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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고난 받은 어린 양께 예배하며 강하고 담대하라
2012년 11월 18일
고난 받은 어린양께 예배하면서 강하고 담대하게 되어갑시다. 하늘나라가 과연 어떤 모습일가 궁금하시죠? 오늘 나타난 하나님 나라는 예배가 있는 곳입니다. 어린양 예수그리스도가 누군가에 대해서 가르치고 예수그리스도 어린양을 경배하는 곳입니다. 땅 위의 교회, 좋은 교회도 주일마다 예수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전하고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하늘에서 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땅에서도 하고 있습니다. 어린양 예수그리스도를 다시 배우고 경배할 때 우리는 강하고 담대하게 변화됩니다. 그리스도 어린양 안에 강하고 담대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강하고 담대하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땅으로 가서 정복하고 우리의 직분을 다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요한사도가 전해주는 복음, 오늘 요한사도의 말씀의 인도를 받아서 우리 오늘 하늘나라에 같이 가봅시다. 요한은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를 하다가 서쪽에 지중해에 있는 밧모 섬이라는 곳에 갇혀있었습니다. 교회에 대한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소아시아 지역에서는 동상을 만들어서 그 앞에 신이라고 주님이라고 하면서 경배하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복종하지 않자 감옥에 가두고 재산도 빼앗았습니다. 요한도 그 지역의 목회자였기 때문에 교회를 잃어버리고 교회에서 추방 되서 멀리 멀리 갔습니다.
파도소리 들리는 외로운 섬에서 외로움 가운데 또 교회를 걱정하며 기도하고 있던 요한에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습니다. 1장 11절에는 “주의 날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일에 요한이 혼자 있었지만 주일에 예배하고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고 하늘을 열어 보여주시면서 요한 혼자 거기 있었지만 하늘에서 드리는 예배를 보여주고 하늘의 예배를 통해서 요한을 하늘의 예배에 참여하게 해서 새로운 힘을 주었습니다. 요한에게 나타나신 예수그리스도께서는 고난을 없애주지 않았습니다. 요한이 계속 고난 받도록 했습니다. 고난을 없애준 것이 아니라 하늘의 예배와 예수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신다는 위로를 주어서 계속 더 힘든 고난을 받고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요한에게 가장 큰 위로는 하늘이 열린 것입니다. 요한은 하늘의 예배를 참여하고서 큰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계시록을 썼습니다. 요한계시록을 써서 오늘 우리가 봤던 하늘의 예배를 잘 적어서 소아시아 지역에 있는 7개 교회에 편지로 보냈습니다. 이 편지는 그때 교회뿐만 아니라 바로 우리 좋은 교회 성도들을 위해서도 쓴 편지입니다.
예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 하늘을 열어 하늘을 보게 해주지 않습니다. 왜냐면 요한에게 자세히 보여주었고 써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편지, 이 말씀을 보면서 요한이 하늘을 보고 하늘의 예배에 참여했던 것처럼 지금도 우리도 성령님이 도와주시기 때문에 우리도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들에게 우리 영혼에 하늘이 열리고 하늘의 예배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1장 8절에 요한은 자기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예수의 환란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 하는 자, 하나님의 나라에 시민이고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환란과 참음에 참여하는 자.”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환란이 있고 참아야 되고 인내해야 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요한에게 이 위로를 우리에게 주기를 원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면서 하늘의 예배에 우리도 참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를 보면서 고난 받은 어린양 그리스도께 예배하는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면서 참 위로를 받읍시다.(1‐7절).
어린양 예수그리스도를 경배하면서 강하고 담대 합시다. 성령님이 이 아침에 어린양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 보여주시옵소서. 우리가 영혼을 다하여서 어린양 예수그리스도를 경배하게 하소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들읍시다.
우리에게도 하늘을 열어주셔서 이 땅에서 우리가 앞으로 천국에 갈 때까지 계속 우리가 당해야 할 고난과 고생 그 가운데 끝까지 인내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게 해주기를 소원합니다. 첫째로 어린양 예수그리스도를 배우면서 참 위로를 받읍시다. 1절에서 7절 말씀입니다. 오늘 읽은 5장 말씀은 4장과 연결됩니다. 4장 말씀은 요한이 땅에 있는데 하늘이 열리었습니다. 그리고 나팔소리와 같은 음성이 요한에게 들렸습니다. 나팔소리와 같은 음성은 1장에 연결되는데 1장에 보면 “인자와 같은 이”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요한에게 나타나셨고 요한을 보고 ‘이리오라, 올라오라.’라고 하였고 요한은 성령에 감동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요한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그의 영혼이 하늘을 보고 하늘을 경험하게 합니다. 지금도 성령께서는 앉아서 듣고 있는 우리에게 우리 영혼에게 하늘을 열어 보여주기를 원합니다.
5장은 1절부터 7절까지는 어린양에 대해 다시 소개합니다. 하늘에서 어린양을 소개합니다. 8절부터 끝까지는 어린양에 대한 경배와 찬송을 올립니다. 어린양을 소개하는 앞쪽 부분은 ‘보았는데, 보았는데’ 이 말이 3번이나 반복됩니다. 1절, 5절, 6절에 ‘보았다, 보았다, 보았다.’ 1절에서 요한은 보좌에 앉으신 분 바로 성부 하나님을 보았고 성부 하나님의 오른편에 두루마리 책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2절에서 5절에는 천사들과 장로들을 보았습니다. 요한은 천사와 장로들과 이야기하면서 예수를 가르쳐달라고 예수그리스도를 더 가르쳐달라고 웁니다.
세 번째로 6절에서는 어린양 예수그리스도가 나타납니다. 그리스도를 배웠습니다. 8장 이후에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부분도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예수그리스도를 경배하는 찬양을 8절에서는 4명의 생명체와 24명의 장로가 찬양합니다. 11절에는 수많은 천사들이 찬송합니다. 13절에는 온 세상 만물이 찬송합니다.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있던 적은 사람으로부터 보좌 바깥으로 더 많은 사람들로 찬양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24장로와 4명의 천사에서 천천만만 수천만이나 되는 천사들이 찬양하고 온 세계 만물이 어린양 예수그리스도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성령님은 요한을 인도하셔서 하늘의 감동적인 예배를 보여주고, 요한도 거기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요한에게 어떻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을 어떻게 가르쳤는지를 봅시다.
2절에
“그리고 나는 보았는데 강한 천사가 있었다. 큰 소리로 전파하고 있었다.”
우리 성경에 외친다고 그랬는데, 원래 뜻은 전파한다는 것입니다. 전도라는 말과 꼭 같은 단어입니다. 지금 하나님 나라에서 일어나는 제일 중요한 일은 전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전도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3절에 사도는 교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전도한다. 어떤 사람은 지혜를 구하고 어떤 사람은 기적을 구하지만은 어떤 사람은 분쟁이 있어서 분쟁을 조정해야 한다고 하지만은 우리는, 나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도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땅에 있는 교회가 하는, 해야 되는 제일 중요한 일, 계속 해야 될 일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이미 믿은 성도에게도 계속 전도해야 됩니다. 하늘에서도 제일 중요한 일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도합니다. 전파한다는 이 단어는 복음을 전도하는 거기에만 쓰이지 보통 큰 소리로 외치는데 쓰지 않습니다. 천사가 큰 소리로 외치는 게 아니라, 천사는, 힘센 천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2절에 “누가 그 책을 열고 그리고 그 도장을 풀 자격이 있는가?” 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합니다. “누가?” 이 말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소개합니다. 누가 책을 열고 도장을 풀 자격이 있는가.. 이 자격이란 말이 네 번이나 나오죠? 2절, 4절, 9절, 8절.. 예수님에게는 자격이 있습니다. 그 예수님을 다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어떤 자격? 1절에 나와있는 성부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두루마기 책, 그 두루마기 책을 펴서 볼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두루마기 책에는 도장이 일곱 개 찍혀있습니다. 권한이 있는 사람, 능력이 있는 사람만 그것을 열 수가 있습니다. 이 두루마기 책은 에스겔서 2장 10절에 나와있는 그 두루마기 책입니다. 에스겔서 2장 10절에는 그 두루마기 책은 안과 밖에 글이 쓰여져 있고,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어 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심판의 계획이 적혀있는 책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다스릴 때,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이 도장을 떼면은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실 것입니다. 실제로 계시록 6장 뒤에 보면, 일곱 개의 도장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떼는 모습이 나옵니다. 도장을 뗄 때마다, 이 땅에 기근이 생기고, 죽음도 일어나고, 그러면서 세상을 심판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시면서 믿는 사람도 이 세상에서 피해를 당하게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도 교통사고도 당하고, 우리 경기가 나빠지면은 경기 나쁜 것 때문에 부도도 날 수 있고, 그리스도인도 직장을 잃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께서 인을 떼고 다스릴 때, 성도들은 특별히 보호해 주십니다. 계시록 7장 3절에서는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기까지 땅을 해치지 말라.. 하나님의 종들, 성도들의 머리에는 인을 친다,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인이 아니라, 보이진 않지만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서 도장을 찍어가지고 우리는 특별대우 해주십니다. 같이 교통사고를 당하고, 같이 직장을 잃는다 하더라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심판이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우리 영혼이 해치지 않도록, 우리가 계속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에 그것이 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다스리는 권한을 가진 책, 그 다스리는 권한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 천사는 “누가 책을 열고 도장을 풀 자격이 있는가?” 요한은 울었습니다. 그 책을 받아서 도장을 풀고 이 세상을 다스릴 분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가장 사랑 받는 제자로서 예수님과 함께 있었고, 이런 큰 계시를 받았는데, 요한이 과연 예수님을 몰랐을까요? 그 책을 하나님께 받아서 온 세상을 다스리는 일,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다는 것을 요한이 몰랐을까요? 그럴 리가 없죠. 요한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요한이 울고 있었을까요? 그리스도께서 이 권세를, 온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갖고 있는 왕이라는 것을 요한은 잘 알고 있었지만, 실제 요한의 삶은 너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섬으로 쫓겨와서 혼자 외롭게 있었기 때문에 요한은 사실은 울고 있었습니다. 이 환상을 보고서,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고서, 그 때 운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 날 주일예배는 요한은 울면서 드렸을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이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감옥에도 가고, 순교하기도 하고, 재산을 잃은 그 성도들. 그 중에 어떤 성도는 믿음을 잃을 것 같기도 하고, 요한 자신도 그리스도가 자기와 같이 계신 줄은 알지만은 별로 그렇게 강하게 느껴지지가 않았을 것입니다. 그도 그럴 때가 있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땅을 다스리고,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지만은, 그게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건 알지만은 마치 계시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고난이 심할 때, 특별한 시험을 당할 때, 오늘 6장 10절에서 다섯 번째 도장을 뗄 때에 하늘에서 영혼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서 큰 소리로 기도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땅에 있는 사람들을 심판해 주세요. 우리 피에 대한 벌을 받게 해주세요.” 순교한 성도들이 하늘에서 “하나님은 살아 계시니까, 지금 이 땅에서 교회를 핍박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주십시오.”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안 계셔서가 아니라, 옆에 계신데도 울면서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기다렸습니다. 하물며 요한은 땅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면서 소망가운데 요한은 울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알았지만 그리스도께서 과연 어떻게 하시는지를, 어떤 분인지를 더 알기를 소망하면서 울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의로움을 아십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지만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랑하신 줄 알지만 너무 힘든 일이 생길 때, 우리들은 웁니다. 그리스도께서 마치 계시지 않은 느낌을 가질 때도 있고, 나타나기를 기다리면서 웁니다. 우리의 마음의 상태를 그냥 그림으로 보여주듯이 요한은 그리스도가 없는, 마치 없는 것처럼, 그 하늘을 쳐다보면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이 땅에 나타나기를 기대하면서, 기도하면서 울었습니다. 5절에 [그 때에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울지 마십시오. 와, 유다 부족 중에서 나온 그 사자가 승리하여, 책과 그것의 일곱 도장을 열게 되었습니다.”] 장로들은 하늘에 먼저 가 있는 성도들의 대표입니다. 사실 요한 자신도 장로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요한삼서에서 장로인 요한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요한처럼 하나님을 섬기다 순교하고 또 이 땅의 수고를 끝내고 먼저 간 성도가 요한을 위로해주고 있습니다. “요한, 울지 마시오. 그리스도께서 유다의 사자입니다.” 바로 유다 지파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도 여전히 사자처럼 능력 있게 다스리고 있다고 요한에게 말해줍니다. 요한이 알고 있던 진리였지만 하늘에 있는 영혼은 요한에게 다시 그 복음 말씀으로 격려해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어린 양들을 해치는 그 이리들을 사자처럼 막아주고 있다고 요한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비록 순교가 있고 이 땅에 고난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사자처럼 그리스도께서 다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요한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알고 있었지만, 다시 말해 줄 때, 그렇구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고 있구나. 요한은 사자처럼 강한 그리스도를 돌아 볼려고 보았더니, 6절과 7절에 보면, 사자는 거기 없고, 어린 양이 거기 계셨습니다. 사자가 서서 하나님의 청을 받을 줄 알았는데, 어린 양이 서서 받고 있습니다. 죽임 당한 분으로 서 계신다.. 이 죽음 당한 분, 서 계신다는 이 말은 두 개다 옛날에 일어난 일인데, 계속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이 쳐다봤을 때 이미 거기에는 어린 양은 서 있었습니다.
쳐다볼 때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라. 요한이 쳐다봤을 때, 그 분은 죽임 당한 분으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셔서 하늘에 계시지만, 여전히 허리에 창자국을 가지고 계시고 손에 못자국을 가지신 분으로 하늘에 계셨습니다. 바로 사람인 그리스도의 모습을, 죽임 당한 어린양이라고 비유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죽으신 상처 있는 분으로서 사자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 다스리십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한번이지만 죽으신 그 고난의 효과를 계속 우리에게 전해 주십니다. 그리고 사자처럼 능력 있는 분이시지만 우리에게 연약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대해주십니다. 그분은 일곱 개의 뿔을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여기서 일곱이란 완전이라는 뜻이고요. 뿔이라는 것은 능력, 권세라는 뜻입니다. 완전한 능력을 지니신 분입니다. 또 그분은 일곱 눈을 가지고 있는 데 일곱 눈은 일곱 영이다라고 했는데 일곱 영은 완전한 영, 곧 성령님을 말씀하십니다.
어린양께서는 하늘에 계시지만 온 땅의 권세를 가지시고 성령을 이 땅에 보내셔서 그 분의 눈을 통해서 사랑하는 성도들을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지금도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님을 보내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눈을 여기 보내셔서 우리를 보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지난 주에 우리가 강하고 담대하라 말씀 드리면서 신명기 11장 11절에서 이스라엘 땅, 가나안 땅은 특별한 땅이 아니라 척박한 땅이지만 그곳에 여호와의 눈이 있다고 했습니다. 신약 시대와 구약 시대의 모든 성도에게 그리스도께서는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그 눈으로 우리를 돌봐주고 계십니다. 우리를 돌보시는 힘은 그리스도께서 어린 양이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하늘 나라에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계시면서 영원한 제사장으로서 우리 죄를 용서해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우리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고 계십니다.
로마서 8장 34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그리스도께서 그 보혈로 우리를 용서하셨고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있으니 누가 우리 죄를 하나님 앞에 고소하겠습니까? 로마서 8장 33절은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 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여러 어려운 일이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죄의 문제입니다. 선한 행동을 할 때도 우리는 죄로 물들어 있습니다.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구원받았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우리를 용서하시는 그리스도 앞에서 있습니다. 죄인으로서 우리 자신은 지난주에 어떤 죄 때문에 슬퍼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없겠지만 다시 그 보혈의 공로로 용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우리는 나옵니다. 그리스도 앞에 나올 때 하늘의 장로가 요한에게 이야기 했듯이 울지 마십시오. 유대 지파의 사자면서 어린 양인 그리스도께서 우릴 위해 죽임 당했습니다. 죽임 당하신 분으로 우리를 계속 용서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죄와 죄책감의 노예가 되지 마시고 다시 죄를 고백하며 죄 용서하시는 은혜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랍니다. 죄 용서 받았으니 두려움 없이 하나님께 나아가길 바랍니다. 죄 용서 받았으니 남아 있는 죄를 고백하면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상처 받은 모습으로 서있는 두 번째 이유는 이 땅에서 고난 받는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셔서 영광 중에 다스리는 분이시지만 그분은 서계신 분이기도 합니다. 스데반이 순교할 때도 예수 그리스도는 서 계신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 7장 56절 스데반은 순교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요한 때도 그렇고 스데반 때도 그렇고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고난 받는 성도를 위해서 하늘을 열어 주시고 서계신 분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땅을 심판하러 오신 인자께서 먼저 스데반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내가 세상을 심판하러 가고 너의 눈물을 닦아줄 것이다.하고 서계셨습니다. ‘스데반, 네가 이 땅에 혼자서서 외롭게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있고 너 혼자 외롭게 순교 당하고 있지만 그러나 하늘의 법정에서 내가 너를 위해 서있다. 네가 이 땅에서 수고를 끝내고 올 때 내가 너를 받아주마’하고 하늘에서 서 계십니다.
스데반에게 나타나신 서 계신 그리스도는 요한에게도 어린 양의 모습으로, 서계신 모습으로 스데반 때도 서 계셨고 고난 받는 요한에게도 서 있는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힘을 주시기 원합니다. 우리가 강하고 담대하게 우리의 직분을 다하게 힘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힘껏 예배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가정을 세우시기를 원합니다. 직장에서 맡은 일을 다하길 원하십니다. 땅을 정복하기를 원하십니다. 땅을 정복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결코 떠나지 아니하니라 하신 함께하심에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지금도 함께 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땅을 강하고 담대하게 정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땅을 정복하는 것이 고난의 길이라는 것을 압니다. 고생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손해를 봐야 하는 것도 압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의를 위하여 뺨도 맞았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침을 밷텄습니다. 발가벗겨서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렇게 수치를 당했지만 묵묵히 입을 다물고 끝까지 자기를 핍박하는 자들을 축복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너희를 저주하는,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축복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 길을 걸어갈 때 아프고 힘드니까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너희의 아프고 힘든 것을 안다 하시면서 어린 양으로서 서 계십니다.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그리스도를 배우고 경배하도록 합시다. 요한에게는 주일에 하늘이 열렸습니다. 예배 하는 가운데 그는 강하고 담대함을 얻었고 다시 그는 자신의 주어진 땅으로 갔습니다. 사실 예배가 이렇게 큰 복이지만 우리 시대에는 예배 드리는 것, 자체가 고난이기도 합니다. 모두가 주일에까지, 일요일까지, 새벽부터 저녁까지 계속 일하고 있습니다. 수험생도 계속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러할 때 그리스도인이 딱 포기하고 주일에 쉰다는 것은 사실은 엄청난 큰 고난입니다. 축복의 길이기도 하지만 고난의 길이기도 합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예배에 나오고 눈을 똑바로 뜨려는 것 자체가 고난입니다. 예배를 위해서 주일을 쉰다는 것이 손해 볼 것 같으니까 고난입니다. 그러나 예배에 나올 때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을 여시고 내가 너와 함께 있고, 너희 고난에 함께 있다고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복을 놓지 말기를 바랍니다. 예배에서 하늘이 열리는, 예배에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길 바랍니다. 그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가정을 세우기 위해서 흘린 눈물, 직장에서 주님의 사람으로 살려고 했던 그 눈물을 닦아 줄려고 했던 분으로서 지금도 우리에게 다가 오십니다. 땅에서 수고하고 땀 흘린 우리들을 변호하며 서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에 달려 고난 받았고 약해 보이셨지만 그분은 바로 사자이십니다. 어린 양으로서 죽으면서 사자와 같은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예배 때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은 가정에서 직장에서 연약해 보이지만 손해를 보고, 오해 받고, 눈물 흘리는 일이 많지만 바로 그 고난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에 참여합니다.
둘째, 어린양 예수그리스도를 경배하면서 강하고 담대합시다.(8‐14절)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두루마리 책을 받아서 온 세상을 다스린다는 이 사실, 이 복음을 다시 보여주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요한이 볼 때 그 순간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권세와 능력을 받았지만 요한을 위해서 한번 더 연극을 해 주신 것입니다. 요한을 위해서 특별 드라마를 해주신 것입니다. 요한 걱정하지마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온 땅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왕권을 받았을 때 하늘에서는 감사 찬양이 울려 퍼졌습니다. 3그룹이 찬양했습니다. 첫째로 네 생물과 24명의 장로들이 찬양합니다. 8절 9절입니다.
8 그리고, 그분이 그 책을 받았을 때 네 명의 생명체들과 24명의 장로들이 어린양 앞에 엎드렸는데, 각각 거문고들과 향들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지고 있었다. 금 대접은 성도들의 기도들이다.
9 그리고 그들이 새 노래를 노래하였는데,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 온 땅을 다스린다는 이 복음이 전해졌을 때 하늘의 예배당에서, 하늘의 예배 순간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의 복음이 전해졌을 때 하늘에서는 찬양이 울려 퍼졌습니다. 네 생명체는 온 세상에 있는 동물들을 대표합니다. 24장로는 온 세상의 교회를 대표합니다. 24장로는 한 손에는 거문고를 들고, 한 손에는 금 향로를 들고 하나님께 찬양합니다. 이 거문고와 금 향로는 구약시대 레위인들이 하나님을 찬양할 때 쓴 악기이고 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 들어와서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썼던 것이 바로 금향입니다. 바로 구약시대에 성전에서 드린 예배를 하늘의 성전에서 예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으셨을 때 그냥 찬양만하면 되었지 왜? 금 향로를 같이 들고 있었을까요? 그리스도께서 다스리는 것, 이 복음의 전파는 성도들의 눈물의 기도, 이 향처럼 올려진 눈물의 기도의 응답으로 주워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들어봤지만 복음을 우리에게 다시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도들은 우리 오늘도 하나님 말씀을 듣기 전에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옵소서하고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을 받았지만 우리는 복음으로부터 다시 복을 받아야 되기 때문에 다시 복음을 주십시오하고 간구합니다. 성도의 기도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주셨기 때문에 성도들은 찬양합니다. 9절입니다. 이 성도들을 대표하여서 24장로는 찬양합니다.
“당신은 그 책을 받고 그것의 도장들을 열 자격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죽임을 당하셨고 각각의 부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에 속한 사람들을 당신의 피로서 하나님께 사셨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있는 성도들은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에 찬양하지 않습니다. 건강하다는 현세적 이유 때문에 찬양하지 않습니다. 어린 양 때문에 찬양합니다. 어린 양이 이루신 구원의 일 때문에 찬양합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우리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는 나의 것이 아니요. 몸도 영혼도 나의 신실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고백하고 찬양합니다. 당신의 피로서 하나님의 소유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과를 치르고 나를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 우리의 기쁨의 이유가 되고 그것을 찬양합니다.
찬양은 이어집니다. 10절에
10그리고 그들을 우리 하나님께 왕국과 제사장들로 만들었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을 죄 용서 하셔서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하셨기 때문에 제사장으로 만들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왕 앞에 나가서 친교를 나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찬양하는 구약의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하던 그 특권을 여기 앉아 있는 우리는 이 특권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왕에게 나아가는 나라요. 왕국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사랑과 다스림을 우리 성도들에게 베풀어 주고 있습니다. 그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이 나타나고 그 나라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 용서 받은 성도들은 말씀에 순종해가지고 그리스도의 다스림에 순종하는 그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의 약한 마음을 계속해서 꺾으시고 점점 더 주께서 주신 말씀에 복종하도록 만들어서 우리를 그 나라의 백성으로 만들어 갑니다. 10절에서는 그리고 그들은 땅에서 왕 노릇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땅 위에서 왕 노릇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지금 왕 노릇하고 있습니다. 더 분명히 왕 노릇할 것이지만 지금 왕 노릇하고 있습니다. 왕이신 그리스도께 복종하고 있는 이 순간 우리는 왕 노릇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1절은
12: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 (사단)을 이기었으니 저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왕으로서 이미 이겼습니다. 사단을 이겼습니다. 어린 양의 피 때문에, 복음 말씀 때문에 이겼습니다. 우리가 이겨 보이지 않더라도 복음 말씀을 순종하고 있는 바로 거기에 하나님의 다스림이 이미 있습니다. 어린양의 피 공로를 믿고서 그 고난의 길을 가고 있는 우리들은 이미 이겼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5장 3-5절에서는 환란 가운데서도 즐거워 한다고 합니다.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 소망, 우리가 완전히 그리스도께 복종하고 이 세상을 다스리는 그 소망은 이미 성령을 주셨기 때문에 성령 안에서 이미 시작되었고, 이미 우리는 왕으로 다스리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바로 여기 있는 우리들이 찬양의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땅에서 예배 드리고 있는 좋은 교회 성도들은 이미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었고, 왕이 되었고, 이미 다스리고 있습니다.하고 우리를 두고서 하늘에서 찬양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장로들의 찬양을 듣고 수 많은 천사들이 어린 양을 찬양합니다. 12절에
12 큰 소리로 말하기를,
“그 죽임 당하신 그 어린양은 그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자격과 능력이 있습니다. 이어서 세 번째 온 세상 우주 만물이 찬송합니다.
“13왕좌 위에 앉으신 분과 어린양께 그 축복과 그 존귀와 그 영광과 그 권세가 영원 영원히 있을 지어다.”
구원 받은 성도들을 두고서 감사 찬양하다가 다시 어린 양을 향하여 감사 찬양합니다. 우리보다 먼저 고난의 길을 가신 어린 양에게 모든 힘과 권세와 능력이 있다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죽임 당하신 어린양에게 그 능력과 자격이 있다고 그 말을 들은 요한의 느낌은 어떻겠습니까? 요한 자신이 이 땅에서 고난 받고, 상처받고, 눈물 흘리며 살아가고 있지만 바로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승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왕좌에 앉으신 그 분께 어린 양으로서 죽임 당하신 양으로서 왕 되신 그분께 존귀와 영광이 있는 것을 보고 요한은 지금 이 땅에서 고난 당하고 눈물 흘리는 것이 바로 영광의 길인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사실 요한에게 엄청난 격려가 되었습니다. 이 찬양의 메아리를 듣도록 합시다. 14절에 찬양의 멜로디를 듣고서 다시 네 생명체와 장로들, 찬양을 멘 처음 시작한 네 생명체와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면서 ‘아멘’ 했습니다.
우리도 이 하늘의 찬송을 들었으니 ‘아멘’하고 엎드려 경배합시다. 아멘하고 어린양을 찬양하는 성도들은 어린 양의 다스리는 능력에 참여합니다. 찬양 가운데 성령께서는 우리들을 그리스도의 능력을 우리의 것으로 주십니다. 몸이 아픈 성도 여러분, 정서적으로 좋지 않은 성도 여러분, 문제를 바라 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힘과 능력이 어린양에게 있다고 감사 찬양하시길 바랍니다. 감사 찬양이 여러분의 치료의 약입니다. 직장에서 일하고, 학교에서 공부한다고 힘들다고 힘든 것을 보지 말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어린양을 보고 찬양합시다. 왕의 이름을 찬양하며 직장으로 나아가고 학교로 나아갑시다. 왕으로 다스리는 그분을 경배합시다.
도대체 풀리지 않는 문제, 풀리지 않는 인간관계 굉장히 꼬여 있는 우리 가정의 제정문제 그것 때문에 고민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맙시다. 하늘의 해결책은 문제를 묵상하다가 문제의 늪에 빠져드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풀 수 없는 문제는 거기에 내버려두고 주께서 풀어주실 것을 믿고 어린 양에게 눈을 돌려서 당신에게 능력과 영광이 있사오니 당신이 이 문제를 풀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감사 찬양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개입하십니다. 감사 찬양하는 가운데 새로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습니까? 이미 하나님 앞에서 왕국이요. 제사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 찬양합시다. 찬양하는 가운데 우리 생각은 변합니다. 우리가 그런 문제로 잠 못 이룰 존재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그리스도께서 그 은혜로 이미 하나님 앞에 다가가게 하셨고 우리를 왕족으로 삼으셨는데 어떻게 내가 이 작은 문제로 잠 못 이루게 되겠는가? 찬양할 때 우리는 변하는 것입니다. 이런 찬양 가운데 우리는 계속해서 그 땅을, 이 땅에 주어진 땅을 정복하고 마지막 주께서 주시는 그 땅을 우리의 땅으로 차지할 것입니다. 이렇게 힘들고 고생스러운 인생인가? 과연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가? 맞습니다. 지금처럼 힘들게 살아갈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힘든 일이 생길 것입니다. 인생은 원래 힘들고, 힘든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 죄와 싸워야 합니다. 문제는 계속 복잡한 것이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고난 당하는 요한에게 나타나셔서 ‘그래, 지금부터는 문제를 다 없애겠다.’하지 않으시고 ‘요한, 계속 고생해 그 대신에 고생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줄게’하고 하늘을 보내주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고난을 이길 힘을 감사 찬양 가운데 우리에게 주십니다. 감사 찬양 가운데서 예배에 경험했던 하늘이 우리의 직장에서도 우리의 가정에서 하늘이 열립니다.
요한은 이 환상을 보고서, 편지 써 놓은 1장 8절에서 나는 예수의 환란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자기 정체성을 이야기 합니다. 그래 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일을 맡고 있는 사도 입니다. 그렇지만 저의 직분은 그리스도의 환란에 참여하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 자입니다. 나의 소명은 인내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요한처럼 이미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요한처럼 환란에 참여합니다. 환란 가운데 인내합니다. 빌립보서 1장 29절에서는 우리에게 구원받는 은혜뿐만 아니라 그를 위하여 고난 받는 은혜까지 주셨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국과 그 나라에 참여하는 것은 어린양의 고난을 통해서 입니다. 이 땅에서 제사장으로서 고생하고 제사장으로 참는 것을 통해서 입니다. 이 능력을 주기 위해서 이 땅에서 매주 우리를 예배로 초대하십니다. 예배 가운데 하늘이 열립니다. 예배 가운데 하늘의 복음 말씀이 우리에게 울려 퍼집니다. 예배 가운데 어린 양을 찬양하고 어린 양을 찬양할 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의 것으로 됩니다. 계속 어린양을 보시고, 어린양 복음 말씀을 들으시고 어린양을 찬양하면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이번 주에도 고생할 각오하시고, 참을 각오하시고 그러나 우리에게 하늘을 열어주신 그리스도께서 거기에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면서 상처 있는 분으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을 믿고 붙들고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