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용 감독 ⓒ 이동진닷컴 - 김현호 |
[이동진닷컴]
(오늘의 한국영화 대표 감독들을 만나는 '부메랑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이 인터뷰 시리즈는 모든 질문을 그 감독 영화들 속의 대사나 자막에서 빌어오는 형식으로 이뤄집니다. 자신이 만든 작품 속에서 되울려오는 물음에 감독들은 어떤 대답을 들려줄까요.)개인적으로 '가족의 탄생'은 2006년 최고의 한국영화였다. 들려주는 이야기가 새로우면서 명확했고, 그 이야기를 감싸고 있는 디테일이 풍성하고 탐스러웠으며, 극의 온도와 리듬이 캐릭터가 생생히 살아 숨쉴 수 있는 최적의 생태학적 환경을 빚고 있었다.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 탁월했다.
1999년작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영화였다. 처음 접한 2시간 내내 "대체 어디서 이런 감수성이 나왔을까"만 되뇌었다. 그 영화는 소수의 관객들에게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고, 컬트가 되었으며 전설이 되었다. 나도 그 소수 관객들 중의 하나였다.
'가족의 탄생' 개봉 직후 사적인 자리에서 김태용 감독을 처음 만나고나서 느낀 것은 "이런 감독이니까 이런 영화를 만드는구나"라는 것이었다. 그걸 확인하는 순간, 영화에서 내가 받은 감동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추인받는 것 같아 더없이 반가웠다. 영화라는 것은 결국 그 영화를 만든 사람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였다.
이제 장편 극영화를 단 두 편(그나마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는 민규동 감독과 공동 연출) 밖에 만들지 않았으니, 김태용 감독의 작품 세계를 일반화하는 것에는 무리가 따를 것이다. 그래도 무작정 묻고 싶었다. 두 편 밖에 안 되니 질문 수도 적고 인터뷰 시간도 짧을 것이라고 애초에 짐작했던 것은 오산이었다. 예정된 시간인 네 시간을 꽉 채우고도 모자라서, 나중에 전화로 두 시간을 더 인터뷰했다. 그러고나니 '감독 김태용'의 어떤 얼굴이 어렴풋이 떠올랐다."너, 살 좀 빠진 것 같다."('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에서 박예진이 한동안 서먹서먹했다가 다시 만난 이영진에게) - 요즘 무척 다양하게 활동하시는 것 같습니다. 각종 행사에서 심사위원도 하시고, 영상자료원의 고전영화 기획전 해설도 하시고, 방송 프로그램 진행까지 하시던데요. 그래서인지 살도 많이 빠지신 것 같아요.
"요즘 일이 좀 몰리네요. 몸무게는 살면서 계속 빠지고 있어요. 고등학교 때 60kg이 좀 넘었는데, 179cm 키에 몇 년 전엔 49kg까지 떨어졌으니까요.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때는 공동 연출한 민규동 감독과 제 몸무게를 합쳐서 100kg이 안 된다고 했었죠.(웃음)" "제가요, 어떻게든 나가야 되거든요?" ('가족의 탄생'에서 공효진이 일본에서 일할 수 있는 관광 가이드 면접 시험을 보다가 통사정하며.)- 감독 데뷔를 위해서 의지를 가지고 전력투구하셨나요, 아니면 갑작스레 그기회가 찾아왔나요?
"데뷔해야겠다는 생각을 미처 가지지 못했어요.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사실을 누구보다 제가 잘 알았으니까요. 상업영화를 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도 제대로 몰랐어요. 그럴 때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를 기획한 오기민PD께서 전화를 해 저와 민규동 감독에게 연출 제의를 했지요.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어요. 영화아카데미 동기로 절친하게 지낸 민감독과 이야기를 나눈 후 처음엔 거절했어요."- 어떻게 그 결정을 번복하시게 됐습니까.
"그때가 1999년이라는 사실에 뒤늦게 의미부여를 한 거죠. '1999년이니까 우린 뭘 해도 용서받을 수 있어. 2000년부터는 모든 게 달라질 테니까.' 뭐, 이런 소리를 하면서요.(웃음)"-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와 같은 해에 나왔던 송능한 감독님의 '세기말'은 두 분이 연출하셔야 했던 작품이군요.(웃음)
"처음에 우리가 왜 거절했을까 되짚어 봤어요. 공포영화를 몰라서? 속편이라는 게 싫어서? 그게 다 근거 없는 허영이라고 둘이서 결론을 내리게 됐죠. 그래서 열흘 뒤 다시 전화를 걸어 하겠다고 말했어요. 그땐 우리 둘 다 스물아홉살이었으니 무척 어렸던 것 같아요. 3월에 제의를 받아서 시나리오 쓰고 촬영까지 그해 11월에 마치느라 정말 고생했죠.""시은아, 우리 교환일기 쓸래? 내가 오늘 써왔으니까 내일은 니가 써."('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에서 박예진이 이영진에게 우정 이상의 감정을 느껴가면서.)- 민규동 감독님과의 공동연출은 어떻게 진행되었습니까.
"솔직하게 말하면 이젠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아요. 기억 조작도 많이 하는 것 같구요. 어쨌든 우린 일을 분담해서 하지 않았습니다. 매순간 같이 결정했죠." - 그러면 의견 대립이 생길 때도 많았을텐데, 어떻게 해결하셨는지요.
"서로 의견이 다르면 종종 두 가지 버전으로 찍은 뒤 나중에 편집실에서 결정했어요. 톱스타를 기용했다면 불가능했겠지만, 다들 신인배우라서 가능했던 시스템이었죠. 70~80% 정도는 의견이 일치했어요. 사실 공동연출이란 게 연애 비슷한 구석이 있습니다. 팩트가 아니라 진심이 중요해지는 순간이 있잖아요. 어제 외박하고 돌아와서 둘러댈 때 구체적인 말의 내용이 아니라 눈빛만 봐도 다 아는 거잖아요. 사실 촬영하면서 민규동 감독과 저는 실제로 교환일기를 쓰기도 했어요. 민감독이 워낙 부지런한 사람이라서 제가 1번 쓰면 3번을 쓰곤 했죠.""너 빨리 카메라 찾아내. 찾아내란 말이야."('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에서 김재인이 수업시간 도중 자신의 카메라를 갖고 있다가 교사에게 빼앗긴 친구 공효진을 다그치며.) - 첫 연출 후 두번째 작품이 나오기까지 무려 7년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하루라도 빨리 두번째 카메라를 잡고 싶은 마음이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어떤 영화를 해야할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첫 영화를 끝냈습니다. 그러고나니 진짜 고민은 그 다음에 찾아오더라구요. 그 전엔 그냥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가서 찍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쉽게 생각했지만, 이후엔 영화를 찍는다는 게 너무나 엄청난 일이라고 느껴져서 뒤늦게 겁도 났어요. 남들은 7년 동안 뭘 했을까 싶으시겠지만, 그 7년 내내 영화를 생각했어요. 연극 연출도 하고 단편 작업도 하면서 나름 바쁘게 지냈지만, 주로 시나리오를 쓰고 회사에 보여준 뒤 반응이 시큰둥하면 접어버리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가족의 탄생'이 제게 특별한 영화인 게, 그 작품도 회사에서 재미없다고 해서 포기하려던 것이었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만은 꼭 찍겠다고 결심하고 의지로 밀어붙여 결국 완성했으니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사실 그 전까진 스스로 너무 많이 포기했던 것 같아요."- 그 7년 동안 조바심이 나지 않았나요?
"처음 3~4년은 조바심이 났어요. 이렇게 자꾸 지연되면 다시 영화를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구요. 그런데 5~6년쯤 지나니까 '아니, 뭐, 할 수 있으면 좋고, 못하면 말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가치관이 변한다고 할까요.(웃음)""넌 하나도 안 특별해." "난 죽을 수도 있어." "난 니가 창피해."('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에서 이영진이 죽을 수도 있다면서 자신에게 집착하는 박예진에게 잔인하게 쏘아붙이며.)- 결국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에서 여주인공은 '난 니가 창피해'라는 말 때문에 자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말은 '가족의 탄생'에서도 다시 사용되지요. 그런데 첫 작품에선 그토록 무시무시했던 말이 두번째 영화에선 전혀 다른 맥락으로 사용됩니다. 봉태규씨가 그 말을 하자 정유미씨가 "내가 창피해? 나는 사랑해"라고 장난스레 받는 거지요. 같은 문장의 다른 용례 속에 어떤 변화가 담겨 있는 겁니까?
"다분히 의식적인 부분이 있었지요. 말씀하신대로 그게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말이잖아요. 그랬던 말이 되풀이되어 정유미에게로 왔을 땐 '내가 창피해? 나는 사랑해"라고 넘어갈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에서 사랑을 이유로 가하는 상처의 깊이에 대해 그렸다면, '가족의 탄생'에선 누군가 사랑의 상처를 가할 때 거기에 대해 여유있게 받아칠 수 있기를 바란 거죠."
|
김태용 감독 ⓒ 이동진닷컴 - 김현호 |
- 그 7년 사이에 세상을 보는 감독님의 시선에도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닌가요? 아까 '못하면 말고' 발언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는데요.(웃음)
"그럴 수도 있겠죠. 이젠 제 자신도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요. '할 수 없지 뭐'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보고 창피하게 느낀다고 해도 그냥 그럴 뿐, 이젠 창피하지 않은 나를 꿈꾸지는 않는다는 거죠."- 그게 아저씨가 되어가신다는 증거랍니다.(웃음)
"맞아요.(웃음) 그런데 전 나이 먹는 거 좋아합니다."- 왜요?
"뭐랄까, 젊음에는 좀 사악한 구석이 있는 것 같거든요.(웃음) 예전엔 나이 많은 여자, 나이 적은 여자, 나이 어린 남자, 나이 많은 남자 순으로 편했는데, 요즘은 나이 많은 남자가 나이 많은 여자 다음으로 편해요. 이젠 성이 아니라 나이가 더 편해졌다는 거죠.""이젠 상관없잖아." "왜 상관없는데? 왜?" "경석아, 나 헤프잖아. 그만해."('가족의 탄생'에서 연인 사이인 정유미와 봉태규가 다투면서.)- '가족의 탄생'에서 대화 장면은 말꼬리를 잡고 불안하게 이어지다가 한쪽에서 대화 중지를 선언하면서 끝나는 경우가 자주 발견됩니다. 이 영화엔 말로 갈등이 해결되는 경우가 전혀 없죠. 인물들의 대화를 듣다보면 답답해지곤 하는데, 어느 순간 감독님은 언어에 의한 소통을 믿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군요.
"그런 지적, 무척 흥미롭네요. 제 스스로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말이예요. 저는 수다의 힘은 믿어요. 그런데 논리적인 언어로 설득하는 것은 안 믿는 것 같아요. 대화의 핵심은 정서적 수다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대화를 통해 설득하는 것은 믿지 않는 편인 듯 해요.""아. 더 크게. 아. 야! 니가 나한테 침을 뱉어? 너 죽었어. 퉤. 푸우우우."('가족의 탄생'에서 공효진이 아버지가 다른 어린 동생에게 장난치면서.)- 반면에 '가족의 탄생'에서 등장 인물들 사이의 화해는 말이 아니라 몸을 통해 이뤄집니다. 3부로 구성된 이 영화의 챕터 모두에 그런 설정이 있어요. 2부에서 동생을 미워하던 공효진의 마음이 바뀌게 되는 것은 둘이 서로 침 뱉으면서 장난치고 난 후의 일이지요. 3부의 정유미와 봉태규가 화해하게 되는 첫 단계는 봉태규가 트럭에 치일 뻔하게 되는 상황을 목격하고 정유미가 본능적으로 껴안으면서 이뤄집니다. 이어 다리 위에서 서로 몸싸움에 가깝게 부딪치고 헤딩하며 장난을 치면서 둘은 완전히 예전 연인 사이로 돌아가지요. 1부에서도 함께 살게 된 아내 고두심과 누나 문소리 사이에서 묘하게 감정의 골이 패이자 엄태웅이 두 여자를 동시에 끌어안고 빙빙 돌리는 장난을 해서 갈등을 해소하기도 하죠.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서먹하게 된 이영진과 박예진이 다시 만나 옥상에서 서로 치고받고 장난치면서 예전 친밀감을 회복하게 되잖아요. 게다가 이 장면은 '가족의 탄생'에서 봉태규와 정유미가 몸싸움으로 장난치는 다리 위 장면과 카메라 앵글의 위치나 크기에서 매우 유사하게 찍혔습니다. 그 두 장면에는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관계의 이상적 상태에 대한 이미지가 거의 원형처럼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감독님은 말보다 몸을 더 신뢰하신다는 판단이 드는데요.
"듣다 보니 정말 그런 것 같네요. 저는 확실히 말보다 몸을 더 믿는 편인 것 같아요. 그게 말씀하신대로 수다를 즐기면서도 정작 말의 힘을 잘 안 믿는 것과도 연결이 되네요. 사람이 변화되는 것은 특정 순간에 솟구치는 몸의 에너지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말에는 기술이 더 중요한데, 몸에는 의지가 더 필요하죠.
어디선가 읽은 말인데, 뇌에서 망각은 이런 식으로 이뤄진대요. 과거의 사건은 현재의 사건으로만 망각되고 비의지적인 사건은 의지적인 사건으로만 망각된다는군요. 확실히 몸을 쓰는 것은 의지적인 행위인 것 같아요. 저는 '가족의 탄생'에서 운동회 장면을 좋아합니다. 공효진과 어린 동생이 단시간에 친밀도가 급격히 높아질 수 있는 게 뭔가 고민하다가 나온 장면이죠. 사실 같이 뛰고 나면 친해지잖아요. 그러다가 그 순간이 지나고나면 다시 관계가 생뚱맞아지기도 하구요. 말과 몸의 화법은 서로 다른 것 같습니다.""헤픈 거 나쁜 거야?"('가족의 탄생'에서 정유미가 봉태규에게 도발적으로 물으면서.)- 아마 '가족의 탄생'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는 바로 이것이겠지요.(웃음) 대단히 도발적이면서 논쟁적이고 또 일견 카타르시스까지 안기는 질문이었는데요. 그런데, 정말, 헤픈 것은 나쁜 것인가요?(웃음)
"영화를 찍는 동안 촬영장에서 유행어가 됐어요. 스태프에게 아직 준비가 안됐냐고 물어보면, '감독님. 준비 안된 거 나쁜 거예요?'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식이었죠.(웃음)
그 질문을 좀 에둘러가면서 대답해 보자면 저는 질문하는 태도가 삶에서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답을 내리는 순간에 폭력적인 상황이 되는 거죠. 정치적 견해를 갖는 것과 특정한 정치적 행위를 하는 게 다르듯, 어느 순간의 판단이 물리적인 폭력과 연결되는 경우도 많잖아요. 말하자면, 경계를 문지르는 행위가 제게 중요했어요. 헤픈 게 나쁜 게 아니라는 것을 동경합니다. 그런데, 그러는 순간 애매해지는 부분이 있어요. 정말 중요한 것은 가능한 한 그 경계선을 희미하게 만들어서 헤픈 사람에 대해서 한번쯤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되는 거지요. 굳이 예스인지 노인지를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면, 전 헤픈 게 나쁘지 않은 거라고 생각하는 쪽입니다.""얘, 엄마한테 오는 남자들, 돈 때문에 오는 거 아니야. 보면 모르니? 이 엄마, 예쁘잖아." "도대체 그 아저씨가 얼마나 달라는데?" "뭘? 사랑을?"('가족의 탄생'에서 평생 연애의 끈을 놓지 않는 엄마 김혜옥과 그런 엄마를 미워하는 딸 공효진의 대화.)- '가족의 탄생'에서 주요 배역인 여자 넷은 결국 헤픈 여자 둘과 헤프지 않은 여자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들이 헤프냐 헤프지 않냐가 아니라 헤픈 사람도 안 헤픈 사람도 그게 그들의 행복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그런 사실 자체가 이 문제에 대한 이 영화의 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 말이 딱 맞는 말 같아요. 헤프고 안 헤프고에 따라서 전전긍긍하고 그럴 것 같아도, 그게 한 인간의 행과 불행에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게 적절한 표현인 듯 해요. 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네요.""몸무게 몇 킬로, 키 몇센티. 이런 숫자들이 내 성장을 설명해줄 수 있을까."('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에서 신체검사를 받기 전 박예진의 독백.) - 열광적인 팬들이 있긴 하지만, 수치상으로 본다면 감독님이 만드신 두 편의 영화는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족의 탄생'으론 청룡상 감독상에 영평상 작품상까지 받으셨는데, 어떻습니까. 수상으로 흥행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상쇄가 되셨나요?
"흥행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점점 더 듭니다. 그게 다음 작품에 대한 고민에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가족의 탄생'이 흥행에 실패한 것은 개봉 시기니 마케팅 방법이니 핑계를 대어도, 결국 작품의 내적인 하자가 뭔가 있으니까 안 본 것이겠지요."- 그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내러티브가 복잡해서 그런가? 하지만 민규동 감독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은 흥행이 잘 됐잖아요. 그러면 칙칙해서 그런가? 그런데 더 칙칙한 '너는 내 운명'이나 '그 놈 목소리'가 잘 된 걸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아요. 아직까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제가 착각했던 게, 여유와 유머가 대중성의 핵심이라고 봤다는 거죠. '가족의 탄생'에서 낯선 내러티브와 낯선 컨셉트를 얘기하더라도 여유와 유머가 있으면 소통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듯 싶어요.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의 경우는 관객이 기대한 것과 영화가 달랐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대중영화는 확실히 선물가게 같은 느낌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스탠드를 사러 갔다가 꽃병을 사올 수는 있는 거지만, 그래도 일단 스탠드를 사러 간 고객 입장에서는 그 가게에서 스탠드를 갖춰놓아야 하는 거잖아요.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는 이를 테면 스탠드를 갖춰놓지 못한 영화였던 거죠. 무서움을 느끼고 또 놀라고 싶었는데 그게 충족이 안 됐으니까요.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는 60만명쯤 들었고, '가족의 탄생'은 30만명이 채 안 되는데 전 그냥 30만명 들었다고 우기고 다녀요. 두번째 영화 관객수가 첫번째 영화 관객수의 절반이었다고 해서, 제 다음 영화가 15만명이 들면 정말 곤란한데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