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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한나라의 신하가 되느냐, 왕의 길을 걷느냐[편집]
7.1. 제나라의 왕이 되다[편집]
이때 한신의 기세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했고, 한신은 유방에게 자신을 제나라의 가왕, 즉 임시적인 왕으로 봉해주기를 청하였다.
"제나라 사람들은 속임수가 많고 변화무쌍하니 반복이 심한 나라입니다. 또한 초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 제가 이곳의 가왕(假王)이라도 되어 진정시키지 않는다면 정세가 안정이 안 되어 후일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 한신의 제안이 천하의 삼분의 일을 차지하고 있는 사나이의 야심인지, 아니면 진실로 그저 일시적인 계책으로 제안을 하는 일인지 그 동기에 대해 사기나 한서에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이때 유방의 상황을 보자면 사수(汜水)에서 초나라 대사마(大司馬) 조구(曹咎)와 장사 사마흔을 격파했으나, 소식을 들은 항우가 팽월(彭越)을 공격하다 말고 돌아와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63]
게다가 이미 한신은 역이기 사건으로 유방의 의중을 거스른 전례도 있었고, 이 때문에 유방은 몹시 분개해서 앞뒤 생각하지 않고 한신을 공격해버리려고 했지만, 장량이[64] 유방의 발을 슬쩍 밟고 "한신이 왕이 되고자 한다면 지금의 우리가 어떻게 막겠습니까? 그냥 달라는 대로 주십시오. 아니면 변고가 일어납니다."라는 말을 해주자, 열받긴 했지만 사리분별을 할 능력은 충분히 있던 유방은 순식간에 태도를 돌변해서 소리쳤다.
"사내 자식이 왕 노릇을 하려면 진짜 왕을 해야지, 가왕이 뭐라더냐?"
그리고 곧바로 장량을 한신에게 보내 한신을 제나라 왕으로 임명했고, 곧바로 초나라를 치도록 명령했다. 밥을 빌어먹고 지내던 회음의 찌질이가 제나라의 당당한 왕이 되는 순간이었다.
유방은 한신을 제나라 왕으로 삼았고 그러면서 한신의 군사를 징발해서 초나라를 치는데 동원했다. 즉 이미 한신은 자기 세력으로 유방을 도와줄 수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그러지 않았고, 대신 유방이 그를 제나라 왕으로 임명해준 이후에야 유방이 한신의 군사를 징발할 수 있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즉 제나라 왕직을 놓고 병사를 대가로 임금과 신하가 거래를 한 셈이 된 셈이다. 이 시점에서 한신은 유방에게 확실히 찍혔을 것이다.
7.2. 천하 삼분[편집]
믿었던 용저까지 죽어버리고 나자, 항우 역시 한신의 기세에 덜컥 겁을 먹었다. 게다가 제나라는 초나라의 바로 머리 위쪽이니, 한신이 항우를 압박하기 시작하면 이미 팽월만으로도 부담스러운 항우에게는 정말 가공할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이에 항우는 우이(盱胎) 사람 무섭(武涉)을 보내 한신을 회유하려고 시도했지만 한신은 단칼에 거절하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이 사람이 항왕을 모실 때는, 관직은 낭중에 불과했고, 하는 일은 극(戟)을 들고 항왕의 신변이나 지켰습니다. 간언을 올려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고, 계책을 내어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 나를 한왕은 상장군에 임명하고 그 인장과 함께 수만 명의 군사를 주었습니다. 또한 나를 대하기를 자기의 옷을 벗어 나를 입혀주고, 자기의 식사를 같이 나누어먹게 했습니다. 나의 말에 귀를 기울려주고 나의 계책을 채택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입니다."
이에 무섭도 대답할 말이 없어 물러갔다. 그런데, 이때 또 괴철이 슬금슬금 한신에게 다가왔다. 괴철이 보기에 천하의 향방이 한신에게 달려 있었으므로, 그를 위해 계책을 한번 내어보기로 한 것. 괴철은 처음에는 '관상을 봐주겠다.'라는 시덥잖은 소리를 하며 한신에게 접근하더니, 곧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천하에 처음으로 일어나 어지러워졌을 때, 영웅호걸들이 제각기 명분을 내걸고 한 번 소리치니 천하의 재사들이 구름과 같이 몰려들어 물고기 비늘처럼 서로 뒤섞이더니, 들불처럼 번지는 화염과 같이, 일진광풍의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일어났습니다.
당시 선비들의 관심사는 단지 진나라의 멸망에 대한 것뿐이었으나, 그러나 지금은 초와 한이 나뉘어 다툼으로써, 천하의 죄 없는 백성들은 그들의 간과 쓸개가 땅에 깔리게 되었고, 황량한 교외의 들판에 나 뒹굴고 있는 아비와 자식의 해골은 그 수효가 많아 이루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초나라가 팽성에서 일어나 사방의 적을 쫓아다니다 그 패주하는 적의 뒤를 따라 형양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승세를 탄 초군이 천하를 석권하며 천하를 진동시켰습니다. 그러나 그 초군도 경(京)과 색(索) 사이에서 한군의 반격으로 기세가 꺾이고 성고의 서쪽에 있는 험악한 산세에 막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한 지가 이미 3년이 되었습니다. 한왕은 몇십만이나 되는 인마를 이끌고 공현(鞏縣)과 낙양(洛陽) 일대에서 초군의 서진을 막고, 그곳의 험준한 산과 강의 요충지에 의지하여 초군의 공격에 간신히 버티고 있습니다.
한왕은 그동안 하루에도 몇 번이나 싸움을 치렀음에도 지금까지 한 치의 공도 세우지 못하고 패전만 계속하다가 외부로부터 구원도 받지 못하고 결국은 형양과 성고의 싸움에서 타격을 입고 완(宛)과 섭(葉) 땅으로 달아났습니다. 이것이 소위 지혜는 바닥이 나고 용기는 다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군대의 사기는 험준한 요새에서 꺾이고 창고의 양식은 다 떨어졌으며 백성들은 고통과 피로에 지쳐 그 원성은 길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어 민심은 동요되어 의지할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제 소견으로는 이러한 형세는 천하의 성현일지라도 그 화란을 그치게 할 수 없다고 여겨집니다. 오늘 결국 한왕과 초왕 두 왕들의 운명은 모두 장군의 손안에 달려있게 되었습니다. 장군께서 한왕에게 협조하면 한왕이 승리할 것이고, 초왕에게 협조하면 초왕이 승리를 취하게 될 것입니다. 이에 제 속마음을 피력하여 어리석은 계책이나마 올리고자 하오나 단지 걱정되는 것은 장군께서 제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진실로 능히 장군께서 저의 계책을 받아들이신다면 한과 초 두 나라에 이익을 주어 모두 존속케 하고, 천하를 삼분하여 정족지세(鼎足之勢)를 이루어 아무도 감히 먼저 움직이지 못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된다면 장군의 뛰어난 능력과 성스러운 덕성으로 수많은 무기와 군사들을 거느리고 부강한 제나라를 근거지로 삼고, 연과 조 두 나라를 복종시키고 유(劉)와 항(項)의 군대가 없는 땅으로 나아가 그들의 후방을 압박한다면, 그것은 바로 백성들의 마음에 순응하는 바가 될 입니다.
또한 계속해서 서쪽의 형양성 쪽으로 진격하여 유(劉)와 항(項)의 분쟁을 중지시켜 군사들과 백성들을 위해 그들의 목숨을 보전시키라고 요구한다면, 천하 사람들은 바람처럼 달려와 메아리처럼 호응할 것입니다. 누가 감히 장군의 명을 듣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큰 나라는 쪼개지고, 강한 나라는 약하게 되어 제후들을 세울 수 있게 됩니다. 이에 제후들이 일단 서게 된다면, 천하는 장군이 베푼 덕에 감격하여 제나라의 명을 받들며 귀의할 것입니다.
이에 제나라의 옛 땅을 안정시키고 교하(膠河)와 사수(泗水) 유역을 근거지로 하면서 덕을 베풀어 감동시킨 제후들을 소집해서 두 손을 높이 들어 읍을 하면서 겸양의 자세로 자신을 낮춘다면 천하의 제후왕들과 그 재상들은 줄을 서가며 제나라에 들어와 조배를 드릴 것입니다.
나는 '하늘이 주는 것을 취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후에 벌을 받고, 때가 왔을 때 행동하지 않는다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는다.'(盖聞天與不取 反受其咎, 時至不行 反受其殃)라고 들었습니다. 원컨대 장군께서는 심사숙고하시기 바랍니다."
괴철이 설득하고, 한신이 고민하는 이 부분은 회음후 열전은 물론, 사기 전체에서도 명장면으로 손꼽히는 부분이다. 한신은 이 말을 듣고, "한왕이 나에게 잘 해주었는데, 내가 배신하는 게 옳겠는가?" 하고 고민했다. 그러자 괴철은 문경지교라 일컬어졌지만 파탄난 장이와 진여의 우정, 그리고 월왕 구천을 패자로 만들었지만 의심을 피해 떠난 범려를 언급하며, 하물며 유방과 한신의 관계가 한때의 장이와 진여만큼 각별한 것도 아니고, 한신이 범려가 구천에게 한 것만큼 유방에게 지극하게 충성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유방만이 의리를 지키기를 바라느냐며 강하게 밀어붙였다. 한신은 "조금 생각해 보겠다."면서 답변을 미루었다.
며칠 뒤, 애가 탄 괴철은 다시 한 번 한신을 설득했다. 그러나 결국 한신은 주저주저하다가 결국 괴철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또, 자신의 공이 워낙에 크기 때문에, 자신에게서 유방이 제나라를 쉽게 빼앗아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자 괴철은 일이 글렀음을 알고, 일부러 미친 사람 행세를 하며 돌아다녔다. 유방이 승리하면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만으로도 처형감인데, 정신병자 행세를 해서 이를 모면해 보려고 한 것.
이 이야기에서 한 가지 의문은, 괴철과 한신의 이 대담은 그야말로 완전히 밀담인데, 어떻게 사마천이 바로 이 이야기를 옆에서 본 것 같이 생생하게 기록했냐는 점이다. 일단 회음후열전에서도 '주위의 사람을 물리고' 이야기를 했다고 나온다. 이는 진시황 사망 후, 이사와 조고, 호해가 사구(沙丘)에서 모의를 하는 부분과 더불어 사마천이 절대로 그 내막을 알 수 없는 상황으로 손꼽힌다.
다만 사구정변 쪽도 항목도 나오듯이 사마천이 '절대로 그 내막을 알 수 없다'는 부분에 반론이 있으며, 괴철의 대담 쪽은 오히려 이런 의문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 우선 한신과 괴철이 대담을 가졌던 사실 자체는 확실하다. 한신의 사망 후에 유방은 괴철을 잡아들였으며, 이때 괴철은 "내가 한신에게 반란을 권했다."라고 인정했기 때문. 자세한 대화 내용이 문제인데, 괴철이 결국 죽지 않고 풀려났음을 생각해본다면 괴철이 상황을 말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우선 유방이 괴철을 잡아들여 신문하는 과정에서 자세한 대화의 내용도 당연히 조사했을 것이고, 괴철은 그런 권고를 했다는 것을 당당하게 자백한 만큼 자세한 대화의 내용도 숨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공식적으로 괴철이 한신에게 그런 권고를 했다는 것이 공개된 상태에서 황제가 괴철을 친히 석방했으므로, 이후에 괴철이 대화 내용에 대해 계속 함구해야 할 이유가 없다.
8. 해하 전투[편집]
파일:xLtzoPZ.jpg
한신·팽월·영포를 대장으로 봉하다[65]
항우는 팽월과 유방의 협공 때문에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있었고, 군량도 부족해졌으며, 또한 한신의 기세 때문에 두려움에 떨었다. 결국 항우는 먼저 유방에게 홍구(鴻溝)[66] 이서의 땅은 한나라에, 그 이동의 땅은 초나라 땅으로 하여 천하를 양분하자는 제안을 내었다. 유방도 이에 승낙하여, 두 사람은 각자 동쪽과 서쪽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쪽으로 떠나던 유방은 장량과 진평의 제안으로 항우의 뒤를 치기 시작했고, 동시에 팽월과 한신에게도 연락하여 움직이기를 권하였다.[67] 그런데 한군이 고릉(固陵)[68]에 이르렀음에도 불구, 팽월과 한신은 꼼짝도 하지 않고 버티기만 했고, 유방은 초나라의 반격을 받아 큰 패배를 당했다. 결국 장량의 제안에 따라 유방은 자신의 신하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과 또다시 '거래'를 해야만 했고, 한신 역시 그제야 부대를 이끌고 직접 유방을 도우려 달려왔다. 또다시 감히 임금을 상대로 '거래'를 시도한 한신은 분명 다시 유방에게 찍혔을테고, 유방은 한신을 완전히 위험인물로 주시했을 것이다.
화를 꾹꾹 눌러 참으며 유방은 장량의 제안에 따라 팽월과 한신의 봉지를 넒혀주기로 약속하고, 항우의 대사마 주은을 회유하였고, 수춘을 공격하던 영포와 유고까지 합류시켰다. 그리고 유방에게 합류한 관영의 공격에 항우가 진현[69]에서 패주하자 한신과 팽월이 결국 유방의 제안을 뿌리치지 못하고 군대를 이끌고 옴으로써, 영웅들은 마침내 해하(垓下)에서 모두 집결하였다. BC 202년, 해하에서 집결한 연합군은 항우의 최후를 장식하기 위해 진격하였다.
이때, 한신은 무려 30만 대군을 이끌고 초군과 정면으로 격돌하였다. 이후 항우의 괴력에 밀려 후퇴하다가, 측면 부대를 이용해 초나라 군대를 요격했고, 다시 본대가 뒤돌아 공격을 퍼부어서 초군을 대파하였다. 결국 항우가 도주하다 자결하면서 전쟁은 드디어 종결을 맞이했다.
유방은 최후까지 버티던 노현(魯縣)을 굴복시켜, 완전한 끝을 장식했다. 그런데 승리를 거둔 후 서쪽으로 가던 유방이 정도[70] 부근에 이를 무렵, 유방은 또 갑자기 한신의 진영으로 달려가 한신의 군권을 빼앗았다. 이미 한번 당해본 일이었지만 이미 전쟁도 끝난 마당에 갑작스런 기습에 한신은 놀랐는지 제대로 반항도 못 해보고 고스란히 병권을 넘겨주었다(...). 유방은 한신을 본거지인 제나라에서 항우가 다스리던 초나라 왕으로 옮기고, 도읍을 하비(下邳)에 정하게 하였다. 제나라는 폐지해서 한나라에서 1년간 직접 다스리다가 BC 201년에 부활시켜 유방의 서장자 유비에게 맡겼다.
'숙청'은 기본적으로 이쪽이 상대보다 힘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유방이 당초에 한신의 세력을 압도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초한전쟁의 사실상 최종결전인 해하전투에서 한신은 유방의 후군과는 별개로 단독으로 30만 대군을 동원했다. 설사 이를 3분의 1만 믿는다고 해도 그 군대는 10만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인데, 전 중국을 뒤흔들고 수많은 나라를 멸망시켰으며 왕들을 참살한 군사 10만을 이끄는 장군의 위세란 실로 어마어마했을 것인데 유방은 이런 한신을 어떻게 숙청했을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71]
일단 이때는 제나라 군사는 뺴앗기긴 했어도, 최소한 일방적인 숙청은 아니었다. 한신은 자신의 기반이 있던 제나라에서 자신의 고향 초나라로 왕직을 옮겼는데, 초나라 역시 결코 중요성이 떨어지거나 작은 나라는 아니었다. 규모로만 따지면 임치·낭야·제북·교동 4군(또는 임치·낭야·제북·박양·교동·교서 6군) 73성인 제나라보다 오히려 더 큰 나라가 설·회양·사천·동해·회계 5군 89성인 초나라였다.