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부 설교
소사제일교회 담임 문학진목사
제목: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본문: 사도행전 14:8-18
요절: 15절
소요시간: 30분
본문내용:
에딘버러 대학에 제임스 심프슨이란 교수가 있었습니다. 진통제를 발견해 고통 없이 수술 받게 하는 공을 세웠습니다. 의학계의 노벨상 감이라 할 만큼 대 발견이었습니다. 강의 시간에 한 학생이 노교수 심프슨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의 생에 가장 뜻 깊은 발견 한 가지를 들라 하면 무엇을 들겠습니까?" 그는 한참 동안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의 생에 가장 귀한 발견은 내가 죄인이란 사실과 예수님이 나의 구주란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맞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입니다. 이것을 알면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도 하나님께 돌려질 영광 가로채면 안됩니다. 모든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만 돌려져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행한 후에 우리 자신이 영광을 받으면 안되고, 하나님께만 영광이 돌려져야 합니다.
루스드라에서의 기적(쓰스와 허메로 숭배하려함)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전도하다가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루스드라에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로 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자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여 듣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그를 자세히 보니 구원을 받을만한 믿음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바울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그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앉은뱅이가 일어나 뛰며 걷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기적 앞에 모든 사람이 놀랐습니다.
모였던 사람들이 바울이 행한 일을 보고 놀라면서 이렇게 소리를 질렀습니다:“신들이 사람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다”. 바울은 허메라, 바나바는 쓰스라 했습니다. 허메는 헬라의 올림포스 12신 중 하나로, 쓰스의 막내 아들입니다. 그는 신들의 사자이며, 그 기능은 복합적입니다. 쓰스는 로마의 최고신 쥬피터(Jupiter) 신을 말하는 헬라어의 명칭입니다.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루스드라 땅에 쓰스와 허메가 행인 모습으로 방문했을 때 시민들이 매우 냉담했습니다. 신들은 시민의 냉대에 진노해 홍수로 성읍을 멸했습니다. 이 내용을 알아서인지 루스드라 시민은 바울과 바나바가 신들의 화신(化身)인줄 알고, 소를 잡고 제사를 드리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이 높아 질수 있는 얼마나 좋은 기회인지 알 수 없습니다. 높여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하려는 의도도 없었습니다. 그저 가만히만 있으면 신으로 추앙받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럴 때가 아주 중요한 상황입니다.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합니까?
바울과 바나바의 반응
이런 상황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어떤 태도를 취하고, 반응을 보였습니까? 14절에,“옷을 찢고 무리가운데 뛰어 들어가 소리 지르며”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
무슨 말입니까? 나도 인간이니 내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란 말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겨우 무리들을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 드리게 했습니다.
웬만하면 말만 해도 되지 않나요? 옷을 찢을 것까지 있나? 소리 지를 것까지 있나요? 무리하게 말릴 필요 있나요? 자발적으로 맘에 우러나와 신으로 모시려는 것인데--. 바울과 바나바는 비록 그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일이었지만 그것도 못하게 했습니다. 못하게 말리되 철저하게 말리려고, 옷을 찢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요즘 세상에 슬며시 자기 자랑하고, 자기를 따르게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나요? 어떤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그들에게 넘어가 따라가고, 추앙하기도 합니다.사람들에게 이런 속성이 있기 때문에 이런 것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서로가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서로를 이용하고 이용당하기도 합니다. 민감하지 않으면 쉽게 발견되지 않습니다. 예리하게 보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이런 본성과 반대로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기회 아닌 기회도 내려놓았습니다. 철저하게 자신들을 신으로 섬기지 못하게 했다. 자신들을 따르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만 영광을
이유가 무엇인가요? 자신들을 추앙하지 못하게 한 이유가 16-17절에 나옵니다. 어떤 영광도 인간이 받으면 안됩니다.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 허락 하에 되고, 하나님이 할 때 일어납니다. 16-17절을 보세요! 모든 족속들이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음식과 기쁨으로 그들 마음에 만족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맞습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허락하셨기 때문에, 하나님 행하셨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분께만 영광이 돌려져야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것을 알았습니다. 그 분께만 영광이 돌려져야 함을 알았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죄를 범치 않고자 했습니다. 이것을 몰랐던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추앙하고 섬기려고 했습니다. 자신들을 위해서라도 바울과 바나나가 신이 되었으면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것 조심해야 합니다. 때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이용합니다. 사람들이 우상을 만들고 우상을 숭배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우상을 위해서인가요? 아닙니다. 자기 자신 위해 우상 만들고, 우상 숭배합니다. 우상 숭배하도록 만듭니다. 이런 인간 속성을 너무나 잘 알았던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에게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죄를 범치 않으려 했기에 옷을 찢고 소리쳤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대중심리에 휩싸여 무너질 수 있다는 경각심 때문입니다. 당사자인 바울과 바나바가 이렇게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버텼습니다. 결국 어떻게 됐나요? 18절,“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자신들에게 제사 못 드리게 만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든 말리면 됩니다. 안하면 됩니다.
출 32장 보면,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든 사건이 나옵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으로 올라갔다가 늦게 내려왔습니다. 마음이 조급해 진 백성들은 아론에게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 달라했습니다. 그러자 아론이 ‘못하겠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들에게 금고리를 가져오라해 녹이고 새겨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말하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 광경을 본 모세가 아론을 책망하자 구차한 변명만 늘어놓았습니다. 백성들이 너무나 원해서 할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아론은 아무런 제재도 없었습니다. 바울이나 바나바와 비교해 보면, 아론의 변명은 너무나 궁색합니다. 백성들이 아무리 원해도 자신이 옷을 찢고, 소리치며 죽기로 버티면 되지 않습니까? 아론은 안 그랬습니다. 추측컨대 하나님 영광 가로채는 인간 본성에 편승한 것입니다. 아론이 금송아지로 신을 만들었으니,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섬길 때마다 아론을 함께 추앙하지 않았겠나요? 아론이 그것을 기대했다고 볼 수 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론도 바울이나 바나바처럼 옷을 찢고 소리치며 막아야 했겠죠?
우리는 바울과 바나바를 보면서 교훈을 삼아야 합니다.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만 돌려져야 하는데, 사람들은 우리에게 영광 돌리려 합니다. 우리가 좋아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의 이익 때문에 우리를 이용합니다. 사람의 이런 속성을 너무나 잘 아는 사단 마귀가 이렇게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이때 우리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자기합리화하면 안됩니다.
백년에 한번 날까 말까한 유명한 흑인가수 마리안 앤더슨(Marian Andersn, 1902-1973)이라고 있습니다. 23개국에서 명예학위를 받았으며, 아이젠하워 대통령, 케네디 대통령 취임 시에 미국 국가를 독창했습니다. 존슨 대통령으로부터 최고 훈장인 "대통령 자유상패"를 받았습니다. 그가 40년 간 성악활동을 하고 은퇴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보잘것없는 노예밖에 될 수 없는 인간이지만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목소리를 주셨으므로 유명해진 것이지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명예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인간이 사는 최고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돌리는데 있습니다.
모세가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문턱까지 가서 들어가지 못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민수기 20장에 그 이유가 나오는데, 므리바에 있는 반석에서 물을 낼 때 잘못했습니다. 그 잘못이 무엇인가요? 모세가 반석에서 물을 낼 때 20장 10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모세는 마치 자신이 목말라 하는 백성들에게 물을 주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받아야 할 영광을 가로채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목전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했다”는 말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을 가로채면 절대 안됩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모든 영광 돌리는 우리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