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머드에게나 인류에게나 알래스카는 시베리아의 연장에 지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빙하 때문에 말래스카에서 아메리카의 다른 지역으로 가는 길이 막혀 있었다.
더 남쪽을 탐사할 수 있었던 것은 소수의 고립된 개척자들뿐이었을 것이다.
기원전 12,000년쯤 지구 온난화로 얼음이 녹고 좀 더 쉬운 통로가 열렸다.
새로 열린 육로를 이용해서 인류는 떼를 지어 남쪽으로 이동했고, 대륙 전체로 퍼져나갔다.
원래 대형동물을 사냥하는 데 적응했던 터였지만 이들은 곧 극히 다양한 기후와 생태계에 적응했다.
시베리아인의 후예들은
미국 동부의 울창한 숲, 미시시피 감각주의 늪지대, 맥시코의 사막, 중미의 찌는 듯한 밀림에 정착했다.
아마존 강 유역의 세계에 둥지를 틀었는가 하면
안데스 산맥의 골짜기나 아르헨티나의 대초원에 뿌리를 내리기도 했다.
이 모든 일이 단 1천 년이나 2천 년 만에 일어났다.
기원전 10,000년이 되자 인류는 미 대륙 최남단의 티에라델후에고 제도에까지 정착했다.
인류의 이런 진격전은 호모 사피엔스의 뛰어나 창의력과 적응력을 증언한다.
다른 동물은 이토록 극단적으로 다양한 서식지들에
사실상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상태로 그토록 빨리 이주한 예가 전혀 없다.
사피엔스의 이 대륙 정착 과정은 평화롭지 않았다.
사피엔스가 지나간 자리에는 희생자들의 흔적이 길게 남았다.
14,000년 전 미 대륙의 동물군은 지금보다 훨씬 더 풍요로웠다.
최초의 아메리카인들이 알래스카에서 캐나다의 초원과 미국 서부로 남하했을 때 마주친 동물들 중에는
매머드, 마스토돈, 곰 크기의 설치류, 말과 낙타떼, 대형 사자, 오늘날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대형동물 수십 종이 있었다.
그 중에는 무시무시한 검치고양이, 무게가 8톤이고 키가 6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땅늘보도 있었다
남미에는 이보다 더욱 이국적이고 기묘한 대형 포유류, 파충류, 조류가 살고 있었다.
미 대륙은 진화의 거대한 실험실로서 아프리카와 아시아에는 알려지지 않은 동식물들이 진화하고 번성한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사피엔스가 도착한 지 2천 년이 지나지 않아 이들 유일무이한 종 대부분이 사라졌다.
오늘날의 추정에 따 르면, 그 짧은 기간 동안 북미에서 대형동물 47속 중 34속이 사라졌다.
3천만 년 넘게 번성하던 검치고양이도 멸종했고, 대형 땅늘보, 대형 사자,
미국 토종의 말과 낙타, 대형 설치류와 매머드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
이보다 작은 포유동물, 파충류, 조류 수천 종을 포함해 곤충과 기생충까지고 멸종했다.
매머드가 사라지면서 매머드에게 기생하던 모든 진드기 종도 함께 없어졌던 것이다.
고생물학자와 동물고고학자들 ㅡ 동물의 유해와 유적을 조사 연구하는 사람들 ㅡ은
수십 년에 걸쳐 미 대륙의 초원과 산악을 샅샅이 흝으며
고대 낙타 뼈 화석과 대형 땅늘보의 석화된 변을 찾아보았다
찾던 것을 발견하면, 조심스럽게 포장해서 실험실로 보냈다.
실험실 연구원들은 모든 뼈와 분석(糞石,화석화된 변)을 주이 깊게 연구하고 시기를 측정한다.
이런 분석의 결과는 언제나 같다.
가장 신선한 변과 가장 가까운 시기의 낙타뼈는
인류가 미 대륙에 밀려오던 시기, 다시 말해 대략 기원전 12,000~9,000년 사이의 것으로 드러났다.
이보다 가까운 시기의 변이 발견된 지역은 카르브해 제도의 섬, 특히 쿠봐와 히스파니올라 밖에 없다.
이곳에서 발견된 땅늘보의 석화된 변은 기원전 5000년 쯤의 것이었다.
인간이 어찌어찌 카르브해를 건너서 문제의 대형 섬 두 곳에 처음 정착한 바로 그 시기다.
이번에도 일부 학자들은 호모 사피엔스에게 면조부를 주고 기후변화 탓을 하려 든다.
(이런 주장을 하려면 이들은 서반구의 나머지 지역은 7천 년 동안 온난해졌지만
같은 시기 카르브해 제도의 기후는 어떤 신비한 이유로 인해 안정을 유지했다는 가정을 전제해야 한다.)
하지만 미 대륙의 똥덩이리 문제는 회피할 수 없다. 우리가 범인이다. 진실을 외면할 방법은 없다.
설사 기후변화가 우리를 부추겼다 할지라도, 결정적 책임은 인류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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