장악하기 위한 하나의 방책으로 몽골인들의 연대의식을 약하게 만들려 했던 정책으로 해석하기도 함(뼈대 있는 집안, 없는 집안, 야스 어웍=가문)

 - , 일부 몽골의 가정에서는 근대의 가족사와 한국의 족보 유사한 기록이 남아 있음

 - (어웍) : 씨족 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가문 또는 집안 모두가 사용하는 () (몽골 친구를 만나면 아버지 이름이 아니라 집안의 성을 물어 보며 그 뜻을 파악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될 것)

    -> ) 칭기스칸의 집안 성 버르지긴 , 어러서, 에스드, 바요드

-> Ch.Elbecdorj (차히아깅.엘벡도르찌) : 차히아는 엘벡도르찌의 아버지 이름이며 차히아의 아들이라는 뜻(엘벡도르찌의 성 Хонинх?? нар)

- 또한 울란바타르, 울란바토르, 올란바트라 러시아, 영어, 중국식 발음의 남용, 기존 중국식 표기법의 남용은 서로 잘 알아 가기 위해서는 정확한 이름을 불러 주듯이, 몽골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그들이 원하는 이름 불러, 그리고 새로운 차원에서

 - 3국을 통해 몽골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얻었다면 이제는 대한민국의 눈으로 몽골을 부르고 연구하고 친해져야 할 시기가 아닐까 (우리 눈으로!)

 

2. 몽골은 유목민의 나라인가?(진행형 역사) ? 애매한 부분

 - 몽골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공산 사회주의 국가(1924년 사회주의 정부 수립)되었으며 두 번째로 공산사회주의를 종식시킨 나라로 알려 지고 있음

- 또한 1990년 몽골은 지배하던 인민혁명당이 일당 독재를 공식적으로 포기하고 자유로운 정당 활동이 시작됨. 이후 1996년 국가대회의(국회)에서 민주연합의 승리로 평화적 정권교체- 명실상부

 - 통계 마다 다르긴 하지만 올란바타르의 인구는 몽골 전체 인구 270만명 중 1/3 가량인 90-100만 명으로 추산

 - 몽골 전역에서 전업 유목인구는 10-30만명으로 보고 있어 그 수는 매우 작은 숫자이며 몽골 산업에서 차지하는 목축업의 비율은 매우 작음(비율은 광물업에 밀려나고 있으며, 전업유목민은 하루 종일 차를 달려도 사람이 없는 곳에 거주)

- 북반구에서 유목적 문화가 남아 있는 곳은 주로 ‘?스탄 나라들인데 몽골과 인접한 국가들에서도 전통적인 이동가옥, 유제품, 무속 등이 남아 있음(계절 이동형 목축 생활 양식)

- 참고로, 국경이 생기기 전에 몽골 민족이 살고 있는 곳은 몽골 북쪽의 브리야트 공화국(브리찌야), 카스피해 북서쪽의 할리막 공화국(깔미끼야) 등으로 이들은 광범위하게 활동하던 몽골인들의 과거 활동(아시아 초원을 이동하며 살아 왔던)을 짐작케 하는 살아있는 역사의 한 부분임

-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현대 문화와 어우러진 모습, 문화적으로 또 원형적 모습이 남아 있는 곳은, 홍보되고 있는 곳. 몽골이며 자연적, 문화적, 기후 환경적 요인이 초원의 이미지에 부합한 실정(스탄 산악)

- 3일 체험(엠비씨), 연예인들이 나와서 하는 봉사와 체험 등으로 아름답게 사는 곳으로 보이지만 실제 환경은 그리 녹녹하지 않습니다. 저도 여행을 많이 다녀 보았는데 농경이 아닌 유목이 얼마나 힘들고 또 때로는 대단해 보이는지

- 겨울에도 말에서 내리지 않고 눈을 맞으면서도 양, 염소, 말 등을 지킵?.

- 시골에서의 가축과 함께 하는 삶이 어려워지고 있어 유목을 포기하기도 하는데 2차산업으로 전환 내수시장과 제조업이 발달도어 있지 않아 직업 이동시 선택의 폭이 적어 실업이 증가하고 삶의 질은 떨어지고 있는 실정(지하에 사는 아이들, 게르촌의 빈민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알코올과 담배)

 - 지방정부는 자체적으로 관광사업 및 가내 수공업으로 제조업을 일으키려 하지만 교통과 수송 인프라의 미비, 판매 유통의 부족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음. 단순한 지방 정부의 문제만은 아닐 것

- 최근의 몽골, 특히 올란바타르를 중심으로 인구유입으로 빠르게 도시화 되고 있어 각종 사회문제가 커지고 있음. (올란바타르 는 60-70년대 개발 당시 소련 지방도시를 모델로 30-50만의 인구를 계획하고 시작되었음)

- 사회적으로는 급속한 외화 유입으로 인플레이션 증가 하고 있으며 광물개발과 무역으로 빠르게 부를 축적한 사람과 악천후와 기후변화로 목초지와 가축을 잃은 농촌(목축) 지역의 사람들이 반경 10킬로 이내의 같은 공간에서 마주보고 살고 있음, 빈부격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제가 몽골 자동차 신기한 것 1억원 이상을 호가하는 랜드로버, 세계에서 허머 가 가장 많은 곳? 이라크 다음으로 몽골) (과시, 물질만능 등 전환 및 개발 도상 국가의 특징이라고 분석)

- 올란바타르 주변, 특히 남쪽과 북쪽의 게르 촌(난방관이 들어오지 않는 지역)에서 나무, 생석탄, 폐타이어 등을 난로에 직접 때어 난방과 식사를 해결함. 열효율이 좋지 않음 이로 인한 대기 오염은 세계 제 2위의 오염도시라는 칭호를 안겨 주었음(Land of Blue Sky 라는 구호가 무색해져 버렸음)

 

흐름을 이해하시라고 흐림이 오늘날의 몽골에 어떻게 보여지는지?? (15분 정도 소요)

 

3. 오늘의 몽골(사회 정치 경제)

 - 의회주의 정치와 대통령제 혼합, 민주공화제이며 총리와 대통령의 권한이 분리되어 국정운영은 총리가 대통령은 국방과 외교를 담당

 - 국회는 단원제이며 국회의원 76(대부분이 러시아 등 유학파=몽골 정책결정에 있어 많은 영향력+보이지 않는 입김으로 작용 충분히 미루어 짐작 가능, 대기업 총수 겸업, 몽골의 총리는 알타이그룹 칭기스칸 호텔 등을 소유, 이명박 대통령 방몽시 사용했던 마이바흐는 교통도시건설계획부 장관의 개인차량) 이것은 몽골을 흉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 정치과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기 때문에 알려 드리는 것입니다. (정한 겁니다. 흉보는 것 아닙니다.)

 - 인민당과 민주당의 양당이 경쟁하며 때로는 정치적 분란도 겪고 있으나 연립내각 구성 등으로 통한 통합의 정치도 보여주고 있음

 - 2008년 7월 1에는 그 해 6월에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 결과에 대한 불만으로 야당 지지 시민들이 시내 중심가 당시 여당인 인민혁명당사에 몰려가 시위를 벌이다 과격해진 상태로 당사에 불을 질러 전소 시킨 폭동 이 발생(7명 사망) 몽골 800년 만에 단 1회가 있음을 볼 때 불안의 요소는 잠재되어 있음

  - 참고로, 역사적으로 칭기스칸, 독립운동, 90년대 민주화 운동 등 구심점이 생기면 단발에 폭발하는 파급력의 한 단면이라는 분석도 있었으나 정치적 불만 세력+도시화의 불만세력이 동조한 무질서+무법적 행동이었다는 평이 지배

 - 몽골은 한반도의 14배로 21개의 행정구역(아이막 -> -> -> 허러) 이 있습니다. 사실상 도시는 하나, 지방의 인구는 매우 희박, 고요한 화성?? 외계행성??? 올란바타르 다음으로 큰 도시는 다르항과 에르데네트가 있음(인구 10만 내외로 한국과 비교하면 도시는 작지만 면적은 큼)

- 왜 행정구역에 대해서 갑자기 말씀 드리냐먼. 몽골의 현재 사정과 앞으로의 모습(?)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 포항제철 회사가 들어선 포항과 광양의 도시 수준이 여타 지역에 비해 빠르게 발달하였듯이 1970년대 중반부터 개발된 에르데네트는 몽골의 포항제철 도시라고 할 만큼 구리+몰리브덴 광산으로 개발되었음(러시아와 공동지분으로 얼마전 까지 단일광구에서 채굴되는 생산물로 몽골 국가 총생산의 30-40%를 차지하고 있었음)

- 사람들의 소득이 비교적 높으며 한 회사에서 근무, 복지, 여가, 주거를 책임지며 그렇게 도시가 성장해 왔음

 - 어오톨고이, 타왕톨고이 등 대규모 광산이 몽골 남부지역에서 개발되고 있으며 주변 기반 시설도 함께 개발되고 있는데 이러한 광물의 도시들이 향후 몽골국의 경제를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예상(광산의 배후 도시에서 가족의 주거, 교육, 여가 등의 시설이 들어서고 교통과 운송의 인프라가 사막 한가운데에 형성되고 있음)

- 이러한 전략광산을 통한 몽골의 국가 발전이 기대되고 있고 향후 30년 가량은 채굴이 가능하기 때문에 몽골은 지하자원 개발로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임

- (지도 준비)또한 한국인의 로망스 처럼 들리는 광활한 만주 벌판에 버금가는 동몽골 평원이 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곳은 한국+몽골 정부의 공동으로 대규모 영농단지를 조성 중이고 이곳은 한반도와 지리적으로 가까이 있어 정치 경제와 국제관계에서도 중요한 전략적 지역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가봤기 때문에 느끼는 것도 남다름, 몽골을 방문하는 계층이 봉사와 학습 연구 등으로 많은데 젊은 학생들이 온다면 다음기회에는 프로그램의 하나로, 올란바타르 주변만 말타고 꽃보듯 다는 것이 아니라 광활한 대륙 동몽골 초원을 보면서 새로운 꿈을 키우는 이른바 대륙 수학여행 을 제안하고 싶다.-그리 어렵지 않음 )

 - , 다시 본론으로/혹자는 이곳에 새로운 도시를, 영농단지를, 식량 생산 농토를, 건설하고자 하고 어떤 이는 이것도 부동산사업이라고 생각하여 먼저 개발하여 나중에 나누어 팔려는 계획도 한답니다.(몽골은 토지는 국가 소요, 토지 사용권만 개인이 받음)

- 몽골은 전반적으로 성장시장이라고 생각. 몽골의 경제적 부분의 성장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사업을 일으키기 좋은 환경, 미지의 개척지, 가 될 수 있을 것임. 하지만 역시 기회와 불안이 공존하는 땅. 이란 사실은 명심. (의류 유통, 식품 등등에서 소규모로 시작하신 분들도 있다.) 중국시장 장사꾼이 있어 어려움이 있으며.

- 경제 발전과정 중 특이한 점이 하나 있는데, 이것은 몽골의 미래에 관계된 것으로

- 외부에서 들어오는 생산물 및 자원개발로 인해 국내 경제가 마비 침체되어 버리는 네덜란드 병이 있다고 하는데 이러한 우려도 있어 이를 위한 몽골인들의 지혜와 외부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됨 몽골 불안한 땅과 기회의 땅이라고 이유는 이러한 것임

- 기회와 불안은 또 다른 모습으로 공존하고 있다. 올란바타르 시내 중심가, UB 호텔에는 레닌의 동상이 남아 있음. 그곳에서 100미터 떨어진 곳에는 루이비통과 아르마니, 버버리 매장이 있는 명품관이 들어서 있음(레닌의 외할머니는 몽골계?)

- 개방, 개혁 20년이 되었지만 공산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사람의 동상이 남아 있고 또 그와 동시에 자본주의(계급?) 의 최상위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명품매장 등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몽골의 사회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음(스탈린의 동상은 국립 도서관에 있었으나 90년 철거되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나이트클럽에 팔려 갔음)

- 최근에는 몽골의 경제 발전, 20%에 육박하고 있지만 인플레이션도 심각한데, 이러한 과도기적 성격이 몽골의 현재 모습이며 몽골사람들의 심리적인 면에도 현대와 과거, 공산과 자본주의, 개인주의+공동체 연대의식 등이 혼란하게 뒤섞여 있음 (복잡한 길에 한국식 수신호 등)

- 또 한국사람의 경우, 몽골에서 자원개발(금광 및 석탄 운송), 각종 자영 사업 운영 등을 위해 몽골에 진출하는 한국인들도 있으며, 대기업은 삼성, 현대, 엘지상사 등이 사무실을 운영중

- 한국 식당은 60여개가 한국인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몇 년전 통계가 있으나 지금은 100여개 이상으로 몽골인들이 한국음식을 만들어 팔고 한국식당을 운영하는 실정임(한국 식당의 가격은 한국과 똑 같음. 제육, 김치찌개, 감자탕 ? 최근에는 닭요리도)

- 최근에는 다문화가정 이라고 하여 몽골인과 결혼하여 또 다른 기회를 찾아 몽골로 이주한 젊은 인구의 수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일부- 생각이 있으시면 이번 기회에 인연을 만드시고)

 

4. 한국과 몽골(두 개의 설렁거스)

 - 1920년대 3000여명의 러시아에 거주 한국인들이 몽골 국적 취득하여 농장을 일구고 살겠다는 청원을 했음, 또한 한국인이 몽골에 불법+합법으로 입국하여 몽골 사람들과 가정을 꾸리고 살다 문제가 생겨 남긴 법무+경찰 쪽의 서류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일본 침략기 이후 한반도를 등진 Korean 이 만주와 러시아를 거쳐 몽골에 정착한 사례도 있을 것으로 추측됨(실재로 한국인 조상이 있는 몽골사람을 만나기도 하나 그들은 마음의 문을 닿고 할아버지적 이야기를 하기 원하지 않음 이상함)

 - 태준 의사의 활동과 독립운동 : 몽골 1900 부터 50년까지는 우리의 독립운동과 인식에 남아 있던 땅이며 윤봉길의 폭탄 투척할 수 있던 것도 폭탄 제조기술을 몽골에 있던 이태준과 그의 운전사였던 헝가리 기술자에게서 받은 것 이라함(몽골은 한국과 그리 멀지 않은 개념이었음. (이태준 의사가 죽게된 사실? ? 일본 첩보부대의 영향)

- 지금의 북한땅에서 몽골과의 거리(내몽골 포함)하면 굉장히 가까움(걸어가도 됨) 산맥 은 뾰족한 산맥이 아니라 나중에 보실 몽골의 구릉성 산지(?) 동글동글, 차와 말이 쉽게 지나가는 고지대의 연속임

- 몽골을 거쳐간 독립운동가 : 여운형, 나용균 1921, 몽골 정치인들과 교류 (북한 사회+공산주의 김책 등)

-6.25전쟁의 원조 : 북한에 가죽, , 고기 제공

- 전쟁고아 양육 : 몽골은 2차 세계대전 전승국으로 자이승 전망대(전승기념탑)에서 오늘쪽으로 위치, 200여명 키웠고 일부는 생존해 있음

- 두 개의 한국, 최근의 사건들 : 1500명 이상의 북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곳(한국인은 3000명 내외) 으로 종종 만날 수 있음

- 연평해전 당시 몽골의 한교수는 서해바다는 몽골의 유통선의 핵심이라고 이곳이 봉쇄되는 한반도 유사 사태에 몽골의 경제도 좋을 수 없다고 분석=> 경제적

- 몽골의 중립적 위치와 중립을 지키는 정책으로 등거리 외교를 구사, 혹자는 통일이 몽골에 이익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함-북한의 값싼 인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한국에 체류하는 35천명 가량의 몽골인은 일자리를 잃음(하지만 그때쯤은 몽골이 더 이상 인력 수출을 하지 않을 수도 있음)

 

5. 몽골은 한국과 형제국 인가?(칭기스칸의 제국과 이웃국가)

 - 몽골거리에 나가다 보면 닮은 사람이 보이기는 하나 학자들에 의하면 청동기 시대에 유전적으로 분리되었음, 얼굴이 닮은 것? (고려시대? 청나라? 병자호란 당시 몽골군에 편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닮은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

 -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는 것보다 지금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앞으로의 정상적 이웃국가 몽골과 한국의 관계를 그려 보고 있음

- 한국에 거주하는 몽골인들(3만명) 그리고 다문화 가정들이 또 다른 한국과 몽골의 미래 모습 10년 후면 더욱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한국사람들이 더욱 몽골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이것임!!!!)

 - 한민족의 기원이 훌룬 부이르 호수, 고구려는 몽골인의 선조이자 뿌리, 한국을 설렁거스라고 부르는 나라는 몽골 뿐임 : 이유는 다양함. 순록을 키우며 북방에 사는 에벤키 족을 솔론 족으로 부른 것이 있는데 이것이 최근 가장 유력한 학설인 듯. 몽골이 보기엔 옆에서 살던 부족으로 점점 동쪽으로 또 남쪽으로 이동해 갔고 일부는 더욱 내려가 나라를 만들었음. 한민족과 가까운 만주족 북방에서 설렁구릉=고려 이렇게 불렀다고 함

-  형제 국가보다는 이웃국가, 수교 이수 누적 30만명 왕래(몽골 인구의 10%, 현재 한국에 4만명으로 몽골 전체 인구의 1%라는 어마어마한 숫자가 한국에 살고 있음. 이것은 양국이 공통으로 관심을 갖고 해결할 일과 또 진행시켜야 할 좋은 일이 많다는 환경임

- 특히 한국의 경우 동북아 안정과 통일과 통일 이후 한민족의 설 자리를 위해 주변국들의 관심과 힘이 필요함

-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과 몽골은 분명 뿌리가 같다고 본다. 하지만 지금은 두 나라다 라는 사실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이것이 이곳에 살고 생각하고 있는 저의 조그만 감성이다.  하지만 이웃 국가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함. (막연한 뿌리의식 동질감의 형제적 감성이 아니라 친한 외국이라는 감성을 가지자, 한번도 우리는 이웃 국가가 없었다. )

- 국제관계는 냉정한 것이다. 개인간에 친구는 가능하다. 하지만 많은 친구들을 사귀시기 바란다.

- 끝으로 몽골 사람들 중에 한국인들과 교분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이면 형-동생(아흐-)로 부르는 것을 선호한다. 여자의 경우 에그치-두로 부른다. 형동생 이란 명확한 명칭으로 부르는 한국과 몽골, 000 아하(000),

- 이렇게, 분명 한국과 몽골은 서로를 형과 동생, 언니, 누나, 란 칭호로 부를 수 있는 유일한 민족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게 꼭 필요한 이웃 국가가 되기를 희망한다는 개인적 염원을끝으로 말씀 드린다. 몽골에서 좋은 시간 좋은 추억 많이 만들고?

열린 미래, 꿈이 있는 미래

많은 관심으로 삶의 영역을, 인생의 더듬이를 확장하시기 바랍니다.

 

발표자

 (몽골 국립대학교 대학원),

오늘의 몽골 편저, 20세기 한국-몽골 관계사 번역, 면세품도 판매하고 있는데 공항에 나가면 몽골의 역사 라는 책자가 있다. 그것을 제가 번역했다. ㅎㅎ

이메일 :

열린 미래, 꿈이 있는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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