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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6.1.두려움, 낙담, 도피, 패자, 실망, 실패, 좌절, 포기...1 (57P)
♥ ‘殉命의사람’, ‘성령님의侍從’, ‘하늘國務總理’, ‘골방의先知者’
배종부 목사의 2021년 4월 <성령의군대> ‘5병2어 선교경제’ ♥
1.헌금 10/10조, 2.선교비, 3.저축, 4.생활비
1>.제1차 ‘5병2어 선교경제’ 기도:2021.4.1.목
◇ 2021년에 전달한 하나님의 돈 3월 110명, 총 9,623만(월 평균 3,207만)◇
◇ 2021.1월 32명 2,708만 하나님의 돈 전달 ◇
◇ 2021.2월 37명 3,242만 하나님의 돈 전달 ◇
◇ 2021.3월 41명 3,673만 하나님의 돈 전달 ◇
아버지! 아들 진성이가 2018년도에 저의 갚지 못한 빚 3,700만 외에,
지난 2020년 10월에 350만, 11월에 361만, 12월 300만,
2021년 1월 275만, 2월 275만+100만 빚, 3월 275만의
거액의 선교십일조 헌금을 드려 주어서, 빚들을 많이 메꾸어 숨을 쉬게 되었습니다.
도무지 길이 없었는데, 아들로 인하여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지난 6개월 간, 매월 아들 진성이에게 평균 323만 선교십일조 헌금을 받았습니다.
주님! 이는 아들의 100배 축복을 위한 것이니, 아들을 통하여 주옵소서.
아들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아들이 흔쾌한 마음으로 선교십일조 헌금을 드리게 하여 주옵소서.
아들을 물질로 축복하신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아들로 인하여, 참으로 감사합니다.
오늘 여기까지는 정말 평안이 있습니다.
이제 2021년 4월 <성령의군대> ‘5병2어 선교경제’를 넘치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3월에 1,000만의 빚을 정리하고 넘어 가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한 것이 예언이 되어, 이루어졌습니다.
주님! 그러면 4월에는 2,000만의 빚을 정리해 주옵소서.
주님께서 기적의 돈을 돌려 주옵소서.
믿음은 경험입니다. 3월에 1,000만의 빚 정리의 경험이, 4월에는 2,000만의 빚 정리가 되게 하옵소서. 아멘.
오직 저를 축복해 주옵소서.
저의 소원은 돈을 남에게 빌리지 않고, 신용카드 돌리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오직 주시는 돈들로만 하나 하나 해결해 나가는 것입니다. 들레지 않고, 초조하지 않고, 평안 가운데 온전히 주님을 신뢰하면서 천수답 인생으로서, 돈을 하나 하나 해결해 가는 것입니다.
주님! 제게 채워 주옵소서.
주님! 4월에는 통장에 돈이 들어오는 대로 미리 미리 지출하여, 긴축 재정을 써 보겠습니다. 종을 인도해 주옵소서.
아버지! 저 배종부 목사의 <성령의군대> ‘5병2어 선교경제’를 넘치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저는 혼자 살지 않습니다.
땀과 눈물과 피를 철철 흘리며, 오직 ‘섬김과 나눔의 삶’을 삽니다.
주시는 대로, 빚 갚고서, 전부 나누겠습니다.
절대 빚지지 아니하고, 저축하고, ‘섬김과 나눔의 삶’ 을 풍성히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저는 아버지의 무한정의 <성령의군대> ‘5병2어 선교경제’ 의 ‘르호봇’ 의 넘치는 물권의 생수의 강을 퍼내는 사람입니다.
오직 아버지께서 공급하여 주옵소서.
사랑하는 아버지!
저는 돈 걱정을 절대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하루 하루 그 날이 되면 어김 없이 채워 주십니다. 할렐루야!
아버지! 제가 매월 2회-3회 제대로 된 교회에 부흥성회를 나가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경제를 자립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성령의군대>를 속히 일으켜 주옵소서.
내년 2022년까지 100억대의 <성령의군대> 세계선교센타로 이전하게 해 주옵소서.
이제는 코로나를 물리쳐 주옵소서.
이 악하고 불의한 문재인 정권자들이 더 이상 ‘정치 방역’ 을 못하게 하옵소서. 더 이상은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
온 국민들과 한국교회의 울분을 풀어 주옵소서.
사랑하는 나의 주님!
저는 하루 하루 삽니다.
하루 하루 넘치도록 채워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주님! 늘 일일이 채워 주옵소서.
카드 빚들과 약관대출 빚들을 정리하게 해 주세요. 너무 복잡합니다.
국민연금 밀린 것 1,200만을 해결해 주세요.
매월 매월 나가는 <기적 기도대성회> ‘강사비’ 를 넘치도록 부어 주세요. 저의 소원은 오시는 강사님들에게 1회 100만의 강사비를 챙겨 드리는 것입니다.
오직 종을 인도해 주세요.
오직 주님의 기적으로 채워 주옵소서.
아멘. 주님이 늘 이루셨습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진정 넘칩니다. 할렐루야!
주님은 늘 나를 인도하셨습니다.
서론:
‘고난주간’ 을 지나 가며, 오랜 세월 동안 나의 마음을 덮었던 주제 들을 새삼 되돌아 본다. 그리고 다시 성령으로 결단한다.
이제 성령 안에서 살아 가는 나는, 성령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고 힘을 주시니, 결코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겠다고...
그렇다. 성령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기적의 손길이 아니면, 사람은 낙담, 좌절, 절망, 포기할 수 밖에 없다...
2010년 6월의 절망적인 심정을 되돌아 보며, 다시는 그러한 삶을 살지 않게 해 주신 성령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2010년 6월 현재 나는 낙담, 도피, 패자, 비관, 실망, 실패, 좌절, 포기... 등등의 단어 들을 생각한다.
내 마음이 그렇기 때문이다.
왜 내 마음이 그런가?
세운지 12년 3개월이 지난 새성교회의 목회 때문이다. 30여 명의 성도들을 데리고 40대 내 청춘을 다 보낸 것이 너무나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사람 없음, 돈 없음, 기대치 없음, 억눌림... 등등이 나를 너무나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 속에서 성령 충만함이 식어 버렸기 때문이다.
나를 가장 낙담 시키는 사람은 짧은 기간에 목회를 성공시키고 부흥사로, 강사, 설교자로 불려 다니는 사람 들이다.
며칠 전에도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지금도 서울대에 강의를 나간다는 한 목사가 와서 개척교회 목회 강의를 했다.
그는 개척 두 달 만에 새벽기도회에서 아무도 없는 줄 알고 교회 간판을 내리겠다고 부르짖어 기도했는데, 한 젊은 예쁜 여성도가 처음으로 왔다가 그 말을 듣고 황급히 도망을 가 버렸다. 너무 부끄럽고 낙심하여 계속 기도하며 나아 가는데, 7개월 만에 새벽기도회만 70여 명의 성도가 출석하고, 주일 낮에는 30여 명의 성도가 출석했다고 한다.
그 무렵 신유의 은사가 있는 집사를 간증집회에 초청하여 부흥성회를 했는데, 당시 경기도 도지사의 부인인 의사가 그 집회에 왔다가 오십견의 치유를 받고 등록하여 교인이 됨으로 교회가 힘을 얻고 부흥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개척한지 10여 년 만에 장로가 수명, 권사가 수 십명, 안수집사가 수 십명의 교회로 키웠단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은혜스러운 말들을 했다.
문제는 그러한 말들이 나를 낙담 시킨다는 것이다. 그러한 성공담을 듣고 있으면, “나는 왜?” 라는 질문이 나온다.
내 교회, 내 목회는 왜 풀리지 않으며, 왜 일어 서지 않는가를 진정 깊이 돌아 본다. 그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나에게 복합적인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첫째는 나의 죄성이다.
타락되고 부패한 나의 본성들이 경건과 성결, 영성, 성령, 영혼 사랑과 돌봄, 교회 성장과 부흥에의 길을 계속 막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나의 안일함과 게으럼, 열정 없음 때문이다.
언제까지나 無爲徒食(무위도식) 한다. 盡人事待天命(진인사대천명)이 아니라, 나는 감나무 밑에 가서 누워 입을 벌리고 감이 내 입에 떨어지기 만을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한 없이 기다리고 있다.
얼마나 意氣銷沈(의기소침)하고, 비겁하고, 무기력하며, 행동이 없는 자인가?
셋째는 나의 저돌적이지 못한 성품과 기질이다.
개척교회 목사는 말이나 생각이 아니라, 발로 뛰어야 한다. 그리고 무례할 정도로 사람을 강권하고 몰아 부치고, 잡아 오는 저인망 쌍끌이 그물 목회를 해야 한다. 이번에 천암함을 침몰 시킨 북한 어뢰를 수거한 배도 바로 그러한 배이다.
그러나 나는 너무 예의 바르고, 신사이며,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못하며, 큰 교회의 잘 차려진 밥상에서 점잖은 목회를 해야 맞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지난 7년 간 끌어 온 매일 저녁 <365성령집회>를 앞으로 한 달 어간 쉬며, 퇴수(退守)의 시간을 가지려 한다. 이 시간 들에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고, 세미나에 참석하며, 꼭 참석할 모임 자리 외에는 조용히 물러 가, 자신을 돌아 보며 새로이 앞 날을 기도하고 정리할 생각이다.
돈이 있다면 멀리 여행이라도 가서 조용히 지내고 싶은 마음이 정말 간절하다.
승자와 패자의 차이
1>.승자(勝者)는 실수했을 때 "내가 잘못했다" 고 말한다. 그러나 패자는 실수했을 때 "너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말한다.
2>.승자의 입에는 정직이 가득하고, 패자의 입에는 핑계가 가득하다.
3>.승자는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하지만, 패자는 이 둘을 적당히 말한다.
4>.승자는 어린 아이에게도 사과할 수 있고, 패자는 노인에게도 고개를 못 숙인다.
5>.승자는 넘어지면 일어나 앞을 보고, 패자는 넘어지면 일어나 뒤를 본다.
6>.승자는 패자보다 더 열심히 일하지만 시간에 여유가 있고, 패자는 승자보다 더 게으르지만 늘 "바쁘다"고 말한다.
7>.승자의 하루는 25시간이고, 패자의 하루는 23시간 밖에 안된다.
8>.승자는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고, 열심히 쉰다. 패자는 허겁 지겁 일하고, 빈둥 빈둥 놀고, 흐지 부지 쉰다.
9>.승자는 시간을 관리하며 살고, 패자는 시간을 끌며 산다.
10>.승자는 시간을 붙잡고 달리며, 패자는 시간에 쫓겨서 달린다.
11>.승자는 과정을 위해 살고, 패자는 결과를 위해 산다.
12>.승자는 날마다 성취의 만족을 경험하고, 패자는 성취의 만족을 항상 내일로 미룬다.
13>.승자는 구름 위의 태양을 보고, 패자는 구름 속의 비를 본다.
14>.승자는 문제 속에 뛰어 들지만, 패자는 문제의 변두리에서 주춤거리며 서성인다.
15>.승자는 눈이 쌓이면 길을 만들고, 패자는 눈이 녹기를 기다린다.
16>.승자는 바람을 보면 돛을 위한 에너지로 삼고, 패자는 바람을 보면 돛을 재빨리 거둬 들인다.
17>.승자는 파도를 타고, 패자는 파도에 삼킨 바 된다.
18>.승자가 즐겨 쓰는 말은 '다시 한번 해 보자'이고, 패자가 즐겨 쓰는 말은 '해 봐야 별 수 없다'이다.
19>.승자는 차라리 용감한 도전자가 되려 하고, 패자는 비겁한 요행을 믿는다.
20>.승자는 달려 가며 계산하고, 패자는 출발도 하기 전에 계산부터 한다.
21>.승자는 실수했을 때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지만, 패자는 실수 했을 때 「너 때문에」이라고 말한다.
22>.승자의 입에는 솔직함이 가득하고, 패자의 입에는 핑계로 가득 찬다.
23>.승자는 「예」, 「아니오」를 확실히 말하고, 패자는 「예」, 「아니오」를 적당히 말한다.
24>.승자는 지는 것도 두려워 하지 않으나, 패자는 이기는 것도 은근히 염려한다.
25>.승자가 넘어지면 일어나는 쾌감을 알고, 패자는 넘어지면 재수를 한탄한다.
26>.승자는 무대 위에 올라 가고, 패자는 무대 아래로 내려 간다.
27>.승자는 실패를 거울로 삼으며, 패자는 성공을 유지로 삼는다.
28>.승자는 돈을 다스리고, 돈은 패자를 다스린다.
29>.승자의 마음에는 헌신이 있고, 패자의 주머니 속에는 욕심이 있다.
30>.승자는 용감한 죄인이 되고, 패자는 비겁한 요행을 믿는다.
31>.승자는 새벽을 깨우고, 패자는 새벽을 기다린다.
32>.승자는 일곱 번 쓰러져도 여덟 번 일어나고, 패자는 쓰러진 일곱 번을 낱낱이 후회한다.
33>.승자는 다른 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패자는 길은 하나 뿐이라고 생각한다.
34>.승자는 더 나은 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패자는 갈수록 태산이라고 생각한다.
35>.승자의 방에는 여유가 있어서 자신을 여러 모양으로 변화 시켜 보나, 패자는 자기 하나가 꼭 들어 갈 만한 상자 속에 스스로 가두어 놓고 산다.
36>.승자는 등수와 상과는 상관없이 달리나, 패자의 눈은 상 만을 바라 본다.
37>.승자의 의미는 모든 달리는 코스, 즉 평탄한 신작로와 험준한 고갯길 모두 깔려 있지만, 패자의 의미는 오직 결승점에 갈 욕심만 있다.
38>.승자는 꼴찌를 해도 의미를 찾으나, 패자는 일등을 해도 의미를 못 찾는다.
39>.승자는 달리는 도중 이미 행복을 느끼나, 패자의 행복은 경주가 끝나도 행복을 못 느낀다.
40>.승자는 자기보다 우월한 자를 보면 존경하고 그 사람으로부터 배울 점을 찾으나, 패자는 자기보다 우월한 자를 보면 질투하고 그 사람의 갑옷에 구멍을 찾는다.
41>.승자는 자기보다 못한 자와도 친구가 되나, 패자는 자기보다 못한 자를 만나면 즉시 보스가 되려고 한다.
42>.승자는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약하나, 패자는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하다.
43>.승자는 몸을 바치고, 패자는 혀를 바친다.
44>.승자는 행동으로 말을 증명하고, 패자는 말로 행동을 변명한다.
45>.승자는 책임지는 태도를 살며, 패자는 약속을 남발한다.
46>.승자는 벌 받을 각오로 결단하며 살다가 영광을 받고, 패자는 영광을 위하여 꾀를 부리다가 벌을 받는다.
47>.승자는 인간을 섬기다가 감투를 쓰고, 패자는 감투를 섬기다가 바가지를 쓴다.
낙담케 하는 자
보아 전쟁(1899-1902) 중에 한 사람이 아주 특이한 죄명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죄명은 '낙담시키는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군인들 사이를 돌아 다니며 적이 얼마나 강한가, 왜 방어하기 어려운가, 또 이 도시는 필경 점령될 거라며, 여러 말을 떠벌리고 다녔습니다. 그는 총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군인들은 이미 모두 무기력해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때로 우리는 남을 낙심케 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대안 없이 비난만 늘어 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격려는 약한 자에게 힘을 주고 머뭇거리는 자에게 희망을 줍니다. 오늘 당신은 사람들을 낙담케 하는 자가 될 수도 있고, 희망을 주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영국에 불신자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한 부인이 남편의 회개를 위해서 일 년 열 두달 날마다 기도하기로 결심하였다. 날마다 12시가 되면, 그 여자는 혼자 자기 방으로 가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 여자가 기도한지 12개월이 지나 갔는데, 그가 굴복할 징조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 여자는 6개월을 더 기도하려고 결심하고 날마다 혼자 방에 들어 가서 남편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였다. 6개월이 또 지나 갔는데 아직도 아무런 징조가 보이지를 않고 응답도 없었다. 懷疑感(회의감)이 그 여자의 마음에 일어 났다.
그를 포기할 수 있겠는가?
"아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속삭이실 때까지 그를 위해 기도하겠다" 라고 그 여자는 말하였다. 바로 그 날, 남편이 저녁 식사를 하려고 내려 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는데, 저녁 식사를 하려고 내려 오지를 않았다. 마침내 그 여자는 남편 방으로 갔더니, 그가 무릎을 꿇고 자기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이 그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셨다. 그는 기독교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자유로이 진행되었고, 그 사람 안에서 영광을 받으셨으며, 하나님은 그를 거대하게 사용하셨다. 그것이 바로 이 기독자 아내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신 증거이다. 그 여자는 두드리고, 또 두드리고 응답이 올 때까지 두드렸다.
낙심을 물리치는 무기
시련 없이 인생을 살아 갈 수는 없다. 시련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을 더욱 단련하시기 위한 하나의 도구이자 과정이다.
“잔잔한 바다에서는 좋은 뱃사공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영국 속담처럼, 시련 없이 성공한 사람 없고, 시련 없이 훌륭한 성과를 얻을 수 없다.
훌륭한 작품은 그 만큼 더 많은 시련을 거친 결정체이다. 그러므로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은 “시련이란 진리로 통하는, 으뜸 가는 길이다”라고 하였으며, 세네카도 “거치른 땅 위에서 굳어진 발굽을 가진 짐승은 어떠한 길이든 걸을 수 있다” 라고 하였다.
쇠붙이를 달구지 않고서는 도구를 만들 수 없는 것처럼, 시련 없이 인간을 훌륭한 인격자로 만들 수는 없다.
“폭풍은 참나무가 뿌리를 더욱 깊게 박도록 한다”는 G. 허버트의 말처럼, 실로 시련은 인간을 만드는 계기이며, 보다 나은 상태로 변화시키기 위한 진통이다.
시련은 인간의 됨됨이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 보지 않은 자는 작은 시련에도 좌절하기 때문이다. 시련을 극복하려는 의지는 인생을 성공시키는 원동력이며 매사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추진력이 된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롬 5:3,4)는 성경 말씀처럼, 시련 극복의 의지는 인내를 기르고, 소망을 키운다. 생활 속에서 오는 시련을 잘 견뎌 내고 희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다면 앞으로 더욱 큰 시련이 닥친다 해도 그만 두지 않을 것이다.
사탄의 경매에 관한 이야기
사탄이 걱정, 두려움, 욕망, 슬픔 그리고 자만심과 같은 물건을 팔기 위해 소비자들을 불러모았습니다. 상품 진열대 한 쪽 편에 "세일하지 않음" 이라는 낡아 빠진 꼬리표를 단 물건이 있었습니다. 사탄에게 “왜 이 물건은 세일하지 않느냐?” 고 물었습니다.
사탄은 "다른 물건들은 충분한 여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물건 만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유용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물건 없이 나는 사람들의 마음 깊숙히 들어 가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 물건은 '낙심, 좌절, 포기' 라는 것이죠." 라고 대답했습니다.
"낙심, 좌절, 포기" 를 물리칠 수 있는 무기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먼저 신뢰 하십시오.
하나님을 신뢰하고 우리의 낙심을 정직하게 아뢸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다스려 주십니다.
또한 기도 하십시오.
낙심자와 승리자
낙심하고 절망에 사로잡힌 그리스도인들은 슬프게 한탄하며 "세상이 되어 가는 꼴을 보아라 !" 라고 말한다.
그러나 희망과 자신감에 넘치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오신 자가 누군가 보아라!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시 24:8), 그가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사 우리가 구하고 생각하는 것 모두 위에, 더 넘치게 하실 것이다(엡 3:20)" 라고 기쁘게 외친다.
낙심치 마십시오
나의 어린 손자가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그렇게 좋은 감자를 왜 버려요?”
나는 마당에다 감자를 심고 있었는데, 손자는 감자를 땅에 묻는 것을 보고, 버리는 줄로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바로 이 기회를 이용하여 우리가 씨앗을 심을 때에만 수확을 다시 거둘 수 있다는 것을 그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며칠 후 아이는 다시 마당에 나가서 땅을 살펴 보고는 불평을 하였습니다.
“할아버지! 아직 아무 것도 안 나왔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그에게 인내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위해 드린 수고의 열매가 보이지 않을 때에 조급해 집니다. 때로는 결과가 금방 나타 나지 않음으로 해서, 그만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임종을 앞둔 한 군인이, 군목에게 그의 옛 주일학교 선생님께 편지를 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선생님이 주일학교에서 가르쳐 주신 것 때문에, 저는 지금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말해 주세요.”
목사님은 이 편지를 보낸 후, 다음과 같은 답장을 받았습니다.
“저의 가르치는 것이 아무 열매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지난 달에 주일학교 교사를 그만 두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나의 옛 학생의 소식을 들었던 것입니다. 저의 인내심과 믿음의 부족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길 기도 드립니다.
저는 저희 교희 목사님께 다시 가르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는 그만 두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을 의지하면서 신실하게 주님을 섬기십시다. 그리고 결과는 그분께 맡기는 것입니다.
영혼 구원은 아무도 모른다
존 브레덴벅 목사는 미국 뉴너지 주 서머빌 교회에서 다년간 목회 했으나, 그 자신은 교역이 실패라고 느껴 용기를 잃고 있던 중, 별세하였다.
그 후 1주일이 채 못 되어서 200여 명의 새 신자가 생겼는데, 신자들의 고백은 한결같이 브레덴벅 목사의 사역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서양의 어떤 목사는 일평생 사역에서 자기는 한 사람의 영혼도 구원하지 못하였음을 자백한 후에,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 날 묘지에는 주례하는 목사와 한 사람의 조객 뿐이었다.
목사가 하관식을 마치고 조객에게 가서 돌아 가신 분의 친척이냐고 물었으나, ‘아니라’ 고 하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목사님의 친척도 아니고, 교인도 아닙니다. 다만 돌아 가신 목사님이 제 영혼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신앙생활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이 낙심이요, 가장 권고할 만한 것이 자신감이다.
옛날에 아주 현명한 어떤 사람이 말하길 시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확고한 신앙이 가장 중요한데 첫째도 자신감이요, 둘째도 자신감이요, 셋째도 자신감이라고 거듭 강조하였다. 우리는 정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어느 날 사탄이 자기 부하들을 전부 모아 놓고 회의를 열었는데, 그 날의 토의 주제는 ‘어떻게 하면 선한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들어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한 악령이 벌떡 일어나, “저는 그에게 죄를 짓는 즐거움과 기쁨을 알려 주고, 죄를 지으면 많은 상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해 주겠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또 하나의 악령이 일어 나서 말했다.
“나는 그에게 선행의 고통과 슬픔과 어려움을 말해 주고, 또한 아무런 소득과 재미도 없음을 잘 설명해 주겠습니다.”
마침내 또 다른 악령이 “그의 영혼을 낙심과 절망에 빠뜨리겠습니다” 라고 했다. 이 짤막한 응답을 듣고 나서 사탄은 기쁨에 넘쳐 소리쳤다.
옛날에 한 작가가 말하기를 “모든 절망은 악마로부터 온다”라고 했다.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을 교훈 삼아 깊이 마음에 새겨 두고, 죄에서 멀리 떠나야 하는 것처럼, 낙심에서도 완전히 떠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를 낙심, 좌절하게 만드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믿음의 방패를 버리고, 두려움과 불신앙과 자기 연민이라는 마귀의 창의 공격을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도 사람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마지막으로 좌절이란 도구를 쓴다 합니다.
가지 않으면 네가 실망할까 봐 - 송지희
"와, 정희네 엄마는 참 세련됐다. 많이 배우셨나 봐."
아이들이 여기 저기서 수근거렸고, 정희는 아주 자랑스럽게 자기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린 내 눈에도 정희 어머니와 우리 어머니는 확실히 달랐다.
나비 같이 하늘 하늘한 원피스를 입은 정희 어머니, 늘 몸빼 바지만 입고 농사 밖에 모르시는 우리 부모님...
정희 어머니의 말 솜씨며, 손짓을 비롯한 모든 동작에서는 품위가 베어 있었다.
두 달에 한 번씩 우리 학교는 일일 교사로 부모님을 초청하여 수업을 하였다. 그 때마다 오시는 분들은 모두 학식이 높아 보였고, 경제적으로도 아주 여유있어 보였다. 그런 분들이 오실 때마다 난 그저 부럽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농사를 짓고 사는 우리 집은 추수로 인해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때였기 때문에 어서 집안 일을 거들 요량으로 학교 종이 땡하고 치자 마자 교실 밖으로 뛰어 나오는데,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지희야, 이번 토요일에 있는 일일 선생님을 아버님께서 해 주셨으면 하는데, 한번 여쭤 볼 수 있겠니?"
"네..." 대답은 했지만 나는 담임 선생님께서 왜 나에게 그런 부탁을 하시는지 몰랐다.
아니 원망스러웠다. 반에는 나보다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이 수두룩하였고, 집안이 넉넉한 아이들도 많은데, 왜 하필 우리 아버지일까? 하루 종일 밖에 나가 있으셔서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 책이라곤 한 권도 제대로 읽어 보지 않고, 아는 것이라곤 농사 뿐인 아버지.
이야기 할까 말까 며칠을 고민하다가 간신히 아버지께 말씀을 드렸다.
"뭐? 나더러 일일 교사를 하라고?"
아버지는 역시 당황하는 눈치였다.
"못 간다고 그래라. 벼농사도 바쁘고, 그리고 내가 가서 뭐 할 말이 있겠니?"
아버지의 말씀에 나는 적잖게 안심을 했다. 내심 아버지께서 거절하기를 바랬던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무척 실망하셨다.
"이제 와서 다른 부모님 오시라고 하기에는 너무 늦고, 이를 어쩌나?"
"죄송해요, 선생님. 아버지께서 요즘 농사 일로 너무 바쁘셔서 시간을 낼 수 없으시대요."
할 수 없이 이번 토요일에는 선생님께서 수업하기로 했다.
토요일 아침, 나는 다른 때보다 일찍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서둘렀다. 아버지께서는 여느 때처럼 논에 나가셨는지 보이질 않았다.
조례를 마치고 1교시 시작 종이 막 울리기 전인데, 교실 문 밖에 누가 왔는지 선생님께서는 황급히 복도로 나가셨고, 이윽고 교실 밖에 서 있던 분이 들어 오셨다. 그런데 그 분은 바로 못 오시겠다고 일일교사를 거절했던 우리 아버지가 아닌가?
"오늘 일일 선생님으로는 지희 아버님이 오셨어요. 여러분 인사해야죠."
아이들이 소리 높여 "선생님. 안녕하세요." 했다. 아버지는 쑥스러우신 듯이 손으로 뒷머리를 긁으셨다. 어정쩡한 아버지의 목소리.
나는 너무 부끄러웠다. 새까만 아버지의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유행이 지난 양복. 촌사람, 농사꾼, 무식... 이런 단어가 눈 앞에 왔다 갔다 했다.
아버지가 어떻게 말씀하시는지는 귀에 들어 오지도 않았고, 주위 아이들의 반응을 보느라 계속 힐끔 힐끔... 등에는 땀이 주르륵 흘렀다.
몇 분이 지났을까? 아이들의 '와'하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들어 아버지를 보니 아버지께서 아이들에게 볍씨를 나누어 주고 계시지 않은가?
"여러분은 집에서 항상 하얀 쌀만 보았죠? 그런데 하얀 쌀이 밥상에 오르기 전에는 이렇게 노오란 옷을 입고 있답니다."
도시에 사는 아이들은 신기한 듯이 볍씨를 이리 저리 살펴 보았다.
그 날의 아버지 수업은 이제까지의 수업 중 최고였다. 느릿 느릿 이어 가시는 아버지의 말씀에 아이들은 귀 기울였고,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은,
"지희네 아버님이 안 계시면, 우리는 모두 쌀을 외국에서 수입해 와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열심히 우리들의 먹거리를 위해서 땀 흘리시는 지희네 아버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는 박수를 드립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우뢰와 같은 박수 소리를 뒤로 하고, 아버지는 나가셨다.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에 싸여 집에 가는데 운동장 한 가운데서 누가 나를 불렀다.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내가 수업이 끝날 때까지 운동장 벤치에 앉으셔서, 나를 기다리신 것이다.
"나 괜찮았니?" 아버지는 내 눈치를 슬금 슬금 보시면서 물었다.
"친구들이 아빠의 수업이 너무 재미있었대요."
"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내가 안가면 네가 실망할까 봐. 새벽 일찍 논 일 정리하고 왔다."
<낮은울타리, 1999년 9월호> 충남 예산군 예산읍에 사는 송지희
실망의 근원
보통 사람들은 만사가 형통할 때, 은혜 넘치는 삶을 산다고 생각하여, 감사의 마음을 가진다.
그러나 일이 안될 때는 하나님의 시야 밖에 있다는 생각을 갖는다. 그래서 불평한다. 자기자신에 대해 실망한다. 자신에 대해 실망하는 사람은 자기가 한 일이 아무 소용없는 무가치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헌신도 아무 효과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은혜도 부정한다. 이는 무서운 진전이다. 은혜의 부정은 벼랑 길로 통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결과는 자신에 대한 실망에서 시작된다.
자신에 대해서 실망해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자신의 무력함과 보잘 것 없는 가치를 발견한 때다.
자신에 대해 왜 실망하는가?
그것은 현재 나의 모습이 내가 믿었던 바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을 신뢰한 것이 아니라, 나를 신뢰한 것이다. 그리고 나의 헌신과 수고를 믿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명목상 주가 될 뿐 사실은 악세사리였다. 나의 수고와 헌신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상태는 곤란하고 답답해질 때, 모든 것을 부정하게 된다.
은혜는 유명무실했기에, 역시 부정된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율법 대신에 은혜를 주셨다. 율법은 인간의 순종과 헌신에 따라 축복이 달라진다. 그러나 은혜는 무자격자에게도 주어진다.
하나님은 은혜 받은 자의 헌신을 기뻐하신다. 은혜 받은 자는 은혜를 악세사리로 여기지 않는다. 그는 자기를 신뢰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신뢰한다. 그에게 어려움이 닥쳐올 때 그는 은혜까지 부정하지 않는다. 실망의 근원은 자기를 신뢰하는 데 있다.
좌절감 몰아 내기
당신이 좌절을 겪는다는 것은 당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들이고 있지 않다는 표시이다. 만약 당신이 어떤 일에 좌절을 느낀다면, 그것은 당신이 그 일을 해결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당신에게 믿음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하나님의 은혜의 원천으로부터 은혜 받기를 중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나는 어떤 일 때문에 매우 긴장하고 불안했었다. 나는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더 혼돈스럽고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잠시 멈추고 기도했다.
"주님 저는 당신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나는 잠잠히 앉아 있었고 몇 분 후 주님께서는 내 상황에 대해 응답해 주셨다. 그렇게 하는 것은 실제로 아주 간단하고 쉬운 일이었다.
우리가 왜 그렇게 좌절을 겪는지 아는가?
그것은 우리가 바라거나 계획하는 대로 우리 삶이 그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고 의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매일 삶에서 직면하는 것들을 다 아시며, 어떤 것이 최선인지를 알고 계시지 때문이다. 단 이러한 은혜는 주님이 그렇게 하실 것이라는 것을 신뢰할 때만 일어난다.
좌절감에 사로잡혔던 링컨
1980년 2월 어느 날 월스트리트 저널에 이런 공익 광고가 실려 있었다.
"만약에 당신이 좌절감에 사로 잡혀 있다면, 이런 사나이를 생각해 보라. 그는 초등학교를 중도 퇴학했다. 그는 시골에서 잡화점을 경영하다 파산했다. 그 빚을 갚는 데 15년이나 걸렸다. 그의 결혼생활은 매우 불행한 것이었다. 그는 하원의원 선거에서 두 번이나 낙선했다. 상원의원 선거에서도 두 번이나 낙선했다. 그는 자기 이름을 늘 A 링컨이라고 서명했다.
직장을 잃은 사람, 일거리를 잃은 사람, 홍수 속에 재산을 잃은 사람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들이다.
좌절과 절망 속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는 유목 민족이었다.
그들은 양을 치면서 생계를 유지하였다
어느 유목민의 이야기이다.
하루는 양들이 샘물을 먹고, 다 죽었다.
그 주인은 자신의 생계 유지 수단인 양들이 다 죽게 되자,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우리 이제 굶어 죽었구나' 하는 생각에 좌절과 절망 속에 빠져 버렸다.
그는 양을 살려 낼 능력도 없었고, 또 다른 양들을 살 수 있는 돈도 없었다
그는 죽고 싶은 심정 뿐이었다.
그런데 그의 머리 속에 스쳐 가는 생각이 있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자기의 양들을 죽게 한 원인이 무엇인가 알고 싶었다.
그래서 그 샘물을 떠다 연구소에 의뢰하였다.
바로 그 샘물에서 나온 걸죽한 액체는 석유의 원료였다.
살 길이 없는 줄 알았는데, 그는 살 길을 찾았다.
살 길을 찾은 정도가 아니라, 그 액체 원료로 인해 세계적인 거부가 되었다.
좌절과 절망 속에 있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새로운 축복의 살 길이다.
좌절은 기회의 또 다른 얼굴
은행원에서 프로 골퍼로 변신.
김정남(45) 씨는 은행원으로 근무하다, 지난 해 10월 명예 퇴직했다.
그는 배명고 시절 봉황기 대회를 우승으로 이끌며,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기도 했던 야구 투수였다.
상업은행에 스카우트 돼, 10년을 선수와 코치로 지냈다.
그러다 투수에게 가장 치명적인 허리 디스크가 왔다.
디스크가 점점 심해지더니, 운동을 하기 조차 불가능했다.
그 때 주위에서 골프를 하면 허리 근육이 강화 돼, 치료 효과가 크다며 권유했다.
그는 새벽 3시에 일어나, 운동을 시작했다.
골프에는 <왕초보>였지만 운동 신경이 있어 곧 <탄력>이 붙었다.
강습비가 모자랄 땐, 아르바이트로 조달했다.
허리 디스크는 점점 나아져 갔다.
주위에선 지점장도 안하는 골프를 행원이 한다며 핀잔이 대단했고,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일했다고 한다.
그리고 내친김에 93년 프로에 입문했고, 나이 때문에 <티칭 프로>를 선택했다.
<전화위복>이란 말 그대로 새 인생을 사는 그는 "어떠한 난간이 있더라도 의지만 있다면 더 나은 미래가 열린다."고 말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 날 구멍이 있다는 말이 보여 주듯이, 완전한 실패나 완전한 좌절이란 있을 수 없다.
어떤 일에 실패한 것처럼 보이고, 자신이 처음에 마음 먹은 대로 잘 되지 않는다고 인생을 포기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단지 마음을 바꾸어 얼마든지 자신이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아 보고 개발하면, 더 넓고 다른 세상이 자신의 인생을 기다린다.
한 가지 자신이 계획했던 일이 실패했다고 좌절하는 것은 그 사람의 시야가 좁은 것이며, 생각이 경직된 것이다.
따라서 우린 오히려 자신이 계획한 것이나 생각한 것이 잘 안 되었을 때는 인생의 경험과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기회로 삼고, 감사하면서 열심히 새로운 삶을 개척해야 한다.
좌절을 딛고 일어선 골드 스미스
영국의 뛰어난 시인이자 소설가요 극작가인 골드 스미스는 어렸을 때부터 총명했던 것은 아니다.
"스미스야, 언제까지 그렇게 멍청하게만 앉아 있을 거니?"
그의 어머니는 늘 스미스에게 이렇게 잔소리를 해 댔다.
똑똑하거나 남다른 부분이라고는 어디 한 군데 찾아 볼 수 없는 그런 아이였다.
"저 스미스라는 아이 좀 봐요. 저 애는 언뜻 봐도 멍청하게 보인다니까요."
이런 말을 들을 때 마다 스미스의 마음은 몹시 아팠다. 그는 자꾸만 의기소침해 지는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책을 읽으며,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낸 스미스는 자신 만의 독특한 세계를 가지게 되었고, 주위로부터 더 이상 모자라는 아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앓고 있던 난치병은 여전히 그를 괴롭혔다.
"내 상황에서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그는 어릴 적부터 독서를 많이 했고, 글을 쓰는 일이라면 무엇보다 자신 있었다. 그는 매일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냈다. 쓴 글은 여기 저기 신문사나 잡자사에 보냈지만, 매번 되돌아 왔다.
"그래, 내 글에 문제가 있는 게 틀림 없어."
그 때마다 스미스는 자신의 글을 다시 분석하고, 고쳐 나갔다. 그것은 마치 제 살을 깍는 듯한 고통을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골드 스미스 씨 안녕하십니까? 당신의 글을 책에 싣고자 이렇게 통보를 드리니, 곧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적힌 어느 잡지사의 전보를 받고, 그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 뒤 계속 글을 발표해 유명해진 그는 주위 사람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을 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명성은 실패했을 때 마다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다시 일어 섰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소."
좌절을 이기는 힘 – 조지 물러
고아의 아버지 조지 물러는 믿음과 사랑을 지닌 위대한 인물이었다.
조지 물러에 대해 깊이 연구하던 아더 피어슨 박사가 조지 물러의 성경을 조사하게 되었는데, 시편 37편 23절 말씀 옆에 고인의 친필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니]
[그리고 또한 멈춤까지도...]
우리는 살아 가면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멈춰 서성대고 좌절할 때가 있다.
그 때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보행을 살피시고, 힘을 주시고 보호하시는 것이다.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시편 34:21)
좌절의 늪을 빠져 나오는 길
존 하가이라는 미국 전도학자의 저서 중에, '내 아들 존' 이라는 책이 있다.
존은 하가이의 외아들로 태어 날 때부터 정신박약아였다. 존은 예배시간에 휠체어에 앉아서 아버지의 설교를 듣곤 했는데, 소리를 지르면서 좋아했다고 한다. 하가이 부부는 존을 치료하기 위해 22년 간 안고 다니며 애를 썼지만, 결국 죽고 말았다.
하가이는 자신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죽은 아들 존을 위해 제 3세계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그는 세계 곳곳을 돌아 다니며 ‘하가이 인스티튜드’ 라는 단체를 조직했다.
‘하가이 인스티튜드’ 는 제 3세계 선교방법을 모색하고, 선교사를 훈련하여 파송하는 기관이다. 하가이는 깊은 상처의 치유 방법을 실망과 좌절이 아닌 선한 일을 행함으로써 찾았던 것이다.
실망과 좌절을 바라 보기만 한다면 우리는 거기서 헤어날 수 없으나,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보다 선한 일, 의미 있는 일을 위하여 헌신하게 된다면, 우리의 상한 마음을 치유하고 남에게 소망을 주게 된다.
사도 바울,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서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위로하게 하시는 분”이라고 고백한다.
좌절할 때 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
캘리포니아 말리브에 있는 페퍼다 대학교의 졸업식 날이었다.
그 날 1백 명의 학생들이 학사 학위를 받았는데, 대학 졸업자의 평균 연령이 40세 가까웠다. 고령의 졸업자 가운데 67세의 할머니가 있었는데, 그는 10명의 자녀와 27명의 손자 손녀를 가진 할머니였다.
그 할머니가 학사 학위를 받으려고 단상에 올라 가자, 한 백발의 노인과 여러 사람들이 앉았던 자리에서 환호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머니, 드디어 해 내셨군요. 할머니, 잘하셨어요. 드디어 성공하셨어요."
졸업식이 끝나고 그 할머니는 자기 목사님을 만나 격정에 못 이겨 눈물을 흘리면서 목사님의 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
"목사님이 나에게 만약 믿음을 심어 주지 않았더라면, 나의 하나님이 내가 좌절할 때마다 나에게 새 힘을 주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시작하자 마자 포기했을 것입니다."
이륭양행 취직 포기
길선주 목사와 둘째 아들 길진경이 3.1운동 때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고 나왔다.
어려운 경제사정을 감안하여 아들 길진경은 중국으로 망명해 안동현에 있는 무역을 주로 하는 영국인이 경영하는 이륭양행에 취직했다. 길진경은 중국에서 교육을 받았고 영어를 할 줄 아는 것도 도움이 되었으며, 대학시절에 영국인 회사에서 일을 해 본 경험이 인연이 되어 취직이 되었다.
월급은 그 때 돈으로 500원이었다. 길진경은 득의만면해서 어머니에게 취직되었다고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렇게 타일렀다.
"아직 우리가 죽을 먹을 정도는 아니니 좀 기다려라. 그 일이 이제 와서 네가 밟을 길은 아니다. 고불통을 물고 일등차나 타고 다니면서 호화로운 생활에 도취된다는 것은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양육한 목적도 아니며, 그 일은 도리어 네 앞 길에 장애가 되는 길이다."
그 취직 자리는 누구나 들어 가고 싶어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길진경은 부모의 말에 순종해 취직을 포기하였다.
차별화 할 수 없으면 포기하라
1967년 후발업체로 항공 사업에 뛰어든 사우스웨스트 에어라인은 기존의 항공사와는 전혀 다른 노선을 걷기로 결심한다.
바로 '낮은 가격에, 낮은 서비스'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L.A.까지 자동차나 열차로는 6시간 정도 걸리지만, 비행기로는 1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그렇지만 비행기 요금은 너무 비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탑승을 포기한다.
사우스웨스트는 이 수요가 분명히 있다고 판단하고, 이들에게 승부를 건 것이다. 그래서 전체 운항 노선의 80% 이상을 750마일 이하의 거리 만을 비행하기로 하고, 고속버스와 철도를 경쟁 상대로 삼았다. 이 비행기에는 퍼스트 클래스나 비즈니스 클래스는 당연히 없다. 티케팅을 할 때, 자리 배정도 없다. 먼저 오는 사람 순서대로 앉는 것이다. 식사 서비스는 당연히 제공하지 않으며, 그 만큼의 비용 절감이 있기에 낮은 가격에 항공권을 판매해도 높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렇지만 정시 도착률은 미국 항공사 중 최고이다. 정시 도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비행 정비 시간을 단축 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사우스웨스트는 비행기 기종을 한 가지로 통일하였다. 자사 소속의 정비사라면 누구나 정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차별화 하는 것인가?
새로운 개념을 부여하면 된다. 게토레이의 예를 보자. 게토레이는 포카리스웨트 보다 약간 늦게 출시되었다. '제일 먼저'의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수십 억 원의 광고비를 쏟아 부었지만 매출은 늘지 않았다. 아니 매출은 고사하고 93:7이라는 치욕적인 시장점유율 구성비는 전혀 변동이 없었다.
당시 관계자는 고민 끝에 새로운 개념을 찾아 냈다. 바로 스포츠 드링크의 개념이었다. 부랴 부랴 광고 회의가 열렸고 '달지 않아야 한다.', '물 보다 흡수가 빨라야 한다.' 등의 광고 카피가 선정되었다. 새로운 개념으로 광고를 포장한 뒤의 결과는? 물론 대성공이었다.
최초가 아니지만 최초로 대접 받을 수 있는 기술, 이것은 창조성의 영역이다. 컴퓨터가 아무리 발달하여도 이 분야 만큼은 인간이 해야 할 일이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발상의 전환'이다.
얼음이 녹으면 무엇이 되는가?
이 질문에 대해 '물'이라는 평범한 대답보다는 '봄'이라고 하는 발상이 필요한 것이다.
포기는 없다 – 처칠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
처칠은 전쟁 중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우리는 땅에서는 물론, 바다와 하늘에서 한치도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국토를 수호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고, 결코 포기하지 않고, 전투를 계속할 것이다.
우리는 믿는다.
힘과 능력을 가진 새로운 세상이 옛 것의 회복과 해방을 향하여 우리 앞에 올 것이다.』
포기만 안하면 길은 있다 - 이상진
"부도가 났다고 해서, 다 끝난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포기하는 그 때가 바로 끝이 나는 순간이지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때 길은 있습니다."
두 번의 부도를 맞고 지옥과도 같았던 세월을 견뎌 나와, 지금은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우수생산업체로, 중소기업진흥공단으로부터 유망중소기업으로 선정되고, 조립식 전문 건설업 강원도내 도급 순위 1위를 차지한 영동 조립개발 주식회사를 이끌고 있는 이상진 대표의 말이다.
이 대표가 회사를 설립한 것은 지난 89년 삼척에서였다. 그 후 91년 원주로 옮겨 와 공장을 지으며 1차 부도를 맞았다. 그리고 1차 부도가 있은 지, 두 달 만에 다시 부도를 냈다.
이 대표는 독한 양주와 소주를 들이키고 죽어 버릴 생각을 했다. 그러나 죽을 결심을 접고 사무실로 돌아 왔다. 그리고 10여 개월 간의 지옥생활이 시작됐다.
이 대표는 하루는 사무실을 지키고, 하루는 채권자들을 교대로 찾아 다니는 식으로 일을 해나갔다.
돈 한 푼 건네 주지 못하고, 봐 달라는 사정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10개월이 지나면서 원자재를 외상으로 갖다 쓰고, 이자와 원금을 조금 씩이나마 갚아 나가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주위에서도 명퇴나 부도의 소식이 심심치 않게 우리의 귓전에 울려 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코로나라는 커다란 괴물에게 힘 한번 써 보지 못하고 좌절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성도들은 실패와 환난 중에도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포기하지 않고 인내로서 난국을 이겨야 한다.
포기의 미덕 -코리 텐 붐 여사
'피난처'의 작가 코리 텐 붐 여사가 어렸을 때 일이다.
시계점을 하던 아버지가 며칠 만에 시계 하나를 파는 것을 보고, 그녀는 매우 기뻐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구매자가 "먼저 시계를 산 집에서 고장 난 시계를 수리하지 못해 구입하게 되었다." 라고 말하자 그 시계를 보여 달라고 한 뒤, 수리해 준 후 다시 새 시계를 돌려 받았다.
그녀가 "아빠, 왜 그러세요? 그냥 팔지." 라고 묻자 아버지는 대답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란다. 부당한 이익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포기해야 돼."
포기하는 용기
어느 날 우리 교회 성도 한 사람이 날 찾아 와서, "목사님, 제게는 영적인 문제 한 가지가 있습니다."라고 했다.
"무슨 문제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는 대답하기를 "석유 회사 주식을 500개 갖고 있는데, 그것이 제 영적 생활을 파멸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게 있어 마치 우상숭배와 같습니다. 그래서 그걸 목사님께 드리려고 여기 가져 왔습니다." 라고 했다.
"나는 당신의 영적 문제를 떠맡고 싶지 않습니다. 내게도 내 나름대로의 문제가 있으니까요"라고 나는 대답했지만 그는, "이것이 목사님의 신령함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님께서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시는지 지켜 보겠습니다." 라고 막무가내로 주장하면서 그 석유 회사 주식 500개를 내게 주었다.
그것이 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짐작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내 마음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주가가 올라 가고 내려가는 것을 초조하게 지켜 보며 염려했다. 그러다가 결국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건 그 사람을 혼동시켰던 것 만큼이나 내 마음도 혼동시키고 있었어."
그래서 나는 그것을 한 주당 50센트씩 도합 250달러를 받고 팔았다. 바로 그것이었다.
단 한 번, 어떤 사람이 "아직도 그 주식을 갖고 계십니까? 한 주당 10달러가 나가던데요." 라고 말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그 이후로 그 주식에 대해 생각 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끝까지 가지고 있으면서 염려하게 되지 않은 것이 정말 기쁘다. 우리가 소유한 것들은 삶의 우상이 될 수 있다. 주님께서는 물질들을 수평적으로 쌓아 놓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이기적인 마음으로 재물을 축적해 놓은 것은 터무니 없는 사치이며,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대의를 향해 완악한 마음을 품게 만든다.
포기하라고 가르칠 순 없었소 - 안향미
운동장 한 켠에서 혼자 야구공을 던지고 있는 `선수'가 있다. 안향미(19) 양.
야구협회에 공식 등록됐던 최초의 여자 야구 선수.
그러나 이제는 몸 담고 있는 팀이 없다. 지난 달 고교를 졸업했지만, 대학이든 프로든 그를 받아 준 팀이 한 곳도 없다.
그래도 몸을 만드는 일은 하루도 빠뜨리지 않는다.
“내가 야구를 떠나지 않는 한, 여전히 야구선수”라며 씩 웃는다.
아버지 안화상(47·자영업) 씨는 그런 딸을 쳐다보며 자신한테 반문한다.
`과연 딸을 잘 키워온 것인가?'
안씨의 상념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3남 1녀의 고명 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
운동 한 종목은 해야 강인한 정신력을 기를 수 있다는 생각에, 초등학교 다니는 딸한테 운동을 권했다. 향미는 야구를 하겠다고 했다. 재미를 붙이더니, 아예 선수가 되겠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안씨는 야구가 `금녀의 종목'인지 몰랐다. 그 순간부터 야구협회가 인정하는 야구선수가 되기 위해 아버지와 딸은 숱한 장벽들을 힘겹게 넘어야 했다.
끝까지 하고 그만 둬도 안늦어...
향미는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차별하는 제도적 장벽과 마주쳤다. 야구협회에서 여자라 선수 등록을 받아줄 수 없다고 했다. 안씨는 그 때 `여자로 태어나 이 땅에서 살아 간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절감했다고 한다. 풀죽은 딸을 바라 보며 고민했다. `계속 야구를 하게 할 것인가, 그만 두게 할 것인가.'
고민 끝에 딸한테 `포기를 가르칠 수 없다'고 결심했다. 이런 장벽에 막혀 포기하게 하면 세상을 살아 가면서 작은 차별에도 쉽게 꿈을 접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협회를 상대로 부닥친 결과 결국 선수 자격을 받아 냈다.
고교에 진학할 때에는 더 큰 장벽이 앞을 가로 막았다. 교육청에서 규정상 향미한테 특기생 자격을 줄 수 없다고 했다. 교육청을 상대로 “아이들의 꿈을 꺾는 게 과연 교육적으로 옳은 처사냐”고 설득했다. 마침내 교육청은 손을 들었고, 규정을 고쳐 여자 특기생 종목에 야구를 포함시켰다.
안씨는 “뭐든지 쉽게 그만 두게 되면, 포기가 습관이 된다. 딸한테 끝까지 해 본 뒤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아도 늦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네가 택한 일, 네가 이겨 내라
향미는 여자가 하지 않는 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서러움을 많이 받았다. 고교 1학년 때였다. 안씨가 우연히 학교에 들렀더니, 텅 빈 야구부실에서 혼자 울고 있었다. 까닭은 이랬다. 지방으로 연습경기를 하러 가기로 해, 향미도 함께 버스에 타려고 했다. 한 동료가 향미한테 `교실에서 선생님이 부른다'고 했다. 영문을 모른 채 교실로 갔다. 그 때 운동장에서 야구팀을 태운 버스가 출발하는 게 눈에 들어 왔다. 향미가 스스로 야구를 그만 두게 하기 위해 이런 식으로 따 돌린 것이다.
안씨는 억장이 무너졌다. 그렇지만 내색을 하지 않았다. 딸한테 “네가 택한 길이다. 아버지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다 하겠지만, 네가 극복해야 할 것은 스스로 이겨 내야 한다”고 했다. “부모한테 의지해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으려는 딸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앞으로 숱하게 이런 어려움을 겪게 될 터인데, 그 때마다 부모가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가르침 때문일까?
향미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땅을 치며 통곡을 하는 일은 있어도, 남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정말 하고 싶으면, 뭐든지 하라
“하필이면 미래가 보장되지 않을 길을 걷게 하느냐?”
안씨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얘기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딸이 하고 싶은 게 야구이기 때문이다. 안씨는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것 만큼 세상을 살면서 서글픈 일이 무엇이겠느냐?”고 되물었다.
향미가 고교를 졸업하고 받아 주는 팀이 없어도 자신감을 잃지 않는 것도 이런 아버지의 가르침 덕분이다.
향미는 지금도 끊임없이 도전 중이다. 얼마 전에는 한국야구위원회(KBO) 기록원 시험을 쳤다. 그렇게라도 야구를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으로 건너 가 야구를 계속하고 이론을 쌓을 계획도 세워 놓고 있다.
향미는 “미국에서 야구공부를 한 뒤 다시 돌아 와 남녀 혼합 리틀 야구팀도 가르치고, 그 때 쯤 우리나라에도 여자 야구팀이 만들어 지도록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안씨는 비록 어려운 살림이지만 딸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할 것이라고 했다. “다른 여자들이 하지 않은 일을 딸이 하겠다고 하면, 부모들은 흔히 막습니다. 그러나 비록 딸이더라도 정말 하고 싶다고 하면 무엇이든 하라고 하십시오. 열심히 하면 반드시 새로운 길은 열리기 마련입니다.”
향미가 내일을 향해 야구공을 던지는 한 딸 교육은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 안씨는 말했다. 그리고 크게 웃었다.
포기하지 말라
시편 130편 7절에는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이 있음이라"라고 기록하였다.
다시 말하면 주안에서만 소망이 있고, 그는 계속하여 인간을 사랑하며, 그는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우리를 도와 주시리라고 말씀하신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조그만 시련에도 넘어지고 자빠지며 낙심하고 절망하고 원망한다.
한문의 ‘落心(낙심)’이란 글자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그 무엇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라고 했는데, 마음 속에 있는 절대적인 것, 곧 하나님의 성령이 떨어져 나가는 사람은 낙심 좌절하게 되었다.
반면에 영어에서 열심이란 말은 Enthusiasm인데, 그 뜻은 in+theos(하나님), 즉 그 속에 하나님이 있는 사람은 열심이 있고, 낙심하지 아니한다는 뜻이다.
발명왕 에디슨이 나이 많아서 그의 기재 창고에 불이 났다. 그의 아내 및 자식들이 화재 현장에 나와 발을 동동 구르며 슬퍼했다. 그러나 정작 가장 가슴 아파해야 할 에디슨은 태연자약했다. 그는 이런 말로 가족들을 위로했다.
"하나님께 감사하라. 늙은 내가 저 폐품을 정리하려면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그것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한꺼번에 고물을 처리해 주시니 어찌 감사치 않으리. 이제부터는 다시 새로운 연구를 시작하여, 더 좋은 발명품으로 창고를 가득 채우리라."
포기하지 않은 자에게 하늘 문은 열린다(마 7:7)
포기하지 말라!
우리 교회의 장로 한 분이 심각한 심장 질환을 앓아 오다가, 혼수 상태에 빠져 병원에 입원했다.
그 때 한 외과 의사는 그에게는 전혀 희망이 없으며, 또 살아 난다 해도 식물 인간이 될 것이라고 얘기했었다. 나는 그가 입원한 직후에 병원에 들렸었는데, 유명한 신경 외과 의사인 스마일러 브랜튼 박사의 얘기를 생각했었다.
"두개골 부분에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여전히 뇌에는 정상적인 부분도 아주 많습니다."
나는 그의 얘기를 믿으며, 우리 교회의 장로가 들을 수 있다는 가정을 하고서 이렇게 얘기했었다.
"스탠리 씨, 슐러 박사입니다. 당신은 회복될 것이라더군요."
그러자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첫 번째 표식이었다. 그리고 혼수 상태에 빠져 있었으면서도 스탠리 씨는 꿈을, 자신은 회복된다는 꿈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에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교회에 온 스탠리 씨는 목발도 없이 주위를 걸어 다녔다. 나는 뛰어 나가 그를 맞이하였고,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목사님, 당신은 위대한 분입니다."
나의 대답은 이러했다.
"스탠리 씨, 위대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포기하지 말아라!
포기한다는 것은 오직 당신을 위한 하나님의 꿈을 죽이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꿈이 깨어 지도록 버려 두시지는 않는다.
포기하지 말라(Don't give up) -처칠
윈스턴 처칠은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정치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중학교 때 3년이나 진급을 못했다. 영어에 늘 낙제점을 받은 때문이었다. 육군사관학교에도 들어 가지 못하고 포병학교에, 그것도 명문의 자제라는 특전 때문에 입학이 되었다.
그런 그가 먼 훗날 옥스퍼드 대학의 졸업식에서 축사를 하게 되었다.
처칠은 우레 같은 박수를 받아 가며, 위엄있게 연단에 걸어 나와서 천천히 모자를 벗어 놓고 청중을 바라 보았다. 청중은 숨소리를 죽이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포기하지 말라(DON'T GIVE UP)"
이것이 그의 첫 마디였다.
그러고는 처칠은 천천히 청중석을 둘러 보았다.
사람들은 조용히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처질은 목청을 가다듬고 다시 소리쳤다.
"포기하지 말라!"
그러고는 그는 위엄으로 가득찬 동작으로 연단을 걸어 나갔다.
포기하지 말아야 할 때...
때로는 일이 잘 되지 않을 때
그대가 걷고 있는 길이 내내 언덕 길일 때
자금은 얼마 없고 빚은 많을 때
웃고 싶어도 한숨 지어야 할 때
걱정이 그대를 내려 누를 때
쉬어야 한다면 쉴 것이나 포기하지 말지니
우리 모두가 알게 되듯이
인생이란 굴곡이 있는 이상한 것이며
많은 실패가 방향을 바꾸리니
참고 견디면 이길 수 있으리
속도가 느리더라도 포기하지 말지니
또 한 번 바람이 불어 성공 할 수 있으리
성공이란 안에서 거절 당한 실패
아주 멀어 보일 때도 가까운지 모르니
그대가 포기하지 말아야 할 때는
가장 힘들 때이리라
포기하지 말자! -최용우
반드시 길은 있습니다.
반드시 방법은 있습니다.
반드시 해결책은 있습니다.
반드시 도와 주실 분은 있습니다.
반드시 해 낼 수 있습니다.
반드시 잘 될 것입니다.
이 문제의 해결 방법은 분명히 5가지 이상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틀림 없이 있습니다.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 앉히고 생각해 봅시다.
연필을 들고 가장 쉬운 가능성부터 적어 보십시오.
아직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릅니다.
분명히 방법은 있습니다.
자! 파이팅!
포기하지 않는 것이 승리의 비결 -처칠
영국의 수상까지 지낸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경은, 어렸을 때, 그가 태어난 고장에 있는 공립학교에 다녔습니다. 당시 윈스턴 처칠은 학교 성적이 중간에도 미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말썽꾸러기 학생으로 유명했습니다.
만일 그의 아버지가 그 고장의 지주인 랜돌프 처칠만 아니었으면, 윈스턴 처칠은 졸업은 커녕, 일찌감치 퇴학 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던 윈스턴 처칠은 공립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거쳐, 영국 군대에 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군대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휘하기 시작한 윈스턴 처칠은, 결국 67세에 영국의 수상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윈스턴 처칠의 뛰어난 지도력과 감동적인 연설은, 세계 제2차 대전 내내, 영국 국민에게는 물론, 연합군으로 참전한 전 세계 국민들에게 커다란 용기를 부어 주었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윈스턴 처칠이 말썽만 피웠던 모교에서 졸업식 연설을 부탁했을 때, 윈스턴 처칠은 어린 학생들 앞에서, 그의 생애에서 가장 짧은, 그리고 가장 진지한 연설을 했습니다.
"젊은 학생 여러분,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끝까지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렇습니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인내입니다. 인내하는 사람, 포기하지 않는 사람만이 마지막 승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랑
수년 전 한 아가씨가 스코틀랜드 주일학교에서 장난꾸러기 소년만 모인 반의 담임을 자청하고 나섰다. 그 중에서도 보비라는 소년은 다룰 수 없는 골칫거리 아이였다. 주일학교에서는 이 여선생님에게 새 옷 한 벌을 가지고 보비의 집을 방문하여 계속 출석 잘 하도록 했다. 여선생님이 보비의 집을 방문했을 때, 보비는 씻지 않아 땟물이 흐르는 얼굴에 머리는 빗질을 하지 않아 헝클어져 있었고, 그가 입고 있는 옷은 진흙에 뒹굴어 거의 걸레가 되어 있었다.
여선생님은 보비에게 새 옷을 갈아 입히고, 교회에 잘 나오도록 부드럽게 얘기했다. 그러나 보비는 또 더러워졌고, 교회도 나오지 않았다. 여선생님은 다시 보비를 방문했다. 이미 새 옷은 다 망쳐지고, 걸레가 되어 있었다. 또 한 벌의 새 옷을 선물하고, 잘 타일렀다. 그러나 여전히 보비는 달라지지 않았다. 여선생님은 힘이 빠지고 말았다. 주일학교 부장을 찾아 가 이제 더 이상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주일학교 부장은 "용기를 잃지 말고 계속해 보십시오" 하고 격려했다. 그 여선생님의 계속적인 노력으로 고삐 풀어진 망아지 같은 이 소년은 나중에 훌륭하게 성장하여 중국에 선교사로 갔다.
그가 바로 로버트 스미슨 목사이다. 그는 성경을 중국어로 번역하여 수백만의 영혼을 주께로 나오게 했다. G.D. 제임스 선교사이다.
포기하지 않는 삶의 교훈
13세기 스페인의 귀족이며 명문 대학의 교수이었던 라몬 럴은 자신의 유망한 장래를 포기하고, 모슬렘 교도들을 복음화 하기 위해 갔었다. 그는 두 번이나 그 나라에서 추방을 당하였다.
네덜란드에서 핍박이 심해질 때에, 겔린 드 물러는 믿음을 버리고 성경 읽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화형 당하게 된다는 경고를 받았다. 그에게는 아내와 네 자녀가 있었다. "당신의 아내와 자녀를 사랑하는가?" 라고 재판관이 물었다.
"만일 하늘이 진주이고 땅이 금덩어리이고, 내가 그 모든 것의 소유자라면, 우리가 겨우 빵과 물만 먹고 살게 될지라도, 내 가족을 위해 그 모든 것을 포기할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아신다. 그러나 결단코 그리스도 만은 포기할 수 없다."
끝내 그는 교살 되어, 화장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사랑의 희생을 잊지 않으셨다.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하용조
양이 길을 잃어 버린 것은 양의 실수입니다. 우리가 고생하고 어려움을 겪는 것은 하나님의 실수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실수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못해서, 교만해서, 버릇이 없어서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쳐 온 몸이 상처 투성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실수해서 우리가 잘못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우리 잘못 때문에 구원을 포기하거나, 하나님의 사랑을 유보하시지 않습니다. 여전히 우리를 찾으시고 우리를 기억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죄인 가운데는 스스로 회개하고 돌아 올 가능성이 있는 죄인이 있습니다. 탕자가 되었어도, 하나님을 등 뒤로 하고 세상에 가서 인간적으로 살고 죄에 빠져 괴로워 하다가도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죄인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문을 열고 밤이나 낮이나 기다리십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죄인은, 스스로는 절대로 죄 가운데서 빠져 나올 수 없는 그런 죄인이 있습니다. 이런 죄인들을 위해서 목자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찾아 가는 것입니다. 우리를 만나기 위해 예수님은 2000년의 세월을 거쳐 여기까지 찾아 오셨습니다.
우리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포기할 수 없는 사랑
이노우에 가오루, 그는 일본에 근대화를 가져다 준 명치유신의 주역으로 일본의 외무대신을 지내기도 했다.
그가 어느 날 중대 회의를 마치고 밤 늦게 귀가하던 중에 난데없이 나타난 괴한들의 습격을 당했다. 얼마나 심하게 맞고 또 칼에 찔렸던지 온 몸에 성한 곳이란 한 군데도 없었다. 집으로 업혀 온 그는 형에게 애원을 했다.
"형, 난 이제 살아 날 가망이 전혀 없어. 차라리 나를 죽게 해 준다면 이 엄청난 고통은... "
말을 끝맺지도 못한 채 절박하게 호소하는 동생은 자신을 안락사 시켜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형으로서 사랑하는 동생을 어찌 죽일 수가 있단 말인가? 머뭇거리는 형을 향하여 동생은 거의 들릴락 말락하는 소리로 애원을 했다.
마침내 형은 결단을 내렸다. 서슬 퍼런 일본도가 형의 손에 쥐어졌다. 온 몸의 힘을 칼 끝에 모으고 힘껏 동생의 목을 향해 내리쳤다. 그러나 그 순간 그의 어머니가 동생의 피투성이 몸뚱아리에 몸을 던졌다.
결국 형은 어머니의 애절한 부탁을 받아 들여, 동생의 소원을 들어 줄 수가 없었다. 그 후 이노우에는 의사들의 정성 어린 치료와 어머니의 간호로 회복되었다. 그리고 그는 일본의 근대화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바칠 수가 있게 되었다.
사랑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본인도 포기하고, 이웃의 많은 사람이 포기했을지라도 진정한 사랑은 그 사랑의 대상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안득장자언
고요히 앉아 본 뒤에야
보통 때의 기운이 경박했음을 알았다.
침묵을 지킨 뒤에야
지난 날의 언어가 조급했음을 알았다.
일을 되돌아 본 뒤에야
전 날에 시간을 허비했음을 알았다.
문을 닫아 건 뒤에야
앞서의 사귐이 지나쳤음을 알았다.
욕심을 줄인 뒤에야
예전의 잘못이 많았음을 알았다.
정을 쏟은 뒤에야
평일에 마음 씀이 각박했음을 알았다.
칼라일의 후회
아내가 죽은 후에 칼라일은 일기에 이렇게 썼다.
"오, 아내가 다시 한 번 깨어 나서, 내가 그녀를 평소에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말해 줄 수 있다면... 하지만 그녀는 불행히도 그 사실을 모르고 죽었다."
후회 없는 목회생활
목회자들이 모이면 주로 목회 애로점들을 토로한다.
그래서 서로 연구하고 토의하며 난제를 풀 때가 많았다. 때로는 어떤 목사가 고충을 말하는데 "내가 어쩌다가 목사가 되었는고? 천하에 못할 노릇이 목사 노릇 아닌가? 그만 두지도 못하고 계속하지도 못하고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죽을 지경이다" 라는 푸념이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심사 숙고하여 보았다. 나도 목회생활 40년 동안에 어려울 때, 괴로울 때도 있었으나 그로 인하여 후회하거나 낙심한 때는 감사하게도 한 번도 없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 다음에 커서 목사가 되겠다"는 꿈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해방 이후 북한 땅에 공산주의가 창설되어 목사들이 모두가 월남하는 통에 어린 종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교역을 시작하였고, 그 까닭에 공산 정권에게 사형언도를 받고 집행 과정에서 극적으로 살아 났지만, 지금까지 목사 된 것을 후회해 본 적이 없고, 감사할 뿐이다.
친구들이 나를 보고 "이목사는 선천적으로 목사의 성품을 타고 났으니, 부럽다"고 하는 말을 들으며, 그 말이 헛되지 않도록 죽도록 충성하련다.
후회 없는 삶
월리암 보덴 씨는 1904년, 시카고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큰 낙농장의 법적 상속인으로 이미 백만장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그에게 세계 일주를 시켰습니다. 그는 아시아, 중동 그리고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 고통 받는 사람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는 마음에 큰 짐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보내는 편지에다 "나는 일생을 전도사업과 그 일에 대한 준비에 바치겠습니다' 라고 썼습니다. 그가 이러한 결심을 했을 때 그의 성경 뒷 표지에 '지체할 수 없음(No Retreat) '이라고 썼습니다.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중국에 있는 회교도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항해하던 중 선교 준비를 하려고 우선 이집트에 들렀습니다. 이 곳에서 그만 뇌막염이 발병하여 한 달도 못되어 사망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겠지요.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던 게야. 헛된 일을 했었군!"
그의 성경 뒷장에는 위에 썼던 두 가지의 결심 밑에 '후회 없다(No Reget) '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뒤를 돌아 보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 생애의 어떤 때든지 적용이 됩니다.
지금 나는 이 순간에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를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내 가슴에서 타오르는 열정은 무엇입니까?
남은 여생을,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잊혀진 땅에 하나님의 그 분의 명령을 따라 살겠습니까?
'지체함이 없이...‘
'후회함이 없이...'
사랑을 전하라는 사명으로, 올해는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께 순종하도록 결심합시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성공하든지, 고난을 만나든지 간에 언제라도 하나님의 본향으로 부르실 때 '후회는 없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겠습니다.
후회 보다는 안전을...
두 젊은 여자가 아파트에서 잠을 자다가,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그 집에는 성능이 좋은 화재 탐지기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화재가 났을 때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화재 조사반은 전날 밤, 그 집에서 파티가 열리는 동안 감지장치를 작동하지 않도록 꺼 놓은 것을 발견했다.
음식을 요리할 때 나오는 열이나 촛불에서 나오는 연기 때문에 탐지기가 울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차단시켰던 것이다. 사도행전 5장에는 자신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경보장치를 꺼 버린 두 사람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나온다.
민감한 화재 탐지기처럼, 성령님은 거짓 경보를 울리지는 않는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진리를 생각나게 하셔서 우리의 양심을 작동시키시며, 그 분의 사랑과 지혜를 우리에게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후회할 것 없는 7가지
* 연세 드신 분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일
* 분노를 가지고 쓴 편지를 찢어 버리는 일
* 우정을 살리기 위해 사과하는 일
* 원한을 갖고 보복하려고 했던 것을 그치는 일
* 청소년들이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일
* 부모에게 효성을 다할 시간을 가지는 일
* 무슨 문제건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일
피곤 없는 보람
폴 칼슨이라고 하는 의료 선교사는 아프리카의 콩고에 가서 많은 주민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면서 하루에도 100여 명씩이나 치료를 해주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칼슨 박사님, 당신은 피곤하지도 않습니까?" 하고 물어 보았다. 그러나 그는, "나는 항상 하나님과 가까이 생활하기 때문에, 피곤을 알지 못합니다. 나는 매 순간 보람을 느끼며 살아 갑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그 후에도 계속해서 성경을 연구하고 말씀을 전하며 의료봉사를 계속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반란군에게 피살되어 순교하였고, 그의 주머니 속에서는 포켓용 성경이 발견되었는데, 그 첫 장에는 "평화" 라는 글자가 쓰여져 있더라는 것이다.
암흑의 대륙 아프리카의 밀림 속에서 더위와 빈곤과 질병과 맞서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싸우던 선한 목자가 되심을 믿고 잔이 넘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당신의 삶의 잔은 어떠한가? 넘치는가? 모자라는가?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한 다윗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도록 하자.
회전문이 늘어 놓은 푸념
온 종일 쉴 틈 없이 많은 사람들을 출입시키는 고층 건물의 회전문은 정신 없이 빙글 빙글 돌고 있는 자기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었다.
"휴, 나는 어쩌다 이런 운명을 갖고 태어 났는지... 사실 나처럼 고약한 운명도 없을 거야. 온 종일 두통과 어지러움이 끊이질 않고, 누구 하난 나를 돌리지 않고는 그냥 지나 갈 수 없으니 '빙빙' 어지러울 수 밖에... 아! 이젠 나의 이런 처지가 너무 지겨워 골치가 아프다구! 그냥 꼼짝 않고 있어 봤으면..."
그런데 그 때 커다란 짐을 실은 무거운 수레가 덜커덕 덜커덕 요란한 바퀴 소리를 내며 회전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회전문은, 끙끙거리며 지나 가는 수레바퀴를 물끄러미 바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수레바퀴도 어지럽기는 매 한가지겠지? 게다가 그는 무거운 짐에 눌리기까지 했는 걸. 쯧쯧, 나보다 더 딱한 처지도 있구나. 그래! 수레바퀴의 처지에 비하면 나는 편한 위치에 있구나. 불평하지 말고 내 운명에 만족해야겠어."
쓸모 없는 놈
비 오는 날, 어떤 사람이 훈장 집에 삿갓을 빌리러 갔다.
주인이 인색한 것을 잘 아는 심부름하는 아이가 삿갓이 없다고 딱 잘라 말하여, 그 사람을 내보냈다. 그 광경을 지켜 보던 훈장이 아이에게 말했다.
"이놈아, 그렇게 딱 잘라서 없다고 하면 어떡하느냐? 광 안에 두었더니, 쥐가 쓸고 짓밟아서 못 쓰게 되었다고 해야지."
다음 날 또 다른 사람이 찾아와 쥐를 잡으려고 하는데, 고양이를 하룻밤만 빌려 달라고 했다. 아이는 그 사람에게 말했다.
"고양이는 있기는 있지만 광 안에 넣어 두었더니, 쥐들이 쓸고 짓밟아서 못쓰게 되었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훈장은 기가 막혀서 아이를 불러 야단을 쳤다.
"이놈아, 쥐가 어떻게 고양이를 쓸고 짓밟을 수가 있단 말이냐? 도대체 말이 되어야지. 그럴 때에는 '고양이는 있지만 감기가 들어서 콜록 콜록 거려 가져 가셔도 못 쓸 놈입니다.' 라고 해야지."
얼마 후 또 한 사람이 찾아 와서 말했다.
"훈장님을 모시러 왔습니다. 제사가 있는데, 축문 좀 읽어 주십사고요."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훈장이 가르쳐 준대로 말했다.
"있기는 있습니다. 그러나 감기가 들어서 기침을 하고 콜록 거려 가져 가셔도 못 쓸 놈입니다."
방안에서 아이 놈의 망칙스러운 말을 듣고 있던 훈장이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당장 쫓아 나와 소리 소리 질렀다.
"너 이놈! 감히 누굴 보고 못 쓸 놈이라고 하는 게냐? 말을 새겨 들어 바로 전할 줄 모르고 엉뚱하게 말하는 네 놈이 참으로 못 쓸 놈이다. 이 천하에 못 쓸 놈 같으니라고..."
과연 쓸 모 없는 놈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