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앞둔 4~50대 찾는 '세컨드 하우스'
도시인들이 휴가나 주말을 보내는 세컨드 하우스(Second house)가 작아지고 있다.
본가(本家) 이외의 안식용 주택인 별장 이야기다.
도회지 주택시장에서 중소형 아파트가 인기를 끌듯이 교외 세컨드 하우스 시장에서도 100㎡(30평) 이하의 주택 수요가 늘고 있다. 2억~3억원의 여윳돈으로 교외에 제2의 집을 마련하려는 중산층이 늘기 때문이다. 퇴직 등 은퇴 전후의 50~60대 계층뿐 아니라 일상에 지친 30~40대 직장인들이 도심을 벗어나 출퇴근 가능한 곳으로 집을 옮기는 경우도 적잖다.
올해부터 초·중·고교 주 5일제 수업이 전면 시행된 것도 세컨드 하우스 수요에 불을 댕겼다.
국내에서 전원주택 붐이 일기 시작한 2000년대 초만 해도 별장이라면 132㎡(40평) 이상으로 큼직큼직했다. 집의 규모만 바뀐 게 아니다. 서울에서 2~3시간 거리의 동해·서해안이나 강원·충청도까지 갔지만 요즘은 경기도의 양평·용인·여주·이천·광주 등 서울에서 1시간 이내 지역이 대세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활발한 양평·용인 두 지역을 찾아 봤다.
남한강 낀 양평·여주, 청정지역
7일 오전, 서울시청 부근에서 승용차로 1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 항금리. 농가가 모인 촌락에서 좁은 산길을 따라 500m가량 올라가자 유럽식 목조주택과 빨간 벽돌주택, 황토벽 주택 등 1, 2층 단독주택 30여 채가 옹기종기 모인 전원주택단지 ‘미산마을’이 나타났다.
때마침 새 집을 추가로 짓고 있는 박문규 미산건설 사장을 만났다. 그는 “5년 전만 해도 40~50평의 중대형에 주력했지만 지금은 대부분 그 절반도 안 되는 15~25평(50~83㎡) 규모로 짓고 있다”고 말했다. “큰 전원주택은 관리가 어렵고, 팔고 싶을 때 팔기도 쉽지 않아 점점 더 중소형 전원주택을 선호하는 분위기”라는 설명이다.
입주민 절반 이상은 세컨드 하우스용이었다. 서울에 직장과 살림집이 있고, 주말에 이곳을 찾아 쉬고 간다. 종전엔 기업체 임원이나 대학교수·작가 등 전문직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일반 직장인도 늘고 있다고 한다. 이곳 전원주택 부지는 가구당 496㎡(150평) 규모로, 50㎡(15평) 시세는 1억5000만원, 83㎡(25평)는 2억원, 105㎡(32평)는 3억원 정도였다.
양평군에 따르면 2003년 1만9478가구였던 군내 단독주택은 2010년 2만5607가구로 7년 새 31% 늘었다. 군청의 이주진 주택관리팀장은 “신축 단독주택의 40% 정도는 서울 등 외지인들이 짓는 전원주택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60~100㎡(18~30평)의 중소형 주택이 전체 단독주택의 57%로 절반을 넘는다. 100㎡ 이상은 26%다.
물론 같은 중소형 주택이라도 입지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양평에선 남한강을 낀 양서면 대심리의 전원주택단지 집값은 높은 편이다. 양평 지역 부동산컨설팅 업체 전원드림의 이소나 실장은 “강 주변 경관이 빼어난 곳은 100㎡ 전원주택의 시세가 4억~5억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반대로 산골로 들어갈수록 싸진다. 강하면에서 강원도 횡성 방향으로 20분 거리의 용문면 화전리 전원주택 단지엔 413㎡(125평) 부지에 지어진 92㎡(28평) 집이 1억8000만원에 매물로 나와 있었다. 거실과 주방, 방 2개, 화장실 2개 구조였다. 이 실장은 “강변은 50~60대 연령의 자산가들이 선호하지만 부담이 적은 산골은 서울의 40대 직장인들 문의가 많다”고 전했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이 급랭한 데다 전원주택 추세가 부유층 별장에서 중산층이나 젊은 층의 소형 세컨드 하우스나 ‘힐링 하우스’로 변모하면서 개발 방향을 틀었다. 힐링(Healing)이란 맑은 공기와 좋은 경관 속에서 몸과 마음을 달래준다는 뜻이다. 최 대표는 “10억원대의 대형 평수 가구를 줄이고, 4억원대의 32평형을 18채 짓는다. 젊은 층 수요자를 감안해 집 크기를 더 작게 하고 가격대를 3억원대까지 낮추는 개별 맞춤형 주택도 검토한다”고 말했다.
강원도 일대의 전원주택은 재테크용으로도 관심을 끈다. 현관문이 두 개인 전용면적 120㎡(약 36평) 내외 단독주택이 대표적 사례다. 손님들에게 펜션처럼 빌려주는 별실과 주인이 사는 본실 두 곳으로 나뉜다. 본실이 별실을 들쳐 메고 있는 구조라 ‘캥거루 하우스’로도 불린다. 요즘 원주와 횡성 사이의 강원도 안흥에 캥거루 하우스를 분양 중인 OK시골의 김경래 대표는 “은퇴 후 전원주택에서 노후생활을 만끽하면서 별실을 미니 펜션으로 활용해 임차수익까지 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막연한 환상 금물, 준비 철저해야
이미 세컨드 하우스를 산 사람들의 소감은 어떨까. 서울 일원동에 사는 최연숙(47) 주부는 3년 전 양평군 양서면에 32평짜리 전원주택을 3억원에 구입했다. 중견기업 간부인 남편이 직장생활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향후 7~8년간 부부가 주말을 보내려고 마련했다. 현재는 텃밭을 가꾸며 마을 주민과 유대 관계를 쌓고 있다. 남편 퇴직 후 양평을 주요 터전으로 삼을 계획이다. 하지만 서울 집을 처분할 생각은 없다. 그는 “노후에는 양평에 살면서 종종 서울을 왕래하며 친척·친구 만나고 문화생활 하고 병원도 다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집을 처분하고 귀농할 생각으로 세컨드 하우스를 마련한 이들도 적잖다.
성남시 신흥동에 사는 박영국(56)씨의 경우다. 그는 경기도 여주의 25평짜리 전원주택 부지를 1억6000만원에 사뒀다. “경제적 여유가 많지 않지만 예전부터 귀농이 꿈이었어요. 지금 사는 아파트가 팔리면 그 돈으로 바로 집을 지을 겁니다.”
하지만 세컨드 하우스에 대한 막연한 환상은 금물이다.
양평 전원주택에 사는 황모(57)씨는 “지난겨울에 심야 전기를 이용해 난방을 좀 많이 했더니 한 달 전기요금이 100만원이나 나왔다”고 말했다.
젊은 층은 마을 주민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힘들어하기도 한다.
반대로 마을에서 너무 떨어진 외진 곳에 집을 지어 고독으로 인한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고 지점장은 “경제 여건이나 가족들의 성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2~3년간 현지답사를 부지런히 다니는 등의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산과 너무 가깝지 않게
요즘 세컨드 하우스의 대세는 단지형 전원주택이다.
전문 건설업체가 택지를 개발하고 시공까지 해주는 식이다. 일단 분양받으면 편하게 입주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전기·수도 등 기반시설을 건설사가 마련해 주고 시공도 알아서 해줘 입주자가 신경을 덜 써도 된다. 주의할 점은 하자보수 기간이다. 이것이 너무 짧으면 곤욕을 치를 수 있다. 전원주택은 도회지 아파트보다 바깥 기온에 민감하다. 특히 부실하게 지은 집은 겨울에 상·하수도 동파나 보일러 고장 등에 시달리기 일쑤다. 고 지점장은 “하자보수를 최소 3년 약속하는 집을 골라야 한다”고 조언했다.
본인이 직접 땅을 고른 뒤 시공사를 정하면 단지형 주택보다 훨씬 저렴하게 전원주택을 마련할 수 있다. 단 발품을 팔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김 대표는 “토지나 건축에 관해 열심히 공부한 사람은 도전할 만하다”고 말했다.
본인이 직접 짓거나 단지형 주택을 분양받는 것 어느 쪽이라도 공통적으로 따져볼 사항이 있다.
고 지점장은 “집 지을 땅이 황토색이 아니라 검붉은 색이라면 주변에 폐사한 가축 매몰 지역이 있어 그 침출수로 오염된 게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관을 너무 중시해 강이나 산에 너무 가깝게 집을 지어도 위험하다.
태풍이나 호우 때 고생할 수 있다.
집은 남향이나 남동향이 좋지만 이 역시 주변 환경을 충분히 살펴 결정해야 한다.
김 대표는 “남향이라도 산이 가로막아 일조량이 적으면 겨울에 음지가 넓고 눈이 잘 녹지 않아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고 지점장은 남향보다는 남동향을 추천했다.
“남향은 겨울에는 좋지만 여름에는 햇빛이 오래 들어 더울 수 있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