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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도론 2권
13.3.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宿命通)의 주석
13.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pubbenivāsā-nussati-ñāṇa, 宿命通 宿住智)의 주석에서,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하는 것에 관한 지혜를 목적으로.
전생(pubbe-nivāsa)이란 과거의 전생에서 살았던 무더기(蘊)(nivuttha-kkhandha)들이다.
여기서 ‘살았던(nivuttha)’이란
① 자기 안에서 일어났고, 경험했고, 자기의 상속에 생겼다가 멸했다는 뜻이다.
② 혹은 전생이란 [과거 전생에서] 살았던(경험했던) 법(nivuttha-dhamma)들이다.
여기서는 대상(gocara)으로 경험한 것이 ‘살았던(nivuttha)이라 한다.
이 뒤의 것 [즉, 다른 자의 알음알이로 알았던 대상]은 부처님들만이 얻는다.
‘전생을 기억하는’: 전생을 기억하는 그 마음챙김(sati)이 전생을 기억함(pubbenivāsānussati)이다.
‘지혜’: 그 마음챙김과 관련된 지혜이다.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로’: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를 목적으로, 이 지혜를 얻기 위해, 이르기 위해라는 뜻이다.
14.
‘여러 가지’: 갖가지의, 여러 가지의 형태로 일어난, 상세하게 설했다는 뜻이다.
‘전생을’: 바로 한 생 이전의 생부터 거슬러 올라가서 여기저기서 살았던 상속이다.
‘기억한다’: 오온의 순서에 따라, 혹은 죽음과 재생연결에 따라 기억한다.
15. 여섯 부류의 사람들이 이 전생을 기억한다. 즉
① 외도들 ② 평범한 제자들 ③ 뛰어난 제자들 ④ 상수제자들 ⑤ 벽지불들 ⑥ 부처님들이다.
16. 이 중에서 외도들은 40겁만을 기억한다. 그 이상은 못한다.
무슨 이유인가?
통찰지가 약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신과 물질을 분석함이 없기 때문에 통찰지가 약하다.
평범한 제자들은 백겁, 천겁까지도 기억한다. 통찰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80명의 뛰어난 제자들은 십만 겁을 기억한다.
두 상수제자들은 1아승지겁과 십만 겁을 기억한다.
벽지불들은 2아승지겁과 십만 겁을 기억한다. 이만큼만 그들의 마음을 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처님들의 경우에는 한계가 없다.
17. 외도들은 오온의 순서만을 기억한다. 순서를 버린 뒤 죽음과 재생연결에 따라서는 기억할 수 없다. 장님처럼 그들은 원하는 곳에 건너뛸 수가 없다. 마치 장님이 지팡이를 의지해서 가듯이 이들도 오직 오온들의 순서를 의지해서 기억한다.
평범한 제자들은 오온들의 순서에 따라서도 기억하고 죽음과 재생연결에 따라서도 기억한다.
80명의 뛰어난 제자들도 그와 같다.
두 상수제자들은 오온들의 순서와 상관없이 한 사람의 죽음을 보면서 재생연결을 보고, 다시 다른 사람의 죽음을 보면서 재생연결을 본다. 이와 같이 죽음과 재생연결에 따라서 추적하면서 간다.
벽지불도 그와 같다.
18. 부처님들은 오온의 순서에 따라서 혹은 죽음과 재생연결에 따라서 추적할 필요가 없다.
여러 천만 겁 가운데서 전이든 후든 그들이 선택한 곳은 모두 분명해진다.
그러므로 마치 성전의 생략구문(peyyāla)처럼 여러 천만 겁을 뛰어넘어 원하는 곳에 옮겨가면서 사자의 급습처럼 간다.
마치 머리털을 적중하는 데 능숙한 사라방가(Sarabhṅga)와 같은 궁수가 쏜 화살이 날아가는 도중에 나무와 덩굴 등에 걸리지 않고 오직 과녁에 적중하고 못 미치거나 빗맞이 않듯이,
이와 같이 부처님들이 갈 때 그들의 지혜는 도중에 있는 생들에서 못 미치거나 빗맞힘이 없다.
못 미치거나 빗맞힘이 없이 오직 원하는 곳을 취한다.
19. 전생을 기억하는 자들 가운데서 외도들이 전생을 보는 것은 반딧불의 빛처럼 나타난다.
평범한 제자들의 것은 촛불처럼,
뛰어난 제자들의 것은 횃불처럼,
상수제자들의 것은 새벽의 별빛처럼,
벽지불들의 것은 달빛처럼,
부처님들의 것은 천의 광선으로 장엄한 가을 햇빛처럼 나타난다.
20. 외도들이 전생을 기억하는 것은 마치 장님이 지팡이 끝으로 더듬으면서 가는 것과 같다.
평범한 제자들이 전생을 기억하는 것은 마치 외나무다리를 가는 것과 같다.
뛰어난 제자들이 전생을 기억하는 것은 마치 사람이 다니는 다리를 가는 것과 같다.
상수제자들이 전생을 기억하는 것은 마치 수레들이 다니는 다리를 가는 것과 같다.
벽지불들이 전생을 기억하는 것은 마치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는 큰 길을 가는 것과 같다.
부처님들이 전생을 기억하는 것은 마치 큰 마차들이 달리는 대로를 가는 것과 같다.
21. 그러나 이 문맥에서 뜻하는 것은 제자들이 전생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래서 설명하였다.
‘기억한다: 오온의 순서에 따라, 혹은 죽음과 재생연결에 따라 기억한다’라고.(§14)
22. 그러므로 이와 같이 기억하기를 원하는 초심수행자는 공양을 미치고는 탁발로부터 돌아와 조용히 혼자 머물러 순서대로 네 가지 禪에 든다.
신통의 기초인 제4선에서 출정하여 방금 자기가 앉았던 그 행위로 전향해야 한다.
그 다음에 자리를 마련하던 것, 방에 들어오던 것, 가사와 발우를 정돈하던 것, 공양하던 것, 마을에서 돌아오던 것, 마을에서 탁발을 다니던 것, 마을로 탁발을 위해 들어가던 것, 절에서 나가던 것, 탑전과 보리수의 단에서 예배하던 것, 발우를 씻던 것, 발우를 가지던 것, 발우를 가지기 이전에 입을 씻던 일 등 일체의 행위, 이른 아침에 했던 행위, 지난 밤 마지막 삼경에 했던 행위, 초경에 했던 행위,
이와 같이 역순으로 밤새 행했던 행위로 전향해야 한다.
23.
만큼은 보통의 마음에도 분명하다. 그러나 분지의 삼매에 든 마음에는 아주 분명하다.
만약 어떤 것이라도 분명하지 않은 것이 있으면 다시 기초가 되는 禪에 들었다가 출정하여 전향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치 등불을 켜 놓은 것처럼 분명하게 된다.
이와 같이 반드시 역순으로 구 째날, 세 째날, 네 째날, 다섯 째날 행했던 일로, 열흘 동안에, 보름 동안에 한 달 동안에, 일년 내에까지 행했던 일로 전향해야 한다.
24. 이와 같은 방법으로 십 년, 이십 년, 내지 금생에 있었던 자신의 재생연결까지 전향하면서 전생의 죽는 순간에 일어난 정신ㆍ물질로 전향해야 한다.
현명한 비구는 첫 번째 시도로 재생연결을 열어 제치고 전생의 죽는 순간의 정신ㆍ물질을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25. 그러나 전생의 정신ㆍ물질은 남김없이 사라지고 이제 다른 것이 생겼기 때문에 그곳은 닫혀서 암흑과 같다.
통찰지가 약한 자는 볼 수가 없다. 그렇더라도
‘나는 재생연결을 열어 제치고 전생의 죽는 순간의 정신ㆍ물질을 대상으로 만들 수 없구나’라고 멀리 내팽개쳐서는 안된다.
그 기초가 되는 禪에 계속해서 입장해야 한다. 그것에서 출정할 때마다 그곳으로 전향해야 한다.
26. 예를 들면 힘이 좋은 사람이 궁전의 꼭대기를 세우기 위해 큰 나무 자를 때 가지와 이파리를 끊는 것만으로 도끼날이 무뎌졌다면 그것으로 큰 나무를 자를 수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는 중간에 그만 두지 않고 대장간으로 가서 도끼날을 예리하게 갈아서 다시 돌아와 자를 것이다.
도끼날이 무뎌지면 다시 그와 같이 가서 자를 것이다.
그가 이와 같이 자를 때 이미 잘라진 곳은 다시 자를 필요가 없고 잘라지지 않은 곳을 자를 때 머지않아 큰 나무가 넘어지고 말 것이다.
그와 같이 기초가 되는 禪에서 출정하여 그 전에 전향했던 것으로는 전향하지 말고 재생연결로 전향할 때 머지않아 재생연결을 열어 전생의 죽는 순간에 일어난 정신ㆍ물질을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나무꾼과 이발사 등으로도 이 뜻을 설명할 수 있다.
27. 여기서 방금 앉던 행위부터 시작하여 재생연결로 거슬러 올라가기까지의 기간을 대상으로 삼고 일어난 지혜는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라 하지 않는다.
그것은 준비단계의 삼매의 지혜라 한다.
어떤 자들은 이것도 과거를 아는 지혜라 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색계에서는 타당하지 않다.
이제 비구가 재생연결을 넘어 전생의 죽는 순간에 일어난 정신ㆍ물질을 대상으로 의문전향이 일어나고, 그것이 멸할 때 그 동일한 대상에 대해 네 번 혹은 다섯 번의 속행이 일어난다.
그 가운데서 앞의 것들은 앞서 설한 방법대로 준비 등이라 이름하여 욕계의 것이고,
마지막 것은 색계의 제4선에 속하는 본 삼매의 마음이다.(cf.Ⅳ.§74)
그때 그 마음과 함께 지혜가 일어나는데 이것이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이다.
이 지혜와 결합된 마음챙김으로
“그는 여러 가지 전생을 기억한다. 즉 한 생, 두 생, …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사소한 것까지 상세하게 기억한다.(D.i.81)”
28. 여기서 한 생이란 재생연결부터 시작하여 죽음까지 한 생에 포함된 오온의 상속이다.
이 방법은 두 생 등에도 적용된다.
세계가 무너진 여러 겁 등에서는 멸하는 겁을 수축하는 겁(壞劫)이라 하고,
늘어나는 겁을 팽창하는 겁(成劫)이라 한다고 알아야 한다.
29. 수축한 상태로 머무는 것(壞住)도 수축하는 [겁]에 포함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무너진 것에 뿌리를 두기 때문이다.
팽창한 상태로 머무는 것(成住)도 행창하는 [겁]에 포함된다.
이와 같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설하신 것도 이해가 된다.
“비구들이여, 네 가지 아승지 겁이 있나니 어떤 것이 그 넷인가?
수축하는 것(壞)과 수축한 상태로 머무는 것(壞住)과 팽창하는 것(成)과 팽창한 상태로 머무는 것(成住)이다.(A.ii.142)”
30. 이 가운데서 세 가지 수축이 있다.
물로 인한 수축, 불로 인한 수축, 바람으로 인한 수축이다.
세 가지 수축의 한계가 있다.
[제2선의] 광음천(光音天), [제3선의] 변정천(遍淨天), [제4선의] 광과천(廣果天)이다.
겁이 불로 인해 수축할 때 광음천 아래까지 불에 탄다.
물로 인해 수축할 때 변정천 아래까지 물에 용해된다,.
바람으로 인해 수축할 때 광과천 아래까지 바람에 파괴된다.
상세하게 설하면 항상 한 개의 부처님의 국토(Buddha-khetta)를 파괴한다.
31. 부처님의 국토는 세 가지이다.
탄생(jāti)의 국토, 권위(āṇā)의 국토, 경계(visaya)의 국토이다.
이 가운데서 탄생의 국토는 여래가 입태 할 때 등에 진동한 일만개의 우주(cakkavāḷa, 輪圍)까지이다.
권위의 국토는 백 천 구지의 우주까지이다. 그곳에 「라따나 경」(Ratana Sutta, 寶經=寶呪,Sn. P.39), 「칸다 빠릿따」(Khandha Paritta, 蘊護呪, Vin.ii.109; A.ii.72), 「다작가 빠릿따」(Dhajagga Paritta, 幢頂寶呪, S.i.218), 「아따나띠야 빠릿따」(Āṭānāṭiya Paritta, 稻竿寶呪,D.iii.194), 「모라 빠릿따」(Mora Paritta, 孔雀護呪, Jā.ii.33)등의 빠릿따(護呪)들의 위력이 미친다.
경계의 국토는 끝이 없고, 한량이 없다.
“원하는 곳까지(A.I.228)”라고 설했다.
여래는 어느 곳이던 어느 것이던 원하는 것을 안다.
이와 같이 이 세 가지 국토 가운데서 하나의 권위의 국토가 파괴된다. 그것이 파괴할 때 탄생의 국토도 역시 파괴된다.
무너질 때 반드시 동시에 무너지고, 성립할 때에도 반드시 동시에 성립한다.
32. 이것이 어떻게 멸하고 성립하는지 알아야 한다.
불이 겁을 태울 때 처음에는 겁을 파괴할 큰 구름이 몰려와 백 천 구지의 우주에 한 차례 큰비가 내린다. 사람들은 만족스럽고 기뻐하여 모든 씨앗을 가져나가 심는다.
새순들이 소가 뜯어먹을 만큼 자랐을 때 나귀의 울음소리 같은 천둥에도 불구하고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는다. 그때 이후부터 비는 완전히 그쳐버린다.
이것을 두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따.
“비구들이여, 여러 해 동안, 여러 백 년 동안, 여러 천 년 동안, 여러 백 천 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다.(A.iv.100)”
빗물을 의지해 살던 중생들은 죽어 범천의 세계에 태어난다. 꽃과 과일을 의지해 살던 신들도 또한 그와 같다.
33. 이와 같이 오랜 세월이 지날 때 이곳저곳에서 물이 말라버린다. 서서히 물고기와 거북이도 죽어 범천의 세계에 태어난다. 지옥 중생들도 그와 같다. 지옥의 중생들은 일곱 번째 해가 떠오를 때 그곳에서 사라진다고 어떤 이들은 주장한다.
禪 없이는 범천의 세계에 태어나지 않는다. 그들 가운데 어떤 자는 배고픔에 시달려 禪을 증득할 수 없다.
그들이 어떻게 그곳에 태어나는가?
욕계의 천상 세계에서 얻은 禪으로 [그곳에 태어난다].
34. 로까부하(Lokabyūha, 世莊嚴)라고 이름하는 욕계의 신들이 백 천 년이 지난 뒤 겁의 [종말이] 시작될 것임을 알고서 관모를 푸고, 산발한 머리털과 비참한 얼굴로 눈물을 손으로 닦으면서 물들인 옷을 입고 아주 보기 흉한 모습으로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 다니면서 이와 같이 알릴 것이다.
‘여러분, 여러분, 지금부터 백 천 년이 지난 뒤에 겁의 [종말이] 시작될 것입니다.
이 세상은 멸망할 것이고, 대해도 마를 것입니다.
이 대지와 산의 왕인 수미산도 불타고, 멸할 것입니다.
세상의 멸망은 범천의 세계까지 이를 것입니다.
여러분, 자애를 닦으십시오. 연민과 더불어 기뻐함과 평온을 닦으십시오. 어머니를 봉양하고 아버지를 봉양하고 집안의 어른을 공경하십시오.’라고.
35. 그들의 말을 듣고 대부분의 사람들과 땅에 거주하는 신들은 두려움이 생겨 서로에게 부드러운 마음을 가져 자애 등의 덕을 행한 뒤 [욕계의] 천상세계에 태어난다.
그곳에서 천상의 깨끗한 음식을 먼고 바람의 까시나를 대상으로 준비를 짓고서 禪을 증득한다.
다른 [악처에 떨어진] 중생들은 미래에 겪어야 할 업으로 인해 천상세계에 태어난다. 왜냐하면 미래에 겪어야 할 업이 없이 윤회에 유전하는 중생이란 없기 때문이다.
그들도 그곳에서 禪을 증득한다. 이와 같이 [욕계의] 천상세계에서 禪을 증득함으로써 모두 범천의 세계에 태어난다.
36. 비가 끊어진 뒤 오랜 세월이 지났을 때 두 번째 태양이 떠 오른다.
세존께서 “비구들이여, 그때에(A.iv.100-3)”라고 설하신 삿따수리야(Sattasūriya,일곱 개의 태양) 경을 상세하게 설명해야 한다.
그 두 번째 태양이 떠오를 때 밤과 낮의 구분이 없다.
한 개의 태양이 뜨면 다른 한 개의 태양이 진다.
세상은 끊임없이 태양으로 불린다.
보통의 태양에는 태양의 천자(devaputta)가 있지만 겁이 멸하는 태양에는 없다.
보통의 태양이 운행할 때는 허공에 먹구름과 연기도 떠다니지만 겁을 소멸시키는 태양이 운행할 때 허공은 텅 비었고 연기와 구름 한 점 없는 것이 마치 거울의 표면과 같다.
다섯 개의 큰 강을 제외한 나머지 작은 강 등의 물은 모두 말라버린다.
37. 그 뒤 오랜 세월이 지났을 때 세 번째 태양이 떠오른다. 그것이 떠오름으로 인해 큰 강들도 말라버린다.
38. 그 뒤 오랜 세월이 지났을 때 네 번째 태양이 떠오른다. 그것이 떠오름으로 인해 큰 강들의 원천인 히말라야에 있는 일곱 개의 큰 호수들이 말라버린다.
시하빠빠따나, 항사빠따나, 깐나문다까, 라타까라, 아노땃따, 찻단따, 꾸날라가 그 일곱 개의 호수이다.
39. 그 뒤 오랜 세월이 지났을 때 다섯 번째 태양이 떠오른다. 그것이 떠오름으로 인해 서서히 큰 바다에 손가락 한 마디를 적실 만큼의 물도 없다.
40. 그 뒤 오랜 세월이 지났을 때 일곱 번째 태양이 떠오른다. 그것이 떠오름으로 인해 전 우주는 한 무리의 연기가 된다. 그 연기로 인해 그것의 수분은 증발한다.
이것처럼 백 천 구지의 우주도 이와 같이 된다.
41. 그 뒤 오랜 세월이 지났을 때 일곱 번째 태양이 떠오른다.
그것이 떠오름으로 인해 전 우주는 백 천 구지의 우주와 함께 한 개의 불꽃이 된다.
백 유순의 높이인 수미산 봉우리가 파괴되어 허공에서 사라진다.
그 불꽃이 높이 솟아 사대왕천을 덮친다. 그곳에 있는 황금으로 만든 궁전, 보석으로 만든 궁전, 수정으로 만든 궁전을 태우고 삼십삼천을 덮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초선의 영역까지 계속된다.
그곳에 있는 세 가지 범천의 세계 [즉, 범중천, 범보천, 대범천]을 태우고 광음천에 이르러서 그친다.
형성된 것(行)들이 미진만큼이라도 있는 한 그것은 꺼지지 않는다. 형성된 것들을 모두 태우고는 꺼진다.
버터기름과 기름을 태우는 불꽃처럼 재도 남기지 않는다.
아래 허공과 함께 위 허공은 일대 암흑을 이룬다.
42. 오랜 세월이 지난 뒤 큰 구름이 일어나 처음으로 가는 비가 내린다.
서서히 연꽃 줄기, 막대기, 절굿공이, 야자수의 줄기 등의 크기의 물줄기가 내리면서 백 천 구지의 우주의 불탔던 곳을 모두 채우고서 그친다.
그 물 아래와 주위에 바람이 일어나 [그 물을] 덩어리의 둥근 형태를 만든다.
마치 연잎의 물방울처럼,
어떻게 거대한 분량의 물을 덩어리로 만드는가?
구멍(vivara)을 냄으로써 그렇게 한다. 바람은 그것의 여기저기에 구멍을 만든다.
43. 그것은 이와 같이 바람에 의해 엉기고 덩어리가 되면서 줄어들어 서서히 아래로 떨어진다.
그것이 아래로 떨어질 때 범천의 장소에 범천의 세계가 다시 나타나고 위의 네 가지 욕계 천상세계의 장소에 천상세계가 다시 나타난다.
그 전에 있던 땅의 장소까지 떨어질 때 다시 거센 바람이 일어난다.
그것은 마치 뚜껑 닫힌 물항아리 속의 물처럼 그 물을 그치게 하고 정지시켜버린다.
달콤한 물이 줄어들 때 물 위로 땅의 맛을 생기게 한다.
그것은 색깔과 향기와 맛이 있다.
마치 물기가 없는 우유죽 위의 더껑이처럼.
44. [제2선의 범천의 세계에 속하는] 광음천의 세계에 처음 태어난 중생들은 수명이 다하거나 공덕이 다하여 그곳에서 죽어 여기 [인간세계에] 태어난다.
그들은 스스로 빛나고 허공을 다닌다. 그들은 「악간냐 경」(Aggañña Sutta,起世經,D.iii.85)에서 설한 것과 같이 달콤한 땅을 맛본 뒤 갈애에 압도되어 그것을 먹기 위해 덩이를 만드는데 바쁘다.
그때 그들의 광명이 사라지고 암흑이 된다. 어두움을 보고 그들은 두려워한다.
45. 그때 그들에게 두려움을 없애고 용기를 주기 위해 50유순에 가득한 일륜이 나타난다.
그들은 그것을 보고 우리가 광명을 얻었다고 기뻐하고 만족스러워하면서 두려움에 떠는 우리들의 두려움을 없애고 용기(sūrabhāva)를 내게 하면서 떠올랐기 때문에 태양(sūriya)이 되어라하면서 그것을 태양이라 부른다.
태양이 낮 동안 빛을 발하고서 질 때에 그들은 우리가 얻은 광명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두려워한다.
그들은 이와 같이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다른 광명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46. 마치 그들의 생각을 아는 듯이 49유순의 월륜이 나타난다.
그들은 그것을 보고 더욱 기뻐하고 만족스러워하면서 우리의 소원(chada)을 알았던 것처럼 떠올랐기 때문에 달(canda)이 되어라하면서 그것을 달이라 부른다.
47. 이와 같이 태양과 달이 나타날 때 별들도 그들의 별자리에 나타난다.
그 이후부터 낮과 밤이 구별되었고, 서서히 한달, 보름,계절, 일년이 알려졌다.
48. 태양과 달이 나타날 수미산, 우주산, 히말라야산이 나타났다.
어떻게?
조밥을 지을 때 거품이 끓어오르자마자 동시에 어떤 부분은 불룩하게 솟고 어떤 부분은 움푹하게 들어가고 어떤 부분은 평탄하다.
이와 같이 불룩하게 솟은 곳에 산들이 있고, 움푹하게 들어간 곳에 바다들이 있고, 평탄한 곳에 섬들이 있다.
49. 그 중생들이 달콤한 땅을 맛보면서 서서히 어떤 자는 잘생기고, 어떤 자는 못생기게 된다. 잘생긴 자들은 못생긴 자들을 업신여긴다.
그들이 멸시하기 때문에 그 달콤한 땅 맛은 사라진다. 땅의 부산물이 생겨난다. 그것도 그와 같은 방법으로 사라진다.
그때 바달라따 덩굴이 생겨난다. 그것도 그와 같은 방법으로 사라진다.
그때 경작하지 않고도 익은 쌀이 생겨난다. 그것은 속껍질도 없고 겉껍질도 없고 깨끗하고 향기로운 쌀열매(taṇḍula-pphala)다.
50. 그로부터 그들에게 그릇들이 생겨난다. 그들은 쌀을 솥단지에 넣고서 돌 위에 올려놓는다. 자연적으로 불이 일어나 그것을 요리한다. 그 밥은 제스민 꽃을 닮았다. 그것은 국이나 반찬이 필요없다. 그들이 맛보고 싶어 하는 바로 그 맛이 된다.
51. 그들이 이 거친 음식을 먹기 시작한 후부터 오줌과 똥이 생겼다.
그것을 내보내기 위해 상처구멍이 생겨났다.
남자에게 남성이 여자에게 여성이 생겨났다.
그때 여자는 남자를, 남자는 여자를 오랫동안 깊이 생각한다. 그들이 오랫동안 깊이 생각하기 때문에 애욕으로 흥분한다. 그때 성교를 한다.
52. 그들은 법답지 못한 행위로 인해 지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벌을 받아 그 법답지 못한 행위를 숨기기 위해 집을 짓는다. 그들은 집에서 살면서 어떤 게으른 중생들의 사고방식에 따라 저장을 한다.
그때부터 속껍질과 겉껍질이 쌀을 덮게 되고 그들을 수확한 자리에 다시 자라지 않았다.
그들은 모여서 탄식한다.
“여보시오, 중생들에게 죄악이 생겨났습니다. 이전에 우리는 마음으로 만들어졌습니다.(D.iii.90)”
이와 같이 「악간냐 경」(起世經)에서 설한 방법대로 상세히 알아야 한다.
53. 그 다음에 그들은 한계를 정한다.
어떤 중생이 다른 자의 소유물을 훔친다. 두 번째 까지는 꾸짖고 세 번째는 주먹과 흙덩이와 몽둥이 등으로 때린다.
이와 같이 훔치고, 비난하고, 거짓말하고, 몽둥이를 드는 일 등이 생길 때 그들은 모여서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야단쳐야 할 사람을 바르게 야단치고, 비난 받아야 할 사람에게 비난하고, 쫓겨나야 할 사람을 쫓아낼 한 사람을 선출하면 좋지 않을까?
우리는 그에게 쌀을 일부를 공급하면 될 것이다.(D.iii.92)”
54. 이와 같이 결정을 내린 사람들 가운데서 이 겁에서는 보살로 계시던 우리 세존께서 그 사람들 가운데서 용모가 가장 출중했고, 가장 미남이었고, 가장 존경을 받았고, 현명했고, 억제하고 격려할 능력을 갖춘 분이셨다. 그들은 그에게 다가가 청하여 추대하였다.
그는 그 대중(mahājana)이 선출했기(sammata) 때문에 마하삼마따(mahā-sammta, 크게 존경받는 분)이고, 국토(kettha)의 주인(adhipati)이기 때문에 캇띠야(khattiya, 끄샤뜨리야, 왕족)이고, 공정하고 평등하게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하기(rañjeti) 때문에 라자(raja,왕)라는 세 가지의 이름으로 알려졌다.
세상의 희유한 지위에 관한 한 보살이 제일 첫 번째 사람이다. 이와 같이 보살을 우두머리로 하여 끄샤뜨리야의 권속이 생긴 뒤 차례로 바라문 등의 계급도 생겼다.
55. 여기서 겁을 파괴할 큰 구름이 몰려온 때부터 불꽃이 꺼지는 때까지가 일 아승지(asaṅkheyya)가 되고 수축하는 [겁]이라 한다.
겁을 파괴할 불꽃이 꺼지는 때부터 백 천 구지의 우주를 가득채울 큰 구름이 다시 몰려오는 때까지가 두 번째 아승지가 되고 수축한 상태로 머무는 [겁]이라 한다.
큰 구름이 다시 몰려온 때부터 달과 태양이 나타나는 때까지가 세 번째 아승지가 되고 팽창하는 [겁]이라 한다.
달과 태양이 나타난 때부터 겁을 파괴할 큰 구름이 다시 몰려오는 때까지가 네 번째 아승지가 되고 팽창한 상태로 머무는 [겁]이라 한다.
이 네 아승지가 하나의 대겁(大劫)이 된다. 이와 같이 불로 인해 파괴되고 성립되는 것을 알아야 한다.
56. 겁이 물로 인해 소멸하는 경우에도
‘처음에 겁을 파괴할 큰 구름이 몰려와서’라는 등으로 앞서 설한 방법대로 상세하게 알아야 한다.
57. 이것이 다른 점이다.
거기서는 두 번째 태양이 나타나지만 여기서는 겁을 파괴할 가성(苛性)의 물(khāra-udaka)을 가진 큰 구름이 나타난다.
그것은 처음에는 가늘게 내리다가 점차 큰 물줄기와 함께 백 천 구지의 우주를 가득 채우면서 내린다. 가성의 물에 닿자마자 대지와 산 등은 녹아버린다. 물은 사방으로 바람에 의해 지탱된다.
땅으로부터 제2선의 영역까지 물이 침범한다.
그곳에 있는 세 가지 범천의 세계를 녹여버리고 [제3선의] 변정천에 이르러서 그친다.
형성된 것(行)들이 미진만큼이라도 있는 한 그 물은 가라앉지 않는다.
형성된 것들을 모두 소멸한 뒤 갑자기 가라앉고 사라진다.
아래 허공과 함께 위 허공은 일대 암흑을 이룬다는 것은 모두 앞서 설한 것과 같다.(§41).
그러나 여기서는 제2선의 광음천과 함께 세상의 재현이 시작된다. 변정천에서 떨어져 중생들은 광음천 등에 다시 태어난다.
58. 여기서 겁을 파괴할 큰 구름이 몰려온 때부터 겁을 파괴할 물이 그치는 때까지가 한 아승지가 된다.
물이 그치는 때부터 큰 구름이 다시 몰려오는 때까지가 두 번째 아승지가 된다.
큰 구름이 다시 몰려온 때부터 … 이 네 아승지가 하나의 대겁이 된다.
이와 같이 물로 인해 파괴되고 성립되는 것을 알아야 한다.
59. 겁이 바람으로 인해 소멸하는 경우에도
‘처음에 겁을 파괴 할 큰 구름이 몰려와서’라는 등으로 앞서 방법대로 상세하게 알아야 한다(§32).
60. 그러나 이것이 다른 점이다.
그곳에서는 두 번째 태양이 나타나지만 여기서는 겁을 파괴하기 위해 바람이 나타난다.
그것은 처음에는 거친 티끌을 일으킨다. 그 다음에 가는 티끌, 가는 모래., 거친 모래, 조약돌, 돌맹이 등과 누각만큼 큰 돌과 평탄하지 않은 곳에 잇는 큰 나무를 들어올린다.
그들은 땅으로부터 허공으로 날려가 다시 떨어지지 않고 그곳에서 가루로 부서져 없어진다.
61. 서서히 대지의 아래로부터 바람이 일어나 땅을 회전시키고 전복시켜 허공으로 날려버린다. 땅의 부분들은 백 유순만큼의 크기, 2백, 3백, 4백, 5백 유순만큼의 크기로 부서져 바람의 속력에 날려 허공에서 가루로 부서져 없어진다.
바람은 우주산과 수미산마저 들어올려 허공으로 날려버린다. 그들은 서로서로 부딪혀 가루가 되어 사라진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땅에 있는 궁전과 허공에 있는 궁전을 파괴하면서 여섯 가지 욕계의 천상세계들을 파괴하고 백 천 구지의 우주를 파괴한다.
우주산은 우주산과 함께, 히말라야는 히말라야와 함께, 수미산은 수미산과 함께 서로서로 부딪혀 가루로 부서져 없어진다.
62. 바람은 땅으로부터 제3선의 영역까지 파괴한다.
그곳의 세 가지 범천의 세계를 파괴한 뒤 [제4선의] 광과천에 이르러 그친다.
이와 같이 [바람은] 형성된 것들을 모두 파괴하고 스스로 멸한다. 아래 허공과 함께 위 허공은 일대 암흑을 이룬다는 것은 모두 앞서 설한 것과 같다(§41).
그러나 여기서는 범천의 변정천의 세계와 함께 세상의 재현이 시작된다. 광과천에서 떨어져 중생들은 변정천 등에 다시 태어난다.
63. 여기서 겁을 파괴할 큰 구름이 몰려온 때부터 겁을 파괴할 바람이 그치는 때까지가 한 아승지가 된다.
바람이 그치는 때부터 큰 구름이 다시 몰려오는 때까지가 두 번째 아승지가 된다. …
이네 아승지가 하나의 대겁이 된다.
이와 같이 바람으로 인해 파괴되고 성립되는 것을 알아야 한다.
64. 무슨 이유로 이와 같이 세계가 파괴되는가?
[세 가지] 해로운 뿌리 때문이다. 해로운 뿌리들이 치성할 때 이와 같이 세계는 파괴된다.
탐욕이 치성할 때 그것은 불로 인해 파괴된다.
성냄이 치성할 때 물로 인해 파괴된다.
- 어떤 자들은 성냄이 치성할 때 불로인해 파괴되고,
탐욕이 치성할 때 물로 인해 파괴된다고도 주장한다.-
어리석음이 치성할 때 바람으로 인해 파괴된다.
65. 이와 같이 파괴될 때 끊임없이 일곱 번 불로 파괴되고, 여덟 번째는 물로 인해 파괴된다.
다시 일곱 번 불로 인해 파괴되고, 여덟 번째는 물로 인해 파괴된다.
이와 같이 각각 여덟 번째에 물로 인해 파괴되면서 일곱 번 물로 파괴되고 일곱 번은 불로 인해 파괴된다.
이와 같이 63겁이 지나간다.
이제 [64번째는] 물로 인해 파괴될 차례에 이르렀다.
그러나 바람이 그것을 침해한 뒤 기회를 얻어 64겁의 수명을 가진 변정천을 파괴하면서 세계를 파괴한다.
66. 겁을 기억하는 비구가 전생을 기억할 때 이들 겁 가운데서 세계가 수축하는 여러 겁, 세계가 팽창하는 여러 겁, 세계가 수축하고 팽창하는 여러 겁도 기억한다. 어
떻게? ‘어느 곳에서 나는’이라는 방법으로 기억한다.
‘어느 곳에서 나는’:
그 팽창하는 겁에 나는 그런 존재에, 태에, 태어날 곳에, 알음알이의 거주에, 중생의 거처에, 중생의 부류에 있었다.
67.
‘이런 이름을 가졌고’: 띳사 혹은 풋사라는 이름을 가졌다.
‘이런 종족이었고’: 깟짜나 혹은 깟사빠라는 종족이었다.
이것은 그의 전생에 자기의 이름과 종족을 기억하는 것으로 설했다.
만약 그의 경험과 고통의 경험, 단명과 장수의 상태를 알기를 원하면 그것도 충분히 기억한다.
그래서 말씀하셨다.
“이런 용모를 가졌고 …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다.(D.i.81)”
68.
‘이런 용모를 가졌고’: 흰색 혹은 갈색의 피부색이다.
‘이런 음식을 먹었고’: 쌀과 고기 반찬의 음식을 먹었고, 바람에 의해 떨어진 과일의 음식을 먹었다.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여러 가지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혹은 세속적이거나 비세속적인 것 등의 여러 가지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다.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이와 같이 백세의 수명을 가졌고 혹은 8만4천겁의 수명을 가졌다.
69.
‘그곳에서 죽어 여기 다시 태어났다’:
나는 그 존재에서, 모태에서, 태어난 곳에서, 알음알이의 거주에서, 중생의 거처에서, 중생의 부류(nikāya)에서 죽어 다시 어떤 존재에, 모태에, 태어날 곳에, 알음알이의 거주에, 중생의 거처에, 중생의 부류에 다시 태어났다.
‘그곳에서도 나는’: 그 존재에서, 모태에서, 태어난 곳에서, 알음알이의 거주에서, 중생의 거처에서, 중생의 부류에서 나는. 이런 이름을 가졌고 등은 앞서 설한 것과 같다.
70. ‘그곳에서 나는’은 자기가 원하는 만큼 점점 과거 생으로 올라가는 자의 기억이고, 그곳에서 죽어는 방향을 바꾸어 반조하는 것이다.
‘여기 태어났다’는 것은 그가 지금 여기 태어나기 전에 그가 태어난 장소에 대해서 여기 다시 태어났다고 설했다고 알아야 한다.
‘그곳에서도 나는’ 등은 그가 여기에 태어나기 전에 태어난 장소에서 이름, 종족 등을 기억함을 보여주기 위해 설했다.
‘그곳에서 죽어서 여기 다시 태어났다’: 다시 태어나기 이전의 장소에서 죽어 여기 어떤 끄사뜨리야 가문 혹은 바라문 가문에 태어났다.
71.
‘이처럼(iti)’: 이와 같이(evaṁ).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이름과 종족 등이 특색이고, 용모 등이 갖가지 모습이다. 왜냐하면 이름과 종족을 통해 중생들은 띳사 혹은 깟사빠라고 알려진다. 용모 등을 통해 갈색, 흰색 등 다양함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이름과 종족은 특색이고, 다른 것들은 갖가지 모습들이다.
‘상세하게 기억한다’: 이것은 이미 설명되었다.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의 주석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