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9월 북한이 IAEA를 탈퇴하고 원자로를 재개하자) 부시 행정부는 처음에는 침묵으로 대응했다. 이미 전쟁 하나는 시작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또 하나의 전쟁은 인구 1,000만이 상고 있는 도시로 북한의 대포 사정권에 있는 한국의 수도 서울을 위협할 것이었다. 그 중에는 수천 명의 미군도 있었다.
미군은 수십 년 동안 남,북한 사이에 있는 비무장 지대에 배치되어, 북한의 공격에 대한 '인계 철선'으로 존재해 왔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첫 사상자가 나올 경우 미국 국민들이 전쟁의 지지 이외에 달리 도리가 없도록 보증하는 것을 의미했다.
다른 한편 부시 행정부 인사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철회 내지 완화한다거나, 아니면 협상을 제시한다거나 하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김정일 정권은 자신들이 다음 번 희생자가 될 것이라는 거의 확실시 되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하여 미국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위험한 원자로를 폐쇄하고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중지하는 대가로 미국과의 불가침 조약을 주장했다. 동시에 북한은 추방된 IAEA의 사찰관들이 돌아와서 핵 시설을 점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제안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이후, 북한은 이러한 제안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2003년 4월 6일 북한은 '대규모 군사적 억제력'으로 자신을 무장하는 길만이 유일하게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라크 전쟁에서 볼 수 있듯이, 사찰을 통해 비무장을 허락하는 것은 전쟁을 피하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전쟁을 촉발하는 길이다. ..... 미국과 불가침 조약을 맺는다고 전쟁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치 독일군의 영국 공습 당시 윈스턴 처칠처럼, 북한은 이제 주민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가야 한다면, 하나가 되어 가자."
북한이 위협할 수 있는 곳은 서울과 오키나와에 있는 38개 미군 기지 중 일부, 그리고 북한이 공격 가능한 일본 내 도시(북한의 핵 탑재 미사일은 오키나와나 일본 본토까지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이 못되지만)가 될 것이다.
한국은 북한이 사정거리 1,300km의 노동 미사일을 175~200기 정도 보유하고 있어서 일본 내 어느 곳이라도 공격할 수 있으며, 650~800기의 중거리 스커드 미사일이 남한을 겨냥하고 지하 시설에 보관되어 있다고 추정한다.
지난 2년간 북한 문제를 바라보는 한국 내 여론은 급격한 변화를 보였다. 부유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한국 국민들은 북한 동포들이 굶주리고, 절망적이며, 억압받지만 한편으론 잘 무장된 가운데 냉전의 아이러니와 가혹한 김정일 정권에 발목이 잡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한 미국이 세계적인 군사적 거인으로서의 역할을 내세우며 지나치게 위험하게 북한을 코너로 몰아붙인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한국은 더 이상 북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적어도 워싱턴이 북한을 극단적인 행동으로 몰아붙이지 않는다면 말이다.
대신에 한국은 워싱턴에서 뿜어져 나오는 전쟁 열기와 지난 50여 년간 자국 내 미군 주둔기지에서 끊임없이 발생한 문제들을 두려워한다.
여기서 결코 잊혀지지 않고 있는 한반도의 과거 역사를 잠깐 살펴보자.
1945년 미국이 한반도 남반부를 점령하고 '대한민국'을 세운 이래로, 남한에서는 강력한 군대가 유지되었다.
2002년에 미국 국방부는 남한 내에 있는 국방부의 자산과 인력으로 101개의 군 시설과 37,605명의 미군, 2,875명의 미국 민간인들이 근무하고 있으며, 7,027명의 미군 가족이 거주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미군 시설에는 한국 전쟁 당시 K-55로 알려졌던 오산 공군 기지 - 현재 제7 공군 사령부이다 - 와 한국 서해안에 있는 군산 공군 기지 - 주요 기지이다 - 가 있다.
그렇지만 남한에서 가장 놀랄 만한 시설은 용산 육군 주둔지이다. 미국의 문화적, 역사적 무신경을 그대로 드러내는 이 곳은 1894년 들어선 구 일본군 사령부가 있던 자리로서 일본의 한국 지배에 대한 증오를 상징하는 곳이다.
원래 구 서울의 변두리 지역이었지만, 지금은 인구 밀도가 높은 수도 한복판에 630평방 에이커의 노른자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용산 기지는 1945년 이래로 미 군사 작전 사령부가 위치했다."(p.129~130)
[ 군국주의 & 제국주의 미국과 한반도 3 ]
2002~2003년 주한미군의 만행과 노무현 정부의 대미 외교...
"2003년 4월 9일 미국은 용산 기지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데 합의했다. 아마도 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다른 기지로 갈 것 같다. 그러나 미군이 얼마나 신속하게 이 협정을 이행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40마을 북쪽으로, 그리고 비무장 지대에서 남쪽으로 12마일 떨어진 곳에 캠프 케이지가 있는데, 여기에는 가장 강력한 육군 제2 보병사단이 전진 배치되어 있다. 6,300명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어, 한국에서 미군 병력이 가장 많이 집결되어 있는 곳이다. 케이지에는 19,000에이커에 달하는 벽돌 건물과 퀸셋 막사 같은 창고가 들어서 있어, 마치 교도소와 같은 인상을 풍긴다.
케네스 마크 일병은 한국에서 가장 악명 높은 미국인으로, 1993년 기지촌에 살던 한국인 여성 윤금이씨를 강간, 살해했다. 1996년에는 한국 여성 이기순 씨 교살 사건 - 화대 지불 문제로 다투다가 22살짜리 에릭 뮤니크 일병에 의해 교살되었다 - 이 근처 동두천에서 발생했다."(p.130)
"2002년 6월 13일 캠프 케이지에서 60톤 급 장갑차가 서울에서 불과 북쪽으로 몇 마일 떨어지지 않은 조그만 마을을 지나 좁은 2차선 도로를 덜컹거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장갑차에 탄 두 병장은 친구 생일 파티에 가던 13살짜리 두 여학생이 걸어 가고 있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두 여학생은 깔려서 사망했다.
두 병사가 공식적인 임무로서 장갑차를 몰았는지, 장갑차에 탑재된 설비가 제대로 작동을 하지 못해서 두 여학생을 보지 못했는지, 아니면 장갑차의 내부 통신 시스템이 오작동했거나 제대로 끼워져 있지 않았는지조차 불문병했다.
한국 정부는 한국 법정에서 재판에 회부하고자 두 병장을 한국측에 넘겨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전쟁 시기에 한국에 강요한 한미행정협정(SOFA)을 들면서 거부했다. 그 대신 두 사람은 미 군사 법정에서 '형사상 태만'으로 재판에 회부되었고, '사고사'로 무죄 방면되었다.
심리에서는 어떤 기소 증거도 제시되지 않았고, 한국에 있던 지휘 장교도 병사들의 훈련, 감독에 대해 증언하도록 소환되지도 않았다. 반미 시위가 남한 전역에서 일어나서, SOFA 개정과 주한미군 철수를 다 같이 주장했다.
2002년 12월 19일 한국에서는 인권 변호사 출신의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김대중 정권을 이어받았다. 그의 선거 캠페인에서 노무현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북한 개방을 계속 추진하고, 한미 군사 관계에 변화를 요구하겠노라고 공약했다. 취임을 앞두고 노무현 정권은 부시에게 미국과 함께 또 다른 전쟁을 벌이느니 한국은 차라리 핵을 보유할 북한이라는 현실을 수용하겠노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4월 9일 바그다드가 함락되던 날, 펜타곤과 노무현 정부는 주한 미군 병력의 향후 미래에 대한 협상에 들어갔고, 갑자기 미국 협상단은 인내심을 잃었다는 듯 제2 보병 사단을 비무장 지대에서 가능한 빨리 이동시키겠다고 통보했다.
한 소식통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태평양 사령관 토머스 파고 장군은 "어제 나는 그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한다."(p.131~132)
[ 군국주의 & 제국주의 미국과 한반도 4 ]
전 세계 약소국들의 핵 보유를 부추기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만행을 고발하는 찰머스 존슨 교수. 그는 오히려 한국인들보다 한국인들을 더 믿고 염려합니다.
미국 행정부, 미국의 정치인, 미국의 군산복합체와 군국주의자들이 전 세계에 저지르는 횡포와 전횡에 대해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알고 나서 생각하고, 알고 나서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2003년) 미국의 계획은 한국 정부와 한국 국민들에게 공포심을 불어넣고자 의도했던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우려는 미군 병력의 갑작스런 재배치는 북한에 대해 선제공격을 준비하는 것의 일환으로 보여질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불길하게도 부시 행정부는 '한국에서 필요한 경우를 대비해서' B-1, B-52 전략 폭격기를 괌에 배치했다. 그리고 이후 몇 대인지 숫자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최근 완료된 군사 작전을 위해 배치한 F-117 스텔스 전투기와 F-15E 이글 편대를 계속 한국에 남아 있게 한다고 발표했다. 레이더망을 피할 수 있는 F-117기는 영변 핵 시설을 포함해서 북한 내 여러 목표물을 공격하는 데 적합한 기종으로 알려져 있다.
F-117기가 마지막으로 한국에 배치되었던 때는 1994년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에 '국부 공격(surgical strike)'을 기도했던 때였다. 당시에 고조되었던 위기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고, 김정일과 직접 협상을 벌여 평화롭게 넘길 수 있었다."(p.132)
"예상되듯이, 부시 행정부는 한반도에서의 이러한 사태 발전을 탄두 미사일 방어 체제가 필요한 증거로 보고 있다. 즉 핵 탄두를 탑재한 북한의 대포동 2호 미사일에 대한 보호책으로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이러한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북한의 핵 탄두를 요격한다 할지라도, 한국 전역과 아마도 일본과 오키나와에 떨어질 방사성 낙진은 직접 핵 폭발이 일어난 것만큼이나 위험할 것이다.
이와 같이 미국이 주도한 위기가 가져올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핵 확산을 상당히 촉진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전 세계적으로 약소국들은 미국이 휘두르는 제국주의적 전횡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핵을 보유하는 것이라고 믿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라크의 문제는 대량 살상 무기가 없었다는 데 있었던 것이다."(p.132~33)
"북한은 대다수 인구가 기아 선상에서 허덕이고 있는 실패한 공산주의 정권이다. 북한은 어쩌다가 한 번씩, 그것도 상당히 불안하게 고립된 상태에서 빠져 나와, 지난 20여 년간 중국이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것과 비슷한 길을 시도하고 있다.
김대중이 인식했던 것처럼, 미국과 한국은 무력 행사로 위협하는 대신에 관대한 승자가 되어야 한다.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 어느 나라도 한반도에서 내전이 다시 일어나기를 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전이 일어나야 할 필요성도 알지 못한다.
부시 행정부는 미국의 '정밀 유도 미사일'로 한국인들의 '예방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완화하고자 하고 있다. 정밀 유도 미사일로 양국의 고도로 훈련된 전투 병력과 민간인 사상자의 발생을 피할 것이며, 미국의 폭격에 살아 남은 북한 주민들이 미국과 한국을 해방군으로 맞아 들일 것을 확신한다는 식으로 설득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훨씬 더 잘 알고 있으며, 따라서 예방 전쟁이 필요하다는 미국의 생각에 동조할 것 같지는 않다.
이라크 전쟁이 남긴 한 가지 확실한 유산은 미국의 정치, 군사 지도자들은 더 이상 믿을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p.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