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마지막 날에도 인사동에서 열리는 동생(#신금숙작가)의 작품전을 다시 찾았다. 어느 작품 하나 허투루 볼 수 없었다. 작가가 혼을 쏟아 완성한 작품들이기에 눈에 담고, 마음에도 새기려 애쓰며 천천히 둘러보았다.
2층에도 전시실이 있어 올라가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마침 화장실이 보였다. 화장실에 들어서다 구석에 놓인 쓰레기통에서 뜻밖의 광경을 목격했다.
‘나 좀 봐 줘요!’
누군가에게 하소연이라도 하는 듯 꽃다발 두 개가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었다.
‘뭐지?’
혼잣말을 하며 꽃을 집어 들었다. 두 다발은 쓰레기통에 처박힌 채 신음하듯 누워 있었다. 한 다발은 구겨지고 찢겨 상처가 심했다. 이미 생기를 잃어 되살리기 어려워 보였다. 다행히 다른 한 다발은 서너 송이로 이루어진 작은 꽃다발이었지만, 아직 상태가 괜찮았다. 버려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
저 꽃들도 처음부터 쓰레기통에 버려질 운명은 아니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손에 들려 축하와 격려의 뜻으로 건네졌을 테고, 꽃을 받은 사람은 잠시나마 기쁨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짧은 축하의 시간이 지나자 꽃은 이토록 쓸쓸한 최후를 맞고 있었다.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누군가에게 축하의 꽃다발을 받으면 집으로 가져가 화병에 꽂아 두고 며칠이라도 바라보지 않던가. 꽃을 볼 때마다 자신에게 꽃을 안겨 준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고, 고마운 마음도 새록새록 되살아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꽃이 쓰레기통에 버려지다니.
하기야 사람도 사랑이 식으면 버림받는 세상이다. 꽃 한 다발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을 담아 건넨 꽃다발을 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린 일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돈 봉투를 받았다면 그렇게 버렸을까. 꽃은 단순히 꽃값만큼의 물건이 아니다. 전시회를 찾아 축하의 마음을 전하고, 애써 작품을 준비한 사람의 노고를 격려하기 위해 건넨 선물이다. 꽃잎은 시들어도 그 안에 담긴 마음까지 시드는 것은 아닐 텐데.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축하와 위로의 자리를 마주한다. 입학과 졸업, 생일과 출판기념회, 문단 등단과 전시회, 콘서트와 시상식, 결혼식과 결혼기념일, 그리고 장례식까지. 그 마음을 전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축하금이나 케이크를 건네기도 하고, 꽃다발과 꽃바구니, 화환을 보내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꽃 선물은 우리 일상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꽃값이 만만치 않은데도 사람들은 기꺼이 꽃을 산다. 꽃 한 송이가 받는 사람의 마음을 하늘로 날아오르게 할 만큼 기쁘게 만들기 때문이다. 꽃을 선물하는 사람은 꽃 자체보다 꽃을 받아 들고 환하게 웃을 상대의 얼굴을 먼저 떠올리는지도 모른다.
예전에 임용되었을 때 또는 영전하거나 승진하면 친구와 후배, 동료들이 축하의 꽃을 보내 준다. 그때마다 고마운 마음은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마음에 걸맞은 감사의 표현을 충분히 했는지 자신이 없다.
축하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풍요 속에서 정작 그 안에 담긴 마음의 무게를 놓쳤던 것은 아닐까. 꽃을 보내 준 사람의 정성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을까.
쓰레기통 속에 버려진 꽃을 바라보다가 나는 뜻밖에도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때 나에게 축하의 꽃을 보내 주셨던 모든 분께 이 글을 빌려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꽃은 시들었어도 그분들의 마음만은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이런저런 상념에 잠긴 채 아직 멀쩡한 꽃 한 다발을 손에 들고 씁쓸한 마음으로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동생의 전시회에도 축하의 뜻으로 보내온 꽃화분과 꽃바구니가 몇 개 놓여 있었다.
동생이 그중 하나를 내게 가져가라고 했다. 노란 국화와 짙은 자색 국화가 어우러진 아담한 꽃바구니였다. 나는 그것을 조심스레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세 송이가 담긴 꽃은 화병에 담아 소파에서 잘 보이는 탁자에 놓았다. 작은 국화 화분 두 개는 베란다에 놓고 감상하고 있다.
물론 내게 직접 보내온 선물은 아니다. 하지만 동생의 마음을 받아 온 셈 치고 정성껏 돌보며 오래도록 바라보려 한다. 그것이 동생의 전시회를 축하하며 꽃을 보내 준 분들에 대한 예의이기도 할 것이다.
적어도 내가 맡은 꽃만큼은 쓰레기통에 버려지지 않도록 해야겠다.
꽃은 언젠가 시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꽃을 보내는 사람의 마음까지 버려져서는 안 된다. 꽃이 시들면 꽃잎은 떨어지겠지만, 그 안에 담긴 축하와 격려, 애정과 우정까지 함께 버릴 이유는 없다.
나는 아직도 그 쓰레기통 속에 누워 있던 꽃들이 마음에 걸린다.
꽃을 보낸 사람은 꽃이 잘 놓여 있을 거라 생각하며 흐뭇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건넨 마음이 화장실 쓰레기통 속에서 구겨지고 찢긴 채 버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서운할까.
꽃은 버려졌지만, 그 꽃에 담긴 마음까지 버려진것은 아니기를.
2026.10.12
첫댓글 버려진 꽃 이전의 담긴 마음의 선물. 정말 큰 마음을 보내진 꽃의 마무리가 우리 인간의 마지막이 화장터가 느껴지는 아쉬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