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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세계화는 공공재 민영화 문제와 관련해 본다면 그다지 좋은 조건이 아니다. 세계화의 물결 앞에 국가 간 장벽이 허물어져 가고 있는 오늘날, 각국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어떤 정부도 국제사회의 제약과 의무, 특히 자국민을 희생시켜야 하는 금융시장의 강요를 무시하기 어렵다. 지난 호에서는 그 예로 1997년의 외환위기, 2007년의 금융위기, 그리고 론스타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자-국가 소송(ISD, Investor-State Dispute)을 들었다. #정치공동체의 목적은 인간이다 대중이 소비해야 할 재화(공공재)는 효율성과 경제성을 고려해야 하지만, 그 이전에 효과와 목적을 먼저 따져야 한다. 효율은 투입량에 대한 산출의 비율이다. 간단히 말해서 100을 투입해 80이 나왔다면 효율은 80%가 된다. 손해인 셈이다.
기업에서는 부가가치를 높이려 한다. 말하자면 100을 투입해서 120%, 130%의 성과를 얻으려 한다. 그만큼 이익이며, 이는 경제성과 직결된다. 100을 투입했더니 120이 나온다면 할만한 일이 된다. 그러나 80이 나온다면 당장 "그런 일을 왜 하느냐"고 한다.
그러나 효과는 효율과 엄연히 다르다. 효과는 기대한 수준을 채운 정도를 말한다. 아픈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때 어떤 약이 효과적인가를 따진다. 아무리 비싸도 약이 듣지 않으면 효과가 없으며, 아무리 싸도 약이 들으면 효과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효과는 치유라는 목적에 직결된다.
국가(정치공동체)는 무엇인가? 국가 역시 효율성과 경제성을 찾아야 하지만, 어디까지나 존재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정치공동체의 토대와 목적을 인간이라고 가르친다. 이 말은 국가가 할 일이 "근본적이며 양도할 수 없는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함으로써 인간 존엄을 인정하고 존중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뜻"이다. "현대에서 공동선의 실현은 인간의 권리와 의무를 보장함으로써 드러난다"(「간추린 사회교리」 388항). 교회는 이를 "국가는 공동선 달성을 위하여 협력해야 할 구성원 각자의 온전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 존재한다"(384항)고 요약한다. 국가가 추구하는 효율성과 경제성은 "구성원 각자의 온전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만 내세울 수 있다. #국민의 온전한 성장, 국가가 도와야 한다 특정 계층이나 집단도 "구성원 각자의 온전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 나름의 효율과 경제를 우선할 수 있다. 기업이 대표적이다. 기업 혹은 시장은 투자자, 경영인, 노동자, 소비자 모두 효율성과 경제성이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형성된 집단이다. 그러나 국가는 절대로 기업 같은 이익집단이 아니다. 국가의 토대인 인간은 경제 생활만 하는 부분(部分) 존재가 아니라, 정치활동, 문화생활, 가정생활, 사회생활을 하는 전인(全人)인 까닭이다. 경제 생활이 아무리 중요해도 인간의 삶의 한 부분일 뿐 전부가 될 수 없다.
실제 사람한테는 효율성과 경제성만으로 따지지 못할 무수한 영역의 삶이 있다. 연인 사이 같은 인간관계를 효율과 경제로만 따질 것인가? 학문과 지식, 사회 생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경제 분야 같은 특정 집단ㆍ분야를 온전하게 성장시키기 위해 국가가 그 권력을 행사한다면, 그것은 국가라는 정치 공동체가 할 일이 아니다.
"정치 공동체는(…) 특정한 개인이나 사회 단체의 권리 보호에만 관심을 두는 행위를 피해야 한다"(389항). 오히려 국가 공동체는 그 효율과 경제라는 잣대가 사회를 휩쓸어 구성원 각자의 삶이 황폐화되지 못하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오죽하면 우리 헌법은 국가가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장방지"하기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헌법」 119조 2항)고 명시하겠는가!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은 "구성원 각자의 온전한 성장"은커녕, 구성원을 시장과 경제의 노예로 전락시킬 위험이 크다. 실제 그런 현상은 이미 우리의 삶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사)교육시장이니 의료산업이니, 삶의 모든 분야를 효율과 경제성이라는 시장원리로 바라보는 데 우리는 얼마나 익숙한가.
국가와 관련해서 우리가 한 순간도 놓쳐서는 안 되는 본질이 있다. 국가의 목표는 "구성원 각자의 온전한 성장"이다. 사회적 약자조차도 엄연히 국가의 토대이자 목적인 구성원, 곧 인간이다. 공공재는 구매 능력이 약한 사회적 약자를 포함해 모든 구성원 각자의 온전한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재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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