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처음 타보는 사람은 우선 배멀미를 걱정한다. 작은 통선이건 큰 여객선이건 마찬가지다. 사전에 예방을 위해 귀 뒤에 동그란 밴드를 붙이는 사람도 흔히 본다. 자율신경을 무디게 하는 역할을 한다. 여행을 하거나 일시적인 오락 혹은 취향에 따른 것이 아니고 선박을 직업 또는 일상생활의 장(場)으로 살아가려면 맨 먼저 부닥뜨려야 하는 것이 배멀미이다.
이 배멀미는 의학적으로 보면 선체(船體)의 동요(動搖)에 의해, 귓속의 평형감각을 담당하는 달팽이관이 몸의 움직임에 따라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때 일어난다고 되어 있다. 실제로 당해보면 진짜로 기분 나쁘게 속이 울렁거리고 구토가 생긴다.
처음 UN기관의 훈련소에 합격했을 때 정식으로 입소(入所)하기 전에 적성검사(適性檢査)란 명목으로 배멀미를 맛보게 했다. 설명이 필요 없고 직접 경험해 보고 아예 자신이 없으면 일찍 포기하라는 것이었다. 150톤급 실습선 ‘개나리’호에 승선하여 동·남·서해안 중 파도가 있는 쪽으로 갔다. 하는 일 없으면서 그냥 흔들리기만 하는 것이었다. 사회에서 이미 수산고등학교나 관계 업계에서 경험한 사람들은 아무,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처음으로 경험하는 자들이 그야말로 적성을 검사해 보는 것이었다. 묘한 일이었다. 속이 메스껍다고 느낄 때쯤부터 안색이 하얗게 변하고 말수가 적어진다. 말이라도 하면 구토증이 생기기 때문이다. 누워있으면 덜 하지만 그때 뿐이다. 선실 밖에 나와 시원한 바닷바람이라도 쐬면 덜 하지만 한계가 있다. 차츰 심해지면 손발은 물론 전신을 꼼짝하기가 싫어지는 무기력 상태가 된다. 연안 여객선 안에서 흔들리다 눈을 떠보니 처음보는 예쁜 여성의 입술이 눈앞까지 와 있어도 꼼짝하기 싫어, 아니 꼼짝할 수 없어 그냥 지나쳤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서로 쳐다보면서 상대방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는 걸 보면서도 자신의 얼굴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난간을 붙잡고 앉았다 일어섰다는 반복한다. 어떤 사람은 혼자 큰 소리로 구령까지 붙이며 한다. 잠시다. 그러다 갑자기 웩! 하면서 구역질이 터진다. 참다 참다 터지는 폭발이다. 1미터 정도는 어렵잖이 튕겨 나간다. 이때부턴 그야말로 생지옥이다. 이 구토증상은 짧게는 2-3일 길게는 열흘도 더 하는 축도 있다. 침대에 누워서도 나는 수가 있다. 급하면 누군가가 벗어둔 장화 속에 퍼질러 둔다. 그 후의 일은 상상에 맡기자.
마치 육상에서 한잔 그득히 취한 신사분이 비틀거리며 전봇대를 잡고 뱉어낸, 먹은 밥알이나 김치 토막이 그대로 물에 불어 들어난 채로 쏟아놓은 그 보기 흉한 것들이 배 위 곳곳에 널브러진다. 그래도 선박 직원들은 못 본체한다. 결국은 나중에 퍼질러 놓은 당사자들이 깨끗이 치우고 닦아내야 하기에.
해수면에서 멀어 높아질수록 횡요(橫搖 : 옆으로 흔듬)가 심하지만, 갑판보다 높은 선교에서 창문으로 내려다 보며, “어이! 견딜만하냐?” 하며 놀리듯 하는 선박 직원들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다.
최고 점수로 합격한 하x웅 군은 ROTC 출신이랬다. 어쩌다 이 길로 들어섰는지는 몰라도 수석으로 합격했으니 우선은 선임훈련생으로 임명받았다. 그런데 적성검사 기간의 멀미에 손을 들고 도중에 입항한 항구에서 하선(下船)하여 봇다리 챙겨 서울로 되돌아 갔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다시 돌아왔다.
“야, 임마, 남자가 그것도 못 참아서…” 하는 그의 형님 고함소리에 쫓겨 다시 왔단다. 아마도 그의 형님이 유경험자인 듯 추정했다. 암튼 그도 결국 수료했다.
그 후 육상좌학을 마치고 300톤급 실습선에 승선, 남태평양양으로 실습을 떠난 지 보름만인 68년 7월 31일 밤부터 막 지나간 태풍의 여파로 겪은 선체의 동요와 멀미는 난생 처음으로 전혀 다른 세상을 경험했다. 죽음을 생각하기 전에 아픔이 아닌 괴로움의 세계였다. 그날의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31(수). July 1968.
29일 오후부터 31일 오후 6시까지 50시간! 완전히 사투(死鬪)였다. 바다와 배와 사람과의 투쟁이었고 내 자신의 삶과 죽음과의 전쟁이었다. 바다가 아니었다. 파도가 그렇게 큰가? 사뭇 굶었다. 어떤 놈은 Deck(갑판) 위에서 딩굴었고 다른 동료는 Bridge(선교) 안에서 쓰러지기도 했다. 이 고역. 괴로움 어떻게 표현해야 마땅할까?
만 50시간 만에 내가 이긴 것일까. 밥을 먹는다. 먹는 것이 아니라 퍼 넣고 밀어 넣은 거다. 일어선다. Wheel(조타기)을 잡는다. 휘청한다. 온 세상이 일렁인다. 그러나 일어나지 못하면 영영 간다.
자! 이제부터 다시 새로운 도전을 맞는 것이다. 초엿새의 달이 파도에 부서진다. 눈이 쑥 들어갔다. 모두가 몰골이 말이 아니다. 이건 인간이 아니다. 마치 쓰레기통에 버려둔 찌꺼기다. 오후에 세탁과 칫솔질을 했다. 이러한 모습은 육지에서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두는 것이리라.」
그 후 세계 5대양을 누비면서 겪은 숱한 파도의 크기에 따라 흔들림을 경험했지만, 이 첫 경험은 두고두고 잊혀지질 않았다. 실제로 일반적 상태에서 한쪽으로 40도 정도 기울어지면 서 있지를 못할 뿐 아니라 앉아 있기도 힘겹다. 그런데 이것이 10여 초의 간격을 두고 좌우로 반복하면 정신이 멀쩡한 사람도 헷갈리는 수가 있다. 거기다 그 정도 기울면 실내의 붙어 있지 않은 물건들은 전부 넘어지고 떨어져 부서지고 깨지는 소리가 장단을 맞추듯 하여 정신을 더욱 혼미스럽게 한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도 있다. 지금까지 배라고는 처음 타보는 사람이 그 험한 파도와 흔들림에도 배멀미를 전혀 하지 않은 이도 있었다. 바로 이x현 군이었다. 그는 경대 문리대 국문학과 출신으로 어이타 승선했는지 그 깊은 사연은 모르겠으나 본인이 원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의 부탁으로 내 손으로 원서를 사주었으니까…. 동기생 모두가 겨우 구토 상태에서 벗어나긴 했으나 여전히 심한 두통과 속의 울렁거림을 참고 누워있는 침대 모서리를 잡고는 “서 형! 밥이나 먹었소?” 하면서 능글스럽게 한 그릇 잘 먹었다는 듯 ‘끄억’하고 트림까지 하면서 사람의 염장을 지르는 것이다. 마치 수십 년간 성난 파도를 이겨낸 늙은 갑판장처럼….
밤낮 쉼없이 보름 동안 적도(赤道)를 넘어 항해 끝에 남태평양 사모아항에 도착, 다시 2주 동안의 준비를 마치고 출어(出漁)하여 막상 첫 투승(投繩)을 하루 앞두고 두 명이 자진 하선했다. 한 명은 15일 동안 멀미 때문에 먹지를 못해 영양실조로 위험한 상태로 더 이상은 생사에 관계되는 문제로까지 이른 자였고, 다른 한 명은 아무리 생각해도 멀미를 이겨내지 못하겠다고 자신을 잃은 자였다. 전자(前者) 때문에 1주일을 회항(回航)해야 했다.
다만 기울어질 때 기우는 쪽으로 고개를 같이 기울여 주면 느끼기에 훨씬 덜 하지만 일시적이다. 이러기를 3일내지 5일 정도 계속하면 구토는 멎지만 나머지 증세는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다. 소위 진저리가 난다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그렇게 심하게 딩굴다가도 육상에 올라오면 씻은 듯이 증세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요상스럽기는 하지만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한 정신으로 술잔을 기울이고 지나가는 여인들에게 눈길을 앗긴다. 참으로 환장할 노릇이었다.
습관화가 되면 아무렇지도 않지만 1~2개월 혹은 적게는 10여일 땅을 딛고 살다가 바다에 나가면 다시 멀미 증세가 나타난다. 처음과 같은 격렬한 증상은 아니나 약간의 두통이나 무기력함이 오지만 곧 없어지고 정상화 된다. 동물들도 멀미를 하며 이들도 시일이 지나면 습관화 된다.
이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듯하다. 프랑스의 화가 프랑수아 오귀스트 비아르(Francois Auguste Biard)는 19세기에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렸던 사람이란다. 당시의 현대사를 관찰할 수 있는 그림을 많이 남겼으며, 풍자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림도 다수 남겼다고 한다.
그가 1860년경 영국 콜베트함에 탑승하여 그린 그림 “볼에서의 배멀미(Seasickness at the Ball)”란 이름의 그림이 있다. 이것을 보면 옛날에도 그랬던 것이다. 잘난 사람, 부자, 양반, 쌍놈 할 것 없이 멀미 앞에서는 체면이고 권위고 뭐고 없었던 모양이다. 각자의 표정을 보면…. (계속)
첫댓글 첫 출발이 배멀미.ㅠㅜ
신항해 일지가 험난함을 예고라도 하듯.
축하드립니다. 극심한 배멀리를 이겨내고 훌륭한 선장님이 되셨습니다.ㅋ ㅋㅋ
땅 위 같았으면 진짜 옛날 문자로 '개쪼가리' 났을 건데, 사방이 물이라 그러지도 못하고 어영구영 하다보니 괜찮아 졌습다. ㅎㅎㅎ 부산넘
석암(늑점이) 친구야
전 '항해일지'을 읽었을 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망설이다. 그만 두었지.
이번에 .'신항해 일지'을 시작하며.......에서 내가 궁금 했던 이야기가 나오리라 생각했는데 귀뜸이 없구려.
국가의 록을 먹고 사범학교를 우수하게 졸업해 훌륭한 교사가 되어 즐거운 교직생활을 헌신짝 처럼 내 단지고
배멀미 앓아 가며 대해에서 폭풍 파도에 겁도 집어 먹고 외로운 뱃사람이 되겠다고 마음 먹은 동기가 무엇일까?
부부교사로 등 뜨시고 배부른 판에 더 욕심이 났던 것이 무엇이 였든고? 돈....명예.....
자네 시험 친다고 "졸업증명서" 떼 다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지?
항해사 지원 자격이 대졸이상인데 하면서 사범학교 졸업증명서로 통과되었다고? ......재미 있는 이야기 나오길 기대
고생을 사서 한 늑점이 아닌가?
읽어 줘서 고맙소. 언젠가는 나올 날이 있을 라나. 귓밥 만지며 오래 버티기만 하소. 그러나 저러나 별고 없고 건강하시제? 모두. 부산넘
등 따시고 배부른 것 마다하고 망망대해 왜 갔을꼬?
'훌훌 세계를 누비고 싶어서 떠났구나' 단순히 생각했는데.....한메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