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9월 21일 방송 통신대학교 대전 충남 지역 국어 국문학과 학우들께 바치는 승정원일기!
일단 뜨겁게 쓰고 천천히 식으면서 단단해지는 용암처럼 퇴고는 살면서 하겠습니다! 영상이나 사진이 감히 담을 수 없는 감정들을 잘 담근 김치 맛의 핵심인 풀쑤듯이 글로써 풀겠습니다. 국문 학도로서 진실과 사실만을 기록할 것을 "중세국어의 이해" 교과서에 손을 얹고 맹세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해냈다. 10시간의 수업이었다. 마라톤 세계신기록 2시간 00분 35초(켈빈 킵툼,케냐)를 다섯 번이나 달린 시간이었다. 나름 미라클 모닝으로 새벽 5시에 자는 내겐 혹독한 태초의 시간이었다. 한치의 틈도 허락하지 않는 전사처럼 온전한 하루를 살아냈다. 흑과 백의 시간만을 견디다 무지갯빛 하루를 보냈다.
첫 스타트부터 우린 극한의 감수성으로 통했다. 비 내리는 토요일, 억 겹의 새벽비를 뚫고 우리의 박정순 대표가 나타났다.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아이의 주먹만 한 찰밥을 송편처럼 하나씩 하나씩 빚어왔다. 보석을 품은 청금석처럼 콩알이 송송 박혀있었다.
이미 메뉴를 알아버린 나는, 어젯밤부터 금식을 했고 어쩌면 수업은 잿밥만 생각하느라 염불을 잊은 중처럼 끝이 난 것일지도 몰랐다. 우리들의 대표는 온전히 오늘 하루를 우리를 섬기기 위해 나타난 장화 신은 고양이였다.
" 넵, 카라 바스 후작님!"
1교시 오전 9시: 한국 근현대문학사, 이한빛 교수님
푸른빛 호피 무늬 원피스를 입은 젊고 흰 피부의 야리야리한 여교수님이었다. 알퐁스 도데의 "별"에 나오는 또랑또랑한 꼬마 "미아로"의 목소리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강단 있고 힘 있는 여교수의 지식은 수업을 빛나게 했다. 그녀에겐 영민하고 상냥함이 묻어있었다.
조선의 슬픈 문학사를 술술 풀어갔다. 수업은 하나의 스토리텔링이었다. 시대를 잘못 만난 천재들의 친일 활동을 어쩔 수 없이 알고도 그들의 업적을 받아들여야 했다. 험난한 시대의 고통은 우리 문학사에 그대로 남아있으며 시대가 사람을 얼마나 치졸하게 만드는지도 알았다. 시대는 천재들을 괴물로 만들기도 한다. 조선의 아픔은 그들에게 영원한 낙인을 찍어 주었다. 난 그 아픔을 잘 알고 있다.
1910년은 거부의 아들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라고 배운 최남선과 무속인 집안의 고아 이광수의 이인 시대였다. 태초에 깨우침을 타고난 자가 있다. 춘원이 그러했다. 잘생긴 얼굴과 위대한 지성 속에 가려진 반민족적 행위에도 위대한 문학사에 미친 그의 영향은 받아들임이다.
그는 천재 중의 천재였다. 명문장 기미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초이(Choi) 남선과 더불어 둘 다 일본 유학파 출신이었다. 서구 근대적 장르에 대한 이론을 수립했다. 민중과 사회를 계몽하자는 취지는 같았다. 동인지와 순수 문예지를 창간했다.
1920년대는 근대 문학의 출발이 시작된다. 사회주의 문학이 나타나 센티멘털리즘이나 병적 낭만주의를 공격했다.
카프의 설립 프로문학의 등장하기 시작했다.
1930대 중후반, 일제 탄압과 예술의 시련기이다.
1940년대 문학 민족의 암흑기
1950년대 문학 전쟁과 복구 시대
이데올로기에 대한 무관심을 드러내는 소설들
실존주의 부정적 현실 인식 허무 우울
손창섭 비 오는 날 기타 등등...
1960년대 문학 전쟁과 복구 시민주체 혁명 세대의 감수성과 주체의 발견, 김현, 김승옥 산문시대가 도래했다.
4.19시민 혁명과 정치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운 문학사의 현실이 참담했다.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의 시작이었다. 우린 또 어떤 시대를 살아가야 할까? 문학사는 그 시대를 벗어나야 알 수 있는 것이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점심시간이다!
"오로지 이 순간을 위해 달려왔노라!"라고 외치는 올림픽 선수처럼 마성의 반찬을 향해 돌진했다. 수업이고 뭐고 아무 생각 안 났다. 수프리모 믹스 커피와 귀한 감귤의 만남도 잊을 수 없다. 인이 배겨서 맥심만 드신다는 송재원 남자 학우님 때문에 이팝나무 꽃처럼 빵 터졌다.
1. 다섯 가지 반찬: 박인선
2. 접시(50개), 종이컵(The H, 디에이치), 이름표:정온
3. 믹스커피, 음료:강경숙 후원, 최현숙 준비
4. 귤: 김광수
5. 물: 송재원
6. 주전부리 꾸러미: 권은영
7. 찰밥, 드립 커피, 나무젓가락, 휴지: 박정순
8. 밥: 최현숙
난 "별다쓰(별걸 다 쓰는 여자)"이다. 별걸 다 기록하는 여자로 남고 싶어서 서둘러 쓰는 글이다.
2교시 고소설론과 작가, 조한서 교수님
맨 앞자리에 앉았다. 젊다 못해 어린 여교수님은 치아교정을 해서 발음이 계속 새어나갔고 마이크를 잡은 손은 가늘게 떨고 있었다. 흔들리는 숨소리부터 완벽하고 싶은 욕망에 불안한 눈동자와 모차렐라 치즈처럼 쭈욱 쭉 늘어나는 교정 밴드까지 자세하게 보았다. 경상도 사투리와 섞인 사근한 말투는 졸음을 불러왔다. 하필 뷔페식으로 나와 맛있게 세 번이나 먹은 과한 식사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음엔 악몽을 쫓는 드림캐처라도 준비해 가야겠다.
<15C 김시습과 계유정난>
오늘의 수업은 세기의 천재들의 향연이었다. 한때 잡것들의 이야기였던 소설을 천재 김시습은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난 전기소설(傳記小說)이 좋다. 아득한 시간 너머 살아온 자들이 과학의 경계로부터 벗어나 상상력을 동원하게 만든 이야기이다. 꿈이고 환상이다.
김시습의 금오신화를 나만의 방식으로 외웠다. "용남이(오래전 나를 좋아했던?)가 만취( 용궁부연록, 남염부주지,이생 규장전, 만복사저포기,취유부벽정기)했다."로 기억하면 된다. 꿀 팁(용남이 만취)
졸음이 한낮의 태양을 조우하러 나온 사발 이처럼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두 번째 시간부터 돌아가면서 읽기를 시키셨다. 많은 입술들 중 용기를 낸 유경주 학우님의 목소리는 구월의 꽃, 쑥부쟁이 향이 났다. 책속에 매여있던 매월당의 시가 소리로 화하는 순간이었다. 글로서 그의 사람됨과 학문적인 소양을 엿볼 수 있었다. 불교에 관한 종교관도 절대적으로 좋음과 나쁨이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수많은 지식인들이 향하는 학문의 끝은 종국에는 결론이 없는 종교이다.
해 아래 새것은 없나니(전도서 1;9절), 그의 글조차도 기존에 떠돌던 이야기를 모은 것이었다. 소설과 설화의 중간인 패설 문학을 가져와 소설에 담았다. 이전 한문학의 전통을 지키면서 시를 곳곳에 배치했다. 전통의 기반 위에 새롭게 형성된 전기 문학이다. 세월이 끝없이 흘러도 신비로운 전기 문학이 좋다.
<16C 허균과 임진왜란>
천재 허균이 드디어 등장했다. 천지 간의 괴물이라 불렸던 나의 사랑, 교산(蛟山)의 문학 본질은 바로 정(情)이다. 시름, 분노, 슬픔의 글은 지금 읽어도 심장이 후덜덜하게 떨린다!
은하수는 서쪽으로 기울고
달빛은 희미하여
시름을 돕는지라
교산 허균
사실적 묘사의 탁월함, 그는 역시 파격적이다. 관습과 예의범절을 타파한다. 감정의 파괴력이 막강하다. 마치 메이드 복장을 하고 있는 남자 아이돌 같다. 아님 전라로 앞치마만 두르고 시중드는 꽃미남의 저돌적인 분위기의 글이다.
소설의 필수 요소이다. 가르치는 자는 반드시 배우는 자의 입장에 서야 한다. 시와 소설은 감정이 중심이어야 한다. 문학은 시련의 체험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인재 등용론도 당시 사회의 관념을 박살 내는 것이었다. 일상어와 당대의 글을 중요시했다. 허균은 불교에 관한 미묘한 애정도 가지고 있었다.
<17C 천재 김만중과 병자호란 >
서포 김만중은 표음문자의 중요성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 사바세계로부터 현실로 끌어온 그의 사상은 표음 문자의 보편성과 실용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서포에게 있어서 문학이란 언어의 질서 속에서 만들어지는 예술 행위였다. 우리나라 말의 가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자였다. 독자 중심의 문학론, 감동의 문학론으로 나아가는 근거를 제시했다.
문학이란 선비, 남녀노소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다. 유교와 불교의 우열 관계를 다시 재검토했다. 절대적인 옳고 그름은 없다는 그의 사상에 절대 공감한다. 구운몽에 나오는 주인공 성진과 소유, 둘 중에 누가 꿈이고 누가 꿈이 아니냐? 불교의 공사상이 나타난다. 나는 없다. 나는 있다가도 다시 없어지기도 한다. 무는 유로 그리고 다시 무로 수렴한다.
<18C 연암 박지원과 실학의 시대>
18세기에는 천재 연암 박지원의 시대였다. 그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사변적 논리체계 속에서 형성된 과학적 사고 보여준다. 기존의 천동설을 뒤집어 생각하는 전환적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호질에 나오는 박지원의 인물성동론은 가히 우리 조선의 갈릴레이이다. 호질(범의 꾸짖음)은 풍자, 역설, 함축의 효과를 제대로 전달한다.
병법에 비유한 글쓰기 방법론((騷亶赤幟引, 소단적치인), 이문우희(광대의 문학론), 모방과 답습 배제(실상의 경험 강자) 옛것에 대한 치밀한 이해(전대의 명문을 치밀하게 학습), 현실주의 문학(조선 한문학의 개별성), 그의 문학론이야말로 극강의 이론이다. 머리통을 흠씬 두드려 맞은듯한 아름다운 무술을 본 느낌이다.
교수님께서 장자의 "호접지몽"을 "호섭지몽"으로 발음하셨다. 오래전, 잊고 있었던 드리마에 나왔던 바보 호섭이의 꿈을 생각했다. 하지만 난 여전히 그녀를 이해하고 존경한다. 우리와 흔쾌히 사진을 찍어 주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겸손했고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다. 그녀는 언젠가 노련하고 재치 있는 교수가 될 것이다.
삶의 열정이 그녀를 성숙하고 거침없는 자로 만들 것이다. 마지막 수업은 다들 사막에서 허덕이는 자들처럼 책상 위에 엎어져 버렸다. 우리를 구원해 줄 자가 다가오니 드디어 3번째 수업 시간이 다가왔다.
아! 나의, 우리의 이호권 교수님!!!!!!!
수업은 한바탕 뜨거운 공연이었다. 대한민국의 최고의 "나랏말쌈" 퍼포먼스였다.
3교시 중세국어의 이해, 이호권 교수님
아마도 오늘 마지막 시간이 이호권 교수님의 강연이 아니었다면 데치고 볶고 삶겨진 시금치처럼 다 시들어 버린 듯한 하루였을지도 모른다. 인도에서 코브라 조련사가 마지막 단지에서 보여준 킹코브라처럼 제왕은 마지막에 나온다. 힘든 삶에 하루쯤은 하루 종일 웃게 만들어주는 존재론을 주장한 사르트르 같은 마성의 남자가 나타났다. 초면부터 "내촉은 통하였노라"였다.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교수님은 멋진 남자, 다음 생엔 "내 꺼, 내 꺼!"하고 외치고 싶은 아프리칸 어메리칸( Black American, African-American)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보다 더 쎅쉬하게 석삼(three)을 "뜨리"라고 발음했다. 대담하고도 서슴없이 지르는 소리였다. 초면에 교수님께서는 스스로 한 몸 바쳐 속살을 깊이 보여 주셨다. 그토록 찰진 발음과 현란한 혀놀림의 신기술은 처음이었다. SNL 동엽 신(신동엽)을 오늘 바로 버렸다.
이번 주 내내 아니 이 달 내내 "버내너(banana)"와 "뜨리(three)" 때문에 정신병원에서 조현병 진단이 가능할 것 같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무수한 외국인을 만났어도 그토록 느끼한 발음은 듣지 못했다. 폰테라 앵커 버터를 한통 퍼먹은 느낌이었다. 수업은 인류 문명이 아무리 발전한다 하더라도 단연코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이어야 한다. 니글니글하고 느끼한 기분을 오래도록 붙잡아 두고 싶다.
1459년(세조 5년)에 간행된 《훈민정음언해》 출처 / 나무위키, 세종대왕께서는 이 책을 알지 못한다. 왕은 살아서 자신의 이름도, 위대한 세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도.. 모른다. 난 이 말이 너무 슬프다. 사람은 가도 글은 남는다!
15세기엔 조선인들의 발음도 어쩌면 그러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다음 주까지는 완벽한 혀놀림이 계속 생각날 것 같다. 위대한 세종대왕이 자신이 만든 한글에 특허를 내셨더라면 아마도 영겁을 자자손손 누리고 사셨을 것이다.
나의 교수님 우리들의 교수님, 이호권 교수님께서는 수업은 확률의 게임이라고 하셨다.
기말고사는 3번이나 4번이 답일 확률이 높다는 꿀팁도 주셨다. 온라인 강의랑 출석 수업, 과제물 제출하고 시험은 찍어도 절대로 과락하거나 F학점이 나올 일은 없다고 하셨다. 난 이미 알고 있다. 내 경험에서 얻은 법칙이었다. 멜로드라마 보듯이 점수에 집착을 버리고 공부에 전념하라.(사실 이게 더 어렵다.) 교수님께서 걱정 안 하셔도 될 만큼 난 이미 점수로부터 자유로운 자였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점수는 이미 나와 오래전 결별한 잊힌 애증의 연인 같은 사이이다.
쓰다(글자를 쓰다)와 브스다(오늘 배우신 분들은 알 것이다. 나의 자판으로는 이 아름다운 고어를 이렇게 밖에 나타낼 수가 없다. ㅂ, ㅅ이 나란히 붙어있다. 이용하다, 사용하다)를 적확하게 사용하는 법도 오늘 배웠다. 오늘 하루, 이 글을 브슴으로 난 하루의 이용 가치를 가진 자이다. 말은 변한다. 중세국어공부 수업 중 얼마나 웃었는지, 꼬꼬마 시절 아무 할머니 몰래 여기저기 화로에 묻어둔 배가르지 않은 밤처럼 팡팡 터져 나왔다. 세종께서 작금의 현실을 보시고 당신께서 맹갈은 한글이 SNL보다 더 재미있는 학문이란 걸 아신다면 어떤 기분이 드실까?
위대한 언어학자 세종의 길을 밟아보다.
말리거나 말리(서아프리카의 국가)로 내쫓아 버리고 싶은 학자, 만리 말리, 최만리도 여러 번 등장했다. 그는 위대한 학자일지는 몰라도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했다. 오백 년째 욕먹고 있다. 그가 집요하게 상소를 올려 괴롭힌 세종은 글자 하나하나마다 혼을 담았다.
언어는 신생 성장 소멸한다. 그것이 우리가 중세국어를 배우는 이유이다. 많은 사람들이 쓰는 말만이 살아난다. 내 또래의 15세기 아줌마를 만난다면 서로의 언어가 달라 아마도 우린 아무 말도 못 할지도 모른다. 시대는 그렇게 같은 하늘 아래 다른 입술을 기른다. 그래도 뜨겁게 보고는 싶다. 어쩌면 서동요나 아리랑은 통할지도 모른다는 요동치는 꿈 하나는 내 안에 길러보고 싶다.
모든 수업을 다 마치고 돌아오는 길, 먼 길을 데리러 온 세포 하나하나까지 이과 남자인 남편에게 물었다.
"삶의 답지는 어디에 있을까?"
"찾아서 뭐해? 점수 안 매기면 돼!"
정답이었다. 점수는 중요하지 않다.
우린 국문학도이다. 점수는 그냥 덤이다. 집에 오자마자 짐을 풀고 50개의 접시를 빙글빙글 돌려 닦으면서 학우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떠올렸다. 내가 손으로 쓴 이름표를 좋아했던 편입생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 점수 잘 받으려고 공부하지 말라."는 이호권 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이제 난 히나의 벽을 부순다. 멜로드라마 보듯이 즐기면서 가는 인생, 정답지가 필요 없어졌다. 내년, 이호권 교수님의 강의 시간이 오면 남편도 끌고 가 도강이라도 시키고 싶다.
아니 어쩌면 그도 국문과에 편입할 수도 있다. 그리고 꼭 교수님께 식사를 대접하고 대전역까지 모셔다드리고 싶다. 아니, 서울까지 단숨에 갈지도 모른다. 기약할 수 없는 아슬아슬한 삶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사실 과제인 "훈민정음언해"를 틀리지 않고 쓸 수 있을지 걱정은 된다. 베끼는 것조차 못하는 똥 멍청이(어린 백셩)로 남고 싶지 않다는 욕심은 든다.
채찍 하나만으로 모든 상인들을 내쫓은 근육질의 예수처럼 교수님의 말씀에 졸음과 피로가 달아났다. 거대한 호랑이를 순한 고양이로 바꾼 조련사의 노련함을 배운 하루였다. 내가 오늘 이 순간 가장 원했던 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학 공식"오일러 항등식"이 아니라 국문과 교수님의 열정이었다.
오늘 함께 함으로 추억의 보석을 공유한 모든 학우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록을 올린다.
https://youtu.be/9-j__iEwP4w?si=tffNR9thiXqJdK1p
나를 위한 치유의 글, 이 글을 읽는 내내, 당신도 행복하길 바라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