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소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언급하지 않고 그냥 핵발전소만 멈추라고 말하는 게 무슨 의미야? 여기는 핵발전소가 멈추어도 여전히 위험한 것인데."
원전 바로 옆에서 30년 넘게 살면서 방사능 물질에 서서히 피폭되어 고통받고 있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탈핵을 외쳐 왔다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원전이 위험한지 모르고 살던 시절, 손자들 키워줄테니 이 마을에 와서 같이 살자고 딸에게 제안해서 손자들이 같이 살게 되었는데, 이제 돌아보니 손자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코피만 나도 가슴이 철렁하다는 황분희 주민님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습니다. 그렇게 복잡한 미안함을 개인의 슬픔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전국의 원전 옆에 있는 마을들의 이주할 권리를 요구하며 9년 넘게 매주 상여시위를 이어가고 계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처음 들어 본다는 것이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원전을 폐쇄하자고 외치면서 그 폐쇄된 원전 옆에서 (해체 기술이 없기에 그 원전은 여전히 방사능을 내뿜으며 그 곳에서 더 관리가 안된채 있을 것이 뻔한 상황에서) 여전히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떠올려 보지도 못한 것은,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무감각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탈핵에 대해서 얼마나 관념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관념이 앞서면 생명에 무감각해 집니다. 그리고, 생명에 무감각한 관념은 현실을 바꾸는 힘을 갖지 못하고 도리어 문제 재생산 하는 역기능을 하기도 합니다. 핵발전이 근거하고 있는 근대 산업 문명의 주요한 착취구조가 도시의 농어촌 착취입니다. 하지만, 탈핵 운동에이 중앙/담론 중심으로 접근하면서, 현장의 착취구조가 재생산 되는 모습은 한국사회 에너지 전환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탈핵의 주장이 한편 공허한 것은, 근본에 있어서는 핵발전을 지지하는 진영때문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실제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탈핵 운동의 관념성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창님의 개인적인 나눔이 그래서 더 마음에 남습니다. 학술적 연구자들이 두어번 현장 인터뷰하고 논문 써 내는 풍토에서, 8개월간 그곳에서 살았던 이야기. 처음 인터뷰를 요청하기 까지 4개월이 걸렸다는 이야기. 여전히 '나의 연구가 그 사람들의 슬픔을 소비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질문을 품고 계신 이야기 속에서,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있는 연구자가 만들어 내는 뚜렷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창님에게 어떤 것이 가장 어려운지 묻는 질문에, '체념하게 되는 것이 어렵다. 오랫동안 이 문제를 알리고 책도 썼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현실을 견디는 것이 힘들다'고 하신 이야기는 묵직하게 남아 있습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것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그날의 공부가 제 머리를 때렸던 것 처럼,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깨우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모여 관념을 넘어서는 힘이 생기리라 생각합니다.
멀리 가야 하는 길이기에 함께 가는 것만이 길일텐데, 우리 에너지 너머 모임이 동지를 만들고 서로 뜻한 바에 따라 연구하고 일할 수 있도록 울타리가 되어 주는 관계로 깊어지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핵발전소와 함께살아가는 사람들, 살아 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고, 왜 거기에 살까? 이주하면 되지? 가볍게 생각했던 지난 날이 부끄럽습니다. 그들의 현실, 우리 현실은 참 복잡한 것 같아요. 막연한 피해를 생각하며 탈핵을 애기하고, 가볍게 불을 껴고 끄는 매일의 행동들.. 뭔가 경제논리 말고 정말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중심, 생명중심의 논의와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우창님 나눔 감사하고, 끝까지 연구 마무리 잘 하시길... 응원해요~ ^^
뭔가 제가 하지 못한 말들까지, 이해하고 의견을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관행처럼 몇번 방문해서 글을 썼다면 여전히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탈핵'을 외치고 있을 것 같아요. 공학을 혹은 거의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에너지원만 바꾸고, 원전만 줄이면 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할때마다 한편으론 데이타,숫자만 보고 말하는 그들의 접근이 이해되다가도 그 너머의 사람들, 원전의 다양한 이름과 역할들을 보지 못하는 것을 보면 한숨도 나고요. 그래서 원전에 대해서 모르지만 환경 사회학을 전공한 제가 이런 부분들을 드러내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주민들의 외로운 투쟁을 볼때마다 제가 쓰는 글들이 한없이 가벼워보이기도 하지만, 또 이렇게 누군가와의 이야기를 통해 느리더라도 조금씩 바꿔나갈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