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생 동안 결혼 주례를 서는 것보다 이혼에 관련한 일이 더 많았다. 사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이혼 전문가가 될 팔자였다. 내가 처음으로 관여했던 이혼은 슬프게도 부모님의 이혼이었다. 우리 부모는 1940년대 말, 이혼이 오늘 같이 흔하지 않던 때, 내가 6개월 때 헤어졌지만 호적정리를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재혼해서 출생한 동생들이 내가 20살 때까지도 출생신고도 되어 있지 않았다. 아마도 그 시절에는 호적등본 같은 것 없이도 학교에 다니는 것은 가능했던 것 같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동생들의 호적을 만들어 주기 위하여 20년간 만나지 않았던 아버지와 생모를 만나도록 주선을 해서 이혼서류를 작성하고 도장을 찍게 했었다. 영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그 장면의 어색함이란 도저히 말이나 글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지켜본 이혼에는 지저분한 이혼, 화끈한 이혼, 칼부림 나는 이혼, 소송으로 지루하게 끌려가는 이혼 등등 종류도 가지 가지여서 다음 아이디를 이혼주례전문이라고 했다. 이혼 주례의 업무의 성격은 될 수 있으면 이혼이 잘 되도록 하는 것이 아니고 잘 안 되도록(?) 역할을 하는 것이고 이혼을 하게 되더라도 “너 죽고 나 죽자.”가 아니고 “너 살고 나 살자.”로 헤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서 그렇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게의 경우가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 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가 아니라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온갖 저주를 퍼부으리다.”로 끝난다. 그래서 만일에 이혼 예식을 한다면 결혼식의 ‘신랑 신부 키스’ 대신 ‘남편과 아내가 따귀를 한 차례씩 때리는’ 것으로 할 생각이다.
결혼 주례와는 달리 이혼주례는 생기는 것도 없이 완전히 사람의 진을 빼는 일이다. 결혼 주례는 당사자들은 잘해야 한 두 번만 만나면 되지만 이혼주례는 시도 때도 없이 만나야 하고 언제나 비상시에 대처해야 한다. 마치 119 구급차량처럼 때로는 자다가도 뛰어 나가 하고 밥 먹다가도 달려 나가야 할 때가 있다. 이혼은 당사자들도 힘이 들지만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끼치는 민폐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일단 싸움이 심해지면 조용히 끝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나의 40 년 이혼주례의 경험 중 가장 뜻 깊게 고통스러운 일은 30 여전의 한의사 부부의 경우였다. 그 한의사는 지방의원 선거에 출마를 하려고 한의원의 한 부분에 내 사무실을 마련해주었었다. 부부간의 싸움이 심각해지더니 드디어 육박전을 거쳐서 급기야 형사사건으로 발전 했다.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싸움이 극도에 도달하게 되자 매일 자기들 옆에 있어서 자기들의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나를 불러서 심판을 보아달라고 해놓고 내 앞에서 ‘죽이니 살리니’하고 싸움을 벌였다. 그런데 싸움이 급기야 소송으로 번지더니 나를 증인으로 세워서 검찰과 법원으로 피곤하게 끌려 다니게 만들었다.
재판이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데 입장이 곤란해서 두 번은 회피를 했는데 세 번째 가서는 검사가 직접 전화를 걸어서 공갈 반 호소 반 하는 바람에 마지못해 법정에 서게 되었다.
나는 증언대에 서서 오른 손을 들고 “진실만을 증언하겠다.”고 선서를 했다.
판사가 “피고와 원고와의 관계를 볼 때 증인은 사실대로 진술하기가 어렵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하면 위증죄로 고발될 수 있다는 것을 아시지요?”하는 준엄하게 경고를 하는데 기분이 아주 더러웠다. 나의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남의 부부 싸움, 결국 위자료 문제일 수밖에 없는데 심리적 부담을 느끼며 증언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막상 심문이 시작되자 가슴이 뛰어 도무지 담담한 마음으로 진술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동안 시국 재판에서 피고를 보호하기 위해서 판사와 검사는 여러 번 속여 본 전과(?)가 있어서 두렵지가 않았는데 이번에는 혹시 내가 실수를 해서 피고와 원고 사이 어느 한 쪽에 결정적으로 불리한 진술을 하게 될까 보아서였다.
다시 말하면 두루 뭉실 넘어가면서도 나중을 생각해서 최소한 위증은 피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나는 공평하게 50대 50으로 고소인과 피고의 중간 정도의 입장에서 진술을 했다.
분쟁이 있을 경우 자기 유익을 지키기 위해서 완전히 중립은 지켜야만 할 때가 아니라면 완전 중립이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과는 양쪽 모두 내 진술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했다. 고소인의 입장에서는 나의 진술이 사실을 분명하게 입증해 주는 것이 아니라고 원망하고 피고 측에서는 확실하게 자기 입장에 서서 진술을 해주지 않았다고 섭섭해 했다. 그러나 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오던 양 쪽 모두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공자, 장자, 석가, 예수라고 한들 무슨 뾰족한 방법이 있을까 싶은 일이었다.
일반적으로 평화스럽게 사는 가정 보다는 갈등과 긴장의 요소를 앉고 사는 가정이 더 많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은 옛말이다. 부부 사이에 대화로 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변할 수 없고 포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서로를 좀 먹으면서 사는 부부도 있다. 헤어지고 싶어도 헤어질 조건이 안 되는 부부도 있다. 마치 연옥의 형벌을 받는 것 같이 사는 부부도 있다. 함께 살면서 불행하고 헤어지면 더 불행해 질 것 같은 가정도 있다.
결혼에는 공식이 있다. 수학에선 당연히 1+1=2 가 되어야 하지만 분명히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서 둘이 되는 결혼은 1+1=2 이 아니라 1+1=0.5 가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서로가 도움이 되기 보다는 서로 상대방에게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재혼이지만 김대중 대통령처럼 1+1=2 이면 대박인 것이다. 결혼 생활이 1+1=0.5 이면 그런 대로 평년작은 하는 것이지만 1+1=0 이나 -로 간다면 아마 그런 것을 악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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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할 때는 온갖 장애물을 헤치고 함께 붙어 있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이지만 반대로 이혼을 할 때는 장애물을 하나씩 해결하면서 떨어지기 위해서 애를 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마지막 장애물인 자녀들 문제에 걸려서 이혼이란 결승점(?)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혼을 해도 쌍방이 손 털고 일어설 때는 문제가 간단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한 쪽은 끊으려고 하고 한 쪽은 잡으려고 하는 재미없는 레슬링 경기 같은 경우도 있다.
만일에 외국에서 이혼을 하게 되면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 이혼 갈등 중에 여자 쪽에서 ‘폭력우려신청’을 하면 ‘100M 접근 금지’ 처분을 받아 남자는 꼼짝 없이 집에서 쫓겨나야 한다. 일단 ‘접근금지’ 처분을 받으면 자기 집이 1,000만 불짜리라도 들어 갈 수 없다. 잡을 살 때 받은 은행 융자를 꼬박 꼬박 갚아야 해도 집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기간이 최대 1년인데, 1년을 별거하면 자동이혼이다. 재산은 50:50으로 나눠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16세 이하의 자녀가 있으면 재산의 3/4가 여성에게 간다. 이혼을 한 후에도 자녀가 1명이면 18%, 2명이면 27%가 남편의 수입에서 떨어져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