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역잡아함경_60. 바사닉왕, 인색한 부자의 인연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였다.
성 안에 마하남이라고 하는 큰 장자(長者)가 있었는데, 후계자인 아들이 없이 병환으로 목숨을 마쳤다.
당시 국법은 만약 남자를 낳지 못하면 목숨을 마친 후에 그 집 재산을 몰수하여 관가에 예속시켰는데, 이 때문에 마하남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은 마땅히 나라의 임금에게 들어가게 되었다.
어느 날 바사닉왕은 몸에 먼지가 잔뜩 묻은 채로 부처님 처소에 와서 부처님께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있었다.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오늘은 무슨 일로 몸에 먼지가 묻고 얼굴도 보통 때와 다른 모습으로 이곳에 왔소이까?”
바사닉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사위성 안에 마하남(摩訶南)이라는 큰 장자가 어제 목숨을 마쳤사온데, 아들이 없기 때문에 그가 소유한 재산과 보물이 국가에 몰수되었습니다.
그 재산과 보물을 감시하느라고 바람과 먼지를 뒤집어 썼는데 그 때문에 먼지가 몸에 묻었는가 봅니다.”
부처님께서 왕에게 물으셨다.
“마하남이 진짜 거부(巨富)였소?”
왕이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얼마나 큰 부자인가 하면, 금은과 값진 보물이 수천만억이어서 이루 다 말할 수 없거늘, 하물며 그 밖의 재물이겠습니까?
그러나 값진 보물을 엄청나게 쌓아 두긴 했지만 인색하고 탐냈기 때문에 아끼기만 할 뿐 먹지 않았습니다.
겨우 먹는 것이라곤 가라지와 피와 거친 겨 따위로 아주 좋지 못한 것뿐이며, 국을 만들 때도 생강을 한 번 멀겋게 삶은 뒤에 그것을 도로 팔아서 재산에 보탰으며, 입는 것도 오직 굵은 베옷만 입고 5총의 성글고 해진 것으로 속옷을 만들었으며, 낡은 수레를 타고 나뭇잎을 꿰어서 일산을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사문, 바라문과 빈궁한 걸인에게 조그마한 보시라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은 훌륭한 장부가 아니오.
왜냐 하면 비록 재물과 보배가 있어도 마음을 열어서 바르게 즐거움을 누리지도 못하며, 또 부모와 처자에게 공양하지도 못하며, 또한 노비와 하인들에게도 주지 않으며, 가끔 사문ㆍ바라문에게 보시하지 않음으로서 다시 천상에 태어나는 착한 과보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오.”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이 마하남은 옛날 일찍이 다가라슬(多伽羅瑟) 벽지불(辟支佛)에게 조그마한 선근(善根)을 심었소.
그때 음식을 보시하면서도 지극한 마음으로 보시하지 않고, 신심으로 보시하지 않고, 손수 보시하지 않고, 공손히 보시하지 않고 함부로 던져 주었소.
그리고 보시한 뒤에는 다시 후회하면서,
‘나의 음식을 왜 이 머리 깎은 사문에게 주었던가? 집안의 하인들에게 주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하였소.
그는 죽은 후에 사위성에서 제일가는 거부 장자의 집에 태어났는데, 비록 저 거부 장자의 집에 태어났지만 옛날에 음식을 보시하고 후회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좋은 옷 입기를 좋아하지 않고, 좋은 음식 먹기를 좋아하지 않고, 말의 안장과 수레를 장식하는 꾸미개들을 모두 좋아하지 않은 것이오.
대왕이여! 반드시 알아야 하오.
마하남은 옛날에도 그 집이 부호였는데, 돈과 재산 때문에 배다른 동생을 죽였소. 이러한 인연으로 지옥에 들어가 한량 없는 세월 동안 온갖 고통을 받았으며, 이 때문에 돈과 재산이 일곱 번이나 관가에 몰수를 당했소.
마하남은 다가라실 벽지불에게 음식을 보시한 인연으로 받은 복을 이미 다하였으니, 큰 죄인이 몸을 버린 후에는 지옥에 들어가는 것처럼, 마하남도 몸을 버린 후에는 마찬가지로 크게 아우성치는 지옥[大叫喚地獄]에 들어갈 것이오.”
바사닉왕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 마하남은 몸을 버린 후에는 정말로 크게 아우성치는 지옥에 들어갑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정말로 들어가오.”
왕은 그 말씀을 듣자 눈물을 흘리면서 슬피 울고는 의복을 정돈하여 오른쪽 어깨를 벗어 멘 뒤에 합장하고서 게송을 말하였다.
돈과 재물과 곡식과 비단
보물과 노비와 그리고 권속 등
모든 것이 전혀 따를 수 없어서
조금이라도 취할 수 없다네.
죽음이 침범하여 몸을 버리면
온갖 재물과 보배가 널려 있어도
한 물건도 그의 소유가 아니라서
조금이라도 가지고 갈 수 없다네.
어떤 물건만이 그 사람을 따르는데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듯 하면서
선악 그대로 과보를 받아서 잃지 않나니
오직 이것만이 그림자처럼 사람을 따른다네.
그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선악의 업이 사람을 따르는 것은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듯 해서
그 향하는 대로 따라다니며
조금도 서로 떨어지질 않네.
비유하자면 적은 식량을 갖고서
험한 길을 넘으면 고통만 더하듯이
악을 행함도 역시 그와 같아서
좋은 길에는 능히 이를 수 없네.
비유하자면 풍족한 양식을 가지고
험한 길을 편안히 가듯이
복을 닦음도 역시 그와 같아서
편안하게 좋은 곳에 이르네.
비유하자면 오랫동안 집을 떠나서
아득히 먼 곳에 이르렀다가
무사히 집에 돌아오게 되면
그 마음이 매우 기쁜 것과 같으니
처자와 그리고 권속들이
기뻐하고 아주 즐겁듯이
선(善)을 닦는 것도 그와 같아서
착한 업이 와서 영접하네.
또한 헤어진 권속들과
서로 만나서 기뻐함과 같나니
그러므로 마땅히 선을 쌓아서
후생의 길을 닦아야 하리라.
후세의 복을 얻고 싶으면
반드시 바른 행을 닦아야 하나니
금생에는 비방을 받지 않고
후생에는 쾌락을 받으리라.
부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