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 26일, 목요일, Buenos Aires, Milhouse Youth Hostel (오늘의 경비 US $60: 숙박료 62, 아침 5, 점심 30, 식료품 56, 버스 5, 택시 20, 기타 3, 환율 US $1 = 2.85 peso) 남미 여행을 시작한지 5개월 10일 만에 아르헨티나 수도 Buenos Aires에 도착하였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브라질의 Rio de Janeiro에 도착해서 삼바 페스티벌 구경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 한 달이 늦어진 셈이다. 칠레와 아르헨티나 남쪽 지역에서 계획보다 시간을 더 많이 보내서 그렇게 되었다. 칠레의 Villa O'Higgins로 가려다 못 가게 되면서 약 2주가 늦어지고 아르헨티나의 Ushuaia에서 남극에 가려다 못 가고 Ushuaia에서 Bariloche로 비행기로 가려고 했다가 버스로 가게 되고 하면서 약 2주가 또 늦어졌다. 짐을 버스 터미널에 맡기고 한국 타운이 있다는 Once 지역으로 가기 위해서 전철을 탔다. 한 여름이라 날씨가 더웠다. 섭씨 30도 이상인 것 같았다. Once 역에서 내려서 내가 가진 지도에서 Once 지역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Cordoba에서 얻어온 한국 신문에 나오는 한국 상점들 주소의 길 이름이 안 보였다. 할 수 없이 지나가는 경찰에게 물어보니 한국 상점들은 Once 지역엔 없고 Once 지역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는데 내가 가진 지도에는 안 나오는 곳이란다. 공중전화를 찾아서 신문에 나온 한국 상점 한곳으로 전화를 걸어서 가는 방법을 물어보려 하는데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 전화가 안 걸린다. 한참 고생을 하다가 간신히 통화가 되어서 한국 타운으로 가는 방법을 알아냈다. 한국 타운에 가기 전에 우선 숙소를 정했다. 처음에 찾아간 곳은 Once 지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Milhouse Youth Hostel인데 위치가 좋고 시설이 깨끗하고 배낭 여행객이 필요한 것이 다 있다. 방값은 62 peso로 (약 $20) 지금까지 우리가 든 숙소 중에 제일 비싼 가격이었다. 다른 곳에 가 봐도 마찬가지일 것 같고 이곳이 마음에 들어서 방을 정해버렸다. 이곳은 Buenos Aires의 배낭 여행객들의 소굴인 듯 배낭 여행객들로 붐비었다. 배낭 여행객들에게는 숙소의 위치가 좋다는 의미는 일반적으로 그 도시의 중앙광장에서 가깝다는 말이다. 중앙광장에 가까우면 볼거리, 먹거리가 대부분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있다. 서울로 말하면 시청, 광화문, 종로 지역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남미의 대도시 중 단 한 군데 예외는 브라질의 Rio de Janeiro인데 중앙광장에서 멀리 떨어진 (Copacabana 해변보다) Ipanema 해변이 배낭 여행객들에게 제일 인기란다. 해수욕장 때문인 것이다. 숙소 근처의 Av de Mayo에서 7번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남서쪽으로 가다가 Carabobo라는 길에서 내리니 여기저기 한국 상점들이 보인다. 한국 타운에 온 것이다. 나중에 알았는데 Once 지역은 한국 타운이 아니고 그저 현지인들을 상대로 하는 한국 옷가게들이 많이 있는 곳이다. 버스에서 내려서 제일 먼저 만난 한국 사람은 Remis 사업을 하는 50대의 정 선생인데 7년 전 IMF직후에 한국에서 이민을 왔다고 한다. Remis 사업은 다른 말로는 콜택시 사업인데 근래에 길거리에서 택시를 잡아타는 것이 위험해져서 인기를 끌고 있는 사업이란다. 정 선생이 사무실에 들어가 앉아서 얘기하는 동안 콜택시를 부르는 전화가 계속 오고 정 선생은 한국말로 전화를 받고 대기 중인 아르헨티나 운전기사 중 한 사람을 불러서 어디어디로 가라고 지시한다. 아마 정 선생 Remis 사업은 주로 한국교민들을 상대로 하는 것 같았다. 정 선생은 20명 정도 운전기사를 두고 Remis 사업을 하고 있는데 총 투자액이 2천만 원 정도란다. 운전기사들은 하루 일하고 30 peso 정도 벌고 한 달 수입은 800 peso (25만 원) 정도란다. 물가가 싸서 그 정도 수입으로 한 가족이 충분히 살 수 있단다. 한국 사람들이 이곳에 사는 것은 모두 만족인데 한국 다녀오는 비용이 너무 비싼 것만이 문제란다. 항공료만 $1,500인데 약 5,000 peso이니 정 선생이 고용하는 아르헨티나 운전기사의 반년 수입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밖에도 애들 교육도 문제라고 한다. 점심을 정 선생이 추천해 준 "왕서방"이란 음식점에 가서 잘 먹었다. 한 정식을 시켰는데 고기가 무척 많이 나왔다. 고기가 여러 종류 나왔는데 삼겹살이 일미였다. 된장찌개도 맛있었고 밑반찬도 하나같이 맛있었다. 냉면도 준다고 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잊어버렸는지 나오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고 집사람 혼자 근처 한국 수퍼마켓에 가서 장을 보고 나는 음식점에 앉아서 한국 비디오를 한참 보았다. 남미에서는 어디가나 한국 교민이 사는 곳에는 항상 한국 비디오가 많다. 언어 문제도 있고 고향 생각도 나고 해서 한국 비디오가 인기인 모양이다. 집사람은 3월 15일 미국으로 돌아가고 나 혼자 남미여행을 계속하기로 했는데 그 전에 집사람 혼자 브라질 단체 관광하는 것을 문의하기 위해서 근처 한국 사람이하는 여행사에 들렸는데 대답이 시원치 않았다. 단체관광은 없고 브라질은 위험하다는 대답이었다. 단체관광이 없을 리 없는데 없다는 것을 보면 아르헨티나에 사는 교민들은 브라질 관광은 별로 안 가는 모양이다. 브라질 관광은 포기하고 그 대신 3월 15일까지 나와 함께 우루과이와 그 유명한 이구아수 폭포 구경을 같이 하기로 했다. 정 선생 사무실로 돌아가서 콜택시 하나를 얻어 타고 버스 터미널로 가서 짐을 찾은 후 시내 숙소를 돌아왔다. 굉장히 긴 거리였는데 20 peso 밖에 안 나온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가는 동안 하루 30 peso 밖에 못 번다는 운전기사가 구걸을 하는 애들에게 동전을 나눠준다. 못사는 사람들끼리 서로 돕고 사는 광경을 본 것이다. 나는 여행하면서 애들에게 돈을 안 주는 주의인데 그게 정말 잘하는 일인지 모르겠다. 저녁때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pedestrian mall을 걸었다. Pedestrian mall은 차가 안다니는 상가 거리인데 남미의 웬만큼 큰 도시에는 항상 있다. 숙소 근처에는 Florida와 Lavalle 길이 pedestrian mall이다. 밤 8시인데 아직 저녁식사 시간이 아닌지 음식점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밤 10시는 되어야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Remis 사업하는 정 선생의 얘기가 생각난다. 아르헨티나는 사회가 매우 부패해서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단다. 자기도 경찰에 매주 상납금을 바치는데 그래야 경찰과 문제가 안 생긴단다. 상납금은 일주일에 불과 15 peso란다. 한국 돈으로 5천 원 정도이니 아르헨티나는 경찰 상납금까지 싼 나라다. 참 신기한 나라다. 살기 좋은 나란지 아닌지 좀 혼란스럽다. 여행지도 Buenos Aires 번화가 풍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