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안 경감과 최중락 총경
김광한
이근안 경감과 故 최중락 총경
최중락 총경은 평생을 경찰에 몸담고 있으면서 강력범들을 대한민국 형사가운데 가장 많이 검거한 형사반장이다.70년대 MBC 수사반장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하다.나는 그분을 1969년도 그분이 경위때 서울 서대문 경찰서에 만나서 그분이 돌아가실 때까지 호형호제하면서 지냈다.나는 당시 모잡지사의 편집장으로 있었다.그분이 경험한 이야기를 내가 윤문(潤文)해서 방송국에 가져다주면 그것이 수사반장 드라머가 되었다.이제 그분들 모두, 탤런트를 비롯한 방송관계자들이 세상을 떠났다.작년 9월에 세상을 떠난 최중락 총경의 장례식을 경찰 후배인 이근안 경감(현 목사)이 집전해 주었다. 이근안 경감은 평생을 대공분야 전문가로 국가의 안위를 위해 일해온 애국자이다.생전에 최총경은 이근안 경감을 애국자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중락 총경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노리는 범죄자들을 검거해서 사회적 불안을 해소시키는데 앞장섰고 이근안 경감은 국가를 좀먹는 간첩들과 용공혐의자들을 사전에 검거해 나라를 지킨 애국자이다.이근안 경감은 그동안 국내 최대의 간첩단 사건인 남민전(南民戰) 사건을 비롯해 현재 종북 국회의원이 된 당시 간첩혐의자들을 검거해 국가의 안위를 지켰지만 종북자들의 권세가 막강해지자 그의 수사수법을 비판하면서 고문 경관으로 자리매김을 해 고발이 되고 하루 아침에 몹쓸놈으로 전락이 되었다.원래 대공분야의 수사관은 애국심이 없으면 그 자리에 있지 못한다.경찰서 대공과나 그외 직분 모두가 돈과는 거리가 먼 직이기 때문이다.이경감은 박봉에 시달리면서 대한민국에 기생하는 간첩들을 잡는데 헌신한 경찰관인데 고문 경관이란 불명예를 안고 퇴직해 도피생활을 한것은 애국자를 애국자답게 대우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수치이다.몇년전에 미국 영화 제로 다크 시티가 있었다. 테러리스트 빈라덴을 잡는 미국 첩보부의 활약을 그린 영화이다.
이 영화는 간첩잡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주었다.간첩들은 그 사상과 신념이 확고하기때문에 대화로서 자백을 받지 못한다.미국의 CIA는 미국 영토밖에서의 간첩용의자의 고문을 눈감고있다.이 영화에서 용의선상에 오른 혐의자를 고문하는 내용이있다.그것은 실제이다.그들은 보통 인간이 아니라 기계화된 붉은 사상으로 무장된 흉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육체에 위해를 가하는 소위 고문요법이란 것이 있다.고문을 하는 사람도 괴롭고 받는 사람도 괴롭다.이경감은 김근태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 했다고 해서 기소가 되었고 경찰에서 쫓겨났다.
평생 경찰 해서 얻은 재산이란 아무것도 없는 청백리(淸白吏)였다.좌파가 득세한후에 이경감은 죽일 놈(?)이 되어 언론을비롯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질타의 대상이 되었다.사회의 음지에서 독버섯처럼 기생하다가 좌파정부 등장 후 똥물만난 구더기처럼 기어나온 종북노들이 연일 이승만과 박정희대통령을 저주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는 가운데 이근안 경감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최중락 총경은 생전에 내게 이근안 경감처럼 가족을 생각지 않고 국가에 충성하는 사람 아무도 없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정직과 신뢰 사람보는 눈이 높았던 최중락 총경이기에 세상을 떠났어도 그분의 말에 거짓이 있을 수가 없다.
나는 이근안 경감을 애국자라고 생각한다.그의 수첩에 기록이 된 수많은 반대한민국적인 자들이 득세를 하고 자신의 더러운 행적을 지우려하지만 신(神)의 눈은 속일수가 없다.종북 좌익들은 이경감을 몹쓸 인간으로 만들고 선한 사람의 명단에서 삭제했지만 애국자 명단에는 반드시 앞줄에 기록이 되어야한다는 생각이다.하느님은 목사가 된 이근안 경감을 절대 버리지 않는다.그는 장발잔에 나오는 비정한 형사 자베르가 아니다.
첫댓글 다른곳에 소개해도 괜찮을까요?
네
철없이 세상을 낭만적으로 보아 왔던 시절에도 고문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걸 조금 알았으나
이근안 경감을 인권유린 범죄인으로 몰아 도피하게 만든 현실이야말로 인권유린의 현장이었습니다.
정치인들의 기회주의적 침묵과 무소신이 혐오스러우면서도
나 자신도 공범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냉소적이고 자조적인 무력감에 빠지게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관타나모 사태를 경험하면서 미국이 건강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우리에겐 모두 두 눈 똑 바로 뜨고 진실을 보고 서로 각자의 생각을 밝혀 치열하게 토론하고 공론화하는 능력도 의지도 부족할 뿐 아니라
무책임한 허위의식으로 논박하기 쉽지 않은 편에
쉽게 굴복하며 도피하는 습성이 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으나
나 자신 어쩌지 못하는 무력감에 빠져 그냥 잊어버리고 싶고,
누군가 어떻게 해 주겠지 하는 타자화의 노비근성에 도피해 관망할 뿐이고,
기어들어가는 작은 목소리로 냉소와 자조만 키웠는지 모른다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간에 중요한 이슈에 대해 남들과 다를지라도 제 소신과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이유가 되었고,
나름의 숙고를 거친 연후라면 부족한 견해라도 소신껏 밝혀야 겠다고 용기를 내게 한 연유이겠습니다.
숙고를 거친 뒤라면 그것이 소수의견이 될지라도 밝혀야 할 것입니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