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당집 제19권[3]
[진 화상] 陳
황벽黃蘗의 법을 이었고, 목주睦州의 용흥사龍興寺에서 살았다.
선사는 평생 동안 밀행密行을 많이 하였다. 또 항상 장포長蒲로 짚신을 삼아 남몰래 사람에게 보내 주었으므로 사람들이 진포혜陳蒲鞋 화상이라 불렀다.
어느 때 대중에게 말했다.
“여러분은 들어갈 곳을 얻었는가?
만일 알지 못했다면 곧 이곳에서 들어가라.
그런 연후에는 노승을 저버리지 말라. 진중하라.”
선사가 또 어느 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분명하게 그대들에게 일러 주어도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감추어서 가져옴에 있어서랴?”
이때 어떤 좌주座主가 물었다.
“3승 12분교는 제가 약간 공부하였으니, 스님께 종문 일의 그 골자를 보여 주기를 청합니다.”
선사가 대답했다.
“종문 안의 일을 묻는다면 대답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으랴?
물어라. 노승의 콧구멍과 머리 위가 만만漫漫하고 발바닥 밑이 만만한 것을 교가敎家에서는 무엇이라 하는가?”
좌주가 대답했다.
“교가에는 그런 가르침이 없습니다.”
이에 선사가 때렸다.
선사가 어떤 대덕大德에게 물었다.
“무슨 경과 논을 강講하는가?”
대덕이 대답했다.
“10본本의 경과 논을 강합니다.”
“어떻게 강하는가?”
“글에 의해서 강합니다.”
“그대는 경을 강할 줄 모르는구나.”
“저는 경을 강할 줄 모릅니다. 스님께서 강해 주십시오.”
“그대는 경을 듣는 사람이 아니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스님께서 설명해 주십시오.”
선사가 말했다.
“세 갈피가 같지 않으니, 지금은 첫째 갈피니라.”
또 어떤 대덕에게 물었다.
“무슨 경을 강하는가?”
“수십 본의 경과 논을 강합니다.”
“어찌 거짓말을 하는가?”
“저는 참말을 합니다.”
“눈[雪] 위에 서리를 더하고, 칼을 쓰고 고소장을 들고 오라. 내가 그대에게 거짓말 아닌 것을 일러 주리라. 앞으로 가까이 오라.”
대덕이 앞으로 가까이 오니, 선사가 말했다.
“이렇게 어리석을 수가 있을까?”
그 뒤 석 달 만에 그 대덕이 깨달았다.
또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강서江西에서 왔습니다.”
“여름은 어디서 지냈는가?”
“운거雲居에서 지냈습니다.”
“운거의 간절하고 요긴한 곳이 어떻던가?”
“지금 제가 어떻게 어른께 ‘무슨 허물이 있겠습니까?’ 하는 대답을 들어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선사가 말했다.
“그것이 그대의 말인가, 운거의 말인가?”
“운거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자그마한 동네 안 노파선老婆禪의 주인 노릇도 못하겠도다.”
그가 스스로 깨닫고 물러갔다.
선사가 어떤 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 말했다.
“깨졌구나.”
스님이 물었다.
“어디가 깨진 곳입니까?”
“깨졌느니라.”
임제臨濟가 어떤 스님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할을 한 옛일을,
어떤 스님이 들어서 선사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사람을 보자마자 할을 한 뜻이 무엇입니까?”
이에 선사가,
“승정僧正아” 하고 부르자,
승정이 대답하니,
선사가 말했다.
“같이 이야기를 나눌 계제가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는 다시 말했다
“오너라, 오너라.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모르거든 경이나 읽고 재계나 지켜라.”
또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오대산을 구경하고 옵니다.”
“문수를 보았는가?”
“보았습니다.”
“어디서 보았는가?”
“누대 위에서 보았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진흙더미를 보았구나.”
그리고는 또 말했다.
“앞으로 가까이 오라. 그대는 문수를 아는가?”
“모릅니다.”
“나이가 많고, 법랍이 높아져서 상좌上座의 자리를 차지하고도 전혀 소식이 없구나.”
“조사의 뜻과 교의 뜻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교의 뜻은 교의 뜻이요, 조사의 뜻은 조사의 뜻이다.”
“어떤 것이 학인 자신입니까?”
“첫째는 그대가 묻지 않을까 걱정이고,
둘째는 그대가 알지 못할까 두렵다.”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선사가 말했다.
“사람이 마음에 잘못이 없으면 얼굴에 부끄러운 빛이 없느니라.”
[대수 화상] 大隨
안安 화상의 법을 이었다. 휘는 법진法眞이요, 속성은 진陳씨이며, 동천東川 사람이다. 마음씨가 인자하고 도덕이 고준高峻하여 가난한 이를 구제하고 불쌍한 이를 도와주며, 자기의 것을 남에게 양보하고 천성이 숲 속을 좋아했고, 도를 지켜 속세에 나아가려 하지 않았다.
대촉大蜀의 황제가 그 고매한 도덕을 전해 듣고 칙서를 보내 선사를 초청했으나, 선사는 늙고 병들었음을 이유로 사양하여 끝내 나아가지 않았다. 이에 황제는 두터운 은혜로 자의紫衣를 보내왔고, 법호를 신조神照 대사라 하사하였다.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아미산峨嵋山에 가서 보현보살께 예배를 드리려 합니다.”
선사가 불자를 들어 세우면서 말했다.
“문수와 보현이 모두 이 속에 있느니라.”
스님이 원상圓相을 그려 뒤로 던지는 시늉을 하니, 선사가 시자를 불렀다. 시자가 대답하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차 한 잔을 달여다가 이 스님에게 주어라.”
선사가 세상을 뜰 즈음에 입이 비뚤어지는 병을 앓았다. 선사가 대중을 모으게 하고는 상당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누가 나의 병을 고쳐 주겠는가? 고칠 수 있으면 나오라.”
두세 번 물어도 대답하는 이가 없자,
선사가 대답했다.
“아무도 고칠 줄 아는 이가 없으니, 내 스스로 고치리라.”
선사가 마침내 당신의 손으로 입을 밀어 바로잡고 이내 열반에 들었다.
[영수 화상] 靈樹
서원西院 안安 선사의 법을 이었고, 소주韶州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여민如敏이고, 명주冥州 사람이다. 40여 세부터 한국漢國 지방에서 크게 교화를 펴니, 그 도법이 외롭고 준엄하여 한 지방의 어진 유생들의 존중함이 지극하였고, 그 밖에 이상한 행적이 많아서 남조南朝에서 스승으로 모시고, 지성知聖 대사라 호를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화상께서는 어디서 태어나셨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해는 동쪽에서 뜨고, 달은 서쪽에서 지느니라.”
“나이가 몇이십니까?”
“오늘 태어나서 내일 죽느니라.”
“어떤 것이 법신法身입니까?”
“북소리가 났으니, 밥이나 먹으러 가거라.”
“불법의 궁극적인 경지는 어떠합니까?”
선사가 두 손을 활짝 폈다.
진주鎭州의 대왕이 조주趙州와 선사를 함께 청하여 공양을 하는데,
선사가 조주에게 물었다.
“대왕이 화상을 청하여 공양을 올렸는데, 화상께서는 무엇으로 이에 보답하시렵니까?”
조주가 말하였다.
“염불을 하느니라.”
선사가 말했다.
“문 앞의 거지도 그런 대답을 할 줄 알 것입니다.”
이에 조주가 말했다.
“대왕이시여, 돈을 갖다가 저 영수에게 주십시오.”
[요산 화상] 嶢山
서원西院 안安 선사의 법을 이었고, 요주饒州에서 살았다.
그의 실록을 보지 못해 생애는 기록하지 못한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11월[仲冬]의 날씨는 몹시 추우니라.”
“어떤 것이 깊고 깊은 것입니까?”
“그대의 혀[舌]가 땅에 떨어지거든 말해 주리라.”
[도오 휴 화상] 道吾 休
관남關南의 법을 이었다. 선사가 날마다 상당하여 머리에는 연꽃 삿갓을 쓰고 몸에는 헤진 가사를 입고, 북을 치고, 피리를 불고, 입으로는 ‘노삼랑魯三郞’이라 외치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관남의 북을 힘껏 두드리고
덕산德山의 노래를 몽땅 부르면서
법락法樂을 스스로 즐기는 자이니라.
어떤 사람이 동산東山에게 이 일을 들어서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관남의 북을 힘껏 두드리고 덕산의 노래를 몽땅 부른다’ 했는데, 어떤 것이 관남의 북입니까?”
동산이 대답했다.
“들어라.”
“어떤 것이 덕산의 노래입니까?”
“어울려 부를 줄 알겠는가?”
“갑자기 같은 도인을 만나면 어찌합니까?”
“그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하리라.”
“소리에 맞추어 당장 춤을 추면 어찌합니까?”
“곡조를 아는 이가 없지 않을 터이니, 역시 숨겨야 하느니라.”
“숨긴 뒤에는 어찌합니까?”
“병들고 쇠약한 채로 그저 그렇게 세월을 보내느니라.”
선사가 승당僧堂에 들어가 제1좌第一座에게 물었다.
“상좌上座는 어디 사람인가?”
“동국東國 사람입니다.”
“거기에도 이러한 인물이 있는가?”
“있습니다.”
“있다면 무엇 하러 여기까지 왔는가?”
“있기 때문에 피하기 위해 왔는데, 오늘 우연히 만났습니다.”
선사가 껄껄 웃고는 다시 방장으로 돌아갔다.
[구지 화상] 俱胝
천룡天龍의 법을 이었고, 경안주敬安州에서 살았다. 그 밖의 행적은 보지 못해 생애를 기록하지 못한다.
선사가 암자에서 살고 있을 때, 실제實際라는 비구니가 와서 삿갓을 쓰고 지팡이를 짚은 채, 선사의 선상을 세 차례 돌고는 선사 앞에 석장錫杖을 우뚝 세우며 서서 말했다.
“화상께서 저의 물음에 대답을 하시면 삿갓을 벗겠습니다.”
선사가 대답이 없자, 그 비구니가 그냥 떠나려고 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날이 이미 저물었으니, 하루 저녁 묵어가도록 하시오.”
비구니가 대답했다.
“제 말에 대답하신다면 묵어가겠지만, 대답을 못 하시면 그대로 떠나겠습니다.”
그리고는 떠나 버렸다.
이때 선사가 혼자 탄식하였다.
“나는 명색 사문沙門이면서도 비구니의 웃음거리가 되었도다. 외람되이 장부의 형상은 갖추었으나 장부의 작용이 없구나. 이 산을 떠나서 선지식을 두루 친견하리라.”
그리고 조용히 선정에 들었는데, 갑자기 어떤 신인神人이 나타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3, 5일 간에 큰 보살이 오셔서 화상께 설법을 해 드릴 것입니다.”
그런 지 열흘이 지나지 않아서 천룡天龍 화상이 왔다.
선사가 뛰어나가 맞아들여 모시고 서서 위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한 뒤에 다음과 같이 물었다.
“그때에 그에게 어떻게 대답했어야 하겠습니까?”
이에 천룡이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이니, 당장에 활짝 깨달았다.
선사가 그 뒤로 대중을 위할 때마다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천룡 화상에게 일지선一指禪을 얻은 뒤로 평생 동안 사용해도 다하지 않았다.”
[승광 화상] 勝光
자호紫湖의 법을 이었고, 태주台州에서 살았다.
“어떤 것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복주福州의 여지荔枝요, 천주泉州의 자동刺桐이니라.”
“어떤 것이 불법佛法이란 두 글자입니까?”
“당장에 말해 주리라.”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귀를 뚫은 호승胡僧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느니라.”
[자복 화상] 資福
앙산仰山의 법을 이었고, 길주吉州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정수貞邃이며, 소주韶州의 정창현湞昌縣 사람이다.
선사가 언젠가 단자(團子:공)를 들어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부처님과 보살들과 그리고 진리를 깨달은 성인들이 모두가 여기에서 나왔느니라.”
그리고 쪼개서 던져 버리고, 가슴을 활짝 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가?”
“어떤 것이 옛 부처님의 마음입니까?”
“산하대지山河大地이니라.”
“어떤 것이 납자들의 절박한 일입니까?”
“이것뿐이니라.”
“방 안에 초상을 당했을 때에는 어찌합니까?”
“좋은 물음이다.”
학인이 절을 하니, 선사가 말했다.
“괴롭고도 슬프구나. 아이고.”
학인이 다시 물었다.
“이럴 때에는 학인이 화상께 다시 청하려는데, 어찌하시겠습니까?”
“내일 다시 오라. 말해 주리라.”
“괴롭고도 슬픕니다. 아이고.”
선사가 때렸다.
“옛사람이 방망이와 불자를 들어 세운 뜻이 무엇입니까?”
선사가 외쳤다.
“악[噁]!”
또 어떤 스님이 여름이 끝난 뒤에 생각하였다.
‘나는 처음으로 총림叢林에 들어와 여기저기서 여름철을 지냈지만 아직 화상의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러니 다시 가서 물어야겠다.’
그리고는 화상에게 가서 자기의 뜻을 말하였더니, 선사가 당장에 멱살을 잡고 밀어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이 산에 머무른 뒤로부터 아직 한 번도 스님의 눈을 멀게 한 적이 없었느니라.”
“어떤 것이 열반문涅槃門으로 가는 한 가닥의 길입니까?”
선사가 손가락을 한 번 튀겼다가 다시 손을 펴 보였다.
“어떻게 이해하리까?”
선사가 대답했다.
“가을달이 아니면 밝지 않으니, 그대 마음대로 8ㆍ9(8월ㆍ9월)에 헤매고 다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