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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자 부 |
여 자 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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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
김완(신진공고) |
16승 3패 |
1위 |
이수자(시온고) |
19승 1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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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 |
조동원(삼양식품) |
16승 3패 |
2위 |
김경자(시온고) |
18승 2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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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 |
손성순(대우중공업) |
15승 4패 |
3위 |
안해숙(부산계성여상) |
15승 5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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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위 |
박이희(상무) |
14승 5패 |
4위 |
정경자(대성여상) |
15승 5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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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 |
유시흥(성수고) |
14승 5패 |
5위 |
박홍자(서울신탁은행) |
14승 6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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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 |
윤길중(삼양식품) |
13승 6패 |
6위 |
윤경기(문영여중) |
13승 7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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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위 |
김기택(청주고) |
11승 8패 |
7위 |
이경애(부산계성여상) |
13승 7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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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위 |
이경철(신진공고) |
11승 8패 |
8위 |
황남숙(성수여상) |
12승 8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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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위 |
오병만(청주고) |
10승 9패 |
9위 |
신명숙(대한항공) |
11승 9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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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위 |
이재훈(청주고) |
10승 9패 |
10위 |
김현옥(서울신탁은행) |
10승10패 |
평양 세계선수권대회 파견 대표선수단 확정
협회는 제35회 평양세계탁구선수권대회 파견 대표선수 추천케이스로 남자선수박이희(상무)와 유시흥(성수고), 여자선수 이기원(산업은행)과 정경자(대성여상)
선수를 선발 남녀 선수 각 5명, 임원 10명 등 총 20명으로 선수단을 구성, 확정
했다.
선수단 단장에는 채영철 협회 회장, 부단장에 김찬두 협회 부회장, 총감독에 천영석 전무이사, 코치에 이소광(동아건설), 박종대(서울신탁은행) 씨를 선정했다.
선수단 중 아시아경기대회에 참가했던 선수는 남자부에 김완과 박이희, 여자부에 이수자와 이기원 등 4명뿐으로 대폭적인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아시아경기대회 남녀팀 주장을 맡았던 이상국과 김순옥은 그 전해인 1978년 말로 은퇴했으며 윤길중과 박홍자는 선발전과 추천케이스에서 모두 탈락했다.
협회는 그렇게 확정 지은 선수단을 그해 1월 20일부터 태릉선수촌에 입촌시켜 본격적인 강화훈련에 돌입했다. 훈련계획에는 예선 리그에서 만날 유럽팀에 대비한 훈련을 위해 3월 17일부터 18일까지 양일간 영국에서 열리는 스코틀랜드 오픈 선수권대회에 참가하고, 귀로에 서독에서 서독 대표팀과 10여일 동안 합숙훈련을 실시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 선수단 명단
단 장 채영철(협회 회장)
부 단 장 김찬두(협회 부회장)
회의대표 김정립(협회 부회장)
총 감 독 천영석(협회 전무)
감 독 백송빈(경기 이사)
총 무 전우준(협회 이사)
재 무 박철규(협회 이사)
섭 외 정주년(협회 이사)
남자코치 이소광(동아건설)
여자코치 박종대(서울신탁은행)
남자선수 김완(신진공고), 조동원(삼양식품), 손성순(대우중공업),
박이희(상무), 유시흥(성수고)
여자선수 이수자(시온고), 김경자(시온고), 안해숙(부산계성여상),
정경자(대성여상), 이기원(산업은행)
평양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엔트리 발송 및 전력탐색
협회는 평양 제35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4월 25일 ~ 5월 5일) 파견 대표선수단(임원10, 선수10) 최종 엔트리를 1979년 1월 10일 발송했다. 채영철 협회회장은 무교동에 위치한 대한체육회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선수단 최종 엔트리를 국제탁구연맹(ITTF)에 발송, 국제연맹이 평양조직위원회에 보내기로 약속받았다고 밝혔다.
경기성적을 초월, 참가에 의의를 두고 평양 세계대회 참가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고 말한 채회장은 가능하면 가까운 판문점을 통해 평양을 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아시아에 위치한 국가들은 싱가폴에 집결, 전세기편으로 평양에 가게 되어 있으나 중국 경유에 어려움이 있을 것을 고려, 국제연맹의 제의에 따라 4월 19일 제네바에 모여 모스크바를 경유, 입국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채회장은 지난해 7월 내한한 국제연맹 토니 부록스 사무총장으로부터 예비 엔트리를 받아 8월 22일 국제연맹을 통해 예비 엔트리를 발송했으며, 정식 엔트리는 10월 25일 역시 국제연맹을 통해 접수했다고 그동안의 경위를 설명하고 국제연맹으로부터 대회 참가를 보장받았다고 거듭 확인했다.
선수단의 전력약세를 인정한 채회장은 평양 세계대회 참가에 의의를 갖고 81년 유고 제36회 세계대회에서 세계 정상 재탈환을 노리겠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보충해서 대표선수단의 천영석 총감독은 “아직 비관도 낙관도 할 때가 아니다. 앞으로 남은 4개월 동안 속성 훈련을 통해 최대의 성과를 거두도록 최선을 다 해보겠다.”고 조심스런 전망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여자단체전의 경우 한국팀의 난적은 일본이나 북한보다는 절대 강자인 중국과 유럽 선수들이라고 예견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세대교체로 진통을 겪고 있는 일본이나 교과서적인 탁구를 하는 북한은 단시간의 훈련으로서도 충분히 승산을 점칠 수 있으나 쉴 새 없이 강한 좌우드라이브로 공격해 오는 셰이크핸드의 유럽선수들에겐 변화 있는 커트스트로크를 구사할 수 있는 수비형 선수로 맞붙을 수밖에 없는 믿을만한 선수가 없다고 아쉬운 상황을 피력했던 것이다.
당시 천 감독의 평가로는 대표로 선발된 수비형의 김경자, 안해숙의 국제적응도는 20%밖에 되지 않으며, 4개월간의 훈련으로 최소한 50%까지는 올려야 겨우 해볼만하다는 것이었다. 공격형의 이기원, 올라운드 플레이어 이수자, 정경자의 기량도 아직은 믿을만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목표나 성과에 대한 예상은 4개월간의 강화훈련 뒤로 미루겠다는 것이 그의 소감이었다. 아울러 그는 “특히 사고(思考)의 지도방법을 지양, 지도의 과학화와 더불어 선수들에게 풍부한 경험을 쌓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부언했다.
당시 또 하나의 관심사는 전력노출을 꺼려 방콕 아시아 경기대회까지 출전치 않은 북한의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린 맹공을 어떻게 막느냐 였다. 개최지가 다른 곳이 아닌 평양이라는 점에서 그 문제는 더더욱 큰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다.
한국이 평양 세계대회에 참가하기까지는 아직 비자발급이라는 마지막 문제가 남아 있어 참가여부가 확실치 않지만 세계의 이목을 모으고 있는 한국 탁구팀의 평양행은 당시 남북대화 무드와 관련, 실현가능성이 짙어진 것으로 분위가 감돌고 있었다. 미.중국 수교 등 당시의 국제정세 변화에 비추어 중국이 한국 스포츠 팀의 초청을 검토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기도 했다. 대한탁구협회는 최선을 다해 평양 세계대회 입성을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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