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람(‘사악한’ 또는 미래에 ‘백성이 없는’, ‘백성들과
단절 된’)은 드디어 하나님의 말씀(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씀, 22장 38절)을
가지고 모압에서 발락(‘파괴자’)왕을 만났다. 이 둘은 기랏 후솟(외곽에서 장들이 서는 정소)으로 갔고, 이곳에서 발락은 회목제물을 잡아서, 함께 교제의 식탁을 가졌다.
다음 날
아침에 발락은 발람을 데리고 ‘바못
바알’(바알의 제의적 장소)로 갔다. 발람은 그곳에서 이스라엘의 경계선 주변의
일부분을 보았다. 발람은 발락에게 일곱 제단과 각 제단에 바칠 수송아지 수양 일곱을 요구했다. 그리고 발람은 발락에게 제단 옆에 머물게 하고, 다음 같이 말했다. “아마 야훼께서 나를 만나러 오실 것이다. 그 가 내게 보여준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당신에 말하겠습니다”(23장 3절). 이러한 발람의 언급 속에는 그의 의도된 저주의 희망이 들어 있다. 왜냐하면, 히브리 동사의 표현, “바이크라”
와 “바이카르”는 같은 동사의 어원이지만, 전자는 하나님의 부름 이라면, 후자는 하나님이 우연히 나타나는 것이다. 발람은 자신의 희망을 후자에 비추어 기대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발람에게 임했고, 발람의 입에 다음 같이 말했다, “발락에게
돌아가서 이렇게 말하라”. 발람은 발락에게 돌아와 하나님의 신탁을 전하는데, 발람은 하나님의 신탁을 시의 형태(다양한 형태의 주제를 담은 한편의
시)로 전달한다: 발락이 저주를 요구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반대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야곱을 특별히 열방과 다른 한 백성으로 삼으셨고, 광야에서 그들이
행진하는 모습은 마치 먼지-구름이 일어날 만큼의 숫자가 몰려오는 데,
그 숫자를 누가 감히 셀 수 있겠는가? 이스라엘의 강력함을 보여주는 시였다. 마지막으로 발람은 자신의 운명, 즉 “죽음”을 그들과 함께 하기를 소망한다. 왜냐하면 축복을 통한 운명은 단지 죽음이 아니라, 이미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원 공간(올람 하바: 다가올 세상)을 소유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발람은 이스라엘 통하여 이것을 보았던
것이다.
발락은
발람이 저주할 것을 기대했지만, 반대로 축복을 하게 되었다. 다시
발락은 반전을 시도하기 위하여 이번에 비스가(‘파수꾼의 들판,’ 미래의 모세의 무덤의 장소) 산 꼭대기로 데리고 간다.
여기에서 발람은 이전과는 달리(경계선만 보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부를 직접 보았다. 이전 과 동일하게 발람은 제단과 제물을 요구했다. 하나님은 발람에게 신탁을 주었다: 발락에게 직접화법을 통하여, ‘쿰, 일어나라. 하아지나, 들을 지어다’ 진실로 진실로 말하노니,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백성이기 때문에, 어떤 인간의
사술이나, 복술로 이스라엘/ 야곱을 저주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미 야곱의 축복 대로 이스라엘을 건드릴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발람의
신탁에 발락은 저주도 축복도 하지 말라 선언한다.
마지막
발락은 바람을 데리고 브올산(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의 여인들과 성적인 유혹을 받은 장소) 꼭대기로 간다. 이전과 동일히게 제단과 제물을 드렸다. 그런데 이전과는 달리, 발람은 여기에서 이스라엘 전체를 보게되었고, 동시에 발람은 하나님의
영을 통하여 영적인 눈을 뜨게 되었다. 이곳에서의 신탁은 과거와 현제를 넘어 미래의 이스라엘의 보고
있다. 발람은 저주를 원했지만, 지금 하나님은 발람에게 하나님의
선하심이 무엇인가를 보고 있다. ‘마하 토브’ 야곱의
장막, 이스라엘의 처소가 얼마나 선 한가(아름다운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진영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축복 앞에서 발람은 스스로 저주가 아닌 축복을 받기를 원하고
있었다.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찌로다”. 하나님은 오래전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리함에 하신 말씀이다. 발람은 스스로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자가 되고 있었다. 발락은
발람의 신탁에 대노했다(10절). 발람은 발락을 통하여 받게
될 은.금의 보상을 기대하고 저주를 하기를 원했지만, 그것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은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있는 하나님 앞에서 그의 저주의 의도가 모두 무너져 버린 것을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는 순간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발락은
발람과 함께 세 장소로 이동하면서 이스라엘의 저주를 꾀하는 매 순간 하나님은 오히려 발람의 입과 눈을 열어 축복으로 전환시켰다. 하나님이 이방인, 발람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이러한 여러
번의 에피소드를 통하여 말 하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한 축복의 약속을 변경시키지
않는다는 것과 이 축복에 이방인도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축복의 땅이
아니라, 이스라엘 축복하는 자에게 누구나 예외없이 하나님의 축복의 백성들 안으로 들어가 같은 축복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하나님은 이미 미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