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류장
이채민
수원 외국어고등학교 3학년
정류장에 대한 글을 쓰려니, 중학교 때 한문 시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선생님은 ‘事緣’이라고 칠판에 쓰셨다. 그리고 이걸 어떻게 읽느냐고 물으셨다. ‘일 事’자는 알겠는데 다음 자는 누구도 대답하지 못하였다. 선생님은 ‘인연 緣’이라 하시면서 같은 緣이지만 惡緣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인간에게는 항상 사연이 있는데, 예를 들어 여러분 한 명 한 명 부모님이 만나서 결혼한 사연을 이야기하면 아주 재미있을 거라 하셨다.
사실 나도 우리 엄마와 아빠가 어떻게 만나서 결혼하였고 살고 있는지 궁금하였다. 토요일 오전, 엄마 아빠에게 여쭈어보았다. 엄마는 그게 그렇게 궁금하냐고 하셨다.
대답은 아빠의 입에서 시작되었다. 대학 경영학과에 다니던 아빠는 3학년 때 어학연수단에 선발되어 캐나다 몬트리올에 가서 1년 동안 영어를 익히게 되었다. 헝가리에서 이민 온 교수 부부의 집에서 머물면서 영어를 습득하였다. 그들 부부는 양성평등이라는 말이 필요없을 정도로 불편함 없이 잘 살았다.
주위에 이민간 한국인이 워낙 많아서 딱히 불편한 점은 없었다. 한국인 처녀도 많았고 유학온 여성도 있었지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당시 서울올림픽이 있기 전인데 캐나다는 이미 버스 정류장이 완전 자동화되어 있어 깜짝 놀랐다. 전광판에 노선버스가 안내되어 있고 얼마 있으면 도착하는지 알려주어서 깜짝 놀랐다. 아빠는 그때 대학에서 컴퓨터를 익히고는 있었지만, 한국은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한국도 이런 날이 올 수 있을까 의문을 갖고는 영어를 익히고 귀국하였다.
대학을 다니면서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가면 아직 캐나다의 풍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집에서 가까운 전자회사에 취직했고 여전히 버스로 출퇴근을 하였다. 대충 시간을 계산하고 나가서 버스를 타고 회사로 갔다. 대학 다니면서 미팅을 몇 번 하였지만, 여자를 사귈 기회는 별로 없었다. 나이가 들어가니 회사에서는 혹시 마음에 드는 여성이 있는가 살펴보았는데 눈에 차는 여성은 보이지 않았다.
출근한 지 두 달이 지났을 즈음이다. 매일 그 시간에는 거의 같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가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데 한 여성이 다가왔다. 순간 심장이 멈추었다. 아빠의 이상형과 가까운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남성 특유의 승수부를 던져 썸을 타기 위한 아이디어를 냈다.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아빠는 웃으셨다. 지금 생각하면 참 유치한 아이디어였다.
“저, 죄송하지만 깜빡하고 지갑을 놓고 왔는데 돈 이천 원도 빌릴 수 있을까요?” 여성 곧 엄마는 뭐 세상에 이런 남자가 다 있나 하면서도 얼마나 급하길래 이런 부탁을 하겠지 하면서 돈을 빌려주었다. 다음 날 이곳에서 만나 갚기로 약속하고 지갑에서 꺼내 주었다. 하필 그날은 금요일이었기에 월요일에나 만나야 했다. 엄마는 한 번 속는 셈 친다 생각했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 공부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날은 늦잠을 자서 평소보다 늦게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월요일에 엄마는 돈을 돌려받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호기심으로 그 시간에 정류장에 갔다. 그런데 그 남자, 곧 아빠가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는 흥미가 생겼다. 인상이 나쁘지도 않았다. 아빠는 죄송하다고 하면서 돈을 빌려준 대가로 식사 같이하자고 제안을 하였다.
아빠의 작전에 엄마는 철저하게 말려든 것이나, 나름 엄마에게도 속셈이 있었다. 내심 남자가 마음에 들었다. 토요일 점심때 약속 장소에서 만났다. 아빠는 속마음을 숨기고 고맙다는 말만 계속하였다. 자신의 처지를 말하고 넌지시 신상을 물었다. 엄마는 안정적인 직장을 원해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다고 하였다.
엄마는 아빠의 식사 예절에 매료되었다. 아빠는 캐나다 연수 중 헝가리에서 온 교수 부부의 집에 기거하면서 여성 배려를 철저하게 익혔다. 이를 엄마에게 행하니 엄마가 빠질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계속 만나자는 아빠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 남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 목숨 걸고 공부하여 시험에 합격하였다. 아빠의 정류장에서의 작전은 성공하여 3년 뒤 결혼에 골인하였다.
“엄마 아빠! 그 정류장이 어디야?” 하니 그때는 허름하게 이름만 알리는 팻말만 붙어 서있었다. 지금은 캐나다처럼 되었다면서 망포중학교 앞이라 하셨다. “우리 기념으로 거리게 가서 시진 찍고 점심 먹자.” 하니 그럴까 하신다.
우리 네 식구가 간 망포중학교 앞 정류장은 04177번이었다. 그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은 현재 거실에 걸려 있다. “그때 메뉴가 무엇이었어.” 하니 엄마가 냉면을 몹시 좋아하여 냉면을 먹었다고 한다. “그 음식점 지금도 있어.” 하니 수원에 가장 유명한 냉면집으로 아빠 친구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평양면옥이라 한다. 친구의 할머니가 6·25전쟁 때 피난 와서 시작한 맛집으로 3대째 운영 중이다. 우리 가족은 그곳에 가서 엄마 아빠가 처음 앉았던 자리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이때 찍은 사진도 거실에 같이 걸려 있다.
한문 선생님이 말씀하신 사연이 생각났다.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엄마 아빠의 사연, 참 특이한 사연임에 틀림없다. 하늘에 별이 많듯이 사람 사이에는 사연도 많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