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꿈
21세기 최초 독립국인 동티모르, 인도네시아에서 독립하려고 수많은 피를 흘렸던 나라, 독립한 이후에도 카톨릭 신자와 비신자간의 내전으로 인구의 1/4이 목숨을 잃었던 나라, 독립은 했으나 동티모르는 아무 것도 없는 불모의 땅이었다. 16세기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되어 400년 동안 남의 지배하에 살았고 포르투갈이 떠난 후에는 인도네시아의 강제 점령으로 참혹한 고통은 겪었던 나라였다. 2002년에 실시된 주민투표에서 동티모르인들이 독립을 선택하자 인도네시아 군대가 철수하면서 모든 공공건물을 폭파해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한때 잘나가는 축구선수였던 원광(김신환), 은퇴 후 이것저것 사업에 손을 대다가 빚만 지고 아내와 이혼까지 한 그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동티모르로 날아간다. 폐허같은 동티모르에 가서 스포츠용품점을 열었으나 6개월 만에 문을 닫고 고국으로 돌아오려던 그는 달리 운동장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맨발로 천을 기운 공을 차는 밝고 진지한 얼굴들을 보며 마음을 바꾼다. 고국으로 돌아올 마음을 접고 신발과 유니폼을 주며 축구를 가르쳐 주기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아이들을 뽑아 훈련을 시키면서 제대로 먹지도 못한 아이들이 안쓰러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함께 훈련 하면서도 서로 반목하며 집안끼리 원수가 된 사이에서는 패스조차 하지 않았다. 오랜 식민통치하에서 살아온 사람들, 그들의 아이들은 의욕과 자신감이 없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축구를 하기 원했고 어떻게든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실업률이 50%에 달하는 그 나라 아이들에게 축구는 성공하고 싶은 꿈 중의 몇 안 되는 길이었던 것이다. 길에서 원달라를 외치며 관광객을 따라 다니는 크고 검은 눈망울, 먹는 것이 부족해서 삭정이 같이 마른 몸들의 아이들, 비록 맨발이었지만 그 아이들에게는 꿈이 하나 있었다. 먼 타국에서 날아온 사람이 축구를 가르쳐 준다니 의심도 하고 질투도 하기도 하고 경계하다 이내 품에 매달리던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훈련을 시키고 자신의 아이처럼 보살피기도 하며 보낸 지 2년 만인 2004년 3월에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리베리노컵 국제유소년축구 대회에 우여곡절 끝에 참가하게 된다. 첨으로 비행기를 타게 된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한껏 설레어있었다. 전반전에 일본팀에 지던 아이들이 후반전에서 역전승을 이룬다. 아이들은 그 이후 시합에서도 모두 이겨 우승하게 되는 꿈같은 일을 이루게 된다. 아이들의 축구는 동티모르인들 모두에게 뜨거운 희망이었고 벅찬 감동을 안겨주었다.
영화는 거기서 끝이 나지만 그 아이들은 그 다음해에도 대회에 참가해 우승했다고 한다.
김신환감동은 동티모르의 히딩크가 되었다. 사업실패에 잇따른 이혼, 인생의 모든 것이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아무것도 없이 다 잃었을 때 그는 낯설고 가난한 나라 동티모르에 가서 새로 희망을 낚아챈다. 그 희망이란 것을 동티모르의 아이들에게서 찾아낸 것이다. 아이들을 위해서 축구를 가르치면서 그는 행복을 찾았다. 아이들은 자신에게서 축구를 배웠고 자신은 희망을 건졌다고 했다. 돈은 없어도 조금 없는 것이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김감독이 동티모르를 구한 것이 아니라 동티모르가 낭떠러지에 선 그를 구한 것이다.
국제대회에서 우승해 이름조차 몰랐던 나라를 세계인들에게 알렸던 동티모르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을 가르친 김신환 그는 동티모르의 히딩크, 희망을 가져다준 영웅이 되었다. 국제축구연맹(FIFA) 가입 208개국 중 204위로 축구 후진국 동티모르에서 유소년 팀을 이끌어 아시아청소년 축구 16강에 올려놓은 기적을 이룬 김신환 감독, 그리고 동티모르 아이들, 희망은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여전히 식량부족 등 극심한 가난의 고통이 계속되고 있으나 희망이 있으니 배고파도 달려갈 수 있을테지요.
월드컵이 끝났습니다. 월드컵은 아직 계속되고 있으나 우리가 출전할 게임이 지난 토요일 우루과이와의 싸움에서 졌으니 8강의 꿈은 접히고 16강 목표달성에 만족해야겠지요. 아무리 모른척해도 다음날이면 기사를 뒤적거리게 되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다 본 경기가 2010년 월드컵 마지막 게임이 되고 말았네요. 비록 지기는 했지만 멋지게 잘 싸워준 선수들의 선전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세계 강국들과 싸울 수 있는 실력이 단단해졌지만 아직도 모자란 점이 무엇인지를 통감한 월드컵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들의 월드컵이 끝났으니 다들 일상으로 돌아가겠지요. 월드컵 응원의 함성이 가려지는 일들은 순순히 지나갔겠지요.
우리는 이미 맨발의 꿈을 꾸고 있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헐벗던 시절을 보내고 남들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살만 해졌습니다. 먹고사는 일이 나아지니 어느새 남들이 가보지 못하는 열강 속에 끼어서 어깨를 겨루기도 합니다. 월드컵 함성이 광장에서, 운동장에서, 어디에서든 하늘을 찌르며 승리를 기원했던 마음이 스포츠에서만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보이던 보이지 않던 속속 살피며 우리를 지켜갈 수 있는 희망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아도 우리 삶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면 나서서 지켜야 하겠습니다. 외상은 금방 눈에 띄니 손쓰기 쉽지만 두고 묻어두고 넘어가기 쉬운 내상은 그냥 두면 불치의 병이 될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2010. 6. 28. 04:40 월 이명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