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담 속에 숨어있는 이야기 : ㅂ ~ ㅅ
ㅂ
바람 따라 구름 가고 구름 따라 용이 간다.
둘이 정답게 붙어 다닌다.
명종 때 단천령 이억순은 피리를 잘 불고 영변 기생 초향이는 가야금을 잘 타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한 번도 직접 대면한 적이 없었다.
어느 해 단천령이 영변에 갔다가 일부러 거지 차림을 하고 초향의 집을 찾아갔다.
그는 초향의 집 앞에 가서 거적대기를 깔고 누워 있었다.
밤이 이윽해지자 초향이는 가야금을 타기 시작했다.
때를 놓칠세라 단천령은 초향의 가야금 자락에 맞추어 피리를 불었다.
초향이는 단 한 번도 단천령의 피리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직감적으로 단천령이란 것을 알고 버선발로 쫓아 나왔다.
그 후 두 사람은 함께 묘향산으로 유람을 가더니 바람 따라 구름 가고, 구름 따라 용이 가듯이, 정답게 붙어 다니며 음악으로 서로를 아울렀다고 한다.
바람이 불다 불다 그친다.
성이 나 펄펄 뛰어도 내버려두면 제 풀에 사그라든다.
옛날에 관아의 하인 하나가 사또 앞에 밥상을 놓다가 그만 방구를 “뽕~”하고 뀌고 말았다.
사또는 성이 나서 물었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인은 급해서 한다는 소리가 “예, 뽕구새 소립니다요.” 하자, 이 대답을 들은 사또는 더 성이 나서 펄펄 뛰었다.
“뭐 어째, 뽕구새 소리? 뽕구새 소리라면 뽕구새도 있겠구나. 그럼 뽕구새를 당장 잡아오너라. 못 잡아오면 네 당장 네 목을 치리라!” 하고 엄하게 명했다.
하인은 사또 앞에서 물러 나와 자기 집에 한 사흘쯤 숨어 있다가 사또의 화가 풀어질 즈음에 사또 앞에 나타났다.
“황송합니다. 사또, 뽕구새를 잡으러 사흘이나 돌아다녔는데, 뽕구새가 없어서 그 엄지가락을 잡아왔습니다요” 하고 말하곤 종이에 돌돌 말아서 싼 것을 내밀었다.
사또가 그걸 펴자 그 안엔 마른 똥이 들어 있기에, “허~허! 그놈 참” 하고 웃어 넘겼다고 한다.
바로 못가면 둘러 가지
바로 못 가면 둘러가는 길이 있듯이, 무슨 일이든지 다 하는 수가 있다.
태종 때 이조판서 허성은 청렴결백하고 고집이 세어서 인사 청탁하는 사람이 가까운 곳으로 가기를 원하면 먼 곳으로 보내고 남쪽으로 가기를 원하면 북쪽으로 보내는 대쪽 성질이 있었다.
그때 일운이라는 능구렁이 같은 중이 단속사 주지로 가고 싶어서 하루는 허 판서의 심복을 찾아가 넌지시 말을 비쳤다.
“이번 승려들의 인사이동 때 평양의 영명사는 경치가 좋은 곳이니 구경삼아 그런데 한번 가봤으면 좋겠지만, 만일에 영남에 있는 단속사 같은 데로 보내면 큰일이지.”
며칠 후 아니나 다를까 일운은 단속사 주지로 발령이 났다.
일운은 사령장을 받아들고 “그러면 그렇지. 아무리 고집쟁이라도 나 같은 늙은 도적의 술책을 당할 수가 없지.” 하며 웃더란다.
반드럽기는 삼년 묵은 물 박달 방망이
뺀질거리며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사람이다.
옛날에 일이라곤 할 줄도 모르면서 뺀질거리기만 잘하는 며느리가 또 낮잠을 자고 있어서 시어미가 깨웠다.
“얘, 해는 짧은데 바느질은 언제 하려고 잠만 자냐?”
“해가 짧다구요? 짧기는커녕 둥글기만 합디다.”
“얘, 네 말이 참 무던하구나.”
“말이 무던하다 해도 이 말(마을)에는 기와집 하나 없던걸요.”
“쯧쯧, 한 말이나 질라!”
“한 말 지면 가볍고 두 말 지면 무겁지요.”
“넌 동지섣달 긴긴 밤에 그런 궁리하느라 잠을 밑졌겠구나?”
며느리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
“요새 밤이 길다구요? 어제 애비가 장에 가서 밤 한말 사온 걸 보니 동글동글하기만 합디다.”
하고 끝까지 대꾸를 달아서 시어미의 속을 다 뒤집어 놓았다 한다.
반잔 술에 눈물 나고 한잔 술에 웃음 난다.
대접을 조금만 소홀히 해도 서운하고, 조금만 잘해줘도 좋아하는 것이 인간이다. 성의 있게 대접하라는 뜻이다.
옛날에 술 좋아하는 사람이 이웃집에 세배를 갔다.
그런데 상을 차려오는 걸 보니 술잔이 너무 작아서 술 먹을 마음이 나지 않았다.
이 사람이 술잔을 들고 입에 대지는 않고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으니까 주인이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아무 말도 않고 그대로 눈물만 흘렸다.
이 사람은 잠시 그렇게 있다가 “다른 게 아니라, 일전에 우리 형님이 술을 자실 때 술잔이 너무 작아 그게 목구멍으로 넘어가서 돌아가셨는데, 이제 작은 술잔을 보니까 형님 생각이 나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구려.” 하고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
주인이 눈치를 채고 곧 큰 술잔을 가져와 가득 따라 주었더니, 그 제서야 이 사람은 아뭇소리도 않고 술만 마시더란다.
밤비에 자란 사람 같다.
햇빛을 못보고 자란 사람같이 어리석고 무능하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점쟁이한테 가서 점을 쳐봤더니 명이 쉰 살 밖에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쉰 살이 되던 해에 “금년만 지나면 죽을 텐데 이까짓 재산이 다 무슨 소용이냐?” 하며 재산을 죄다 흩어서 남들한테 다 나눠주었다.
그런데 그해가 다 넘어가도 죽지를 않았다.
그러니 먹을 것도 없고 입을 것도 없어서 고생이 막심했다.
이 사람은 그 제서야 속은 줄을 알고 점쟁이한테 쫓아가서 “네 놈 때문에 이 고생을 하니 내 재산 물어내!” 하고 고함을 쳤다.
그러나 점쟁이는 “당신 명운은 원래 쉰 살이지만, 재물을 흩어서 적선했기 때문에 하늘이 기특히 여기고 명을 일흔으로 늘려놔서 안 죽고 살고 있는 거요.” 하고 둘러댔다.
이 사람은 점쟁이한테 또 속는 줄도 모르고 그러냐며 고개를 끄덕거리더란다.
밤새도록 울다가 누가 죽었느냐고 한다.
애써 일을 하면서도 그 일의 내용이나 영문을 모르고 맹목적으로 하는 행동을 비꼴 때 쓰는 말이다.
지식이 많은 사람이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는데도 정작 핵심이 무엇인지 모를 경우가 있다.
옛날 어떤 선비가 글재주도 없으면서 늘 붓을 가지고 다니며 유식한 체 자랑하고 다녔다.
사람들은 그를 박사라고 치켜 주었지만 속으로는 비웃었다.
어느 날 이 선비가 나귀를 한 마리 사게 되었다.
당시에는 물건을 사는 쪽에서 계약서를 써 주는 것이 관례였지만, 나귀를 산 선비는 종이를 석 장이나 쓰고도 마무리할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계약서를 쓰는 데 너무 오래 걸리자 나귀를 판 사람이 빨리 계약서를 써 달라며 재촉을 하자, 이제 나귀 驢(려)자를 쓰려고 하는데 왜이리 재촉하느냐며 무식하다고 되레 호통을 쳤다.
이 이야기는 중국 육조시대(六朝時代)의 안지추(顔之推 531~591)가 쓴 顔氏家訓(안씨가훈)의 면학(勉學)편에서 업하(鄴下 ; 鄴은 땅이름 업)라는 지역의 속담으로 소개하면서, ‘박사가 나귀를 샀는데 종이 석 장을 다 쓰도록 나귀(나귀려驢 자)를 못 썼다. 만약 너희에게 이런 스승을 모시게 한다면 기가 막힐 것이다(博士買驢 書券三紙 未有驢字 使汝以此爲師 令人氣塞 박사매려 서권삼지 미유려자 사여이차위사 령인기색)’며 가르치는 내용이다.
‘나귀를 팔고 사는데 계약서 석 장을 글로 가득히 채워 넣었지만, 정작 그 주체인 나귀 驢(려) 글자가 없었다.’는 사자성어인 삼지무려(三紙無驢) 또는 박사매려(博士賣驢)는 여기서 유래 하였다.
* 밤새도록 통곡해도 어느 마누라 초상인지 모른다.
밥군 것이 떡군 것보다 못하다
바꾼 것이 원래 있던 것보다 못하다는 말인데, ‘바꾼 것’을 ‘밥군 것’으로 익살스럽게 표현했다.
옛날에 어떤 농사꾼이 채소 농사를 지었는데, 어른 몸집만한 큰 무가 나왔다.
그는 큰 무를 사또한테 바쳤다.
사또는 농사꾼의 마음씨가 고마워서 하인을 불러 물었다.
“거 요새 들어온 게 뭐가 있나?”
“예, 송아지 한 마리가 있습니다.”
사또는 그 송아지를 농사꾼에게 주었다.
근처 사람 하나가 그 소문을 듣고 송아지 한 마리 바치면 논마지기나 얻어가지겠다 싶어서 송아지 한 마리를 끌고 가서 사또한테 바쳤다.
사또는 기뻐서 하인을 불러 물었다.
“요새 뭐 들어온 거 없느냐?”
“요전에 들어온 무밖에 없습니다.”
결국 그 사람은 송아지를 바치고 겨우 무 한 개를 얻었다.
밥그릇 앞에서 굶어 죽을 놈
어찌나 게으른지 밥을 먹여주지 않으면 굶어 죽을 놈이란 말이다.
옛날에 한 사람이 보따리에 떡을 싸가지고 길을 떠났다.
그는 배가 고팠지만 워낙 게을러서 떡을 꺼내 먹지도 않고 그냥 가고 있었다.
그때 마침 저쪽에서 한 사람이 걸어왔다. 그는 옳다 됐다 하고, “여보시오, 내 잔등에 진 보따리에서 떡을 꺼내 내 입에 좀 넣어 주구려.” 하고 부탁을 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여보, 내가 당신 보따리 안에 있는 떡을 꺼내서 당신 입에 넣어줄 정도로 일을 할 것 같으면 내 갓끈 풀어진 거 매고 가겠소." 하고는 “앗, 내 갓 넘어가겠다! 앗, 내 갓 넘어가겠다!” 하며, 갓 끈 풀어진 것도 매지 않고 그냥 가더란다.
밥은 굶어도 속이 편해야 산다.
배는 고파도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 낫다.
옛날에 들에 사는 쥐가 인가에 사는 쥐를 찾아갔더니 먹을 것은 맛나고 풍부한데 사람과 고양이가 들끓어 불안해 견딜 수 없었다.
들쥐는 “에이, 여기는 살 데가 못되는구나. 내가 사는 곳이 배는 고파도 속이 편하지."하며 자기가 살던 들로 돌아가 버렸다고 한다.
밥 한 알이 귀신 열을 쫓는다.
밥을 잘 먹는 게 만병을 쫓는 길이다.
사마중달은 제갈공명에게 연전연패했으나 제갈공명이 밥을 적게 먹는다는 소문을 듣고는 “공명이 먹는 건 적게 먹고 하는 일은 많으니 어찌 오래 지탱하랴?” 하며 좋아했다.
과연 그 말대로 제갈공명은 얼마 안 있어 죽었다고 한다.
버리댁이 효도한다.
버린 자식이 효도한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딸만 여섯을 낳았다.
그는 딸이라면 지겨워서 머리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그런데 일곱 번째 낳은 애기도 딸이어서 뒷산 대밭에다 버렸다.
지나가던 사람이 이 애기를 주워 다 길렀는데 버린 애기라고 해서 이름을 버리댁이라고 지었다.
버리댁이는 열 다섯 살 나던 해 자기 출생의 비밀을 알고 집을 찾아간다.
그러나 집에 도착해보니 아버지는 이미 삼년 전에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막 숨이 져서 언니들이 와서 울고 있었다.
버리댁이는 언니들에게 어머니를 묶지도 말고 관 속에 넣지도 말라고 이르고는 죽은 사람을 살리는 약을 구하러 떠났다.
버리댁이는 밭가는 사람의 밭을 갈아주고, 베 짜는 사람의 베를 짜주고, 머리 센 사람에게 자신의 검은 머리를 베어주고, 갖은 고생 끝에 죽은 삶을 살리는 꽃 세 송이를 얻어 집으로 돌아왔다.
버리댁이 집으로 돌아와서는 뼈살이 꽃을 시체에 문질러서 뼈를 살리고, 살살이 꽃을 문질러서 살을 살리고, 숨살이 꽃을 코에 대서 숨을 살려서 어머니를 살려냈다.
* 바리때기 공주 이야기는 이 버리댁이를 공주로 승격시킨 것이다.
버린 밥으로 잉어를 낚는다.
밑천을 들이지 않고 이익을 본다.
옛날에 호랑이가 많은 산골에서는 겨우내 먹다 남은 시어터진 깍두기로 호랑이를 잡았다.
먼저 시어빠진 깍두기를 바가지에 담아 뒷마당 구석쟁이에 놓아뒀다.
그러면 먹을 게 귀한 겨울이라 호랑이가 뭐 먹을 것이 없나 하고 산에서 내려와서는 이걸 보고 여지껏 못 보던 것이 새로 나와 있으니까, 깍두기를 한 두 개를 집어 먹는데, 그 깍두기가 너무 시니까 “아이, 시다.” 하며 눈을 감고 머리통을 좌우로 흔들흔들 흔든다.
이때 사람이 가만히 서서 잘 드는 칼날을 호랑이 얼굴에다 대고 있으면 얼굴이 오리 갈기(목덜미에 난 긴 털)가 다 째진다. 그런 다음에 호랑이 꼬리를 잡고 망치로 뒷통수를 치면서 “이놈!” 하고 소리를 지르면 호랑이는 놀라서 화다닥 뛰어나가는데, 가죽만 남기고 알몸만 빠져나가 벌거벗은 호랑이가 추워서 얼어 죽으면 주워오는 방법으로, 옛날의 산골에서는 시어빠진 깍두기로 이렇게 호랑이를 잡았다고 한다.
범 잡아먹는 담비가 있다.
아무리 강한 자에게도 무서운 천적이 있다.
옛날에 한 여자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받고 급히 고개 너머 친정으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고개 위에는 큰 범이 있어서 넘어갈 재간이 없었다.
여자는 생각다 못해 머리를 풀어헤치고 옷을 벗고 거꾸로 기어서 고개로 올라갔다.
범이 보니까 이상한 짐승이 올라오는데 앞에도 입이 있고 뒤에도 입이 있고 시커먼 꼬리 밑에 눈코가 달려있고 생긴 것이 희한하거든, 범이 가만히 생각해보다가 “야, 이게 범 잡아먹는 담비인가 보다.” 하고는 꽁지가 빠지게 도망갔다고 한다.
벙어리 예장 받은 듯
말은 안하고 싱글벙글 웃기만 하는 모습.
신부가 예장을 받는 것은 참으로 가슴이 울렁거리고 기다림에 설레이는 일이다.
어떤 처녀가 시집을 가는데 한 열흘만 있으면 신랑 집에서 예장이 온다니까, 처녀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렇지만 이 기쁜 마음을 남한테 말할 수는 없고 그렇지만 또 말은 하고 싶고 해서 몸이 닳아 있는데, 마침 뒷간에 가니 강아지가 꼬리를 조랑조랑 흔들며 처녀 앞에 와서 앉았다.
처녀는 강아지한테 “얘, 난 열흘만 있으면 신랑 집에서 예장이 온단다.” 하고 자랑했다.
그때 강아지가 입을 벌리고 “아앙~” 하고 짖었다.
그러니까 처녀는 “아아~흐레가 아니고 열흘이야.” 했다.
그래도 강아지가 “아앙~아앙~” 하고 짖으니까, 처녀는 “아이, 아아~흐레가 아니고 열흘이야, 내가 너보다 더 잘 안대이.” 하더란다.
* 예장 : 혼인 때에 신랑 집에서 예단에 붙여 신부 집으로 보내는 편지.
벼룩 등에 여섯 간 대청 짓겠다.
하는 짓이 좀스럽다.
옛날에 강진 사또가 서울에 가서 아흐레를 있는 동안 매일 귤을 사 먹었다.
아전이 하루에 1전씩 내서 귤을 사오는데, 1전을 내면 장사꾼은 큰 귤 하나와 작은 귤 하나를 주었다.
귤을 사다주면 사또는 큰 귤을 먹고, 나머지 작은 귤은 따라간 통인 아이가 먹었다.
그런데 강진에 돌아와서 아전이 장부에 9전을 기록하니 사또는 펄쩍 뛰면서 “나는 반만 먹었으니 5전만 달아놓아라.” 하였다.
할 수 없이 아전이 통인 아이에게 4전을 물리자, 아이는 “제기랄, 이럴 줄 알았으면 먹지도 않았을 거요. 사또가 먹은 것이 어째 5전어치만 될까?” 하고는 주머니에서 4전을 꺼내 침을 뱉어서 던져 주더란다.
변죽을 치면 복판이 운다.
넌지시 암시를 주기만 해도 알아듣는다.
옛날에 무식한 형제가 서로 멀리 떨어져 살았다.
하루는 형이 누룩이 필요해서 아우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무식해서 글로 써 보내지는 못하고 종이에다 누룩을 큼지막하게 그려 보냈다.
아우가 형의 편지를 받아보고, 아하 형님이 누룩을 보내달라고 편지했구나 하고, 누룩을 구하려고 돌아다녔다.
그러나 좀처럼 구할 수가 없어서 누룩 그린 편지에다 작대기를 하나 쭉 그어서 보냈다.
형이 동생이 보낸 편지를 받고는 “이놈 봐라. 누룩이 없다고 보내지 않는구나. 이놈 가만 안 두겠다.” 하고서 종이에다 빨간 점, 파란 점을 드문드문 찍어 보냈다.
아우가 이를 받아보고는 “어허, 형님께서 누룩을 안 보내주었다고 성이 나서 불그락 푸르락 하셨구나, 이거 안 되겠다하고, 백지에다 항아리 하나 하고 복숭아 하나를 그려서 보냈다.
형은 답장을 받아들고 “흥, 지가 그러면 그렇지, 항복 안 할 수가 있나?” 하며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란다.
보름달이 밝은 줄 몰랐더냐.
누구나 아는 사실을 몰랐더냐? 열 달 만에 아이 낳을 줄 몰랐던가.
옛날에 까치가 높은 나무 위에 새끼를 낳아서 기르고 있는데, 건너 산골짜기에 사는 여우가 와서 “새끼 한 마리를 주지 않으면 올라가서 너까지 잡아먹겠다.” 고 으름장을 놓았다.
까치는 무서워서 새끼 한 마리를 내려 보냈다.
그 다음부터 여우는 날마다 와서 새끼를 빼앗아 먹는데, 결국 새끼가 한 마리밖에 남지 않자 까치는 ‘이것마저 빼앗기면 나는 어떻게 사나?’ 하고 슬피 울었다.
지나가던 왁새가 왜 우느냐고 묻자, 까치는 제 억울한 사정 얘기를 다 했다.
왁새는 이 말을 듣고 “야, 너 멍청한 놈이구나. 여우는 눈(누운) 낭구(나무)도 못 오르는데, 선(서 있는) 낭구(나무)를 어떻게 오르간(겠냐)? 넌 아직 그런 것도 몰랐단 말이냐?” 까치는 그 제서야 깨닫고 다음부터는 여우에게 새끼를 주지 않았다고 한다.
보약도 쓰면 안 먹는다.
제게 이익이 되는 것도 당장 귀찮으면 싫어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그러니 때로는 편법도 써야 한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이런 게 있다.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데 집에 불이 났다.
어른들이 소리를 질렀다.
“불이야!”
그러나 아이들은 장난에 정신이 팔려서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때 한 어른이 “여기 더 좋은 장난감이 있다.” 하고 소리치자 아이들은 즉시 나온다는 것이다.
복은 누워서 기다린다.
복은 아글 바글 속을 태운다고 오는 게 아니라 느긋하게 기다려야 온다.
명종 때 김개라는 부자가 벼슬 한번 해보겠다고, 누에고치 2백석을 영의정 윤원형에게 바쳤다.
윤원형은 낮술을 먹고 졸다가 “이번 비인 고을에는.....” 하고 서두를 꺼내놓고는 다시 졸았다.
윤원형은 비어 있는 고을이란 뜻으로 말했지만, 옆에서 받아 적던 서기는 비인 고을로 알아듣고 비인현감 넉자를 써놓고 “네, 비인 고을에는 누구를 쓰시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윤원형은 “고치... 고치...” 하고 다시 코를 골았다.
원형은 누에고치를 바친 김개에게 빈 고을 한 자리를 줄 생각으로 한 말이었으나 서기는 고치라니 누구를 말하는가 하고, 관원명부를 찾아보니 제주 사람으로 참봉을 지낸 고치라는 사람이 있거든, 그래서 이 사람인가보다 하고 발표를 해버렸다.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고을 하나를 얻은 고치는 “하하, 이래서 복이란 누워서 기다리는 법이라니까.” 하더란다.
부모 속에는 부처가 들어 있고 자식 속에는 앙칼이 들어 있다.
부모는 무조건으로 자식을 사랑하나 자식은 불효할 따름이다.
아버지는 방탕한 자식이 돌아오니까 달려가 끌어안고 가장 좋은 옷과 신발을 신기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베풀어주었다.
그러나 그 형은 밭에서 돌아오다가 집 가까이에서 풍악 소리와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리니까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려 하지도 않았다.
아버지가 나와서 달래자 큰아들은 “나는 아버지 곁에서 뼈 빠지게 일했건만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 주지 않으시더니, 창녀한테 빠져서 아버지 재산을 다 날려버린 동생이 돌아오니까 그애 한테는 살찐 송아지까지 잡아주시다니요!” 하고 투덜거렸다.
아버지는 이 말을 듣고 “얘야, 너는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모두 네 것이 아니냐? 그런데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니 잃었던 사람을 되찾은 셈이다. 그러니 이 기쁜 날을 어찌 즐기지 않겠느냐?” 하더란다.
부자간에도 돈을 세어주고 받아라.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돈 계산은 분명히 해야 한다.
개성 사람들은 돈 계산이 깨끗하기로 유명하다.
옛날에 개성상인의 아들이 아버지에게 천냥을 꾸었는데, “제 날짜에 틀림없이 갚아야 한다.” 는 잔소리를 여러 번 듣자 약이 올라서 일전짜리로 천냥을 갚았더니, 아버지는 그 잔돈을 하나하나 다 세더란다.
부처님 궐이 나면 대를 서겠다.
부처님 자리가 비면 그 자리에 대신 앉혀도 되겠다는 말로, 인자한체하는 사람을 비꼬는 말이다.
옛날 충청도 어느 고을에 인자한 체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옆집 가족이 굶는다는 얘기를 듣고는 크게 걱정된다는 듯이, “아이고, 왜 굶는댜? 쌀 팔어다가 밥 해먹지!” 하더란다.
* 쌀을 판다 : 쌀을 사온다는 뜻이다.
북데기 속에 벼 알이 있다.
평범한 곳에 인재가 있다.
옛날에 한 임금이 신하에게 인재를 구해오라고 했다.
신하는 팔도를 돌아다녔지만 아무리 봐도 인재라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하루는 비를 피하려고 어느 촌집 처마 밑에서 쉬고 있는데, 그 집 아낙이 방앗간에서 집에 있는 조그만 아이에게 “빗자루 좀 가져와라.” 하고 심부름을 시켰다.
아이는 비가 좌락 좌락 오니까 빗자루를 개 허리에다 매고 어머니보고 개를 부르라고 했다.
어머니가 “워리 워리.” 하고 부르니까 개는 방앗간으로 달려갔다.
신하는 감탄하고 이 아이를 데리고 서울로 갔는데, 임금은 여러 가지를 물어보고는 크게 기뻐하며 아이를 양자로 삼았다고 한다.
붓은 칼보다 강하다.
붓은 칼로서도 꺾을 수 없다.
중국의 춘추시대에 장수 최저가 제나라의 장공을 죽이고 정권을 잡았다.
최저는 태사 백에게 제장공이 학질로 죽었다고 쓰라 했다.
그러나 백은 실록에다 “최저가 그 임금을 죽였다.” 고 썼다.
최저는 대노하고 태사 백을 죽였다.
이때 백에게는 중, 숙, 계 세 동생이 있었는데, 이들도 사관이었다.
최저는 중에게 다시 쓰라고 했다.
그러나 중 역시 형과 똑같이 기록했다.
최저는 중도 죽이고, 그 동생 계에게 다시 쓰라고 했다.
그러나 계도 세 형과 똑같이 썼다.
최저는 기가 막혀 기록을 고칠 것을 포기하고 죽간을 던져주었다.
계가 기록을 안고 사관으로 돌아가다가 이쪽으로 급히 오는 남사씨와 만났다.
계가 왜 오느냐고 물었더니 남사씨는 “난 그대 형제가 다 죽음을 당했다는 소문을 듣고 이번 사건이 후세에 전해지지 못할까 염려하여 죽간을 가지고 오는 길이요.” 하더란다.
즉, 계 마저 죽으면 자기가 사실대로 실록을 기록 하겠다는 것이다.
* 죽간 :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 쓰던 종이 대신 글을 쓰던 대나무 조각.
붙들 언치 걸 언치
말을 탈 때 안장을 붙들어 앉히고 그 위에 걸터앉는다는 데서 나온 말로, 남의 덕을 보려면 우선 그를 중요한 자리에 추천하여 앉게 해서 내 편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조선 중기에 오면 과거에 급제한 사람은 많고 벼슬자리는 적어서 자리싸움이 치열해졌다.
조정 관리의 추천권은 이조 전랑이 갖고 있었는데, 누가 이조 전랑이 되느냐에 따라 벼슬의 판도가 바뀌었다.
선조 때 김효원이 이조 전랑의 물망에 오르자, 외척 심의겸이 반대하고 나섰다.
이에 김효원을 따르던 무리와 심의겸을 따르던 무리 간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는데, 이것이 당쟁의 시작이다.
이때 김효원의 집은 동쪽에 있고 심의겸의 집은 서쪽에 있어서 김효원 패를 동인, 심의겸 패를 서인이라 불렀다고 한다.
비단 대단 곱다 해도, 말같이 고운 것이 없다.
이 세상에 말보다 고운 것은 없다.
옛날에 뒷간에 가기가 귀찮아서 부엌에서 오줌을 누는 아이가 있었다.
부엌신인 조왕은 더러워 견딜 수가 없으니 호랑이에게 물려가게 해달라고 산신령에게 빌었다.
때는 추운 겨울날, 마침내 호랑이가 와서 문밖에서 동정을 살피고 있는데, 아이가 부엌에다 오줌을 싸며 혼자 말을 했다.
“나는 집안에 있는데도 이렇게 추운데 산에 계신 호랑이님은 얼마나 추우실까?” 호랑이는 야, 저렇게 마음씨가 곱고 말을 이쁘게 하는 얘가 어디 있을까! 감탄하고는 아이를 잡아 먹기는 커녕 이웃 동네에서 제일 이쁜 처녀를 물어다 색시 감으로 주었다고 한다.
비싼 놈의 떡 안 사먹으면 그만.
제가 싫으면 안하면 그만이다.
옛날에 도량이 큰 사람이 살았는데 그는 평생토록 노여움을 나타내보인 일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도 허물이 있었는데, 그것은 음식이 지저분하면 먹지 않을 따름이었다.
하루는 집안 식구들이 그의 도량을 시험해 보려고 티끌을 국속에 집어넣었더니, 그는 밥만 먹었다.
왜 국을 먹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어쩐지 고기가 먹기 싫어서 그런다.” 고 대답했다.
또 하루는 밥에 검정을 얹어놓았더니 그는 “어쩐지 밥이 먹기 싫으니 죽을 가져오라.” 고 했다.
빌어는 먹어도 다리 아래 소리는 하기는 싫다.
빌어는 먹어도 굽신거리기는 싫다.
옛날에 한 정승 집에 생전 가도 절을 하지 않는 뼛버드름한 하인이 있었다.
하루는 정승이 보다 못해서 “이놈아, 너는 왜 상전을 보고도 절을 하지 않느냐?” 하자, “절요? 아까 들어올 때 문 밖에서 했는데요.” 라고 했다.
“그래? 네가 절을 하고 그러는지 안하고 그러는지 내가 알 수가 없으니 요 다음 부터는 내 눈 앞에서 해라.“ 하자, “예, 그렇게 하지요.” 라고 했다.
그런데 하인은 부루퉁해서 나가더니 저녁 때 들어오는 길로 정승의 눈앞에 와서 절을 하고는 일어나는 척하며, 정승의 턱을 받아버렸다.
정승은 어찌나 아픈지 눈물을 찔끔 흘리며 “이놈아, 멀찌감치 떨어져 절을 해야지, 턱 밑에 와서 절을 하는 놈이 어디 있느냐?” 하고 호통을 쳤다.
그랬더니 이놈은 “소인은 이제 절을 못하겠습니다. 멀면 멀다고 야단치시고 가까우면 가깝다고 야단을 치시니 어디 절을 하겠습니까?” 하더란다.
뺑덕어미 세간살이 하듯
살림을 마구 탕진하는 모습을 말한다.
뺑덕어미가 심봉사네 집 살림을 살면서 주로 하는 일이란 쌀 퍼주고 떡 사먹기, 의복 잡혀 술 사먹기, 코 큰 총각 술 사주기였다.
뿌리 깊은 나무 가물 안 탄다.
생각이 깊은 사람은 곤란을 당하지 않는다.
전국시대 진나라와 조나라가 금문산 아래서 오래 대치하고 싸울 때의 얘기다.
진나라 군사들은 조나라 진영 쪽으로 흘러가는 시냇물 물줄기를 끊었다.
그러나 조나라 노장군 염파는 미리 이럴 줄을 알고 저수지를 여러 개 파서 이미 많은 물을 받아놓고 있었다.
그래서 조나라 군사는 물을 마음대로 쓰고도 전혀 부족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병자년 방죽이다.
건방지다의 어원이 되는 속담이다.
고종 13년 병자년에는 큰 가뭄이 들어 전국의 방죽이 다 말랐다.
이리하여 병자년 방죽은 마른 방죽 즉, 건 방죽(건방진)이 되었다.
ㅅ
사내자식 길 나설 때 갓모 하나, 거짓말 하나는 갖고 나서야 한다.
사내는 밖에 나가면 거짓말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옛날에 소강절이란 사람이 제자 아이를 데리고 산길을 가는데, 어떤 여자가 달려오며 누가 죽이려고 쫓아오니 살려달라고 했다.
소강절은 대밭을 가리키면서 저기 가서 숨어있으라고 했다.
곧 이어 한 남자가 낫을 들고 쫓아오더니 소강절을 보고 이리 도망쳐온 여자를 못 봤냐고 했다.
소강절은 거짓말을 할 수가 없어서 대밭에 들어가 있다고 했다.
그놈은 대밭에 들어가 여자를 찍어 죽였다.
제자 아이는 이 끔찍한 광경을 보고 선생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어째서 살인하게 하십니까?”
“남자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니까 본 대로 말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 하자, 이 말을 들은 제자는 “거짓말을 않고도 여자를 살릴 수가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저를 앞세우고 눈감고 봉사처럼 뒤따랐으면 됐을 텐데 그렇게 안 해서 공연한 사람만 죽게 했지요. 선생님 따라다니다가는 저도 살인하게 생겼으니 이제부터 하직하겠습니다.” 하고는 제자 아이는 선생을 버리고 다른 데로 가버렸다고 한다.
* 갓모 : 비올 때 갓 위에 씌우는 모자.
사돈 밤 바래기
좀처럼 끝을 못 맺는 행동을 말한다.
옛날 어떤 집에 사돈이 다니러 왔다가 밤늦게 돌아가게 되었다.
주인은 너무 안돼 보여서 사돈을 집에까지 바래 다 주었다.
그러자 사돈은 미안하다며 돌쳐나와서 또 이 사람을 집에까지 바래 다 주었다.
이리하여 서로 왔다 갔다 하다가 홀딱 밤을 새웠더란다.
사람 안 죽은 아랫목 없다.
사람이 제일 많이 죽는 곳은 전쟁터가 아니라 병들거나 늙어 죽는 아랫목이다.
사람은 어디서든 죽을 수 있다는 말이다.
옛날에 한 처녀가 점을 쳐봤더니 소뿔에 찔려 죽을 괘가 나왔다.
그래서 처녀는 조심하느라 소 곁에는 가지도 않고 방에서만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처녀는 방에 앉아서 덧문을 열어놓고 문턱에 팔을 걸치고 귀 쑤시개로 귀지를 파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바람이 휙~하고 불어서 열려있던 덧문이 꽝하고 닫히면서, 처녀의 팔꿈치를 쳤다.
그러자 귀쑤시개가 처녀의 귓속에 살을 파고들어서 그것 때문에 곪아서 앓다가 죽었다.
나중에 보니까 그 귀쑤시개는 소뿔로 되어 있더란다.
사람은 일생을 속아서 산다.
사람은 행여나 하는 막연한 기대 속에서 평생을 산다는 뜻이다.
옛날에 한 선비가 과거에 꼭 될 줄 알고 과거를 보러 다녔다.
그러나 해마다 떨어졌다.
이상해서 점쟁이한테 물어보았더니, 점쟁이는 “당신은 왕이 될 팔자를 타고 나서 그까짓 과거 같은 건 안 붙는다. 과거 급제 못한다고 서러워하지 말고 왕이 될 날이나 기다려보라.” 고 했다.
그 후 선비는 왕이 될 날만 기다렸다.
그런데 왕은 되지 않고 늙어 죽게 되었다.
선비는 죽는 마당에 “짐이 붕하신다. 태자를 불러라.” 하더란다.
사발농사
집의 양식을 아끼려고 남의 밥을 얻어먹는 일.
옛날에 어떤 집에서 찰밥을 짓는데 옆집 여자가 눈치를 채고 마실을 왔다.
찰밥하는 집에서는 옆집 여자가 가기만 기다렸다.
그러나 도무지 가지를 않아서 할 수 없이 찰밥을 조금 주었다.
옆집 여자는 먹으면서 “거, 무슨 찰밥인지 맛이 참 좋수다레.”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주인 여자는 얄미워서 “이래도 철모르고 저래도 철모르는 찰밥이우다.” 하고 쏘아주었다.
그랬더니 옆집 여자는 “그래요? 난 이 찰밥이 오면 가면 또 먹으란 찰밥 같수다!” 하더란다.
산골 부자는 해변가 개보다 못하다.
못사는 동네의 부자는 잘사는 동네의 개만도 못하다.
옛날에 해변가 사람이 소금장수가 되어 산골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때 한 부잣집에서 제사밥을 짓는데, 쌀이 워낙 귀하니까 쌀이 흩어 질까봐 밑에는 조를 깔고 그 위에 실에 꿴 쌀을 놓고 짓더란다.
그리고는 제사밥을 먹을 때 축문을 써준 사람한테는 조밥 위에다 쌀알 다섯 개를 얹어주고, 남자들한테는 쌀알 세 개를 얹어 주고, 여자들한테는 쌀알 반개를 얹어주는 것이었다.
산림도 청으로 하는 수가 있다니까.
제가 저를 추천하며 돌아다니는 사람을 비웃는 말.
조선 후기에 오면서 과거제도가 문란해지자 과거를 외면하는 유림(儒林)들이 늘어났다.
처음에는 이들을 다 산림(散林)이라고 불렀다.
산림은 유교국가에서 유림의 대표로 권위와 영향력이 막강해서 정권을 좌지우지할 정도였다.
산림의 권위가 얼마나 막강했으면 “열 정승이 한 왕비만 못하고, 열 왕비가 한 산림만 못하다.” 는 말이 나왔을까.
대표적인 산림으로는 우암 송시열 등이 있다.
그러나 조선 말기 세도정치 시대에 오면 산림의 권위도 떨어지고 유명무실해져 산림이 직접 자기에게 벼슬을 시켜달라고 세도가들한테 청을 들인 사람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산은 오를수록 높고 물은 건널수록 깊다.
가면 갈수록 더 어려운 일이 생긴다.
옛날에 한 멀쩡한 사람이 서울 양반집에서 몇년 동안 청지기를 살면서 들은풍월로 육갑하는 법과 약 짓는 법을 배웠다.
이 사람이 가만히 따져보니 ‘약도 지을 수 있겠다. 육갑도 할 수 있겠다. 웬만하면 시골 내려가서 한 밑천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당장 청지기를 때려치우고 가장 만만한 산골로 갔다.
산골 동네에 떡 들어서니 한 골목에서 개가 나와서 고개를 “기울 기울” 했다.
이 사람은 이것을 보고 ‘야, 여기서는 개가 다 기유 기유하고 육갑을 하는구나.’ 하고 깜짝 놀랐다.
조금 더 가니까 어떤 집에서 여자가 베를 짜고 있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베 짜는 소리가 “정축생 정축생” 하고 들렸다. 이 사람은 다시 놀라서 ‘야, 여기서는 베를 짜면서도 육갑을 하는구나.’ 하고 감탄하고 있는데, 여자가 베틀에서 내려와 청동 요강에다 오줌을 눴다.
그런데 오줌 누는 소리를 들어보니까 처음에는 “갑주르르르” 하더니, 그 다음엔 “을해, 을해, 을해, 을해” 하고 끝판에 가서 “자축” 하기에, 이 사람은 다시, ‘야, 이거 산골이라고 깔봤다가는 야단나겠다. 오줌을 누면서도 육감을 하는데 내가 있을 곳이 못되는구나.’ 하고 거기를 떠나서 경상도 영주 지방으로 갔다.
그러자, 한 나무꾼이 산에서 나무를 해가지고 내려오다가 지게를 벗어놓고는 “귀야, 귀야, 귀야” 하고, 금방 숨 넘어갈듯이 소리를 질렀다.
이 사람은 ‘야, 저놈이 귀가 아파서 저러는가보다. 내 약 짓는 실력으로 귀를 고쳐주어야겠다.’ 하고 산으로 숨 가쁘게 쫓아 올라갔더니, 나무꾼은 “지리 지리 지리산 갈가마귀야, 아으으.” 하고 노래 뒷 귀절을 마저 불렀다.
이 사람은 ‘산은 오를수록 높고 물은 건널수록 깊다더니 점점 어려운 일만 생기는구나. 내가 안하던 짓을 하려니까 그렇지!’ 하고 다시 청지기 짓을 하러 서울로 올라갔다고 한다.
산 호랑이 눈썹도 그리울 것이 없다.
희귀한 보물인 산 호랑이 눈썹을 가진 것처럼,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는 말이다.
옛날에 한 나그네가 산에서 도를 닦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어느 큰 고개 밑에 이르니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사연을 물은 즉 이 고개 위에는 큰 백호가 있어서 백 사람이 모여 넘어가야지 한명이 모자라도 잡혀 죽는다고 했다.
그러나 나그네는 그냥 고개를 올라갔다.
고개 마루에 당도하니 머리가 하얀 노파가 길가에 앉아 있었다.
나그네가 물었다.
“노친네는 사람이요, 호랑이요?”
노파는 솔직히 자기는 호랑이라고 대답했다.
“노친네는 왜 사람을 잡아먹습니까?”하자, “나는 짐승을 잡아먹었으면 잡아먹었지, 절대로 사람을 잡아먹지는 않는다! 자, 봐라.” 하고는 자기 눈썹을 빼고는, 하나는 나그네에게 주고, 하나는 자기 눈에다 대고는 저 아래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나그네도 따라서 호랑이 눈썹을 눈 위에 대고 보니, 과연 고개 아래 모여 있는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라 개나 말, 소, 돼지로 보였다.
호랑이는 “당신은 사람으로 보여서 내가 안 잡아먹은 거야” 라고 하며 눈썹을 가지라고 했다.
나그네가 집에 돌아가서 호랑이 눈썹을 대고 보니 마누라가 닭으로 보였다.
나그네는 깜짝 놀라서 마누라를 닭으로 보이는 사내와 짝지어주고, 자기는 사람으로 보이는 여자를 얻어서 잘 살았다고 한다.
살찐 놈 따라 붓는 놈
남을 무조건 따라 하는 것을 말한다.
옛날에 아무것도 모르는 자식 놈이 초상집에 문상을 가려고 하자, 어머니가 잘못하면 예가 안되니 이웃집 어른이 하는 대로 따라 하라고 시켰다.
이웃집 사람은 키가 큰 사람이라 상가에 들어가다가 문에 머리를 받아 갓이 부서졌다.
이걸 보고 키가 작은 아이놈은 펄쩍 뛰어 문을 받아놓고는 “이만하면 예가 되겠능교?” 하더란다.
삼대 부자가 없다
삼대를 내려가는 부자가 없다는 말이다.
송나라 때 절도사 미신이 백성을 쥐어짜서 돈을 백만 꾸러미나 쌓았지만 인색해서 돈을 쓰지 않았다.
반면에 그 아들은 사치스럽고 방탕했다.
아들은 아버지 때문에 돈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니까 고리대금업자한테 비싼 이잣 돈을 빌려 쓰면서 공공연히 “노도환(老倒換)” 이라 하고 다녔다.
늙은이가 쓰러지면 갚겠다는 뜻이다.
아들은 집안에서는 얌전한 척하고 문 밖에만 나가면 흥청망청 썼다.
아버지 미신이 죽자마자 아들은 재산을 금방 탕진해서 옥졸과 야경꾼의 도움을 받아 겨우 입에 풀칠하는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삼복에 비가 오면 보은 처자 울겠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가 시집을 가려면 혼수 비용이 필요 했다.
밭농사 지역인 보은에서는 대추 농사의 비중이 컷다.
대추를 팔아서 혼수를 장만해야 하는 보은 처녀에겐 대추 농사의 작황을 가름하는 삼복에 비가 오는 날이 많으면 대추 흉년이 들어서 자연히 가을에 혼수 비용이 어렵다는 말이다.
'비야 비야 오지마라 대추 꽃이 떨어지면, 보은 청산 시악시들 시집 못가 눈물 난다.'
이 민요처럼 보은 처자가 대추 꽃이 피는 삼복에 비가 오거나, 대추 열매가 익는 추석에 비가 오면 운다는 말이 생긴 것은, 보은이 ‘보은대추나무’라는 학명이 있을 정도로 대추로 유명한 고장이기 때문이다.
대추나무는 다른 나무와 달리 단번에 수정하지 않고 연속적으로 수정을 하는데, 일반적으로 첫 수정은 초복에, 그 다음으로 중복과 말복에 각각 수정을 하는데, 이때 계속해서 비가 내리면 대추 열매를 맺을 수가 없어 대추농사를 망치게 된다.
그래서 겉으로 말을 못하고 속으로 울어서 또 다른 대추 명산지인 청산과 함께 ‘청산 보은 처녀 눈물 흘리듯 하다’라는 말도 유래하였고, 청산 보은 처녀들이 대추를 너무 많이 먹어서 대추 씨를 발라내느라 ‘청산 보은 색시 입 마냥 뾰족하다’는 말도 생겼다.
하지만 실제의 보은 대추는 씨 로서 번식이 되지 않는 멧대추나무로 열매에 씨가 없으며, 크기는 잘고 껍질은 얇으며 당도가 높다. 그리고 대추는 간장보호와 기력증강 및 구황식물로 군량으로도 쓰여서, ‘대추 세 개로 한 끼 요리를 한다’는 말도 있으며, 대추나무 목재가 단단하여 떡을 치는 떡메, 흰 떡 등에 모양을 찍어내는 떡살과 달구지, 도장 등의 재료로 쓰여서 모질고 단단한 사람을 ‘대추나무 방망이 같다’거나, ‘대추씨 같다’고도 하였다.
대추나무의 원산지는 중국으로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 고종 23년(1236년)에 편찬한 ‘향약구급방’에서 향약재로 기록된 것이 나온다.
조선시대에도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 등에 기록이 있고, 허균이 지은 ‘도문대작’에는 ‘대추는 보은현에서 생산되는 것이 제일 좋고 크다. 뾰족하고 빛깔은 붉고 맛은 달다. 다른 지방에서 생산되는 것은 이만 못하다.’고 평가하였다. 그리고 영조 때 보은 군수였던 김흥득은 각 사람 마다 빈터나 집 주변에 대추나무 30그루를 심게 하여, 그 후 보은지역 경제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도 한다.
원래 대추나무의 속성상 가지가 줄기에서 잘 벌어지지 않는 것을 벌려 주기 위해 가지와 줄기 사이에 돌을 끼워 벌려주는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라는 민속놀이도 발생하였는데, 다른 지역에선 보통 단오 날에 하는 것을 보은 지역에선 실질적으로 효과가 큰 정월 대보름날에도 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이 지역의 오래된 대추나무엔 돌맹이가 끼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옛날 사람들은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는 단오 날 오후가 좋고, 또 단오 날에 도끼로 나뭇가지를 내리치면 과실이 더 많이 열린다.’고도 했는데, 이 말에서 가지를 벌려주는 시기는 적절치 않지만, 열매가 더 많이 열린다는 것은 현대 과학에서도 증명된다. 즉, 나뭇가지 속에 탄수화물이 많이 저장되어야 과일이 많이 맺히고 달게 되는데, 나무줄기에 상처를 주면 땅에서 위로 올라가는 질소가 차단되면서 상대적으로 탄수화물의 비율이 높아진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모든 유실수와 모든 생명체에 해당되는 것으로, 자신의 생명에 위기를 감지하면 후손을 잇는 것에 전 역량을 쏟는 생명체의 본성이 있는데, 대추나무 역시 도끼로 내리칠 때 그런 반응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가시가 굉장히 많은 대추나무를 두고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한다’는 말로 ‘어떤 문제가 심각하게 엉기어서 풀기가 굉장히 힘들다’는 속담을 만들었고, 또 매우 잘고 보잘 것 없는 물건을 가리켜 ‘콧구멍에 낀 대추씨’라고도 하였다.
또한 대추열매는 아들을 상징하여 결혼식의 폐백 때 다홍실에 꿴 대추나 알밤을 담은 그릇을 앞에 두고 신부가 웃어른께 절을 하면 거기에 있는 대추나 알밤을 뽑아서 신부의 치마를 펼치게 하여 치마폭에 담기도록 던져주거나, 신부가 시집을 갈 때 옷상자와 한께 대추를 가져가기도 하였다. 그리고 태몽에서 대추를 보면 아들을 낳는다 하고, 일부 지역에는 제사를 지낸 뒤 대추를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고도 했다.
삼수갑산을 가는 한이 있더라도
삼수갑산에 귀양 가는 한이 있더라도 기어코 하고 싶은 일을 하듯이, 반드시 하겠다는 것이다.
삼수갑산이 두메산골이라는 건 다 알지만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는 이가 많다.
옛날 어떤 선비가 갑산의 원님으로 가게 되어 대감들에게 떠난다고 인사를 갔는데, 그저 잘 다녀오라는 대감도 있었지만 픽 웃거나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잘 해보게.” 하는 대감이 더 많았다.
이 선비가 몇 달이나 걸려 갑산에 도착하니 고을 백성들은 새 사또가 왔다고 잔치를 벌여주고 온 고을이 떠들썩했다.
사또는 흐뭇해서 그럭저럭 정사를 잘 보았다.
그렇지만 추석이 지나 며칠 안되었는데, 갑자기 육방 관속이 다 몰려와서 인사를 했다.
“이제 저희들은 하직합니다.” 사또는 놀라서 물었다.
“하직이라니 무슨 하직이냐?” 고 하자,
“예, 내일이면 아실 겝니다. 내년 해동이 되어야 뵙게 될 터이니 그만 하직이지요.” 하고 관속들은 모두 집으로 가버렸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밤새 어떻게나 눈이 많이 왔던지 지붕이 파묻히고 문도 열 수 없어서 사또는 방 안에만 틀어박혀 지내게 되었다.
‘이거 눈 속에 파묻혀서 꼼짝없이 죽게 되었구나!’ 불을 켜들고 그 큰 집 실내를 이리저리 살피며 다니는데 맨 끝 방에 웬 여자 하나가 있었다.
“너는 누구냐?” 하자,“예, 저는 내년 봄까지 사또 진지를 올릴 사람입니다.” 하였다.
사또는 너무나 반가워서 말했다.
“따로 거처할 것이 뭐 있냐? 내 방에 와서 같이 있자.”
“예, 그럭하지요.” 하고는, 사또와 밥해주는 여자가 한 방에서 거처하게 되었는데, 눈이 지붕 위에까지 쌓여 있으니 해를 볼 수 있나, 달을 볼 수 있나?
낮도 밤 같고 밤도 낮 같고 할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어서 적적하고 심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 너른 집에 사또하고 밥해주는 여자하고 단 둘이만 있으니 생각나는 일이란 단 그것뿐이었다. 해서 사또는 밤낮으로 여자와 그 짓만 했다.
그러다보니 결국 코피가 터지고 몸은 쇠약해져서 ‘이러다가는 집에도 못가보고 죽겠다’ 싶어서 맹세를 하느라고 바람벽에다 ‘다시 이런 짓을 하면 내가 개아들, 소아들, 말아들이다.’ 하고 써놓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다시 여자와 마주보고 앉았으면 또 그 짓을 할 따름이었다.
이렇게 해서 한 겨울 동안 지내고 보니 바람벽에는 ‘다시 이런 짓을 하면 개새끼, 소새끼, 말새끼다.’ 라는 글씨로 가득하게 되었다.
긴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자 육방 관속들이 몰려와서 인사를 했다.
사또는 반가워서 말했다.
“야, 나 죽을 뻔했다. 저 바람벽을 봐라.” 하자, 관속들이 말하기를 “구관 사또 보다는 덜 하신데요 뭐.”하고 아전들은 바람벽을 보고 일제히 웃었다.
그 후 이 사또는 임기를 마치고 서울에 와서 대감들에게 다녀왔다는 인사를 하러 갔더니 대감들마다 웃으며 “그래 지난 삼동에는 벽을 몇 칸이나 버려놨는가?” 하더란다.
상팔십이 내 팔짜.
가난이 내 팔짜.
강태공은 160년을 살았는데, 먼저 80년은 낚시질이나 하며 가난하게 살다가, 나중 80년은 정승이 되어 부귀공명을 누렸다고 한다.
새도 가지를 가려 앉는다
몸을 의탁하려면 좋은 주인을 선택해야 한다. 잔인하거나 옹졸한 상관 밑에는 가지 말라는 말이다.
공자가 여러 나라를 떠돌다가 위나라에 갔다.
위나라 임금은 이웃나라를 치려고 병법에 관한 것을 물어왔다.
공자는 “나는 제사 지내는 법은 알지만 병법에 관해서는 모릅니다.” 하고는 그 나라를 서둘러 떠났다고 한다.
색시 그루는 다홍치마 적에 앉혀야 한다.
색시 버릇은 다홍치마를 입고 막 시집왔을 때 잘 가르쳐야 한다.
옛날에 한 사내가 성미 사나운 여자를 얻게 되었다.
사내는 첫날밤부터 꽉 잡아야겠다 생각하고 밤에 똥을 싸서 몰래 처녀 속곳에 넣어 놓고 큰 소리로 “아니, 이게 무슨 냄새야?” 하면서 밖으로 나가버렸다.
여자는 자기가 똥을 싼 줄 알고는 무안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여자는 그 일 때문에 사십여 년 동안 남편한테 꽉죽어 지냈다. 어쩌다 화를 못 참고 성깔을 부리려고 하다가도 남편이 “어험, 아 첫날밤에.....” 하면 그만 기가 푹 죽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아들 딸 나아서 시집 장가 다 보내고 환갑날이 돌아왔다.
환갑잔치 날 영감은 이제야 별일 없겠지 하고, 아들딸들 앞에서 첫날밤 얘기를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성깔이 죽은 줄 알았던 할망구가 “그러면 그렇지, 아이구 분해!” 하더니 그 자리에서 영감의 수염을 몽땅 뽑아버리더란다.
서발 막대 거칠 것 없다.
집안에 살림이라곤 아무것도 없어서 세 발이나 되는 막대를 휘둘러도 거칠 것이 없다.
옛날에 딸 셋이 죽은 집에서 도둑이 숨어들었다.
방을 샅샅이 뒤졌으나 살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도둑이 혀를 차며 나가려고 하자, 집 주인이 누운 채로 말했다
“여보, 도둑양반. 문이나 닫고 가게.” 하기에 도둑은 기가 차서 물었다.
“여보, 도대체 무엇이 무서워 문을 닫으라는 거요?”
서천에 경 가지러 가는 사람은 가고 장가드는 사람은 장가들자
제 각기 갈 길을 가자는 말이다.
저팔계가 삼장법사를 모시고 서천으로 가다가 한 미녀를 만났다.
저팔계가 미녀를 차지할 욕심이 불같이 일어 손오공에게 “불경 가지러 가는 사람은 가고 장가드는 사람은 장가들자.” 라고 했다.
서울이 낭이라니까 과천서부터 긴다
서울은 낭떠러지와 마찬가지로 인심이 험한 곳이라니까, 미리부터 겁을 먹고 과천서부터 기어서 간다는 말이다.
어떤 시골 사람이 서울에 올라와서 국밥을 사먹는데, 서울에서는 무엇이든 절반으로 에누리해야 속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터라, 잔뜩 주의를 하고 주막집 주인에게 밥값이 얼마냐고 물었다.
“돈반이요.”
“돈반?”
“한돈 오푼이란 말이요.”
“아, 그럼 칠푼 오리라는 말이구료.”
주인은 기가 막혀
“뭐 이런 자식이 다 있어?”하며 따귀를 한 대 갈겼다.
시골사람은 “아이구, 반 대 따귀야.” 하면서도 무척 아프니까 “서울 금도 듣던 것하고 다른데?”
하더란다.
세 사람만 우겨대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낸다.
거짓말도 여럿이 하면 믿는다는 말이다.
위나라 신하 방공이 초나라에 인질로 가게 되었는데 임금과 오랫동안 떨어져 있으면 아무래도 뒤에서 참소하는 무리가 있을 것 같아 임금을 떠보느라고 이런 얘기를 했다.
“전하, 지금 어떤 사람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하자, 왕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두 사람이 똑같이 호랑이가 저잣거리에 나타났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글쎄, 일단 의심하겠지.”
“그럼 세 사람이 똑 같은 소리를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믿을 테지.”
방공은 한탄하고 초나라로 떠나갔는데, 결국 참소하는 자들 때문에 왕의 의심을 받아 영영 귀국하지 못하고 말았다.
세 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
어릴 때 버릇을 잘 들이라는 말이다.
옛날에 산골에 사는 한 형제가 송아지를 길들이는데 형은 앞에서 고삐를 잡아끌고, 동생은 뒤에서 보습으로 밭을 갈았다.
그런데 동생은 “이랴! 저랴!” 하고 싶어도 형이 앞에서 고삐를 잡고 끄니 차마 “이랴! 저랴!” 할 수가 없어서 “형님 이리 가이소.”, “형님 저리 가이소.” 이렇게만 해서 온종일 밭을 갈았다.
그러고 나서 한참 후 동생 혼자 송아지를 몰고 나가 다른 밭을 가는데 아무리 “이랴! 저랴!” 해도 송아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형님 이리 가이소.”, “형님 저리 가이소.” 하니까, 송아지는 밭을 잘 갈아서, 그 소한테는 평생토록 “형님 이리 가이소.”, “형님 저리 가이소.” 했다고 한다.
소가 다 웃겠다.
너무 우스꽝스러운 짓을 하니 소가 다 웃는다는 말이다.
옛날에 한 게으른 아들이 있었다.
하루는 메밀밭을 매라고 하니까 저는 메밀국수를 싫어하기 때문에 밭을 매지 않겠다고 했다.
그 후 메밀을 거두어서 온 식구가 국수를 해먹는데 아들은 빼놓고 해먹었다.
색시는 제 서방이 못 먹으니까 안타까워서 밤에 외양간에 들어가 있으면 갖다 주겠다고 했다.
밤이 되자 색시는 메밀국수를 만들어 가지고 시부모 몰래 외양간으로 갖다 주었다.
서방은 좋다고 훌훌 소리를 내면서 먹고 있었다.
그 때 어머니가 외양간 옆을 지나다가 국수 먹는 소리가 나니까 도둑놈이 국수를 훔쳐 먹는 줄 알고 쫓아 들어가서 상투를 틀어잡고 소리를 질렀다.
“얘 며늘아, 국수 도둑놈 잡았다. 부뚜막에 성냥 있다. 얼른 가지고 와라.”
며느리는 제 서방이 잡힌 줄 알고 의뭉을 떨었다.
“성냥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어머님이 와서 찾아보세요. 제가 붙잡고 있을 테니.”
시어머니는 성냥을 찾으려고 외양간을 나갔다.
색시는 얼른 서방의 상투를 놓아주고 그 옆에 있는 소의 뿔을 잡았다.
시어머니가 성냥을 갖고 와서 보니 며느리가 소뿔을 잡고 있자 “야, 난 도둑놈의 상투를 붙잡은 줄 알았더니 소뿔이었구나!” 어머니가 놀라자, 외양간 뒤에 숨어있던 아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으흐흐” 하고 웃었다.
그러니까 며느리는 겸연쩍어서 “아이, 소가 다 웃네.” 하더란다.
소가 힘세다고 왕 노릇 할까.
힘이 세다고 미련한 놈이 지도자 노릇을 할 수 있나? 힘센 것만 믿고 까부는 자를 비웃는 말이다.
제나라에 힘센 장수 셋이 있었는데 자칭 삼걸이라 했다.
이들은 힘센 것만 믿고 시정을 횡행하며 못된 짓을 일삼고 대신들을 깔보며 심지어는 임금 앞에서도 너 내 거리를 하며 버릇없이 굴었다.
그러나 임금은 그들의 용기를 사랑한 나머지 내버려두었다.
재상 안영은 이들이 장차 나라의 큰 화근이 되리라 생각하고 하루는 임금 앞에 세 사람을 불러다 놓고 희귀한 복숭아 두 개를 주며 말했다.
“이 중에서 공로가 많은 사람이 먹으시오.” 그러자, 공손 첩이란 장수가 “나는 임금님께 달려드는 백호를 맨손으로 때려눕힌 사람이오.” 하고 복숭아를 먹었다.
다음에 고야자란 장수가 “나는 황하에서 천년 묵은 자라를 죽여서 임금님을 보호한 사람이오.” 하고 나머지 한 개를 먹어버렸다.
그러자 전개강이란 장수가 분하여 “나는 서나라를 쳐서 대장을 죽이고 적군을 5백명이나 사로잡았소. 자라나 범을 죽인 것은 실로 작은 일이라. 내가 마땅히 복숭아를 먹어야 하는데 못 먹었으니 이 부끄러움을 어찌 갚으리오.” 하며 칼로 제 목을 찌르고 죽었다.
이것을 보고 공손 첩이 크게 놀라면서 “전개강은 나보다 큰 공로를 세웠는데 내가 양보하지 못하고 몰염치하게 복숭아를 먹었으니 무슨 낯으로 내가 살리오?” 하고 자기 목을 칼로 찌르고 죽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고야자가 “우리 세 사람은 일찍이 결의형제를 맺고 생사를 함께 하기로 맹세했다. 두 사람이 죽었는데 내 어찌 이 세상을 살리오?” 하고 역시 목을 찌르고 죽었다.
힘센 세 사람은 꾀 많은 안영에게 걸려 복숭아 두 개에 허무하게 죽었던 것이다.
소귀에 경 읽기
아무리 일러주어도 효과가 없다는 말이다.
옛날에 어떤 나이 어린 처녀가 털 공장에 취직을 해서 날마다 털옷도 만들고 털방석도 만들고 했다. 몇 해를 그렇게 다녔는데 하루는 옷을 벗고 아래를 보니까 자신의 사타구니에 털이 붙어 있었다.
처녀는 털 공장의 털이 자기 몸에 붙은 줄 알고 잡아떼려고 하니까 떨어지지 않고 아프기만 했다. 이거 이상하다 하고 걱정이 되었지만 그대로 털 공장에 다녔다.
그 뒤에 옷을 벗고 보니까 털은 전보다 더 많이 붙어 있었다. 그래서 ‘야, 이거 털 공장의 털이 자꾸만 들어붙어서 이렇게 됐는가 보다. 이러다가는 온몸이 털투성이가 되지 않을까?’하고 처녀는 털 공장에 다니기가 무서워졌다.
그래서 어머니한테 털 공장에 다니는 것을 그만두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우리가 이만치 사는 것은 네가 털 공장에 다니기 때문인데 그만두면 우리는 어떻게 살란 말이냐?"하면서 그만두지 말라고 타일렀다. 그랬더니 자신의 사타구니를 보이면서 “털 공장의 털이 이렇게 달라붙으니 더 다니면 온몸에 털이 달라붙어서 보기 흉하게 될 게 아니냐”고 했다.
어머니는 “그것은 나이가 들면 으레 나는 것이다. 그러니 털 공장에 다녀도 아무 일 없다”고 했다.
그래도 딸은 곧이듣지 않고 그만두겠다고만 했다.
어머니는 “내 말을 못 믿겠으면 이웃집의 글을 많이 아는 영감님한테 가서 물어보라”고 했다.
처녀는 이웃집 영감한테 찾아가서 자기 사정을 얘기 했다.
영감은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누구나 다 털이 난다. 나는 남자니까 어려서는 얼굴에 털이 나지 않았지만 나이 먹으면 이렇게 털이 난다”고 하면서 수염을 쓰다듬어 보였다.
그래도 처녀는 곧이듣지 않고 털 공장에 다니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영감은 달래고 타이르고 하다가 할 수 없이 바지를 벗고 거기를 내보이며 말했다.
"자, 이거 봐라. 나도 이렇게 털이 있지 않느냐?" 그랬더니 이 처녀는 "아이고, 할아버지도 털 공장에 다녔구먼요." 하더란다.
소 닭 보듯 한다.
아무 관심도 없이 무덤덤하게 쳐다본다는 말이다.
옛날에 쌍둥이 형제가 있었는데 한 날 한 시에 장가를 들어서 각각 색시를 데리고 왔다.
그러던 어느 날 형이 아우네 집에 갔다.
그때 제수는 화장을 하고 있다가 “나 곱지?” 하고 물었다.
형은 이 말을 듣고 물끄러미 보다가 “난 모르겠소. 아우한테나 물어보구려.” 하고 나가더란다.
소금섬을 물로 끌어라 해도 끈다.
소금섬을 물로 끌고 가면 다 녹을 게 뻔하다. 그런데도 자기 주견이 없어서 남이 시키는 대로 맹목적으로 따른다.
명종 때 왕대비가 요승 보우에게 반하여 불사를 크게 일으키는 등 보우가 시키는 일은 다했는데, 나중에는 소금 섬을 물로 끌어라 해도 끌 정도였다고 한다.
이래서 부작용도 컸지만 개중에는 좋은 일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중에게 따로 과거를 보게 하여 휴정과 유정 두 큰 스님을 뽑은 일이다. 선과에 장원급제한 휴정은 임진왜란 때 승병을 통솔한 서산대사이고, 교과에 장원급제한 유정은 임진왜란 후에 일본에 가서 난중에 잡혀간 남녀 인구 삼천명을 찾아온 사명당이었으니, 이것이 소금섬을 물로 끌어도 좋은 일이 생긴 희한한 경우다.
소 눈 말 눈 크다 해도 의눈 보다 큰 것이 없다.
의논을 하는게 제일이다. ‘의눈’은 ‘의논’을 재미나게 표현한 것이다.
옛날 충청도 당진에 사는 한 선비가 며느리 셋을 봤는데 어떤 며느리가 제일 똑똑한지 보려고 모두 불러 앉혀놓고 물었다.
막내며느리는 “송학산 한티고개가 넘기 어렵다” 고 하고 둘째며느리는 “모른다” 고 했지만 큰며느리는 "이 고개 저 고개 넘기 어렵다고 해도 보릿고개 넘기가 제일 어려워유." 하고 대답했다.
시아버지는 큰며느리가 현명하다고 칭찬했다.
시아버지는 그 다음에 “새 중에서 무슨 새가 제일 크냐?” 고 물었다.
막내며느리는 “산새가 크다” 고 하고 둘째는 또 “모른다” 고 했지만, 큰 며느리는 “이 새 저 새 해도 먹새가 제일 큽니다.” 하고 대답했다.
시아버지는 또 큰며느리가 옳다고 했다.
그 다음에 시아버지는 “눈 중에서 무슨 눈이 제일 크냐?” 고 물었다.
촐싹촐싹하는 막내며느리는 “소 눈도 크고 말 눈도 크다” 고 하고 둘째는 역시 “모른다”고 했지만 큰며느리는 "소눈 말눈 크다 해도 의눈 보다 큰 것이 없지유." 하고 대답했다.
시아버지는 큰며느리를 칭찬하며 세 며느리 중에서 큰며느리를 상 며느리로 여겼다고 한다.
소문난 좆 잔등이 부러졌다.
소문난 것이 전혀 실속이 없을 때 쓰는 말이다.
담(쓸개)이 크기로 소문난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남의 쓸개를 볼 줄 아는 나그네가 보니 과연 쓸개가 커서 꼭 주먹만 했다.
"내 천하에 담 크다는 사람은 다 봤지만 이렇게 담 큰 사람은 처음이오."
나그네가 연신 감탄하며 "사나이로 태어난 이상 이왕이면 담을 맷돌 짝 만하게 키워보시죠." 하고 권하자, 사내는 가슴과 배를 쑥 내밀고 만족한 웃음을 띠었다.
그러나 이때 갑자기 안에서 "누구야?" 하는 여자의 샛된 목소리가 들리자, 사내의 쓸개는 점점 작아져서 마침내는 콩알 만해졌다.
나그네가 실망을 해서 일어서려고 하는데 갑자기 병풍 뒤에서 "어떤 미친놈이 남의 남편 담을 키울라고 들어?" 하는 여자의 째지는 듯한소리가 들리며 와장창하고 그릇 깨지는 소리가 났다.
그 순간 사내의 쓸개는 좁쌀 반만 해지더니 마침내 거기서 파르스름한 물이 똑똑 떨어지더란다.
사내의 쓸개는 방금 전 그 소리에 터진 것이다.
소발에 쥐잡기
소가 뒷걸음을 치다가 우연히 쥐를 밟아 죽이는 수가 있듯이 우연히 잘된 일을 말한다.
옛날에 덩치도 크고 먹기도 엄청나게 많이 먹는 총각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이 총각을 식충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식충이는 보기에는 힘깨나 써 보이지만 사실은 장도리 하나 제대로 들 힘도 없어서 아무 일도 못하고 아까운 양식만 축냈다.
그래서 부모는 이런 놈을 두었다가는 집안 망하겠다고 내쫓아버렸다.
이놈은 이 마을 저 마을에 가니 사람들이 식충이의 덩치를 보고 힘깨나 쓰겠다고 여겼는지 뒷산에 있는 호랑이를 잡아주면 평생 먹여주겠다고 했다.
식충이는 굶어 죽나 호랑이에게 먹혀 죽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렇지만 호랑이가 나올까봐 무서워서 큰 나무를 부여잡고 부들부들 떨면서 "호랑이 나오지 마라. 호랑이 나오지 마라." 하고 소리치고 있었다.
이때 호랑이는 배가 고파서 뭐 먹을 것 없나 하고 있었는데, 어디서 사람 소리가 나니까 식충이가 있는 쪽으로 어흥! 큰 소리를 지르며 쫓아갔다.
식충이는 호랑이가 쏜살같이 달려오는 걸 보고 그만 너무 놀라고 다급해서 똥을 싸며 "아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호랑이는 혼이 빠져 달아나다가 벼랑에 떨어져 죽었다.
식충이는 호랑이를 잡은 공로로 평생 아무 일도 안하고 드러누워서 밥만 먹었다고 한다.
손자 밥 떠먹고 천정 쳐다본다.
계면쩍은 짓을 해놓고 시치미를 뗀다.
옛날에 손자하고 할아버지하고 먹을 것을 가지고 잘 싸우는 집안이 있었는데, 아들은 그것 때문에 늘 속을 썩였다.
어느 추운 겨울날 할아버지는 손자 밥을 떠먹고 천정을 쳐다보다가 손자하고 싸움이 붙었는데, 차차 말이 몰리니까 화가 나서 손자를 발가벗겨 밖으로 내쫓았다.
손자가 처마 밑에서 엉엉 울고 있으니까 아들놈이 씩씩거리더니 옷을 훌렁 벗고 밖으로 나가 손자 옆에서 같이 떨었다.
할아버지는 영문을 알 수가 없어서 아들에게 “너는 왜 떠느냐” 고 물었더니 아들은 “당신이 내 자식 떨게 하는데 나라고 당신 자식 못 떨게 하겠어요?” 하더란다.
소한테 한 말은 안 나도 어미한테 한 말은 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기밀은 말하지 말라는 뜻이다.
옛날에 한 지관(地官)이 죽기 전에 아들을 가만히 불러서 내가 죽거들랑 산에다 묻지 말고 동네 우물에다 아무도 모르게 묻으라고 유언을 했다.
아비가 죽자 아들은 아무도 모르게 우물에다 시체를 집어넣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밤낮으로 울면서 산소가 어디냐고 물었다.
아들은 처음 며칠 동안은 가르쳐주지 않았으나 어머니가 하도 울고 볶아대는 바람에 견디지 못하여 절대로 어머니만 알고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말라는 조건으로 사실을 말했다.
어머니는 입이 간지러워서 친한 이웃집 여자에게 얘기했고, 이래서 순식간에 온 동네가 알게 되었다.
동네 사람들은 아우성을 치며 우물에 달라붙어서 물을 퍼냈다.
이때 송장은 금송아지가 거진 다 되어가고 있었다.
뒷다리는 이미 일어섰고 앞다리는 이제 막 일어서려고 하는데 바닥이 드러나며 바깥바람을 쐬자 금송아지는 그만 사르르 녹아 없어지고 말았다.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송장은 완전한 금송아지가 되어서 우물은 명당이 되고 집안은 큰 부자가 되었을 텐데 어머니에게 비밀을 털어놓는 바람에 복을 놓쳤다고 한다.
손님에 아이가 죽어도 동무가 있으니 낫다.
천연두에 아이가 죽어도 같이 죽는 동무가 있으면 나은 것 같이, 최악의 불행을 당해도 같이 당하는 사람이 있으면 조금은 위로가 된다는 말이다.
옛날에 전라도 생강장수 하나가 생강을 한 배 싣고 평양에 와서 팔아 큰돈을 벌었다가 그만 평양 기생에게 반해서 숱한 돈을 다 빨리고 말았다.
그는 이렇게 한탄을 했다.
"그놈의 아랫입은 이빨도 없으면서 남의 생강 한 배를 다 씹어 먹었구나."
그 후 어느 도의 소장수가 소를 수백 마리 끌고 평양에 와서 큰돈을 벌었다.
그렇지만 이 소장수도 그 이빨 없는 입에다 다 먹히고 급기야는 집으로 돌아갈 노자도 없어서 그 기생집에서 하인 노릇을 하고 있었다.
하루는 기생이 어떤 돈 많은 놈팽이를 끌고 와서는 소장수에게 안방에다 군불을 때라고 했다.
소장수는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 "내 대를 이을 녀석이 왔구나!" 하며 씩 웃더란다.
솜씨는 관 밖에 내놓고 가라.
솜씨가 너무 좋으니 죽더라도 솜씨는 관 밖에 내놓고 가라고 비꼬듯이, 솜씨가 지독하게 없다는 말이다.
옛날에 한 사내가 늦장가를 들었는데 여편네라고 얻은 것이 솜씨가 매우 알량해서 저고리 고름을 달아 달라니까 등에다 달아 주었다.
사내가 화를 내니까 "다시 달면 될 것 아냐?" 하며 저고리를 뺏어가더니 한참 후에 주는데 보니 이번에는 고름이 옆구리에 달려 있었다.
사내가 기가 막혀 허허 웃으니까 여자가 "무슨 사내가 저래? 조금만 잘못하면 화를 내고, 조금만 잘해주면 좋아서 헤헤거리고." 하더란다.
솟증 나면 병아리만 쫓아도 낫는다.
솟증은 채소만 너무 먹어서 고기를 먹고 싶어 환장한 병인데, 솟증은 고기를 먹을 희망만 보여도 낫는다는 말이다.
옛날에 오랫동안 고기를 먹지 못해 솟증이 난 사내가 눈 딱 감고 빚을 내어서 청어 한 두름을 샀다.
지글지글 구어 온 청어 한 마리를 먹고 나니 이제는 살 것 같아 다음날 아침 밥 때가 되기만 기다리는데 막상 아침 밥상이 올라온 걸 보니 청어가 없다.
사내가 이상해서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청어 어쨌어?"
"어쩌긴요?"
"여보, 내가 어제 청어 스무 마리 사왔지?"
"사왔죠."
"내 한 마리 먹었지?"
"먹었죠."
"그럼 남은 거 어디 있어?"
여자는 눈을 똑바로 뜨고 "남다니요? 당신 한 마리 먹었지, 나 열 아홉 마리 먹었지. 남을 게 어딨어요?" 하더란다.
송도계원
별것도 아닌 세력을 믿고 남을 깔보는 자를 말한다.
팔삭동이 한명회가 송도에서 조그만 별궁지기를 하던 미천한 시절, 친목계에 들기를 원했으나 계원들은 그를 깔보고 받아주지 않았다.
나중에 한명회가 출세하자 계원들은 뒤늦게 후회했다고 한다.
송사는 졌어도 재판은 잘 하더라
내가 재판에 져서 섭섭하긴 해도 그 재판관이 공정하게 잘 하더라고 하듯이, 칭찬할 것은 칭찬해야 한다는 말이다.
옛날에 한 포수가 여우를 보고 총을 쏘았다.
여우는 다리에 총을 맞고 동네 한가운데로 뛰어 들어갔다.
그때 개가 달려와서 여우를 물고 저희 집으로 들어갔다.
포수는 그 집에 가서 “여우는 내가 쏘아 잡은 것이니 달라” 고 했다.
그러나 개주인은 “여우는 우리 개가 잡아서 물고 왔기 때문에 내 꺼다” 하면서 내주지 않았다. 그래서 두 사람은 여우를 두고 싸웠다.
한 아이가 이것을 보고 "내가 재판해주겠소." 하고선 "포수는 가죽이 필요해서 여우를 쏜 것이고 개는 고기가 필요해서 물고 온 것이니 포수는 가죽을 가져가고 개주인은 고기를 가져가시오." 하고 판결했다.
개주인은 섭섭했지만 너무나 잘된 판결이라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송아지보다 못한 놈
우둔한 사람을 놀리는 말이다.
옛날에 평양의 어떤 서당에서 삼년 동안 서당에 다녀도 하늘 천, 따지도 모르는 아이가 있었다.
선생이 하루는 이 아이를 기필코 가르쳐보려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 하늘을 가리키며 "데거이 머이가(저것이 뭐냐)?" 하고 물었다.
아이는 “구름”이라고 했다.
답답해진 선생이 방으로 들어와 삿자리(갈대를 엮어서 만든 돗자리)를 들치고 "이거이 머이가?" 하고 물었다.
아이는 구들장이라고 했다.
선생은 화가 나서 "야, 차라리 송아지를 가르치면 가르쳤지, 너 같은 놈은 못 가르치겠다." 고 말했다.
아이는 집에 가서 아버지한테 그대로 일러바쳤다.
아버지는 화가 나서 송아지 한 마리를 선생한테 끌고 와 이 송아지에게 글을 가르쳐보라고 했다.
선생은 그러겠다고 하고서 송아지가 좋아하는 콩 단을 가지고 "하늘 천!" 하면서 콩단을 하늘로 올리고, "따 지!"하면서 콩단을 내렸다.
송아지는 콩단을 먹으려고 주둥이를 위로 올렸다 내렸다 했다.
이와 같이 한 달을 연습시키니 콩 단이 없어도 송아지는 "하늘 천!" 하면 주둥이를 올리고 "따 지!" 하면 주둥이를 내렸다.
아이의 아버지는 이것을 보고 "야, 내 자식은 송아지만도 못하구나!" 하고 한탄하며, 송아지를 선생에게 주고 아이를 데려갔다고 한다.
수원 사람은 발가벗겨도 삼십리를 뛴다.
옛날엔 지금의 남양이 행정적으로 수원에 속해 있었는데, 이 이야기의 실제 모델은 남양 사람이다. 지금의 수원에서 50리 쯤 떨어진 남양에 있는 어느 가게에서 이 지역에 사는 갑이라는 사람이 외상 몇 푼을 갚지 않고 몰래 이사를 해 버렸다.
화가 난 가게 주인은 몇 년 동안 갑을 찾아 다녔지만 이렇게 까지 자기를 찾을 줄은 짐작하지 못했던 갑은 십년 쯤 지나서 설마 가게 주인이 자기를 알아보겠냐 하고 그 가게에 다시 들렀다.
때가 밤이라서 가게 주인은 잠자리에 들어 옷을 벗고 있었는데, 밖에서 자기 집의 점원과 흥정하는 손님의 목소리가 많이 익은 목소리여서 생각해보니 분명 그놈! 갑의 목소리였다.
주인은 사무친 원한에 순식간에 발가벗은 채로 뛰어 나왔고, 갑 역시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서울 쪽으로 냅다 30리나 뛰다가 이젠 괜찮겠지 하고 뒤돌아보니, 아직도 주인은 발가벗은 채로 자기를 쫒아오더라는 것이다.
이 후로 둘이는 한 놈은 “나 살려라”하고, 또 하나는 “저 놈 잡아라” 하고 팽이가 돌듯이 다리를 굴리며 뛰고 있는지, 아니면 주인은 갑의 바짓가랭이를 잡고, 갑은 주인의 불알을 잡고서 씨름하는지에 대한 결과는 듣지 못했지만 여기 까지는 전래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속담이 효성에 얽힌 이야기가 잘못 전래 되었다는 말도 있다.
옛날 수원성에서 30리 떨어진 곳에 양반 자손의 젊은이가 살았디. 이 청년은 평소 조상의 산소도 잘 가꾸고 보모에게도 효성이 지극했는데,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젊은 선비는 친구들의 권유로 기방 출입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어느 날 행화촌(기생집)의 꽃향기에 취하여 그곳에서 잠을 자게 되었는데, 거기는 수원부중에서 서쪽 서호의 잔잔한 호숫가에 있는 주막이었다.
얼마 후 취중에 눈을 떠 생각해보니 갑자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바로 그날이 돌아가신 선친의 제삿날이었던 것이다.
그러자 앞 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문을 박차고 뛰쳐나왔다.
생각해보니 삼 십리는 닭 울기 전에 뛰어 갈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는데 양반이 집을 나설 때는 두루마기를 입고 의관을 갖춰야 하는데, 이렇게 행장을 다 차리고 양반걸음으로 가다가는 제 시간에 당도 할 수가 없겠다 싶었다.
하는 수 없이 양반의 눈으로 보기엔 반 쯤 벌거벗은 평민의 차림새인 느슨한 바지저고리만 입고, 두루마기와 갓은 싸들고, 바람같이 자기 집까지 득달하였다 한다.
아무튼 수원 사람은 인색하고 따지기를 잘한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었다.
이는 오늘날 수원 남문에서 남쪽으로 시오리쯤 되는 곳인 용주사로 들어가는 길에 떡점거리라 불리던 병점이 있었는데, 이 지역이 정조 이후로 무척 번화하여 삼남 사람들이 한양으로 갈 때나 돌아올 때 꼭 들리던 곳으로, 이곳을 기점으로 한 수원 사람들의 인심이 각지에 소문으로 퍼지면서 그러했다고 한다.
이렇게 장사 수완이 좋고 모질기로는 개성 사람도 한 몫 하지만, 그래도 개성 사람은 치부를 잘한다는 쪽에 무게가 실려서 개성 여자와 혼인을 하면 ‘살림은 틀림없다’, 거나 ‘입이 들어 왔다’고도 했는데, 아무튼 검소하고 인색한 것으로 같이 엮어진 ‘개성 사람, 수원 사람’도 있다.
어느 날 이 두 지역의 사람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 길을 가게 되었다.
이 둘은 짚신이 닳을까봐 짚신을 허리에 찬 채 맨발로 걸어갔다.
한참 동안 그렇게 가는 데 앞 쪽에 이름 있는 집안의 규수가 그들 쪽으로 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체면상 짚신을 신지 않을 수가 없어서 개성 사람은 짚신을 신고 얼마동안 걸어가다가 일행이 지나가자 곧 짚신을 벗어 먼지를 털고는 얼마나 닳았는지 살펴보더니 다시 허리에 찼다. 이에 반해 수원 사람은 길옆에 선채 짚신을 신더니 먼 곳을 두리번거리는 척 하면서 딴 전을 피웠다.
그러다가 일행이 다 지나가자 곧 짚신을 벗어 먼지를 털고는 허리에 찼다.
그래서 인색하기로는 개성 사람보다 수원 사람이 더 하다는 것이다.
술 취한 사람 사촌 집 사준다.
술 취한 사람은 뒷감당도 못할 호언장담을 잘한다.
옛날 어느 마을에 형제가 이웃에 사는데 형은 잘 살고 동생은 못 살았다.
여름날 보리타작을 하고 보리를 덕석에 널어서 말리는데, 작은며느리는 저희 집에 말릴 데가 없었던지 보리를 좀 가지고 와서 큰 아들집 마당 한 구석에 말렸다.
시어머니가 대청에 앉아 있다가 닭이나 돼지가 오면 쫓는 일을 하는데, 짐승을 쫓으려고 마당에 내려올 때마다 큰아들의 보리를 발로 밀어서 작은아들 보리 쪽으로 붙여 놓았다.
저녁 때 작은며느리가 와서 보니 자기가 갖다 널은 보리보다 훨씬 많아서, 이상하다 생각하고 자기가 갖다 널은 보리만큼 담고 나머지는 큰집 보리 널은 데로 밀어놓고 갔다.
방에 있던 큰며느리가 이것을 보고 작은 동서의 마음이 기특해서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났다.
며칠 지나서 큰동서는 찹쌀 한 말을 작은 동서에게 주면서 이것으로 술을 빚고 떡을 해서 시아주버니를 대접하라고 했다.
작은 동서는 큰동서가 시킨 대로 술을 빚고 떡을 해서 시아주버니를 잘 대접했다.
시아주버니는 동생 집에서 술과 떡을 많이 먹고 취해서 집에 돌아와 기분 좋게 잠을 잤다.
큰동서는 서방이 자는 동안에 논문서를 다 꺼내서 방바닥에 흩어놓고 그 중에 한 섬지기 논문서를 작은 동서에게 갖다 주었다.
서방은 술이 깨어 가지고 방바닥에 논문서가 흩어져 있는 것을 보고는 아내에게 물었다.
"논문서가 왜 이리 흩어져 있지? 그리고 마을 앞 한 섬지기 논문서는 어째 없나?"
"아이고, 당신이 시숙 집에 가서 술을 먹고 돌아와서 궤 안에서 논문서를 꺼내 방바닥에 늘어놓더니 동생 살림 지내기가 어려우니 줘버려야겠다고 한 섬지기 논문서를 작은집에 주지 않았소?"
"어? 내가 술에 취해 가지고 그 논문서를 동생 주었나?" 하고는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큰동서는 이렇게 해서 작은 동서를 잘 살게 해주었다고 한다.
시골 놈이 서울 놈을 못 속이면 보름씩 배를 앓는다.
어수룩해 보이는 시골 사람이 뜻밖에 영악할 때 쓰는 말이다.
옛날에 어느 시골 사람이 서울에 올라와서 큰 어물전 앞에서 기웃기웃했다.
가게 주인이 나와서 무엇을 보느냐고 물었다.
시골 사람은 명태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 크고 좋은 고기가 뭣이요?"
가게 주인이 가만히 보니까 촌티가 줄줄 흐르고 어수룩하게 생겼거든. 그래서 속여먹을 생각이
났다.
"이 고기는 금고기라는 것인데 아무데서나 파는 것이 아니오."
"그런 좋은 고기라면 사야지. 얼마요?"
"열냥이오."
터무니없이 비쌌지만 시골 사람은 두 말 안하고 명태 한 마리를 사서 가지고 온 자루에 넣고 말했다.
"나 저기 좀 갔다 올 동안 이 자루 좀 맡아주시오."
"그렇게 하시오."
가게 주인은 무심코 자루를 맡았다.
한참 있다가 시골 사람이 다시 와서 물었다.
"내 자루 어딨소?"
"저기 있소."
시골 사람은 자루 속에 손을 넣어보더니 소리를 지르며 주인에게 달려들었다.
"이 자루 속에 있던 돈 천냥이 없어졌으니 당신이 물어내쇼."
주인은 그런 돈 본 적이 없으니 물어줄 수 없다고 맞섰다.
이래서 시골 사람하고 가게 주인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졌다.
그때 포졸이 지나가다가 보고 왜 싸우느냐고 물었다.
시골 사람이 말했다.
"이 고기가 참 좋은 고기라고 해서 열냥 주고 사서 돈 천냥이 든 내 자루에 넣고 자루 좀 봐달라고 해놓고 잠시 나갔다 왔더니, 글쎄 천냥이 없어졌잖아요. 그래서 내 돈 물어내라고 하는 중입니다." 라고 했다.
포졸이 듣고 보니 명태 한 마리에 열냥이나 받고 판 가게 주인이 틀림없이 나쁜 놈이거든. 그래서 가게 주인에게 천냥을 물어주라고 했다.
서울 가게 주인은 명태 한 마리 비싸게 판 죄로 시골 사람에게 꼼짝없이 천냥을 바쳤다고 한다.
시집살이 못하면 본가집살이 하지
한 가지 일에 실패해도 다른 데 희망을 둘 수 있다는 말이다.
이성계가 고려를 뒤집어엎고 서울을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기자 개성 사람들은 크게 반발하고 이씨 조선에 협력하지 않았다.
이성계도 괘씸해서 그랬는지 개성 사람들에게는 과거의 길을 막았다.
개성 사람들은 벼슬길이 막히자 "그래, 정치를 못하면 경제를 하면 될 것 아니냐?" 며 이재(理財)의 길로 나갔는데, 이들이 유명한 개성상인으로 이후로 개성 출신 재벌들이 많이 나왔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
재미난 일에 빠져서 세월 가는 줄 모른다.
옛날에 바둑에 미친 사람이 바둑을 두고 있는데, 집에서 동생이 울며 쫓아와 "아버님께서 돌아가셨어요." 하고 말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지금 한창 승부가 결정되는 판이라 바둑판을 골똘히 들여다보면서 "아버님이 돌아가셨어? 거 참 안됐구먼." 하더란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랬다.
나쁜 일은 못하게 말리고 좋은 일은 하도록 권하랬다.
옛날에 한 아이가 글방을 다니는데 글방 선생이 홀아비로 지내는 것이 어린 마음에도 보기가 딱했던지 선생님을 장가보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그래서 아침에 글방에 오면 "선생님 장가 안 가시겠소?" 하고 묻고, 저녁에 갈 적에도 "선생님 장가 안 가시겠소?" 하고 물었다.
선생은 처음에는 어린애의 철없는 말로만 듣고 웃어넘기고 말았는데,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그런 말을 들으니까 급기야는 매를 때리면서 다시는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야단을 쳤다.
그랬는데도 아이는 매일 "선생님 장가 안 가시겠소?" 하고 물었다.
선생은 나중에 지쳐서 "가겠다. 그래 어떡할래?" 하고 말았다.
아이는 "그럼 내가 하라는 대로 하시라요." 하고 다짐을 두었다.
아이가 다니는 길에 원래 한 과부가 살고 있었다.
아이는 글방에 갈 때나 올 때나 그 과부 집에 들러서 "우리 선생님 여기에 있지요?" 하고 물었다.
과부는 어린애가 하는 말이라 처음에는 별스럽게 생각지 않고 안 왔다고만 대답했다.
그런데 아침저녁으로 그런 소리를 들으니까 "너희 선생이 어떻게 해서 우리 집에 오겠어? 요담부턴 그런 소리 말라. 그런 말 또 했다간 매 맞을 줄 알아!" 하고 꾸짖었다.
그랬는데도 아이는 글방에 오며 가며 "우리 선생님 이 집에 와 있지요?' 하고 물었다.
과부는 성이 나서 “요놈의 새끼 죽이겠다.” 하고 쫓아오곤 했다.
이 만큼 해놓고 아이는 선생에게 "오늘 밤에는 내가 과부를 밖으로 나오게 할 테니까 그 짬에
선생님은 과부 집 안방에 들어가서 옷을 벗고 요대기를 깔고 이불을 쓰고 누워 있으시요." 하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과부 집 대문간에 가서 "아주머니, 우리 선생님이 방금 일루 들어가는 것을 봤는데, 선생님 어디에 계십니까?" 하고 큰 소리로 물었다.
과부는 성이 나서 "요놈의 새끼, 뭐라구?" 하면서 부지깽이를 들고 쫓아 나왔다.
아이는 안 맞겠다고 들고 뛰면서 "우리 선생님을 방에다 두고 괜시리 그런다." 고 떠들었다.
과부는 더욱 화가 나서 “요놈의 새끼, 요놈의 새끼” 하며 쫓아왔다.
아이는 얼마쯤 뛰다가 선생이 과부 집 방안에 들어갔을 쯤 해서 일부러 과부한테 잡혔다.
과부는 "요놈의 새끼, 어째서 너희 선생이 우리 집에 와 있니? 집으로 가보자." 하며 끌고 갔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며 "자, 두 눈으로 똑똑히 봐라. 어디 너희 선생이 있는가?" 하고 말했다.
이때 선생이 이불 속에 누워 있다가 "와들 그래?" 하며 부시시 일어나 앉았다.
그러자 아이는 "아주머니 괜히 그래. 우리 선생님이 이 집으로 들어온 거를 내 눈으로 똑똑히 봤는걸." 하고 투덜거렸다.
그러자 과부는 아무 소리도 못하고는 아이보고 소문을 내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는 떡을 많이 해주면 소문을 내지 않겠다고 했다.
과부는 큰 시루에다 떡을 많이 해서 줬다.
그랬더니 아이는 떡을 가지고 나와 집집마다 돌리면서 "이 떡은 우리 선생님과 이웃집 과부 아주머니가 혼인한 잔치 떡입니다." 하고 돌아다녔다.
일이 이쯤 되었으니 어쩌랴? 과부는 할 수 없이 글방 선생과 과부는 혼인을 했다고 한다.
쑥구렁이 꿩 잡아먹는다.
지지리 못난 구렁이가 꿩을 잡아먹듯이, 못난 사람도 때로는 놀랄 만한 일을 한다는 뜻이다.
함경도 이원 사람들은 약다고 해서 참새, 단천 사람들은 어둡다고 해서 쑥구렁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이 단천 쑥구렁이가 이원 참새를 속여먹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단천 사람이 산에서 까마귀 새끼들을 주워다가 이원에 가서 희귀한 약병아리라고 속여 판 것이다.
이원 사람들은 그것이 까마귀 새끼인 줄도 모르고 비싼 돈을 주고 잘도 사먹더란다.
쓰러져가는 나무는 아주 쓰러뜨린다.
잘 될 가망이 없는 일은 빨리 집어치울수록 좋다.
진나라의 문공은 젊어서 망명 시절에 조나라에 가서 푸대접을 받았지만 희부기라는 조나라 대신한테는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진문공이 임금이 되어 조나라를 칠 때 희부기의 집만은 건드리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그러나 혈기 방자한 장수 위주가 질투심이 난 나머지 희부기의 집에 불을 질러 희부기를 죽이고
자신도 불타는 대들보에 깔려 중상을 입었다.
진문공은 대노하여 위주를 당장 죽이라고 했다.
신하들이 "위주는 앞으로 써먹을 수 있는 장수입니다." 하고 말리자, 진문공은 "그까짓 다 죽어가는 병신 놈을 어디다 써먹는단 말이냐?" 하고 말했다.
그리고는 신하를 시켜 위주의 화상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오라고 했다.
써먹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다쳤으면 아주 죽여 버릴 작정이었다.
위주는 사태를 눈치 채고 병석에서 일어나 비단 필을 온몸에 감아 상처를 감추고 죽을힘을 다해서 세 번 구르고 세 번 달려보였다.
그래서 위주는 가까스로 살아남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