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2009년 10월 자승 전 원장이 총무원장에 당선됐을 때, 선거인단 321명 중 290명의 압도적 지지(91%)로 당선되었고, 사실상 추대 형식의 당선이었다. 당시 상황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될 정도다. 당시 봉은사 주지가 명진 스님이었고, 종단은 화엄회, 보림회, 금강회, 무차회, 무량회 등등 온갖 정치 계파가 활동하였던 시기였다. 갈등이라기보다 협잡에 가까운 시간들이었다.
그만큼 종단은 사실상 50-60년대 정화 이후 그랬듯이 극도의 정치적 상황이었다. 94년 개혁 정신은 거의 흐릿한 기억이 되었다. 온갖 정치 계파가 이권을 위해 밤에 움직였다. 이건 세속의 여야 정치 문제와 다르다. 요컨대 자승 전 원장의 두 번째 은사였던 정대 전 총무원장이 김대중 정부 주요 인사와 긴밀한 관계였다는 것은 교단의 정치 관계와 세속의 정치 관계는 공통성이 별로 없으며, 사안별로 이합집산한다는 뜻이다.
자승 전 원장의 33대 총무원장 임기(2009.10~2013.10)에 수많은 불미스런 사건이 일어났다. 해종언론 지정, 은처 의혹, 봉은사 직영 전환, 템플스테이 예산 횡령, 백양사 도박, 돈 선거, 적광 스님 폭행 등이 대표적이다. 누적된 종단의 그늘이 계속 튀어나온 것이다. 이후 종단의 자정 운동도 일어났으며, 임기 말이 다가오자 자승 전 원장은 "마음을 비웠다"며 연임에 대해 연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반대파의 지지를 받은 보선 스님이 선거 출마를 선언하자, 다시 복잡한 정치 상황이 벌어졌다. 양쪽 계파의 거센 정치 힘겨루기가 나타난 것이다.
수좌회 등을 중심으로 적명, 도법, 수경 스님이 양측(자승, 보선)을 중재하며, 양측 모두 후보 사퇴하자고 일정한 합의가 있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보선 스님이 합의 사항을 부정하였고, (적명 스님은 보선 스님의 이런 행동에 크게 실망하고 봉암사로 되돌아갔다. 만약 이때 합의처럼 제3의 인물이 총무원장으로 나왔다면, 아마 이후 종단은 꽤 달라졌을 것이다. ) 각자 계파의 총무원장 선거전이 치열하게 진행되어, 50표 차이로 2013년 10월 자승 전 원장이 당선됐다.
온갖 네거티브와 날선 비난의 과정 속에 재임에 성공한 자승 전 원장은 종단 권력을 압도적으로 쟁취해야 할 필요성을 더욱 느꼈을 것이다. 이후 2017년 10월 퇴임 때까지 중앙종회를 비롯한 권력의 집중화는 빠르게 진행되며, 반대 세력을 신속하게 제거하고 인사적인 보복도 진행되면서 비판세력은 거의 사라지고, 종단의 최고 통치자로서 그 영향력은 더욱 거세졌다. 당시 종단 적폐청산 범불교도대회, 전국승려결의대회 등으로 자승 체제를 압박했지만, 94년 종단 개혁 같은 승단 내부의 폭넓은 지지를 얻지 못했기에 저항은 제한적이었다.
2018년 퇴임 후 종단은 이미 '자승 체제'로 고착되었다. 그나마 남아 있던 개혁 세력은 각자도생했고, 약한 권승은 강한 권승에게 쫓겨났다. 성추행자인 선학원 이사장은 선학원 사태를 계기로 반자승 세력으로 몸을 감췄다. 승단은 옳고 그름이 마구 뒤엉키면서 흙탕물 속으로 빨려갔다. 역설적이게 이런 혼란은 외적으로 자승 체제를 더욱 빠르게 확장시켰다.
출가 시절을 절 뺏기로 보냈다고 스스로 고백할 만큼 자승 전 원장은 은사 정대 전 원장처럼 사판승으로 입지를 다져왔다. 그런 그가 퇴임 이후 겨울 안거를 백담사에서 보내고 신흥사 조실 무산 스님은 “자승 스님이 한 철 사신 덕에 설악산은 더욱 높아지고, 골짜기는 더욱 깊어진 것 같습니다."라고 덕담을 던져줬다. 이후 2019년 11월 부터 3개월간 이어진 '상월결사' 로 종단의 전통 안거를 개인의 명예욕 처리장으로 치환시키며 수행자를 엔터테이너로 둔갑시켰다.
사판승에서 수행자의 이미지로 갈아탄 이후 자승 전 원장은 종단의 공식 행정 체계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방장, 총무원장, 본사주지 등에 절대적인 영향을 행사하며 사실상, 종단의 모든 권력을 틀어쥐었다. 모든 행사에 총무원장보다 앞서 나섰고, 교계 언론과 스님들은 이를 당연시했다. 종단의 주요 행사와 사업 등은 자승 전 원장이 제안한 사업보다 후순위였고, 세속의 정치에 대놓고 개입했다. 누구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기괴하고 해괴한 모습, 대놓고 머리카락을 기른 채 그렇게 한동안 지냈다. 이 모든 게 ‘불교 중흥’이란 단어 속에 용납되었다.
2022년 8월 대낮 봉은사 일주문 앞에서 벌어진 조계종 노조원 폭행 사건은 자승 전 원장 추종자들의 절대적 충성심을 드러낸다. 그 승려들은 자승 전 원장을 비판한다는 이유로 노조원에 오물을 뿌리고 구타 폭행했다. 사이코패스의 행동이다. 지금까지 종단에서 아무런 징계조차 받지 않은 채 승복을 입고 다닌다. 그만큼 자승 전 원장의 절대 권력은 넓고 깊게 종단에 자리했다. 보복의 두려움, 동물적 복종, 종교적 카리스마, 설익은 관용, 강요된 종단 안정, 방임과 외면 등 모든 게 얽히고설키며 그의 허상이 만들어졌다.
만들어진 자승. 어떤 인과 연이 그를 무너뜨리게 했을까. 인간 자승과 만들어진 자승, 그 큰 간격을 그는 버텨낼 수 없었던 것일까. 인간이란 때론 무의식의 명령으로 움직이기도 하니 말이다.
예상하듯 그의 부재 속에 무너진 허상을 다시 쌓아 이익을 챙기려는 이들이 등장할 것이다. 물론 칠장사 요사채는 열반지로 기념될 것이다. 재벌급이라는 그의 재물을 놓고 다툼도 일어날 것이다. 글자 배운 이들은 제법 고고한 척, 거리를 두며, 찬양했던 옛 흔적을 지우거나 교묘한 글장난으로 흔적을 덮으려고 할 것이다. 늘 그랬듯 계파의 이합집산도 다시 일어날 것이다. 별것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