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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교회/낮_20210822.
오벧에돔이 받은 축복
대상26:4-8
천안에 가면 호두과자로 유명한 할머니가 계신답니다. 그 분은 예수님을 잘 믿고, 믿음 좋은 분이라고 합니다. 저는 모르는 분인데, 소문이 그렇습니다. 교회에서 직분은 권사입니다.
그분이 호두과자를 만들어 그 상자 안에 전도지를 넣어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고 합니다.
그분의 이름이 심복순 권사인데, 지금은 돌아가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아계시다면 아마 금년에 한 98세쯤 되셨을 겁니다. 그분이 “나는 다윗보다 행복하다”는 신앙고백을 담은 「다윗보다 행복해지려면」책이 있습니다. 왜? 그 권사님이 자신이 다윗보다 행복하다고 말했을까?
그분이 호두과자를 만들어서 돈을 많이 벌었데요. 그 번 돈을 가지고 전도지를 만들어서 전도하였고, 또 교회를 일곱 군데나 지어 봉헌하였다고 합니다.
그분이 평생 호두과자를 만들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육신의 배고픔을 채워주는 빵뿐만 아니라 생명의 빵을 공급하는 복음 사역자로 쓰임 받는 기회를 주십시오”라고 기도한 것을 늘 실천하려고 했고, 또 그분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재물에 소망을 두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러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 권사님이 다윗보다 행복하다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다윗은 성전을 짓고 싶어 했잖아요?
그의 평생 소망은 하나님이 거하실 멋진 성전을 짖고 하나님의 법궤를 멋진 성전에 안치하고 싶어했는데, 그래서 나단 선지자에게 자기가 성전을 짓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뭐라 하셨나요? 다윗은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성전을 짓지 못한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다윗은 성전 짓는 것을 포기하고 그 아들 대에 가서 지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두었잖아요.
다윗은 성전을 짓고 싶어도 짓지 못했지만 심 권사님은 하나님의 집을 여덟 군데나 지어 봉헌하였으니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다윗보다 행복한 사람이다 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겁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버는 목적이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좀 더 행복한 생활을 위해서이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신을 위하는 것도 물론이지만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돈을 벌고, 돈을 사용합니다.
그러면서 행복해 합니다. 이런 행복을 누가 줄 수 있겠습니까? 세상이 줄 수 있습니까? 아무도 그분에게 그런 행복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런 행복을 세상이 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행복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정말 주님을 나의 구주로 섬기고, 그 분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지요.
그런 저와 여러분도 다 다윗보다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믿습니다. 물질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서 살았기에 그런 행복을 맛 볼 수 있었던 권사님처럼 저와 여러분들도 그런 행복을 누리는 복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한 사람의 영향력이 대단합니다. 악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고, 또 선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 사람이 예수를 잘 믿으면 그 사람도 행복하고, 그 사람의 가족들도 예수를 잘 믿고, 또 교회에도 유익을 끼칩니다.
교인 가운데서도 신앙생활 잘 하는 사람들은 교인들에게 용기를 주고, 자극을 줍니다. 그래서 교인들끼리도 “저 사람, 참 예수를 잘 믿는다. 예수를 믿으려면 저 사람처럼 믿어야 된다.” 그런 소리를 듣는.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그런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안 믿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줍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르다.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저 사람은 다르다.” 그렇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오벧에돔이 법궤를 3개월 동안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 법궤가 뭐예요? 법궤 안에는 뭐가 들어 있어요? 다 아는데 갑자기 물으니 퍼떡 생각이 안 나지요?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예요. 법궤,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고, 법궤는 상징적인 것입니다. 법궤 안에는 십계명이 기록된 돌판 두 개가 있고, 또 아론이 지녔던 지팡이. 싹난 지팡이를 넣어 두었고,
또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40년 동안 먹이셨던 만나. 그 만나를 넣은 항아리를 법궤에 넣어 두었어요. 이 세 개가 법궤 안에 들어 있어요.
그래서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거기 계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오벧에돔이 이 법궤를 3개월 동안 모셨다가 놀라운 복을 받았어요. 하나님으로부터 귀한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하나님을 잘 모심으로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놀라운 복을 다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오벧에돔이 받은 축복, 어떻게 해서 그가 이러한 복을 받았는지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듣고, 나도 오벧에돔이 받은 그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삶이 되기를 결단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벧에돔이 받은 축복.
첫째 그는 결단을 했기 때문에 복을 받았습니다.
역대상13장13-14절 "다윗이 궤를 옮겨 자기가 있는 다윗 성으로 메어들이지 못하고 그 대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가니라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의 가족과 함께 석 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이 법궤를 다윗 성으로, 예루살렘 성으로 모셔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근데 이 법궤는 지금 아비나답의 집. 아비나답의 언덕에 20년 동안 방치 되어 있었어요. 20년.
말이 20년이지요. 결코 적은 햇수가 아니잖아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20년이란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법궤에 대한 기억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법궤가 없어도 지금까지 잘 지내왔고, 살 만하니까. 이 법궤에 대한 애착심, 소중함. 이런 것이 없어졌습니다.
근데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되면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이 법궤를 방치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고, 법궤를 예루살렘 성으로, 다윗 성으로 모셔오게 됩니다.
그래서 법궤를 잘 모시기 위해서 새 수레를 만들고, 건강한 소를 준비했어요. 소로 하여금 법궤를 잘 끌 수 있도록, 그리고 2만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을 동원해서 국가적인 축제행사로. 그리고 나팔을 부는 사람,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을 많이 동원해서, 굉장한 행렬로 법궤를 옮기기 시작했어요.
새 수레에다 법궤를 얹고, 소로 하여금 법궤를 끌게 해서 옮기는 도중에 갑자기 소가 뛰었어요. 무엇 때문에 소가 뛰었는지는 모르지만 소가 뭔가에 놀라서 펄쩍 뛰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수레 위에 있는 법궤가 떨어질 수밖에 없지요. 법궤가 떨어지는 것을 막으려고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가 그것을 붙들었어요. 그러자 웃사가 그 자리에서 죽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게 됐어요. 이런 돌발적인 사건 앞에 다윗은 두려움을 느꼈어요.
이런 사건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법궤는 짐승이 끄는 것이 아니고 준비된 사람, 제사장들이 어깨에 메어서 옮겨야 하는 것을 나중에서야 다윗이 깨닫게 되었지만, 그 때는 그 사실을 모르고 짐승이 끌게 했기 때문에 이런 엄청난 사고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웃사가 지금 죽었습니다. 제사장의 아들, 웃사가 죽었어요. 그것도 떨어지는 법궤를 붙들다가 죽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런 엄청난 사건 앞에 법궤를 길바닥에 그냥 놔 두지도 못하고,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누가 그런 법궤, 이 살인적인 법궤를 자기 집에 모시려고 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잘못하다가는 자기 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데. 아무도 자기 집에 법궤를 모시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왕인 다윗도 도중에 포기한 상태인데, 누가 모시려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왕을 비롯해서, 대신들이 ‘야. 여기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오벳에돔 집에 이 법궤를 모시자.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겠어요?’ 아마도 법궤가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레위 가문의 집을 찾아보니, 오벳에돔의 집이 가장 가까이 있었던 거겠지요.
그래서 그 법궤를 오벧에돔 집에 모시게 되었던 것일 겁니다. 오벧에돔. 오벳에돔은 레위 자손들 중에 고핫의 후손이기 때문에 법궤를 보관할 충분한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 오벧에돔은 우리가 상황적으로볼 때, 그리 뭐 대단한 사람이거나, 큰 집안이거나, 세력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괜찮은 사람들,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들은 ‘아. 우리는 그거 안 모시겠다.’ 다 거절하고, 마지막으로 힘없는, 그의 집에 이 법궤를 모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벧에돔의 입장에서는 ‘이 법궤를 만지다가 죽은 웃사도 있는데, 이 법궤로 인해서 잘못하면 내가 죽을 수도 있고, 내 가족이 죽을 수도 있고, 우리 후손들이 죽을 수도 있다.’
이것을 통해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그런 상황 속에서 ‘죽으면 죽으리라’ 그러한 마음으로 법궤를 모시게 되었어요. 위대한 결단, 정말 위대한 결단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다가 죽어도 좋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다가 망해도 좋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다가 어떤 역경, 고난을 만나도 좋습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김으로 법궤를 모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오벧에돔 집에 놀라운 복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세상을 사람들은 누구나 다 근심, 염려, 걱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염려라고 하는 것은 부정적인 게 많아요. 꿈을 빼앗아갑니다. 비전을 빼앗아 갑니다. 그래서 삶을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이 염려에 붙들리게 되면은 이 시각을 흐리게 해서,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고, 또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함으로 인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실수하게 하고, 실패하게 합니다.
염려는 건강에도 해롭습니다. 그래서 어떤 심리학자는 이 염려를 ‘느린 형태의 자살’이라고 그랬습니다. 자살하면 금방 죽잖아요. 그런데 이 염려는 금방 죽지는 않아요. 그래서 ‘느린 형태의 자살’. 조금씩 조금씩 죽인다. 그런 얘깁니다.
염려(念慮)는 영어로 ‘워리’(worry)입니다. ‘워리’(worry), 이 말은 원래 고대 앵글로색슨어인 ‘위르겐’(wyrgan)에서 유래하고 ‘물어 뜯다. 목을 졸라 죽인다.’ 그런 뜻이 있습니다. (의사인 W. C. 알바레즈는 위장 장애의 80%는 염려와 두려움에서 온다고 했다. 염려와 두려움이 심해지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아프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 또한 위장병을 발생시킨다.)
그래서 염려라고 하는 것은 뭐든지 물어뜯어요. 영적으로 물어뜯고, 꿈을 물어뜯고, 몸을 물어뜯고, 신앙을 물어뜯고, 그래서 결국은 피흘리게 하고, 쓰러지게 하고 죽게 하는. 이것이 바로 염려입니다.
그래서 염려하게 되면 기도하지 못하고, 영적으로 질식하게 되고, 영적으로 죽게 됩니다.
근데 이 오벧에돔이라고 하는 사람은 염려도 있었겠고, 두려움도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려, 두려움 다 하나님께 맡기고 법궤를 자기 집으로 모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저런 염려로 인해서 법궤를 모시려고 하지 않았지만 오벧에돔은 모든 염려를 다 주님께 맡기고 법궤를 자기 집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죽음보다도 더 큰 믿음을 소유했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우리는 어떤 결단을 할 때에 늘 하나님 중심의 결단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는 어떤 고난과 어려움이 오더라도 좋습니다. 어떤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좋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죽음이라도 내 놓겠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큰 결단을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인생을 책임져 주시고, 결단보다도 큰 복을 허락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네가 아무런 조건 없이 이렇게 큰 결단하니 참 고맙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기억하시고, 그 사람에게 놀라운 은혜를 내려 주실 줄 믿습니다.
오벧에돔처럼 우리의 삶에 어떤 큰 결단이 필요할 때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결단함으로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 중심에 서 있음을 보여 주는 성도가 되시고, 또 우리의 결단이 그 결단보다 더 큰 은혜와 복을 충만하게 받는 삶을 사는 성도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 능력을 받았습니다
본문 8절 “이는 다 오벧에돔의 자손이라 그들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형제들은 다 능력이 있어 그 직무를 잘하는 자이니 오벧에돔에게서 난 자가 육십이 명이며”
오벧에돔이 결단을 하여 법궤를 자기 집에 모심으로 해서 받은 축복이 뭐겠습니까? 그 뿐 아니라 그의 자손들이 다 능력을 받았습니다.
갈등하게 되면 사람이 약하게 되고, 또 분열이 오게 됩니다. 사단은 사람의 생각을 자꾸 갈라놓게 됩니다.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갈까 말까? 그러다 보면 약해지게 되고, 무기력해지게 되고, 거기에서 분열이 있게 되고, 싸움이 있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결단을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결단을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평안을 주시고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필요한 모든 것들을 허락하여 주시고 함께 할 동역자를 붙여주십니다.
오벧에돔이라는 사람이 죽으면 죽으리라고 하는 마음으로 법궤를 자기 집에 모셨을 때 그에게 능력이 생기게 되었어요. 법궤를 모실 수 있는 능력이 생겼고,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큰 능력이 생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자손들까지도 능력을 다 받았어요.
부모는 자녀들이 다 잘 되고,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자녀들이 잘 되고, 행복할 수만 있다면 뭐든지 마다하지 않고 일을 합니다. 헌신합니다. 목숨까지도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잘 되고 행복하기를 원해요. 사회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높아지기를 원해요. 승리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귀와 영광과 박수를 받으시기를 원하는 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길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놀라운 복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오벧에돔이 하나님을 위해 큰 결단을 했을 때 자신이 능력을 받았을 뿐 아니라 후손들이 능력을 받았고, 복을 받았다 그랬습니다.
오벧에돔의 후손들이 복을 받았는데 어떤 복을 받았는가 하면 성전 문지기가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성전 문지기가 되는 거. 이거 결코 보잘 것 없는 직책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하면은 그거 뭐 별거 아닌데 그거 가지고 그렇게 능력을 받았고, 큰 복을 받았다고 그러냐 라고 반문하시겠지만 그 당시에는 성전에서 봉사하는 거, 성전 문지기가 되는 거. 대단한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전문지기를 하려면 먼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 믿음이 없이는 그 일을 할 수 없어요. 믿음이 없이 어떻게 교회의 일, 교회의 문지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다음으로 성전문지기를 하려면 지혜가 있어야 해요. 교인들의 명단을 다 파악해야 해요. 교회에 들어가는 사람, 나오는 사람. 들어가야 할 사람, 들어가서는 안 될 사람. 이것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그런 판단력, 그런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술 먹은 사람. 깡패. 불량배, 이런 사람들을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끌어내고, 싸우고, 또 그런 사람들을 압도하고, 제압할 수 있는 힘,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따라서 성전 문지기로 있다는 것은 믿음의 사람이요, 지혜의 사람이요, 힘의 사람입니다.
근데 하나님께서 오벧에돔이 하나님의 법궤를 잘 모시고, 하나님을 잘 섬겼더니 그와 그의 후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셨어요. 그래서 “그의 아들과 그의 형제들은 다 능력이 있어 그 직무를 잘 하는 자이니.”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신 겁니다.
하나님을 잘 섬긴 오벧에돔의 후손들이 능력 있는 사람들이 되었던 것처럼 여러분과 여러분의 후손들이 능력 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에서도 하나님을 잘 섬기고 이웃을 잘 섬기는 봉사자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되고, 또 사회에서도 능력 있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이 사회에서도 능력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이 사회에서도 존경받고, 높임을 받고, 능력을 인정받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높임을 받고, 능력을 인정받고 사회 구석구석에서 자기의 자리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손들이 그러한 삶의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단했을 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셨고, 노아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방주를 만들기로 결단했을 때 방주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해 주셨고,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기로 결단했을 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큰 능력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됩니다. 내 힘으로, 내 지혜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힘입어 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 자손들이 오벧에돔처럼 결단하고 능력을 받는 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축복을 받았습니다
본문 4-6절 "오벧에돔의 아들들은 맏아들 스마야와 둘째 여호사밧과 셋째 요아와 넷째 사갈과 다섯째 느다넬과 여섯째 암미엘과 일곱째 잇사갈과 여덟째 브울래대이니 이는 하나님이 오벧에돔에게 복을 주셨음이라 그의 아들 스마야도 두어 아들을 낳았으니 그들의 조상의 가문을 다스리는 자요 큰 용사라"
하나님을 위해서 큰 결단하면 하나님께서 능력자가 되게 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의 후손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위한 결단은 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길이고, 복을 받는 위대한 그릇입니다.
“하나님이 오벧에돔에게 복을 주셨음이라”고 하였습니다. 3개월 동안 법궤를 그의 집에 모셨을 때 그의 집에 놀라운 복을 주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제사장의 아들 웃사가 법궤를 만짐으로 즉사한 것을 보고 겁이 나서 아무도 법궤를 모시려고 하지 않을 때에 오벧에돔이 그 법궤를 모셨는데, 3개월 밖에 모시지 않았음에도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는데 놀랍게 복을 주셨어요.
그가 받은 복은 어떤 복입니까? 먼저 자신이 복을 받았어요. 믿음의 복을 받았어요. 하나님을 믿는 복, 법궤를 모시면서 믿음이 상승하게 되었어요. 법궤를 모시면서 믿음이 커지게 되었다는 거예요. 믿음이 커진다는 거. 이것보다 큰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음은 후손들이 복을 받았어요. 62명의 후손을 주셨어요. 구약에서는 많은 후손은 복의 상징이었어요. 보이는 복이었습니다. 오벧에돔의 후손이 62명으로 많을 뿐만 아니라 오벧에돔의 믿음을 본 받아서 하나님을 잘 섬기게 되었어요.
내 후손들이 하나님을 섬긴다는 거. 이거 복입니다. 이거보다 더 귀한 복이 어디있습니까?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데 자녀들은 하나님을 잘 섬기지 않고, 세상에서 열락하며 산다면 참 안타까운 일이지 않겠습니까?
후손들이 예수 잘 믿는 거. 이거 복된 일이예요. 오벧에돔에게는 그런 복을 허락해 주셨어요. 우리의 믿음으로 우리 후손들이 복을 받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오벧에돔에게 물질의 복을 주셨어요. 그들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울 수 있도록 복을 주셨어요. 또 후손들이 큰 용사가 되는 복을 주셨어요. 큰 사람. 오늘날로 말하면 큰 장군이 되었다는 거예요. 큰 장군이 된다는 거. 쉽지 않아요.
큰 회사에 사원으로 취직하기도 어려운 세상인데 큰 장군이 된다는 거. 또는 대 기업에 CEO가 된다는 거. 별이 된다는 거. 굉장히 어려운 거예요.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돼요.
오벧에돔의 후손들이 큰 용사가 되었다는 거. 이게 복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봉사했습니다. 하나님의 전에서 문지기로 봉사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거. 하나님께 봉사한다는 거. 참으로 귀한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다음에 그들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어 영원히 기억되게 했어요. 그와 그의 후손들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는 놀라운 복을 받게 되었어요.
오벧에돔이 법궤를 자기 집에 3개월 밖에 모시지 않았는데도 하나님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후손들에게 이렇게 놀라운 복을 주셨어요.
오벧에돔. 그러면 신약에서 생각나는 사람이 있는데 여러분은 누가 생각이 나시는지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가실 때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기에 그 광경을 보려고 갔다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데 자꾸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그러니까 로마 군인이 주위에 있는 사람을 둘러보고는 힘있게 보이는, 유대인이 아니고 이방인, 흑인 구레네 시몬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했어요.
구레네 시몬, 그는 십자가를 지려고 하지 않았어요. 원치 않았지만 억지로 십자가를 지웠기에 십자가를 지고 가게 되었지만, 그는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 십자가의 은혜를 받았어요.
십자가의 고통을 알게 되었고, 십자가의 구속을 받게 되었고, 예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예수님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를 짐으로 그는 큰 은혜를 받았어요. 십자가를 짐으로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몬의 아들이 예수를 잘 믿게 되었어요. 그래서 사도 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얘기하기를 알렉산더 루포, 시몬의 아들이 루포입니다. 루포의 어머니가 나의 어머니다. 그랬어요. 대 사도인 바울이 구레네 시몬의 부인을 향하여 ‘나의 어머니다. 루포의 어머니가 나의 어머니다. 구레네 시몬을 바울이 나의 아버지다. 영적인 아버지다’ 그렇게 고백한 거요.
십자가를 짐으로 구레네 시몬이 복을 받았고, 그의 후손이 예수 믿고 복음을 전하는 놀라운 복을 받게 되었던 겁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해 결단하고, 희생하는 거. 갚아주시되 천배 만배로 이 세상에서 갚아 주시되, 이 세상에서 갚아 주시는 것은 그냥 그림자에 불과할 정도입니다.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면류관을 씌워주시고, 면류관의 보석처럼 하나님께서 빛나게 해 주신다는 겁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믿어야 됩니다.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봐야 돼요. 그런데 종종 보게 되면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보지 않고, 복만 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복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고, 하나님을 못 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의 복을 주셨더니 그 물질이 우상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물질 때문에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높여주셨어요. 그랬더니 교만하고 우쭐합니다. 그래서 교회와 멀어지고, 하나님과 멀어지고, 그렇게 된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습니까?
복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열매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나무를 보는 그런 사람이 될 때 그는 복의 근원이 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고, 복의 통로 살아갈 수 있고, 복 받는 사람답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오벧에돔처럼 하나님을 위해서 큰 결단을 하십시다. 하나님을 위해서 죽으면 죽으리라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내가 어떠한 일이라도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내가 어떤 고난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가 큰 결단을 하기만 하면은 하나님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후손들에게 능력을 주셨고, 그리고 그의 후손들에게 복을 베풀어 주셨던 것처럼, 우리가 오벧에돔처럼 살기만 하면은 능력과 복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이렇게 복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생명과 복의 근원이 되셔서 저희의 삶을 축복으로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헌신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충성함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벧에돔처럼 하나님을 잘 섬기겠다는 결심으로 인해 복을 받게 하시고, 능력을 주셔서 주의 일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하여 주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축복을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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