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독교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진리는 단순히 우리가 믿는 어떤 것 혹은 우리가 행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하난의 인격 곧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16)
2. 신앙적 차원뿐만 아니라 기독교 변증적 차원에 있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밝히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 하겠다. (17)
3. 그런데 이 예수의 이야기가 양육강식의 세상 정글에서 낙오하고 탈락한 사람들이 그저 지어낸 것에 불과하다면 벌써 오래 전에 이런 신념 또한 자취를 감추었을 것이다. 하문며 지난 2000여 년 동안 한 때는 기천 명에서 지금은 수십억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기다린다면 최소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34)
4. 이처럼 신약성경 곳곳에는 특별히 사복음서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들이 그 당시에 실제로 목격하고 경험했던 사람들에 의하여 기록되어 있다. (36)
5. 그러므로 만일 옘수의 실존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들을 우리가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실존이 부정된다면, 논리의 일관성을 놓고 볼 때, 예수의 실존을 증명하는 증거보다 훨씬 더 빈약한 증거들을 갖고 있는 수많은 역사상의 이물들이 존재 또한 부정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36)
6. 공자는 하나님의 본성에 대해 혼한스러워했다 (37).
7. 이러한 주장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심각한 생각 없이 그저 예수를 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들 가운데 위대한 스승이나 성인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강한 도전을 던져주고 있다. (39)
8. 그러나 처음 믿어 보려고 하거나 그 반대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황당하고 비이성적으로 들린다는 사실이다. (40)
9.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이 하는 말에 대하여 사기꾼이나 정신병자가 아니라면 그는 참으로 하나님일 것이다. (41)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45)
만약 사회적, 경제적, 도덕적 및 종교적인 모든 요인들이 적당하지 않은 때에 그리스도가 오셨다면
11. 그의 강림 소식이나 그의 모든 삶의 행적은 오늘날 우리의 이야기가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55)
12. 예수의 탄생의 시기에는 정치적으로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때가 찼었다. (57)
13. 이 땅의 죄를 속하고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보내신바 된 예수는 이처럼 철저와 준비와 계획 가운데서 당신의 일을 이루셨따. (59)
14. 예수 탄생 이야기의 본질은 마리아가 처녀로서 임신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모양으로 와서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는 것이다. (63)
15. 예수의 공생애 전에 있었던 가정생활과 유년시절의 기록은 “침묵의 기간”이라고 이름 붙여질 만큼 성경에 많이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알 수 있는 것 역시 많지 않다. (69)
16. “그분의 초기 생애에 관한 간단한 기록은 실로 의미심장하다. 아이가 자라며 강하여직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71)
17. 그들의 거주지에서 예루살렘 성전까지의 여행 기간은 역사와 신앙을 설명하고 배우는 좋은 기간이 되었다. (73)
18. 예수게서 그들의 고통을 덜어 주셨을 때에 가르치신 진리는 그분의 자비로운 행위와 관련되어 그들의 기억에 굳게 새겨졌다. (77)
19.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87)
20. “예루살렘을 증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89)
21.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89)
22.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다.” (93)
23. “아담의 시대부터 그리스도의 시대까지 자아 방종심은 식욕과 정욕의 세력을 점점 증가시켜, 마침내 그것들이 거의 무제한으로 사람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사람은 타락되고 병들어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것을 극복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을 대신하여 가장 혹심한 시험을 견딤으로 이기셨다.” (93)
24. 예수 그리스도는 첫 번째 시험에서 자신의 유체적인 절실한 필요를 자신이 가진 신적인 능력으로 해결하지 않고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손에 전적으로 맡기었다. (95)
25.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 이루고자 한 것은 모든 고통의 근원인 죄 그 자체를 온 우주에서 없애고, 죄로 인해 생긴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었다. (97)
26. 여기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기록되었으되”라는 하늘의 논리이다. 믿는 것이 이 세상 논리에 맞지 않아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하면 하나님의 논리에 맞는 것이다. (99)
27. 그 다음 날에도 요한이 두 제자와 함께 자기 일터에 있었는데, 예수께서 근처를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 침례요한의 반복된 이 외침을 듣고 함께 있던 그 두명의 제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쫓아가 그 날로 예수의 첫 제자들이 되었다. (105)
28. 마리아는 제자들과 하께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한 자신의 아들이 이런 기회에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의 특별한 능력을 사용함으로 메시아로서 모든 사람들 앞에 드러나기를 기대하였다. (107)
29. 성경은 예수가 제자들을 부르는 사건을 단 한번으로 묘사하고 있지 안호 적어도 세 번을 서로 다른 곳에서 언급하고 있다. (109)
30. 그들은 예수의 이적을 보고 그의 가르침을 들으면서 여전히 자신들의 생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111)
31. 그는 이스라엘 북쪽 지방의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 잡는 어부였으며 예수의 제조 되기 이전엔느 안드레, 야곱, 요한 등과 함께 침례요한의 제자이기도하였다. (115)
32. 빌립은 예수님의 학생 중 하나였기 때문에 그분은 큰 인내를 가지고 그를 가르치셨다. (117)
33. “심력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의ㅏ 저희 것임이요” (127)
34. 애처로운 고통은 면제받았는지 모르지만 그 잠시의 편함이 날지도 못하고 죽고 마는 비극을 맞게 했던 것이다. (129)
3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129)
36.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ㅇ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33)
37.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133)
38.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135)
39. 예수께서는 복음, 즉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143)
40. 예수의 선포된 말씀을 들었던 청중들은 대체적으로 교육 정도가 낮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하늘의 진리를 청중들의 눈에 보이고 그들이 익히 알고 있는 땅의 사물을 통해서 그림처럼 보여주셨다. (153)
41.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161)
42.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순간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그 앞으로 불려 나와 사람들을 두 부류, rhx 양의 부류와 염소의 부류로 나뉘게 될 것이다. (179)
43. 그의 말씀이 백성들의 마음에 새겨져서 순종하고 변화되는 것이 예수님이 바라는 주된 목표였다. (193)
44. 구원을 요청하지도 못하는 귀신들린 자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을 귀신들린 자들도 보게 되었다. (201)
45.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주로 사람들과 만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셨다. (209)
46. 사실 성경은 이처럼 모든 버림받고 소외된 사람들을 만나시는 예수의 모습이 수없이 나타난다. (216)
47. 회개한 강도는 자신의 죽음의 그 순간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정당하게 인정했다. (227)
48. 예수님의 눈물은 자신의 고통을 예감함에서 오는 눈물이 아니었다. 바로 그 분 앞에는 겟세마네가 있었는데 얼마 안 있어 그 곳에서 큰 흑암의 공포가 그 분을 뒤덮을 것이었다. (239)
49.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다를 향하신 오래 참으심이었다. (267)
50.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이들에게 무서운 심판이 내릴 것이라고 원수들을 위협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그분에게서는 어떠한 격정이나 복수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2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