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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지리산 동부 7암자터 찾아가기
모전동 용문사 앞-x677m-△712.7m-솔봉(x918m)-선녀굴-유슬이굴-의론대-고열암-신열암-함양독바위-환희대-선열암-장군봉-금낭굴-지장사터-박쥐굴-운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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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8일 (일) 맑음
본인포함 5명
동부 7암자터는 조선조 점필재 김종직선생이 咸陽郡守로 있던 임진년(성종 2년 1471) 仲秋에 뇌계 유호인 매개 조위와 함께 두류산(지금 지리산) 유람하였고 이때 지은 遊錄이 있으므로 이게 바로 遊頭流錄이다
그 유두류록을 매개로 지리99의 운영자께서 점필재의 행적을 쫒아서 찾아낸 것이 동부 7암자터다
김종직(金宗直 1431년 6월 ~ 1492년 8월 19일)은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이자 사상가이며 성리학자 정치가 교육자 시인이다
자字는 季溫 孝盥 호는 佔畢齋 시호는 文忠 본관은 善山이다
세조 때에 동료들과 함께 관직에 진출하여 세조~성종 연간에 동료 후배 사림파들을 적극 발탁하여 사림파의 정계 진출 기반을 다져놓았던 사람이다
몇 년 사이에 지리산 매니아들에 의해서 바로 이 동부 7암자터를 찾는 산행이 알려지고 우리도 지난주에 이어 단풍을 따라서 지리산의 이곳을 찾아보는 산행을 계획한다
03시25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한남동 5거리에서 합류 후 고속도로를 달려서 생초ic를 통해서 유림면을 거쳐서 임천강을 끼고 달려서 모전동에 도착하고 07시20분 행장을 꾸리고 용문사 앞에서 임천강을 뒤로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 임천강을 뒤로하고 산행 시작
▽ 모전길375 용문사 옆으로 올라서고
일주일 사이에 아침의 기온이 더 차게 느껴지는 것은 바람이 불어서이고 낮에는 맑았지만 출발하는 이아침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있고 찌푸린 하늘이다
출발하는 들머리는「모전길」이고 그냥 일반의 민가 같은 용문사가 자리하고 있다
감나무에는 이미 까치밥만 남아있을 정도로 이제 가을이 지나가려는 모양이다 올라갈 능선자락을 좌측으로 두고 잠시「고양터」로 향하는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오르다가 시멘트 수로를 건너서 좌측의 사면으로 붙어 오른다
출발 6분 후 올라선 능선자락에는 무덤 하나가 자리하고 있어 희미한 족적이 남동쪽으로 이어지며 오르고 다시 5분 후 무덤이 나타나고 우측 아래로 민가가 보이며 능선의 잘록이 좌측으로 상수도 시설을 지나면 송림아래 푹 패어진 등산로가 뚜렷하며 6분 후 좌측으로 무덤이 나타나면서 저 위 △712.7m에서 좌측으로 흘러내린 능선이 보이며 족적은 약간 희미해진다
4분 후 바위들과 어우러진 2기의 무덤을 지나며 송림아래 오름이다
▽ 능선은 무덤을 지나고 우측 아래 민가를 보며 오름이다
07시45분 바위가 있는 무덤에서 4분을 올라서니 고양터와 마적동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길로 올라서니 전면의 능선자락은 절개지로 높고 거대한 바위가 위태하게 서있는 곳인데 이곳에서 바람을 피해서 아침식사를 하고 8시13분 출발,
시멘트 길을 살짝 돌아서 좌측으로 올라선 족적이 보여서 잡목 사이로 비집고 올라서보니 2분 만에 우측에서 빙 돌아 올라온 시멘트 길이고 한쪽에 저장시설이 있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날 등의 좌측사면으로 뚜렷한 길이 있어 잠시 따르면 상수도시설의 길이라 우측의 날 등으로 올라선다
날 등으로 올라서서 동쪽의 능선을 잠시 따르면 능선의 우측으로 축대위에 牛舍가 지어져 있고 좌측사면으로 무언가 재배한 곳으로 전선이 쳐져있어「감전주의」표시다
사면을 치고 올라 능선의 날 등으로 올라서서 족적이 희미한 북동쪽으로 치고 오르니
08시43분 잡목들이 자라난 평범한 봉우리가 지도상의 x677m다
동쪽으로 조금 내려서고 잠시 후 오름이 시작되니
08시54분 구덩이가 파진 봉우리에「운봉422 1981재설」이끼 낀 삼각점의 △712.7m 정상이다
▽ 시멘트 길로 올라서고 식사 후 능선으로 오르니 우측은 牛舍와 민가다
▽ 평범한 봉우리의 712.7m 정상
북동쪽 저 위로 나뭇가지 사이로 독바위가 올려다 보이고 남동쪽으로 잠시 내리면 산죽들이 무성하고 2분 여 올라서고 다시 잠시 내리는데 전면으로 골봉이 올려다 보이고 우측아래 약초 재배지에는 철망이 쳐져있고「출입금지」붉은색 경고문이며 잠시 시야가 터지는 곳이다
우측 재배지 저 편 골자기 건너 산 사면에 몇 채의 민가도 보이는 지점이다
좌측아래 내려갈 수 있는 뚜렷한 족적도 보이는 이곳에서 다시 오름인데 이곳부터 국립공원구역이라 그런지 山표시의 시멘트 말뚝이 곳곳에 보인다
바람은 몸을 움츠리게할 정도로 거세게 불어대고 참나무아래 산죽지대를 오르니
09시14분 바위들이 가로막으니 바위사이로 올라서니「선녀굴」화살표의 낡은 이정표를 지나고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하며 오름이다
낡은 이정표에서 6분 후 다시 선녀굴3km의 표시가 보이지만 거리는 엉터리로 보이고 2분 여 더 올라서면 솔봉 정상 아래의 멋진 전망대 바위다
차라리 이곳을 솔봉이라고 하면 좋겠다며 바람이 거세게 불어대지만 조망 좋은 이곳에서 막걸리 한 잔씩들이다
▽ 솔봉이 올려다 보이는 약초재배지대
▽ 국립공원 경계로 들어서고 올라선 솔봉 아래 전망대
서쪽으로 지나온 능선과 그 북쪽으로 임천강 건너 법화사를 품은 법화산(997m)이고 그 좌측 뒤로 구름에 살짝 가린 삼봉산(1.186.7m)이다
그 삼봉산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에는 금대산(847m)이 너무도 뚜렷하게 보이지만 백운산(902.7m)은 금대산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서쪽은 창암산(923.3m)이 가깝게 보이고 그뒤로 희미하게 배경으로 한 산은 바래봉(1.165m)과 덕두산(1.149.9m)이다
09시40분 전망대 출발,
전망대에서 9분 후 올라선 솔봉 정상에는 낡아서 쓰러진 경관안내판이고 바위틈사이로 내려서다보면 좌측 저 위로 독바위가 보인다
09시58분 선녀굴1km를 알려주고 오름은 이어진다
10시05분 오름상의 밋밋한 능선의 우측으로 내려서는 뚜렷한 길이 보이는데 「선녀굴」갈림길이다
우측사면의 길을 따라 3~4분 내려서면 거대한 바위가 서있고 그사이로 틈이있어 들어서보면 공간이 있어 기도처로 이용되었을 것 같고 인근에 샘이 있어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셈이다
함양군에서 이곳 선녀굴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이렇게 깊은 산속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는 선녀굴도 처절했던 한국전쟁의 비화를 품고 있다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 송대마을 뒤 해발 약 1000m에 위치한 선녀굴은 마지막 빨치산이었던 정순덕 이홍이 이은조 3명이 10여 년 동안 은거해 있었던 곳이며 여기서 이북출신의 남파 공비 이은조(당시 45세)가 1963년 2월 토벌대에 사살된 곳으로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곳인데 이는 1963년 11월 정순덕이 체포되면서 증언하였다고 한다
▽ 지나온 능선 북쪽으로 법화산과 그 좌측 너머 삼봉산이 보이고
▽ 금대산도 보인고
▽ 창암산 너머 멀리 바래봉과 덕두산도 희미하다
▽ 솔봉을 지나 바위사이로 내려가고
▽ 좌측 좌 위로 독바위가 올려다 보인다
▽ 선녀굴
10시16분 다시 배낭을 벗어놓은 능선에 복귀하고 이번에는 좌측으로 거의 길이 없는 사면을 타고 돌아가니 3~4분 후 성인 세 사람 정도가 양팔을 벌려야 안을 수 있을 거대한 고목이고 잠시 후 썩어 죽은 고목의 흔적을 보고 내려서면 너덜지역들이고 고로쇠수액 재취를 위한 호스들이 널려있고 넝쿨잡목들이 어지럽다
여기서 야간 내려서면서 찾아야 유슬이굴이 나타나는데 정보를 잘못 이해해서 오를는 실수를 하며 금방 찾을 수 있는 유슬이굴을 찾느라 시간이 소요되고,
10시42분 그렇게 어렵게 찾은 유슬이굴은 굴이라기보다 거대한 바위들이 오묘하게 서로 의지해서 바치고 있는 아래로 공간을 만들어 놓은 멋진 비박터 같은 곳인데 제법 넣은 공간이라서 이곳도 역시 물이 있어 기도처로 괜찮다 싶지만 그 옛날 신발도 변변치 않을 때 이런 험한 곳을 어떻게 찾아올라왔지 수행자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아무튼 요즘으로 치면 십 수면 정도는 비바람을 피할만한 공간이고 굴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니 비록 지금은 나무로 막혀 있지만 예전에는 확 트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 유슬이굴
10시54분 능선으로 복귀하니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고 암자터를 찾느라고 그런지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는 생각이다
막걸리 마시고 11시05분 출발, 동쪽의 오름이다
11시17분 거대한 바위 앞으로 올라서니 지나온 북쪽이 잘 보이는 이곳이 의론대인가!
모두들 이곳을 의론대라고 했는데 맞는지 확실치 않다 다만 북쪽의 조망이 잘 트이는 곳이다
의론대에서 점필재는 이런 글을 남겼단다
의론대(議論臺)
승복을 어깨에 걸친 두 명의 호승이 / 兩箇胡僧衲半肩
바위 사이서 소림의 선을 가리켜 말하네 / 巖間指點小林禪
저녁 볕 아래 홀로 삼반석에 서 있노라니 / 斜陽獨立三盤石
소매 가득 하늘 바람에 신선이 되는 듯 하구나 / 滿袖天風我欲仙
오름은 계속 이어지고 일대는 여기저기 다 바위지대 다
11시23분 역시 커다란 바위가 서있는 능선에서 우측으로 2분 만에「고열암」터를 찾는다
역시 거대한 바위 사이로 비를 피할 수 있는 좁은 수도터 다
宿古涅庵(고열암에서 자다) 金宗直, 佔畢齋
病骨欲支撑(병골욕지탱) : 지친 몸 지탱하려고
暫借蒲團宿(잠차포단숙) : 잠시 포단 빌려 잠을 자는데
松濤沸明月(송도비명월) : 소나무 물결(파도소리) 달빛 아래 들끓으니
誤擬遊句曲(오의유구곡) : 국곡선경에 노니는 듯 착각하였네
浮雲復何意(부운복하의) : 뜬 구름은 또한 무슨 뜻인가?
夜半閉巖谷(야반폐암곡) : 한밤중 바위 골짜기 닫혀있구나
唯將正直心(유장정직심) : 오직 올곧은 마음을 가진다면
倘得山靈錄(당득산영록) : 혹시 산신령의 살핌을 얻으려나
-여기저기서 퍼 옴-
▽ 의론대로 짐작되는 바위지대서 법화산을 바라보고
▽ 고열암터
11시30분 신열암터에 도착해보니 큰 바위벽 아래 수도한 흔적이고 우측으로 돌아보니 바위아래 샘터의 흔적에는 물이 말라있다
금방 능선으로 돌아와서 3분 여 후 독바위 인근에 도착한다
그냥 오르다보니 다른 분들이 지나면서 본 안락문이 음각된 바위를 놓쳤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대는 가운데 몇 년 까지 있었다던 철제 사다리는 공단에 의해 제거되어서 내 다리상태로는 독바위 상단부로 오를 수 없기에 포기하고
12시 올라갔던 일행들이 내려오며 독바위 출발
이제 다시 북쪽을 바라보며 마른 골자기 같이 내려서다가 7분 후 우측사면으로 들어서며「선열암」을 찾으러 온통 바위투성이의 사면을 헤맨다
낙엽이 바위와 바위사이에 깔려있어 발을 잘못 디디니 바위 틈사이로 다리가 빠져서 부상을 입기도 할 정도로 뿔뿔이 흩어져서 선열암 찾기를 해봐도 찾지를 못한다
헤매다보니 어느새 50분 정도의 시간이 흘러버렸고 분명 이 일대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선열암 찾기를 포기하고 소주를 곁들인 점심식사를 마치고 13시30분 출발
▽ 신열암터를 찾고
▽ 독바위
선열암 찾기를 포기하고 좌측의 사면을 따르다가 올라선 능선은 출발 5분 후 소나무와 어우러진 절벽 같은 곳이「환희대」인 모양이다
환희대가 확인되었으니 다시 방금 내려선 쪽 역으로 다시 선열암터를 찾기를 하고자 사면을 훑는다
14시10분 선열암터라고 찾았지만 그럴듯한 바위에 기도처로 보이지만 선열암터는 아니다
결국은 고개를 갸웃하고 16시32분 이곳을 출발
서로가 의논하기를 그냥 이곳에서 우측(동)의 사면을 치고 올라서 장군봉으로 오르고 금낭굴을 찾고 지장사터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하기로 한다
14시53분 능선의 날 등에 올라서니 서쪽 저 편 역광에 독바위가 보이고 4분 후 지도상의 장군봉 직전의 전망바위가 있어 올라서보니 서쪽 사면 저편으로 환희대 능선 저 위에 독바위가 보이고 북쪽 법화산 좌측 뒤로 삼봉산은 아침 때 보다 제대로 보인다
조망을 즐기고 잠시 내려서니 잡목의 평범한 봉우리가 지도상의 장군봉으로 보이고 내려서다가 좌측사면으로 내려서는 것은「금낭굴」을 찾기 위함이다
15시38분 장군봉에서 20분 후 금낭굴로 추정되는 기도터를 찾고 우리는 금낭굴이라고 했지만 다녀온 뒤 선답자들의 행적을 보니 결국은 금낭굴이 아니고 그냥 기도처로 판단된다
▽ 환희대에서
▽ 선열암이라고 찾았지만 아닌 것으로 판명되나 그러나 기도처다
▽ 역시 금낭굴로 추정되며 찾았지만 이 역시 일반의 기도터였다
▽ 다시 능선의 전망바위에 올라서니 독바위가 멋지다
▽ 전망바위에서 다시 바라본 법화산과 삼봉산
결국은 7암자터 찾기에서 선열암 금낭굴도 못찾고 막걸리만 마시는 휴식 후
16시02분 출발하며 다시 아까 내려섰던 우측의 능선으로 붙으니 우측으로 길게 뻗은 능선이 보이는데 공개바위 능선이다
16시15분 부지런히 내려서다보니 큰바위가 가로막는 해발 905m 지점이고 7분 후 폐 헬기장터를 지난 둔덕 같은 곳은 해발 865m 정도
16시27분 거대한 바위가 가로막는 지점에서 뚝 떨어진다
16시33분 국립공원 경계표석이 서있는 곳에서 좌측의 지능선으로 따라 내려서다보니 아차! 계곡 쪽으로 내려서고 말았다
오늘은 여기저기 사면으로 돌아다니다가 시간을 다 뺏긴다
다시 우측의 사면을 비스듬히 오르는 듯 진행하다보니 16시52분 어라! 뜻하지 않게「박쥐굴」이다
역시 거대한 바위 앞에는 제법 넓은 공터가 있고 바위 사이의 좁은 입구로 들어서보니 의외로 넓은 굴이 형성되어 있다
결국은 지장사터도 못찾고 지나친 꼴이니 언젠가 다시 코스를 달리해서 찾아야 할 모양이다 17시10분 박쥐굴 출발
▽ 폐 헬기장도 지나고 거대바위 지대도 지나고 국립공원 경계를 벗어나고
▽ 박쥐굴
5분 후 글씨를 알아볼 수 없는 비석의 폐 무덤을 지나고 좌측사면의 산죽들 사이로 내려서다 보니 마른 계곡들이고
17시33분 드디어 물이 흐르는 본류를 만나고 잠시 후 마을사람들이 다닌건지 잡목과 풀들을 베어놓아 널은 길이 형성된 계곡 옆의 길을 따른다
17시45분 이미 어둑해지면서 팻말 같은 것이 붙어있는 곳을 지나니 곧 민가가 나타난다
계곡을 끼고 시멘트 포장길을 내려서다보니 잠시 후 잘 지어진「적조암」이고 일대는 감나무들이 보기 좋다
▽ 오랜 비석의 폐 무덤도 지나고, 마지막 민가로 내려서고
▽ 적조암을 지나고
▽ 어둠 속에 운암마을로 하산
어둠속의 시멘트 길을 따라 계속 내려서서 민가의 불빛을 보며 내려서고
18시19분 운서쉼터를 지나고 18시30분 정자를 지나고 민가로 내려서니 운암동 마을에서 산행을 마치고 마침 이 동네의 차량으로 한사람만 아침의 차량을 둔 곳으로 이동해서 차량을 회수해오고 유림면의 식당에서 뒤풀이 후 서울로 돌아오는데 뭔가 찜찜한 그런 산행이다. -狂-
첫댓글 큰 산이아니라서,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뭉쳐서 가실 때 따라나서야 가볼 수 있는 곳인데~~~그나마 산행기로 주변을 감상 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