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후원 주합루 북녁 산자락에서 효심이 지극하였던 효명세자가 기거하던 소박한 한옥 두채를 만난다.
효명세자가 머물면서 할아버지 정조를 지근거리에서 뵙고 학문을 연마하던 그 곳으로 들어가는 금마문(金馬門)이다.
쇠금(金) 말마(馬) 문문(門)이다. 쇠금은 풍수상으로는 서쪽을 의미한다. 왕세자를 뜻하는 중국의 고어에서 따온 금마문이다.
단청을 하지 않은 검소한 한옥 두채가 효명세자가 머물던 공간이다.
그저 단아하고 겸허해 보이는 기와집 기오헌과 의두합이다. 사대부 한옥의 사랑채같다.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가 할아버지 정조를 닮으려 사색하며 학문을 연마하던 곳이다.
효묭세자는 아버지 순조의 명으로 대리청정을 하면서 안동 김씨의 세도를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려고 노력했다.
할아버지 정조가 문신들과 학문을 연마하던 주합루 뒤쪽에 한옥을 짓고 나라의 일을 생각하는 곳으로 삼았다.
그는 대리청정 3년만인 1830년 젊은 나이에 죽었다. 익종으로 추존되었다.
흥선군의 둘째 명복을 그의 아들 익성군으로 봉한 뒤 조선의 26대 고종으로 오른다.
효명세자가 독서하는 기오헌(寄傲軒)이다.
온돌방 하나와 대청.누마루로 구성된 아주 단촐한 기오헌이다.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 첫 구절에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남창에 기대어 마음을 다잡아보니 좁은 방안일망정 편안함을 알았노라(倚南窓以寄傲 審容膽之易安).”
비록 좁고 작은 집 한 칸 속에 머물지만 선비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고자 한다는 뜻이다.
의두각은 한 사람이 마음 놓고 몸을 누일 수도 없는 정면 2간 측면 1간으로 구성된 극히 앙증맞은 북향의 전각이다.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에게 부탁해 지은 건물이다. 단청도 안 돼 있고 장식도 없는 수수하다. 시골 선비들의 서재같은 형상이다.
기오헌의 넓이는 열댓평도 안 되고 의두합은 댓평 남짓이다.
효명세자는 할아버지 정조처럼 효심이 대단하였다고 전한다.
아버지 순조를 위해 할아버지 정조의 규장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대부의 담백한 한옥 연경당을 지어 편안한 여생을 보내도록 한다.
효명세자는 할아버지 정조처럼 아버지에 대한 효심은 대단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젊은 인재를 널리 구해 쓰려는 노력도 또한 소흘함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승원의 소설 '추사'에서 인용하려고 한다.소설 '추사'에서의 덕인은 효명이다.
"그로부터 며칠 뒤 한밤중에 미복차림을 한 덕인세자가 한 젊은이와 더불어 추사의 서재 숭정금실엘 찾아왔다.
덕인이 함께 온 젊은이를 가리키며 "형님,이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하고 물었다.
세자를 수행한, 체구가 크면서도 강단진 젊은이가 추사를 향해 머리를 깊이 숙여 절했다.
어깨가 딱 벌어지고 눈초리가 위쪽으로 치켜올라가고 눈빛이 무서운 젊은이.
"이름이 박규수인데 연암 (박지원)의 손자입니다."
"아하, 이 뭇슨 감개무량한 인연인가?
연암선생은 내 은사이신 초정선생의 은사이십니다."
추사는 박규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박규수가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두 손을 내밀어 추사의 손을 감싸면서 머리를 조아렸다.
추사는 박규수의 손등을 다독거려주었다.그의 손으로부터 뜨거운 물결이 가슴으로 거세게 흘러들었다.
추사는 조선의 앞날이 밝다고 생각했다. 총명한 덕인세자와 박규수처럼 북학으로 깨어있는 젊은 세대가 한데 어우러진다면
안동 김씨 일파들의 세도로 말미암아 찌들어진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덕인세자는 기오헌에서 미리 차 우릴 준비를 해놓고 추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책상을 앞에 놓고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면서 덕인세자는 정중하게 말했다.
"형님께서 앞으로 저를 많이 도와주셔야만 됩니다.
그 부탁을 하려고 많아 바쁘실 터인데 이렇게 청했습니다.
추사는 망극함을 주체할 수 없었다.
"저하께서는 북학파들에게 있어 새로 떠오르는 해 같은 희망이십니다.
옥체를 잘 보존하시옵소서. 우리 뜻있는 사람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한 자락 한 자락이 모두 다 미덥지 않고 의심스럽고
간이 오싹 오싹 저릴 정도로 위태위태합니다.나라 안의 권력을 독식하려고 똘똘 뭉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속속들이 제거하려고 듭니다.
그 제거방법은 잔혹 무도합니다.슬픈 일이옵니다만 어느 때 어디에 가서
드시는 차 한 잔 물 한 모금 약조 한 잔일지라도 세세히 살피고 가리시옵소서.
옛날 타 세력들로부터 위협을 받는 임금이나 세자저하들께서는 방 안이나 강아지를 키웠다고 합니다.
모든 음식을 먼저 그들에게 먹여보고 탈이 없다 싶으면 드셨다고 합니다
<한승원의 장편소설 추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