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구름의 파수병
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어다본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내가 시(詩)와는 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먼 산정에 서 있는 마음으로 나의 자식과 나의 아내와
그 주위에 놓인 잡스러운 물건들을 본다
그리고
나는 이미 정하여진 물체만을 보기로 결심하고 있는데
만약에 또 어느 나의 친구가 와서 나의 꿈을 깨워주고
나의 그릇됨을 꾸짖어주어도 좋다
함부로 흘리는 피가 싫어서
이다지 낡아빠진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리라
먼지 낀 잡초 위에
잠자는 구름이여
고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에는
철 늦은 거미같이 존재 없이 살기도 어려운 일
방 두 칸과 마루 한 칸과 말쑥한 부엌과 애처로운 처를 거느리고
외양만이라도 나와 같이 살아간다는 것과 이다지도 쑥스러울 수가 있을까
시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이여
자기의 나체를 더듬어보고 살펴볼 수 없는 시인처럼 비참한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거리에 나와서 집을 보고 집에 앉아서 거리를 그리던 어리석음도 이제는 모두 사라졌나 보다
날아간 제비와 같이
날아간 제비와 같이 자국도 꿈도 없이
어디로인지 알 수 없으나
어디로이든 가야 할 반역의 정신
나는 지금 산정에 있다-
시를 반역한 죄로
이 메마른 산정에서 오랫동안 꿈도 없이 바라보아야 할 구름
그리고 그 구름의 파수병인 나
(1956)
이 시는 남들처럼 사는 생활의 여유를 버리고 시의 정신이 깨어나기를 기다리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내가 유심히 들어다본다면 내가 시(詩)와는 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나는 먼 산정에 서 있는 마음으로 나의 자식과 나의 아내와 그 주위에 놓인 잡스러운 물건들을 객관적으로 본다. 그리고 나는 내가 보아야할 이미 정하여진 물체인 구름만을 보기로 결심하고 있다. 내가 낡아빠진 생활을 하는 것은 시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함부로 흘리는 피가 싫어서가 아니다. 이 세상은 존재 없이 살기도 어렵다. 방 두 칸과 마루 한 칸과 말쑥한 부엌과 애처로운 처를 거느리고 외양만이라도 남과 같이 살아간다는 것과 몹시 쑥스럽다. 시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이기에 자기의 나체를 더듬어보고 살펴볼 수 없는 시인이 되었다. 이처럼 비참한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시를 반역하지 않은 때에 거리에 나와서 집을 보고 집에 앉아서 거리를 그리던 어리석음도 이제는 모두 사라진 것 같다. 시의 정신을 찾아 어디라도 가야 할 반역의 정신으로 나는 낡은 생활을 떠나 지금 산정에 있다. 시를 반역한 죄로 이 메마른 산정에서 오랫동안 꿈도 없이 바라보아야 할 구름을 찾는 구름의 파수병이 되었다.
이 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어다본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내가 시(詩)와는 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먼 산정에 서 있는 마음으로 나의 자식과 나의 아내와
그 주위에 놓인 잡스러운 물건들을 본다
그리고
나는 이미 정하여진 물체만을 보기로 결심하고 있는데
만약에 또 어느 나의 친구가 와서 나의 꿈을 깨워주고
나의 그릇됨을 꾸짖어주어도 좋다
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어다본다고 한다면 나는 내가 시(詩)와는 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먼 산정에 서 있는 마음으로 객관적으로 나의 자식과 나의 아내와 그 주위에 놓인 잡스러운 물건들을 본다. 그리고 나는 이미 정하여진 물체인 구름만을 보기로 결심하고 있는데 만약에 어느 나의 친구가 와서 나의 꿈을 깨워주고 나의 그릇됨을 꾸짖어주어도 좋다.
‘만약에’는 가정을 말한다. 이 가정이 사실로 바뀐다(8연1행). ‘시(詩)와는 반역된 생활’은 ‘낡아빠진 생활’(4연 2행)이고 ‘외양만이라도 남과 같이 살아’(5연 2행)가는 생활이다. ‘먼 산정에 서 있는 마음’은 높은 곳에서, 멀리서 화자의 가족과 집을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주위에 놓인 잡스러운 물건들’은 ‘나의 아내’가 장만한 것들을 말한다. ‘이미 정하여진 물체만’은 ‘구름’을 말한다. ‘나의 꿈’은 ‘시’를 ‘반역’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나의 그릇됨’은 ‘나의 꿈’을 ‘보기’를 의미한다. ‘꾸짖어주어도 좋다’는 친구의 ‘꾸짖어주’는 것을 수용하겠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은 하겠다는 말이다.
함부로 흘리는 피가 싫어서
이다지 낡아빠진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리라
먼지 낀 잡초 위에
잠자는 구름이여
고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에는
철 늦은 거미같이 존재 없이 살기도 어려운 일
방 두 칸과 마루 한 칸과 말쑥한 부엌과 애처로운 처를 거느리고
외양만이라도 남과 같이 살아간다는 것과 이다지도 쑥스러울 수가 있을까
꿈을 이루기 위해 함부로 흘리는 피가 싫어서 이다지 낡아빠진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잡초 위에서 먼지가 끼도록 잠자는 구름이다. 고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에는 존재 없이 살기도 어려운 일이다. 방 두 칸과 마루 한 칸과 말쑥한 부엌과 애처로운 처를 거느리고 외양만이라도 남과 같이 살아간다는 것과 이다지도 쑥스럽다.
‘함부로 흘리는 피’는 ‘낡아빠진 생활을’ 벗어나서 ‘구름’이 ‘잠’에서 깨면 흘려야 하는 ‘피’이다. ‘함부로’는 ‘마음대로 마구’의 의미로 화자가 ‘구름’인 ‘시’의 정신을 실현하려면 큰 희생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쓴 것이라 생각한다. ‘먼지 낀 잡초 위에 / 잠자는 구름’에서 ‘먼지 낀’은 ‘잡초’를 수식하는 것이 아니라 ‘구름’을 수식하는 것으로 볼 때에 ‘구름’이 ‘잠자’고 있는 것이 ‘먼지’가 낄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름’은 하늘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구름’은 ‘잡초’ 위에 있다. ‘구름’이 하늘이 아닌 ‘잡초’ 위에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잠자는 구름’은 비유로 쓰인 것이다. 그 의미는 화자가 ‘낡아빠진 생활’로 인하여 포기한 ‘시’의 정신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고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에서 ‘고생’은 ‘시와는 반역된 생활’을 하지 않을 때에 생기는 것이다. ‘낡아 빠진 생활’이다. ‘시와는 반역’되지 않는 생활은 낡지 않은 생활이다. 새로운 생활이다. 이 새로운 생활을 하게 하는, 화자가 지키고자 하는 ‘구름’은 ‘잠’을 잔다. ‘잠’을 자기에 새로운 생활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화자에게는 ‘고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나의 꿈’을 잊은 세상이다. 당시의 사회는 복지가 잘 되어 있는 사회가 아니다. 그래서 모두들 잘 사는 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군부독재로 인하여 사회적 질서가 잡힌 세상을 말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존재 없이 살’려면 사회의 질서가 성겨야 한다. 숨을 곳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질서가 잡힌 세상에서는 숨을 곳이 없어 ‘존재 없이 살기도 어려운 일’이다. 이 구절의 다른 의미는 ‘방 두 칸과 마루 한 칸과 말쑥한 부엌’을 장만하고 이를 늘리기 위해 애를 쓰는(이 부분은 시에 나타나지 않는다) ‘애처로운 처’로 인하여 ‘외양만이라도 남과 같이 살아’가기에 경제적으로 고생을 하고 싶어도 고생을 하지 못한다는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화자는 이러한 생활을 ‘이다지도 쑥스’럽게 생각한다. 이전에 ‘시와는 반역’되지 않은 생활과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시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이여
자기의 나체를 더듬어보고 살펴볼 수 없는 시인처럼 비참한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거리에 나와서 집을 보고 집에 앉아서 거리를 그리던 어리석음도 이제는 모두 사라졌나 보다
날아간 제비와 같이
날아간 제비와 같이 자국도 꿈도 없이
어디로인지 알 수 없으나
어디로이든 가야 할 반역의 정신
시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으로 인해 자기의 나체를 더듬어보고 살펴볼 수 없는 시인이 되었다. 나보다 비참한 사람은 없다. 시를 반역하기 전에는 거리에 나와서 집을 보고 집에 앉아서 거리를 그렸다. 이러한 어리석음도 이제는 시를 배반했기에 모두 사라진 것 같다. 외양이 남과 같이 가리워져서 나의 벌거벗은 모습을, 숨김없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날아간 제비와 같이 날아간 제비와 같이 자국도 꿈도 없이 어디로인지 알 수 없으나 어디로이든 가야 할 낡아 빠진 생활에 반역하는 정신을 생각한다.
‘시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은 ‘외양만이라도 남과 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몹시 ‘쑥스러’운 마음이다. ‘외양만이라도 남과 같이 살아간다는 것’으로 인하여 ‘자기의 나체를 더듬어보고 살펴볼 수 없는 시인’이 되었다. 남과의 비교를 통해 생활을 판단하므로 온전하게 자기 자신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을 알 수 없는 시인인 화자는 화자가 쓰려는 시를 쓸 수가 없다. 시를 쓸 수 없는 시인처럼 ‘비참한 사람이 또 어디’도 없다고 생각한다. ‘거리에 나와서 집을 보고 집에 앉아서 거리를 그리던 어리석음’은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생활을 해야하는 ‘시인’이 해야할 일이다. 타인에게는 ‘어리석음’으로 보여도 말이다. ‘날아간 제비’는 ‘날아간’ ‘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그래서 화자는 ‘제비’가 간 곳을 찾아갈 ‘꿈도 없’는 것처럼 ‘잠자는 구름’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러나 화자는 ‘잠자는 구름’을 찾아 ‘어디로인지 알 수 없으나 / 어디로이든 가야 할 반역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 이 ‘반역의 정신’은 ‘낡아 빠진 생활’을 ‘반역’하여 새로운 생활, 즉 시와 함께 하는 생활을 찾아가는 ‘정신’이다.
나는 지금 산정에 있다-
시를 반역한 죄로
이 메마른 산정에서 오랫동안 꿈도 없이 바라보아야 할 구름
그리고 그 구름의 파수병인 나
화자는 반역의 정신으로 아들과 아내와 잡스러운 물건이 있는 방 두 칸과 마루 한 칸과 말쑥한 부엌이 있는 외양만 남들과 같이 살아가는 낡은 생활을 버리고 산정에 있다. 잠자는 구름을 찾기 위해 산정에서 아래를 본다, 메마른 산정에서 시를 반역한 죄로 오랫동안 꿈도 없이 바라보아야 할 먼지 낀 잡초 위에 잠자는 구름을 지키는 구름의 파수병이 되었다.
‘나는 지금 산정에 있다’는 화자가 ‘만약에’를 실현한 것이다. 이를 실현한 마음은 ‘반역의 정신’이다. ‘산정’은 ‘메마른 산정’이다. ‘메마른’ 것을 화자는 ‘시를 반역한 죄로’ 치르는 댓가로 생각한다. 이곳은 ‘잡초 위에 / 잠자는 구름’을 찾기에 적합한 곳이다. 그리고 ‘잡자는 구름’이 ‘잡초’를 떠나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순간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이다. 화자가 ‘이미 정하여진 물체만을 보기로 결심’한 것을 실천할 수 있는 곳이다. ‘오랫동안 꿈도 없이’는 ‘잠자는 구름’이 잠에서 깨는 것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면서 잠에서 깰 것이라는 ‘꿈’도 꾸지 못 할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그 구름의 파수병’이 된다. ‘구름’을 찾기 위해, 찾지 못해도 가장 먼저 ‘잡초 위에’서 벗어나 본래 있어야 할 하늘로 올라갈 구름을 발견하기 위해서.20210423금후0350전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