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23:28-30 조금씩
여기까지 함께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1만 교회가 폐쇄되었다는데 이전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는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옛말에 숟가락 들 힘만 있으도 아멘과 할렐루야를 한다 하였사옵나이다.
부디 아멘! 하여 주시옵소서!
어떤 사람이 개구리를 끓는 물 속에 죽이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제일 먼저 뜨거운 물에 개구리를 집어넣었더니 화닥닥 뛰어나왔습니다. 다음으로 찬물에 집어넣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개구리가 놀라서 뛰어나왔습니다. 이번에는 물을 적당한 온도에 맞춰 미지근하게 해서 개구리를 넣었더니 개구리가 좋다며 가만히 있었습니다. 온도를 아주 조금씩 높여보았습니다.
놀랍게도 개구리는 아무런 소동도 일으키지 않고 뜨거워져 가는 물속에서 죽어갔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 박노해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꽃이 피었다고 말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별이라고 말하지만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그가 변했다고 말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무너졌다고 말하지만
꽃도 별도 사람도 세력도
하루아침에 떠오르고 한꺼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나빠지고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좋아질 뿐
사람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는다
세상도 하루아침에 좋아지지 않는다
모든 것은 조금씩 조금씩 변함없이 변해간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조금씩 변하고 조금씩 성장해 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빨리빨리'를 좋아합니다. 부흥도, 응답도, 치유도 조급합니다.
하나님은 어떠실까요? 본문 말씀을 통해 정리해 보겠습니다.
“내가 왕벌을 네 앞에 보내리니 그 벌이 히위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을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그러나 그 땅이 황폐하게 됨으로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희를 해할까 하여 일 년 안에는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고
네가 번성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까지
내가 그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리라” (출 23:28-30)
하나님께서 왕벌을 앞서 보내어 가나안 땅에 사는 족속들을 쫓아내 주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일 년 안에는 쫓아내지 않고 조금씩 쫓아내 주겠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실까요? 이유를 알면 은혜가 됩니다.
한 번에 모두 쫓아내면 땅을 관리할 사람이 없어 그 땅이 황폐하게 되고,
황폐하게 되면 들짐승이 번성할 것이고
그 번성한 들짐승이 너희를 해할 것이다.
누구 때문에, 누구를 생각해서 그렇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택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이스라엘은 들어가서 정복 전쟁부터 해야 합니다. 승리한 후 땅을 분배하고 정리해서 정착하는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가나안 땅에 터 잡고 사는 힘 있는 일곱 족속이 땅 여기 있으니 가지세요. 라고 자신들의 땅을 쉽게 바치겠습니까? 치열한 전쟁을 통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가나안 땅을 차지해야 합니다. 그때야 땅을 관리하고 농사도 짓을 수 있습니다. 또한, 부모 세대는 광야에서 죽고 2세대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데 광야에서 농사를 지어 보아겠습니까? 보고 배우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번성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까지 조금씩 쫓아내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깊은 뜻은 조금씩인데 나만 빨리 외친다고 될까요? 그래서 우리에게 시간이 필요하고 훈련도, 준비가 필요하고 인내도 필요한 것입니다.
사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뭐를 못 하시겠습니까? 조금씩이라는 단어가 하나님께 더 안 어울립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한 번에, 한 방이란 단어가 하나님께 더 잘 어울립니다. 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①만나를 40년 치를 한 방에 주시면, 아 멋있다. 역시 전능하시네요. 할렐루야! 하겠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매일매일 주셨습니다. 광야이니까 만나를 주신 것이고 광야는 거쳐 가는 곳이지 머무는 곳이 아닙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을 향해 움직여야 하는데 40년 치를 들고 다니실 겁니까? 두고 가겠습니까? 매일 새벽부터 하늘만,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게 했습니다.
②하나님께서 전능하심으로 한 방에 홍해를 갈라 건너게 해 주었습니다. 한 방 보여주면 사람이 완전 변하고 평생 갈까요? 얼마 못 가서 마라의 쓴 물을 만나자 원망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한 방을 보여줘도 그때뿐이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신앙과 인격의 수준, 성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만큼 연단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③12명의 제자를 불러 3년간 동고동락하면서 예수님이 직접 제자훈련을 시켰습니다. 3년의 세월이 필요하였고 그런데도 말씀의 이해도와 죽음 앞에서 예수님 두고 도망하는 수준이었습니다. 3살짜리를 한 번에 30살 어른의 외모로 만들어 주면 되겠습니까? 몸은 30살 모습이지만 지적, 정신적, 신앙적, 인격적 부분의 수준이 3살 정도인데 그에게 무엇을 맡기겠습니까? 여러분 같으면 어떠하시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우리가 준비되고 성숙해지고 성장하면 그 수준에 맞춰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맞추다 보니까 한 번, 한방이 아닌 조금씩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절대 신뢰해야 합니다. 가장 하나님의 영광이 크게 드러나고 가장 우리에게 유익 되는 타이밍까지 기다리셨다가 역사하시고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길 축원합니다.
조금씩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답답함을 아십니까? 기다리고 있는 내가 더 답답하다고 생각하니까 힘이 듭니다. 그러나 다 하실 수 있는데, 빨리, 한 번에 다 하시는데 우리의 유익을 위해, 우리를 위해 조금씩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나보다 더 답답하시지 않겠습니까?
주님의 의중, 선한 뜻을 헤아리는 성숙함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삼하 5:10절입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삼하 5:10)
다윗도 점점 강성, 강대해졌습니다. 점점 좋아집니다. 날로날로 성장합니다. 조금씩 치료됩니다. 나의 보폭에 맞춰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입니다. 성경적인 교회와 사람은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 2:9)
“처음은 미약하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욥 8:7)
“저녁에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라” (시 30:5)
“눈물로 씨를 뿌린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둡니다” (시 126:6)
말씀에 소망을 두길 원합니다. 나이가 젊으면 괜찮은데 나이가 있어서 조급하십니까? 설립한 지 오래되어 힘드십니까? 꽃은 봄에만 피는 게 아닙니다. 여름에도 핍니다. 해바라기가 피고 접시꽃도 피고 백일홍, 나팔꽃, 장미, 무궁화 여름에 핍니다. 가을에도 핍니다. 코스모스, 국화, 구절초 가을에 핍니다. 꽃은 겨울에도 핍니다. 동백꽃, 수선화 겨울에 핍니다.
나는 어느 때에 꽃이 필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끝났다 하기 전까지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마지못해 피는 꽃이 되지 마십시오. 골짜기에 피어난 꽃에도 향기가 있고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잡초 더미 위에도 단비가 내립니다. 온실 속에 사랑받는 화초가 있는가 하면 벌판에서 혹한을 견뎌내는 작은 들꽃도 있습니다. 그러나 계절 없이 사랑받는 온실 속의 화초보다는 혹한을 참아낸 들꽃의 생명력이 더 강한 줄 믿습니다.
잘났거나 못났거나 선택받은 목회자로 각자에게 부여된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명이 있습니다. 비교하지도 마시고 주인만 바라보며 충성을 다합시다.
천국에 가서 주님 앞에서 부끄러운 자가 되지 않기 위해 기쁨과 감사로 나를 믿고 맡긴 사명 다 감당합시다.
나를 위해 나와 보폭을 함께하시기 위해 조금씩 인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자기 성장, 성숙을 위해 인내로 잘 준비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