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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재를 시작하며
고등학교 다닐 적에 학교 당국이 극장들과 협조해 개설한 ‘문화교실’이라 해서, 영화를 싸게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당시 영화는 입시공부에 찌들려 지내는 내게 숨통을 터주었다. 그때 본 영화들 중 몇 편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애절한 사랑이야기 〈라스트 콘서트 (The Last Concert, 1976)〉, 선율을 타고 가족의 아름다움과 사랑과 애국심이 담긴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 1965)〉, 또한 성서이야기는 기억에 크게 남지 않지만 지금도 선연히 떠오르는 마상 전투 장면이 압도하는 〈벤허(Ben Hur, 1959)〉 등 너무 재미있고 가슴에 깊은 인상을 남긴 영화들이 많았다. 특히 〈나자리노(Nazareno Cruz Y El Lobo; The Love Of The Wolf, 1974)〉라는 영화는 장면이나 줄거리는 하나도 생각이 안 나지만 당시 고등학교 방송부에서 점심시간만 되면 주제가를 틀어주어, 음악을 들을 때마다 영화 속 환상적 분위기에 온몸에서 전율을 느꼈던 체험이 지금도 강렬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영화를 좋아하는 내 성향은 지금까지 계속되어, 바쁘지 않으면 요즘도 1주일에 한두 편은 본다. 물론 돈을 주고 인터넷에서 다운로드를 받아서 볼 수 있어 가능한 일이다. 영화는 또한, 한 번 더 대학입시에 도전하느라 재수생활을 하고 있는 딸에게도 좋은 청량제이자 마음의 양식 역할을 하며, 함께 보는 날은 오붓한 가족시간을 갖게 해주는 좋은 조력자 역할도 한다. 이렇게 생활의 일부가 되고 있는 영화는 내게 어떠한 정신적·정서적·영적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1920년대 프랑스의 초현실주의자들은 영화의 이미지에서 영혼을 보았으며, 그 안에서 리듬을 발견했고, 더 나아가 영화의 미래를 통해 모던(modern)한 시대정신이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드러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비슷한 시기에 히틀러의 선전 책임자 괴벨스는 정반대의 목표를 갖고 영화-기계장치의 선동성을 믿었다. 영화는 전쟁의 도구이며, 혁명의 마이크이며, 자본의 상품이며, 미학의 대상이기도 했다.
영화를 사유하는 경로와 방법은 다양하다. 그것은 영화작가를 통해서, (원작을 각색한 경우) 원작과의 비교를 통해서, 그리고 이론적인 연구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프랑스의 유명한 영화이론가 중에 앙드레 바쟁(Andre Bazin; 1918-1958)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영화를 존재론적으로 사유했다. 바쟁은 고대 이집트의 미라를 예로 들면서 영원함을 바라는 인간의 심리에 대해 언급한다. 죽음에 직면한 인간이 자신의 형상을 인위적으로 고정시켜 지속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이야기다. 바쟁은 또한 영화가 인상주의 회화와 연극, 그리고 사진의 객관적 이미지의 결과라고 생각했으며 영화언어의 발전과 기술의 진보를 옹호했다. 바쟁이 지적한 영화의 이런 부분과 유기적으로 짜인 음악을 첨가한다면, 좀 더 온전한 영화에 대한 서술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조금은 생각해보아야 하는 추상적 개념이 많은, 영화이론가의 영화에 대한 미학적 접근방식을 상식인의 생활 체험적 접근방식으로 바꾸어보자. 무엇보다 나의 경험에 따르면, 영화는 음악작품, 미술작품, 문학작품 처럼 좋고 유익한 것 일수록 나의 이성과 감성과 영성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즉, 이성을 더욱 날카롭게 벼려주고, 감성을 더욱 풍부하고 깊게 해줌으로써, 자비(사랑)와 지혜(진리)와 생명력을 더욱 증장시켜주는 것 같다.
오늘날 영화는 컴퓨터를 통해 볼 수 있다. 커다란 스크린 앞 어두운 관객석에서 꿈같은 상태에 사로잡힌 소극적인 영화 관객이라는 기존의 관념은 크게 변화되고 있다. 이제 자신의 거실에서, 안방에서, 임의로 재생버튼을 누르고, 자기가 좋아하는 장면으로 건너뛰고, 대사를 좀 더 음미하며 읽기 위해 천천히 돌려가며 정지버튼을 누르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관객이라는 개념이 좀 더 현실적인 의미의 관객이지 않을까 한다. 물론 집단적으로 영화를 보며 문화적 동질성을 확인하고 감상 후 토론 등을 통해 축제의 마당을 이루는 건강한 집단관람 문화의 긍정성은 언제나 유의미하다. 그런데 독자 여러분께서 지금 읽고 계시는, 이러한 영화에 관한 글은 총체적이고 온전한 영화감상에 어떤 의의가 있는 것일까?
필자나 독자 여러분께서 익히 아는 영화중에 〈쉘부르의 우산(Les Parapluies De Cherbourg; The Umbrellas Of Cherbourg, 1964)〉이라는 영화가 있다. 필시 독자 여러분은 아름답지만 슬프고 애잔한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가 〈쉘부르의 우산〉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오해다. 이 영화는 결코 단순한 사랑이야기를 담은 뮤지컬이 아니라 전쟁이 야기한 이별의 드라마다. 1960년대 프랑스 영화가 알제리 전쟁에 대해 보여줄 수 있었던 기나긴 ‘부재’(不在)를 담고 있다. 그것은 알제리로 떠나야만 했던 프랑스 젊은이들의 부재를 말한다. 물론 이 영화에 알제리 전쟁이 직접적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만일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제대로 알고 영화를 보았다면, 독자 여러분께서 단순한 연애 이야기 차원을 넘어서서 좀 더 깊이 있고 안목 있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으리라.
독자 여러분은 읽고 있고 필자로서는 쓰고 있는 이와 같은 글의 의의는, 바로 이렇게 제대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것이다. 아는 만큼 더 잘 보이고, 더 잘 즐길 수 있음은 영화에도 적용된다. 종합예술로서 영상, 대사(문학), 음악 등이 긴밀하게 짜인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는 데는, 상당한 신경의 집중과 사색이 필요하며 길잡이 역할을 하는 글의 도움을 받으면 더욱 효과적이다. 그런데 영화에 관한 글은 영화를 더 빨리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독자가 영화를 더 느리게 보도록 만들려는 것이다. 영화에 관한 안목 있는 글은, 소란스러운 소비의 경제학에 휘말려든 오늘날 영화의 과잉생산에 맞서 위대한 영화를 지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필자로서야 영화 전문가도 아니고 다만 불교적 관점에서 안목 있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에 불과하지만, 필자가 〈미주현대불교〉 잡지에 이런 글을 쓰는 의의도, 훌륭한 영화를 수호하고 널리 전파하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미주현대불교〉 잡지의 독자 대부분이 불자(佛子)라 할진대, 수행과 포교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좋은 영화를 발굴해 내고 널리 알리려는 것이 이 글을 기획하고 집필하는 목적인 것이다. 붓다께서 각지로 떠나는 제자들에게, 포교할 때 각 지방의 말로 포교하라 일러주셨듯이, 많은 사람들이 책보다는 영화를 보고 영화를 비롯한 영상물의 영향을 많이 받는 요즘 시대에, 우선 불자들 자신이 좋은 영상물을 골라보고 가족뿐만 아니라 친구와 이웃에게까지 권하는 행위는, 자신의 문화생활을 살찌울 뿐 아니라 문화적 포교활동의 일선에 서는 실천행위라 할 만하다.
불자집안이라고 맨 날 자녀에게 〈리틀 부다(Little Buddha, 1993)〉나 〈쿤둔(Kundun, 1997)〉만 보여주는 차원에서 넘어서서―사실 전형적인 불교영화 하면 몇 편 되지도 않으니 금방 레파토리가 떨어지고 만다―〈신과 나눈 이야기(Conversation with God, 2006)〉나 〈평화로운 전사(Peaceful Warrior, 2006)〉 같은 영화도 보여주면서 자녀나 자녀의 친구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할 수 있어야 현대를 사는 불자가 아닐까 한다. 또한 기독교 신자인 친구와 더불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Passion of Christ, 2004)〉를 놓고 진지하게 예수님의 메시지와 위대함을 공유할 수 있어야 현대적인 불자요, 종교간 대화와 통합을 모색할 줄 아는 지혜롭고 깊이 있는 불자라 하지 않겠는가!
일전에 필자는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에린 브로코비치(Erin Brochovich, 2000)〉라는 영화를 보면서 『성경』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강도를 만나 쓰러진 사람을 보고도 당시 신전에서 일하는 유대인의 존경을 받는 사제와 레위인은 지나쳤지만, 경멸당하던 사마리안 인은 쓰러진 사람을 보살폈음)를 떠올린 적이 있었다. 교회에 나간다는 이들보다, 성당 미사에 참석한다는 이들보다, 불사에 많은 시주를 한다는 이들보다, 이 영화 속 주인공은 예수님 이야기 안하고 부처님 이야기 안 하면서도 어려운 사람의 딱한 처지를 외면하지 않고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고 돕는 비할 바 없이 선한 사람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코믹한 스타일이라 재미도 있으면서 감동이 물씬 느껴지는 영화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웃을 사랑하며 삶을 더욱 적극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타오르게 만드는 영화였다. 어떠한 종교도 개입되어 있지 않고, 어떠한 성자 이야기도 언급되지 않았지만, 참으로 뛰어나게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가슴깊이 느끼고 실천하게 만드는 가장 종교적인 영화 중 하나에 속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이 글을 통해 다루어지는 영화는 전형적으로 불교를 다루는 영화도 있을 테고, 성서에 근거했거나 예수님의 삶과 관련된 기독교, 카톨릭 영화도 있을 것이며, 소위 말하는 뉴에이지 영화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외형적으로도 종교적·영성적 영화의 색깔을 띠는 영화뿐 아니라, 아무런 종교적 색채를 표면적으로 내세우지 않았다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훌륭한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우주의 이법(理法)에 대해 생각하게 하며, 지혜(진리)와 자비(사랑)에 입각한 바른 삶을 고양시켜주는 다양한 영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영화예술은 종합예술이며, 사실상 그 어떤 예술 장르보다 우리의 오감(五感)을 총동원해 감상하게 되는 예술이다. 그러니만치 과거에 보았던 영화라 해도 작품수준이 높은 영화라면 2번, 3번 보아도 언제나 새롭게 대하는 장면이 있게 마련이고, 음악에서 느껴지는 감동의 폭과 깊이 역시 새롭다보니 더욱 커다란 예술적 희열을 맞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나 자녀들과 함께 보며 교육적 효과를 노리거나 친구나 선후배와 더불어 보면서 포교의 효과를 의도하는 경우, ‘신심에 바탕 한 원력(願力)’의 힘이 보태져 한층 예민한 감수성과 지성이 발휘되면서 최고도의 영화감상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요즈음 들어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지 않아 우려스럽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압도적인 시청각 매체의 영향 탓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이를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시절 인연이 이러할진대 과거 주로 책을 통해 얻었던 지혜의 자양분을 좋은 시청각 매체를 통해 얻어내면 될 일이다. 나아가 영상 체험에서 자극을 받아 원작이 되는 책을 독서하는 경우도 많으니 영화 매체를 좀 더 새로운 관점에서 볼 일이다. 그리하여 이 연재가 좋은 영상물을 매개로 한 사색의 장으로 되어 독자 여러분께서 불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사유하고 실천하는 계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또한 이 글을 통해 다루어지는 영화를 다시 보거나 새로이 보게 되면서, 독자 여러분께서 좋은 영화를 깊이 있게 감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필자로서는 연재 첫 호에서 어떤 영화를 다루어야 할지 여러 영화를 놓고 고민했다. 뭐니 뭐니 해도 불교잡지에 실리는 영화 이야기이니만치 가장 불교적 교리나 사상을 풍부하게 다루고 있는 〈리틀 붓다(Little Buddha, 1993)〉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제격이라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하지만, 개봉당시 발행인이자 편집인이신 김형근 선생님께서도 간략하게나마 본 잡지를 통해 다룬 적이 있고, 독자 여러분들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나중에 깊이 있게 다루자는 심산으로 미뤄놓고, 이 번 호에 집중적으로 살펴볼 영화는 〈쿤둔(Kundun, 1997)〉으로 정했다. 〈리틀 붓다〉와 마찬가지로 가장 널리 알려진 불교 영화 중 하나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영화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2. 영화 〈쿤둔〉
필자는 〈쿤둔〉 이외에 이 영화를 감독한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 1942-) 감독의 영화를 3편쯤 본 적이 있다. 1편은 중간 정도밖에 보지 못했으니, 사실상 2편만 제대로 본 셈이다. 그 중 1편은 폴 뉴먼과 톰크루즈가 나오는 당구영화였다. 무척 재미있고 기억에 남는 영화였다. 달라이 라마의 인도망명 시기까지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와 당구 영화라니, 얼핏 보아 너무 이질적인 영화인 듯 보이지 않는가? 영화사에서 스콜세지 감독은 아메리칸 뉴웨이브(American New Wave) 계열 감독에 속한다. 이 계열에 속하는 감독들은 1980년대와 1990년대까지 적극적으로 활약했다. 〈대부(Mario Puzo's The Godfather, 1972)〉로 유명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 1939-) 감독도 이 계열의 감독이다. 뉴웨이브 감독들은 아주 개인주의적인 테마 양식을 발전시켜 느슨한 줄거리, 애매한 인물의 동기부여, 낮은 조명, 팝 음악 삽입을 통한 논조의 부조화한 병치 등이 특징이라 한다. 스콜세지는 뉴요커(New Yorker)로서 1970년대 초에 등장해 음울하고 거친 범죄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 스콜세지는 삶의 어두운 면에 대한 묘사로 유명해졌지만, 그가 처음에 품은 큰 뜻은 성직자가 되는 것이었다. 해서 종교에 대한 그의 관심은, 앞으로 지면이 허락한다면 다루게 될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The Last Temptation of Christ, 1988)〉과, 바로 우리가 살펴보게 될 〈쿤둔〉 같은 영화들에서 직접적으로 표현된다. 20편에 가까운 모든 영화를 보고 평을 하는 전문 영화비평가들에 따르면, 필자가 보았던 당구를 소재로 한 영화 〈컬러 오브 머니(The Color of Money)〉(1986)에서 어느 순간에 당구대의 이미지가 한 성인(聖人)의 형태를 드러내듯이, 주제가 명백히 종교적인 것이 아닐 때도 종종 상징적인 표현이 스콜세지의 이야기에 정신적인 차원을 덧붙인다고 한다.
자 이제 〈쿤둔〉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13대 달라이 라마가 서거했다. '쿤둔'(원래 발음은 ‘꾼뒨’으로 ‘살아있는 부처’라는 뜻)의 자리는 비워졌고 섭정 중이던 레팅 린포체는 4년 뒤, 티베트의 국경지대에서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온 13대 달라이 라마의 환영을 본다. 레팅은 승려들을 이끌고 국경 지방으로 향한다. 그리고 마주친 두 살배기 아기.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오랜 병석에 있던 아버지가 병이 나았고 또 집 앞에는 까마귀 한 쌍이 아기의 탄생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했다. 유심히 아기를 들여다보는 레팅. 그때 아기가 13대 달라이 라마의 염주를 잡고 소리친다. “이거, 내꺼야!” 레팅은 아기에게 고개를 숙인다. “쿤둔”...
12살의 슬픔. “난 너무 어린 걸요. 내가 뭘 할 수 있겠어요” 병정놀이를 좋아하고 엄마 품이 마냥 그리운 아기 달라이 라마. 그러나 아기는 포탈라 궁내에 숨겨진 13대 달라이 라마의 물건을 용케도 찾아낸다. 급기야는 별궁의 벽장에 숨겨진 작은 이빨마저도... 그러나 그가 달라이 라마의 환생이라 해도 왕이 되기에는 너무 어린 소년. 2차 대전 직후, 중국은 공산화의 격동기를 겪고, 그 와중에 티베트는 침략의 위협을 받는다. 불안한 어린 왕...
신탁(神託) 의식(영화에서 보면 공식화된 일종의 강신무 역할을 하는 승려가 신탁의식을 거행한다)이 행해진다. “긴 전쟁이 있을 것이다. 고통이 계속될 테고 모두 떠돌게 될 것이다. 너무 고통스러워 시간이 더디 갈 것이다.” 불길함은 점점 더해가고 마침내 중국이 침략해 온다. 세계열강의 외면 속에 '쿤둔'의 백성들은 무참히 학살된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의 주권을 넘기는 서류에 서명하기를 거부한다. 마침내 중국 정부는 그를 암살하려 하고, 달라이 라마의 신하들도 하나 둘 떠나간다. 홀로 남겨진 소년. “이곳에 남는다면 모두 죽겠지. 그러나 떠난다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어느 날 또 다시 신탁이 내린다. “오늘밤, 떠나라.” 18세의 망명자가 되어 티베트의 국경을 넘는 '쿤둔'. 어렵사리 머물게 된 인도 국경 지역에서 ‘쿤둔’은 하염없이 망원경을 통해 고국 티베트 쪽을 바라보는데, 인도와 접경한 고국산천 위 하늘에 먹구름이 끼어 있다.
필자가 이 영화를 보며 가장 깊이 생각한 것은, 영화 곳곳에서 다루어지는 달라이 라마의 기본노선인 ‘비폭력’ 노선이었다. 이미 힌두교에 입각한 간디의 비폭력 노선이 역사적으로 장엄한 드라마를 연출한 바 있지만, 불교적 관점에서 비폭력 노선을 가장 줄기차게 실천해 온 인물 중 한 분인 달라이 라마와 관련된 영화를 보면서 불교적 관점에서 비폭력 노선을 사유해보는 일이 필자에게 아주 의미 있게 다가왔다.
추호의 거리낌도 없이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부모를 향해 총을 겨누어 사살하게 하는 최악의 행위를 자행했던 중국군인들. 수행에 전념하던 수많은 승려들을 포함해 무방비의 티베트인들을 무수히 죽인 중국인들. 티베트 전체 인구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약 120만 명을 살해한 중국인들. 많은 수의 티베트 국민을 감옥과 강제노동 수용소에 감금했고, 6천 개 이상의 수도원, 사찰, 문화적·역사적 건물들을 파괴하고 유물들을 약탈한 중국인들. 티베트 여성들에게 강제로 불임시술을 시행해 임신할 수 없는 티베트 여성의 수를 급증시킨 중국인들. 이런 중국인들에 대해 1989년 노벨 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달라이 라마는, 맨 먼저 객석의 양해를 구한 뒤, 고국에서 혹은 세계 도처에 뿔뿔이 흩어져 자신의 수상 소식을 함께 기뻐하고 있을 동포들에게 티베트말로 반가운 소식을 전하면서 당부의 말을 했다. “중국인들을 미워하지 마세요. 그들도 똑같은 인간입니다. 그들이 싫어하는 위해(危害)를 가하지 마세요. 한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떠나지 마세요.” 영화 속에 나오는 달라이 라마의 독백도 이와 같은 맥락의 말이다. “나의 적도 무(無)로 돌아갈 것이며 나의 벗도 무(無)로 돌아 갈 것이니 나 역시 무(無)로 돌아갈 것이다. 만사가 무상(無常)하도다. 만사가 덧없음이여. 기뻤던 일 모두 다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한번 간 것은 다시 오지 않는 법. 묶인 자 풀어주고 갇힌 자 석방하고 얽매인 자 해방시켜 뭇 생명을 남김없이 열반으로 이끌리라... 부디 전생에 쌓은 내 선업(善業)으로 모든 중생의 고통을 남김없이 멸(滅)할 수 있기를 발원합니다.”
인과필연(因果必然)이라 한다. 나에게, 그리고 내 민족에게 닥치는 모든 일은 내 탓이요, 우리 민족 탓이다. 나에게 닥치는 일이 당장 생각해볼 때 너무 억울해서 위해를 가하는 상대방을 향해 분노의 불길이 타오르고 나아가 죽이고 싶을지라도, 한 생각 돌이켜 왜 이렇게 나에게 이런 참절비절(慘絶悲絶)한 상황이 닥쳤나를 숙고해보면, 이 생(生)에서 내가 뿌린 씨앗이 없다면 적어도 전생(前生)에 이런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는 씨앗을 내가 뿌렸을 것이다. 내가 만일 분노를 일으키고 상대를 제압한다면, 상대 역시 두려움과 반항심에 불탈 것이다. 결국 나 또한 불도(佛道)에서 멀어지고, 상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결국 내가 용서하는 길만이 내가 자유로워지는 길이요, 상대가 그나마 더 이상 악행을 저지를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길이다. 물론 그 용서의 과정이 비굴과 체념이 아니라 지혜에 입각한 인고(忍苦) 수행의 자세와 불교적 원리에 입각한 담대(膽大)함을 통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말이다. 신약성경에서 예수께서 “누가 너의 오른쪽 빰을 때리면, 왼쪽 빰도 내어 주라”고 하신 말씀은, “당신이 나한테 아직 안 풀린 게 있으면 확실하게 다 풀어서 당신과의 악연(惡緣)을 마감하면 좋겠소이다.” 라는, 범부로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심오한 인과필연의 사상을 내보이신 말씀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이 쉽지 실제 상황에서 어디 뜻대로 되는가! 어렵지만 그럼에도 진정한 불자는 상대의 폭력과 압제에 대해, 자신의 수행을 더욱 올곧게 하고 시절인연에 따른 자신의 책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으로 화답하지 않겠는가.
한편, 이 영화를 통해 공산주의 사상과 불교 사상의 대비가 뚜렷하게 보이는 점도 깊이 음미할 만한 대목이다. 실제 역사적 사실로, 달라이 라마가 시나리오 작가(이 분은 영화 〈ET〉의 대본도 쓰신 분이다)에게 구술하여 재구성했다는, 달라이 라마와 마오쩌둥(모택동) 간의 대화나 그 밖의 대화를 통해 살펴보자. 또한 한 국경 수비대원의 질문에 답하는 달라이 라마의 인상적인 말씀도 음미해보자.
중국을 처음 방문한 달라이 라마에게 불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마오쩌뚱 / 우리 어머니도 불자였소이다. 나는 부처님을 존경합니다. 계급을 부정하고 부패를 질타하고, 사회주의와 불교는 공통점이 많아요.
달라이 라마 / 침묵
달라이 라마의 중국 국빈방문 마지막 날 종교에 대해 밝히는 마오쩌뚱 / 종교는 독입니다. 인민을 나약하게 만들지요. 마약처럼 정신과 사회를 흐리게 하고 인민을 미혹케 합니다. 종교에 쩔다보니 티베트인은 열등국민이 되었소이다.
달라이 라마 / 침묵
티베트 점령군의 단 장군 / 동부에서 반란이 일어났으니 티베트 군을 충돌시켜 토벌해야겠소.
달라이 라마 / 민간인을 폭격하다니 용납 못하겠소.
단 장군 / 토벌이 나의 임무요. 당신네는 개혁이 필요한 사람들이고, 우린 그대들을 해방시키러 왔소.
달라이 라마 / 우릴 자유롭게 하실 이는 오직 부처님뿐이시오. 지혜가, 자비가 우리를 해방시킬 것이오. 나를 해방시키는 건 당신이 아니라 나 자신 뿐이오.
달라이 라마가 망명을 위해 인도 국경초소에 당도하자 질문하는 국경수비대원 / 당신이 부처시옵니까?
달라이 라마 / 나는 그림자일 뿐이요. 물 위에 비친 달처럼 나를 통해서 그대들 자신의 선한 그림자를 보기를 원할 뿐.
티베트 불교와 관련해 일종의 여담일 수도 있지만, 필자로서는 영화에서도 여실히 드러나 있는 위대한 승려들의 환생자 발굴 노력과 환생자에 대한 특별 조기교육에 대해서는 좀 비판적이다. 왜냐하면 누구나 환생자이며 누구나 수행을 통해 위대한 존재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전에 따르면, 결국 누구나 부처가 될 때까지 환생하거나 극락세계에서 지속적인 수행을 할 수밖에 없는 법이다. 그래서인지 어떤 한국의 선사는 대중 설법에서조차 “여러분이 수행하는 과정에서 설사 교통사고가 나서 피를 철철 흘리며 죽더라도, 여러분의 생명에는 하나도 손해되는 것이 없는 법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어떻게든 지도적 승려들의 환생자를 발굴해내어 조기교육을 통해 다시 지도적 승려로 내세우는 티베트 불교의 방식은, 일정 정도 엘리트주의적 경향성을 띠고 있지 않나 생각되는 것이다. 한국에서처럼 오랜 수행과 대중 속에서의 검증을 통해 자연스럽게 존경받는 대선사의 자리에 오르는 불교적 가풍(家風)이, 훨씬 부처님 정신에 맞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최근 그 어느 때보다 우울한 4월 초파일을 보낼 수밖에 없게 만든, 필자를 포함한 한국 불교인의 현주소를 감안하고, 적어도 미국에서는 가장 영향력 있는 불교가 티베트 불교임을 감안할 때, 티베트의 불교적 가풍이 어쨌든 나름으로 커다란 영향력과 위신력을 지녔음을 부인하지는 못하겠다.
이제 이 영화의 영상이나 음악에 대해 살펴보자. 이 영화에 대해 평을 한 윌리엄 P. 콜맨(William P. Coleman)이라는 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까지 몇 달간에 걸쳐 이 영화를 세 번째 보았지만, 내 생각은 계속해서 변하고 있으며 많은 의문들이 그대로 남아있음을 발견한다. 몇 가지 평을 간단히 하자면 다음과 같다. 전문 연기자의 연기는 아니었지만 매우 열심히 하고 있으며, 특히 레팅 린포체 역할을 한 소남 퓐촉(Sonam Phuntsok), 수석 의전관인 갸초 루캉(Gyatso Lukhang) 및 딱타(Taktra) 린포체 역을 맡은 체왕 직메 차롱(Tsewang Jigme Tsarong)의 연기는 훌륭하다. 영상은 아름답고, 음악은 조용하지만 다소 귀에 거슬리면서 적절하지 못한 듯했다. 전반적으로 이 필름은 매우 인상적이고 흥미롭다. 놓치기 아까운 경험이다.”(1998년 4월 26일) 필자로서 대체로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이나 음악과 관련해서는 콜맨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다.
알프스의 기다란 호른과 비슷하게 생긴 티베트 악기 ‘둥첸’에서 울려나오는 저음과, 우리나라의 자바라를 소형으로 축소한 듯한 ‘띵샤’의 맑고 장쾌한 소리, 태평소와 비슷한 악기에서 나는 우렁차고 때로 압도되는 센 소리, 그리고 승려들이 독특한 발성법으로 함께 내는 때론 왁자지껄한 듯하고 때론 웅얼거리는 것 같은 성음(聲音; vocal sound)이 인상적인 티베트 음악은, 얼핏 들으면 기괴하거나 잡음 덩어리처럼 들릴 수 있다. 그리하여 티베트 음악은 겉으로 보기에 평온하고 온유한 티베트인과는 너무도 대조적으로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티베트 불교음악에서 느껴지는, 때론 웅숭깊고 때론 격정적이면서도 날카롭고 은은하다가도 혼돈스러운 소리는, 심오한 불법, 수행력, 인간의 고통과 번뇌를 소리로서 다양하고 풍부하게 형상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 티베트인의 평온하고 온유한 면모의 바탕에 자리 잡은, 인생고에 대한 치열한 성찰과 뜨거운 구도의 열정이, (요즘 말로 튀는 듯한) 독특한 티베트 불교음악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해당 민족의 음악은 결국 해당 민족의 마음속 정경을 드러내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러한 티베트 음악은 영화 속에서 때로는 단독으로 때로는 서양악기와 더불어 연주되며, 티베트 음악 없이 서양음악으로만 연주되는 경우도 꽤 있다. 필자가 보기에 이 영화에 구현된 음악적 성취는, 티베트음악과 서양음악을 잘 결합시킨 좋은 사례라 생각된다.
이 영화의 영상과 관련해 한 가지 더 지적할 점은, 모래 만다라 장면과 관련된다. 완성된 모래만다라를 해체해버리는 장면이 중요한 대목마다 나오는데, 그렇듯 오랜 시간을 들여 아름답게 수놓은 만다라 문양도 결국 영원할 수 없음을 통해, 만물의 무상(impermanence)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라 하겠다. 물론 선업[善業]이나 도업[道業]이라 할 만다라 제작이라는 정성어린 수행을 통해, 해당 주체가 완전 성불을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내딛고 있음을 놓친다면 허무주의에 빠질 것이다. 또한, 아름다운 모래 만다라는 일정 시간 본인을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훌륭한 예술작품이자 불사[佛事]의 성과물로서의 일반적 기능도 함은 물론이겠다.
한편, 독자 여러분께서는 앞서 인용된 영화평에서 지적된 대로 훌륭한 연기의 주체인 출연진 전원이 비전문 연기자였음에 좀 놀랄 것이다. 달라이 라마의 실제 조카 분께서 쿤둔의 어머니역을 맡는 등, 출연진 다수가 달라이 라마와의 직간접적 인연을 가진 분들이었다는 조건이, 단박에 아마추어를 뛰어넘을 수 있게 하지 않았을까 즐거운 추측을 해본다. 많은 독자들 역시 영화 속 출연진의 연기가 훌륭하다는 데 이론이 없으리라는 생각이다.
이제 영화 〈쿤둔〉 제작 과정의 인상적인 에피소드를 다룬, 한 잡지사의 스콜세지 감독 인터뷰 내용 일부를 인용하고자 한다. 이 인용문 또한 〈쿤둔〉이라는 영화의 이면(裏面)을 보게 해주어 영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리라 확신한다. 이 인용문으로, ‘뜻으로 본 영화이야기’ 그 첫 번째 마당을 마무리 짓는다.
프리미어(잡지사) / 당신은 촬영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며, 뉴욕을 떠나서 촬영하는 것도 싫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몇 편의 작품들은 뉴욕 밖에서 만들어졌고, 〈쿤둔〉은 아예 모로코에서 촬영했습니다. 즐거운 시간이었는지요?
마틴 스콜세지 / 〈케이프 피어〉는 플로리다에서, 〈카지노〉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촬영되었습니다. 라스베이거스는 내겐 로스앤젤레스 같은 곳이었으므로, 별로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로코의 경험은 아주 좋았습니다. 우리는 인도로 먼저 갔었는데, 정부 측에서 가부를 쉽게 결정하질 못하더군요(인도 정부가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염두에 둔 듯함-필자). 수석 제작자는 곧장 모로코로 가서 방을 구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촬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 세트를 지었죠. 음향에 적합한 곳은 아니었지만, 모래 바람을 제외하면 아주 조용한 편이었습니다. 거기서 비전문 배우들과 작업하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어요.
프리미어 /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정말로 좋은 사람들이었으리라는 느낌이 듭니다.
마틴스콜 세지 / 정말 그랬습니다. 영화에서 보이는 그대로입니다. 내가 세트에 도착하면 제작자들이 와서 묻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그때만 해도 승려들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내가 트레일러에서 나오면 출연하는 승려들이 미소를 띠고 서있었습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잘 되리라는 확신이 생깁니다. 가끔씩 신경이 날카로워지기도 하지만, 그럴 때면 그들이 지닌 희망적인 에너지가 날 안정시켰습니다. 마지막에 산 위에서 촬영하는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들은 놀라운 인내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내가 지금 하려고 하는 일들의 어마어마함을 생각하며 자신이 없어질 때면, 그들을 보며 생각했죠. “감정적으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들이 지금 나와 함께 하고 있다. 이런 판국에 커피가 식었다고 불평할 수 있는가? 힘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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