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2장
12. 긍정과 부정의 두 시각
올해 2022년은 베트남전에 전투부대를 파병한지 57주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 육군은 맹호사단으로 호칭하는 수도보병사단의 제1연대와 기갑연대 가 제1진으로 파병되었다. 지금은 많은 세월이 흘러 베트남전에 대한 역사적 의의를 비롯하여 베트남전으로 인한 우리 국군의 발전은 물론 국가 경 제에 크게 기여한 역할에 대해 소흘이 하고 있는 경향이 짙다. 아마 망각하고 있을 지 모른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 베트남전을 되돌아 보며 우리 국 군이 기여한 업적을 평가하면서 우리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베트남전 파병에 관한 긍정과 부정의 두 시각은 오늘에 있어서 학계에서 더욱 예리하게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 주의가 필요하다.
동국대학교 강정구, 성공회대학교 한홍구 두 교수는 최근까지 베트남전 한국군 파병을 부정적으로 보는 대표적 장본인이다. 그들의 주장은 파병 자체가 국익에 보탬이 되지 않을 뿐더러 미국의 청부전쟁 용병이며 한국군은 양민을 학살한 주범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이런 부정적인 시각이 상당히 먹혀들어 김영삼 정부의 교육부 장관 김숙희는 공개 강론에서 국군의 미국 청부전쟁 용병설과 함께 한국군 파 병을 역사에 누를 끼친 실책으로까지 비하했다.
어디 그뿐인가. 한국군은 미국의 침략전쟁에 말려든 치욕의 군대로 비하하면서 '한겨레21' 통신원이라는 구수정 여인이 공산 베트남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직접 확인했다는 내용을 언론을 통해 발표하는가 하면 강정구 교수는 그 내용이 사실이라며 학술회의에서 발표하기까지 하고 있다. 그 들이 주장하는 괴상망측한 한국군에 대한 비행내용은 다음과 같다.
"1965년 12월 22일. 한국군 작전 병력 2개 대대가 빈딩성 퀴논시에 있는 몇개 마을에서 깨끗이 죽이고 깨끗이 불태우고 깨끗이 파괴한다는 작전 아래 12세 어린이 22명,여성22명,임산부 3명,70세 이상 노인 6명, 즉 대부분의 노약자를 학살했다.
'랑'은 아이를 출산한지 이틀 만에 한국군의 총에 맞아 숨졌다. 그의 아이는 군화발에 짓이겨진 채 피가 낭자한 어머니의 가슴위에 던져져 있었다.
임신 8개월의 '축'은 총알이 관통되어 숨졌으며 자궁이 밖으로 들어내져 있었다. 남한 병사는 한 살배기 어린이를 업고있던 '찬'도 총을 쏘아 죽였 고 아이의 머리를 잘라 땅에 내동댕이쳐졌으며 남은 몸통은 여러 조각으로 잘라내 먼지 구덩이에 버렸다.
그들은 또한 두살배기 아이의 목을 꺾어 죽였고 한 아이의 몸을 들어올려 나무에 던져 숨지게 한 뒤 불에 태웠다. 그리고는 열두 살난 '융'의 다리 를 쏘아 넘어뜨린 뒤 산 채로 불구덩이에 던져 넣었다.
한국군들이 마을에 들어가 주민을 체포하면 남자와 여자로 나눴다.그리고는 남자는 총알받이로 데리고 나가고 여자는 군인들 노리개감으로 썼다. 희롱하고 강간하는 것은 물론 여성들의 가장 신성한 부분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행위는 무차별 기관총 난사,대량 학살,임산부 난자살해,여자들에 대한 강간살해,가옥 등에 불지르기 등이었고 아이들의 머 리를 깨뜨리거나 목을 자르고 다리를 자르거나 사지를 불에 던져 넣고 여성들을 돌아가며 강간한 뒤 살해하고 임산부의 배를 태아가 나올 때까지 군화발러 짓밟고 주민들을 마을의 땅굴 속에 몰아넣고 독가스를 분사해 질식사 시키는 것이었다."
위 글은 천인공노할 만행이며 마치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이 중국 대륙에서 저질른 만행을 방불케 한다. 또한 잔혹소설의 한 구절을 연상케 한다. 더구나 우리가 가지고 있지도 않은 독가스를 분사해 질식사 시켰다는 내용에 이르러서는 아연실색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놀랍게도 현역 대학 교 수 강정구가 학술회의 석상에서 인용 발표한 내용이다.
이런 맹랑한 내용은 베트남전 당시 베트콩이 사용한 심리전의 전단 내용과 흡사하다. 이런 엉뚱한 모략 중상이 21세기 대낮에 학술회의 강단에서 이루어지는 실태이다. 이런 내용이 학술지에 게재되어 세월이 흐르면 진실이 되고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는다.
따라서 당사자가 생존하고 있을 때 이를 확실히 규명해서 명백한 반론을 남겨 한국군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
위 글에 제시된 1965년 12월 22일이라면 필자가 맹호사단 제1연대 재구대대장으로 재직중인 날자와 같다.또한 빈딩성 퀴논시 지역이라면 분명 제1연대 전술책임지역 (TAOR)이다.
당시 사단장은 채명신 소장이고 제1연대장은 김정운 대령이다. 1965년 12월 22일 제1연대 가 퀴논지역에서 작전한 부대는 배정도 중령이 지휘하는 1대대와 이필조 중령이 지휘하는 2대대였다. 이 중대한 사건에 접해 당사자 격인 사단장, 연대장, 대대장이 모여 대책을 강구했다. 그 결과 두 교 수 강정구,한홍구에 통보 학술회의를 제의 했다. 그 두 교수도 수용한다고 해서 우리측에서는 채명신,박경석,이선호,지만원 등이 그 두 교수와 함께 학술회의를 열었다.
필자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군사평론가협회 주관, 동아일보 후원으로 이루어졌다.
필자가 기조연설을 하고 양측 발표자인 이선호,지만원,강정구,한홍구 네 주제 발표자가 발언을 했다. 강정구와 한홍구 두 교수는 '한국군의 베트남 전 참전과 민간인 참상'이 주제였고 우리측 이선호 지만원 두 박사는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 재조명'이 주제였다. 주제발표가 끝난 뒤 채명신 장 군이 결론적인 연설로 끝맺었다.
그날 학술회의에서 강정구,한홍구는 구수정 여인이 만들었다는 문제의 이상한 글을 낭독 주장한 외에 단 하나의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 이로써 한국군의 양민 학살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일단락이 되는듯 했다.
그러나 그후에도 2010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군의 용병설과 양민 학살설이 학술지에 발표되는가 하면 학위 논문에도 인용되고 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 밝히지 않을 수 없는 책임을 절감해 육군본부에서 발행하는 '군사연구지'에 기고하게 되었다.
주월 한국군의 가장 중시한 것은 양민의 희생을 방지하겠다는 데 목표를 두고 있었다. 채명신 사령관의 가장 강력한 훈령은 '백명의 베트콩을 놓치 는 한이 있어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하라"이다.
이 훈령에 따라 우리 한국군은 우리측 희생을 각오하면서까지 양민 보호에 나섰다. 물론 전장에서의 양민의 희생을 100% 막을수는 없다. 어느 전 쟁에서나 군인의 희생보다 민간인의 희생이 많다. 더구나 베트콩은 여자도 있고 어린이도 이용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이의 수류탄에 희생되는 비극도 겪었다.
지금 학계에서 인용되는 한국군의 양민학살 자료는 대부분 베트남전쟁 당시 베트콩의 심리전에 이용되었던 허위사실임을 여기서 분명히 밝힌다.
베트남전 참전은 우리나라 경제에 기여해서 오늘날의 경제력의 바탕이되었고 한국군이 제1급 군대로 발돋움한 위대한 족적을 남겼다는 긍정적 시 각이 더 우세한 것은 숨길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부정적 시각에도 철저히 대비해야 하는 경계심도 갖추어야 한다. 참전 노병들은 매일 그 런 간접침략을 분쇄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음을 현역 후배들에게 밝힌다.
우리 국군의 베트남전 파병은 우리 조국과 우리 국군에에게 내린 하늘의 은총이라고 필자는 늘 생각하고 있다. 만일 우리 국군의 베트남전쟁 참전 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경제대국 대한민국과 제1급 선진 국군이 이룰수 없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필자의 역사관이다.
*참고 사항 - 한국군 양민 학살설에 대한 조사 규명
필자가 조사 규명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