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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영락경 제12권
35. 석제환인문품(釋提桓因問品)
[환법, 요술의 비유]
그때에 석제환인(釋提桓因)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께서 일체 모든 법을 모두 청정하게 하고, 아울러 여러 한량없는 항하 모래 수효의 부처님 국토와 여러 부처님 세계를 허공처럼 청정케 해서 모두 있는 바가 없다고 설하셨고, 이제 다시 일체의 모든 법을 다 깨달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심을 들었나이다.
무엇이 온갖 법 가운데서 형상이 없어서 볼 수 없는데도 온갖 법을 깨달아 알고자 함이옵나이까?”
그때에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구익(拘翼)아, 네가 능히 여래 앞에서 이 뜻을 물으니, 이제 마땅히 너에게 낱낱이 비유를 들어 말해 줄 것이다. 지혜 있는 이는 비유로써 스스로 아느니라.
마치 요술쟁이가 국토(國土), 성곽(城郭), 대궐[宮殿], 집[屋室], 음식(飮食), 평상(床臥), 빈천(貧賤), 귀빈(貴賓), 명호(名號), 성자(姓字), 부모형제(父母兄弟), 종, 심부름꾼(僕從給使) 등 만물을 화하여 만들고, 다시 사람의 좌우 시종(衛從)을 화하여 만드는 것과 같으니,
이처럼 요술쟁이가 보이는 요술[化法]은 혹은 겁수(劫數)를 거치면서 필요한 의복(衣服), 음식, 의약(醫藥), 평상[床臥], 이부자리[臥具]를 공급해서 받는 이도 실제로 받고 보시하는 이도 실제로 보시하는데,
그대가 보기에는 이것이 실로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때에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일체 모든 법은 공하고 모두 적멸하여 허깨비와 같아서 실제가 아니기 때문이나이다.
어리석은 이는 이것에 깊이 집착하여 문득 뒤바뀜을 이루지만,
본래 옴도 없고, 감도 없고, 집착함도 없고, 얽매임도 없고, 다함도 없고, 다하지 않음도 없으니, 허깨비는 형상이 없어서 또한 의지할 수 없나이다.”
[환술 같은 삼매]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고 그러하느니라. 구익아, 보살마하살도 또한 다시 그와 같으니라.
환술과 같은 삼매[如幻三昧]의 자연정의(自然定意)를 얻어서 일체 모든 법의 일어나는 바를 분별하지만, 반연이 없고 집착함이 없어서 성패(成敗)를 보지 않는다.
온갖 중생의 무리를 교화 인도하여 제도함 있음을 보지 않고 제도함 없음도 보지 않는다.
제도하여도 제도한 바 없고 교화하여도 교화한 바가 없어서, 모두 공하고 모두 적적하여 다시 나고 멸함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요술 같은 정의 뜻 정수삼매[如幻定意正受三昧]는 매우 깊고 미묘하여서 그 끝이 없고 요술 같음[如幻]의 경계는 불가사의니라.
오직 보살마하살만이 있어 두루 능히 관찰하여 곧 통달해 깨달음을 얻어서 또한 남을 보지 않고 또한 멸함을 보지 않으며,
또한 다시 마땅히 남이 있음을 보지 않고 또한 다시 벌써 남이 있음을 보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보살의 들어가는 바는 불가사의로서 이 나한이나 벽지불의 알 바가 아니기 때문이니라.
보살이 건너가는 바는 마치 허공과 같으니, 허공을 건너가는 바는 형상도 없고 모양도 없느니라.
환술 같은 삼매[如幻三昧]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동ㆍ서ㆍ남ㆍ북과 사유(四維:네 간방)와 위아래가 없느니라.
구익아, 반드시 알아라. 이제 마땅히 너에게 비유를 끌어 대리라.
가령 범부가 본래 형색(形色)이 없어서 능히 선정(禪定)의 근본을 분별하지 못하면,
생겨나도 또한 생겨남을 알지 못하고, 생겨나지 않아도 또한 생겨나지 않음을 알지 못하며,
또한 다시 미래의 생겨남과 이미 생겨난 것을 알지 못하고, 능히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를 다하지 못하며,
또한 머묾도 보지 못하고 머물지 않음도 보지 못하며,
또한 다함도 보지 못하고 다하지 않음도 보지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마음은 본래 형상이 없어서 의지하거나 집착할 수 없고 또한 3승(乘)들이 능히 생각하여 헤아릴 바 아니기 때문이니라.
구익아, 반드시 알아라. 보살마하살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환술 같은 삼매[如幻三昧]에 들어가면,
일체 모든 법이 모두 앞에 나타나서 그 끝도 없고 한계도 없으며,
있어도 있음을 보지 못하고 없어도 없음을 보지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보살의 경계는 불가사의해서 행하는 법칙이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가득 찼기 때문이니라.
구익아, 마땅히 알아라. 이제 너에게 비유를 끌어대리라.
가령 사갈(娑竭) 용왕의 비를 내리고자 생각하는데,
만일 여섯째 하늘[第六天:他化自在天]에 있으면 문득 감로(甘露)를 내리고,
만일 사천왕(四天王) 위에 있으면 능히 7보(寶)를 내리고,
타우발난타(難陀優鉢難陀)용왕 및 마나사(摩那斯)용왕이 여섯째 하늘 위에서 비를 내리면 문득 옷ㆍ장신구ㆍ향구슬[香瓚]ㆍ꽃다발[華鬘]을 내릴 것이고,
만일 네 번째 하늘[第四天]의 위에서 비를 내리면 자연히 음식으로 각각 만족하게 하리라.
어떠한가, 구익아. 이 용이 일으키는 바가 실제로 있는 것이냐?”
그때에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다만 저 하늘들의 공덕이 곧 여러 용왕들로 하여금 공양을 바치게 했을 뿐이옵나이다.”
부처님께서 다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구익아. 7보로 장엄된 궁전과 의복 및 장식은 모두 용이 내린 것으로 본래 있는 바가 아니니라.
이제 다시 스스로 여러 하늘의 복덕을 설했기 때문에 여러 용으로 하여금 온갖 보배를 내렸다고 말하지만,
여러 용 및 보물은 실제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뜻을 설하고 법을 설하면, 용이 있는 것도 아니요 또한 보물도 없나이다.
왜냐하면 온갖 만물은 모두 공하고 모두 적멸하여 저의 몸 및 하늘도 또한 있는 바가 없고, 용이 비 내린 바도 또한 비 내림이 있지 않은 것인데,
다만 다함을 보지 못하고 다하지 않음도 보지 못하는 어리석고 미혹한 사람이 스스로 식의 상념을 내는 것일 뿐입니다.”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그와 같으니라, 구익아. 보살마하살이 환술 같은 삼매에 들어가서 일체 모든 법을 다 관하는데,
온갖 법이 생겨나도 또한 생겨남을 보지 않고 생겨나지 않음도 보지 않으며,
온갖 법문의 다함 있음과 다함없음을 보며,
허깨비 법문의 다함 있음과 다함없음을 보며,
다시 한량없고 한정 없는 교화의 법문을 보며,
다시 한량없고 한정 없는 온갖 부처님 세존의 노닐며 걷는 법문을 보며,
다시 한량없고 한정 없는 여러 근(根)의 그물[羅網]이 법문을 보고 들어감을 보며,
다시 한량없고 한정 없는 온갖 사물 세계의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겁의 불태움과 심의(心意)가 광대하여 여러 부처님의 행하신 법문을 초월함을 보느니라.
이와 같이 구익아, 마땅히 온갖 법은 생겨남도 없고 멸함도 없음을 알아야 하느니라.
다만 중생이 스스로 식(識)의 집착을 낳아서 정의(定意)에 들어가 사람의 마음을 관찰하지 못하고, 공혜(空慧)로 무생(無生)을 얻음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천제석(天帝釋)에게 게송을 말씀해 주시었다.
출요(出要)하여 도의 문에 들어서
3세의 행을 분별하고
전전(展轉)하면서 5도(道)를 말미암지만
있음[有]을 타파하여 있음에 처하지 않네.
보살은 여실히 관하여
혜명(慧明)의 길을 분별하고
본래 내가 지은 행은
바로 당장 집착함을 없애네.
세계가 모두 허공과 같고
아(我)와 타(他)라는 두 상념이 없으며
여러 부처님께 공경하여서
지금 무정상(無頂相)을 얻었네.
얼굴 모습 우담발화와 같고
넓고 길어서 얼굴을 덮으며
나지도 않고 또한 멸하지도 않아
하늘과 인간에서 존귀함 얻었네.
구익아, 마땅히 근본을 생각해야
온갖 행이 결루(缺漏)하지 않으니
용맹하고 게으르지 아니하여
본말의 공(空)함을 완전히 궁구해라.
앉아서 상념을 일으키지 않고
발로 서서 있음을 보지 않아
온갖 행의 근본에 의지하지 않으므로
이름하여 사문(沙門)이라 하네.
실로 열반이 있지 않고
또한 5도(道)의 길도 없으니
다만 보살의 노니는 곳에서
권도의 교화로 생겨남 있음을 보이네.
무앙수의 겁으로부터
욕심 없고 탐내는 바 없어
처음부터 뉘우치는 마음 없거늘
하물며 의지하고 집착함 있으랴?
이로부터 계속해서
선(善)을 닦고 근본을 여의지 않아
일행(一行)으로 불도 이루어서
위없는 법을 굴리네.
나고 죽는 가운데 의탁해서
수없는 사람을 교화하고
남이 없는 법 알게 해서
자연히 도의 가르침에 응하네.
그때에 세존께서 석제환인에게 이 게송을 말씀하실 때에 무수한 백천 여러 하늘과 인간의 백성들이 곧 그 자리에서 무생인(無生忍)을 얻었고,
다시 수없는 여러 하늘ㆍ용ㆍ귀신들이 모두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발하였다.
[허깨비 같은 정의의 한량없는 법장]
부처님께서 다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 및 사부대중인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가 이 허깨비 같은 정의의 다함없는 법[如幻定意無盡法]을 받아 지니고 외우면 문득 능히 한량없는 법장을 갖추리라.
어떤 것이 한량없는 법장인가?
여래의 변재를 갖추고자 하는 이는 마땅히 이 허깨비 같은 정의의 한량없는 법장[如幻定意無盡法臟]을 배워야 하느니라.
다시 다음에 구익아,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구경을 깨달아 아는 부처 지혜[究竟覺知佛慧]를 얻고자 하거든,
마땅히 이 허깨비 같은 정의의 다함없는 삼매[如幻定意無盡三昧]를 배워야 하느니라.
다시 다음에 구익아,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여러 부처님 세계에 노닐면서 부처님에게 친근히 함을 얻고자 하는 이는,
마땅히 이 허깨비 같은 정의의 다함없는 삼매를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위없는 법륜을 부처님께서 굴리신 것처럼 굴리되 대중 가운데 있으면서 무서움이 없음을 얻고자 하는 이는,
마땅히 이 허깨비 같은 정의의 다함없는 법장을 배워야 하느니라.
다시 다음에 구익아.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여러 부처님의 백천 총지(總持)를 얻어서 스스로 기뻐하고 즐기고자 하거든,
마땅히 이 허깨비 같은 정의의 다함없는 법장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온갖 중생의 원하는 것을 얻고,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이 하고 신족의 변화를 얻고자 하는 이는,
마땅히 이 허깨비 같은 정의의 다함없는 법장을 배워야 하느니라.
다시 구익아,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여러 부처님 세계의 한량없는 중생의 한량없는 성품의 행을 다 똑같은 한 갈래[一趣]로 함을 얻고자 하는 이는,
마땅히 이 허깨비 같은 정의의 한량없는 법장을 배워야 하느니라.
다시 다음에 구익아,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한량없는 세계의 여러 부처님 국토를 합하여 하나로 만들되 그 빛깔을 황금처럼 만들고자 한다면,
마땅히 이 허깨비 같은 정의의 다함없는 법장을 배워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온갖 여러 부처님이 모두 여기로부터 생겨났고,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모두 이 허깨비 같은 정의로부터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루게 되었으며,
현재의 시방의 모든 부처님 세존도 모두 이 허깨비 같은 정의의 다함없는 법장으로부터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루었으며,
미래의 수없는 항하 모래 수효의 여러 부처님도 또한 마땅히 이 허깨비 같은 정의의 다함없는 법문을 익혀야 하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너에게 비유를 끌어 말하겠으니, 지혜 있는 이라면 비유를 통해 스스로 아느니라.
가령 맹렬한 불의 불꽃이 뜨겁고 치열한데도 다시 장작[薪]을 더 집어넣으면, 큰 바람이 불어와서 드디어 다시 치열하고 불길이 거세져서 쉴 새 없이 산과 들을 태우지만, 풀과 나무가 다 없어지면 불의 세력은 즉시 없어진다.
보살마하살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마음을 발하고 배움을 일으켜서 중생을 제도하려고 법계에 나아갈 바에 나아가 수없는 항하 모래 수효의 찰토(刹土)에 이르기까지 분별하여 사유하고,
다시 허공 중생의 근원을 관하고
다시 스스로 항하 모래 수효의 찰토의 무수 세계의 중생이 심의(心意)로 생각한 바의 근원을 사유해서 낱낱이 분별하느니라.
그리하여 다시 스스로 계교하기를
‘나는 무슨 지혜로써 저들의 소원을 성취하게 해 주나?’ 하고,
낱낱이 자기 법의 나아갈 바를 분별하기를
‘마땅히 어떤 법을 굴리고 어떻게 교화해야 하나?’ 하느니라.
이때 보살은 다시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본래 원을 발하여 갖가지 선(善)을 갖추었고 중생을 두루 교화하여 나의 소원을 채웠다?’ 하고,
다시 스스로 위의와 예절을 갖추어 3세의 근본 행에 굴러 들어가고,
스스로 법을 굴려서 부사의(不思議)에 들어갈 것을 생각하고,
이처럼 계교하여 제도할 것과 못할 것에 응하며,
일체 세계의 있음이나 없음에 응하고,
다시 온갖 부처님 세계의 한량없고 제한 없는 불가사의를 주선(周旋)하고,
함께 주선하면서 공덕의 업(功德業)을 세우고,
바른 법을 끊지 않고 나아갈 바를 맹서하며,
큰 자비를 행하고 큰 서원의 마음을 잡고,
생사를 궁구해서 다하여 마음에 결감(缺減)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온갖 여러 가지 지혜를 갖추었기 때문이니라.
다시 중생의 심의(心意)가 생각하는 바를 관해서 응당 어떤 길을 밟아서 장차 인도할 수 있을까 하면서 항상 중생을 어머니가 자식 사랑하듯 생각하느니라.
이런 까닭에 보살마하살은 이 근고(懃苦)의 한량없는 마음을 잡아서 다시 한량없고 제한 없는 삼매에 들어가서 세계를 관찰하여 본래의 서원인 이와 같이 광대하고 한량이 없는 용(用)을 버리지 않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석제환인에게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보살이 처음 발심함에
큰 서원은 너무나 광대하고
허공의 끝[際]을 다하여서
원하는 바를 갖추었네.
응당 중생을 제도(濟度)할 때는
제도한 바 있음을 보지 않고
3세의 근본을 이해하고 알아서
인연을 오래 의탁하지 않네.
마음이 바르니 움직여 기울지 않고
정념(正念)으로 도의 가르침에 응하며
항상 좋은 방편을 구하여
차례로 해탈에 이르네.
마음에 겁약함을 품지 않고
밤낮으로 법을 사유하여
일행(一行)으로 성불을 얻되
또한 스승으로부터 받지는 않네.
몸은 마음을 근본으로 삼아 행하고
도의 힘으로 청정함 알아
출가하여 텅 빈 들에 있으면서
정(定)에 들어 몸도 움직이지 않네.
치열하게 모든 법을 불태우고
시방세계를 널리 비추며
스스로 숙명지(宿命智)를 닦아서
중생의 근본을 비로소 아네.
세존께서 석제환인에게 이 법문 설하실 때에 온갖 모인 이들이 다 흔쾌히 기뻐하면서 모두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