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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경요집 제12권
21. 사생부(四生部)
[여기엔 여섯 가지 연(緣)이 있음]
21.1. 술의연(述意緣)
대개 선(善)을 행하면 즐거움을 느껴 가까이는 하늘이나 연간 세계에 태어나 고 멀게는 불과(佛果)까지 이룰 수 있다.
악을 지으면 괴로움을 초래하여 가까이는 세 갈래 악한 세계에 태어나게 되고 멀게는 성인의 도와 어긋나게 된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것을 믿지 않으나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잘 안다.
그러므로 사생(四生 : 胎ㆍ卵ㆍ濕ㆍ化)으로 몸의 구별이 있고
육취(六趣 : 地獄ㆍ餓鬼ㆍ畜生ㆍ人ㆍ修羅ㆍ天)로 형상의 나뉨이 있으며,
밝고 어둠의 길이 다르고 오르고 잠기는 길도 다르다.
업연(業緣)의 이치는 분명하고 인과(因果)의 과보도 항상한 법칙이 있느니라.
21.2. 회명연(會名緣)
『반야경(般若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첫째는 난생(卵生)이요, 둘째는 태생(胎生)이며, 셋째는 습생(濕生)이요, 넷째는 화생(化生)이다.”
또 『아함구해십이인연경(阿含口解十二因緣經)』에서 말하였다.
“네 가지 생(生)이 있다.
첫째는 배에서 태어나는 것이니 이른바 사람과 축생이요[이것은 바로 태생(胎生)임],
둘째는 추위와 더위가 화합하여 생겨나는 것이니 이른바 벌레ㆍ나비ㆍ벼룩ㆍ이 따위이며[이것은 바로 습생(濕生)임],
셋째는 화생이니 이른바 하늘과 지옥이요,
넷째는 난생이니 이른바 날아다니는 새ㆍ물고기ㆍ자라 따위를 말한다.”
또 『정법념경(正法念經)』에서 말하였다.
“축생이야 한량없이 많지만 간략하게 세 가지만 말하겠다.
첫째는 물 속에서 다니는 것이니 이른바 물고기 따위요,
둘째는 땅에서 다니는 것이니 이른바 코끼리 따위이며,
셋째는 허공에 다니는 것이니 이른바 새들의 종류이다.”
더러는 천안(天眼)으로 온갖 축생들을 볼 때 네 종류의 생(生)이 있다.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태(胎)로 태어나는 것이니 이른바 코끼리ㆍ말ㆍ소ㆍ양의 종류요,
둘째는 알로 태어나는 것이니 이른바 뱀 ㆍ도롱룡ㆍ거위 ㆍ오라 ㆍ닭ㆍ꿩 등 온갖 새들을 말하며,
셋째는 습기[濕]로 생겨 나는 것이니 이른바 벼룩ㆍ이ㆍ개미 따위의 종류들이요,
넷째는 변화하여 생겨나는 것이니 얼굴이 긴 용 따위를 말한다.
그러므로 경전에서 말하였다.
“태어난다는 것은 새롭게 모든 감관[根]이 일어나는 것이요, 죽는다는 것은 받았던 온갖 감관이 소멸되는 것이다.”
또 『선견론(善見論)』에서 말하였다.
“첫째는 형상이 있게 태어나는 것이요,
둘째는 형상 없이 태어나는 것이다.
형상이 잇게 태어나는 것이야 무너질 수 있겠으나, 형상 없이 태어나는 것은 무너뜨릴 수가 없다.
형상 없이 태어나는 것은 형상이 있게 태어나는 것에 의지하나니,
형상과 마음이 서로 의지하여 함께 임시로 이루어진 것을 생(生)이라 하며,
앞의 것으로 하여금 뒤의 것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뒤의 것이 앞의 것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죽음이라고 말한다.”
또 『열반경』에서 말하였다.
“중생들의 불성(佛性)은 오음(五陰) 가운데 있으니 만약 그 오음을 파괴하면 그것을 살생이라고 말하며, 만약 살생을 하면 곧 악한 세계에 떨어지게 된다.
이 나고 죽음을 의지하기 때문에 네 가지 생이 있나니,
알에 의하여 태어나는 것을 난생(卵生)이라 말하고
장부(臟腑)를 갖추어 가지고 태어나는 것을 태생(胎生)이라고 말하며,
습기를 빌어 태어나는 것을 습생(濕生)이라 말하고,
갑자기 나타나는 것을 화생(化生)이라고 한다.
중생들이 소속된 것은 이 네 가지를 벗어나는 것이 없다.”
21.3. 상섭연(相攝緣)
『바사론(婆沙論)에서 말한 것과 같다.
“이 욕계(欲界) 가운데 있는 온갖 것은 다 여섯 갈래 세계에 포함된다.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는 각각 여섯 갈래 세계의 일부분을 포섭한다.
그런 까닭에 구별할 수 있으니,
욕계는 바로 난지(亂地)이기 때문에 중생들의 잡된 악이 일으킨 업(業)이 순수하지 못하여 혹은 선하기도 하고 혹은 악하기도 하다.
이렇게 같지 않기 때문에 그 업을 따라 받는 과보에 많은 차별이 있는 것이다.
위의 두 세계는 바로 결정된 땅[定地]이므로 중생들은 침착하고 고요하여 업을 일으키는 것도 또한 순수하다.
그런 까닭에 많은 갈래의 차별이 없다.”
[문] 네 가지 생(生)파 여섯 갈래 세계[趣]는 서로 무슨 관련이 있는가?
[답] 『비담(毘曇)』에서 말한 것과 같다.
“하늘과 지옥은 한결 같은 화생(化生)이요,
귀신의 세계는 오직 두 가지 생(生)만이 있을 뿐이니 이른바 태생(胎生)과 화생(化生)이며,
사람과 축생은 각각 네 가지 생을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이 논에서 물었다.
“네 가지 생이 여섯 갈래 세계를 포섭하는가?
여섯 갈래 세계가 네 가지 생을 포섭하는가?”
곧 스스로 대답하여 말하였다.
네 가지 생이 모든 갈래의 세계를 포섭하는 것이지
여섯 갈래 세계가 네 가지 생을 포섭하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네 가지 생에 중음(中陰)이 더 있지만
그것은 여섯 갈래 세계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생(生)은 넓고 세계 [趣]는 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생(化生)은 넓기 때문에 두 세계와 세 세계의 일부분을 완전히 포함하나
지옥의 세계는 한결 같은 화생이다.
[문] 여섯 가지 욕계의 모든 하늘들은 이미 음욕을 행하는 것이 사람과 같은데 어째서 태(胎)로 태어나는 것이 없는가?
[답] 음욕을 느끼는 것은 비록 같지만 행하는 일은 같지 않다.
그러므로 『대루탄경(大樓炭經)』과 『(정법념처경(正法念處經)』등에서 말한 것과 같다.
“사천왕(四天王)과 도리천(忉利天), 이 두 곳에 사는 이는 음욕을 행할 때에 남자와 여자가 몸으로 교접하는 것이 사람과 같아 차이가 없지만 정액을 쏟아내 는 일이 없으니 그것이 사람과 같지 많은 부분이며,
이 이상의 네 하늘은 한결 같이 완전히 다르다.
염마천(炎摩天)에서는 음욕을 행할 때 마음으로 기뻐하며 서로 포옹하거나 혹은 다만 손을 잡기만 해도 구경(究竟)의 즐거움이 되기에 서로 교합할 것까지도 없고,
도솔천(兜率天)에서는 마음으로 좋아하여 이야기하거나 웃기만 해도 곧 구경의 즐거움이 되기에 서로 포옹할 것까지도 없다.
화락천(化樂天)에서는 서로 함께 바라보기만 해도 구경의 즐거움이 되기에 이야기하거나 웃을 것까지도 없으며,
타화천(他化天)에서는 다만 말 소리만 듣거나 혹은 냄새만 맡아도 구경의 즐거움이 되기에 바라볼 것까지도 없다.
그러므로 사람과 다르다.”
하늘은 화생이기 때문에 어머니의 무릎 위에서 화생하나니, 귀신 세계도 화생임을 가히 알 수 있다.
태생(胎生)이란 잠시 숨어 있는[少隱]것이나,
저『정관(靜觀 : 靜觀音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옛날 왕사성(王舍城)에 어떤 여인이 살고 있었는데, 그녀는 귀신의 정기(精氣)를 받아 그 몸에서 오백 명의 귀신의 아들을 낳았다.”
또 『구사론(俱舍論)』에서 말하였다.
“어떤 귀신이 목련(目連)에게 말하였다.
‘나는 낮에 다섯 아들을 낳고 밤에도 또 다섯 아들을 낳았는데, 낳는 대로 그것들을 먹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먹었는데도 끝내 배가 부르지 않습니다.’
때문에 이것을 태생귀(胎生鬼)라고 한다.
아수라(阿修羅)의 세계도 태생과 화생의 두 가지 생을 갖추고 있으니,
배필(配匹)이 있기 때문에 태로 생산하는 것이 있으며,
아수라는 겁초(劫初)부터 하늘에서 태어나는 것이 있으나 그것은 곧 화생(化生)이다.
또 『관불삼매경(觀佛三昧經)』의 말에 의하면 이러하다.
‘근본녀(根本女)아수라는 원래 큰 바다의 니란(泥卵)으로부터 생겨난 것으로 서 습기에서 생긴 것이니,
이것은 저 태생이나 화생과 공통점이 있으며 또한 네 가지 생겨남도 갖추고 있다.
사람이 네 가지 생을 다 갖추었다고 한 것은,
태생은 현재를 보아 알 수 있으며
난생은 저 『열반경(涅槃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비사거(毘舍佉)의 어미가 한 개의 육란(肉卵)을 낳았는데, 그 안에서 서른 두 개의 알이 나왔다.”
또 『비바사론(鞞婆沙論)』에서 말한 것과도 같다.
“[문] 어떻게 인간 세계에 난생이 있다는 것을 아는가?
[답]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염부리(閻浮利 : 閻浮是) 땅에 많은 상인(商人)들이 살고 있었는데, 바다에 들어가서 보물을 캐다가 학(鶴) 두 마리를 잡았다.
그 학은 마음대로 변화하여 한 마리가 되기도 하고 따로 떨어지기도 하면서 함께 유희(遊戱)하고 한 방에 누워 잠자면서 서로 교합하여 마침내 알 두 개를 낳았다.
그 알은 점점 습한 기운에 익숙해지는가 싶더니 곧 두 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뒤에 자라나서는 출가 하여 도를 배워 아라한과(阿羅漢果)들 증득하였는데, 하나는 이름이 시바라(尸婆羅)이고 다른 하나는 이름이 우발시바(優鉢尸婆)였다.
[문] 어떻게 인간 세계에 습기로 태어나는 것이 있음을 아는가?
[답] 경전에서 말한 것과 같다.
‘정생왕(頂生王)과 존자 차라(遮羅)와 존자 우바차라(優婆遮羅)와 이녀(梨女)ㆍ나녀(奈女) 등이 곧 그 사실을 증명한다.’
[문] 어떻게 사람 세계에 변화로 태어나는 것이 있음을 아는가?
[답] 겁초(劫初)의 사람 같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성인의 법을 증득한 사람은 다시는 알로 태아나거나 습기로 태어나지 않는다.
[문] 무슨 까닭에 말로 태어나지도 않고 습기로 태어나지도 않는가?
[답] 알로 태어나는 것이나 습기로 태어나는 것은 바로 축생의 세계에 속한다.
축생은 네 가지 생을 다 갖추고 있다.
태로 태어나는 것과 알로 태어나는 것과 습기로 태어나는 이 세 가지야 눈으로 보아 알 수 있을 것이요,
저 변화로 태어나는 것은 『대루탄경(大樓炭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마치 네 가지 방법으로 생겨나는 금시조(金翅鳥)가 네 가지로 태어나는 용을 잡아 먹는 것과 같다.
또 변화로 생겨난 것은 네 가지를 다 먹고 태로 태어나는 것은 세 가지만 먹으며[화생은 제외],
알로 태어나는 것은 두 가지만 먹고[화생과 태생은 제외] 습기로 태어나는 것은 습기로 태어나는 것만 먹는다.’”
[세 가지가 제외된 것을 알 수 있다.]
또 『가세경(起世經)』에서 말하였다.
“큰 바다 북쪽에 모든 용왕과 일체의 금시조왕(金翅鳥王)을 위한 한 그루의 큰 나무가 있었으니, 그 나무의 이름은 거타사마리(居吒奢摩離)[수(隋)나라 말로는 녹취(鹿聚)라고 함]라고 하였다. 그 나무의 밑둥 둘레는 칠 유순(由旬)이나 되었으며, 뿌리는 땅 속 같이 이십 유순을 들어갔고, 몸체의 높이는 일백 유순, 가지와 잎은 주변 오십 유순을 덮었다.
나무 동쪽에는 알로 태어나는 용과 또한 알로 태어나는 금시조가 살고 있었고
나무 남쪽에는 태(胎)로 태어나는 용과 태로 태어나는 금시조가 살고 있었으며,
나무 서쪽에는 습기로 태어나는 용과 또 습기로 태어나는 금시조가 살고 있었고
나무 북쪽에는 변화로 태어나는 용과 또 변화로 태어나는 금시조가 살고 있었다.
이 네 곳에는 저마다 궁전이 있어서 가로와 세로가 각각 육백 유순이나 되었는데, 일곱 겹의 담장이 둘러져 있고 일곱 가지 보배로 장엄하였으며 묘한 향기가 멀리까지 퍼지고 모든 새들도 평화롭게 지저귀고 있었다.
또 저 알로 태어난 금시조왕이 만약 알로 태어난 용을 덮치려고 할 때에는 곧 바로 거타사마리나무 동쪽 가지 위로 날아가 큰 바닷물을 관찰하고 난 뒤에 다시 날아 내려가 두 날개로 바닷물을 쳐서 그 물이 이백 유순이나 갈라지게 하고는 곧 그 가운데에서 알로 태어난 용을 물고 바다 밖으로 끌고 나와 마음대로 잡아먹는다.
알로 태어난 금시조왕은 오직 알로 태어난 용들만 잡을 수 있지 태로 태어나거나 습기와 변화로 태어난 용은 잡지 못하며,
만약 태로 태어난 금시조가 일로 태어난 용을 잡으려고 하면 다시 그 나무 동쪽 바다 속으로 들어가서 잡아와야 한다.
또 태로 태어난 용을 잡으려고 하면 곧 나무 남쪽 바다 속으로 들어가서 잡아 와야 하는데, 이 때 물이 사백 유순이나 갈라진다.
이 태로 태어난 금시조왕은 오직 알과 태의 두 가지로 태어난 용만을 잡을 수 있고 습기나 변화의 두 가지로 태어난 용은 잡을 수 없다.
또 습기로 태어난 금시조왕이 알로 태어난 용을 잡으려고 하면 다시 나무 동쪽 바다 속으로 들어가서 잡아먹어야 하고,
또 습기로 태어난 금시조왕이 태로 태어난 용을 잡으려고 하면 곧 나무 남쪽 바다 속에 들어가서 잡아먹어야 하는데, 그 때 물은 사백 유순이나 갈라진다.
또 습기로 태어난 금시조왕이 습기로 태어난 용을 잡으려고 하면 곧 나무 남쪽 바다 속으로 들어가서 잡아와야 하는데, 그 때 바닷물이 팔백 유순이나 갈라진다.
습기로 태어난 금시조왕은 오직 알로 태어난 용과 습기 또는 태로 태어난 용 등만 잡아먹을 수 있고 변화로 태어난 용은 잡아먹을 수 없다.
또 변화로 태어난 금시조왕이 알로 태어난 용을 집으려고 하면 곧 나무 동쪽 바다 속에 들어가서 잡아와야 하고,
만약 태로 태어난 용을 잡으려고 하면 곧 나무 남쪽 바다 속으로 들어가서 잡아와야 하며,
만약 습기로 태어난 용을 잡으려고 하면 곧 나무 서쪽 바다로 들어가서 잡아와야 하고,
만약 변화로 태어난 용을 잡으려고 하면 곧 나무 북쪽 바다로 들어가서 잡아와야 하는데,
그 때 바닷물은 일천육백 유순이나 갈라진다. 저 용들은 다 이 금시조왕에게 잡아 먹히게 된다.”
또 『관불삼매경(觀佛三昧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염부제와 사천하에 금시조가 있는데, 그 이름은 가루라왕(伽樓羅王)이며 모든 새들 가운데 매우 자재로움을 얻었다. 이 새는 그 업보로 반드시 모든 용을 집아 먹어야 했다.
매일 용왕 한 마리와 작은 용 오백 마리를 잡아먹고 사는데,
첫 번째 날에는 염부제에서, 두 번째 날에는 불바제(弗婆提)에서, 세 번째 날에는 구야니(瞿耶尼)에서, 네 번째 날에는 울단월(鬱單越)에서 각각 앞에서와 같이 잡아먹는다.
이렇게 한 바퀴 돌고 나면 다시 시작하여 팔천 년이나 지나간다.
이 새는 그 때 죽을 기미가 이미 나타났으니, 모든 용이 독을 토해내 용을 먹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 새는 굶주림에 시달려 두루 돌아다니며 먹이를 구했으나 끝내 얻을 수 없었고, 여라 산을 돌아다녔으나 영원히 편안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금강산(金剛山)에 이른 뒤에야 잠깐 머물렀다. 금강산으로부터 곧바로 하강해 큰 물가에 이르고 큰 물가로부터 풍륜제(風輪際)에 이르러서는 바람에 날려 다시 금강산으로 갔다.
이와 같이 일곱 번 반복 한 뒤에 목숨을 마쳤는데, 그 새가 목숨을 마치고 나자 그 독 때문에 열 개의 보배산에서 한꺼번에 불김이 일어났다.
그 때 난타(難陀)용왕은 그 산이 타는 것이 두려워 곧 큰 비를 내렸는데, 그 빗방울이 수레 축[車軸]과 같았으므로 금시조의 살은 다 흩어지고 오직 심장만 남아 있었다.
그 심장은 곧바로 하강하기를 앞에서와 같이 일곱 번이나 반복한 뒤에 다시 금강산 꼭대기에 머물렀다.
난타용왕은 그 새의 심장을 가져다가 명주(明珠)를 만들고 전륜왕(轉輪王)은 그것을 얻어 여의주(如意珠)를 만들었다.”
또 『대루탄경』에서 말하였다.
“천하의 모든 용들은 세 가지 열기(熱氣) 때문에 타게 되지만, 아뇩달(阿耨達) 용왕만은 세 가지 열에 타지 않는다.
첫째, 다른 용왕들은 뜨거운 모래비가 봄 위에 내라면 태워지고 구워지는 고통을 당한다.
둘째, 다른 용왕들은 음욕을 일으켜 서로 바라보면 뜨거운 바람이 불어와서 그 몸을 태워 곧 안색(顔色)을 잃고 뱀의 몸이 되어버려 못내 두려워하고 기뻐하지 않는다.
셋째, 다른 용왕들은 금시조에 잡혀 먹히므로 모두들 두려워한다. 천하의 다른 용들은 다 독한 열기를 받지만, 오직 아뇩달용왕만은 유독 그 열기를 받지 않는다.”
또 『선견율(善見律)』에서 말하였다.
“용에게는 다섯 가지 사연이 있어서 용의 몸을 여의지 못한다.
어떤 것이 그 다섯 가지 사연인가?
첫째는 음욕을 행할 때이니, 만약 용과 함께 음욕을 행하면 다시 용의 몸을 받고, 만약 사람과 음욕을 행하면 다시는 용의 몸을 받지 않는다.
둘째는 생(生)을 받을 적에 용의 몸을 여의지 못하고,
셋째는 껍질을 벗을 때이며, 넷째는 잠을 잘 때이고,
다섯째는 죽는 때이니,
이 다섯 가지 일로 용의 몸을 여윌 수가 없다.”
[문] 네 가지 유식은 어떻게 서로 포섭하는가?
[답] 『비담(毘曇)』에서 말한 것과 같다.
“통틀어 말하면 여섯 갈래 세계 가운데 다 네 가지 음식이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넓고 좁은 것이 있어서 서로 같지 않다.
지옥 세계 같은 데에서는 단식(段食)이 있으니, 철환(鐵丸)과 구리 녹인 물이 아무리 고통을 더하더라도 배고프고 목마르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므로 그것을 단식이라고 말한다.
또 가벼운 결박이 있는 지옥과 같은 데에서는 서늘하고 따뜻한 두 가지 바람을 다 갖추고 있어서 그것이 서로 번갈아 몸에 닿기 때문에 그것도 단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오직 위의 두 세계에서만은 단식이 없는데, 그 몸이 가볍고 미묘하기 때문이니
이 논의 게송에서 말하였다.
네 가지 음식은 욕계(欲界)에 있고
네 가지 생(生)의 세계 또한 그러하다.
세 가지 음식은 위의 두 세계에만 있으니
거기에는 단식이란 없다.”
[문] 아직 모르겠다. 여섯 갈래 세계엔 어떤 음식이 더 많은가?
[답] 『비담(毘曇)』에서 말한 것과 같다.
“여섯 갈래 세계 중에 귀신의 전(全) 세계와 알로 태어나는 종생, 그리고 앞의 세 무색계(無色界)에는 다 사식(思食)이 치우치게 많다.
왜냐 하면 저 아귀(餓鬼)의 세계 중엔 뜻으로 실행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요,
알로 태어나는 중생은 알 속에 있을 때에는 어머니에 대한 사념(思念)을 하기 때문에 알을 부수지 못하며, 앞의 세 무색계에서도 뜻으로 행하여 생각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다 사식(思食)이 더 많다.
또 이 인간 세계와 여섯 욕계의 하늘 세계에는 모두 단식(段食)이 치우치게 많다. 왜냐 하면 이 두 곳에서는 반드시 음식에 의지해야만 몸과 목숨을 부지하기 때문이다.
또 저 지옥의 전(全) 세계와 비상천(非想天)은 다 식식(識食)이 치우치게 더 많다. 왜냐 하면 지옥 세계의 인식작용은 명색(名色)만 가졌기 때문이요, 비상천의 인식작용은 이름만을 가졌기 때문이다.
또 저 색계(色界)와 습기로 태어나는 중생은 다 촉식(觸食)이 치우치게 더 많다.
왜냐 하면 저 색계 중에서는 선정을 닦는 즐거움을 느껴 감촉으로 몸을 유지하기 때문이요,
습기로 태어나는 중생들은 축축한 감촉으로 인하여 몸을 유지하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21.4. 오생연(五生緣)
『지지론(地持論)』에서 말한 것과 같다.
“보살의 생(生)에는 다섯 가지가 있어서 일체의 행(行)에 머물면서 일체의 중생을 안락하게 한다.
첫째는 식고생(息苦生)이요, 둘째는 수류생(隨類生)이며, 셋째는 승생(勝生)이요, 넷째는 증상생(增上生)이며, 다섯째는 최후생(最後生)이다.
보살은 원력(願力)이 있기 때문에
기근(飢饉)이 있는 세계에서는 큰 물고기 따위의 몸을 받아 그 살로 일체 중생을 구제하고,
질병이 유행하는 세상에서는 훌륭한 의왕(醫王)이 되어 온갖 질명을 치료하여 구제해 주며,
전쟁[刀兵]이 난 세상에서는 큰 힘이 있는 왕이 되어 전쟁을 종식하여 구제하고 병으로 사견(邪見)과 온갖 악행을 교화한다.
이와 같이 한량없는 중생을 다 왕생(往生)하게 하나니,
이것을 식고생이라고 말한다.
보살은 서원과 자재력(自在力)이 있기 때문에 온갖 중생들과 하늘ㆍ용ㆍ귀신 등이 서로 번갈아가며 뇌란(惱亂)하고,
모든 외도(外道)들이 온갖 삿된 견해를 일으키면 그들 속에 출생하여 그들의 지도자가 되어 그들을 인도하고 바른 견해에 들게 하려고 널리 선설(宣說)하나니,
이것을 수듀생(隨類生)이라고 한다.
보살은 성품으로써 생(生)을 받는데,
세간의 수명이나 물질 따위의 과보보다 뛰어나가 때문에
이것을 이름하여 승생(勝生)이라고 말한다.
보살은 정심주(淨心住)로부터 나아가 최상의 경지인 보살주(菩薩住)에 이르기까지 염부제(閻浮提)에서 자유롭게 생을 받는데,
일체의 생을 받는 곳 중에 가장 기특(奇特)하므로
이것을 증상생(增上生)이라고 말한다.
최상의 경지인 보살주에서 생을 받아 업(業)을 조복(調伏)받고 보리(菩提)의 온갖 조건을 더욱 늘려 원만하게 갖추고는 찰리(刹利 : 刹帝利)나 바라문(婆羅門)의 집안에 태어나서 아뇩보리(阿耨菩提)를 증득하고 온갖 불사(佛事)를 행하므로
이것을 최후생(最後生)이라고 말한다.
삼세(三世)의 보살들은 다 이 다섯 가지 생(生)을 받으며, 그 밖에 더 나은 것이 없으니 이로 인하여 아뇩보리를 빨리 증득하느니라.”
또 『유가론(瑜伽論)』에서 말하였다.
“모든 보살의 생(生)에는 대략 다섯 가지가 있다.
일체의 생을 포섭하고 있으면서 모든 보살은 죄가 없는 생을 받아 온갖 유정(有情)들을 이롭게 하고 안락 하게 한다.
어떤 것들이 그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제재생(除災生)이요, 둘째는 수류생(隨類生)이며, 셋째는 대세생(大勢生)이요, 넷째는 증상생(增上生)이며, 다섯째는 최후생(最後生)이다.
보살은 온갖 기근(飢饉)이 들 때엔 큰 고기 등이 되어가지고 일체 중생이 모 두 배부르도록 공급해 주고,
혹 질병이 유행할 때에는 매우 훌륭한 의사가 되어 역질(疫疾)을 치료하며,
혹 전쟁이 있을 때에는 큰 위력(威力)과 훌륭한 방편[善巧)으로써 전쟁을 그치게 하고,
혹 난폭한 왕이 이치에 맞지 않는 방법을 가지고 백성들을 벌로 다스리면 원력(願力)으로써 모든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며,
혹 삿된 견해가 일어나면 삿되고 악한 것을 없애주나니 ,
이것을 간략하게 말하여 제제횡생(除災橫生)이라고 한다.
혹 어떤 보살은 큰 원력으로써 다른 중생들의 세계에 태어나서 방편으로 교화 하고 인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선한 일을 실천하게 하나니,
이것을 간략하게 말하여 수류수생(隨類受生)이라고 한다.
혹 어떤 보살은 성품을 받아 태어날 때에 감응한 바대로 수명과 형색(形色)ㆍ족성(族姓)ㆍ자재(自在)ㆍ부(富) 따위가 가장 특별하게 뛰어나고, 행하는 사업(事業)마다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까지 다 이롭게 하나니,
이것을 간략하게 말하여 대세생(大勢生)이라고 한다.
어떤 보살이 십지(十地)에 머무르고 시왕(十王)의 과보를 지어 가장 특별하게 뛰어나고 이미 원만함을 성취한다면 곧 이 업으로 말미암아 감응한 바가 증상(增上)되리니,
이것을 간략하게 말하여 수증상생(隨增上生)이라고 한다.
혹 어떤 보살이 이 생(生) 중에 보리(菩提)의 자량(資糧)이 이미 지극히 원만 해지면 때로는 크게 부귀한 왕가(王家)에 태어나거나 능히 등각(等覺)을 나타내 어 널리 불사(佛事)를 일으키나니,
이것을 간략하게 말하여 최후생(最後生)이라 고한다.
만약 모든 보살이 과거ㆍ미래ㆍ현재에 청정하고 인자하고 어질며 미묘하고 선한 곳에 태어나는 것이 다섯 가지 생에 다 포섭되나니, 이것을 제외하고는 이보 다 더 뛰어나거나 한층 더한 것은 없다. 그렇지만 오직 범지(凡地)의 보살이 생을 받는 것만은 여기에서 제외된다.
왜냐 하연 이 가운데에서 취하는 의미는 지혜 있는 보살의 생은 큰 보리(菩提)의 과(果)에 의지해 머물러 있어서 모든 보살들로 하여금 보리를 빨리 증득하게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