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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학년도 수시 1학기 학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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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술 고 사 문제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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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부/사회과학부/커뮤니케이션학부> |
■ 유의사항
1. 제목은 쓰지 말고 본문부터 시작할 것.
2. 수험번호, 성명 등 자기의 신상에 관련된 사항을 답안에 드러내지 말 것.
3. 답안의 글자 수는 띄어쓰기 포함.
<문항 1: 30%, 500~600자>
다음 두 제시문의 공통된 논지를 추출하고, 그 의미에 대해 논술하라.
[가] 한 옛날에 옷을 입을 줄도 모르고, 집에 거주할 줄도 모르고, 불을 사용할 줄도 모르는 야만족이 열대에 있는 그들의 고향을 떠나, 이른 봄부터 늦여름까지 북방으로 이동하였다. 9월이 되어 밤에는 제법 추워 오는 것을 느끼게 될 때까지 그들이 더운 고장을 떠나서 이미 추운 고장으로 와 버린 줄은 꿈에도 몰랐다. 추위는 날마다 더해 갔다. 그 까닭을 알지 못하는 그들은 이리저리 도피하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 얼마는 남쪽으로 되돌아갔다. 거기서 그들은 다시 옛 생활을 계속했다. 그리고 그들의 후예들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야만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다.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 방황하던 사람들은 그들 중 극히 소수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멸망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를 피할 길이 없던 일부 소수는 인간의 가장 높은 기능인 의식적인 발명의 능력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땅을 파고 구멍을 만들어 몸 둘 곳을 삼았다. 어떤 이들은 오막살이와 잠자리를 만들기 위해 나뭇가지와 잎사귀들을 모았다. 또 어떤 이들은 그들이 잡아 죽인 짐승의 가죽으로 그들의 몸을 가렸다. 오래지 않아 이 야만인들은 문명으로 향한 가장 훌륭한 진보의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중략… 이것이 진보 발전의 패러독스이다. 만일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라면, 그 아버지는 고집이다. 고집이란 여러 가지 손실들을 끊어버리고 삶이 보다 편리한 데를 찾아가려는 것보다는 차라리 역경에서 견디어 이기며 살아가려는 결의이다. ― 토인비, 『역사의 연구』
[나] 1990년대의 소위 ‘디지털 혁명’은 두 방향으로 진행되었는데, 첫째, 기존 전자 제품이 디지털 기술을 구현한 제품으로 대체되었으며, 둘째, 인터넷․소프트웨어․통신․전자․컴퓨터들의 기술적 융합에 기반한 전혀 새로운 제품이 출현했다. 디지털 기술의 이러한 등장은 기술 비약 가설이 주장하듯 후발 주자에게는 선발주자를 추격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실제로 디지털 기술로의 패러다임 전환기였던 1990년대 중반에 한국의 기업들은 여러 혁신적인 디지털 제품들에서 세계적인 리더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삼성과 LG는 관련 디지털 기술 영역에서 그 기술력과 라이선스에서 세계 최고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또한 삼성과 LG는 1990년대 후반 이래 미국 또는 영국에서 가장 큰 시장 점유율을 갖고 있다. LG전자는 1997년에 디지털 TV에 필요한 핵심 칩셋을 개발한 세계 최초의 기업이다.
그러나 패러다임 전환기를 이용하여 선도 기업을 추격하고자 하는 기업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위험을 접하게 된다. 첫 번째는 여러 개의 출현 가능한 표준 중에서 어떤 기술 표준을 선택할 것인가와 관련된 위험이며, 두 번째는 신규 제품 생산 기술을 선택하여 생산을 한 후 어떻게 초기 시장을 형성할 것인가 하는 위험이다. 디지털 TV와 CDMA를 개발했던 한국 기업들도 이러한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중략…
한국에서의 CDMA 셀룰러 폰 시스템 개발과 서비스 개시는 민관 합작으로 이루어진 가장 성공적인 경로 창출형 추격 또는 비약의 예이다. 한국 기업들과 정부 당국이 셀룰러 폰 시스템의 개발을 고려하고 있을 때 미국에서는 아날로그 시스템이 지배적이었고(여전히 지배적이다) 유럽에서는 TDMA 방식의 GSM 시스템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정보통신부)는 주파수 사용이 효율적이고 고품질과 보안성을 겸비한 CDMA 기술에 주목했다. CDMA 시스템 개발에 대한 불확실성과 한국통신, 삼성, LG 같은 통신 서비스 제공업자 및 시스템 제조업자들의 심각한 우려 및 GSM으로 가자는 강력한 의견에도 불구하고 정보통신부와 전자통신연구소는 CDMA를 채택하기로 결정했다. 그러한 결정을 하기까지는 한국이 이미 개발되어 있는 TDMA(GSM)를 따라만 가게 되면 한국과 선발 국가 간의 격차는 줄일 수 없고 따라서 추격은 요원하다는 인식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그래서 한국은 더 위험한 길을 택했고 성공을 거두었다.
― 이근, 「과학기술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경제」
<문항 2: 30%, 500~600자>
다음 두 제시문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삶의 태도 또는 사유방식을 추출하고, 그것이 인류의 역사와 문화의 발전에 어떠한 기여를 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논술하라.
[가] 혜자(惠子)가 장자(莊子)에게 말했다. “위(魏)나라 왕이 나에게 큰 박씨를 하나 보내주므로 이것을 심었더니 닷 섬짜리 박이 열렸네. 그 속에다 장을 채워 두었더니 들 수가 없었네. 다시 두 쪽으로 쪼개어 바가지를 만들었으나 너무 넓어서 쓸 수가 있어야지. 텅 비어 크기는 했지만 나는 아무 소용없어 그것을 부수어버렸네.” 장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는 참으로 큰 것을 쓸 줄 모르는군. …중략… 지금 자네는 닷 섬짜리 바가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어째서 그것으로 큰 통을 만들어 강호(江湖)에 띄울 것을 생각지 못하고, 그것이 넓어서 쓸데가 없다고만 근심하는가? 자네야말로 아직도 몹시 옹졸한 생각밖에 가지고 있지 못하군.” 혜자는 장자에게 말했다. “우리 집에 큰 나무가 있는데 사람들이 가죽나무라 부르네. 그 밑동은 혹투성이라 먹줄을 댈 수가 없고, 그 작은 가지들도 꼬불꼬불해서 자에 맞지를 않네. 그것이 길가에 서 있으나 목수가 돌아보지도 않네. 지금 자네의 말은 이 나무와 같아 커도 소용이 없네. 따라서 여러 사람들이 돌보지도 않을 것일세.” 장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중략… 자네는 큰 나무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이 쓸데가 없는 것을 걱정하지만, 왜 그것을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인 광막한 들에다 심어 놓고 그 곁을 방황하면서 무위(無爲)로 날을 보내고 소요하다가 그 밑에 드러눕지를 않는가? 그러면 그 나무는 도끼에 베어지지도 않을 것이고 아무에게도 해를 입을 염려가 없네. 쓰일 데가 없으니 또 무슨 괴로움이 있겠는가?”
― 『장자』
[나] 선귤자(蟬橘子)에게 예덕선생(穢德先生)이라 부르는 벗이 한 사람 있었다. 그는 마을 안의 똥을 치는 일을 생업으로 삼고 지냈다. 선귤자의 제자가 자기 스승이 그 비천한 막일꾼의 덕을 칭송하여 선생이라 부르는 동시에 장차 그와 교분을 맺고 벗하기를 청하려고 하자, 제자로서 부끄러워 그의 문하를 떠나려고 했다. 그러자 선귤자가 말했다. “앉아라. 내가 너에게 벗을 사귀는 것에 대해 말해주마. …중략… 모든 사람들이 엄씨의 똥을 가져다 써야 땅이 비옥해지고 많은 수확을 올릴 수 있다네. 하지만 그는 아침에 밥 한 사발이면 의기가 흡족해지고 저녁이 되어서야 다시 한 사발 먹을 뿐이지. 남들이 고기를 먹으라고 권하였더니 목구멍에 넘어가면 푸성귀나 고기나 배를 채우기는 마찬가지인데 맛을 따져 무엇하겠느냐고 대꾸하고, 반반한 옷이나 좀 입으라고 권하였더니 넓은 소매를 입으면 몸에 익숙하지 않고 새 옷을 입으면 더러운 흙을 짊어질 수 없다고 하더군. …중략… 엄행수는 지저분한 똥을 날라다 주고 먹고살고 있으니 지극히 불결하다 할 수 있겠지만 그가 먹고사는 방법은 지극히 향기로우며, 그가 처한 곳은 지극히 지저분하지만 의리를 지키는 점에 있어서는 지극히 높다 할 것이니, 그 뜻을 미루어보면 비록 만종의 녹을 준다 해도 그가 어떻게 처신할는지는 알 만하다네. …중략… 선비로서 곤궁하게 산다고 하여 얼굴에까지 그 티를 나타내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요, 출세했다 하여 몸짓에까지 나타내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니, 엄행수와 비교하여 부끄러워하지 않을 자는 거의 드물 걸세. 그래서 나는 엄행수에 대하여 스승으로 모신다고 한 것이네. 어찌 감히 벗하겠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이유에서 나는 엄행수의 이름을 감히 부르지 못하고 예덕선생이라 부르는 것일세.” ― 박지원, 「예덕선생전」
<문항 3: 40%, 1200~1400자>
다음 세 제시문을 읽고 각 제시문에 나타난 특징적인 ‘자아’의 모습을 서술하고, [나]의 관점에서 [다]의 관점을, [다]의 관점에서 [나]의 관점을 비판하는 논의를 전개하라.
[가] 원시인에게는 낯익은 것과 낯선 것, 내부 세계와 외부 세계, 삶과 죽음, 혼령과 신체 등을 엄격히 분리하는 도식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영혼이나 몸이나 모두 분명한 경계선을 가진 어떤 특정한 영역으로 보이지 않았다. 원시인은 자기 자신과 자기 주변에서 낯선 다른 힘의 세계를 경험했다. 괴상하게 생긴 바위나 사람의 발길이 닿아본 적이 없는 대초원의 삭막함 등 예외적이고 놀라운 것은 모두 그와 같은 힘의 현존을 뜻할 수 있었다. 영혼 자체도 그런 힘으로 경험되었다. 호흡도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신비스러운 힘의 존재를 보게 한다. 상처받은 몸에서 나오는 검붉은 피, 머리카락, 아무런 표정이 없는 가면의 신비, 소름이 끼칠 정도로 뻣뻣한 시체 등을 모두 낯선 힘의 현존으로 여겼다. …중략…
원시사회 속에서 인간은 자기 홀로 있는 것만으로는 아직 ‘완성된 존재’가 아니었다. 인간은 그가 살고 있는 사회 구조와 뗄 수 없고, 비로소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이 된다. 만일 사회의 구성원 중 한 사람이 죽을 때, 애곡하는 것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죽음으로 사회 구조가 혼란을 받게 된 것을 슬퍼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실 ‘나’라는 말은 어떤 관계(가령 가족 관계)에서만 사용되기 때문에 단지 ‘나―아버지’, ‘나―삼촌’ 등의 형식으로만 나타난다. 개인은 친족 관계와 집단 관계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한 인격은 여기저기 확산되고, 보다 넓은 관계의 장에서 그가 담당해야 하는 역할과 떨어질 수 없다. 이 관계가 없이, 곧 개인으로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의 행동거지는 사회적․신화적 공간 안에서 결정된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내부 세계와 외부 세계, 몸과 영혼을 그렇게 엄격하게 구별해 놓을 수 없다.
― 반 퍼슨, 『몸영혼정신』
[나] 나는 오직 진리 탐구에 전념하려고 하므로, 조금이라도 의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전적으로 거짓된 것으로 던져 버리고, 이렇게 한 후에도 전혀 의심할 수 없는 것이 내 신념 속에 남아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우리 감각은 종종 우리를 기만하므로, 감각이 우리 마음속에 그리는 대로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가정했다. 그리고 아주 단순한 기하학적 문제에 있어서조차 추리를 잘못하여 오류 추리를 범하는 사람이 있으므로,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전에 증명으로 인정했던 모든 근거를 거짓된 것으로 던져 버렸다. 끝으로, 우리가 깨어 있을 때에 갖고 있는 모든 생각은 잠들어 있을 때에도 그대로 나타날 수 있고, 이때 참된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정신 속에 들어온 것 중에서 내 꿈의 환영보다 더 참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반드시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이 진리는 아주 확고하고 확실한 것이고, 회의론자들이 제기하는 가당치 않은 억측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것임을 주목하고서, 이것을 내가 찾고 있던 철학의 제1원리로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 다음에, 내가 무엇인지를 주의 깊게 고찰했으며, 이때 다음과 같은 것을 알게 되었다. 즉, 나는 신체를 갖고 있지 않으며, 세계도 없으며, 내가 있는 장소도 없다고 상상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는 없고, 오히려 반대로 내가 다른 것의 진리성을 의심하려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 아주 명백하고 확실하게 귀결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그때까지 상상했던 나머지 다른 것들이 설령 참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단지 생각하는 것만 중단한다면, 내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믿게 할 만한 아무런 근거도 없음을 알았다. 이로부터 나는 하나의 실체이고, 그 본질 혹은 본성은 오직 생각하는 것이며, 존재하기 위해 하등의 장소도 필요 없고, 어떠한 물질적 사물에도 의존하지 않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나, 즉 나를 나이게끔 해 주는 정신은 물체와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며, 심지어 물체보다 더 쉽게 인식되고, 설령 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신은 스스로 중단 없이 존재하는 것이다.
― 르네 데카르트, 『방법서설』
[다] 접속의 시대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몰고 온다. 바다의 신이자 변화무쌍한 모습을 가졌던 그리스 신화의 프로테우스처럼 새로운 ‘프로테우스’ 세대의 젊은이들은 전자 상거래와 사이버스페이스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사업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으며 그 속에서 펼쳐지는 사교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들은 문화경제를 구성하는 수많은 시뮬레이션 세계에 척척 적응한다. 그들에게 익숙한 세계는 이념적 세계가 아니라 연극적 세계이다. 그들의 의식은 노동 정신보다는 유희 정신에 기울어 있다. 그들에게 접속은 이미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재산도 중요하지만 연결된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21세기의 인간은 관심을 공유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네트워크의 접속점이라는 의식으로 살아갈 것이고, 다윈이 말한 적자생존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세계에서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주체라고 스스로를 생각할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개인적 자유의 의미는 소유권이라든지 남들의 간섭에서 벗어나는 능력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질 것이다. 대신 상호 관계의 그물에 포함될 수 있는 권리로서의 의미가 점점 부각될 것이다. 그들은 접속의 시대를 살아가는 첫 번째 세대이다.
인쇄기가 지난 수백 년 동안 인간의 의식을 바꾸어놓았던 것처럼 컴퓨터는 앞으로 두 세기 동안 인간의 의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심리학자와 사회학자들은 이른바 ‘닷컴’ 세대에 속하는 젊은이들의 정신 발달 과정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벌써 주목하고 있다. 컴퓨터 화면 앞에서 자라면서 많은 시간을 채팅과 전자오락에 쏟아 붓는, 아직은 소수이지만 점점 그 수가 늘어나고 있는 젊은이들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다중 인격자’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들의 의식은, 특정한 시간에 자신이 몸담았던 가상 세계나 네트워크와 어울리기 위해 이용했던 짧은 토막의 파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일각에서는 이 닷컴 세대가 현실을 수시로 바꿀 수 있는 한낱 이야기들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우려한다. 주위 세계에 적응하고 주변 사람을 이해하려면 일관된 참조의 틀이 있어야 하는데 이 틀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끈끈한 인간관계의 경험과 참을성 있는 주의력이 이들에게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것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사람들이 실제로 접하는 현실 세계는 빠르게 움직이고 정신없이 바뀌는데, 이런 현실을 제대로 수용하려면 사람의 의식도 협소한 굴레에서 벗어나 좀더 발랄하고 유연하고 심지어는 찰나적으로 변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 제러미 리프킨, 『소유의 종말』
경제/경영 계열
유의사항
1. 제목은 쓰지 말고 본문부터 시작할 것.
2. 수험번호, 성명 등 자기의 신상에 관련된 사항을 답안에 드러내지 말 것.
3. 답안의 글자 수는 띄어쓰기 포함.
<문항 1: 30%, 500~600자>
다음 제시문 [나]는 오늘날 기업이 직면하고 있는 어떤 공통된 경영 활동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제시문 [나]를 근거로 하여 제시문 [가]가 담고 있는 의미를 구체적으로 서술하라.
[가] 스타벅스는 커피와 문화를 결합하여 커피에 관한 경험을 재창조한 회사이다. 스타벅스의 최고 경영자가 된 하워드 슐츠는 1982년 스타벅스에 합류했다가 1987년에 스타벅스를 인수했다. 그는 단순히 최고급 커피원두를 소매로 파는 가게였던 스타벅스를 ‘고객이 바리스타(barista)라 불리우는 매장 점원과의 교감을 바탕으로 커피를 마시면서 새로운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오늘의 스타벅스를 일구어냈다. 또한 존경과 품위, 다양성의 존중, 사회와 환경에 대한 공헌 등의 원칙을 공유하는 문화를 키워나감과 동시에 직원들의 의견을 존중해 프라프치노 등 고객의 새로운 요구에 부합하는 새로운 상품을 적시에 선보였다. 그 결과 1987년 당시 6개 스토어에 100여명의 사원이 있던 수준의 회사를 10년만에 2,000여 개의 스토어에 25,000명 규모의 회사로 성장시켰다. 1992년에는 커피 판매 기업으로는 최초로 상장기업이 되었으며 2004년에는 5조 3천억 원의 매출과 6천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델은 1984년 창업과 함께 컴퓨터업계 최초로 제조업체가 제작한 컴퓨터를 최종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다이렉트 판매’ 방식을 도입했다. 기존의 PC 판매는 생산자 중심의 관점에서 고객의 새로운 요구에 대한 직접적인 이해 없이 생산하고 중간유통을 거치는 방식으로 이루어 졌다. 델은 이러한 방식을 뛰어넘어 고객과의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고객이 원하는 PC를 파악하고 맞춤형 PC를 직접 판매하는 모델을 창조한 것이다. 그 결과 1994년부터 7년간 연평균 매출액 성장률 37%를 기록하며 2001년에 세계 시장 1위의 사업자로 등극했다. 2004년에 델은 42조 6천억 원의 매출과 3조 5천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 AT 커니, 매일경제 Creative Korea 팀,『창조혁명 보고서』
[나] 인간이 자연 그대로의 자원에서 새로운 용도를 찾아내고 그것에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기 전까지는 ‘자원’이라고 불릴 만한 것은 없다. 경제적 가치가 생기기 전까지는 모든 식물은 식물 그 자체이고, 모든 광석은 돌덩어리 일 뿐이다.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땅에서 스며 나오는 원유도, 알루미늄 원광인 보크사이트도 자원이 아니었다. 귀찮은 존재로서 토양을 망치기만 했다. 페니실린 곰팡이도 한때는 자원이 아니라 병균일 뿐이었다. 그러나 1920년대 영국의 미생물학자인 알렉산더 플레밍이 페니실린 곰팡이 ‘병균’이야말로 세균학자들이 찾던, 바로 그 박테리아를 죽이는 물질임을 확인함으로써 페니실린 곰팡이는 가치 있는 자원이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에 부를 창출하는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 혁신인 것처럼 기존 자원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높여 더 많은 부를 창출하도록 하는 활동도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 경제학자 J. B. 세이는 “기업가는 경제적 자원을 생산성과 수익성이 낮은 곳으로부터 좀 더 높은 곳으로 이동 시킨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빌리면, 혁신은 ‘자원의 생산성을 높이는 활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혁신은 기업가정신의 구체적인 기능인 것이다. 똑같은 자원을 투입하고도 더 많은 양을 산출할 수 있는 활동이 곧 혁신이라는 뜻으로 공급측면에서의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의에 적합한 구체적 사례를 들어보면, 제철산업의 경우 종합제철공장에서 미니밀(mini-mill: 전기로)로 이동한 것은 공급측면에서의 혁신이다. 미니밀은 철광석을 녹이는 용광로설비가 필요 없다. 고철을 녹여 철강 빔이나 철근 같은 소비제품을 만들어낸다. 최종 제품도, 용도도, 고객도 똑같다. 그러나 생산원가를 획기적으로 낮추었기 때문에, 즉 같은 자원을 투입하고도 더 많은 양을 산출할 수 있도록 한 혁신인 것이다.
한편 혁신을 수요측면을 강조해 정의할 수도 있는데, 이 경우 혁신은 소비자들이 이제까지 느껴온 가치와 만족에 변화를 일으키는 활동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아이포드(i-Pod) 또는 디지털 카메라는 기술혁신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만, 소비자가 원하는 가치와 만족도를 높인 혁신사례라고 할 수 있다. 헨리 루스가 1920년대에 『타임』, 『라이프』, 『포천』 등을 창간하여 보여준 사회적 혁신이나,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에 개발된 머니마켓펀드(money market fund), 유니버설보험상품(universal life insurance product)같은 금융상품의 성공적 혁신도 공급측면보다는 가치와 만족도라는 측면에서 훨씬 설명하기 쉽다.
― 피터 드러커, 피터 드러커의 위대한 혁신』
<문항 2: 30%, 500~600자>
제시문 [가]는 이산화황의 배출 허용량을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도입함으로써 기대할 수 있는 효과를 제시문 [나]에서 설명한 가격 기구(price system)의 기능에 근거하여 설명하라.
[가] 미국에서 1970년에 입법된 청정 대기 법안(The Clean Air Act)은 촉매 변환 장치 설치와 하수(下水) 처리의 의무화와 같은, 기업과 개인들이 공해를 줄이기 위해 해야 할 노력들에 대한 상세한 지침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의 시행 이후 미국의 인구는 30% 정도 증가하고 경제 규모 역시 두 배 이상으로 커졌지만 미국 전체의 대기 오염은 같은 기간 동안 1/3 이상 감소하였다. 미국 정부는 1990년 이 법안을 수정하면서 시장 원리에 근거한 해결 방법들을 도입하였다. 이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내용은 석탄을 원료로 사용하는 발전소가 배출하는, 산성비의 주요 원인인 이산화황의 배출을 감소시키는 프로그램이다.
수정 전의 제도 하에서는 모든 발전소들이 이산화황의 배출을 줄이는 집진기(集塵機) 등의 설치를 의무화하였다. 집진기의 설치 비용은 상당 부분 전력 소비자들에게 전가되어 전력 소비량 자체를 줄이는 효과가 있었다. 이에 반해 새로운 프로그램은 각 발전소가 이전에 사용한 석탄의 양을 기준으로 각 발전소가 배출할 수 있는 이산화황의 배출량을 결정한 후, 특정 기간 동안 각 발전소에 주어진 허용량만큼의 이산화황을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모든 발전소는 주어진 허용량을 초과하는 이산화황을 배출할 수 없지만 각 발전소는 자신의 허용량을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다. 즉, 허용량보다 적은 이산화황을 배출하는 발전소는 사용하지 않는 허용량을 팔 수 있고, 더 많은 양을 배출하기 위해서는 여분의 허용량을 구입해야 한다.
이 프로그램이 1994년도에 시행된 이후로 허용량의 가격은 큰 폭으로 변해왔으며 이산화황 1톤을 배출할 수 있는 권리는 2004년에 260 달러에 거래되었다. 이 프로그램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프로그램이 이전 규제에 의한 방법에 비해 훨씬 효과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허용량을 파는 발전소들이 환경을 오염시킬 권리를 이용하여 돈을 벌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 프로그램의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 크루그만․웰스,『경제학』
[나] 시장이란 소비자와 생산자가 만나 재화와 용역을 거래하는 ‘장소’를 말한다. 계획 경제 하에서도 모든 거래는 시장에서 이루어지지만 자본주의 경제 체제, 혹은 시장 경제 체제에서 말하는 가격 기구(price system)의 분배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시장 경제 체제에서는 누가 무엇을 얼마나 생산할 것인지, 누가 무엇을 얼마나 소비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가격 기구를 통해 시장에서 결정된다.
시장에서 자발적인 거래가 이루어지면, 상품의 가치를 시장 가격보다 높게 평가하는 소비자들이 그 상품을 소비하고, 시장 가격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는 생산자들이 그 상품을 공급하게 된다. 따라서 모든 거래 참여자들은 제품의 사적(私的) 가치와 시장 가격의 차이에 해당하는 편익(便益)을 추가로 얻을 수 있으며 이윤을 극대화하는 생산자는 자발적으로 생산 비용을 낮추려는 유인(誘因)이 생기게 된다.
한편 시장 가격은 거래 참여자들이 생각하는 제품의 사적 가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주어진 가격에서 물건을 판 사람들의 경우 그 물건의 사적 가치가 시장 가격보다 높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반대로 물건을 구입한 사람들이 평가하는 제품의 사적 가치는 시장 가격보다 낮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시장 가격은 소비자와 생산자들이 생각하는 그 제품의 가치를 반영하게 된다.
<문항 3: 40%, 1200~1400자>
다음 세 제시문을 읽고 각 제시문에 나타난 특징적인 ‘자아’의 모습을 서술하고, [나]의 관점에서 [다]의 관점을, [다]의 관점에서 [나]의 관점을 비판하는 논의를 전개하라.
[가] 원시인에게는 낯익은 것과 낯선 것, 내부 세계와 외부 세계, 삶과 죽음, 혼령과 신체 등을 엄격히 분리하는 도식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영혼이나 몸이나 모두 분명한 경계선을 가진 어떤 특정한 영역으로 보이지 않았다. 원시인은 자기 자신과 자기 주변에서 낯선 다른 힘의 세계를 경험했다. 괴상하게 생긴 바위나 사람의 발길이 닿아본 적이 없는 대초원의 삭막함 등 예외적이고 놀라운 것은 모두 그와 같은 힘의 현존을 뜻할 수 있었다. 영혼 자체도 그런 힘으로 경험되었다. 호흡도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신비스러운 힘의 존재를 보게 한다. 상처받은 몸에서 나오는 검붉은 피, 머리카락, 아무런 표정이 없는 가면의 신비, 소름이 끼칠 정도로 뻣뻣한 시체 등을 모두 낯선 힘의 현존으로 여겼다. …중략…
원시사회 속에서 인간은 자기 홀로 있는 것만으로는 아직 ‘완성된 존재’가 아니었다. 인간은 그가 살고 있는 사회 구조와 뗄 수 없고, 비로소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이 된다. 만일 사회의 구성원 중 한 사람이 죽을 때, 애곡하는 것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죽음으로 사회 구조가 혼란을 받게 된 것을 슬퍼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실 ‘나’라는 말은 어떤 관계(가령 가족 관계)에서만 사용되기 때문에 단지 ‘나―아버지’, ‘나―삼촌’ 등의 형식으로만 나타난다. 개인은 친족 관계와 집단 관계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한 인격은 여기저기 확산되고, 보다 넓은 관계의 장에서 그가 담당해야 하는 역할과 떨어질 수 없다. 이 관계가 없이, 곧 개인으로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의 행동거지는 사회적〮〮〮〮신화적 공간 안에서 결정된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내부 세계와 외부 세계, 몸과 영혼을 그렇게 엄격하게 구별해 놓을 수 없다.
― 반 퍼슨, 『몸영혼정신』
[나] 나는 오직 진리 탐구에 전념하려고 하므로, 조금이라도 의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전적으로 거짓된 것으로 던져 버리고, 이렇게 한 후에도 전혀 의심할 수 없는 것이 내 신념 속에 남아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우리 감각은 종종 우리를 기만하므로, 감각이 우리 마음속에 그리는 대로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가정했다. 그리고 아주 단순한 기하학적 문제에 있어서조차 추리를 잘못하여 오류 추리를 범하는 사람이 있으므로,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전에 증명으로 인정했던 모든 근거를 거짓된 것으로 던져 버렸다. 끝으로, 우리가 깨어 있을 때에 갖고 있는 모든 생각은 잠들어 있을 때에도 그대로 나타날 수 있고, 이때 참된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정신 속에 들어온 것 중에서 내 꿈의 환영보다 더 참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가상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반드시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이 진리는 아주 확고하고 확실한 것이고, 회의론자들이 제기하는 가당치 않은 억측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것임을 주목하고서, 이것을 내가 찾고 있던 철학의 제1원리로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 다음에, 내가 무엇인지를 주의 깊게 고찰했으며, 이때 다음과 같은 것을 알게 되었다. 즉, 나는 신체를 갖고 있지 않으며, 세계도 없으며, 내가 있는 장소도 없다고 상상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는 없고, 오히려 반대로 내가 다른 것의 진리성을 의심하려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 아주 명백하고 확실하게 귀결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그때까지 상상했던 나머지 다른 것들이 설령 참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단지 생각하는 것만 중단한다면, 내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믿게 할 만한 아무런 근거도 없음을 알았다. 이로부터 나는 하나의 실체이고, 그 본질 혹은 본성은 오직 생각하는 것이며, 존재하기 위해 하등의 장소도 필요 없고, 어떠한 물질적 사물에도 의존하지 않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나, 즉 나를 나이게끔 해 주는 정신은 물체와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며, 심지어 물체보다 더 쉽게 인식되고, 설령 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신은 스스로 중단 없이 존재하는 것이다. ― 르네 데카르트, 『방법서설』
[다] 접속의 시대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몰고 온다. 바다의 신이자 변화무쌍한 모습을 가졌던 그리스 신화의 프로테우스처럼 새로운 ‘프로테우스’ 세대의 젊은이들은 전자 상거래와 사이버스페이스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사업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으며 그 속에서 펼쳐지는 사교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들은 문화경제를 구성하는 수많은 시뮬레이션 세계에 척척 적응한다. 그들에게 익숙한 세계는 이념적 세계가 아니라 연극적 세계이다. 그들의 의식은 노동 정신보다는 유희 정신에 기울어 있다. 그들에게 접속은 이미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재산도 중요하지만 연결된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21세기의 인간은 관심을 공유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네트워크의 접속점이라는 의식으로 살아갈 것이고, 다윈이 말한 적자생존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세계에서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주체라고 스스로를 생각할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개인적 자유의 의미는 소유권이라든지 남들의 간섭에서 벗어나는 능력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질 것이다. 대신 상호 관계의 그물에 포함될 수 있는 권리로서의 의미가 점점 부각될 것이다. 그들은 접속의 시대를 살아가는 첫 번째 세대이다.
인쇄기가 지난 수백 년 동안 인간의 의식을 바꾸어놓았던 것처럼 컴퓨터는 앞으로 두 세기 동안 인간의 의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심리학자와 사회학자들은 이른바 ‘닷컴’ 세대에 속하는 젊은이들의 정신 발달 과정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벌써 주목하고 있다. 컴퓨터 화면 앞에서 자라면서 많은 시간을 채팅과 전자 오락에 쏟아 붓는, 아직은 소수이지만 점점 그 수가 늘어나고 있는 젊은이들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다중 인격자’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들의 의식은, 특정한 시간에 자신이 몸담았던 가상 세계나 네트워크와 어울리기 위해 이용했던 짧은 토막의 파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일각에서는 이 닷컴 세대가 현실을 수시로 바꿀 수 있는 한낱 이야기들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우려한다. 주위 세계에 적응하고 주변 사람을 이해하려면 일관된 참조의 틀이 있어야 하는데 이 틀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끈끈한 인간관계의 경험과 참을성 있는 주의력이 이들에게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것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사람들이 실제로 접하는 현실 세계는 빠르게 움직이고 정신없이 바뀌는데, 이런 현실을 제대로 수용하려면 사람의 의식도 협소한 굴레에서 벗어나 좀더 발랄하고 유연하고 심지어는 찰나적으로 변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 제러미 리프킨, 『소유의 종말』
자연/공학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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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학년도 수시 1학기 학교장 추천 특별 전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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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술 고 사 문제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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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부/공학부> |
■ 유의사항
1. 제목은 쓰지 말고 본문부터 시작할 것.
2. 수험번호, 성명 등 자기의 신상에 관련된 사항을 답안에 드러내지 말 것.
3. 답안의 글자 수는 띄어쓰기 포함.
◆ 다음 제시문을 읽고 물음에 답하라.
고대 그리스인들은 어떤 숫자는 그보다 작은 숫자에 의해서 나뉠 수 있는 반면에 다른 숫자들은 이런 특성이 없다는 관찰을 했다. 자연수 중에서 1과 자신을 제외한 어떤 숫자로도 나뉠 수 없는 숫자를 소수(素數)라 부른다. 또한 소수가 아닌 자연수 중에서 1이 아닌 수를 합성수라 부른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소수와 합성수의 구분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소수는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수학자들이 소수에 대해서 더 많은 사실을 발견할수록 그 중요성은 더 높이 평가되고 있다. ⓐ소수가 그처럼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자연수에서 소수가 하는 역할이 화학에서 원자의 역할과 같다는 것이다.
소수에 대한 분명한 물음은 이런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소수가 있는 것일까? 유클리드는 그의 저서 『기하학 원론』에서 소수의 개수가 무한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의 증명을 간략히 서술하면 아래와 같다.
“유한개만의 소수가 존재한다고 가정하자. 이 유한개의 소수들을 모두 곱한 값에 1을 더하면 그것 역시 소수이며, 처음에 가정한 유한한 소수 집합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소수가 유한하다는 가정은 모순이 됨을 알 수 있다.”
어떤 자연수 이 소수인지 여부를 검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소인수분해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하의 모든 소수들로 을 나누어 보아야 한다. 이때 이 실제로 소수일 때가 제일 큰 문제이다. 소인수분해를 사용하여 소수 여부를 검사하는 방법은 이 아주 큰 수라면 최고 성능의 컴퓨터로 계산한다고 하더라도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렇지만 수학자들은 소수의 패턴을 연구함으로써 여러 대안적 소수 검사 방법을 고안할 수 있었다. 실제로 현재의 대형 컴퓨터와 ARCLP와 같은 소수 검사 방법을 사용 하면 100자리에 이르는 소수 두 개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두 소수를 곱하면 200자리 수인 합성수 하나가 만들어진다. 다른 한편, 이 200자리 숫자가 매우 큰 두 개의 소수의 곱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현재 가용한 가장 빠른 컴퓨터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 크기의 합성수를 소인수분해 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할 만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소수 검사가 가능한 수의 크기와 소인수분해가 가능한 수의 크기 사이에 있는 이 커다란 불균형을 이용하여 수학자들은 ‘공유 열쇠(public key)’ 암호체계를 고안했다.
곤충 매미는 식물의 조직 속에 알을 낳는데, 우리나라에서 잘 알려진 유지매미와 참매미는 산란한 해부터 치면 7년째에 성충이 된다. 또 늦털매미는 5년째에 성충이 된다고 알려졌다. 매미탑이라고 불리는 북아메리카에 사는 매미는 산란에서부터 성충이 되기까지 13년이 걸리는 종과 17년이 걸리는 종으로 나뉘고, 그 형태나 울음소리에도 차이가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와 같이 위에서 소개한 여러 종류의 매미가 산란에서 성충이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보통 5년, 7년, 13년, 17년이다. 이와 같은 매미의 생활주기에서 발견될 수 있는 공통점은 그것들이 모두 소수라는 점이다.
왜 하필 소수를 주기로 생활할까라는 의문에 대한 설명으로 유력한 두 학설이 있는데, 한 가지는 주기가 소수가 되면 매미가 천적을 피하기 쉽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학설은 동종간의 경쟁을 피하기 위한 스스로의 조정이라고 알려져 있다.
<문항 1: 35%, 글자 수 제한 없음>
1. 밑줄 친 ⓐ의 논리와 ⓑ의 근거에 대하여 각각 논술하라.
2. 소수의 개수가 무한하다는 유클리드의 증명을 부연하여 논술하라.
3. 매미가 소수를 주기로 생활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두 가지 학설에 대해 각각의 근거와 예를 사용하여 논술하라.
◆ 다음은 어느 신문기사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일본 전자업체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2000년대 들어 한국의 대표적인 OO전자에 ‘전자왕국의 맏형’의 위상을 무참히 짓밟혔던 일본 전자업체들이 이제 칼날을 갈고 반격에 나서고 있다. 왕년의 ‘가전 황제’ 소니가 공식적으로 가전 명가 부활을 선언한 가운데 파나소닉 브랜드로 유명한 마쓰시타, LCD-TV의 최강자 샤프, 전통의 히타치와 미쓰비시 등도 지난 몇 년간의 설움을 털고 명성 찾기에 올인했다. 소니와 파나소닉의 가격할인 공세에 시달리던 OO전자는 지난해 말부터 가만히 당할 수는 없다는 각오 아래 비장의 무기를 준비했다. 그것은 바로 ‘디자인’이다. |
OO전자의 기획팀에서는 젊은 소비층을 공략하기 위한 디자인을 갖춘 제품을 출시하기 위하여 네 가지 모델 A, B, C, D를 시험적으로 준비하여 소비자의 반응을 조사한 후 주력 상품을 결정하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예비 소비자 100명을 대상으로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는 다음 표와 같다.
예비 소비자 수 선호도 |
30명 |
28명 |
17명 |
14명 |
11명 |
1위 |
A |
C |
A |
B |
D |
2위 |
D |
D |
C |
C |
C |
3위 |
B |
A |
D |
D |
A |
4위 |
C |
B |
B |
A |
B |
<문항 2: 35%, 글자 수 제한 없음>
위의 선호도 조사 결과를 근거로 다음 질문에 답하라.
1. 모델 A를 주력 상품으로 결정할 수 있는 타당한 이유를 제시하라.
2. 모델 A가 반드시 주력 상품이 될 필요가 없는 이유를 나름의 근거를 바탕으로 설명하고, 그에 대한 어떤 대안이 가능한지 서술하라.
3. 선호도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회사의 주력 상품을 결정하는 가능한 방법들을 예를 들어 논의하라.
<문항 3: 30%, 800~1000자>
다음 제시문을 읽고 [다]의 관점에서, [나]를 반박할 수 있는 사례를 동원하여, [가]의 관점을 비판적으로 논술하라.
[가] ① 모든 생물은 해로운 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어떤 자유는 반사(反射)라는 비교적 단순한 행동으로 얻어진다. 사람은 재채기를 해서 기도에 끼어 든 이물(異物)을 제거한다. 소화가 안 되거나 유독한 물질이 뱃속에 있으면 토해서 이를 밖으로 내보낸다. 이보다 더 복잡한 양식을 가진 행동도 비슷한 효과를 보인다. 사람은 갇히면 버둥대고 도망치려 한다. 위험에 맞부딪히면 위험의 원인으로부터 도망가거나 이를 공격한다. 이런 행동은 생존에 유용한 것이기에 진화되어 왔을 것이다. 이는 호흡, 땀 흘림, 또는 음식의 소화에 못지않은, 인간에게 주어진 유전적 소질의 일부이다. 더욱이 조건화(conditioning)를 통해, 진화에서는 어떤 역할도 할 수 없었을 새로운 대상에 관한, 이와 비슷한 행동을 습득할 수 있다. 여기서 든 예들은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에서의 사소한 예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 의의가 크다. 우리는 이들을 자유를 사랑해서 생긴 행동으로 보지 않는다. 이들은 진화 과정을 통해 개체나 종(種)에 대한 여러 위험을 줄이는 데 유용했던 행동 형태에 불과하다.
또 다른 방식으로 해로운 자극을 약화시키는 행동이 있는데 이것은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행동은 조건반사의 형태로 습득되는 것이 아니라 조작적 조건화(operant conditioning)라는 다른 과정의 산물로 생겨난다. 어떤 행동에 일정한 종류의 결과가 뒤따르게 되면 이 행동이 다시 일어날 확률이 높아지는데 이와 같은 효과를 갖는 결과를 강화물(强化物; reinforcer)이라 한다. 예를 들면 굶주린 생물체에게 먹이는 강화물이 된다. 즉, 생물이 어떤 행동을 한 뒤에 먹이를 얻게 되면 배고플 때마다 다시 그 행동을 하게 된다.
② 자유를 추구한 문학들은 대개 통제자로부터의 도피 내지 이들에 대한 공격을 독려했다. 그런 문학은 통제에 관계된 것은 모조리 혐오적인 것으로 형상화함으로써 그런 목적을 달성했다. 이는 또 인간 행동을 조작하는 자는 가차 없이 사람을 착취할 생각 밖에 없는 악한으로 몰았다. 통제는 자유의 반대임이 분명하고 따라서 자유가 좋은 것이면 통제는 마땅히 나쁜 것일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한 가지 이들이 몰랐던 것은 혐오적 결과가 전혀 없는 통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중략… 문제는 사람을 통제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다. 어떤 종류의 통제로부터 해방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중략… “모든 통제가 나쁘다”는 근거 없는 통념만 없다면, 비사회적 환경을 다룰 때와 똑같이 사회적 환경도 간단히 다룰 수 있다. 기술이 인간을 물리적 환경의 어떤 혐오적 양상으로부터 해방시켜 준 것이 사실이지만, 환경 자체로부터 인간을 완전히 해방시킨 것은 아니다. 우리가 주변의 세계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되, 다만 이 의존 관계의 성질을 바꾸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사회 환경에서 혐오 요소를 최대한 없애고 싶다 해서 환경을 파괴하거나 그것으로부터 도피할 필요는 없다. 환경을 재설계하면 된다.
인간의 자유를 위한 투쟁은 자유로워지려는 의지 때문이 아니라 인간 유기체의 특징을 이루는 어떤 행동 과정 때문에 있는 것이다. 이 행동 과정의 주된 효과는 환경의 혐오적인 부분의 회피 또는 그로부터의 도피이다. 물리학적, 생물학적 공학은 주로 자연적 혐오자극을 상대해 왔다.
③ 실험 분석은 행동의 결정요인을 자율적 인간으로부터 환경으로 돌린다. 이런 환경은 종(種)의 진화와 종의 각 구성원이 습득하는 행동의 목록을 결정한다. 초기 환경론자들은 환경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설명하지 못했기에 무력했고, 그런 입장들은 자율적 인간이 활약할 여지를 많이 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 때 자율적 인간에게 돌려졌던 기능들을 환경 조건이 담당하게 되었는데 이에 따라 몇몇 새로운 의문들이 등장하게 된다. 그렇다면 인간은 ‘폐지’되어야 하는가? 물론 하나의 종으로서나, 성취를 하는 개인으로서는 폐지되지 않는다. 폐지되는 것은 자율적인, 내적 인간(the inner man)이며 이것은 하나의 진보라고 할 수 있다.
― B. F. 스키너, 『자유와 존엄을 넘어서』
[나] 스키너의 실험이 비록 다른 학자들의 연구에서 파생된 것이라 하더라도,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오늘날까지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스키너의 행동 기법이 주립 요양시설에 활용되었고, 정신병 중증 환자에게도 유용하게 쓰였다. 치유 불가능한 정신분열증 환자들까지 스키너의 조작적 조건화 원리 덕분에 자신의 손으로 옷을 입고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수저를 한 번 들 때마다 담배 한 개비가 보상으로 주어지는 방식이 적용되었던 것이다. 20세기 후반의 임상학자들은 공포증과 공황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스키너의 조작화 이론에서 발전시킨 체계적 둔감법(단계적으로 불안에 노출시켜 예민함을 점차 낮추는 치료법)과 자극 범람법(공포증 환자에게 공포의 원인을 직접 대면케 하는 치료법)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행동 치료는 오늘날에도 널리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다. …중략…
스키너의 행동주의를 활용하여 교통안전 문제를 해결한 실험 심리학자 브라이언 포터는 이렇게 말한다. “행동주의는 결코 악한 것이 아닙니다. 아직 죽지도 않았고요. 스키너 박사의 행동주의는 사회적으로 너무나 유익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우리는 그의 행동 기법을 이용하여 위험한 운전 행위를 줄일 수 있었지요. 박사 덕분에 빨간 신호등일 때 달리는 자동차의 비율이 10~12퍼센트 줄었으니까요. 뿐만 아닙니다. 스키너 박사 덕분에 사람들이 처벌보다 보상에 더 많이 반응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스키너 박사의 행동 테크닉은 수많은 불안 장애 환자들이 공포증을 극복하거나 없애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퇴행성 자폐증 환자들이 자신의 손으로 깨끗한 셔츠를 입고 음식을 먹는 방법을 배운 것도 박사 덕이고요, 아이들에게 긍정적 강화를 주는 방법을 알게 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긍정적 강화의 힘을 강조했기 때문에 행동의 형성에 있어 처벌보다 보상이 더 많은 작용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정치적으로도 엄청난 함축성을 지닐 수 있습니다. 정부가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요. 참으로 희한하고 우회적인 방식이지만, B학점을 받아야 할 학생에게 A학점을 주고,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자에게 일을 잘하고 있다고 계속 이야기해주는 것이 효과가 뛰어나다는, 오늘날 흔히 알고 있는 지식도 다 박사에 의해 만들어진 겁니다. 우리는 그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박사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간에 실제로 그는 새로운 시대를 살고 있어요.”
― 로렌 슬레이터,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다] 만약 모든 이성적 존재에 자유를 부여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없다면, 어떤 근거에서라도 우리 인간의 의지에 자유를 부여하는 것은 충분치 않다. 왜냐하면 도덕성은 오직 이성적 존재로서의 우리에게만 법칙이 되므로 모든 이성적 존재에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덕성이 오직 자유라는 속성에서 도출되어야 하므로, 자유는 모든 이성적인 존재의 속성이라는 것이 증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한다고 생각되는 어떤 것을 통해 자유를 입증하는 것은 충분치 않고, 오히려 자유가 의지를 갖춘 이성적인 존재 일반의 활동성임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오직 자유라는 이념 아래서만 행위할 수 있는 존재 각자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실천적인 관점에서 실제로 자유롭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이성적인 존재에게는 자유와 분리할 수 없도록 결합되어 있는 모든 법칙이 적용된다. 이제 나는 우리가 의지를 가진 모든 이성적인 존재 각자에게 필연적으로 자유의 이념 또한 부여해야 하는데, 이성적인 존재는 오직 그 이념 아래에서만 행위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런 존재에서 실천적 이성, 즉 자기의 대상에 대해 인과성을 갖는 이성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릇, 자기 자신의 의식을 가지면서 그의 판단들에 대해 외부로부터 지도를 받는 이성을 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주체는 판단의 결정을 그의 이성이 아니라 충동에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성은 외부의 영향에서 독립적으로, 그 자신을 그의 원리들의 창시자로 간주해야만 한다. 따라서 실천적 이성, 또는 이성적인 존재의 의지로, 이성은 스스로 자유롭다고 여겨야 한다. 다시 말해 이성적인 존재의 의지는 오직 자유의 이념 아래에서만 자기 자신의 의지일 수 있으므로, 자유의 이념은 실천적인 관점에서 모든 이성적인 존재에게 주어져야 한다.
― 칸트, 『도덕형이상학 정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