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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2015.12.25.(금)04:00-14:30
코스: 구천동 탐방지원센타-백련사-향적봉-중봉-백암봉-동엽령-무룡산-삿갓대피소-월성치-남덕유산-서봉-할미봉-육십령(약32km, 평균:3.1)
1. 펭귄 효과
24일(목) 덕유산 송년 무박 산행을 앞두고 23일(수)까지 20명 내외에 불과했던 신청자 수가 당일 출발을 앞두고 38명으로 늘어나는 놀라운 결과가 생겼다. 지난 주 지리산 남부능선 산행 때와 유사한 결과가 두 주에 걸쳐 연이어 일어나 주최측은 또 한번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기분을 맛보았을 것이다. 나 역시 늦은 신청자 중 한 명이었다.신청을 망설였던 이유 중 하나는 올초 겨울 구륙종주산행 때 무룡산 구간에 밤새 도둑눈이 한 길 정도쯤 내려서 길이 다 덮여있기에 더 나아가지 못하고 안성탐방지원센터로 내려온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또 하나는 얼마 전 눈이 많이 내린 날 덕유산 조난 사고로 한 명이 죽었다는 언론 보도로 집안에서의 반대가 있어서였다. 또 크리스마스 전날에 어디 간다는 것도 마음 편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신의 몸으로 이 세상 가장 낮은 데로 임하셨는데, 우리는 오만하게 세상 가장 높은 곳으로만 가고자 하니 이것도 불경스러운 일 아닌가?
하지만 겨울이면 한 번쯤 생각나는 산이 덕유산이라 그 유혹 역시 떨치지 못하다가 지기님께 무룡산 상황을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통과에 지장이 없을 거라는 확답을 받고서 신청을 했더니 그 후 신청자가 놀랄 만큼 늘어난 것이다. 졸지에 내가 물 속에 과감히 뛰어든 펭귄이 된 기분이었다. 펭귄은 물 속에 들어가기 전에 천적이 두려워 머뭇거리다가 한 마리가 먼저 뛰어들면 다른 펭귄들도 따라 뛰어든단다..이런 것을 펭귄 효과라 하는데 우리 카페는 앞으로도 누군가 과감한 펭귄이 되어야 할 것 같다.. 한편,무조건 출발한다는 새 정책을 추진하신 날도야지님의 배짱이 빛을 보는 것 같다. 친목산악회도 신뢰가 중요하니까...
2. 백련사에서 동엽령까지
교대역으로 출발지가 바뀐 지가 꽤 되어 사당은 아예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아직도 사당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분들로 인해 출발 시간이 좀 늦어지긴 했지만 구천동 도착은 30분이나 당겨 도착하여 주차장에서 30분간 지체하다 4시에 탐방센타를 향해 올라갔다.
구천동 계곡의 유일한 사찰인 백련사까지는 6km인데 거의 포장도로이다. 도로 옆 계곡은 월하탄을 시작으로 계곡의 절경이 시작되는데 밤이라 여름계곡 못지 않은 우렁찬 소리리로나마
그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하면서 바쁘게 올라간다. 백련사까지는 드림팀이 되겠다고 하시는 산삼님과 함께 올라간다. 올초 종주와 다르게 길에는 눈이 없다. 간혹 아직 녹지 않은 얼음이 간혹 있을 뿐이었다. 올초 산행에 비해 오르기가 수월했다.
인상적인 것은 서산 마루에 낮게 걸린 보름달이었다.38년만의 럭키문이 산사에까지도 어김없이 성탄절 선물로 주어져 있었다. 쟁반같이 크고 밝은 달님이라 보는 이들의 마음 상태에 따라 달리 보였을 것이다. 배고픈 자에겐 눌러도 잘 터지지 않을 것 같은 탱글탱글한 달걀 노른자처럼 보여 배고픔을 자극했을 것이고, 어두운 자에겐 하늘에 달린 또 다른 헤드랜턴 덕에 편안한 길이 되었을 것이다. 누군에게나 숭배의 마음을 갖게 해서 각자의 갈급한 소망을 빌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백련사에 도착하여 좀 기다리다 뒤에 오던 사람들을 확인하고 백련사 뒷길 향적봉 오르는 산길을 타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2km는 깔딱고개의 시작이다. 조금 오르다 보니 눈이 많지는 않지만 아이젠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아이젠을 장착하고 오르다 보니 졸지에 맨 앞장을 서게 되었다. 무서운 느낌도 들기에 10여분 기다리자 저 밑에 불빛들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여 다시 향적봉 정상까지 올라갔다. 정상에는 바람이 좀 부는 편이었고, 저 밑 물 많은 계곡에서부터인가 수많은 산안개가 모락모락 피어 하늘로 올라오고 짙게 깔린 구름층 위로 환상적인 럭키문의 모습이 세상을 굽어보고 있다. 동녘에는 먼동이 시작되어 붉은 기운의 띠기 폎쳐져 있다. 십분심사일분어(十分心思一分語)라 했던가? “마음에 품은 바는 십 분 어치이지만 이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일 분 어치박에 되지 못한다” 라는 고사의 말이 실감난다. 이럴 때 마치 제스처와 같은 사진의 힘을 빌려야 하는데 휴대폰으로는 그 모습이 찍히지 않는다.
여섯 시가 조금 지난 시간 향적봉대피소에서 간단히 빵 한 조각 먹고, 신발끈을 다시 조이고 있어도 일행들이 안 오길래, 다시 중봉을 향해 길을 나섰다. 구상나무와 철쭉 군락지로 유명한 이 곳에 날이 밝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사진을 찍거나 감상하는 곳이지만, 눈이 별로 오지 않아서 엷은 눈꽃들이 매달려 있을 뿐이다. 제주도 한라산 비슷한 모습을 올해는 볼 수 없을 것 같다. 지나는 사람들이 없다 보니 내가 먼저 발자국 높이의 숫눈을 밟으며 중봉으로, 그리고 원추리가 많이 피어있다는 평전을 지나 백암봉을 향해 가는데 올초산행에는 눈도 많고 바람까지 세차서 마치 뒤에서 누가 날 막 미는 느낌을 받으며 걸었고 곳곳의 계단은 마치 굴러 내려가듯 지나간 것 같은데 발밑 너덜들이 다 보일 정도로 눈이 없었다. 눈이 많이 오기로 소문난 산이고 눈이 넘쳐야 덕이 넘치는 ‘덕유’의 이름값을 할 텐데 걷기는 쉬었지만 아쉽기도 했다.
오른 편 달님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쯤 왼편 동녘에는 일출이 곧 시작될 모양이다.“태양의 아들님”이 산행에 참여한 지난 주부터 그 보기 어렵다는 일출을 거푸 보게 되었다. 태양도 아들님이 오신다니 먼저 환영의 마중을 나오시는 부성애를 보여주신다.3대가 적선을 해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위의 일출을 보신 분들이 덕유산의 멋진 일출까지 보시게 되었으니 그 얼마나 행운인가? 그런 의미에서 무박 종주 시에는 태양의 아들님을 반드시 모셔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내주 목요일 신년일출산행 시 아들님을 못 모시니 거제까지 가서 일출도 못 보고 암흑과 같은 상태에서 엄청난 대형 알바만 하다 오는 것 아닌가 걱정된다.(거제남북종주는 십중팔구 알바하는 곳이라는 소문이 자자해서 엄청난 알바왕인 내가 완주가 가능할지 걱정이 된다.)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태양의 신 아폴로가 다프네를 사랑해 다프네를 좇아가면 다프네가 월계수로 변해 그 모습이 사라지듯 럭키문이 사라지자마자 아폴로 같은 크고 당당한 태양이 다프네를 찾듯 동쪽 산마루에 나타났다.사진을 여러 장 찍고 발길을 재촉해 다시 출발했다. 연초에 산행을 중단했던 동엽령에 도착했다.
3. 무룡산에서 육십령까지
동엽령에서 무룡산가는 길이 비교적 길고 오름길이 많다.연초에 이곳을 설령 지나갔더라도 삿갓재에서 황점으로 내려가지 않을 수 없을 정도 쉽지 않은 길이다. 이 구간이 덕유산 능선 중 눈이 제일 많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육구종주를 상반기때 해봤고 안내가 잘 되어 있기에 혼자 걷더라도 알바의 두려움이 없었다. 송년산행인 만큼 한 해의 산행을 돌이켜 보며 혼자 걷는 것도 좋았다.
무룡산을 넘어 삿갓대피소에서 양지바른 곳에 앉아 잠시 도시락을 먹은 후 열 시쯤 월성치를 향했다. 가는 왼 편은 태양이 떠서 따스했지만 오른 편은 응달진 곳이라 몹시 추워서 외투를 벗거나 모자를 벗을 엄두를 못냈다. 특히 오른 쪽 광대뼈가 너무 시려워서 손으로 광대뼈를 가리며 가야했다. 게다가 물병의 물이 얼어서 향적봉에서 한 모금 마신 후로는 물을 전혀 마실 수 없었다. 귤 두 개가 남았는데 그 마저도 얼었다. 한몸으로 양지와 음지를 모두 경험하며 이동하면서 양지와 음지의 차이가 얼마나 큰 지를 알 수 있었다.
월성치에서 남덕유 올라가는 1km의 길이 가장 힘든 오름길이었다. 공룡타고 내려와 봉정암에서 대청봉 오를 때 경험을 떠올리며 참고 올라갔더니 남덕유 정상에는 눈이 다 녹고 없었다.이어 내려와 서봉을 다시 올라가는 길이 힘들었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남을 것 같아 가급적 천천히 올라가면서 힘든 느낌이 들지 않도록 했다. 서봉에서의 향적봉에서 출발한 괘적들이 한 눈에 다 조망이 된다. 이젠 육십령 내려가는 길만 남았다. 육구종주를 해 보면 삿갓재를 기준으로 육이 어렵고 구가 쉬운데, 구륙종주를 해보니 구가 어렵고 육이 쉬운 것 같다.결국은 마찬가지인 것 같다. 육십령 길은 조붓한 편이다.서봉 바로 아래 부분은 경사가 급하고 심한 너덜지대이지만 좀더 내려가면 질척한 흙길이 주가 된다.할미봉을 올라가고 내려가는 길들이 밧줄에 의지해 올라가고 내려가야 할 정도로 험한 편이지만 나머지 구간은 서울 근교산을 걷는 느낌이 드는 완만하게 오르내리는 구릉들이 계속되는 길이다.지난 주에도 강남오산종주(32km)를 갈대밭님과 함께 했는데 그 때 걷던 길들과 유사한 느낌이 들었다.
육십령을 다 내려왔더니 14:30분이다 차는 다섯 시에 온다고 하는데 뭘 해야 할지 걱정이 되었는데, 마침 육십령휴게소가든이라는 돈까스 집이 있었다. 여기가 텔레비전에도 소개된 유명한 집이라 한다. 돈가스를 시켰더니 한 시간이 넘어서 음식이 나왔다 나는 어차피 다섯 시까지 있어야 하기에 마침 잘 됐다. 차를 끌고 여기까지 와서 식사를 하고 가시는 분들이 많아 장사가 잘 되었다. 네 시가 좀 넘으니 그날 준비한 재료가 다 떨어졌다고 한다. 뒤에 오신 분들은 식사를 주문도 못 하셨다. 하지만 내가 먹어보니 우리 동네 돈가스집과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내가 돈가스 맛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이 구석진 곳까지 일부러 와서 먹고갈 가치가 있는지는 이해가 잘 안 되었다. 차가 다섯 시에 와서 아직 못 내려오신 분들을 위해 40분 정도를 더 기다린 후에 상경을 한 후 9:00가 못 돼서 양재에 도착하였다.
4. 송년회 레트로스펙트
우리 카페를 돌이켜볼 때 상반기보다 하반기 때가 더 풍성했던 것 같다.
그간 헌신하시던 죠리퐁 대장님 등이 대장 자리를 내려 놓은 뒤, 메르스로 인한 침체기와 스케치북님의 질병으로 입원하는 일 등이 이어지면서 분위기가 많이 다운되다가 하반기 들어 날꽃돼지,여명 대장님과 하총무팀을 비롯한 새 피가 영입되면서 경기가 좋아지듯 카페 분위기가 다시 살아나는 회복기를 보이는 듯했다.
. 그런데 요즘 회복의 한 축을 담당했던 하총무팀이 안 보인다. 일이 바빠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든지 간에 ‘하총무가 살아야 우리 카페가 살아난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송년 산행과 회식을 통해 우리 모두 이점을 확인하지 않았나 싶다. 하총무의 도발로 말미암아 춤이라면 막춤은커녕 엉거주춤밖에 못하는 나같은 사람까지도 8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 돌풍을 일으킨 놀란스(nolans)의 노래제목“I'm In The Mood For Dancing”의 가사처럼 춤출 기분을 들게 했으니.(이게 나만의 느낌인가요? 다들 그렇게 느끼시지 않았나요?)송년회가 벌써 오래되어 버린 것처럼 그립다. 송년회처럼 활기찬 모습이 우리들의 ‘오래된 미래’가 아닐까 싶다.
“so dance, yeah let dance, come on and dance" (춤 춰요,춤을 춥시다.어서 춤을 춰요).-“I'm In The Mood For Dancing”에서(놀란스)
하총무 어려운 일 있을 때 황방을 불러요. 황방은 이럴 때 “황박(황금박쥐)”일 수 있어요. 생긴 건 요괴인간처럼 생겼지만 말이에요. 어릴 때 “황금박쥐” 안봤남?
“황금박쥐님 도와줘요?”하면 “황금박쥐! 어디 어디 어디에서 날아오나 황금박쥐! 박쥐만이 알고 있다.”라는 노래와 함께 황박이 딱 나타나서 악당들을 다 처치해 주는 만화영화. 내가 산삼님의 절친 아니 절친을 넘어 “쩔친‘이랄 수 있는 황토석형님께 말씀드려서 어려운 일 해결해 줄 테니.(황토형님 한 승질 하십니다. 평생 남에게 봉급받아 보신 적이 없는 분이라. 버럭 화를 내면 모두 양들처럼 침묵하시더라고. 이 양반이 청와대나 중국의 거물들과도 잘 알고 계시더라고. 국제적이십니다.) 하하하! 모두 웃자고 한 얘깁니더.
5. 송년 반성
“인자요산, 지자요수”라 했듯이 덕이 넘치는 산에 왔으면 그 덕의 한 자락이나마 배워가야 어진 사람의 도리가 아닐까? 두루마리 휴지의 끝이 보이듯 한 해의 끝자락에서 마지막 흘러가는 시간이 보인다. 올해 마지막 종주 산행을 홀로 하면서 저 넓고 깊은 산의 덕성스러움을 이 마음이 얼마나 본받았는지 돌이켜 보게 된다. 일주일이 다하면 무섭게 산으로 달려가면서 세속의 스트레스를 그저 버리려고만 하지는 않았는지, 산에서 배운 마음가짐으로 가정과 직장에돌아가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덕스럽게 하고 살았는지 돌이켜보니 참 부끄러워진다. 올해도 혼자서 만들 수 없는 행복을 자연속 친목 산악회를 통해 만나 서로 행복한 산행을 많이도 하였다. 내년에도 우리 친목 카페가 혼자서 만들 수 없는 행복을 함께 많이 만들어가는 산악회가 되길 기대해 본다. 산삼님 말씀대로
“someday never com"(미래는 오지 않는다)라고 믿고
”carpe diem(지금 살고 있는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면서
" we shall overcom!(어려움을 이겨냅시다)",
첫댓글 멋진 등산인것 같네~ 그러한 가족들은 불만이 없어려나~ 말년에 집에서 투명인간이 되는게 아닌가? 너무 한가지에만 집착하지 말고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