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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새에 관한 명상 _ 김원일
1
모든 강은 바다로 이어졌다. 그래서 강의 하구에는 크든 작든 삼각주를 이루었다. 연장 오십사 킬로미터의 동진강도 동해 남단의 바다와 닿아 있었다. 강 하구는 물살이 완만했다. 민물과 짠물이 서로 섞였다. 그 곳에 물고기들이 서식했다. 수심 얕은 수초 사이가 산란에 적당하기 때문이었다. 새우 무리와 조개 무리의 민등뼈동물도 모여들었다. 철새는 물론 나그네새도 그 삼각주에서 주린 배를 채웠다. 그리고 날개를 손질하며 쉬다 떠났다.
나는 강 하구의 얕은 언덕에 앉아 있었다. 삼각주와 넓은 바다가 잘 내려다보였다. 이제 날이 밝아 오고 있는 참이었다. 강 하구에서부터 갈매기들이 날아올랐다. 스무 마리쯤 되어 보였다. 갈매기들이 요란하게 날개깃을 쳐 댔다. 마치 깊은 동굴 속에 갇혔다 풀려 나온 듯했다. 그 수다로 조용하던 개펄이 일시에 소란해졌다. 갈매기들은 주황빛으로 타오르는 공간을 한 바퀴 선회했다 바다 위로 거꾸로 꽂힐 듯 곤두박질했다. 그러나 수면에서 용케 직각으로 꺾어 개펄을 따라 날아갔다. 싸늘한 새벽의 공간에 그 비상이 힘에 차 있었다. 자유스러웠다. 한껏 해방된 그 날갯짓이 부러웠다. 주위의 뭇시선으로부터 나도 저렇게 해방될 수 있다면. 그 해방을 어른들은 방종이라고 말했다. 타락했군, 하고 손가락질했다. 그러나 사실 손가락질은 저들이 받아야 마땅했다. 우리 세대의 타락은 그들로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동 기계로 찍어 내듯 새로운 타락의 방법을 만들어 냈다. 우리는 뒤늦게 그 방법을 답습할 뿐이다. 순간, 나는 형을 생각했다. 봄부터 철새와 나그네새에 미쳐 버린 형이었다. 형은 새처럼 자유인이고 싶어했다. 숫제 한 마리의 나그네새가 되고 싶어했다. 그러나 과연 형이 새가 될 수 있을까. 새는커녕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을까. 한마디로 형은 미쳐 버렸다. 형의 피가 내 심장 속에서도 준동질할까 봐 두려웠다.
|생략 부분 줄거리| 나(병식)은 재수생이지만 공부에 흥미가 없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한다. 같은 재수생인 ‘족제비’는 나와 함께 도요새를 잡아 밀렵꾼에게 팔 것을 권유하고, 나는 족제비를 따라 새잡이에 나선다. 주로 고고장에서 밤을 보내는 나는 집에는 엄마에게 학원비와 용돈을 받기 위해 마지못해 들어온다. 엄마는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학력이지만 수완이 좋아서, 대학을 나왔으나 순진한 아버지를 늘 비웃곤 한다.
대학의 합격이 성공의 보증 수표인지 실패의 부도 수표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문제를 형이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들은 형의 앞날에 대해 모두 부정적이었다. 어느 점으로 보나 옛 상태로 회복될 가망이 없다고들 말했다. 아까운 청년이 폐인이 됐어. 어쩜 사람이 저토록 탈진해 버렸을까. 이제 조만간 연기나 증기처럼 사라져 버릴 거야, 하고 두려워했다. 그런 견해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형은 한때 나의 우상이었다. 나는 열렬히 형을 존경했었다. 그러나 형의 이카로스 날개는 완전히 퇴화되고 말았다. 형의 텔레파시 회로선은 오직 ‘절망’이란 단어만을 남발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형의 절망을 배울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나는 다행히도 아직은 절망에 이르는 길을 몰랐다. 나는 작년에 부산 K대 공대에 응시하여 낙방을 했었다. 며칠을 부끄럽게 지냈다. 고민은 그 며칠뿐이었다. 그러나 형은 수재였다. 고등 학교 때부터 그 이름이 이 동진 바닥에 잘 알려졌다. 형은 서울의 명문 국립 대학 사회 계열에 너무나 당연한 듯, 좋은 성적으로 입학했다. 이학년 때 형은 나쁜 시력 탓으로 방위병의 혜택을 받았다. 그래서 일 년 만에 쉬 군무를 끝냈다. 복학을 한 지 육 개월 남짓, 형은 불장난에 말려들었다. 내가 생각기로 그 점은 순전히 객기였다. 아니 형은 수재였기 때문에 그런 위험을 스스로 자초했는지 몰랐다. 미인박명, 재사박덕이란 말이 꼭 어울리는 짓거리였다. 형은 하숙집에 등사기를 빌려다 놓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정부가 금기로 지목하는 문구가 삽입된 선언문을 찍어 냈다. 형의 행위는 분명히 긴급 조치법에 위배되었다. 형은 당연히 입학했듯, 당연히 퇴학을 당했다. 형은 햇병아리 같은 노란 얼굴로 초라하게 낙향했다. 그리고 이태가 흘렀다.
|생략 부분 줄거리| 전쟁통에 약간 다리를 절게 된 아버지는 어머니의 충동질로 공금을 빼냈다가 학교의 서무과장 자리에서 쫓겨났다. 나는 지난 해 봄, 형과 아버지와 통일에 대해 이야기한 사실을 떠올린다. 실향민인 아버지, 학생 운동을 하는 형, 그리고 분단 이후 세대인 나는 통일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인다.
2
구월 중순을 넘기면서 가을도 한 발 성큼 다가섰다. 여름 동안 무성했던 뭉게구름이 하늘에서 차츰 자취를 감추고 건조한 바람이 대기를 꽉 채워 불었다. 강가의 작은 벌레나 물고기나 조류도 살이 오르고, 겨울을 날 생물들은 벌써부터 겨우살이 준비에 착수했다. 식물은 뿌리를 더욱 견고하게 대지에 박고, 먹이를 쫓는 동물들의 싸댐도 한층 분주했다.
이런 절기쯤이면 동진강 하구의 삼각주에는 여러 종류의 나그네새와 철새를 볼 수 있었다. 청둥오리, 바다오리, 황오리, 왜가리, 고니, 기러기, 꼬마물떼새, 흰목물떼새, 중부리도요, 민물도요, 원앙이, 농병아리 등 수십 종의 철새와 나그네새들이 먹이를 쫓아 싸대는 그 수다스런 행동거지가 꽤 볼만했다. 각양각색의 목청으로 새떼들이 우짖는 소리와 날개 치는 소리가 강변 갈대밭을 자욱 덮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동남만 일대가 공업화의 거센 도전을 받자 그런 새의 종류와 수효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근년에 와서 그 현상은 더욱 현저해져 공해에 비교적 강한 새들만이 찾아들 뿐, 천연 기념물로 지정된 새나 보호조는 숫제 날아들지 않는 종류까지 생겼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 늦가을이니 벌써 오 년 전이었다. 문리대생들의 교내 소요 사건이 있자 학교 당국은 일 주일 동안 가정 학습을 실시했다. 나는 급우 하나와 함께 고향집으로 내려왔다. 우리는 닷새 동안 바다와 맞닿은 동진강 하구의 삼각주 개펄에다 천막을 치고 야영을 했다. 그 때만 하더라도 공해나 자연 보호에 관심이 컸다든지 나그네새나 철새를 관찰한다는 따위의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야영을 했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라디오조차 휴대하지 않았고 오직 자연의,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보고 즐겼다. 자연 속에 함몰되어 문명이라든지 지식, 또는 우리 연령층 특유의 열정이나 고뇌, 분노조차 망각한 채 외곬으로 한쪽만을 편애하며 닷새를 보냈을 따름이다.
|생략 부분 줄거리| 나(병국)는 낙향한 후 고등 학교 선배이자 대학에서 생물학을 강의하는 정배로부터 환경 오염의 위험성에 대해 듣게 되고 점차 새에 빠져든다.
나에 대한 엄마의 기대가 너무 컸던 만큼 나의 낙향은 그 반비례의 배반이었다. 공학 박사로서 이 동진시 공업 단지를 총괄할 행정 책임자 정도는 반드시 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엄마로서는 그 넋두리가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며칠의 넋두리가 끝나자 엄마는 그 전에 내게 보였던 사랑을 증오로써 갚기 시작했다. 넋두리가 욕설로 변했다. 용돈은 십 원 한 장 줄 수 없다. 앉은 자리에서 자결을 해라. 자결을 못 하겠담 문 밖 출입을 말아라. 대역 죄인이니 시민들 보기가 부끄럽지 않느냐. 엄마의 말은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으므로, 나는 그 말을 소화해 낼 수 있었다. 낙향 닷새째, 엄마는 돌연 표범으로 돌변했다. 내 방의 책을 마당으로 꺼내어 모조리 불살라 버린 것이다. 나를 보는 엄마의 눈은 원한으로 충혈되어 있었다. 화가 돋친 엄마는 방으로 뛰어들어 내 옷가지를, 심지어 구두까지 불길 속에 던져 버렸다. 친구나 이웃 사람에게 늘 자랑하던 국민 학교, 중학교, 고등 학교 때의 상장들도 그 불길 속에 휩쓸려 버렸다. 그 때, 나는 엄마가 내게 걸었던 기대가 자식으로서의 애정보다도 더 윗자리를 차지한 허영심임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엄마를 증오할 수가 없었다. 다만 내 마음에 차지하던 엄마의 비중이 좀 낮아졌을 뿐이다. 그리고 내가 엄마의 허영심 정도를 실망시켰다면 그 분노가 아무리 크더라도 이제 엄마에게 더 미안해야 할 이유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 뒤로는 엄마의 욕지거리나 잔소리가 귀 밖으로 흘러갔다. 병식이가 나를 보는 눈도 엄마에 못지않았다. 아우는 얼굴에다 노골적으로 경멸을 보였으나 나에게 그 경멸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가 생각하는 그 나름대로의 삶의 길에서 내가 배척당했다고 그의 생각을 수정시킬 필요는 없었다. 그의 사리 분별력이 객관적이긴 했지만 나와는 전혀 다른 객관이었다. 그러나 개인의 의사가 존중되어야 하는 만큼 그의 생각도 자유였다. 그 두 가족에 비하면 오직 아버지만은 내 편이었다. 아버지는 낙향 첫날, 나를 따뜻이 위로했다. 돌아온 탕아를 맞이한 예수처럼 나를 맞아들였다. 경제권이 없어 살찐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베풀지는 못했지만, 인생이 반드시 한 번은 넘어진다, 그러나 결코 그 한 번에다 인생 전부를 포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내 손을 꼭 잡고, 이 세상의 영화나 권력이나 재물과 닿지 않더라도 인생에는 본받을 만한 여러 길이 있음을 더듬는 말로 이야기했다. 하늘이 어떤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는 명을 내리려면,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을 괴롭히고 그의 살과 뼈를 지치게 만들고 그의 육체를 주려 마르게 하고 그의 생활을 궁핍하게 해서, 하는 일마다 그가 꼭 해야 할 일과는 어긋나게 만든다는 맹자의 비유까지 들먹였다. 방 안에서 감금 상태의 생활에도 한도가 있었다. 또 내가 꼭 방 안에서 갇혀 지내야 한다는 납득할 만한 이유도 없었다. 열흘 뒤부터 나는 고등 학교의 친구를 찾거나 시립 도서관의 출입으로 외출을 시작했다. 그러자 나를 보는 이웃의 시선이 의외로 차가운 데 나는 또 한 번 곤욕을 치러 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모두들 나를 경원하고 두려워했다. 그로써 나는 가족이나 사회나, 어느 곳에서도 내가 적응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환경을 내가 거부했는지 환경이 나를 도태시켰는지 한동안 갈피를 못 잡은 채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나는 홀로인 채 이 도시의 매연 낀 거리와 더러운 골목길과 폐수로 오염된 개펄을 끝없이 방황했다.
|생략 부분 줄거리| 나(병국)는 가족과 이웃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홀로 오염된 개펄을 조사하러 다닌다. 어느 날 동진강에서 심각한 수질 오염의 실태를 확인하고 돌아오던 병국은 강가에서 병식을 만난다. 병식은 공부에 관심을 갖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하지만 나는 동생에게 잔소리할 입장이 못 된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나를 당신이 자주 가는 해주집으로 데리고 간다.
그 날 나는 아버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가 바다를 볼 때 느끼는 의미며, 도요새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근원을 처음으로 가슴 깊게 새겨들었다. 아버지는 말했다.
“……내가 유엔군의 포로가 되자, 나는 곧 전향을 했어. 내 뜨, 뜻에 따라 국군으로 자원 입대를 한 셈이지. 육 개월 뒤 금화 전투에서 훈장 하나를 받고 육군 소위로 승진되었어. 그 때가 이, 일사 후퇴가 끝난 뒤였으니 그로부터 다시는 고, 고향땅을 못 밟고 말았잖은가. 고향땅이 수복되면 가족을 데리고 이남으로 내려오려고 꿈을 꿨던 게 모두 수, 수포로 돌아갔어. 내가 변하기 시작한 것이 그 때부터야. 껍질을 깨고 세상으로 나오려던 벼, 병아리가 다시 달걀집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했으나 이미 워, 원상태의 복귀가 불가능한 그런 경우랄까…….”
하며 아버지는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그리고 수첩 속을 뒤지더니 낡은 편지 봉투 하나를 집어 냈다. 아버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또 고향 통천에 두고 온 조부모님과 두 삼촌, 고모 두 분과 함께 찍은 옛 사진을 보여 주는 줄로만 알았다. 나는 이미 그 낡은 사진을 수십 번도 더 보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꺼낸 사진은 명함 크기의 그 가족 사진이 아니었다. 색 낡아 누렇게 바래진 우표만한 증명 사진이었다.
“너, 넌 이제 이해를 할 거야. 이 사진을 보더라도 나를 미워하지 않을 줄을…….”
아버지는 떨리는 손으로 그 사진을 내게 건네 주었다. 모서리는 이미 다 닳았고 거북등같이 가로 세로 주름마저 져 버려 윤곽조차 희미한 사진이었다. 사진 속의 얼굴은 처녀였다. 양 갈래로 땋은 머리를 흰 저고리의 어깨 앞에 내리고 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는 그 사진의 임자를 나는 대뜸 짐작할 수 있었다.
“통천에 계시는 옛 약혼자시군요?”
아버지는 그 사진을 빼앗듯 내 손에서 앗아 갔다. 그리고 사진을 곰곰이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소학교 저, 접장이었지. 그러나 이제 다 흘러간 시절이야. 그 동안 이 여자도 느, 늙었을 거야.”
아버지는 사진을 봉투 속에 소중히 다시 넣곤, 나를 바라보았다.
“이룰 수 없는 꿈을 파먹고 산다는 것이 어, 얼마나 괴롭다는 걸 넌 아냐?”
하고 묻는 아버지의 주름진 눈이 물기로 번쩍였다. 아버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헤벌어진 입술이 풍기를 만난 듯 떨렸다.
3
|생략 부분 줄거리| 내(아버지)가 아내를 만난 것은 휴전이 되던 해, 상이 군경 재활원에서였다. 전쟁으로 절름발이가 된 나는 활달한 아내에게서 위로를 얻었으나 곧 성격의 차이를 느낀다. 실향민인 나는 곧잘 강가에 나가 새떼를 바라본다. 강가의 도요새를 볼 적마다 외로움이나 그리움이 보상받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집으로 비료 회사의 사람들이 찾아온다.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선생님 자제분이 우리 회사를 상대로 관계 요로에 진정서를 보냈습니다. 자, 여기 시 보건과에서 접수한 진정서 사본을 좀 보십시오.”
노무과장은 마루에 걸터앉아 주머니에서 복사판 서류 한 장을 꺼냈다. 그것을 받아 든 내 손이 떨렸다. 방 안으로 들어가 돋보기 안경을 찾아 낄 틈도 없이 어릿어릿한 글자들을 대충 훑어보았다.
“……‘성창비료’ 석교 공장은 연간 사십 억 규모의 흑자를 내고 있으면서도 폐기(廢棄) 처리 과정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책이 전혀 없음이 입증되었다. 지난 팔월 사일 새벽 두시 이십분, 당 공장은 야음을 틈타 암모니아 가스를 다량으로 배출하여 그 가스가 폐수천(석교천)을 따라 안개처럼 덮쳐 와 동진강 하류로 확산된 바 있다. 이로 인하여 새벽 네시 십분 동진강 하류에서 오징어잡이에 출어하려던 어민 십팔 명이 심한 두통과 구토증으로 실신한 사건이 있었다. 당사는 기계의 밸브가 고장나서 가스가 샜다고 변명하고 있지만 이런 사건은 일 주일을 주기로 이미 수십 차 반복되었음을 입증하며(관계 자료 별첨), 이로 미루어 당사는 일부러 밸브를 틀어 못 쓰게 된 가스를 배출하고 있음이 객관적으로 입증됨으로써…….”
“정신병자가 쓴 낙선 뭐 더 읽을 필요도 없소.”
하며 한 젊은이는 내가 읽던 진정서를 나꿔채 갔다.
“저게 제 아, 아들놈이 낸 진정서가 틀림없습니까?”
노무과장을 보고 내가 물었다.
“예, 분명합니다. 알고 보니 자제분은 이런 방면에 상습범이더군요. 지난 유월에는 ‘풍천화학’을 상대로 또 진정서를 낸 바 있었습니다. ‘풍천화학’ 역시 야음을 틈타 카드뮴, 수은 등 중금속 물질을 다량으로 배출시켜 동진강 하류 삼각주 지대의 각종 새 삼백여 마리와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했다나요. 사람이 아닌 한갓 새나 물고기가 말입니다.”
노무과장의 목소리가 비로소 열을 띠더니 ‘새나 물고기’라는 말을 힘주어 강조했다.
|생략 부분 줄거리| 병국을 걱정하는 내 앞에 느닷없이 군인들이 찾아온다. 나는 병국이 군 통제 구역을 침입했다는 혐의를 받고 억류되어 있는 부대로 간다. 병국은 새들이 떼죽음하는 이유를 밝히기 위해 통제 구역에 들어갔다고 말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병국은 새를 밀렵하는 일에 병식이 관련되어 있음을 나에게 알린다.
4
살아 있던 것이 죽어 버린 상태, 시체는 어느 것이나 추하다. 그러나 꼬마물떼새는 죽어 있어도 그리 추하게 보이지가 않았다. 이십 센티가 못 되는 축 늘어진 작은 몸매가 오히려 안쓰럽고 귀여웠다. 등은 갈색의 성긴 털로 덮여 있었고 배 쪽의 흰 털은 부드러운 융단 같았다. 꼬마물떼새의 특징은 검은빛 굵은 줄이 마치 머플러처럼 목을 감았고, 눈가에도 길쭘한 검은 무늬가 있었다. 살풋 감은 눈꼬리로 노란 둘레 테가 조금 엿보였다.
이씨는 꼬마물떼새의 시체를 답삭 집어 들어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칼자국의 흠마다 자줏빛 피가 밴 크고 두꺼운 도마였다.
“도마가 꽤 관록이 붙어 보입니다.”
족제비가 이씨에게 말했다.
“수백 마리는 참살한 형틀이지.”
뒤돌아보지 않고 이씨가 말했다. 이씨는 메스를 집어 들었다. 오후 네 시경의 기운 햇살이 칼날 끝에서 튀어 반짝 빛났다. 이씨는 그 메스로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아주 간단히 꼬마물떼새의 목을 싹독 잘랐다. 이름 그대로 작은 새여서 이씨의 손놀림이 가래떡 베듯 경쾌했다. 병식이와 족제비는 이씨 뒤에 서서 눈 한번 깜박하지 않고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떨어져 나간 새의 목과 몸통에서 맑지 못한 묽은 피가 조금 흘러나왔다. 검붉은 그 피는 곧 도마 바닥에 응고되었다. 이씨가 다리, 날개, 꽁지를 싹독 잘라 버리자 새는 몸통만이 동그마니 남고 말았다. 제 모양을 갖추지 못한 그 몸통을 보자 병식은 비로소 어깨를 으쓱 올렸다. 징그러운지 얼굴을 찡그리며 개수구 쪽에다 침을 뱉었다. 이씨는 메스를 놓고 야구공보다는 조금 작고 탁구공보다는 큰 꼬마물떼새의 대가리를 쥐었다. 잘라 낸 목 쪽에서 기관과 식도의 일부와 심줄을 잡아 빼고, 거기로 핀셋을 쑤셔 넣더니 융기가 심한 한 덩이 뇌를 뽑아 냈다. 그것은 붉은 실핏줄로 싸발린 핏덩이였다.
|생략 부분 줄거리| 병식은 구역질을 참아가며 새를 박제로 만드는 광경을 지켜본다. 새를 판 돈을 받아 학관으로 간 병식을 형 병국이 기다리고 있다. 병국은 동생에게 새의 서식지에서 새들이 독살되고 있는 것에 대해 추궁한다.
“이 지구상에 희귀조가 계속 멸종되어 간다는 건 너도 알지? 인간이 새로운 새를 창조해 낼 순 없어.”
“그 개떡 같은 이론은 집어쳐. 내가 알기론 이 지구상에는 삼십억이 넘는 새들이 살고 있어. 그 중 내가 오십 마리를 죽였다 치자, 그게 형은 그렇게 안타까워? 그렇담 숫제 참새구이도 없애 버리지 뭘, 닭도 진화를 도와 하늘로 해방시키구.”
“박제하는 놈을 못 대겠어?”
병국이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아우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주모가 달려와 둘 사이에 끼여들었다. 개시도 안 한 술집에서 웬 행패냐고 주모가 소리쳤다.
“난 못 불겠다. 그래, 고발 좋아한담 고발해 봐. 형 손에 아우가 쇠고랑을 차지!”
병식이가 형의 손목을 잡고 비틀어 꺾었다.
“형도 구치소깨나 출입했으니 아운들 햇볕만 보란 법은 없으니깐.”
“이 자식, 말이면 다야!”
순간 병국의 주먹이 아우의 턱을 갈겼다. 병식이의 머리가 뒷벽에 부딪히자 금세 입술 사이에서 피가 내비쳤다.
“쳐, 정말 형이 날 쳤어!”
병식이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의자와 술상 사이로 빠져 나오더니 형의 허리를 억세게 조여 안았다. 병국이의 몸이 마른 장작개비처럼 번쩍 들렸다. 병식은 형을 홀 바닥에 내동댕이치곤 옆에 있던 의자를 번쩍 치켜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형의 면상에다 내리찍으려 하다 손에 힘을 뽑더니 그만 내려놓았다.
“형, 오늘은 내가 참는 거야. 내가 정말 다구리 탈 짓을 했담 형한테 얼마든지 맞아 주겠어. 그러나 내가 새를 죽인 것도 아니구, 족제비란 친구를 따라 심심풀이로 같이 다녔는데, 뭐 치사하게 동생을 고발해!”
병식은 백 원짜리 동전 세 개를 술상 위에 소리 나게 놓았다. 입술의 피를 닦았다. 그리고 가방을 들더니 재빨리 출입문을 열었다.
“병식아, 학관 끝나면 집으로 꼭 들어와!”
모잡이로 쓰러졌던 병국이가 상체를 일으키며 외쳤다. 그러나 병식이는 이미 술집을 나서 버린 뒤였다.
|생략 부분 줄거리| 병국은 새를 박제하여 밀매하는 조직을 반드시 밝혀 내겠다고 결심한다. 병국은 개펄로 나갔다가 발길을 돌려 해주집으로 향한다. 해주집에서는 아버지와 강 회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무래도 내 평생 통일은 글렀네. 생이별한 처자식은 영영 못 볼 것 같아. 삼십 년을 하루같이 기다려 오다 백발이 다 된 마당 아닌가. 사람 목숨도 한계가 있는데 살면 언제까지 산다구.”
강 회장의 허탈한 목소리였다.
“형님, 역사란 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아요. 세상의 변혁이란 아무도 예, 예측을 못 해요.”
“에끼, 이 사람아. 마른 땅에 물 고이랴. 남북한 서로가 닮은 점이 있어야지. 평화 통일은 어렵네, 내남없이 강병책만 일삼으니 언제 가서 형 아우 하고 지낼 것이며, 양보하는 맘들을 가지겠는가.”
“허허, 형님도. 요즘 바, 밤잠이 없다 보니깐 한밤중에 문득 잠이 깨지요. 그러면 세상이 온통 쥐, 쥐죽은 듯 조용하고 깜깜한 게 영 갑갑증이 나서 못 견딥니다. 시간은 또 왜 그렇게 더, 더디게 가는지, 원.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보면 그만 아주 날이 안 새, 샐 것 같은 맘까지 들거든요. 무, 무슨 재주로 세상이 온통 환해지고 자던 사람을 다 깨워 놀까, 하고 생각하면 세상 이치가 묘하다 이 말씀입니다. 그러나 어김없이 새, 새벽은 찾아오지요, 이 고비만 넘기면 토, 통일도 그렇게 찾아옵니다. 설령 내가 죽을 때까지 고향땅 못 밟는다 해도 아들놈은 바, 반드시 이 애비 뼈를 거기다 옮겨 묻어 줄 거예요.”
“아우, 자넨 그렇게 새벽같이 통일이 올 거라고 믿는다 이 말이군.”
“다른 사람은 관두고라도 형님하고 저하고 매, 맺힌 구천의 한만 합치더라도 하늘이 필경 그 원을 드, 들어 줄 겁니다. 새벽이 그렇게 오듯이…….”
술집 안으로 들어가 그들 사이에 섞일까 어쩔까 하다가 병국은 무거운 발걸음을 되돌리고 말았다. 저들의 맺힌 한에 그 자신의 말이 아무런 도움이 못 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바다와 하늘은 이제 잔광마저 어둠에 묻혀 지워져 버렸고 저 멀리 장진포 쪽의 등대만이 빤하게 불을 켜고 있었다. 그런데 병국의 눈앞에 홀연히 한 마리의 도요새가 날아올랐다. 도요새의 유연한 비상은 날개를 아래위로 움직여 나는 날개치기의 비행이 아니었다. 날개를 펼친 채로 기류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나는 돛 역할의 비행이었다. 맞바람의 상승 기류를 타고 동그라미를 그리며 공중 높이 올라갔다가 바람을 옆으로 받아 활공으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섬세한 율동이 눈앞에 잡힐 듯 떠올랐다. 도요새야, 너는 동진강 하구를 떠나 어디에다 새로운 도래지를 개척했느냐? 병국이가 낮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도요새를 따라갔다. 그러자 도요새의 비행은 그의 눈앞에서 곧 사라지고 말았다. 병국은 종점 쪽으로 걸음을 빨리했다.
김원일(金源一, 1942~ )
경남 진영 출생. 1967년 <현대 문학>에 소설 「어둠의 축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주로 해방 직후에서 6·25에 걸친 역사적 시련과 정황을 소설로 그려 내었다.
주요 작품으로 「마당 깊은 집」, 「손풍금」, 「늘 푸른 소나무」, 「슬픈 시간의 기억」 등이 있다.
작품 투시도
포인트 1 인간의 무기력함과 새의 자유로움을 대비
포인트 2 인간의 욕망과 좌절을 치유하는 ‘새’의 상징성
작품 해설
다양한 시점에 의한 서술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가족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각각의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병식, 둘째는 병국, 셋째는 아버지가 일인칭 서술자로 등장하고, 끝으로 작가가 직접 개입하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끝맺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기법을 통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시선으로 가족 구성원들의 내면을 동일하게 보여 준다.
실향민의 한, 환경 문제, 젊은이의 고민
이 작품에는 몇 가지의 주제가 ‘도요새’에 얽혀 형상화되어 있다. 첫째는 실향민 문제다. 아버지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감을 도요새를 보며 달래는데, 작가는 아버지를 통해 분단 상황에 대한 비판 의식을 보인다. 둘째는 환경 오염 문제다. 비료 공장에서 오염 물질을 강에 배출한다는 강한 혐의를 들어 맹목적인 산업화에 의해 희생되는 자연을 보여 준다. 셋째는 젊은이들의 고민과 방황의 모습이다. 두 형제인 병국과 병식은 성격은 물론 삶의 태도 역시 판이하게 다르지만 모두 젊은 시절의 방황과 아픔을 겪고 있는 인물이다.
‘도요새’의 상징적 의미
‘도요새’는 아버지와 아들 병국 사이에 존재하는 정신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기능을 한다. 아버지에게는 고향을, 병국에게는 정신적 자유를 상징하는 이 새는 이들의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핵심 정리
갈래중편 소설
배경시간 - 1970년대 후반
공간 - 동진강 유역
시점일인칭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
주제타락한 삶에 대한 비판과 순수한 인간성 회복
작품 내용
1. 병식의 이야기 |
•재수생인 나는 강가에서 새를 밀렵하여 판 돈을 유흥비에 씀. •촉망받는 수재였으나 학생 운동을 하다 퇴학당한 형에 대해 실망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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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병국의 이야기 |
•대학에서 제적당한 후 낙향하여 새와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고 오염 물질 배출 업체를 고발하는 진정서를 관공서에 보냄. •실향민 아버지의 사연을 듣고 그 심정을 이해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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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버지의 이야기 |
•적극적이고 억척스러운 아내와 대조적인 성격으로 갈등함. •병국이 일으킨 사건으로 비료 회사 사람들과 군인들이 찾아오고, 병국에게 환경 오염의 심각성과 병식의 새 밀렵에 대한 이야기를 들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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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형제의 다툼과 아버지의 희망 |
•병국은 병식에게 새 밀렵에 대한 사실을 추궁하고, 형제는 다툼을 벌임. •병국은 술집 안에서 들려오는 통일에 대한 아버지를 희망을 듣고 도요새의 비상을 바라봄. | |
인물 소개
아버지
분단으로 인한 실향민으로, 소극적이고 이상적인 성격이며 자상한 면모를 가진 인물
어머니
생활력이 강하고 적극적인 인물로서 가정의 모든 일들을 맡아서 처리하나 무식하고 직선적임.
병국
장남. 이상을 추구하는 적극적인 인물. 환경 문제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임.
병식
병국의 동생. 재수생으로 현실적이고 타산적인 인물. 현실에 실망하고 방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