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 · 평화신문 공동기획] 세계 물 협력의 해 - 목마른 하느님
(3) 물에서 배운다 - 4대강 여주 이포보 일대 자연훼손 현장 탐방
- 흉물스럽게 남한강을 가로막고 있는 이포보. 보가 강물을 가로막아 물이 썩기 시작했다.
"이건 강이 아니라 썩은 물이에요. 맑디맑던 한강 상류가 4대강 사업으로 썩고 있어요."
5월 22일 경기도 여주군 남한강 이포보에서 만난 여주환경운동연합 전 간사 안은화(41)씨는 시궁창처럼 변해버린 남한강물을 바라보며 가슴을 쳤다. 8년 전부터 여주에서 살아온 그는 "4대강 공사 전 이곳은 주말마다 온 가족이 강가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행복한 주말을 보내던 곳"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굴착기가 강바닥을 긁어낼 때마다 내 가슴이 파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며 안타까워했다. 그의 안내로 여주군 남한강 일대를 둘러봤다. 남한강은 더 이상 '생명을 품은 강' 모습이 아니었다.
흉물스런 이포보와 그 일대
취재 차량이 이포보에 도착하자, 눈에 들어온 것은 남한강 수평선을 가로지르는 괴기한 모양의 건축물이다. 외계인이 타고 왔을 법한 둥근 우주선 7개가 다리 위에 착륙한 모습의 이상한 구조물이 강을 가로막고 있었다. 바로 이포보다.
이포보는 2011년 10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4대강 공사 완공 기념행사를 열었던 곳이다. 이 전 대통령은 당시 "대한민국의 4대강은 생태계를 더욱 보강하고 환경을 살리는 강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1년 7개월여가 지난 현재, 이포보를 흐르는 강물은 심한 냄새와 부유물질로 강의 기능을 거의 상실했다.
안씨는 "강은 흘러야 하고, 강바닥엔 모래가 있어야 그 모래가 오염물질을 가라앉히고 물을 정화한다"며 "모래를 죄다 긁어내는 바람에 남한강은 점점 썩어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가 설명을 마치고 물속에 손을 넣었다. 심하게 부패한 수생식물과 진흙과 같은 오니(汚泥)들이 잔뜩 딸려 올라왔다. 시궁창에서나 맡을 수 있는 역한 냄새도 났다.
이포보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보가 물 흐름을 막고 있어 유속은 제로(0)에 가까웠다. 보 위에서 내려다본 강물에는 이따금 쓰레기가 떠 있었고, 희뿌연 더러운 물거품이 보 밑에서 뭉게구름처럼 생겨나고 있었다.
차를 돌려 이포보 오토캠핑장에 갔다. 이곳도 역한 강물 냄새가 나기는 마찬가지다. 새롭게 조성된 이포보 오토캠핑장에는 강변 대신 강에서 멀리 떨어진 주차장 부근 야영장에 텐트가 처져 있었다. 강변에서 낭만적 캠핑을 기대했던 캠핑족들이 냄새 때문에 강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는 모습이다.
- 여주군 일대에 쌓아놓은 골재들이 산을 이루고 있다. 여주군에는 이러한 골재 산이 17군데나 있다.
인근 대로에 산더미처럼 쌓인 골재도 문젯거리다. 강바닥에서 퍼올린 자갈과 모래가 4년째 흉물처럼 방치돼 있다. 여주군 일대에는 높이 10m 규모의 골재산이 17개나 있다. 15톤 덤프트럭 100만 대 분량이다. 골재에서도 역한 냄새가 났다. 강에 사는 조개가 썩으면서 나는 냄새다. 바람이 불면 모래가 날려 인근 농작물에도 피해를 준다. 여주군은 매년 골재 관리비용으로 50억 원을 쓰고 있다. 지금까지 200억 원이 넘는 세금이 골재 관리비로 사라졌다.
여주대교와 신륵사 일대
여주대교에서 신륵사가 바라보이는 강 맞은편. 영월근린공원에서 강변유원지 방향 일대를 걸으며 수질을 살폈다. 강변은 충격 그 자체였다. 조그마한 선착장에 들어서자 물 흐름이 끊긴 곳에서는 각종 부유물과 쓰레기가 가득 차 있다. 팔뚝만한 누치 사체가 반쯤 썩어 물 위에 떠있었고, 파리떼가 들끓었다.
나뭇가지를 주워 강물을 저으니, 시커먼 진흙이 뿌연 강을 더 뿌옇게 만들었다. 가는 곳마다 악취로 숨을 쉬기 어렵다. 큰 자갈과 모래마다 부유물이 가득 붙어 썩고 있었고, 4대강 공사 때 버려진 폐건축자재도 강바닥과 모래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강을 이 지경으로 만들려고 수십 조 혈세를 쏟아 부었단 말인가'하고 화가 치밀었다. 고요히 수천수만 년을 흘러온 강에 손을 대 하느님 창조질서를 짓밟은 대가는 처참한 사체로 발견된 누치와 조개, 물고기들이 온몸을 내던져 설명해주고 있었다.
기자와 함께 참담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던 안씨는 "그래도 희망을 품자"고 했다. 그는 "강은 창조된 그대로 흐르도록 두면 언젠가는 원래 모습을 되찾지 않겠느냐"며 "4대강 공사 때도 손대지 않고 남겨둔 아름드리 나무가 그래도 희망의 징표"라고 씁쓸해했다.
여주군 일대 남한강은 "강에 있는 물고기들은 죽고 강은 악취를 풍겨, 이집트인들이 강에서 물을 퍼마시지 못할 것이다"(탈출 7,18)는 성경 구절이 실현되기라도 한 것처럼 악취를 풍기며 썩고 있었다. [평화신문, 2013년 6월 2일, 이힘 기자]
전문가 기고 - 물, 모든 생명 하나로 묶어주는 매개체
지구는 에너지에 대해서는 열려 있지만, 물질에 대해서는 닫혀 있다. 다시 말해 지구에 사는 모든 존재의 생존에 필요한 물질 공급은 고정돼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명이 지속되려면 지속적으로 순환하면서 재이용돼야 한다. 이러한 물질순환은 지구가 생명을 부양하는 방식이다. 지구는 그러한 방식으로 생명을 번성하게 하고 유지해 왔다.
수문학적 순환(Hydrologic cycle) 즉, 물 순환(Water cycle)은 한정된 지구의 물을 끊임없이 순환시킨다. 태양 에너지에 의해 지표면의 물이 증발해 대기로 올라가면, 이 중 일부는 응결해 비나 눈 형태로 다시 지표면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땅속으로 스며들거나 지표면을 따라 흘러가고, 생물의 몸을 통과한다. 그리고 또다시 증발해 순환이 이어진다. 순환하는 동안 여러 자연적 과정을 거치며 물은 다시 깨끗해진다.
이 순환에는 토양이나 식물의 표면에서 곧장 증발하는 빠르고 짧은 여정도 있지만, 극지방의 빙하와 눈으로 머물면서 아주 천천히 이동하는 여정도 있다. 이렇게 각각의 고유한 상태와 속도와 다양한 여정을 포함하는 거대한 순환을 통해, 물은 지구 온도를 조절하고 서식지를 제공하며 모든 생명을 먹이고 기른다.
이렇듯 우리의 생명은 지구의 생명 부양 능력에 달려 있다. 생명을 부양하기 위해 온 지구가 함께 일하기에 우리 인간도 존재할 수 있다. 대기와 땅, 무수한 생물의 도움 없이 우리는 물 한 방울도 거저 얻을 수 없다. 자연의 자연적 기능이 유지돼야 우리의 생존도 보장된다.
강의 기능을 존중할 때 우리는 수질정화 및 홍수와 가뭄 완화, 비옥한 토양 유지 등의 생태적 서비스를 공짜로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무시한다. 강이 요구하는 조건들을 수락하지 않는다. 대신 공학적 수단으로 물을 가두고 관리하고 통제한다. 그러한 결과가 어떠한가? 수문학적 순환의 속도와 흐름이 크게 훼손되고 강수 양상이 변화되면서 오히려 극심한 가뭄과 홍수, 초대형 폭풍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생태적 위기는 정치ㆍ경제ㆍ사회적 요인에 의한 결과만이 아니다. 우리 자신을 지구의 생명 부양 능력 덕분에 살아가는 피조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도덕적이고 영적인 위기이다.
물은 모든 생명을 하나로 묶어준다. 장구한 시간을 거쳐 순환해온 물은 현재의 생명만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생명을 연결한다. 장엄하고 경이로운 수문학적 순환은 오늘 우리에게 모든 생명이 서로 깊이 연결돼 있으며 인간도 이 생명공동체에 참여하는 참여자들임을 가르쳐준다. 모든 존재가 형언할 수 없는 거룩한 신비로부터, 그리고 서로 연결돼 있으며 공동의 운명을 함께하고 있다고 말해준다. 시편 저자는 이 물의 순환에 감탄하며 하느님을 찬미한다.
"골짜기마다 샘을 터뜨리시니 산과 산 사이로 흘러내려 들짐승들이 모두 마시고 들나귀들도 목마름을 풉니다. 그 곁에 하늘의 새들이 살아 나뭇가지 사이에서 지저귑니다. 당신의 거처에서 산에 물을 대시니 당신께서 내신 열매로 땅이 배부릅니다. 가축들을 위하여 풀이 나게 하시고 사람들이 가꾸도록 나물을 돋게 하시어 땅에서 빵을, 인간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술을 얻게 하시고 기름으로 얼굴을 윤기나게 하십니다. 또 인간의 마음에 생기를 돋우는 빵을 주십니다. 주님의 나무들, 몸소 심으신 레바논의 향백나무들이 한껏 물을 마시니 거기에 새들이 깃들이고 황새는 전나무에 둥지를 트네. 주님, 당신의 업적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모든 것을 당신 슬기로 이루시어 세상이 당신의 조물들로 가득합니다"(시편 104,10-17. 24).
강을 훼손하는 것은 단순히 강이 제공하는 생태적 서비스의 손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토마스 베리 신부가 지적하듯이, 그것은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 지성적, 심미적, 영적 경험을 상실하는 것이다. 강은 우리 인간에게 물리적 자양분뿐만 아니라 내적이고 영적인 자양분을 제공한다. 강은 강의 방식으로, 존재의 깊은 신비를 드러낸다. 흐르고 머물고 넘치면서 온갖 생명을 품고 먹이고 기르는 강은 근원적 신비에 대한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한 경외감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모든 것이 서로 연결돼 있음을 받아들이게 되고, 우리가 얼마나 깊이 연결돼 있는지 깨달으면서 겸손하게 된다. 우리 인간은 창조세계와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생명공동체에 참여하는 참여자로서 고유한 자리와 역할을 갖는 것이다. [평화신문, 2013년 6월 2일, 임선영(마중물가치교육연구소 생태영성교육 연구원,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 학술소위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