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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회]
콰ㅡ앙!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줄 아십니까?"
백용후가 주먹으로 탁자를 치며 소리쳤다. 노기를 뿜어내는 그의 앞에는 서종도가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지금 백용후는 간밤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 보고를 받는 중이었다. 그는 자신의 허락도 없이 휘하의 장로들을 움직인 서종도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종도는 그런 백용후의 분노를 묵묵히 감당하고 있었다.
"십대장로 중 네 명이 죽었습니다. 호교마장도 다섯이나 죽고 거기에 흑우 세 개 조까지... 이곳 무림맹에 들어온 본교의 전력 중 삼분의 일이 간밤에 궤멸하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숙부님이 신형을 습격한 것을 탓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탓하는 것은 제 허락 없이 함부로 소중한 본교의 전력을 낭비했다는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서종도는 할 말이 없었다. 사실 그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가 보낸 전력이라면 오대세가나 구대문파와도 자웅을 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믿고 보냈다. 그러나 돌아온 결과는 그야말로 참담했다. 그것은 서종도도 미처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서종도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제가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 교주님!"
"후... 이미 지난 일을 탓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들의 시신은 어떻게 했습니까?"
"이미 모두 회수했습니다."
"신형은 지금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그게... 사건이 있은 후 행적이 묘연합니다. 현재 남은 흑우를 동원해 그의 흔적을 찾고 있지만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알겠습니다."
백용후의 눈이 창가로 향했다.
언젠가는 서로에게 칼을 겨눠야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엉뚱한 데서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이제 그들은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이번 일에 대한 문책은 교로 돌아가면 할 것입니다. 지금은 잠시 후에 있을 연회가 우선입니다."
"알겠습니다, 교주님!"
"준비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비록 십대장로 중 넷이 빠지긴 했지만 준비는 완벽합니다."
서종도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비록 자신의 실수로 십대장로 중 넷이나 죽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다.
과거에 연연하기보단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때문에 서종도는 잠시 후에 있을 연회에 대비했다.
"음......!"
백용후가 잠시 자신의 머리를 짚었다. 갑자기 밀려오는 두통 때문이었다. 그의 얼굴이 자신도 모르게 일그러졌다.충혈 된 백용후의 눈동자에 서종도가 걱정스런 얼굴을 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습니다. 요즘 신경을 너무 많이 써서 그런지 머리가 좀 아프군요. 이젠 괜찮습니다."
서종도의 얼굴에 의혹이 떠올랐다. 백용후 정도의 고수가 두통에 시달린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인이 괜찮다니 더 이상 물어볼 수도 없었다.
백용후가 한쪽에 세워져 있던 혈영신도를 들며 말했다.
"이제 움직입시다. 더 이상 지체하면 연회에 늦을지도 모릅니다. 일생일대의 연회인데......"
"존명!"
백용후와 서종도가 연회가 벌어지기로 한 무림맹의 대연회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대연회장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비록 신병쟁탈의 승리자는 무명의 백용후로 결정이 되었지만 진정한 축제는 이제부터였다.
구대문파를 비롯해 수많은 명가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이 자리에 초대받을 수 있는 자들은 오직 명문의 무인들과 강호에 명망이 드높은 무인들뿐.
그 외 삼류무인들이나 이름 없는 낭인들은 결코 참여할 수 없는 자리였다.
대부분의 무인들은 이런 자리가 매우 익숙한 듯 잠시 후에 시작될 연회를 기다렸다.
무림맹에서는 이 연회를 위하여 막대한 비용을 투입했다.
또한 엄청난 인력을 투입하여 경계를 강화했다. 덕분에 이곳 대연회장은 물 샐 틈 하나 없는 철통경계가 이루어졌다.
"생각보다 경계가 심하네. 이곳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무인인데 이럴 필요가 있을까?"
초풍영은 음식이 담긴 접시를 들고 중얼거렸다.
무당파의 인원들 역시 대연회에 참석했다. 비록 서문수가 당했지만 그래도 명분이 신병쟁탈전의 우승자의 축하였기에 속 좁은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때문에 무당파에서도 대연회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무림맹주 백무광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제갈문이 각 문파의 명숙을 접대했다. 그는 얼굴 가득 웃음을 지으며 명숙들에게 말을 걸고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끌어갔다.
"거참, 넉살도 좋은 양반이네."
초풍영은 제갈문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자신이 성격이 좋아도 음모를 꾸미면서 저런 웃음을 짓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제갈문은 그렇게 하고 있었다.
비록 무슨 음모를 꾸미는지 알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제까지 자신과 신황이 겪었던 사건의 배후가 그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저렇게 태연하게 웃음을 지으며 사람들에게 가식적인 표정을 짓는다는 것은 그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는 게냐?"
"아... 사조님."
"평상시에는 아무 생각도 없는 녀석이 그런 표정을 하고 있으니 것도 볼 만하구나."
초풍영에게 면박을 주는 인물. 그는 다름 아닌 적엽진인이었다.
"뭐, 저는 생각이 없는 줄 아십니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 게냐?"
"그냥 제갈문상을 보고 있었습니다. 워낙 얼굴이 얄밉게 보여서 말입니다."
"녀석도......"
초풍영의 퉁명스런 대답에 적엽진인이 어이없다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마 자신의 앞에서 이런 태도를 보일 수 있는 것도 초풍영뿐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초풍영을 탓하고 싶지 않앗다. 오히려 초풍영의 그런 태도를 더 좋아했다. 적어도 초풍영은 겉과 속이 다른 인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신 대협이 안 보이는구나."
"그러게요. 저도 아까부터 찾아보고 있는데 보이지 않네요. 어딜 간 것도 아닐 텐데."
사실 초풍영도 아까부터 신황 형제와 무이가 안 보이는 것에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는 물어볼 만한 사람도 없어 그를 답답하게 만들고 있었다.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의논을 하개 했는데 사람이 없으니......"
적엽진인이 웃음 띤 얼굴로 사람들을 맞이하는 제갈문을 보며 중얼거렸다.
사실 지금 상황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이미 마선 혁련후의 시신은 인근에 있던 마도문파들에 인도되었고, 다른 문파들도 무림맹을 향해 움직이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자칫하다가는 정사대회전(正邪大會戰)이 벌어질 판이다. 그런데도 한가하게 대연회나 여는 백무광과 제갈문의 속셈을 도무지 모르겠는 것이다.
그때 초풍영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뭐, 형님이 없지만 별일 있겠습니까? 그나저나 정말 많이도 모여드는군요."
"구대문파에서 십여 명씩만 참석한다고 해도 거의 백이 넘는다. 거기에 오대세가의 인원에다, 특별 초대받은 인물들, 또한 경계를 서는 무인들까지...
정말 당금 무림의 최정상을 달리는 인물들은 죄 이곳에 모였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도 그리 쉬운 게 아닐진대."
얼핏 봐도 대연회장에 모인 인원만 오백이 넘는다.
만약 적엽진인의 얼굴이 생각보다 평범하지 않았다면,
또한 소탈하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쯤 자신의 의자에 앉아 팔자에도 없는 사람들의 인사를 받으며 근엄한 척 수염을 쓰다듬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적엽진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었으며, 또한 그들은 적엽진인의 인상 한 번에 침묵을 종용당해야 했다.
덕분에 적엽진인은 드넓은 연회장을 자신의 마당마냥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때 무림맹주 백무광이 호위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맹주!"
"맹주님!"
무인들이 분분히 포권을 하며 백무광을 맞았다. 그에 백무광은 일일이 포권을 해주며 답했다.
백무광은 그렇게 떠들썩하게 등장했다. 이어 등장한 사람은 신병쟁탈전의 승자인 백용후였다. 그는 숙부인 서종도와 함께 대연회장에 들어왔다.
백용후가 들어서자 수많은 사람들의 눈빛이 변했다. 그들은 대부분 강호에서 명문이라 불리는 세가의 사람들이었다.
특별한 단체에 속하지 않은 미혼의 신흥강호, 그것이 백용후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었다.
신병쟁탈전에서 우승할 만큼 압도적인 무력을 가졌으면서도,
어느 세력에도 포함이 되지 않았기에 그를 끌어들일 수 있다면 전력이 비약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재색을 겸비한 여식이 있는 집안의 어른들은 친근한 얼굴을 가장하고 백용후에게 접근을 시도했다.
아울러 백용후의 무공연원을 캐기 위해 이것저것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러나 백용후는 그들의 물음에 그저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했다.
"자네의 사문이 어찌되는가? 내 이제껏 견식이 적잖다고 자부했는데 도무지 자네의 무공은 못 알아보겠더군. 혹 실례가 안 된다면 알려주면 안 되겠는가?"
"그래 혈영신도를 사용해보니 어떻던가? 정말 소문만큼의 명도인가?"
"그래, 혼자라고? 자고로 독보(獨步)하는 자치고 오래가는 자는 없네. 그러니......"
백용후를 둘러싼 무인들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탐욕의 빛이 흘렀다. 그들은 특히 백용후의 손에 들려있는 혈영신도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러나 백용후는 그런 그들의 시선을 철저히 무시했다. 어딜 가나 이런 자들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백용후는 이런 자들을 경멸했다. 그리고 마교를 사랑했다.
음모와 힘에 대한 탐욕은 있을지언정, 아부는 없는 곳이 바로 마교이기 때문이다. 이런 자리에 있자 자신을 따르는 마교의 부하들이 더욱 자랑스러워졌다.
지금 대연회장에서는 백용후에게 달라붙는 사람들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단체의 이득을 위해 다른 문파들을 탐색한다거나,웃음을 가장한 채 서로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모습이 적잖게 보이고 있었다.
무공을 모르는 평범한 백성들이 보기에는 하늘 위에서 사는 신선들 같은 모습이지만
그들의 실제 모습은 이렇게 탐욕과 욕심으로 범벅이 된 추악한 괴물에 불과했다. 단지 백성들보다 훨씬 강한, 그것이 무림이었다.
물론 탐심에 물들어 있는 무림인들은 얼마 안 되지만 문제는 그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무림을 이끌어간다는 데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서 대부분의 무림정책이 바뀐다는 데 있다.
적엽진인이 아는 무림은 그랬다. 그래서 대륙십강이라는 찬연한 명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는 무림과 담을 쌓았다.
그래서 무당의 제자들에게 강호를 출입하는 것을 경계하게 했다. 그러나 무당도 문파란 형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돈에 얽매여야 하고, 그래서 속가제자에 신경을 써야한다.
또한 무림의 태산북두란 허명을 유지하기 위해 세상에 적절하게 자신의 무력을 보여줘야 했다.
'자고 나면 도무 허망한 꿈인 것을......'
적엽진인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그 역시 본질은 무림인. 제 아무리 도사란 허명을 쓰고 있어도 무림인인 이상 그런 속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때 제갈문이 단상 위에 오르며 내공을 실어 음성을 토해냈다.
"자...자, 여러분! 모두 조용히 해주십시오. 이제부터 사적인 대화는 모두 금지됩니다.
이제 맹주께서 신병쟁탈전의 승자인 백 대협께 치하를 할 것입니다. 이후 백용후 대협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갖겠습니다. 그러니 잠시만 조용히 해주십시오."
그의 말에 군웅들이 대화를 그만두고 단상을 바라봤다.
백무광이 천천히 단상 위로 오르고 있었다.
그는 잠시 군웅들을 둘러보다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오늘은 무척 경사스런 날입니다. 신병쟁탈전의 승자가 가려졌고, 또한 평소에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여러 무인들이 한자리에 모였으니까요."
백무광은 심유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모두가 그를 주시하고 있다. 어떤 이는 존경의 염을 담아, 어떤 이는 질투의 눈빛으로, 그리고 어떤 이는 탐욕의 눈으로.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모두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는 데 있었다.
순간 백무광의 눈에 광포한 빛이 잠시 머물다 사라졌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기에 그의 눈빛을 알아챈 사람은 없었다.
백무광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오늘은 정말 뜻 깊은 자리가 될 겁니다. 저에게도, 그리고 여러분들에게도. 오늘을 즐깁시다. 오늘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테니......"
왠지 백무광의 어감이 이상하다고 느꼈으나 군웅들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백무광의 말처럼 오늘을 즐기기만 하면 그들의 일은 끝이기 때문이다.
"오늘을 위하여......"
백무광이 손을 든 잔을 높이 쳐들며 외쳤다. 그러자 수많은 무인들이 같이 잔을 들며 외쳤다.
"오늘을 위하여!"
순간 백용후의 눈빛이 반짝였다.
'멋진 말이군. 오늘을 위하여라니......'
마치 자신을 위해 준비해둔 말 같다.
백용후의 눈이 서종도를 향했다. 그러자 서종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백무광이 말했다.
"자, 오늘의 주연은 내가 아니라 신병쟁탈전의 우승자인 백 대협입니다. 그를 박수로 맞아주시길 바랍니다."
"와아아아!"
짝짝짝짝!
백무광의 말에 군웅들이 함성과 박수로 백용후를 맞았다.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백용후를 향했다.
백용후는 군웅들의 박수를 받으며 단상으로 올랐다. 그러나 열혈한 환호를 받으며 올라가는 백용후의 눈은 북해의 얼음보다 더욱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어서 오게!"
백무광이 웃는 낯으로 백용후를 맞이했다. 두 팔을 벌리며 맞이하는 그의 모습에 백용후의 눈빛이 더욱 가라앉았다.
백용후가 단상에 섰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을 차갑게 바라보았다.
꾸욱!
자신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눈이 붉게 충혈됐다.
웅웅웅!
허리에서 흐느껴 우는 혈영신도의 느낌이 전해져왔다.
백용후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맹...주님의 말씀처럼 오늘은 상당히 좋은 날입니다. 그것도 아주 특별한... 아마 영원히 오늘을 잊지 못할 겁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여운이 짙게 남는 말이었다.
백무광에 이어 백용후마저 알 수 없는 말을 하자 군웅들의 얼굴에 의혹이 떠올랐다. 무언가 이상한 분위기를 느낀 것이다.
이어 백용후가 백무광을 똑바로 바라봤다.
"오랜만이군요."
순간 백무광의 입가에 미세한 곡선이 그려졌다. 그러나 그는 어떤 말도 하지는 않았다.
대신 흥미롭다는 눈으로 백용후를 바라봤다. 그에 백용후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얼굴이 갑갑하지는 않았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내 손으로 벗겨줄까?"
"후후......!"
백용후의 말에 백무광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의 대화가 심상치 않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백무광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훌륭하게 자랐어. 내 기대치보다도 훨씬 더......"
"언제까지 그 얼굴로 있을 거지?"
"왜, 보기 좋지 않은가? 꽤 그리운 얼굴일 텐데."
"너......"
백무광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에 반해 백용후의 몸에서 지독한 살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엉뚱한 말을 하는 백용후도 그렇지만 군웅들은 특히 백무광의 돌변한 태도에 혼란을 느꼈다.
그러나 제갈문이나 무림맹의 인원들은 그런 백무광의 태도를 미리 짐작했다는 듯이 추호의 당황도 없었다.
적엽진인은 급히 이곳에 온 무당파의 책임자인 백우진인에게 전음을 보냈다.
'어서 무당의 제자들을 이끌고 내 근처로 모여라. 아무래도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
'알겠습니다, 사숙!'
적엽진인은 두 사람의 대화에서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천기의 불안, 그리고 불길한 느낌의 정체는 바로 무림맹이었는가?'
왠지 모르지만 백무광과 백용후가 같이 있는 모습을 보자 몸에 한기가 느껴졌다.
각자 보았을 때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지만 두 사람이 같은 자리, 같은 공간에 있자 미묘한 위화감이 들면서 불길한 기운이 엄습하고 있었다.
적엽진인의 주위로 무당의 제자들이 몰려들었다.
그 순간에도 백무광과 백용후의 대화는 계속되고 있었다.
"당신의 본래 얼굴을 보고 싶군."
"후후! 자네도 지독하게 냉정한 사람이군. 보통 이 정도가 되면 흔들릴 법도 하건만."
"내가 가면을 벗겨줄까?"
"아...아! 그럴 필요 없네. 내가 스스로 벗지. 그 정도의 예의야 기본이지. 후후후!"
백무광이 환한 웃음을 지었다. 이제까지 사람들 앞에서 무표정한 모습만으로 일관하였던 백무광의 그런 모습은 사람들을 혼란케하기에 충분했다.
"근 이십 년 만인가? 이 껍질을 벗는 것도......"
백무광이 자신의 목을 어루만졌다. 그의 모습을 보는 백용후의 눈에 한광이 스쳤다. 동시에 의혹이 떠올랐다.
'이리 쉽게 인정을 하다니... 도대체 왜?'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너무 일이 쉽게 진행된다. 백무광이 저리 쉽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다.
너무 쉽게 일이 진행되는 오히려 의문이 들었다. 이제까지 이십 년 동안이나 철두철미하게 정체를 숨기고 살았으면서 자신의 말 한마디에 정체를 밝히다니.
백무광이 그런 백용후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왜, 내가 너무 순순히 자네의 말에 따라주는 것 같아 의문인가? 후후! 너무 궁금해 하지 말게. 곧 알게 될 테니. 자네뿐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찌이익!
그가 마침내 이제까지 이십 년 동안 쓰고 있었던 가죽을 벗었다.
"아......"
"무슨?"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무림맹주가 인피면구를 쓰고 있다니."
군웅들이 동요를 했다.
이제까지 그들이 무림맹주라고 철썩 같이 믿어왔던 사람이 실은 다른 사람이라니. 거대한 충격이 그들을 강타했다.
"후후~ 어떻게, 볼 만한가?"
백무광, 아니 백무광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었던 남자가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며 말했다.
파르르 깎은 머리에 햇볕 한 점 쐬지 않은 창백한 얼굴, 그리고 유난히 푸른 기가 감도는 눈동자를 가진 중년의 남자.
그가 이제껏 백무광의 가죽을 뒤집어 쓰고 있던 남자였다.
"당신 누구지? 누구기에......"
"성격도 급하군. 내 정체를 묻기 전에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게 우선이 아닌가?"
"너?"
"마교의 교주, 백용후. 꼭 내 입으로 정체를 밝혀야 하는가?"
중인들의 눈에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그만큼 그가 한 말은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군웅들의 눈이 백용후에게 쏠렸다.
백용후가 침중한 눈으로 입을 열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지?"
"후후! 자네가 마교로 들어가면서부터라면 이해가 되는가?"
"네 녀석!"
"내 이름은 화천(花天)이라고 한다네. 내 스승이 지어준 이름이지."
화천이 창백한 얼굴에 웃음을 지은 채 손에 든 백무광의 얼굴가죽을 빙글빙글 돌렸다. 그 모습에 백용후의 얼굴에 노기가 떠올랐다.
자신의 아버지의 얼굴이다. 그런데 그 얼굴을 이제까지 뒤집어쓰고 있었던 것도 모자라 저리 조롱하다니.
웅성웅성!
군웅들이 떠들기 시작했다.
한쪽은 마교의 교주고, 한쪽은 무림맹주의 탈을 뒤집어쓴 화천이라는 남자. 그들의 혼란은 극에 달했다.
마교는 분명 무림맹의 적이다. 그런데 그들이 믿고 의지해야 할 사람인 무림맹주의 정체마저 불분명하다.
'모두 내 주위에서 떨어지지 말거라.'
적엽진인이 전음으로 무당의 문도들에게 신신당부했다.
곳곳에 보이는 무림맹의 경계 무사들의 모습이 심상치 않다.
자신들의 주군이 가짜란 것을 알았으면 어떤 동요의 빛이라도 떠울라야 할 텐데, 이들의 모습에는 전혀 그런 모습이 없다.
그것은 이들이 오래 전부터 백무광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말이 된다.
더구나 이곳에 들어온 무인들 중 상당수가 백용후에게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무량수불! 복마전이 따로 없구나. 이 난국을 어찌 헤쳐 나갈꼬.'
적엽진인은 오늘의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느끼고 있었다.
맹룡과강(猛龍跨江)이라... 맹룡이 아니면 강을 건너지 않는다고 했다.
스스럼없이 정체를 드러내는 화천이나 마교의 교주임을 부인하지 않는 백용후, 둘 다 자신이 있기에 이토록 당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비록 군웅들의 수는 많으나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했다.
더구나 구심점이 되어야 할 백무광이 화천으로 밝혀진 이상, 적아(敵我)조차 분명하지 않았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과 무당파의 사람들뿐이었다.
'신대협은 저들의 관계를 아는 것 같았는데... 그가 있었으면 이 난국을 헤쳐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 안타깝구나.'
그는 이 자리에 없는 신황의 존재가 새삼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그라면 주저함이 없이 움직일 텐데. 도사란 허명이, 무당이란 이름이 그에게는 너무나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점점 첨예한 대립 양상으로 치닫는 대연회장의 모습에 적엽진인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혈뢰옥은 혁련후가 들어왔을 때와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각 문파의 중요지처를 모방한 구조물들은 말끔히 치워져 있었고, 그 대신 거대한 공동에는 기괴한 건축물이 들어차 있었다.
"기관이군."
"무림맹의 지하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신황과 신원은 자신들의 눈앞에 펼쳐진 모습을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설아를 따라 들어온 곳은 다름 아닌 혈뢰옥이었다.
신황이 눈앞에 펼쳐진 전경을 보며 말했다.
"아마 우리를 유인하기 위한 함정일 공산이 크다."
"그렇겠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둘을 이곳으로 끌고 올 이유가 없으니."
"이들이 진정 귀원사의 후예가 맞는다면 네가 펼치는 명왕권을 못 알아볼 리 없다. 그래서 우리를 이곳으로 유인한 것일 테고..."
"그럼, 죽음의 함정이 득실거리겠군."
신황은 냉정하게 현재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추론했다. 신원은 그런 신황을 묵묵히 바라봤다.
신황과 신원의 가장 큰 차이점은 덩치가 아니라 성격이었다. 평소 순한 성격이었다가 한 번에 폭발하는 신원과 달리 신황은 절대 흥분하는 법이 없다.
그는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적절한 대책을 세웠다. 그것은 신원이 도저히 신황을 따를 수 없는 부분이었다.
때문에 신원은 신황이 말을 하면 그에 절대 의심을 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것은 오랜만에 재회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신황이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을 했다.
"둘이 같이 움직여봐야 서로에게 거치적거리기만 할 것이다. 또한 우리가 뭉쳐 있으면 저들 역시 전력을 집중시킬 것이다.
그러니 둘로 나눈다. 내가 동쪽에서, 네가 서쪽에서 쳐들어간다. 누가 먼저든 염화와 무이를 구출하면 신호를 보내고 합류한다. 그 전까지 각개격파한다. 알겠지?"
"알았어. 내가 서쪽이란 말이지."
"쉽지 않을 거다. 어쩌면 은자들이 이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은자들하고 충돌할 상황이 오면 철저하게 짓밟는다."
"만약 그랬다간 어쩌면 조선 땅에 있는 은자들과 전면전이 벌어질지도 몰라. 그래도 괜찮겠어?"
신원의 걱정 어린 말에 신황이 차가운 웃음을 떠올렸다.
"훗! 어차피 언젠가는 한 번 겪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저들은 아직 완벽하게 뭉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밟아놔야 한다.
나중에 저들이 따로 뭉친다면 그때는 정말 손을 쓸 수 없게 된다. 저들은 지금이 우리를 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단지 우리의 상황이 저들보다 조금 더 복잡할 뿐이다."
"알았어! 뭐, 그런 것은 형이 어련히 알아서 계산하겠지. 나야 형이 시키는 대로 하면 그만이니까. 요컨대 우리가 저들 은자들과 충돌해도 상관없다는 말이지?"
"그래!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철저하게 손을 써라. 두 번 다시 감히 딴마음을 품지 못하게.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질 테니."
"알았어."
신황의 말에 신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남의 말이다. 아직 신황은 그들의 아버지 신권영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신원은 신황을 인정했다.
그리고 확신했다. 아버지도 인정할 거라고. 그렇다면 신황이 진정한 명왕가의 장남이다.
가문의 장남이 하는 말은 곧 법이다. 신원은 그렇게 배웠다. 때문에 신황의 말에 토를 다는 따위의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았다. 대신 강렬한 투지를 뿜어냈다.
"잠시 후에 보자."
"응!"
신황은 동쪽으로, 신원은 서쪽으로, 그렇게 갈라졌다.
은색의 귀면탈을 쓴 남자, 그는 기관의 중앙에서 신황 형제가 움직이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은 혈뢰옥의 기관 중심으로 혈뢰옥의 구석구석까지 감시할 수 있게 모든 장비가 설치되 있었다.
지금도 반사경에 신황 형제의 모습이 고스란히 비치고 있었다.
"저들이 그의 후손들인가? 사우(死雨)."
순간 은색의 귀면탈을 쓴 남자 뒤에서 늙수그레한 음성이 들렸다. 은색 귀면탈의 남자, 사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분명 저들은 그의 후손이 맞습니다. 제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사우의 옆으로 다가온 왜소한 체구의 노인, 그는 곰방대를 입에 물고 연신 하얀 연기를 토해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신황과 신원에 고정되어 전혀 떨어질 줄 몰랐다.
"저놈은 그의 자손치고는 무척 조그맣군. 제 아비의 반도 안 되는 것 같으니. 그는 정말 컸는데."
그는 신황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때 사우가 말했다.
"그의 동생은 그보다 훨씬 큽니다. 아마 실망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야겠지. 그래야 우리가 이 먼 곳에 온 가치가 있을 테니."
노인의 얼굴에 섬뜩한 웃음이 어렸다. 그저 겉으로 보기에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왜소한 노인에 불과했지만,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인자한 웃음 뒤에, 왜소한 체구 뒤에 숨어 있는 그의 본성은 무척이나 흉포했고, 또한 잔인했다.
"그나저나 양쪽으로 나뉘었군. 이래서는 우리도 전력을 한곳에 집중시키기 힘들겠어. 별수 없이 양쪽으로 나눠야겠군."
"그 정도는 예상했던 바입니다."
"그렇겠지! 그럼 이제 나도 슬슬 움직여야겠군. 정말 오랜만에 피가 끓는단 말이야."
노인은 신황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때 사우가 노인에게 말했다.
"어쩌면 그보다 위험할지 모릅니다. 강호상에서 그의 명성은 둘째 치고, 제가 본 그의 무위는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상관없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라면 그가 직접 온다고 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이. 은자들의 질서를 깨트리는 그런 망둥이들은 진작 정리를 했어야 했는데."
그의 눈에 질시의 빛이 떠올랐다.
단지 이백 년도 안 되는 시간에 수백 년 이상을 이어온 은자들보다 훨씬 강해진 집안.
그들의 등장은 기존에 절대강자로 존재해오던 은자들의 질서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말았다.
귀원사가 비록 은자들 사이에서 경원시하는 존재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제까지 암묵적으로 서로의 영역을 인정해주었는데, 신씨 가문은 그런 관행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귀원사와 연관된 모든 은자들에게 그들과의 거래를 끊기를 종용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는 은자들을 압박했다.
그들은 철저하게 패도를 걸었다. 자신에게 도움을 거절한 은자들에게, 그리고 귀원사에게, 그들은 철저한 복수를 했다.
그러나 그 손속이 너무나 가혹해 이제까지 숨죽이고 있던 은자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까지 내려온 불문율을 깨고 귀원사의 잔당과 손을 잡았다. 그것은 은자들의 묵계에 위배되는 일이었지만,
더 이상 신씨 집안을 가만히 두었다가는 자신들의 존립 자체가 위험하다는 위기감이 그들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저 휘적휘적 걸음을 옮기는 것 같았는데 노인의 모습은 어느 새 사라지고 없었다.
"파산인(破山人), 계룡산에서 수도한 이 중 가장 패도적이면서 이번 일에 자청해서 중원으로 온 인물.
덕분에 우리야 편해졌지만 가장 경계할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손을 잡아야 할 때."
사우는 파산인이 사라진 공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귀원사와 은자들이 손을 잡을 줄은 그 자신들조차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그러나 신 씨 집안의 등장으로 기존의 모든 법칙이 무너지고 새로운 연합이 형성되었다.
그것이 바로 자신들의 모습이었다.
"어차피 중앙으로 모이게 되어 있다. 그곳에서 이제까지의 모든 악연이 정리될 것이다."
신황 형제가 마교의 인물들과 싸우는 틈을 타 무이와 홍염화를 납치해온 인물이 바로 사우였다.
비록 신원이 펼친 술법이 중원인들이 파해하기에 난해하다 하나, 같은 조선인인 그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술법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일에 이곳 무림맹에 온 은자들과 백무귀들 대부분을 모두 동원했다. 반드시 신황 형제를 죽이기 위해......
사우는 잠시 거울에 비친 신황의 모습을 바라보다 조용히 몸을 움직여 사라졌다.
신황이 들어선 곳은 무척이나 복잡하게 얽혀있는 미로였다.
그는 눈앞에 펼쳐진 미로를 잠시 바라보다 거침없이 걸음을 내딛었다.
순간.
그그긍!
육중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돌 벽이 종횡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길이 있던 자리에 육중한 돌 벽이 솟아오르고, 벽이 있던 자리에 새로운 길이 생겨났다.
신황이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자신이 들어왔던 입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잠시 자신이 들어온 자리를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어차피 그냥은 나갈 생각이 없다.'
혼자서 나가기 위해서라면 굳이 이곳에 들어올 이유가 없었다.
그러니 입구가 없어졌다고 위축될 필요도 없었다.
신황은 가만히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비록 통증이 오긴 했지만 움직일 만했다.
초관염이 준 내상약을 복용한 덕분이었다. 그러나 그나 신원이나 그다지 좋은 몸 상태는 아니었다.
만일 잡혀있는 이가 무이와 홍염화가 아니었다면 그는 결코 이곳으로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캬우웅!
그의 발밑에서 설아가 울었다. 설아의 눈은 붉게 충혈 되어 있었다. 설아가 얼마나 흥분했는지 잘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신황이 말했다.
"그래, 가자!"
신황의 눈에 섬뜩한 기운이 떠올랐다.
어떤 함정이 그를 기다리건, 어떤 인물이 그를 가로막건 상관없다. 막으면 베고, 잡으면 짓밟을 것이다. 비록 후세에서 그를 살인마로 기억할지라도 말이다.
그것이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장내는 세 부류로 나뉘어졌다.
화천을 중심으로 한 무림맹의 인물들과 백용후, 그리고 아직 사태파악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는 각문파의 무인들.
"네가 어째서 내 아버지를 죽인 것이냐? 어째서 그분의 얼굴을......"
"너 때문이지."
백용후의 분노에 찬 질타에 화천은 가볍게 대답했다. 순간 백용후의 얼굴에 어이없다는 빛이 떠올랐다.
"후후... 만약 네가 아니었다면 네 아비는 그리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무슨......?"
"널 다시 만나기 위해 이십여 년을 기다렸다. 후후~!"
"놈!"
너무나 태연한 화천의 태도에 백용후의 전신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의 얼굴에 떠오르는 노기가 점점 짙어졌다.
그때 점창파의 장문인인 하원지가 앞으로 나섰다.
"백맹주,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그 인피면구는 무엇이고, 마교의 교주는 또 무엇이오? 모든 전모를 밝히시오."
"맞아! 밝혀라."
"밝히시오."
군웅들이 하원지의 말에 동조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분노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몰라도 이 모든 것이 자신들을 철저하게 배제한 채 이뤄졌다.
그리고 백용후나 화천,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이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니란 배신감, 그것이 군웅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화천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떠올랐다. 또한 제갈문의 얼굴에도 비슷한 웃음이 떠올랐다.
화천이 입을 열었다.
"당신들은 이 연회의 제물이라고 보면 될 거야. 난 전부터 당신들이 꼴 보기 싫었거든.
무력 조금 가지고 있다고 거들먹거리는 것도 그렇고, 당신들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떠들고 다니는 것도 그렇고......"
"그게 무슨 말이오?"
"후후! 이런 말이지."
순간 대연회장을 경계하고 있던 무림맹의 무인들이 무기를 뽑아들었다.
촤ㅡ앙!
채채챙!
이어 군웅들도 무기를 꺼내들었다.
화천이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흐흐흐! 아마 운공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무기를 꺼내다니, 정말 용하군!"
"...이런!"
"기가 모...이지 않는다."
"산공독이다."
군웅들의 얼굴에 당혹스런 빛이 떠올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력이 원활하게 유통되지 않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흐흐! 산공독을 뿌려놓은 음식을 잘도 먹더군."
화천이 당혹해하는 군웅들을 보며 미소를 더욱 짙게 피워 올렸다. 사실 이곳에 있는 음식에는 산공독이 뿌려져 있었다.
독이 아닌 단순한 산공독이기에 각 문파의 제자들이 의례하는 검침에도 독은 검출되지 않았다.
단 산공독의 효과가 너무 강렬하면 대사가 치러지기도 전에 들통날 수 있기에 약효가 강렬한 것은 사용할 수 없었다.
지금 이들이 복용한 산공독으로 공력을 제어할 수 있는 시간은 이 각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정도면 충분했다.
단,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산공독으로도 제어가 불가능한 초강고수들인데, 그것도 이미 대책이 세워져 있었다.
화르륵!
백용후의 주먹에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화천이 말했다.
"후후! 얼마 전부터 살심(殺心)이 들끓었을 거야. 자신도 제어하기가 무척이나 힘들 정도로......"
"역시 너의 짓이구나?"
"천마환위이혼대법(天魔換位移魂大法)이라고 하네.
자네와 싸우다 장렬히 죽은 그들 세 명은 천마환위이혼대법을 위해 키워진 인물들이지. 어떻게 보면 자네를 위해 죽은 셈이지."
"천마환위이혼대법?"
"말 그대로 다른 혼을 받아들이기 위한 대법이라네. 천마(天魔)라는... 자네는 모르겠지만 자네는 대천마성(大天魔星)의 기운을 받고 태어났다네.
백 년 전의 고금 제일마, 천마와 똑같은.....그것을 안 순간, 나의 머릿속엔 한 가지 계책이 떠올랐지. 자네라면 천마의 혼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니 받아들이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네. 단지 자네의 몸속에 잠들어있는 미지의 부분만이라도 깨우면 될 테니까......"
화천은 손에 들고 있던 인피면구를 백용후에게 던지며 말을 이었다.
"자네의 손에 죽은 그 세명은 그 사전작업이었네. 그들의 몸에는 특수한 약재와 함께 내 땅에서 내려오던 대법을 펼쳤네.
그들의 피는 훌륭한 촉매제로 바뀌었지. 자네의 핏속에 잠재해있는 마성(魔性)을 일깨우는......"
"그래서 당신이 얻는 이득이 뭐지?"
"후후! 자네라는 훌륭한 살인병기를 얻지 않는가! 대천마성의 정기를 타고 태어난. 그 정도면 충분하지."
"내가 당신의 말에 따를 것 같은가?"
"후후~!"
백용후의 말에 화천이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조롱하는 듯한 그이 모습에 백용후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분통을 터트렸다.
"죽여 버리겠다. 이야아앗!"
콰릉!
백용후의 주먹에서 엄청난 경력이 일어나 화천을 향해 밀려갔다. 그러나 화천은 가볍게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전권에서 벗어났다.
콰아앙!
그의 경력이 작렬한 자리에 돌 벽이 무너져 내렸다.
그 순간 백용후가 외쳤다.
"숙부님!"
"교주님!"
순간 사람들 틈에 섞여있던 서종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 이제까지 군웅들과 섞여 있던 인물들 중에서 일단의 무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변장을 풀고 본래의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마교의 인물들이었다.
"후후~, 꽤 많이 왔군."
"그렇습니다. 맹주님."
어느새 다가온 제갈문이 화천에게 허리를 숙였다. 오늘의 일을 위하여 무척 많은 준비를 했던 그였다.
비록 화천이 무슨 짓을 꾸미는지 알지는 못했지만 그딴 것은 아무 상관없었다. 그와 자신은 계약에 의해 얽매인 몸, 이번 일로 서로가 이득을 얻으면 그뿐이었다.
"빌어먹을! 공력이 제대로 모이지 않아요."
초풍영이 내력을 끌어올리다 말고 인상을 구겼다.
"풍영이와 내력을 끌어올리지 못하는 제자들은 모두 중앙으로 모이고, 내력을 움직일 수 있는 제자들은 방진을 만들어라."
"예!"
적엽진인과 백우진인이 제자들을 통솔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우리밖에 없다. 우선 이 자리를 빠져나가는 데 최선을 다한다."
"예!"
대답을 하는 무당의 제자들. 그들의 눈에 결연한 빛이 떠올랐다.
"아미타불! 진인, 소림도 같이 움직여야 하겠소이다"
"저의 청성도 그렇습니다."
소림의 각율대사와 청성의 철산자가 적엽진인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들의 제자 역시 태반이 공력을 소실한 상태였다.
때문에 혼자의 힘으로는 난국을 헤쳐 나가기 힘들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무량수불, 우선 이 자리를 빠져나가야 합니다. 그런 연후에 힘을 모아 마교든 무림맹이든 응징해야 합니다."
"그렇소이다. 일단 이 자리를 빠져나가고 봅시다."
"제가 앞장을 서겠습니다. 뒤를 받쳐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방진을 형성한 채 조금씩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적엽진인이 한쪽에서 오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화천과 백용후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봤다.
"대천마성(大天魔星), 그 저주받을 마성(魔星)이 하필 이런 형태로 세상에 나타나게 되다니......"
백용후에게 펼쳐진 천마환위이혼대법이 어떤 것인지 몰라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무인들이 흘리는 피가 어떤 형태로 그의 마성에 영향을 끼칠 것인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화천은 한쪽에 서서 무당을 중심으로 뭉쳐 밖으로 빠져 나가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후후,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어리석군!"
이 자리에 신황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그러나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가 있는 곳은 오히려 이곳보다 더욱 험하고, 무서운 곳이기 때문이다.
"어서 조선으로 돌아가고 싶군."
그가 손을 들었다.
그것이 신호였을까? 대연회장에 난전이 시작됐다.
채앵!
촤촤촹!
"이야앗!"
"죽엇!"
무기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악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스르륵!
혈뢰옥에 남은 인원을 제외한 백무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소리도 없이 나타나 화천의 등 뒤에 도열했다. 비록 소리도 없었고, 기척도 없었지만 그들의 존재감은 장내를 꽉 찼다.
순간 백용후의 등 뒤에도 검은 그림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온통 검은 일색의 복장을 한 남자들, 바로 흑우였다.
이미 한 번 격돌을 했던 사이다. 당시의 대결은 그야말로 백중지세(伯仲之세), 어느 누구도 압도를 하지 못했던 만큼 그들은 서로에게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누구도 그들에게 명령을 내리거나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서로를 적으로 인정하고 움직였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들만의 전쟁이 시작됐다.
"훗! 정말 제대로 키웠군."
화천이 마교 측의 흑우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에 야릇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쉬익!
그때 백용후가 날린 경력이 그를 향해 거칠게 밀려왔다. 그러나 화천은 피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등 뒤에서 누군가 나타나 대신 손을 썼다.
파ㅡ아ㅡ앙!
"크흡!"
경력에 담긴 힘이 어찌나 거세던지 화천의 등 뒤에서 나타난 뒤로 급히 몇 걸음 물러서 여파를 해소시키며 남자는 인상을 썼다.
미리 대비하고 있었음에도 완벽하게 해소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말 대단하군. 가볍게 펼친 수법이 이 정도라니......"
자신의 손목을 돌리며 중얼거리는 중년의 남자, 그를 보며 제갈문이 인사를 했다.
"오랜만에 뵙겠소이다, 무상!"
"후후! 오랜만이오, 제갈문상!"
소리도 없이 나타나 백용후의 공격을 해소한 남자, 그는 이제까지 무림맹에서도 신비에 싸여있던 무상이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문상 제갈문과 달리 이제까지 철저하게 비밀에 싸여있던 무상이 나선 것이다.
"아... 관외신마(管外神魔) 사도광이다."
누군가 무상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냈다.
관외신마 사도광. 대륙십강의 인물들보다 한 세대 위에 존재했던 인물이다.
그 당시 그가 관외에서 활동할 때인 사람들의 수만 세 자리 수가 넘는다고 했다. 때문에 관외에서 그의 명성은 오히려 대륙십강을 능가했다.
그러나 삼십 년 전에 홀연히 사라져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그가 오늘 무림맹의 무상이란 이름을 가지고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백용후는 자신의 공격을 막은 사도광에게 어떤 감흥도 일지 않았다. 그의 눈은 오직 화천 한 사람에게만 향해 있었다.
그이외의 어떤 것도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웅! 웅! 웅!
백용후의 살기에 반응해서, 그의 허리에 걸린 혈영신도가 나직이 울음을 터트렸다.
그에 다시 백용후의 살기가 비정상적으로 거칠게 고양됐다. 사도광은 그런 백용후를 보며 입을 열었다.
"어린 친구가 정말 대단하군. 하지만 거기까지다. 맹주님에게는 손끝하나 대지 못할 것이다."
그에 이제까지 백용후의 등 뒤에 조용히 있던 서종도가 앞으로 나섰다. 그의 손에 들린 반검이 유난히 빛을 뿌렸다. 그에 사도광이 웃음을 띠며 말했다.
"누군지 모르지만 대단한 기도군. 하지만......"
그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도광의 등 뒤로 그와 비슷한 기도를 흘리는 인물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그들은 모두 전대의 인물들로 이제까지 세상에서 죽었다고 알려진 인물들이었다.
서종도가 그 모습을 보며 눈을 빛냈다. 그러나 겁 따위를 집어먹지는 않았다. 그의 등 뒤에도 강렬한 기도를 풍기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저놈들은 우리의 몫이군."
"진짜 전쟁인가?"
한마디씩 하는 사람들. 그들은 마교의 십대장로 중 남은 여섯이었다. 그들은 관외신마 사도광의 등 뒤에 있는 노 마물들을 보며 눈빛을 빛냈다.
번쩍!
순간 사도광의 등 뒤에서 눈부신 섬광이 터져 나왔다. 무림맹측의 인물들이 선제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감히!"
순간 십대장로들이 노성을 터트리며 마주 출수했다.
콰ㅡ아ㅡ앙!
그들의 중간에서 일어난 엄청난 폭발, 그것을 신호로 마교의 인물들과 무림맹의 인물들이 격돌했다. 그리고 서종도 역시 이제까지 모습을 보여주지 않던 반검을 뽑았다.
츠츠츠!
순간 서종도의 검신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며 반 토막에 불과하던 그의 검이 쭈욱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검강이었다.
그에 사도광이 웃음을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자네가 마교의 우사라는 서종도였군. 후후!"
순간 서종도의 가슴속에 찬바람이 불었다. 자신이 마교의 우사라는 사실은 외부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마교 내에서도 십대장로밖에 모르는 사실을 사도광은 너무나 쉽게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무림맹 측에서 마교 내의 사정을 자세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것이 서종도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내부의 기밀이 새어나간 것인가?'
저들이 자신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다면 그들 내부에, 그것도 고위층에서 이야기가 새어나갔다는 말이 된다.
그때 서종도의 복잡한 마음을 눈치 챘는지 사도광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후후, 그 사실은 잠시 후에 알려주지. 그런데 언제까지 나를 이렇게 세워 놓을 참인가?"
두 손을 으쓱해 보이는 사도광, 순간 서종도의 차가운 얼굴에 다시 냉기가 떠올랐다.
"그래! 당신을 쓰러트리고 물어도 늦지 않겠군. 그래야겠어."
"능력이 된다면... 마교의 우사라고 하니, 기대해보겠네."
쉬익!
순간 서종도의 반검에서 눈부신 빛 무리가 터져 나왔다.
일 척 반에 불과하던 그의 반검에서는 짧은 길이를 보완하고도 남을 검강이 길게 뻗쳐 나왔다. 그리고 검강은 사도광의 전신을 위협했다.
"훌륭하군! 마교의 우사를 맡을 만해. 하지만......"
번쩍!
순간 사도광의 손에서 눈부신 섬광이 터져 나왔다.
마치 부처님의 손바닥처럼 거대한 손의 모습, 사도광의 절기인 만상지존수(萬上至尊手)가 발동한 것이다.
콰ㅡ아ㅡ앙!
우르릉!
검강과 만상지존수가 격돌하며 대연회장이 금세라도 무너질 듯 흔들렸다.
격돌의 여파로 천지를 뒤흔들 정도로 거센 후폭풍이 사방으로 몰아쳤다.
그리고 이 순간을 기점으로 이제까지 싸움에 참여하지 않던 군웅들에게까지 공격이 시작됐다.
"이야아!"
"우와아아아!"
적아(敵我)를 구별할 수 없고, 덤벼드는 사람들은 모두 적인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주위로 다가오는 낯선 사람들을 향해 검을 들고 경계를 해야 했다.
한 폭의 지옥도가 펼쳐졌다.
대연회장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처참한 살육전, 그 모습에 적엽진인은 자신도 모르게 도호를 외었다.
"무량수불! 이일을 어찌할꼬."
생각 같아서는 자신이 무림맹주와 백용후를 제압하고 싶었지만 상황은 그를 그렇게 편하게 하지 않았다.
방진을 펼쳤음에도 무당과 소림의 제자가 속속 죽어나갔다. 은밀히 움직이는 백무와 흑우 때문이었다.
산공독에 당한 제자가 태반이라, 스스로의 힘으로는 방어를 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적엽진인은 자신의 제자들을 지키기 위해 다른 곳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눈 앞에 펼쳐진 지옥도를 보며 화천은 히죽 웃음을 지었다. 그에 백용후의 살기가 더욱 고양됐다.
"이제...부터 심판하겠다. 너를......"
쿠ㅡ웅!
백용후가 지독한 살기를 뿜으며 화천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호~오! 얼마든지. 대천마성의 소유자여!"
화천이 마주 걸어 나갔다.
피비린내가, 처절한 살육의 모습이 대천마성의 살심을 깨우고 있었다. 또한 혈영신도를 울게 하고 있었다.
[62 회]
콰르릉!
우뢰가 대지에 작렬하듯 그렇게 대지가 터져나갔다. 패천권의 이초식인 지중뢰(地中雷)가 펼쳐질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지중뢰의 엄청난 경력이 밀려옴에도 화천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자살을 하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의 모습과도 같았다.
그러나 그는 자살을 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몸이 지중뢰가 적중하려는 찰나, 마치 그림자처럼 그의 모습이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콰ㅡ앙!
그가 사라진 자리의 바닥이 터져 나갔다. 그러나 그 어디서도 화천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백용후는 급히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나 그 어디서도 화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 믿을 수 없다는 빛이 떠올랐다.
비록 대연회장이 아무리 혼란스럽다 할지라도 인간의 한계를 오래전에 넘어선 그의 감각이라면
화천의 기척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마치 백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처럼 어떤 느낌도 전해져 오지 않는 것이다.
스르륵!
그때 백용후의 등 뒤로 화천이 나타났다.
그는 백용후를 보며 말했다.
"내 땅, 조선에는 축지술(縮地術)이란 게 있다네."
쉬익!
등 뒤에서 갑자기 느껴지는 기척에 백용후가 뒤도 안돌아보고 권강을 날렸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권강이 채 닿기도 전에 다시 화천의 모습이 사라졌다.
전혀 엉뚱한 공간에서 나타난 화천이 웃음을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쉽게 말을 하면 신법 중의 하나인데, 중원의 그것과는 완전히 궤가 틀리다네."
화언의 말을 끊고 다시 이어지는 백용후의 공격.
콰ㅡ앙!
그러나 이미 그 자리에 화천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백용후의 등 뒤에서 나타나며 말을 이었다.
"후후, 공간과 공간을 이으면서 달리기에 아무리 먼 길을 이동해도 힘이 들지 않고, 특히 이런 좁은 공간에서의 싸움에 무척 유리하지......"
화천이 지금 펼치는 수법은 축지술을 응용한 것이었다.
무척 편안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하지만 실은 이 축지술은 엄청난 공력의 소모를 요구했다.
더구나 이렇게 짧은 순간에 여러 번 펼치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때문에 몇 번 이상 연속으로 펼치는 것은 무리였다.
만약 백용후가 냉철한 이성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 허점을 금방 찾을 수 있었겠지만 불행히도 지금 그는 그렇게 냉정하지 못했다.
생전 처음 보는 수법에다, 자신의 감각으로도 기척을 찾지 못한다는 조바심과,
가슴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지독한 살기가 그의 두뇌가 냉철한 분석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했다.
"이놈! 피하지 마라."
백용후의 대갈이 터지며 다시 패천권의 강렬한 초식이 펼쳐졌다.
콰ㅡ아ㅡ앙!
"으아악!"
"켁!"
화천이 있던 곳 근처에 있던 무인 서넛이 패천권의 초식에 어육이 되다시피 짓이겨져 날아갔다. 또다시 화천이 무사히 빠져나가자 백용후의 살심이 극에 달했다.
"이...놈!"
백용후의 손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몰렸다. 그것은 이제까지 그가 펼쳐냈던 초식들하고는 차원이 다른 초식이었다.
백용후의 입이 거칠게 열렸다.
"혈ㅡ뢰우(血雷雨)."
콰아아!
순간 백용후를 중심으로 엄청난 강기의 폭풍이 몰아쳤다. 그것들은 마치 대지에 작렬하는 벼락처럼 그렇게 사방으로 떨어져 내렸다.
혈뢰우는 패천권의 절초 중 하나로 매우 광범위하게 퍼진 적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초식이었다.
콰콰콰콰쾅!
"으아악!"
"크악!"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강기의 폭풍, 그에 휩쓸린 애꿎은 무인들이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백용후의 방원 오 장 안은 마치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초토화 되어 있었고, 수많은 시신들이 나뒹굴었다.
"......."
잠시 지독한 침묵이 장내를 지배했다. 너무나 엄청난 혈뢰우의 위력 때문이었다.
"허억, 허억!"
백용후가 거친 숨을 토해냈다. 과도한 공력의 소모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숨을 가다듬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털썩!
그때 한쪽 공간이 열리며 화천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옷은 여기저기가 찢겨져 있고 어깨부위에도 결코 얕지 않은 상처가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다.
바로 조금 전의 공격을 완벽하게 피하지 못해 당한 상처였다.
제 아무리 화천의 축지술이 대단하다 할지라도, 광범위한 공간에 무작위로 퍼부어지는 백용후의 공격을 완벽하게 피해낸다는 것은 무리였던 것이다.
"대단하구나."
화천은 자신을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는 백용후를 보며 말했다.
그러자 백용후가 마치 야수처럼 으르렁거렸다.
"감히 내 아버지를 죽게 하고, 나를 상대로 음모를 꾸민 죄로 네놈의 시체를 아예 이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버리겠다."
"크흐흐! 멋있는 말이야. 남자라면 그런 기백을 가져야지. 정말 넌 자격이 충분해."
백용후의 거친 살기에도 화천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기꺼워했다.
"크하하핫!"
그의 광소가 대연회장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백용후가 다시 그에게 쇄도하며 외쳤다.
"시끄럿! 그 입, 아예 뭉개버리마."
콰아아ㅡ!
그의 주먹에서 아홉 갈래의 강기가 줄기줄기 뻗쳐 나왔다. 구중사(九重死)라는 초식이었다.
화천이 피할 방위를 본능적으로 계산하고 펼친 수법이었다. 이미 축지술이 깨진 이상 다시 펼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콰콰콰콰!
거친 강기의 폭풍 가운데 화천이 눈을 빛냈다.
"뭐, 별로 부딪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 번쯤이라면....."
그가 묘한 자세를 취했다. 이어 마치 넘실거리듯, 춤을 추듯 그렇게 움직였다.
쉬리릭!
그는 구중사의 강기 사이를 넘나들며 백용후를 향해 접근했다.
구중사의 엄청난 위력을 타고 날아오는 그의 모습은 마치 나비와도 같았다.
퍼버버벅!
순식간에 백용후의 지근거리까지 다가와 손바닥을 펼치는 화천. 가볍게 펼친 것 같앗지만 그의 주먹에는 육중한 힘이 담겨 있었다.
때문에 순식간에 대여섯 대를 강타당한 백용후는 이삼 장을 뒤로 나뒹굴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벌떡 일어났다.
그를 보며 화천이 말했다.
"수박이라는 것이네. 자네들이 보기엔 그저 혼자 손짓하며 춤사위나 추는 것으로 보여도, 이렇게 잘만 수련하면 엄청난 위력을 낼 수 있지."
"감히 잔재주를......"
"잔재주라고 치부해도 좋아. 그래도 이렇게 자네에게 타격을 줄 수 있지 않나! 그 정도면 충분하지."
백용후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이상 말을 하게 되면 화천의 수에 휘말리게 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순간 지독한 두통이 그의 머리를 습격했다.
화천은 그런 백용후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니 정확이 그의 눈은 백용후의 얼굴에 있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백용후의 허리에 메인 혈영신도에 머물러 있었다.
백용후는 미처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아까부터 그의 살심이 고조될 때마다 그의 허리에 있는 혈영신도에서 은은한 붉은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붉은빛은 백용후의 모공을 통해 조금씩 흡수되고 있었다. 그에 따라 백용후의 눈에 떠오른 혈광도 조금씩 진해졌다.
"크으으~!"
백용후가 고통스러운지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붙잡았다. 그의 팔에, 그의 목에 굵은 힘줄이 툭툭 튀어나왔다.
백용후의 얼굴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귀처럼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화천이 노리는 바였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이쪽에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살인병기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너다.
백용후, 그래서 네가 선택된 것이다. 대천마성의 정기를 이어받은 네가."
귀원사가 대업을 바로 눈앞에 두고 명왕권의 권사인 신권영에게 몰살당한 후,
홀로 살아남은 화천은 귀원사의 숨겨진 비기(秘技)를 가지고 중원으로 들어왔다. 그는 미친 듯이 비기를 익혔다.
신 씨 가문에게 철저한 복수를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귀원사의 무공을 익혀도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한 가닥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목에 걸린 가래처럼 그의 가슴속에 자리 잡은 두려움.
그것은 귀원사가 멸문 당하던 날 밤에 보았던 신권영의 그림자가 너무나 깊숙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저주받은 낙인처럼 그의 가슴속에 자리 잡은 두려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져만 갔다.
차라리 그가 그날 밤의 신권영을 보지 않았다면 갈등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무공의 고하 때문이 아니었다.
사슴의 날카로운 뿔이 날카롭고 강하더라도 호랑이 앞에만 서면 꼼짝을 못한다. 그것은 먹이 사슬의 최고봉에 존재하는 자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화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강대한 힘을 얻더라도,
설령 그것이 신권영보다 강한 힘일지라도 본능적인 두려움 때문에 십 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때문에 화천은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자신의 백분의 힘을 발휘할 수 없다면 다른 존재를 전면에 내세워야 했다. 그렇게 선택된 것이 바로 백용후였다.
당시 대륙을 떠돌며 엄청난 신위를 떨치던 백무광을 우연히 본 후 흥미가 동한 화천은 자신이 익힌 무공을 시험하기 위해 그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백용후를 알아봤다. 그의 자질과 그의 운명을 말이다.
그때부터 그의 심모원려(深謨遠慮)한 계획은 시작되었다.
백무광을 처참하게 죽여 백용후의 가슴속에 자리한 악마적인 부분을 끌어내고, 마교로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 있게 안배를 했다.
그 과정에서 백용후가 마교의 대권을 자연스럽게 장악할 수 있도록 백무귀의 제련방법을 흘려보냈다. 그것도 모른 채 서종도는 백무귀의 제련방법으로 흑우를 키웠다.
때문에 백무귀와 흑우들이 그토록 닮은꼴의 모습을 보인 것이다.
백용후는 호랑이였다. 신권영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야성이 죽지 않은 호랑이가 필요했다. 호랑이를 우리에 잡아넣고 키워서는 절대 야성을 유지할 수 없다.
때문에 스스로 커나갈 수 있게 안배를 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불안했다. 마교의절기라면 백중지세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명왕권을 능가하기는 힘이 들었다. 때문에 그는 중원에서 전설로 남아있는 천마의 행적을 쫓았다.
그리고 이십 년의 시간을 투자한 끝에 천마가 잠든 곳을 찾아냈고, 몇 개의 유품과 그의 책자를 찾아냈다.
'천마는 세상에 미련을 못 버렸지. 사람이란 것이 언젠가는 죽기 마련인데, 그는 언젠가 다시 살아나길 원했어. 후후... 덕분에 내 일만 편해졌지.'
그렇게 천마가 남긴 것이 바로 혈영신도이다. 혈영신도에는 천마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었다.
그의 절학, 그리고 그의 원영(原靈)까지도. 자신의 영혼에 맞는 그릇을 기대하며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혈영신도에 남겨둔 것이다.
짙어져만 가는 살기, 점차 드러나는 공포한 기운, 자신도 모르고 있었지만 지금 백용후의 얼굴에는 생전의 천마의 얼굴이 겹쳐 떠오르고 있었다.
'천마가 환생하지 않아도 된다. 그의 강력한 힘만 있으면 된다. 내가 할 일은......'
화천은 자신에게 무작정 달려드는 백용후의 모습에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대연회장에 넘치는 피의 강, 수많은 시신들, 그것은 천마의 부활을 위해 바치는 제물이었다.
어차피 중원이란 땅에 욕심이나 미련은 없었다. 이따위 땅의 인물들이야 얼마든지 죽어도 상관없었다. 그의 고향은 오직 한곳.
그곳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면 이 땅의 모든 생명체를 죽여도 상관없었다.
화천의 얼굴에 섬뜩한 광기가 떠올랐다. 지금 이 순간 그의 얼굴은 백용후와 무척 닮아 있었다.
그가 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핫! 그자의 아들들도 이곳에서 삶을 마감한다. 비록 그들이 강하다 하나 결코 혈뢰옥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지긋지긋한 악연도 이제 끝이다. 크하하핫!"
그는 양손을 활짝 펼치며 그야말로 미친 듯이 웃었다. 누가 보면 실성했다고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화천은 남의 시선따위는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그때 제갈문이 그에게 다가왔다.
"맹주님, 감축 드리옵니다. 모든 일이 뜻대로 되었습니다."
"그래, 자네의 공로가 무척 컸네. 이젠 자네의 세상이야."
"감사합니다."
흡족한 화천의 말에 제갈문이 더욱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인 제갈문의 등 뒤로 한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의 주군인 화천은 감히 범접치 못할 위험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남자였다. 이미 수십 년을 같이 했지만 아직도 그의 앞에서는 심한 위축감을 느꼈다.
"크으으!"
그때였다. 이제껏 무릎을 꿇고 있던 백용후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는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쿠ㅡ웅!
그가 혈영신도를 뽑아 바닥에 꽂았다. 그러자 혈영신도가 꽂힌 곳을 중심으로 바닥이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쩍쩍 갈라져갔다.
"후우, 후우!"
그가 거친 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검은 기운이 마치 그림자처럼 따라 일어났다.
화하학!
거칠게 퍼져 나가는 광포한 기운, 마침내 백용후의 숨겨진 또 다른 부분이 눈을 뜬 것이다.
스륵!
소리도 없이 신황의 등 뒤에 위치한 벽이 열렸다. 그리고 하얀 복장에 귀면탈을 걸친 남자들이 튀어 나왔다.
쉬쉭!
그들은 예고도 없이 신황의 등을 공격했다.
휘릭!
순간 신황의 신형이 맹렬하게 회전을 하며 팔꿈치가 톱날처럼 튀어나왔다. 이어 월영인이 소리도 없이 발출됐다.
스거억!
투투툭!
귓가에 들리는 섬뜩한 파열음과 혈구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그러나 신황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전혀 표정의 변화가 없이 묵묵히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크르릉!
설아가 홀로 저만치 앞서 걸어가다 신황을 뒤돌아봤다. 그리고 신황이 가까워지자 다시 앞서 나갔다.
미로처럼 벽이 중첩 돼 있어 방향감각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구조이다. 그러나 신황의 발걸음엔 거침이 없었다. 앞에서 설아가 방향을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이제 미로의 초입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적들의 습격은 벌써부터 치밀해지고 집요해지고 있었다.
백무귀들은 미로의 곳곳에 흔도 없이 은신해 있다가 신황이 지나가는 틈을 노려 습격을 했다.
쉬이익!
갑자기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는 백무귀들, 네 명이 한 조로 이루어 신황이 피할 방위까지 완벽하게 계산한 채 이루어진 공격이었다.
신황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광경은 푸름 검기와 채찍처럼 길게 늘어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푸른 검기는 자신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어떻게 되살아났는지 모르지만......"
꾸욱!
그의 주먹에 힘줄이 돋아나왔다. 그의 눈에 광포한 살기가 떠올랐다.
"다시 지옥으로 보내주마. 두 번 다시 살아나지 못하게......"
휘릭!
그가 월영인을 날리며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카카카캉ㅡ!
검기와 월영인이 부딪치며 쇳소리가 요란하게 터져 나왔다.
눈부시게 비산하는 빛 무리, 신황과 백무귀는 그 속에서 격돌했다.
까가강!
신황의 장포위로 백무귀들의 검이 작렬했다. 그러나 이미 월영갑이 펼쳐졌기에 그들의 검은 불꽃만 남긴 채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쉬익!
신황의 주먹이 곧데 앞으로 뻗었다. 목표가 된 백무귀가 검을 들어 신황의 주먹을 막으려했다.
그러나 그 순간 신황의 주먹이 맹렬히 회전을 하면서 백무귀의 검을 튕겨냈다. 그러자 활짝 열리는 가슴.
푸욱!
신황의 주먹은 가차 없이 백무귀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 순간 가슴에 구멍이 난 백무귀가 검을 버리고 신황을 꽉 껴안았다.
이미 백무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숨이 끊어지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신황을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같이 가는... 거다. 지...옥으로......"
백무귀가 깍지를 끼며 신황의 귀에 속삭였다.
이미 사방에서 다른 백무귀의 검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그들의 검은 신황과 함께 엉킨 백무귀까지 같이 노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목숨을 도외시한 공격인 것이다.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매인 데다 날카로운 검기까지 날아오고 있었다.
그러나 신황의 눈은 너무나 냉정했다. 감정이라고 하나도 섞여 있지 않은 것 같은 그의 유리알 같은 눈동자가 스륵 움직였다.
"지옥에 가는 것은 너 혼자다."
쉬익!
푸화학!
갑자기 신황을 껴안은 백무귀의 양팔에 피분수가 치솟아 올랐다. 신황의 월영인이 지나간 것이다.
신황은 백무귀의 양팔을 자른 후 오른쪽 발로 백무귀를 차고, 자신은 그 반동으로 뒤로 날아갔다.
퍼버벅!
자신의 동료에게 날아간 백무귀의 몸 위로 미처 동료들이 회수하지 못한 검기가 쏟아지며 그의 몸이 걸레쪽처럼 변하고 말았다.
쉬쉬쉭!
순간 신황의 몸에서 반월형의 검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의 몸에서 발출된 월영인은 소리도 없이 백무귀들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신황이 바닥으로 사뿐이 내려앉았다. 그는 바닥에 내려서자마자 튕겨나가듯 걸음을 옮겼다.
투투툭!
그의 등 뒤로 피비와 함게 혈구가 떨어져 내렸다.
신황은 걸음을 옮기며 스산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혈뢰옥... 세상에서 제일 큰 무덤이 되겠군. 그것이 내 것이던, 아니면 너희들의 것이 되던......"
자신이 있으니까 이곳으로 유인한 것일 데다. 그러나 겁이 나지는 않았다.
어차피 강호행을 시작하면서 죽음은 늘 염두에 두고 살았다. 자신이 상대보다 강하면 살 것이요, 약하면 죽을 것이다.
죽음은 늘 그의 곁에 있었다.
죽는 것은 겁나지 않는다. 그러나 무이와 홍염화를 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후회로 남을 것이다.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두 사람 만큼은 구해야 했다.
"백무광, 내가 이곳을 나가게 된다면 네가 그날 죽지 못한 것을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그것은 자신에게 하는 맹세였다.
신황의 눈에 섬뜩한 귀화가 타올랐다. 그의 눈에 떠오른 귀화는 은은한 어둠 속에서도 마치 횃불처럼 빛을 발했다.
콰직!
신황의 주먹이 은밀히 습격을 하려던 백무귀의 턱에 박혀 있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백무귀들은 은밀했고, 또한 집요했다.
그들은 도저히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할 장소에 은신해있다 기습을 가했다.
만약 신황이 어둠 속의 싸움에 익숙하지 않았다면, 또한 명왕망(冥王網)이란 기법을 알고 있지 못했다면 이곳까지 오는 것만으로도 벌써 치명상을 입었을지 모른다.
신황이 손을 거두자 백무귀가 무너져 내렸다.
적들의 의도는 분명했다. 본격적인 싸움이전에 신황의 체력과 공력을 소진시키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의도는 아주 훌륭히 성공했다.
비록 공력의 소모는 크지 않았지만, 이미 연이은 격전으로 온몸에 부상을 입은 신황의 상처가 다시 입을 벌리기 시작한 것이다.
채 아물기도 전에 다시 이어지는 격렬한 전투에 전에 입었던 상처가 다시 뜯어졌다. 덕분에 신황의 전신은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제 곧 본격적인 대접이 시작되겠군.'
신황은 걸음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자신이 적이라면 더 이상 백무귀들을 낭비하는 것보다 본격적으로 고수들을 내보낼 것이다.
자신은 지쳐있고, 또한 연이은 격전으로 부상이 심한 상태였다. 지금이 자신을 처리하기 위한 최적의 상황이었다.
캬웅ㅡ!
그때 설아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신황이 고개를 들자 곳곳에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설아는 그들을 보며 나직이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중원의 복장과는 확연히 다른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신황은 그들의 복장이 낯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자신 역시 어렸을 때는 무척이나 많이 보았던 옷들이기 때문이다.
검은 갓에 도포를 걸친 인물들, 조선 땅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농사꾼의 복장을 한 인물, 그리고 삿갓을 쓴 인물들까지.
그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었다. 그런 인물이 열다섯이나 있었다.
캬우웅!
설아가 신황의 어깨에 올라탔다. 그리고 온몸의 털을 바짝 일으켜 세우며 으르렁거렸다. 평소의 설아 모습이 아니었다.
설아는 아무리 강한 적을 만나더라도 결코 위축되는 법이 없었는데, 지금 설아의 모습은 분명 겁을 집어먹은 모습이었다.
그만큼 조용한 가운데서도 그들이 풍기는 기운은 심상치 않았다.
신황이 자신의 어깨에 앉은 설아의 목을 쓰다듬어 진정시킨 후 입을 열었다.
"금강산, 계룡산, 어디지? 아니면 둘 다인가?"
그의 나직한 목소리에 나타난 이들이 잠시 움찔거렸다. 아마 정곡을 찔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왜소한 체구의 노인이 앞으로 나섰다. 파산인이었다.
그가 신황을 보며 입을 열었다.
"거기까지 알고 있나? 그렇다면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군."
"당신은?"
"파산인이라고 한다네. 자네는 내 이름을 알고 있는가?"
"아니! 전혀 들은 적 없어."
신황의 단호한 말에 순간 파산인의 얼굴에 머쓱한 빛이 떠올랐다.
그래도 조선의 은자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이름이었는데도 신황이 모른다고 하니 순간 할 말을 잃은 것이다.
신황이 파산인을 보며 나직이 으르렁거렸다.
"당신들 모두 은자지법(隱者之法)을 어긴 것인가?"
그의 말에 이곳에 있는 은자들의 얼굴이 모두 싹 변했다.
은자지법(隱者之法). 암묵 중에 형성된 은자들의 불문율이었다.
세상에 영향을 끼칠 만한 행동을 하지 않고, 세상에 그 존재를 모르게 한다.
그리고 외세와 손을 잡지 않는다. 국난이 있을 경우에만 제자를 세상에 내보낸다.
그것이 바로 은자지법이었다. 만약 이 법을 어기게 되면 다른 은자들의 공격을 받아 죽더라도 반항을 할 수 없었다.
그것이 지난 수백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은자들의 불문율이었다.
잠시간의 정적이 흐른 후 파산인이 입을 열었다.
"그래. 은자지법... 분명히 우리가 어겼네. 바로 자네들 때문에."
"우리 때문이라......"
"조금 더 정확히 말을 하자면 자네 집안 때문이지. 후후...이제까지 수백 년 동안 나름대로의 질서를 가지고 조용히 지내온 것이 바로 은자들이라네.
그런데 천방지축 망아지 같은 자네 집안의 등장으로 은자들의 규율이 모두 엉망이 되었어. 어디서 족보도 없는 집안이 나타나 우리들의 세계를 엉망으로 만든 거야."
"그게 아니겠지."
"뭐?"
신황의 입가에 차가운 비웃음이 걸렸다.
"당신들은 당신들보다 강한 자를 그냥 보지 못하는 것뿐이야. 단순한 질시일 뿐이지.
나이든 늙은이들이 변화를 싫어하는 것처럼, 그렇게 자신들만의 세계를 고집했는데 너무나 강하고 파격적인 자가 나타나자 질시를 하는 것뿐이야.
그렇다고 혼자 뭐라고 하기에는 두려우니 이렇게 단체행동에 나선 것이고. 안 그런가?"
신랄한 조소였다. 지금 신황은 그들을 싸잡아 겁쟁이에 변화를 싫어하는 늙은이라고 매도하는 것이었다.
아직 신황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 가문에서 당신들에게 도움을 청할 때 뭐라고 했지? 은자들은 서로에게 간섭을 할 수 없다고 했잖아.
그래서 귀원사가 세상에 해를 끼치는 곳이지만 제재를 할 수 없다고 했지.
그곳이 세상에 해악이 되는 곳인 줄 알면서도, 충분히 응징할 힘이 있으면서도 그렇게 방관한 자신들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더구나 이제 그들과 다시 손을 잡아? 정말 우습지도 않군."
"너희 때문이다. 너희만 없애면 모든 게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다시 조선은 평화를 되찾을 것이고, 그렇게 오랜 세월을 보낼 것이다.
너희같이 단기간 내에 강한 힘을 얻은 자들은 세상을 관조할 줄을 모른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관조이지 세상에 대한 참견이 아니다.
은자지법을 어긴 것은 너희들이다. 때문에 우리가 응징하려는 것이다."
파산인의 말에 신황이 서늘하게 눈을 빛냈다.
"난 당신들과 같은 은자가 아니야."
"은자이기를 거부한단 말이냐?"
"나도, 내 동생도, 그리고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우리 가문에서 자신을 은자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니 은자란 허울 좋은 말로 나를 속박하려 하지 마라."
"이...놈!"
"은자지법은 당신들이 만들고 당신들이 지켜온 법이지, 나의 법이 아니다. 나의 법은 오직 이것뿐이다."
신황이 자신의 주먹을 들어보였다.
수많은 격전을 겪으면서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주먹이다. 온통 거친 흉터로 뒤덮여 있는 그의 주먹, 그것이 그의 의지였다.
신황의 단호한 말에 파산인이 노기를 피워 올렸다.
"결국 네놈은 우리와 적이 되겠다는 말이구나. 전혀 재고할 여지도 없이......"
"우리는 처음부터 적이었어. 그것은 세대가 지나더라도 결코 변할 수 없는 사실이지.
그리고 한 가지 약속하지. 내가 오늘 살아나간다면 조선에 있는 은자들에게 분명 그 책임을 묻겠다.
아버지는 귀원사 하나로 모든 은원을 정리했지만, 난 그 정도로 끝내지 않을 거야.........
오늘의 일을 방관한, 조선에 있는 모든 은자들과 선인들이 오늘의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지옥에서..."
신황의 눈에 귀화가 타올랏다. 피투성이가 되었어도, 수많은 격전으로 지쳐있었어도 그의 투지는 전혀 사그라질 줄 몰랐다.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싸우는 남자, 그가 바로 신황이었다.
협상결렬이었다. 아니 애당초 협상이란 있을 수도 없었다.
명왕의 역사에 협상이란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적과 친구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들은 적이었다.
신황의 단호한 태도에 은자들이 서서히 다가왔다. 어차피 그들 역시 협상에 대한 기대는 애당초 없었기 때문이다.
협상이 통했을 상대였으면 그들이 이곳 중원 땅에까지 올 이유가 없었다.
그들이 중원에 온 이유는 오직 명왕 가의 완벽한 말살을 위해 화천을 도와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늘 이곳에서 신황을 만났다. 애초부터 협상의 여지는 남아있지도 않았다.
신황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많이도 모였군. 이들 모두가 날 상대하기 위해서 모인 거란 말이지?"
"왜, 겁이 나느냐? 하지만 용서를 빈다 해도 이미 늦었다.
우린 네 녀석을 결코 살려두지 않을 테니까. 이제와 아무리 눈물로 용서를 빈다 해도 네 녀석이 죽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훗ㅡ!"
파산인의 말에 신황의 입가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떠올랐다.
"용서를 빈다고... 내가?"
순간 신황의 몸에서 지독한 살기가 폭발적으로 풍겨 나왔다.
"열 명이 몰려와도 좋고, 백 명이 몰려와도 좋아. 열 명이 오면 열 명을 죽이고, 백 명이 오면 백 명을 죽여줄 테니까.
그리고 이곳에 참석한 인원들, 그곳에 소속된 은자들까지 모조리 죽여주지......"
"건방진 놈, 제 아비처럼 어디 헛소리를......"
그때 신황의 등 뒤에 있던 농부의 모습을 한 오십대 초반의 은자 한 명이 분통을 터트렸다. 그의 아버지인 신권영 못지않게 광오한 모습에 화가 치밀어 오른 것이다.
쉬익ㅡ!
순간 신황의 손에서 소리도 없이 월영인이 발출되었다.
갑작스럽게 몰려오는 반월형의 검기, 급작스런 공격에 농부가 급히 몸을 피해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그가 허공에서 본 광경은 그를 향해 거꾸로 내리꽂히는 신황의 발그림자였다.
스거억!
"크악!"
신황의 발에 맺힌 월영인이 그대로 농부의 몸을 수직으로 가르고 지나갔다.
철푸덕!
농부는 채 허공에 몸을 띄우기도 전에 머리와 가슴이 벌어진 채 생을 마감했다.
신황은 자신의 발에 묻은 농부의 피를 잠시 훑어보다 농부의 부릅떠진 눈을 보며 말했다.
"이래도 헛소리 같나? 난 이제까지 헛소리 따위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어."
"이놈이!"
"쳐랏!"
그 순간 어이없이 순식간에 은자 한 명을 잃은 나머지 은자들이 신황을 향해 몸을 날렸다.
신황은 자신에게 쇄도해오는 은자들을 보며 폭발적인 살기를 뿜어냈다.
"아주 화끈하게 불살라 보자구. 하얀 재만 남을 때까지."
콰콰콰!
신황을 중심으로 강기의 폭풍이 몰아쳤다. 이어 칼바람이 다시 덮쳤다. 신황을 노린 공격이 연이은 결과였다.
거대한 강기의 폭풍 앞에 신황의 모습은 마치 망망대해에 흔들리는 낙엽처럼 위태해 보였다.
열네 명의 은자, 개개인으로 봐도 신황에 그리 뒤떨어지지 않는 실력의 소유자들이 합공하는 광경은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은자들은 두 조로 나누어 신황을 공격했다.
우선 앞의 다섯 명은 신황이 피할 방위를 철저히 차단한 채 압박을 하고, 나머지 아홉 명은 그들의 뒤에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신황은 냉정한 눈으로 자신을 압박하는 은자들을 바라봤다.
그들의 움직임은 그야말고 가지각색이었다. 어떤 이는 마치 버들가지처럼 그렇게 흐드러진 보법으로 움직였고,
어떤 이는 일정한 법칙에 의해 걸음을 옮겼는데, 그의 걸음걸이마다 현묘한 기운이 서려 신황의 눈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들이 펼치는 보법들은 중원의 것과는 다른 형태로 발전한 조선의 보법이었다. 마치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하고, 덩실거리는 것 같기도 한.
그 순간 신황의 만월보가 펼쳐졌다.
은자들의 보법이 곡선의 어우러짐이 극에 달한 절학이라면 신황의 만월보는 직선의 보법이었다.
군더더기라고는 하나도 없어 오직 적을 향해 최단거리로 치닫는 보법. 그 속도가 너무나 빠르기에 다섯 명의 은자 앞에 그의 환영이 동시에 나타났다.
순간 은자들이 흠칫했다. 갑자기 그들의 앞에 나타난 신황의 허상 때문이었다.
쉬익!
무의식중에 그들이 자신들의 앞에 나타난 신황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신황의 환영이 바람에 흩날리며 사라졌다.
그러나 맨 마지막에 있는 은자의 앞에 있던 신황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환영이 아닌 진짜인 것이다.
푸ㅡ욱!
신황의 월영갑이 앞에 있던 은자의 목을 찔렀다.
"크아악!"
은자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오래도록 수행을 해 이미 자신의 감정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었지만,
불시에 들이닥친 고통은 그의 수십 년 수행적공을 모두 허공으로 날려버린 것이다.
그러나 신황의 눈은 냉정했다. 그는 자신의 손목을 잡은 채 컥컥거리는 은자의 눈을 무시하고 월영인을 발출했다.
쉬쉬쉭!
은자의 몸을 뚫고 사방으로 날아가는 월영인. 이미 목을 꿰뚫린 은자는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슈우우우!
"이런!"
너무나 날카로운 월영인의 기세에 은자들이 급히 피하거나, 아니면 자신들의 절기를 펼쳐 월영인을 해소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신황이 눈을 빛냈다.
'........역시!'
꾸욱!
그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방금 전 한 가지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순간 신황의 몸이 쏘아진 화살처럼 튕겨져 나갔다. 극성에 이른 현월보였다.
그러나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마치 신황의 몸이 순식간에 확대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만큼 신황의 모습은 쾌속하기 이를 데 없었다.
스르륵!
그 순간 은자의 모습이 신황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축지술(縮地術)이었다.
마교의 교주인 백용후조차 화천의 축지술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만큼 축지술은 대단한 술법이었다.
만약 신황이 조선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 역시 이 술법에 고전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신황은 조선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은자들을 접한 남자였다.
신황은 눈앞에서 목표로 한 남자가 사라지는 순간 멈춰 서서 대지의 진동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이어 망설임 없이 그의 오른쪽 방향을 향해 월영인을 날렸다.
푸ㅡ화ㅡ학!
갑자기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엄청난 양의 피 보라가 뿜어져 나왔다. 이어 마치 먹물이 화선지에 번져가듯 조금 전에 사라졌던 은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말을 했다.
"어...떻게 알았느냐? 축지술은 공간을 이동하는 것인데."
"제아무리 축지술이라고 하더라도 몸이 허공을 날아다니는 것은 아니지.
어디까지나 바닥을 매개체로 움직이는 것이니만큼, 바닥에는 진동이 남거든... 바닥의 진동만 감지할 수 있다면 어디로 나타날 것인지 예측하는 것은 일도 아니지."
신황이 가슴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불신으로 크게 눈을 뜬 그를 보며 차갑게 말했다. 이어 다시 한 번 손을 날카롭게 휘둘렀다.
쉬익!
"커헉!"
가슴에 치명상을 입은 은자는 미처 피하지도 못하고 월영인에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를 쓰러트린 후 신황이 뒤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그거 알아? 당신들이 얼마나 우스운지......"
그의 눈앞에 당황한 모습으로 엉거주춤 서있는 은자들, 그들의 모습에 신황이 비웃음을 흘렸다.
신황은 그들을 향해 거침없이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개개인의 무력은 분명 강한데 싸움에 이토록 서투르다니....."
"시끄럽다. 살인귀 녀석, 네놈의 악마 같은 혈통이 자랑인 줄 아느냐?"
뒤에서 파산인이 신황을 향해 소리쳤다. 그에 신황이 차갑게 대꾸하며 다가갔다.
"그래! 내 무예는 오직 살인을 위한 것이지. 그러나 최소한 당신들처럼 사람을 죽이는 데 위선을 떨지는 않아."
좀 전의 격돌에서 신황은 깨달았다.
은자들 개개인의 무예가 비록 대단하나 그들이 사람을 죽여 본 경험은 거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제야 느꼈다. 그들이 은자라는 사실을.
산속에, 바다에 숨어 혼자서 고고한 척, 구름 위에 존재하는 학처럼 그렇게 독야청청(獨也靑靑)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런 이들은 결코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다. 언제까지고 자신은 깨끗한 사람으로 남기 위해서다.
그것이 저들과 자신의 차이다. 자신은 이제까지 수많은 전장을 돌아다니며 무예를 닦아왔다. 열다섯에 홀로 전장으로 나왔으니 벌써 십육 년이 넘어간다.
무려 십육 년의 세월동안, 그는 홀로 전장을 전전했다. 그동안에 그의 손에 쓰러져간 사람이 얼마인지는 그 자신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손에 묻힌 피의 무게만큼 그는 강해졌다. 자신이 죽인 사람들의 업보를 등에 짊어진 만큼 강해졌다. 그것은 전장에서 얻은 힘이었다.
그러나 은자들은 틀렸다. 그들의 힘은 산속에서 얻은 힘이다.
철저하게 수련으로 얻은 힘이다. 사람을 죽이는 방법은 알았지만 직접 죽여 본 경험은 거의 없었다. 그것이 그들과 신황의 차이였다.
만약 그들이 신황처럼 실전에 익숙했다면 저리 엉성하게 합공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황은 그 차이에서 상황을 역전시킬 틈을 봤다.
"그래서 너의 가문을 없애려는 것이다. 피에 절은 악귀의 가문, 이것이 조선에 있는 은자들의 뜻이다.
너 혼자로는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 네가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변할 수 엇는 사실이다."
신황의 오른쪽에 있는 갓을 쓴 노인이 외쳤다. 그는 은자들 사이에서 산노인이라고 불리는 자로, 호미를 귀신같이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쉬익!
"증명해 보여 봐."
순간 신황이 그를 향해 월영인을 날리며 외쳤다.
이어 장포를 고슴도치처럼 세운 채 산노인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자 다른 은자들이 화들짝 놀라며 신황을 향해 달려들었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은자들, 그러나 신황은 그런 은자들의 공격을 무시하고 산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무섭게 눈을 번뜩이며 달려드는 악귀 같은 신황의 모습에 산노인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급히 뒤로 물러났다.
이어 손에 들고 있던 호미를 휘둘렀다. 그러자 웅혼한 경기가 뭉게구름처럼 일어나며 신황을 향해 밀려갔다.
등 뒤에서는 은자들의 공격이, 앞에는 산노인의 공격이 노도처럼 밀려왔다.
콰콰쾅!
순간 신황의 월영인과 산노인의 강기가 부딪치며 폭발을 일으켰다. 뒤이어 그 자리에 다른 은자들의 공격이 작렬했다.
폭발이 일어난 자리에 자욱한 먼지가 일었다.
기이잉!
폭발 속에서 잠자리의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미처 산노인이 무언가를 감지하기도 전에 은빛이 찬연한 원반이 그의 가슴을 핥고 지나갔다.
"이게 뭐......"
그가 자신의 가슴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갖다 대는 그 순간 갑자기 세상이 기울어졌다.
투욱!
그의 상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의 눈에 아직도 굳건히 두 다리로 서있는 자신의 하체가 들어왔다.
'말...말도 안...돼.'
그것이 그가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한 생각이었다.
그 순간 먼지를 헤치고 신황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입가에는 한줄기 검붉은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신황은 자신의 입가를 닦으며 허리를 쭉 폈다. 등판이 아려왔다. 그의 등판은 이미 걸레처럼 엉망으로 헤져 있었다.
은자들의 공격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감당한 까닭이다. 그나마 월영갑이 없었더라면 이렇게라도 움직이지 못할 뻔했다.
잠시 몸을 비틀거리는 신황의 모습에 용기를 얻은 은자들이 일제히 공격을 날렸다. 그러나 그 순간 신황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몸을 움직였다.
쉬익!
순간 그의 몸이 은자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은자들은 곧장 신황의 기척을 쫓아 곧바로 몸을 날렸다.
그것은 마치 기러기 떼가 일제히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신황은 자신을 쫓아오는 은자들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쉬쉬쉭!
그가 연속적으로 월영인을 날렸다. 그러나 은자들도 이번에는 그대로 당하지 않았다.
그들은 신황의 월영이니 대단한 살상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굳이 상대하지 않고 옆으로 흘려보내며 자신들의 절기를 신황을 향해 집중했다.
콰아아아ㅡ!
그들의 절기에 대기가 일그러지며 엄청난 파동이 혈뢰옥을 뒤흔들었다.
"끝이다, 놈!"
"죽어랏!"
막다른 골목에 몰린 신황을 향해 은자들은 더욱더 있는 힘을 모두 쏟아냈다.
파산인 또한 신황과 은자들의 모습에 하얀 이를 드러냈다. 그가 보기에도 신황이 상황을 역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발밑으로 다가오는 엄청난 위력의 빛 무리에 신황은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곧 소매에 공력을 집중시켰다. 그러자 월영갑과 함께 월영인이 맺혔다. 그는 그대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경력에 주먹을 휘둘렀다.
콰ㅡ아ㅡ앙!
그의 주먹과 은자들이 날린 경력이 부딪치며 굉음이 터져 나왔다.
"크흡!"
신황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자신도 모르게 답답한 신음을 흘려 냈다.
그가 제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열 명이 넘는 은자들의 공격을 해소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투ㅡ웅!
결국 신황은 충돌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하늘 위로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최고정점에 이른 순간,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그의 눈은 힘없이 감겨져 있어 마치 정신을 잃은 듯 보였다.
그에 은자들이 먹이를 보고 달려드는 고양이처럼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들의 눈엔 탐욕스런 빛이 가득했다.
쉬이익!
신황을 향해 다시 경력의 파도가 밀려왔다. 그의 목숨은 망망대해에 던져진 일엽편주마냥 위태해 보였다.
최소한 지금의 그로서는 자신의 목숨을 보호할 만한 어떤 대책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이었다.
번쩍!
죽은 듯이 감겨져 있던 신황의 눈이 떠졌다.
이어 드러나는 그의 눈동자. 그것은 결코 상처를 입어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순간 그의 몸이 벼락처럼 뒤집어지며 출수를 했다.
기이잉!
동시에 그의 손에 월영륜이 떠올랐다.
"이야아앗!"
거친 기합과 함께 그가 월영륜을 날렸다. 그러자 거친 폭풍을 일으키며 월영륜이 은자들을 향해 덮쳐갔다.
"감히!"
"어디서 잔재주를......"
은자들이 신황의 월영륜에 코웃음을 날리며 다시 자신들의 절기를 펼쳐냈다.
혼자라면 모르지만 열 명이 넘는 자신들이라면 저 따위 잡학(雜學)을 해소시키는 것 따위는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월영륜과 은자들이 날린 강기가 부딪칠 찰나였다.
콰ㅡ아ㅡ앙!
갑자기 월영륜이 폭발을 일으켰다.
"크으!"
"...이런!"
예상보다 일직 폭발한 월영륜에 은자들이 휘말리고 말았다.
너무나 갑작스런 폭발에 그들은 그만 시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향해 신황이 먹이를 노리는 야수처럼 달려들고 있었다.
"안 돼!"
그에 이제까지 방관자의 자세를 취하던 파산인이 달려들며 소리쳤다. 그러나 그가 채 반도 달려들기 전에 신황은 은자들 사이로 난입했다. 그리고 피의 춤사위를 펼쳤다.
촤하학!
허공에 피가 튀었다. 그리고 목을 부여잡고 은자가 쓰러져갔다.
신황은 무정한 눈으로 그를 발로 차 한쪽으로 날려버린 후 옆에 있는 은자의 가슴을 난자해 놓았다.
은자들은 조금 전의 충격으로 제대로 눈조차 뜨지 못한 채 신황에게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는 한 마리의 야수처럼 미친 듯이 날뛰었다.
파산인이 달려왔을 때는 이미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였다.
바닥에 내를 이루며 흘러내리는 붉은 선혈, 처참하게 난자된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은자들, 그리고 선혈로 범벅이 된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신황.
"후욱, 후ㅡ욱!"
인간이 어덯게 이러고도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신황의 몸상태는 엉망이었다.
그의 등판은 처참하게 짓이겨져 있었고 은자들의 공격을 받아냈던 오른손은 탈골이 되고 주먹 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처참하게 패여 있었다.
거기에다 마교와의 격전에서 얻었던 상처까지. 정말 그가 살아서 움직인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방금 전의 상황은 그가 의도한 바였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단시간 안에 저들을 제압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자신의 몸을 미끼로 모험을 한 것이다.
덕분에 온몸에 지독한 상처를 입었지만 일거에 적들을 섬멸할 수 있었다. 그것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두둑한 배짱을 가지고 있어야 할 수 있는 모험이었다.
덕분에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신황의 얼굴에는 만족스런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에 안도하지 않고, 오히려 조금 전보다 더욱 거친 살기를 뿜어내었다. 그 지독한 모습에 파산인은 자신도 모르게 침음성을 내고 말았다.
"흐읍!"
이래서 명왕 가를 적으로 돌린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투지를 불사르는 지독한 모습 때문에, 너무나 위험한 분위기에 은자들이 질린 것이다.
그래서 불안의 근원을 제거하기 위해 뭉친 것이다.
"이...젠 당...신만 남았군."
신황은 파산인을 향한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이미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한계 이상으로 몸을 혹사시킨 결과였다.
그가 제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그가 밤새도록 겪은 격전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험한 것이었다. 거기에다 과도한 내공의 소모는 그나마 남아있던 체력마저 급속히 저하시켰다.
"네놈도 지쳤을 것이다. 그 몸으로 허세를 부리다니......"
파산인은 냉철한 눈으로 신황의 전신을 살폈다. 제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피와 뼈로 된 인간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저 상처에 서있는 것도 기적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지금 신황의 모습은 허장성세(虛張聲勢)가 분명했다.
화르르ㅡ!
갑자기 파산인의 양손이 불에 타듯 빛 무리에 휩싸였다. 대파산수(大破山手)라는 그의 절기였다.
파산인이라는 그의 이름도 대파산수에서 나온 것이다. 감히 무예의 이름에 산을 깨부순다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대파산수에 대한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죽어랏! 신황."
콰콰콰!
파산인이 대파산수를 펼쳤다.
자신을 향해 노도처럼 밀려오는 대파산수의 기운을 보면서도 신황은 피하지 못했다.
몸이 천근만근처럼 무거워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체절명의 순간, 그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의 월영인과 명왕권... 어쩌면 같이 펼칠 수 있을지도....'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평생을 잡아온 화두였고, 그래서 이제까지 수많은 시간을 참오에 몰두했음에도 실마리를 잡지 못했던 명제였다.
같은 뿌리에서 나왔지만 너무나 다른 형태로 발전하였기에 이제까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다니 우습게 느껴졌다.
눈앞에서 미증유의 거력이 밀려오고 있었지만 마치 꿈속에서 보이는 몽환적인 장면인 듯 무척이나 느리게만 느껴졌다.
그것은 그야말로 수유(須臾)의 시간에 얻은 깨달음이었다.
거듭된 격전으로 몸은 한계상황에 도달했지만 정신만큼은 한없이 날카롭게 곤두서있었다.
그야말로 육신의 혹사 끝에, 모든 신경이 최고조로 깨어있는 상태인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에서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위기감이 신황의 정신을 일깨운 것이다.
신황 본인은 무척이나 길게 느꼈지만 사실 그것은 극히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콰아아ㅡ!
대파산수가 몸에 적중하기 직전 신황의 눈에 본래의 검은 빛이 돌아왔다.
스윽!
신황의 팔꿈치가 허공으로 쳐들렸다.
촤ㅡ아ㅡ앙!
월영인이 그의 팔꿈치로 튀어 나왔다. 그는 그 상태, 그대로 팔꿈치를 대파산수의 기운을 향해 내리 찍었다.
콰콰콰콰ㅡ!
신황의 팔꿈치와 대파산수가 격돌하였다.
"어리석은 놈, 대파산수를 인간의 육신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다고......"
비웃음을 흘리던 파산인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의 눈에 비친 광경은 믿을 수 없게도 신황이 팔꿈치로 자신의 대파산수를 두 줄기로 헤치고 다가오는 장면이었다.
마치 연어가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듯, 그렇게 신황은 대파산수의 기운을 거슬러 올라갔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대파산수의 기운을 거슬러 올라온 신황의 몸이 폭풍처럼 회전을 했다.
콰직!
파산인의 목에 격중하는 그의 주먹, 그러나 몸이 회전하는 여세에 그의 주먹은 금세 떨어졌다.
그리고 언뜻 보이는 주먹이 작렬했던 자리, 그곳엔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한 자상이 나있었다.
파산인의 눈이 흔들렸다.
순간 이어지는 신황의 폭풍 같은 공격.
퍼버버버벅!
마치 가죽부대가 터져 나가듯 그렇게 요란하게 그의 몸에 신황의 손발이 작렬했다.
그렇게 얼마나 움직였을까? 갑자기 신황이 움직임을 뚝 멈췄다.
"크아아ㅡ!"
갑자기 파산인이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이어 그의 온몸에 있는 혈관에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지옥으로... 계룡산에서 이번 일에 참여를 한 은자들도 당신과 마찬가지 운명일 거야. 초토화시켜 주지."
"아...안 돼!"
파산인의 눈에 절망의 빛이 떠올랐다.
자신이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조선의 명산인 계룡산에서 은자의 맥이 끊긴다면 그것은 죽음보다 더한 형벌이기 때문이다.
마치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면서도 그는 애절하게 신황을 바라봤다. 그러나 신황은 냉정하게 그를 외면했다.
결국 파산인은 제대로 눈조차 감지 못한 채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이미 파산인의 내부 장기는 물론이고 심맥은 산산조각 가루로 부서져 있었따. 신황이 손발을 휘두르면서 미세하게 응축시킨 월영인을 그의 몸에 침투시켰기 때문이다.
이제 신황은 명왕권을 펼치면서도 월영인을 응용할 수 있었고, 월영인을 쓰면서도 명왕권의 초식을 펼칠 수 있었다.
둘을 가르고 있던 경계가 무너진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두 가지의 융합뿐이었다.
캬웅ㅡ!
그때 설아가 신황을 불렀다.
무이를 찾으러 가자는 재촉이었다.
신황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움직였다.
그가 움직인 자리에는 지독한 혈향만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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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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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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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가 많습니다.감사해요.
고맙게 잘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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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야와 신황...............................
즐감하고 갑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 독 하고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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