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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토토 하얀병원 건립 세상 가장 낮은 히말라야 원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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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하얀병원소식 스크랩 [2011 무작정 네팔 다녀오기:10.3-11] ⑧ 아듀~ 히말라야…카트만두 즐기기
심대감 추천 0 조회 40 12.06.13 19:45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http://blog.busan.com/blog.my.post.view.ui?postId=4320&boardId=958&owner=rosemary (원문 보기)

 

<2011. 10.9 일요일>

      
   카트만두 스와얌부나트사원에서 만난 풍경들 - 인상적인 건, 깨달은 자를 의미하는 ’제 3의 눈’(제일 큰 사진). 
   인간의 마음에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있음을 표시한 것이라는 데, 
   물음표처럼 보이는 것은 1이란 숫자를 형상화 시켜 놓은 것이란다. 
   이것은 진리에 도달하는 길은 결국 하나로 스스로의 깨달음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 오늘은 체풀룽 토토 하얀병원을 떠나는 날이다. 루클라공항에서 카트만두로 나가는 오전 7시 소형비행기가 예약돼 있어 어제처럼 새벽부터 서둘렀다. 대부분의 일행은 병원 준공식이 있는 14일까지 체풀룽에 남고 세 사람만 먼저 귀국길에 오른다. 오전 4시30분 기상을 알리는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지난밤은 랜턴을 들고 공용 화장실을 두세 번 왔다갔다 한 것 말고는 모처럼 큰 추위를 느끼지 않고 잘 잤다. 다만, 잠을 잔 병원 앞 롯지의 2층 방에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손님이라곤 달랑 우리 셋이어서 많이 썰렁했다. 몇 명의 대원들이 이른 새벽인 데도 우리 때문에 잠을 깼다. 작별 인사를 나누고 오전 5시 병원을 출발했다. 비행기 탑승 시간은 오전 7시. 공항까진 200m 정도 고도가 높아지는 오르막길이어서 체풀룽으로 들어올 때보다 시간을 더 넉넉하게 잡기로 한 것이다. 사방에 불빛 하나 없어 랜턴에 의지해 산길을 걸었다. 그래도 루클라~체풀룽 구간은 이미 세 번째다 보니 마음의 부담은 많이 줄어든 듯했다. 게다가 3천, 4천미터 고지에 올랐다가 내려온 직후라 2천미터 고도는 가뿐하게 여겨졌다. 덕분에 오전 6시께 세 사람은 루클라공항에 도착했다.

    
    체풀룽 토토 하얀병원 앞에서 만난 9세 남자아이 포터.

 

    @ 공항에서 서둘러 짐을 부치고 공항 대합실에서 대기 중인데 분위기가 또 심상찮다. 오전 7시 비행기를 탈 수 없단다. 비행기가 없다는 말 말고는 뾰족한 해명도 없다. 이럴 것 같으면 뭐하러 꼭두새벽부터 설쳤을까 싶었다. 새벽 기온이 차가워서 공항 간이매점에서 커피를 주문했다. 달러  결제가 안 된다는 바람에 당황해 하는데 때마침 옆에 서 있던 현지 포터가 선뜻 달러를 교환해준다. 1달러에 78 네팔루피 정도 하는데 50루피로 계산하고도 50루피는 아무렇지 않게 계산에서 빼먹는다. 계산이 잘못되지 않았냐고 했더니 조금의 지체도 없이 50루피를 더 준다. 만만찮은 포터다. 그러고보니 이 포터, 머릿기름까지 발라 머리를 곱게 뒤로 넘기고, 제법 멋을 낸 게 다른 포터들과는 차림새가 많이 다르다. 하긴, 네팔에서 만난 대부분의 포터들은 차림새가 그렇고 그랬다. 슬리퍼를 신고 3천, 4천미터 고지를 올라가는 사람을 보면선 경이감이 느껴졌다. 솔직히 처음엔 아주 어린애들도 짐꾼을 하는 걸 보고 신경이 많이 쓰였다. 성인 남녀 할 것 없이 어른 짐꾼들은 그나마 생계 유지 차원이라 치더라도 어린 짐꾼들에게 가난이 무슨 죄란 말인가. 솔직히 돌아오는 순간까지도 어린이 포터는 지켜보는 게 쉽지 않았다. 

 

   @ 오전 7시30분. 공항 대합실이 갑자기 부산해졌다. 공항 직원 같은 사람이 다짜고짜 우리 일행에게 빨리 오라는 것이다. 곧 비행기가 뜬다고 했다. 아직 7시 30분도 안 됐는데 왠 비행기 싶었지만 타임 스케줄도, 좌석도 명기 되지 않은 네팔 국내선 항공권으로선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검색대를 급하게 통과했다. 그런데  삐익~ 뭐가 문제지? 여성보안요원이 앞사람 짐 안을 살피던 중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급해요!" 다시 나갔다 들어오길 두세 번. 계속 삐익~ 소리가 난다. "급하단 말이에요.. 서두르라고 해서요~" 이 여성 보안점검원 마지못해 보딩패스에 도장을 쾅~ 계단을 내려서 활주로까지-그래봐야 건물 바로 바깥-냅따 뛰었다.

 

 @ 애걔걔 19인승(기장 부기장 여승무원 등 3인 포함) 비행기도 아니고 프로펠러 한 개짜리 6인승(기장 부기장 등 2인 포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샹보체(Shyangboche·3,720m) 비행장에서 루클라공항으로 내려올 때 탔던 그 소형 비행기였다. 허걱! 저걸 타고 카트만두까지 간다고? 아마도 비행 스케줄에 차질이 생겼나보다. 아니면 16명 탑승객을 채우지 못했던지… 내심, 불안했지만 어쩌랴! 여긴, 여기만의 방식이 있는 걸. 일단 탑승하는 성공했다. 기장과 부기장 그리고 승객은 넷이 아니라 다섯 명이다. 원래 다음 비행기를 타야 할 외국인 한 명이 끝까지 우기더니 결국 우리 비행기를 얻어 탔다. 작은 비행기를 탄 이점도 있었다. 창 밖 풍경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듯 보였다. 며칠 전 약골 체력으로 장장 이틀에 걸쳐 올라가 그것도 먼발치에서나마 봤던 에베레스트, 로체, 눕체, 아마다블람 등 히말라야의 고봉들이 구름 속에서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봤지만 마음에, 머리에 담는 감동을 따라와주진 못했다. 이제는 진짜 히말라야를 떠나는구나 싶었다. 언제, 다시 눈 쌓인 에베레스트를 볼 수 있을까 생각하니 분명 무작정 네팔행에 몸을 실을 때와는 달라진 나를 느낄 수 있었다.

    

비행기에서 바라본 히말라야의 산들.

 @ 비행기는 40여 분 만에 카트만두공항에 도착했다. 수속도 간단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미니버스가 바로 대기하고 있었고 짐을 실은 작은 카고를 미니버스에 달고 공항바깥까지 나왔다. 그리고 승객과 짐을 부려놓고 떠났다. 피니쉬~ 아듀~ 히말라야!!

 

 
    네팔 국기.

   @ 다시 카트만두다. 지난 5일 루클라공항을 거쳐 체풀룽 토토 하얀병원-2박3일 남체 바자르 ’트레킹 진료’-체풀룽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으니 카트만두는 닷새 만이다. 에베레스트 트레킹 루트에서 카트만두로 나왔을 뿐이지만 확실히 속세로 환생한 느낌이다. 무엇보다 공기가 나빠졌고, 소음이 커졌다. 미리 예약한 렌터카를 타고 게스트하우스 ’빌라 에베레스트’로 향했다. 박영석 대장(현지에서 대강의 글을 써놓고 귀국 뒤에도 업데이트가 늦어지는 사이 안타깝게도 박 대장은 고인이 되셨다)이 네팔 셰르파 앙도르지와 공동 설립한 뒤 현재는 앙도르지가 혼자서 경영한다는 게스트하우스다. 처음 카트만두에 도착했을 때 묵었던 비즈니스급 호텔보다 숙박료는 많이 저렴해 시설은 열악할 걸로 어느 정도 상상은 했지만 한국음식이 제공된다는 이유로 택한 곳이었다. 하지만 욕실의  좌변기는 거의 무너지기 직전이었고, 물은 나왔다가 말았다가, 샤워 시설이라는 것도 벽에 샤워기 호수 하나 덧댄 것에 불과했는데 뜨거운 물은 고사하고 미지근한 물도 나오지 않았다. 겨우 한기를 면할 정도의 물에, 녹물 찌꺼기에 쇳가루 냄새까지 났지만 나흘째 목욕을 하지 못한 우리로선 그것도 감지덕지였다. 역시 사람은 최악의 상황을 견디고 나면 차선에서라도 위안을 얻게 되나보다 싶었다.

 

 @ 게스트하우스에서 한국식으로 식사를 하고 카트만두 명소 몇 곳을 돌아보기로 했다. 이른 아침 비행기로 루클라에서 카트만두로 내려오다보니 내일 아침 카트만두를 떠날 때까진 상당한 시간 여유가 있었다. 숙소까지 데려다준 렌터카 기사에게 다음날 공항 픽업까지 포함해 60달러를 지불키로 하고 남은 오후 시간의 현지 안내를 부탁했다. 아, 세계문화유산도시 박타푸르를 보러 가고 싶다고 했더니 추가요금 27달러를 더 요구했다. 그래도 언제 다시 네팔, 박타푸르를 찾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넉넉지 않은 시간으로 낯선 곳에서 헤매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서 오케이했다.  

    @ 오후 일정은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스와얌부나트 사원(Swayambhunath temple/입장료 네팔 화폐 400Rs)을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됐다. 스와얌부나트는 네팔불교인 라마교의 성지로, 카트만두 시내 전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서쪽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사원이다. 스와얌부나트 또는 "스스로 존재함(Self-existent)"이라고 불리는 이 사원은 정확한 근거는 없으나 지금부터 2천여 년 전에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을 때와 비슷한 시기에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사원에는 385개의 계단이 있고 그 양쪽에는 불상과 사자·코끼리 등을 새긴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사원 중앙부에는 티베트 불교 성지이자 세계 최대 스투파(불탑)인 보다나트가 있고, 거기에 새겨진 부처 눈이 오늘도 변함없이 불교 신도들의 삶을 지켜보고 있는 의미라고 전한다. 경내에는 각양 각색의 탑이 세워져 있어 네팔 불교미술의 극치를 보여준다는데 특별한 감동이 느껴지진 않았다. 다만, 사원 주변에 원숭이들이 많이 살고 있어 ’원숭이 사원’이라고도 부르는 건 인상깊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가 스와얌부나트에 도착했을 땐 한낮인 탓인지 원숭이가 그리 많이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다사인 축제 기간과 겹쳐 성지를 순례하는 불교도들로 만원이었다. ’신들의 나라’ 네팔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정도였다. 

    

 *스와얌부나트 사원 중앙부의 스투파=흰색 반구체 기단 위에 눈과 코가 그려진 금으로 도금된 사면체가 놓여있고 다시 그 위에 원추형의 덮개가 놓여있다. 도금된 사면체에 그려진 그림은 깨달은 자를 의미하는데 양 미간에 있는 ’제 3의 눈’은 인간의 마음에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있음을 표시한 것이고, 물음표처럼 보이는 것은 1이란 숫자를 형상화 시켜 놓은 것이다. 이것은 진리에 도달하는 길은 결국 하나로 스스로의 깨달음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사면체위에는 도금된 13층의 원추형 탑이 있는데, 이는 불교에서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13단계를 묘사한 것이다. 그리고 맨 꼭대기에는 도금된 종이 있다. 불교인들은 스투파를 한바퀴 돌면 불경을 1천 번 읽는 것만큼의 공덕을 쌓는 일이라 믿고있어 스투파 주변은 참배객들로 항상 북적거린다(네팔관광청 자료 참조).

 

 @ 이어 옮겨간 곳은 카트만두 두르바르 광장(Kathmandu Durbar square).이다. 이곳 역시 1979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아주 재미난 건축물들이 많긴 했지만 광장을 막아놓고 별도의 입장료(300Rs)를 징수한 데는 적잖이 놀랐다. ’궁전’을 의미한다는 두루바르에선 운좋게 현지인 한 명이 따라붙어 영어설명이라도 해주는 바람에 아주 유익한 시간이되었다.
 높다란 마주데왈(Maju Deval‎!) 계단을 비롯, 꾸마리 바할(Kumari Bahal), 현재의 카트만두라는 이름이 유래된 가스타만답(나무로 지은 집이라는 뜻), 크리슈나 사원(짜신 데가), 자간나트 사원,  하누만도까 등 론리 플래닛 가이드북에 표시된 사원들을 찾아보고, 광장을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숨을 돌렸다. 광장 구경을 하다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두르바르 광장 풍경 중에서
   
    두르바르 광장에서.

   
    보다나트에서.

 @ 다음은 세계 최대의 스투파(불탑)인 보다나트(Boudnath, 입장료 150Rs)로 향했다.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어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건만 탑 주위를 도는 순례자들은 여전히 경건한 모습이었다. 
           
      
    보다나트에서 마니차를 돌리는 순례자들.     


 @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중세도시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는 박타푸르 세계문화유산도시. 시내에서 30여 분 차를 타고 가야했다. 박타푸르는 과거 티벳과 카트만두 교역을 이어주던 곳으로 네팔 사람들의 일상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입구에서 내려 티켓오피스를 찾았다. 허걱! 입장료가 무려 1,100Rs(루피). 물론 현지인과 외국인은 다른 요금 체계를 가지고 있지만 심하다 싶었다. 2년 전 출간된 론리플래닛 네팔 편에는 750Rs라고 나와 있었는데 그새 올랐던 것이다. 별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해당 비용을 각자 지불하고 들어갔다. 약간 오르막 계단을 거쳐 안으로 들어서자 이제까지 본 네팔과는 또다른 모습이 펼쳐졌다. 히말라야 산 아래나 카트만두 시내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해가 조금씩 넘어가면서 벽돌색 건물들은 한층 운치를 더해갔다. 박타푸르에도 두르바르 광장이 있었고 각양각색의 의미를 담은 사원이 즐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로 북적댔다. 시장이 형성돼 있었고 현지인과 관광객들이 뒤섞였다.


    
    네팔의 일상 풍경 중에서
    - 야채 가게, 생선 가게, 과일 가게 등은 박타푸르에서 만난 시장 풍경. 
    -위 사진 가운데는 박타푸르의 오래된 건물이 카페로 개조된 채 영업 중이었는데 기분은 씁쓸~ 
    -아래 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는 네팔에서 시판 중인 맥주 ’에베레스트’.  

   

박타푸르 풍경 중에서


박타푸르 풍경 중에서.

 @ 박타푸르 안에 위치한 네팔국립미술관에 들어가 보았다. 별도의 입장료 100Rs를 또 내야 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카메라를 보더니 사물함에 맡기란다. 사진을 찍으려면 50Rs를 더 내야 한다면서. 꼭 이런 식이 아니더라도 네팔에선 숱한 명목으로 관광객의 지갑을 열게 했다. 사실 관광으로 벌어들이는 비용이 아니면 어떻게 국가경제를 유지할까 싶었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이 나라 사람들은, 국민들은 왜이리 가난해야만 할까! 전기 공급도 원활하지 못하고 식수 위생은 엉망이며 도로 사정은 또 어떤가! 도대체가 정치와 행정이라는 시스템은 있는 나라일까 싶었다. 이 와중에도 행복지수가 높다는 건 결국 종교의 힘인가? 현세보다는 내세에 대한 간절한 열망 때문인 것인가?

 

 @ 미술관 내용은 보잘 것 없었다. 한 나라의 국립미술관 수준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름 귀하다는 작품을 걸어놓고는 그에 대한 설명이나 간접시설-기본 조명도 오고 좁은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전부였다-도 안 돼 있어 외국인 관람객으로선 몹시 화가 날 지경이었다.

   
    박타푸르 사자상 앞에서.

    
    박타푸르 ’황금의 문’ 앞에서. 55개 창의 궁전 입구인 황금의 문. 
     이 문 위의 소벽에는 여러 힌두 신들이 조각돼 있다.
     황금 문에 사용된 돋을새김 묘사가 탁월하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시간이 멈춘 듯한 박타푸르에서의 시간은 정말 좋았다. 특히 황혼녁에 높디높은 타워 계단에 올라 저멀리 도시를 내려다보는 느낌은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매연에 찌든 카트만두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박타푸르에서. 
    해질녘 높은 계단에 올라 저 멀리 산과 도시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원한 바람과 함께 시간도 멈춘 것 같은 느낌이다. 

  @ 이제 다시 카트만두 시내로 돌아갔다. 카트만두의 공기는 정말이지 최악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한두 시간만 거리를 어슬렁거려도 얼굴에선 먼지가 쌓인 알갱이가 만져졌고 목이 따가와졌다. 불과 10년 전의 카트만두 공기도 이랬을까? 지금처럼 오토바이도 많지 않았을 것이고, 낡은 차량도 많지 않았을 테니까 당연히 나쁘진 않았을 테다. 한 번 나빠진 환경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실감났다. 더욱이 사회공공 시설에 이처럼 투자하지 않는 나라에선 더더욱 말해서 무엇하랴. 문득, 네팔로 떠나오기 전 읽은 정보책자에도 분명 마스크 준비 필수라는 항목이 적혀 있었던 게 생각났다. 하지만 그땐 이해하지 못했다.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의 공기가 나빠봐야 얼마나 나쁠까, 허풍 심한 누군가의 말이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최악이었다. 건기가 와서 한낮에도 20도를 웃도는 기온에도 에어컨도 안 되는 차를 타고 가면서 문을 쉬이 열지 못하는 심정을 그 누가 알랴. 결국은 나도 손수건을 꺼내 복면처럼 입을 가리고 말았다. 신호등도(한두 군데 보이긴 했다), 중앙선을 물론이고 차선도 없는 카트만두에서 교통 흐름을 조절하는 유일한 일꾼 경찰관 마저도 멋진 제복에 어울리지 않게 마스크는 착용하고 있었다.

   
   네팔 시내에서 대중교통 버스에 사람들이 매달려 가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이다. 

 

 @ 이제 내일이면 네팔을 떠난다. 아쉬움도 클 법 한데, 이상하게도 카트만두를 꼭 다시 찾아야지 하는 생각은 현재로선 그다지 들지 않는다. 오히려 하루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런 여행지였다. 전력, 식수, 매연의 지독함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그 ’지독함’이 주는 매력이 아주, 제법, 오래 갈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도 든다. 게다가 세계문화유산도시 박타푸르와 에베레스트 언저리 어디쯤, 그리고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한번쯤 가보고 싶은 포카라 안나푸르나 쪽도 미련이 남는다. 또한 이 나라에서 머문 짧은 기간 동안 ’(사람이 살아가면서)서둘러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세상은 그래도 굴러간다)’라는 이상한 교훈(?)도 얻어간다. 집보다 사원이, 사람보다 신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네팔, 생각 밖으로 매력적이다. 두고두고 생각나는 여행지가 될 것 같다. 

    
남체 에베레스트 뷰 포인트에서 -여명의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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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6.14 14:32

    첫댓글 어린 아이들이 포터를 한다는게 너무 가슴아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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