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진 물결, 이 강을 함께 건넙시다./ 김원식 [살기 좋은 영월＜제145호＞ 2018년 12월20일 발행]

[김원식]

거세진 물결, 이 강을 함께 건넙시다.
               명예기자 김원식

음력 10월을 지나 겨울로 들어서면 전설의 고향 같은 옛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영월소방서에서 청령포 쪽으로 오른쪽 동산에 있는 어계 비원(漁溪碑苑)의 사적비(事跡碑)에는, 호랑이 등에 올라 거센 물살의 서강을 건너게 되었다는 『호도 청령포(虎渡淸泠浦)⦁호배 도강설(虎背渡江說)』이 새겨져 있습니다.
 【상왕의 승하에 밤낮을 달려 청냉포(淸冷浦)에 당도하니 밤중이었는데 나룻배도 없었다. 이리저리 찾았으나 건널 방안이 없어 가슴은 답답한데 날은 밝으려 하므로 하늘 우러러 통곡하니 강물도 오열하였다. 마침내 벗은 의관을 등에 지고 헤엄쳐 건너려는데 홀연히 등짐을 잡아당기는 느낌을 받아 돌아보니 크나큰 호랑이였다. 선생이 말하기를 “천리 길 분상(奔喪)에 이 강을 못 건너고 있노라. 강을 건너 왕의 옥체를 염습할 수 있다면 다행이겠으나 그렇지 못하다면 창해의 귀신이 되고 말 것인데, 너는 어쩌자고 나를 붙잡는고?!”하니, 호랑이는 머리를 숙이고 엎드렸다. 그 뜻을 알고는 호랑이의 등에 업혀 강을 건넜는데, 시신이 있는 방에 들어가 보니 다만 두 사람이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통곡 사배(四拜)하고 시신 수렴(收殮 입관)을 마치고 문을 나오니 기다리고 있던 호랑이가 다시 강을 건너 주었다.】 했습니다.

이렇게 1457년에 큰 도움을 주었던 호랑이는 260여 년 후인 1720년경에 주천 강변에 또 나타났는데요, 처사 금사하(處士 琴師夏)의 호배 도강 주천설(虎背渡江酒泉說)입니다.
【금산 아래 살고 있는 ‘금사하’는 어머니의 급환에 약을 지으려고 나루터로 달려갔다. 상류에서 쏟아진 폭우로 건널 수 없게 되자 그 자리에서 통곡하였다. 이때 짙은 어둠 속에서 큰 호랑이가 나타났다. 눈앞이 캄캄하여지자 죽을 각오로 "나는 어머니의 병환이 위급하여 강 건너 주천에서 약을 지어다 드려야 한다. 내가 어머니께 약을 지어드린 후에 잡아먹던지, 마음대로 하라!"면서 호통을 쳤다. 이에 호랑이는 고개를 숙이고 꼬리를 흔들면서 등에 타라는 시늉을 하여 올라탔더니, 이내 거센 물결을 가르며 강을 건너 주었다. 약 짓기를 기다리던 호랑이는 다시 건너 집 앞에까지 태워다 주었으며, 어머니의 병환은 지극한 효성으로 완치되었다.】 이후, 숙종 승하에 ‘금사하’는 망산(望山)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며 ‘3년 상’을 지내게 되는데요, 호랑이도 함께하면서 지켜주었습니다. 3년 상을 마치고 3일째 날에 호랑이는 금사하의 집 마당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니, 강원 순영(江原巡營)에서는 호랑이 무덤에 ‘의호총(義虎塚)’ 비(碑)를 세워 널리 알리게 하였습니다.

영월 지역 인문학(寧越 地域人文學)인 호배도강설(虎背渡江說)의 공통점은, 간절함에 화답하는 은혜로움이었습니다.
겨울의 문턱 너머에는 이름 없이 다가서서 두 손 잡아주는 자원봉사자 분들의 성심이 또한 이어지고 있으니, 영월 그 아름다움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참고⦁인용 문헌】
『어계 비원 정절공어계조려선생사적비』.

『대동기문 상』 강효석 편저, 이민수 역, 2000년 명문당.

『영월 땅 이름의 뿌리를 찾아서』 영월군 발행, 엄흥용 지음, 1995년 한결 출판사.

『영월군지』 1992년 영월군 발행.

『조려 관련 호배 도강(虎背渡江) 전설의 의의』 이신성 부산교대 교수「동양 한문학회 어계 선생 조명 학술발표회 2016년 11월 서산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