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해피
홍재숙
나는 매일 해피에 간다. 해피뻘에 나를 담가 시간을 잊는다. 아침에 눈 뜨면 한없이 늘어지는 고무줄 같은 시간과 마주하지 않아서 좋다. 맥없이 늘어진 시간을 팽팽하게 옹이로 매듭짓던 시간은 얼마나 처절했던가. 기를 쓰고 하루를 잡아당겨도 주체 못 하는 기억이 줄줄이 딸려 나와 달라붙었다.
남편은 아직도 집을 떠나지 않았다. 혼자 우두커니가 된 내가 안쓰러운지, 한 날 한 시에 같이 가자는 약속을 지키려는지 망자의 세상으로 넘어가려 하지 않는다. 저승사자가 인도하는 누우런 황톳길 끝자락 명부로 가는 나룻배를 타지 않았다. 삼우제를 치루고 집에 온 날부터 남편은 TV 화면 속 인물에 겹쳐서 말을 걸었다. 벽을 보고 누우면 벽지 무늬 속에서도 얼보였다.
-어쩌라고요? 나도 같이 가자고? 여보, 제발 당신이 있을 곳으로 가서 편히 쉬어요. 거기서 나를 기다리면 되잖 아. 이제 나도 숨 좀 쉬게 해줘.-
갑작스런 이별이었다. 쇼파에 앉아 책을 보던 남편이 가슴이 쥐어짜는 듯 답답하다며 쓰러졌다. 119 구급차를 불러 병원 응급실 문을 들어서자마자 숨을 거두었다. 심근경색이었다.
생과 사를 가르는 시간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존엄하게 작별할 시간도, 그동안 고생했다 애썼다 고마워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신은 단 5분도 허락하지 않았다. 남편의 돌연한 죽음에 눈물이 마르고 입이 닫혔다. 그의 죽음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창졸간에 유현의 시간에 갇힌 남편은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시간의 틈을 벌려 이렇게 찾아온다. 그만 오라고 허공에 손사래 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수면제로 빌린 잠이 까무룩 쏟아졌다. 무너진 둑처럼 밀려온 잠은 달력을 다음 장으로 넘겼다.
남편의 허깨비를 피해 무작정 집을 나왔다. 그동안 동굴처럼 그득 찼던 음식을 파먹었던 냉장고가 텅 빈 것도 이유였다. 밖으로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환한 햇살이 달려들었다.
-이렇게 환한 세상이었어. 비로소 산 자들의 세상으로 나왔어.-
가만히 서 있는데도 다리가 후들거리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나는 쉬다 걷다를 반복하며 거리를 걸었다. 얼굴에서 땀이 후드득 떨어졌다.
골목길 모퉁이에 초록색 간판이 커다란 글자로 다가왔다. 카페 해피라고 쓰여 있다. 해피가 나를 부른다. 나는 카페 해피를 향해 비척거리며 걸었다. 저기 가면 행복할까. 간판이 자석처럼 잡아당겼다.
카페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문으로 북적거리는 노인들이 보인다. 모두들 웃는 얼굴이다. 나는 식은땀 범벅인 축축한 얼굴로 가게 문을 밀었다.
오십은 넘었음직한 여자가 달려와 휘청거리는 나를 부축해서 의자에 앉혀준다. 나는 그녀가 건네준 미지근한 물을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젊은이는 없다.
한쪽 벽면 긴 탁자에서 노인들 서너 명이 밥을 먹는다. 서로 아는 눈치이다. 남편과 말을 트고 지냈던 얼굴도 보였다. 다른 탁자에는 여자 노인들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꽃이 한참이다. 웃음소리가 카페 안을 휘젓는다. 중앙 둥그런 탁자에는 흰 가운을 입은 여자가 노인들의 혈압을 재면서 컴퓨터에 기록 중이다.
-환영합니다. 저는 카페 해피의 주인장 류 라고 해요. 잘 오셨어요.-
류는 화장기 없는 맨얼굴에 수수한 차림으로 함박웃음을 지으며 내 손을 잡았다. 해피가 넘쳐나는 손아귀 힘이다. 그녀는 삭막한 고령화 시대에 부부 단둘이 사는 노인이나 독거노인들을 도와주려고 카페를 열었다며 내 얼굴빛을 살폈다.
- 카페를 연지 한 달 되었어요. 우리 가게는 동네 어르신들의 쉼터에요. 젊은이들 눈치 안 보고 편안히 쉴 곳이랍니다. 마침 구청에서도 우리 카페가 정부시책에 맞는다고 고령자 케어 어울림 공간으로 인정해 주었어요. 의료와 복지, 문화 같은 걸 지원해줘요. 동네 독거노인 가정에 배달하는 도시락도 맡겨줘서 그럭저럭 마이너스 안 나고 꾸려가고 있어요. -
류는 흰 가운 입은 여자를 가리키면서 파견 간호사라고 했다.
-격주로 간호사가 와서 여기 모인 어르신들의 혈압이나 혈당을 재고 만성질환이 잘 관리 되고 있는지 점검해주고 있어요.-
류는 착한 학생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추임새를 넣는 나에게 곰살궂게 카페 해피를 소개했다. 나는 활력이 넘치는 류의 말을 들으며 남편에게 집중하느라 내버려두었던 내 삶을 가만히 불러보았다. 나의 내면에서 용기가 희미하게 올라왔다.
-가만있자. 성함이 이정숙 님 이라고요? 여기서는 젊어지라고 모두들 성을 빼고 이름만 불러요. 정숙 님, 마치 소녀시절로 돌아온 것 같지 않나요? -
류는 카페가 떠나갈 듯 호탕하게 웃는다. 그녀의 웃음에 전염이 되었는지 모두들 우리 쪽을 바라보며 같이 웃는다. 나도 배시시 웃음을 입에 물었다. 남편이 떠난 이후로 처음이었다.
-정숙님, 일어나서 저기 탁자 끝까지 한 번 걸어보세요. 왼쪽 무릎이 많이 부었네요. 매트에 누워서 무릎 마사지 받고 침을 맞아보세요.”-
류의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살갑게 내 이름을 불러주니 살 것 같았다. 카페 해피를 만난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해피에 빠졌다. 흠뻑 빠지려고 끝도 없이 피어나는 남편과의 추억을 마음의 서랍에 넣고 꽉 닫아버렸다.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할 남은 날들과 행복하게 지내고 싶어 해피를 찾았다. 해피 주인장 류에게 내 시간을 무한정 맡겨 놓았다. 그녀의 환한 웃음에 마음이 녹아내린다.
느지막이 일어나 누룽지 죽과 과일 샐러드로 아침을 먹고 점심은 해피에서 해결한다. 커피와 차가 3,000원, 고기와 생선이 든 반찬 네 가지와 따듯한 밥이 6,000원이다. 반나절을 보내기에 꽤 착한 소비이다.
해피에는 내 처지와 비슷한 노인들이 많다. 한 달에 한 번씩 주민센터에서 전화로 안부를 물어오는 독거노인들이다. 잘 지내느냐고, 어디 불편한 곳 없냐고, 말벗이 필요하냐고 묻는 지자체가 관리하는 명단에 든 노인들이다. 나도 이들 속에 섞였다. 내게는 남편을 떠나보낼 살아있는 사람의 소리가 간절하게 필요하다.
해피가 무료로 제공하는 침술치료와 안마를 받으려고 침대에도 스스럼없이 눕는다. 톡톡 털고 까다롭던 성격이 무디어졌다. 남자 시각장애인이 마사지해주는 손길에도 몸을 맡겼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재능봉사로 노인들에게 안마를 해주는 시각장애인안마사 단체에서 오셨다는 류의 말에 믿음이 갔다.
노래교실도, 만들기 수업도 팔 걷고 덤벼들었다. 소심한 성격의 나답지 않지만 이래야 남편도 안심하고 신의 영역으로 떠날 것이다.
- 와, 정숙님, 많이 밝아지셨어요. 어제는 잘 주무셨나요? -
류가 귓전에 대고 속삭인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에는 수면제를 찾지 않았다. 처음으로 숨 쉴 때 상실이 느껴지지 않았다. 가슴속에서 들리던 휑한 바람소리도 잠잠했다.
<약력>
홍재숙
수필집: 『꽃은 길을 불러모은다』, 『연필, 그 사각거리는』
공저:『독서가 힘이다』 1~7권, 사화집 『사랑방』 (가산문학회 제10주년)
수상: 강서문화원 강서문학상 대상, 송헌수필문학상, 書로多讀작가상 등
<강서구립 길꽃어린이도서관>에서 인문,철학 온라인독서반, 수요문예창작반 강사
(2020서울형 독서문화프로그램지원사업), ‘수필로 마음 다독이기’ (2022년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수강회원 사화집 출간
인터넷신문 <강서뉴스>에서 ‘홍재숙의 동네 한바퀴’ 칼럼 연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