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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총 페스티벌 시화 회원원고(25명)
1. 강영덕 <세월>
2. 권옥희 <숲의 낙인>
3. 김다호 <별>
4. 김봉석 <헤어질 결심>
5. 김성열 <그해 유월>
6. 김종상 <도로면 주소>
7. 김화순 <산은 열매를 품고>
8. 김회순 <일기예보>
9. 나건용 <아침은>
10. 백상봉 <어떤 삶>
11. 서정원 <밤하늘 새 되어)
12. 신낙형 <연무>
13. 신두업 <어미>
14. 신재미 <바람 한 줌, 물 한 잔이면>
15. 오동춘 <짚신 27>
16. 오승영 <용궁리>
17. 유성대 <바비인형 집>
18. 이병기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며>
19. 이혜너 <실천 밥숟갈>
20. 이효범 <아내의 휴가>
21. 장만숙 <계단>
22. 주명희 <아카시>
23. 지현경 <비우고 삽시다>
24. 최다원 <울어야 시인이다>
25. 호명자 <나 가진 것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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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강영덕
떠나려 하여도
쉽게 보낼 수 없는
단짝 같은 친구이건만
끝내 이별을 고하고
뒤돌아서서
아쉬운 눈시울 적시는 그림자
품어도 꼭 껴안아도
어느새 빠져나와
늘 나의 의지보다
앞장서서 달리기만 하는
고삐 풀린 말
소중히
하루하루 입맞춤하며
조용히 내 곁에 두고
조금씩, 서서히
풀었다 낚았다 하고 싶은
침묵의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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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낙인
권옥희
바람을 지고 사는 오래된 숲은 늘 젖어있다
누구든 기대어 먹고살라고 문도 열어놓는다
두터운 각질 몇 겹으로 두른 나뭇등걸에
소복하게 붙어사는 초록 이끼는 오래된 질문,
나무가 겪었을 숱한 답변들이 푸르게 녹아있고
언제나 넉넉하고 조용했던 그늘의 순리를
바람은 따라가지 못했다
쓸모없이 뿌리째 뽑혀간 인연들
당신이 머물다 간 자리도
내 안에서 그렇게 영역을 넓혀갔다
접촉할 수 없는 뿌리의 경계를 필두로
새로운 무늬가 생길 때마다
당신은 지울 수 없는 햇살로
그리움의 낙인을 찍어주었다
숲을 나무가 껴안는 것일까
나무가 황금 같은 날들을 껴안는 것일까
이제 팔베개처럼 편안하게
당신의 세월을 누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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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김다호
들풀처럼 살다가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이 알 수 없는 별자리 주위에
사는 동안
떨치지 못한 그리움을
몰래 묻어두면
죽어서
그 자리에 별이 된다는 것을
그래서 자꾸만 별이 생겨난다는 것을
철석같이 믿으면서
마땅한 땅 한 자락 누리지 못한 채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
별이 되어
바늘구멍보다 작은 세상을
사는 나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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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 4
김봉석
참 잘도 숨어 있었구나
눈에 띄지 않는 어두운 곳에
몇백 몇천 개가 모여 둥지를 틀고
용케도 견뎌 왔구나
참 오래도 지키고 있구나
모퉁이 돌아 손 닿지 않는 곳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철 지난 구호를 믿고
끈질기게 지키고 있구나
이젠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다
나에게 발각된 이상
헤어질 수밖에 없다
검은 전선을 연결한 굉음의 기계로
한순간에 흡입해
영원한 어둠의 세계로 너를 보낸다
잘 가라, 불필요한 먼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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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유월
김성열
Made in China
인간 말살용 화학무기
우한 코 땡땡이와
북극곰들의 전쟁놀이로
21세기 인류는 몸살을 앓고 있다
아득히 멀어져만 가는 그해 유월
광란의 총칼로 이슬처럼 사라진
꽃 같은 우리의 수많은 젊은이
그런데 아직도 북쪽에서는
상속받은 세습과 화약으로
불장난이 극에 달했다
선열들의 그 뜨거운 붉은 피로
불꽃처럼 타오르는 동양의 샛별
그래서 장미도 유월이 되면
그토록 피를 토하며 울부짖는가 보다
그래도 우리에겐 조국과 자유가 있으니
이제는 서로가 용서하고 사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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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명 주소
김종상
웃뜸 아랫뜸이 없어지고
느르실 산마을도 사라졌다
도로명 주소가 붙여지고부터
가마골 새터 그리운 고향이
샘골길 2014-11이 되었다
도로명 주소로 바뀌고 나니
집안에서 태어나던 아기들도
길 위에서 태어나게 되었다
주소를 도로명으로 쓰게 되어
대대로 집에서 살던 사람들이
길바닥에서 사는 꼴이 되었다
집이 도로명 주소로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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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열매를 품고
김화순
산속 열매들이
주렁주렁 자라고 있다
밤에는 달빛이 등불 삼아 위로하고
낮에는 태양이 빛으로 먹여주며
구름은 이불로 덮어준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제각기 온몸을 흔들어
우두둑 뚜두둑 제 몸을 떨군다
땅 위에 떨어진 열매는
제각기 일용한 공양이 될테지
뿌듯이 내려보는 나무는
내년을 약속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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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예보
김회순
논바닥이 쩌억 쩌억
갈라지는 긴 가뭄
농부들 한숨 소리
깊어 가는데
타는 저녁노을 넘어
뱃고동 부~웅 부~웅
연락선 타고 온
할머니 신경통
비설거지 서두르는
온 동네 사람들
입가에 번지는 미소
지짐이 걸이 장만하며
절로 나는 콧노래
비, 오도다 비가 오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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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은
나건용
물안개 피는
자작나무 숲 사이로
여인의 속살이 비치인 듯
부연한 달빛처럼 보인다
해님은
호박빛의
동그라미를 만들어
멀리서 솟아오르고
내 안에
설렘이 재촉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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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삶
백상봉
바람아 불지마라 파도야 치지마라
바다에 배 띄우고 기도하는 사람보다
바람이 부는 대로 물결이 치는 대로
난관을 헤쳐가면서 사는 멋도 있는데.
하고 싶은 작은 일도 해보지도 못하고서
허상을 움켜쥐고 놓지 못한 젊은 날들
주어진 삶인 대도 편 가르고 다투다가
이승에 소풍 온 것을 돌아갈 때 깨닫지.
어제 핀 꽃들도 오늘 보니 시드는데
영원히 살 것 같은 어리석은 착각으로
이고 진 짐 보따리 내려놓지 못하고서
주말에 등산 가듯이 꼬리 잡고 가지만.
정답 없고 공짜 없는 공평한 이승 삶은
누구나 갈 수 있는 둘레길의 장단 코스
달려가든 걸어가든 선택은 그대의 몫
같이 갈 도반 있으면 가는 길이 즐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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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 새 되어
서정원
허수아비 셋
나란히 무논을 지킨다
황금물결 사라진 자리에
무어 지킬게 그리 많아
저리 서 있는가
언덕 위 붉게 타오른 잎새
찬비에 젖어 웅크리고 있다가
한줄기 바람소리에
우수수 삶을 내려놓는다
알몸이 되어가는 계절에
내 노을 길 찬비에 젖어
쓸쓸함은 방안 가득한데
이 땅이 싫어진다
조국을 떠나간 어린 생명 정우를 생각하며
가을에서 겨울로
저 밤하늘 비추는 항로 따라
한 마리 새 되어 이국땅에서
추억을 삭임질로
세월을 머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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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무
월랑 신낙형
여수 열도 굽이돌아 깎아 지른 금오도
부서지는 파도 소리에 갈매기만 우는데
어디 갔나 우리임은 어이하여 안오시나
가랑비만 내 가슴을 구슬프게 아롱지네
고동 소리 울고 울며 떠나가는 연락선
아직도 임 채취 선착장에 돌고 도는데
기약 없는 우리임을 기다리면 무얼하나
사라지는 임 그림자 야속하기만 하다네
빨간 동백꽃 사이로 가물거리는 소리도
연무에 쌓인 비렁길 해는 저물어가는데
사랑하는 우리임은 어이하여 못 오시나
오늘도 초점 잃은 등댓불만 깜박거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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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신두업
너 낳고 어미 되었고
널 키우며 나도 야물어지고
널 가르치며 함께 배웠지
나는 애초에 뭘 알아서
어미 된 것이 아니라
부딪치며 터득했고
그 고난이 스승이었지
뙤약볕에 물 주고 김매며
마음 판에 새긴 인내
두 주먹 불끈 쥐고 세파에 맞서
불굴의 어미 되었지
때로는 서툴고 때때로 모자라도
너의 부족함 늘 채워주고픈 것은
오로지 어미, 어미기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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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한 줌, 물 한 잔이면
신재미
하늘 푸르고 청정한 날
삼청공원 북악산 조망대에 오르니
산 아래 펼쳐진 풍경 신비롭다
녹음 울창한 궁궐엔
개미떼처럼 사람들 오가고
미로처럼 펼쳐진 도로엔 질주하는 자동차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미끄러져 간다.
담장을 사이에 두고 공존하는 과거와 현재
수천 년의 역사가 눈동자에 어리니
선조들의 피 수혈받은 마음
조국애로 활활 타오른다.
천 년의 역사가 어제의 일인 듯
오늘 같은 날에는
영숫골(靈水谷) 맑은 물 한 잔이면
심해를 유영하는 몽상 사라지고
부귀영화도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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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신 27
오동춘
밝고 밝은 동녘 땅에
줄기 세찬 짚신 겨레
울을 넘는 이웃 도둑
온 힘 합쳐 혼내 쫓고
면면히 지켜 온 나라
거룩거룩 대한일레
누가 감히 넘볼소냐?
날로 크는 짚신 조국
동네동네 꽃핀 살림
삼천리에 푸른 오늘
새 역사 우뚝한 탑이
온 나라에 빛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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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궁리
오승영
첩첩산중 용궁리는 솔방울 지천에 떨어져
겨울 아궁이에 진한 송진향이 가득했다
산 그림자는 건전지가 없어도 시계처럼 정확했다
언덕에 쉿바람 넘어가는 밤은 무서웠다
부엉이 울음소리에 화들짝 놀란 솔방울 떨어진다.
눈 내리는 날, 온 세상은 순백하지만
소나무는 눈의 무게를 감당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쩍억 소리를 내면 갈라지는 나뭇가지는 울었다
산을 내려가는 조그마한 실개천은
가재가 숨어 있다 후다닥 돌 밑으로 숨었다
폭설이 내리면 시냇물 소리도 얼어버리고
고요한 정적은 시계를 멈춘 듯 했다
산비탈로 해가 넘어가면
세상은 까맣게 채색되어 세상이 멈춘 듯 했다
그리운 고향 용궁리
겨울 아궁이 솔방울 타는 진한 송진의 향이 보인다
내 고향 용궁리에 가면
세월을 타고 돌아온 소꿉친구도 만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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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인형의 집
유성대
딸아이는 초등학교 가기 전
바비인형 집을 갖고 있는 사진관 집
계집아이를 매일 따라다녔다
나는 딸아이 눈을 피했다
어쩌다 마주치면 사달라고 말못하는 딸아이는
아빠의 태도에서 가난을 읽고 있었다
이 빈곤을 자식한테 물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 뿐이다
정부미 봉투와 귤 상자로 작업을 시작했다
삼각 지붕을 올리고 굴뚝도 만들어 이층양옥집을 만들었다
종이를 겹겹이 붙일 때 무능과 처절함을
밀가루 풀에 짓이겨 만들었다
웃풍이 심한 작은 셋방살이
바비인형 집을 네 식구의 온기로 말렸다
겨울이 끝날 즈음 딸아이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층집 바비인형 집주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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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며
이병기
국가는 힘과 철저한 대응이 있을 때 꿈을 꿀 수 있다
국가는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다
신神의 중심에 우뚝 서서
남과 북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며
위기에 대한 후보 대책을 철저히 준비할 때
완성될 것입니다
철쭉 어디에서 봄이,
DMZ
평화군축
화력이 강한 곳은 감축할까
핵 ICBM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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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밥숟갈
이혜너
고풍적인 내음 물씬한 베네치아
산 마르코 성당 고색 찬연한 비잔틴 조각상들
베니스 섬나라의 신비로운 낭만
천재 비발디의 선율이 들린다.
물의 도시 역경의 수많은 흐름에도
여전히 빛나는 단테가 반가웠고
빛바랜 귀족들 속에 즐기는 나.
로코코 황실을 담은 퇴색한 화려함의
상상의 베네치아 그림속으로 들어간 나
탄식의 다리 위에선 모델로 작가로
누구나 추억으로 가는 배에 오른다.
수백 개의 섬 우리를 세계로 잇는 다리들
옛것에 대한 자부심이 지키는 자동차 없는 도시
한국의 직지보단 늦지만 인쇄발원지 베네치아 ,
온난화로 도시가 가라앉을 거라니
상상하지 않으려 고개를 흔들며
환경지킴이 실천 밥숟가락을 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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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휴가
이효범
아내가 여행을 떠났다
부인이 따라나섰다
집사람도 마누라도 따라갔다
당신이라 부를 사람도 갔고
여보라고 부를 사람도 갔다
처라고 소개할 사람도 데리고 갔다
당신이 없는 집은
시간이 멈춰 버린 듯
집안이 온통 텅 비어
공허하기까지 하다
낯선 도시에서 길 잃은 어린이 마냥
서울의 거리가 낯설다
곁에 있을 때는 그림자인 줄 알았는데
꼬리가 이렇게 길 줄은 몰랐다
부인과 둘이 사는 게 아니라
일곱 여자와 함께 살았던 것이다
부엌에서의 도마소리와
마누라의 잔소리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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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장만숙
좌우로 나열된 건반이 아니라
위아래로 쌓아 올린 음계를
손가락이 아니라 발로 짚어 가며
피아노 협주곡 ‘오늘’을 연주하는 사람들
지하에서 지상으로
꿈을 길어 올리는 이들은 안단테로
지상에서 지하로
희망을 캐 내려가는 이들은 알레그레토로
아이들은 경쾌하게
여자들은 풍성하게
아저씨들은 장중하게
서로 다른 주법(奏法)으로 화음을 찾아
모두가 뒤섞여 어지러운 불협화음 속에서도
서로 다른 박자로 건반을 두드리면서도
발들은 걸려서 넘어지는 일 없이
피아노 협주곡 ‘오늘’을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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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
주명희
산에는
살랑살랑
하나둘씩
꽃눈 내리고
밟기에는
애틋한 꽃
손으로 긁어
모아 뿌려보니
머리 위
모자 되어
싱글벙글
웃음꽃 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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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고 삽시다
지현경
담아두면 무겁고
담아두면 변질되고
담아두면 굳어져요
모두 다 비우면
가볍게 삽니다
우리 모두 비워요
가볍게 삽시다
가슴에 담아둔
욕심도 버려요
비우고 비우면
만사가 편하다
가고 오고 사는 것은
허상일 뿐이다네
형체도 정신도
모두 다 사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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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어야 시인이다
최다원
시인의 가슴에 옹기종기 모여 산다
기쁨이 살고
슬픔이 살며
고독이 살고
외로움도 살며
그리움이 함께 산다
그들과 호흡하며
간간이 먹이 주고 옷을 입혀 동행한다
기쁨이 울고
슬픔이 울고
외로움이 울고
고독이 울면
시인도 따라 운다
울자 울어야 한다
눈물은 양심이고 깨끗한 정화수이며
영혼을 씻는 세척제이니
오늘도 울고
내일도 울자
울다 보면 웃을 날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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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가진 것은 없지만
호명자
나 가진 것은 없지만
그대에게 줄 것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나 가진 것은 없지만
그대에게 줄 것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기쁨입니다
나 가진 것은 없지만
그대에게 줄 것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소망입니다
나 그대에게 준 것은 준 것이 아닙니다
그대가 받아 가야 할 것을
마땅히 주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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